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지음, 최원준 옮김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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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많은 시대다. 그런 상처를 그냥 놔두면 곪아서 터지게 된다.

 

이런 상처 많은 시대,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상처를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지 않고서는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고, 그 상처를 인정하고, 껴안고, 상처로 인해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인식한다면 좀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상처입은 치유자"

 

이 책은 사역자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인들이 읽을 책이라는 얘기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다.

 

단지 사역자만 그럴까?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상처 많이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했는데...

 

사역자라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지만, 이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교사들 아니던가.

 

종교를 떠나서 인간을 만나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교사는 목회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사가 자주 접하는 아이들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기 일쑤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들은 자신들의 상처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상처로부터 도피하면 안된다. 상처를 회피해서도 안된다. 오직 자신의 상처를 바로보고, 그 상처를 통해서 더 나은 자기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면 다른 사람의 상처도 볼 수 있다. 그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 

 

난 이 책을 그렇게 읽었다.

 

짧은 책이지만, 또 교회의 목소리가 너무도 많이 들리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면,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함은 명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이 상처 많은 시대. 상처 입지 않은 사람에게서 힐링을 구할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에게서 치유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바이고, 또 이 책은 적어도 남을 치유하겠다는 사람은 상처를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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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힘 - 불확실한 미래의 결정인자
마르쿠스 헹스트슐레거 지음, 권세훈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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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개성'이다. 이런 주장이다. 개성은 독특함이라고 할 수도 있고, 다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그 무엇, 이것을 우리는 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성은 좋은 의미로 사용이 되지만, 독특함과 다름은 부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언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인데, 이 독특함이나 다름이 부족함으로 사용되면, 개성은 존중받아야 할 무엇이 아니라 교정되어야 할 무엇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개성과 반대되는 의미로 이 책에서는 '평균'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평균은 튀지 않음, 남과 함께 함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무언가 다르다는 것은 현재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니, 결국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즉, 평균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재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영원히 현재를 살 것도 아니고, 미래는 예측가능하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런데도 평균을 추구한다면 이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미래가 다가온다면 모두가 살아남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단일성은 그만큼 현재에는 완벽한 적응이지만, 미래에는 부적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다른 존재, 개성을 지닌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적응할 수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미래를, 가능성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깎고, 갈아서 평균으로 만들어야 하겠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은 다 다르다. 같을 수가 없다. 하다못해 일란성 쌍동이조차도 다르다. 그들이 한 부모 밑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교육을 받으며, 또 함께 자라서 외양으로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아도 그들은 다 다르다. 달라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다. 만약 그들이 똑같다면 그들은 행복할까? 아니다.

 

하물며 일란성 쌍동이조차도 그런데, 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가? 그것도 교육을 통해서... 그건 아니다. 아니라고 한다.

 

하여 한 존재가 지닌 개성을 어떻게 하면 발현하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환경을 조성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교육자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교육자들은 다름에 대한 바른 인식, 즉 개성이 미래를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해야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평균을 지향하는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잘하는 과목을 더 잘하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못하는 과목에 치중하게 함으로써 결국 모든 과목이 평균에 불과하게 만드는 잘못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지금의 초,중,고,대학교의 교육을 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아이들이 실패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는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연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충분히 실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가?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고 있는가?

 

그래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다 다른 사람들인 우리들은 다 다른 재능을 펼칠 수 있고, 이것이 사회를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또한 미래가 어떻게 다가올지라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한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이 책에서는 세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유전자, 그 다음은 밈(이를 우리는 환경이라고 하자), 다른 하나는 후성유전인자다.

 

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유전자의 비밀이 밝혀지면 인간 존재의 본질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유전자도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질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특정한 환경이 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여기에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유전인자까지.

 

그러므로 우리는 유전자 맹신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또한 환경 절대주의에도 빠져서는 안된다.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에게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런 복합적인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내적, 외적 동기를 제공해주고, 또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평균은 사라지고 개성이 발현될 것이다. 예전에 윤구병 선생이 썼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이런 말을 해야 한다.

 

"꼭같은 것보다 다 다른 것이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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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광고인의 고백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 서해문집 / 199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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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오길비. 광고를 공부하다 보면 카피라이터로서 성공한 사람으로 나온다. 게다가 광고회사를 차려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광고에 대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책으로 냈는데...

 

오길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느날 누군가가 "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읽고 싶은데, 책이 품절이 되어서 구할 수가 없다고 했었다.

 

"어? 나 그 책 서점에서 봤는데..."

 

동네서점에서 제목을 본 기억이 있다. 광고나 디자인 분야의 서가를 기웃거리다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살까 말까 하다가 나중에 사지 하고 미뤄두었던 책이었는데, 그럼 이 참에 그 책을 구해서 내가 먼저 읽고 빌려줄까 하는 생각에 그 서점에 갔었다.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서점은 서가를 옮기는 중이었고, 책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매다 직원에게 물어보았는데, 팔리고 없다. 이젠 책을 구할 수가 없다.

 

광고에 대해 전문적으로 쓴 책도 아니고, 거의 자서전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아쉬운 마음은 별로 없었는데, 우연히 동묘 쪽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주저없이 손에 들고 나왔는데...

 

자서전은 아니고, 광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을 오길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광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로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나온 지가 한참되어서 지금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얘기도 많겠지만, 적어도 광고에 대한 기본은 생각하고 확립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국어 교과서에 광고도 실리고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런 광고인의 글을 그래도 실어서 읽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단 생각이 든다.

 

세세한 광고기법이야 내가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지만, 광고인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는 비단 광고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는 광고를 할 때는 자신의 아내에게 설명하듯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가 남자이니 아내라고 했지, 여자라면 남편, 또는 가족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광고하는 대상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자신도 사용하지 못할 대상이라면, 자신이 아내에게 사주거나 권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광고는 거짓이 되고, 이렇게 진실성이 없는 광고는 한 번은 성공할지라도 두 번째부터는 처절하게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의식이고, 전문성이다.

 

또한 뭐든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곳곳에서 하고 있는데, 광고인이라고 해서 그냥 광고에만 매달리면 안된다는 얘기, 인문학적, 철학적, 공학적 지식에다 가끔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여행 등도 해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용하다고 본다.

 

지금 텔레비전에서는 광고인들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어 방영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들이라면 오길비의 이 책 정도는 읽고보면 드라마 상황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 이 책은 품절되었지...이런...

 

그럼 '광고 천재 이제석', 이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정도는 읽어둬야 드라마를 더 깊이있게 볼 수 있나? 에이, 드라마는 그냥 재미로 봐도 되는데... 드라마 분석가도 아니고... 하지만 알면 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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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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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라는 말만큼이나 도발적이다. 신을 광범위하게 믿고 있던 시대에 니체가 던진 이 말은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텐데...

 

신의 존재 증명과 더불어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도 역시 계속되는 논란거리다. 어떤 이는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일뿐이라고 하고(일원론), 어떤 이는 인간은 물질과 정신으로이루어졌다고 하고(이원론), 이 중에서도 물질(육체)가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 정신(영혼)이 더 큰 작용을 한다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통하게 되는데, 사후세계에 대한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과 또는 죽음이란 무엇이냐라는 질문과도 통하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쩌면 해결할 수 없는, 또는 해결해서는 안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슷한 질문이 더해졌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인간은 물질적 존재일뿐이라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은 당연한 주장에 불과하리라. 인간의 모든 행동은 뇌 활동의 결과이며, 뇌 활동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가 정신이라고 하는 생각하는 활동도 이루어진다고 하니, 우리의 생각, 의지, 행동은 결국 뇌의 활동을 밝히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행동을 고칠 때, "그건 네 의지에 달렸어."라는 말보다는,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활동했느냐를 따져 뇌를 치유하면 된다는 주장, 그것이 인간은 물질적 존재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게 들릴 수도 있겠다.

 

반면에 인간은 정신적 존재라고 하는 사람들, 아니면 정신이 더욱 큰 작용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은 말도안되는 주장이 된다. 인간은 단순한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되었고, 문명을 이루었으며, 자기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어떤 대답을 해도 반론이 들어올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해리스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 행동의 저변에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그리고 또 알 수 없는 어떤 원인이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결과는 같지만 제시된 원인이 달라짐에 따라 우리는 판단을 다르게 하게 되는데... 자, 그 결과를 이루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원인이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무언가 답답하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은가. 무슨 행동을 해도 그것은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범죄자는? 그는 단지 꼭두각시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그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이렇게 가다보면 회의주의에 빠지고, 반도덕적, 반사회적으로 가게 될 것 같은데, 그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자유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도록 조건지워진 인간의 행동일 뿐이라고 한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면 사회가 더 도덕적이고 협동적일 수 있다고 한다. 왜냐고? 인간에게 "넌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기 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란다. 즉, 사람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 때 그 자리에 존재하게 된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지만...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그 사람들은 그런 환경을 조성하려고 할까? 그들은 우연히 그러한 환경에서 지냈고, 그러한 환경이 자신의 생존, 생활에 더 좋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인가?

 

결국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비슷해지는 결론으로 가는 건가? 이기적 유전자도 한없이 이기적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이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그리고 단편화되고 파편화된 작은 유전자에서 통합적인 유전자체로 존재하기도 한다는. 여기에는 어떤 자유의지가 개입할 수가 없다는.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 책이 논리에 수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책의 내부에서 그 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가끔 책의 바깥에서 그 책을 바라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길이 어떤 길인지도 판단할 수도 있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이 논리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물질로 둘러싸여 생활한 사람은 과연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까?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 사이코 패스의 뇌수술, 복제인간 문제, 또는 유전자로 그 사람의 질병, 반사회적 활동을 판단하는 문제 등에 어쩌면 이 책은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은 이러한 문제를 이 책의 저자도 의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유의지의 주술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정확히 유용함의 정도에 따라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변할 수 있는 지점에서는, 그들에게 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변화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점에서는,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자연의 힘과 더불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힘을 쏟을 대상은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이 책 79쪽)

 

이 말은 책임을 개인에게만 묻지 말아라. 책임은 사회에도 있다. 즉,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면서 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을 좋게 해석을 하면 더 좋는 사회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의지에 호소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니, 그렇게 듣고 싶다. 이건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샘 해리스의 이 책 주장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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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술
피터 펜윅.엘리자베스 펜윅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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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달 사이에 연달아 세 번의 죽음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을 만날 나이가 되었다는 서글픔도 있지만, 어느새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잘 죽음, 이것은 잘 삶만큼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죽음이 잘 죽는 죽음일까? 도대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의문은 끝없이 드는데, 답은 없다.

 

최근에 읽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을 해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면, 이 책은 구체적인 죽음 순간의 모습과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역시 죽음에 대한 어떤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아니, 죽음에 대해서 기술을 알려줄 수는 없다. 죽는 순간은 단 하나뿐인 순간이며, 이는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죽음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영혼으로 나타나든, 연기로, 구름으로, 또는 바람으로, 아니면 다른 자연현상으로, 또는 텔레파시로 나타나든, 죽음에는 어떤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단지 인간은 뇌와 육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뇌에는 우리가 규명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또는 친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는 순간에 겪었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사람은 단지 뇌만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아직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 없는 어떤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죽는 사람이든, 남아서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이든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마음이 편안해진다.

 

죽음이 그냥 소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한다. 그 여행을 떠날 때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도 하며, 다시 만나지 못할 여행이기에 그동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을 해소하기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죽음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요양원)에서 죽는 경우가 대다수다. 자신의 삶을 구성하던 친숙한 공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의 첫발을 대딛고, 생의 마지막 발을 내딛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탄생의 순간이든, 죽음의 순간이든, 친숙한 공간에서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두렵다고 해서 그냥 멀리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죽음의 기술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면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허황된 얘기로 치부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그는 곧 삶에 동반한 그림자이자, 삶의 길에서 잠시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뒤안길이라는 사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이것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삶을 더욱 충실하게, 즐겁게 영위하라는 뜻이다.

 

"죽음의 기술"이라는 책은 결국 "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잘 죽음"은 곧 "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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