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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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여러 곳에 메모를 해놓은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의 어머니가 1977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은1979년까지 쓴 글들이다. 그리고 바르트는 1980년에 사고로 인해 사망한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슬픔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 곳곳에서 바르트는 자신의 어머니를 이렇게 표현한다.
 
마망은 단 한 번도 나를 질책한 적이 없었다. (266쪽)
 
어머니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내가 철 모르는 어린애인 것처럼 말한 적이 없었다. (266쪽)
 
이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에게 다가온 것은 깊은 슬픔이다. 그렇다고 이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슬픔을 글로 표현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바르트는 어머니를 애도한다.
 
이렇게 2년에 걸쳐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애도한다. 이런 애도를 통해 비로소 어머니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글들은 짧다. 그리고 여백이 많다.
 
마치 슬픔을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많은 여백이 깊은 생각을 이끌어낸다. 조용한 응시. 이런 응시를 통해 우리를 애도에 이끈다.
 
그렇게 이 책은 바르트의 애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대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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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8-02-1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inye91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inye91 2018-02-15 12:5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ngs01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실 바라겠습니다.

2018-02-15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6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태양의 후예 알베르 카뮈 전집 10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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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가 카뮈는 잊어라.

 

아주 짤막한 글들의 주인 카뮈를 만난다.

 

시라고도 할 수 있고, 아포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들.

 

글이 주인공인지 사진이 주인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글과 사진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그림에 시가 들어가듯이.

 

사진 역시 컬러가 아니어서 좋다.

 

색채를 눈에 들이대는 화려함 보다는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사진들.

 

사진들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의 깊이에 글의 상징이 더해져 마음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다.

 

그냥 사진을 보며 한없는 명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듯.

 

글을 읽으며 글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들을 상상으로 채워넣으면 좋을 듯.

 

이것이면 된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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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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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독교를 선교할 목적으로 아마존 밀림 지대에 살고 있는 피다한 족을 찾아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함께 생활한 사람의 이야기.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하면 끝인데, 여기에 기독교와 원주민들의 신앙, 그리고 언어에 대한 이론이 겹쳐져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가 들어가 산 마을인 피다한 부족들의 언어는 지극히 간단하니까 말이다.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다.

 

원주민을 선교할 목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배웠지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면서 선교보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 옳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즉, 그들과의 생활은 저자의 생활과 신념을 바꾸었다. 이것이면 된다.

 

저자인 다니엘은 젊은 나이에 가족을 이끌고 피다한 마을로 들어가 그들의 말을 배운다. 그들의 말을 배우는 목적은 단순하다.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읽게 하는 것.

 

결국 성공한다. 그는 피다한 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고, 피다한 말로 마가복음을 번역한다. 그들에게 녹음하여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결과는? 피다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수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일만을 믿는 그들에게 기독교 성경은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니 선교는 실패할 수밖에. 선교가 실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인 다니엘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린다. 이들에게 어떤 결핍을 깨닫게 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믿고 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죽음도 그들 삶의 일부다. 죽어가는 사람을 억지로 살리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겨내지 않으면 죽을 뿐이다. 이런 그들에게 내세를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과연 내세를 위해 현세를 고민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인 다니엘은 기독교를 포기하고 만다. 그 결과로 가족들을 잃었을지라도, 그는 문화의 다양성, 신념의 다양성, 언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남에게 강요한다.(?) 그들은 절대로 강요라고 하지 않지만, 자신의 믿음이 옳고, 자신의 신은 절대진리라고 하고, 다른 신들은 우상이고, 다른 믿음은 미신이라고 여긴다.

 

여기에 다양성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오로지 하나로 수렴하는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함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 수천 년, 수백 년 살아오면서 형성한 믿음, 다양성들이 한 순간에 포기되겠는가.

 

그렇다면 더 큰 힘이 작동하게 된다. 다양함을 단순함으로 수렴하는 데는. 그것이 오랜 시간에 걸친 선교사들의 희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선교활동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잘 살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잘살지 못해, 너희는 불행해!라고 끊임없이 강요하는 활동이 아무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해도 그건 폭력에 불과할 뿐이다.

 

다니엘은 결국 이 점을 깨닫게 된다. 그가 기독교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피다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생활한 것이다. 피다한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 책에도 나와 있는데..

 

"피다한 사람들은 풀을 먹지 않아. 네가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건 그것 때문이다. 우리 피다한 사람은 우리말을 아주 잘하지. 우린 풀을 먹지 않아." (372쪽)

 

피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은 자신들처럼 사는 생활 속에서, 또는 다른 피다한 사람들과 맺는 관계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들처럼 생활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들의 말을 한다고 해도 진정으로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다. 마이시 강 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마코 앵무새처럼 그저 '소리'를 따라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혹은 전화기에 녹음된 메시지처럼 정해진 말만 되풀이하는 것으로 간주할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영리한 앵무새나 녹음된 전화메시지에 불과했다. 이방인인 나는 진정으로 자신들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피다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언어와 문화의 관련성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373쪽.

 

이런 고민들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자신이 피다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공감해가는 과정. 결국 자신의 신념을 되돌아보는 과정.

 

이것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면서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함으로 수렴하려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자신의 종교까지도.

 

그는 가족을 잃고, 친구를 비롯한 문명의 많은 것을 잃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하고.

 

피다한 원주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갔고, 그들과 생활하면서 겪은 일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단 책의 뒷부분에 언어-문법 이론에 관한 내용은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전문적인 언어학자인 저자와 언어학자와는 거리가 먼 우리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이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는 것이 더 좋겠다. 촘스키의 문법이론부터... 너무도 전문적인 문법이론이 나오는데... 그냥 피다한 사람들의 삶에 저자가 어떻게 동화되어갔는지를 살피면서 읽으면 더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지구촌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연결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살리는 쪽이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점점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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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2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
김슬옹 지음 / 박이정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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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다. 우리나라에, 아니 전세계에 단 두 권 남아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그나마 한 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간송 전형필이 거금을 들여 보존한 간송본 훈민정음 해례본을 입체적으로 강독한 내용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참 우습다는 생각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니 정치권이나 언론들은 훈민정음, 즉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글자라면서도 그 창제 과정과 창제 원리가 다 밝혀져 있는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

 

이상하리만큼 학교 다닐 때 국어시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기껏 읽은 것이라곤 훈민정은 서문이나 좀더 나아가면 정인서 서문 정도.

 

훈민정음에 대해서 잡다하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필수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국어시간에 강독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한글의 위대함 운운하지 말고 그냥 훈민정음 해례본 책을 읽히고 그것을 설명하면 자연스레 한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애정도 지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한글 위대성 운운하지 말고 그냥 훈민정음을 읽혀라. 이 책은 이렇게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는 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읽기만 해도 좋은 책인데... 적어도 읽지는 않더라도 집에 한 권쯤은 비치해두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훈민정음이 도대체 어떤 글이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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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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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위화... 그의 책 가운데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은 아니다. 사실을 기록한 책이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될 당시까지는, 지금은 모르겠다 - 출판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에도 '금서'라고 읽혀서는 안될 책들의 목록이 존재했듯이 중국에서도 '금서(禁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금서가 되는가? 그것은 주류 사회를 비판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하고, 읽고 싶지 않은 것을 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건전한 비판은 사회를 발전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아는 지도자라면 금서를 지정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들을 장려해야 한다. 그런 비판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내 비슷한 눈과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비판한 글을 읽어야 한다.

 

이것이 지도자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는데...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중국도 아직까지는 이렇게 열린 자세를 지닌 지도자가 있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잠깐 언급이 되지만 경제 발전과 정치체제 사이의 거리, 모순이 크게 존재하는 나라가 중국이기 때문이다.

 

위화는 이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그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중국의 고통은 나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53-354쪽)

 

유마경에 나오는 구절처럼 세상이 병들었으니 자신도 병들었다는 말, 또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나왔던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말... 그리고 영화 '터널'에서 오줌을 마셔도 된다는 전문가의 말에, 자신이 먼저 마셔보는 구조대장의 행동 등등.

 

타인의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수 있는 지도자만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

 

과연 중국은 그랬는가? 중국은 커다란 아픔을 겪어왔다. 이 책에서 그런 커다란 아픔 중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나온다. 위화의 생애에서 겪게 된 가장 큰 아픔. 그리고 중국을 바꿔놓은 고통 두 가지.

 

하나는 문화대혁명이다. 이는 위화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천안문 사태다. 이는 위화가 어른이 되었을 때 겪게 된 일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는 말은 이 책의 첫번째 꼭지인 '인민(人民)'에서 나온다.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이던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9쪽)

 

비극으로 끝난 천안문 사태, 그 비극 직전에 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서 느낀 감정이 바로 위 글이다. 우리나라 촛불을 연상시키는 장면.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의 촛불을 통해서 이를 깨닫지 않았던가.

 

작은 촛불들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되었는데, 이 때 이런 빛보다도 더 멀리 간 사람들의 목소리, 더 큰 에너지를 낸 서로 함께 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에너지를.

 

위화 역시 이를 겪었고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그의 경험이 자신의 작품 속에 잘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이 책은 위화의 작품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겨우 허삼관 매혈기 하나만 읽었을 뿐이지만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허삼관 매혈기에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책을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민중에 대한 애정, 중국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도 있어서, 이 책은 위화가 살아온 중국 현대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이것을 통해서도 중국이 만만치 않은 나라임을 알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열 개의 낱말로 자신이 지내온 중국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인민, 영수(領袖),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이 단어들을 통해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문화대혁명부터 현재의 중국까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켰는지도...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목인 '5월 35일'을 읽으면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우리나라 광주민주화운동이 떠오르기도 하는, 황지우의 시 '묵념, 5분 27초'를 떠오르게 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달력에 없는 날,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날, 이것이 바로 위화 작품을 이루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제목이다.

 

이 날은 '1989년 6월 4일'이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만든 날... 민중들이 절대 잊지 못할 날. 여기를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위화는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시 위화 소설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위화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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