스승이란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존재를 일컫는 말이 아닐까 하는데, 과연 이 땅에 스승은 존재할까.
단지 시간과 공간에 매인 계약관계로 끝나고 마는 관계로 전락하고 말지 않았는가.
한 때 양정자의 '중학교 선생'이란 시를 읽고 참 슬프다.
어린아이에서 사춘기로 고통스럽게 진입해 들어가는
번민 많은 아이들을 가득 싣고
슬픔의 급행열차가 잠시 멎는
시골의 쓸쓸한 간이역 같은 중학교
거기 몇 십 년씩이나 서서
손을 들어 달리는 그 기차를 멈추게 하고
멎은 기차를 또다시 출발시키는
해마다 늙어가는 기차역원같은
돈도 명예도 없고
있었던 실력도 오랜 세월 쓰지 않아 녹이 다 슬어버린
허름한 중학교 선생
스치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속력은 너무 빠르고 바빠
몇 년 지나면 마침내
아무도 찾지 않고 잊혀지는 중학교 선생
양정자 시집, 아이들의 풀잎노래, 창작과 비평사에서
그러나 현실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금방 잊혀지는 존재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교사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스승이란 교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분을 스승이라 일컫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니 스승의 날 하면 학교 교사, 또는 교수 중에서 찾는 경우가 많으니...
진정한 스승이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고, 제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인류의 스승이라 할 공자도, 예수도, 서가도, 마호메드도 제자들이 없었다면 스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꼭 위대한 인물들 말고도 우리 주변에서 남 모르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닌 사람, 그 사람은 스승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즉 진정한 스승은 없다고 단정짓지 말고, 나 자신이 스승을 찾을 제자의 자세를 지녔는지, 그리고 그런 스승을 뛰어넘을 각오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반걸음 앞서 가기-선생 노릇1
딱 반 걸음만 앞서가야지. / 의식하지 못해도 / 늘 눈 앞에 보이게. /
하는 행동 하나 하나 / 모두 보이게. / 강요하지 않고, / 빨리도 가지 않고, /
늦게도 가지 않고, / 오직 반 걸음, /
겨우 저 정도야, / 금방 따라 잡을 수 있을 걸 / 하게 해야지. /
그래서 반 걸음 / 손을 내밀면 / 언제든 /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게, / 손 잡고 함께 / 함께 /
갈 수 있게, / 반 걸음만 / 겨우 / 반 걸음만 앞서 가야지, /
그 힘든 길을.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고 교사의 자세란 어떠해야 하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의 대안학교의 시초가 이오덕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죽어 있는, 판에 박힌 글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아이들의 감정과 생활이 살아있는 글쓰기를 하셨던 분. 엄혹한 시절에도 본인의 교육관을 지키려 노력하셨던 분. 그 분의 책 중에 "내가 무슨 선생노릇을 했다고"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은 딱 반걸음 앞서간 스승이지 않을까.
이런 이오덕 선생님 말고, 또 한 사람, 원주에서 생활을 했으나,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 분. 비록 학교 교사노릇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이웃에서 우리들보다 딱 반걸음 앞서가면서 삶의 귀감이 된 분. 장일순 선생님. 책으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 분의 삶과 말을 기록한 그 책들은 내게 충격이었다. 이 분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었구나 하는 생각.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자신을 부끄러워한 분. 서민의 생활에서 진리를 찾으셨던 분. 결코 드러내려 하지 않았으나 그래서 드러난 분. 한 번 읽어보자.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한 분은 제도권 교육에서 애쓰셨던 분이고, 한 분은 제도권 교육 밖에서 애쓰신 분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