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숲 -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자연 순간들
피터 S. 알레고나 지음, 김지원 옮김 / 이케이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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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숲'


이 '어쩌다'란 말에서 숲이 아닌데, 숲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어디가 숲이 되었을까? 바로 도시다.


도시, 삭막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이 도시에도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도시는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인간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서 만들어낸 공간이고, 자신들의 생활이 최적화 되도록 설계한 공간이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에게 좋지 않다고 여겨지는 생물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들이 그런 통로를 막는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소위 로드킬이라고 불리는 죽임들.


그럼에도 도시에는 동물들이 살아간다. 반려동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야생동물들도 도시에서 살아가려 하고 있다.


비둘기와 같은 새들이야 이제는 친숙해졌고, 길고양이들도 익숙해졌으나, 멧돼지는 아직도 친숙해지지 않았다.


가끔 언론에 도심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도시는 멧돼지가 나타나서는 안 되는 지역인가 보다.


멧돼지만으로도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데, 만약 멧돼지보다도 더 무섭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이 도시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까?


이 책은 그런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야생에 살던 동물들이 도시로 오게 된 모습을, 미국 도시의 상황을 통해서.


저자는 보브캣을 보았을 때로 이 책을 시작한다. 야생에 있는 동물을 도심에서 봤을 때의 놀라움, 신기함. 그러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더 많은 동물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람쥐, 흰꼬리사슴, 캘리포니아모기잡이, 코요테, 흑곰, 흰머리수리, 퓨마, 박쥐, 땅다람쥐, 참새, 바다사자 등을 언급한다.


이 중에 참새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니까 빼자. 다만 저자는 그 많던 참새가 도시에서 줄어든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참새가 많았다가 많이 줄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활 방식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얼마 전에 언론에서 '가마우지'를 다뤘다. 본래 철새였던 가마우지가 거의 텃새가 되어 양식장의 송어들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뉴스.


이 책에서 다룬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야생동물들이 자신들의 먹이를 찾아 인간에게 점점 더 다가오는 것. 동물들도 살기 위해서, 인간이 살고 있는 도시로 올 수밖에 없음을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는 고라니나 멧돼지가 농작물을 파헤쳤다는 기사, 가마우지가 송어를 잡아먹어 양식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기사 등등을 접하면서 그 동물들을 어떻게 퇴치할까를 이야기한다.


퇴치가 아니라 공생이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을 퇴치할 생물로만 여길 때 결국 피해는 인간에게도 오게 된다.


그러니 여러 동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가마우지나 멧돼지, 고라니 등이 왜 인간 근처로 자꾸 오겠는가. 그들이 살아갈 생태계가 파괴되어 먹이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들도 살아가야 하므로.


아마 이대로 가면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곰들도 미국의 흑곰들처럼 도심으로 내려올지도 모른다. 그들이 살아갈 생태계를 자꾸 잠식해 들어가면.


저자의 말을 인용한다.


'인간이 자연을 바꿀 수 있다 해도 완전히 통제할 힘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연과 상호작용하고, 자연을 키우고, 우리의 공통된 미래를 계획하는 방식을 좀더 의도적으로 이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지배하고 조작하고 소소한 것까지 전부 통제하려 하는 옛날 방식에 집착하거나 단편적인 해결책으로 전체적인 문제를 계속 풀려고 하면, 도시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사람과 야생동물 사이에 공존 같은 건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공존에는 통제가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하다. 응징이 아니라 호혜가 필요하다. 상황이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겸손함을 갖고서 상호 번성을 위한 배경을 만들어야 한다.' (357쪽)


도시로 내려오는 야생동물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이런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야생동물을 보호하자는 관점에서 쓰였다고 보면 된다.


우리 역시 해마다 겨울철에 철새들을 위해서 많은 곡식을 논에 뿌리는 일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을 하면서도 도심에 나타나는 동물들, 또 인간의 일에 피해를 주는 동물을 퇴치하라고도 한다.


인간은 지구에서 최고의 포식자다. 다른 생물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결과로 예측할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공존을 생각할 때다. 최종 포식자로서 인간이 계속 존속하려면 생태계의 다양성 유지가 필요하다. 그런 다양성 유지에 도시로 오게 되는 동물들과 공존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답은 없다.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 저자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도시에 나타나는 수많은 야생동물들, 단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참조할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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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하는 삶 - 사람과 동물이 공유하는 감정, 건강, 운명에 관하여
아이샤 아크타르 지음, 김아림 옮김 / 도서출판 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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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함께 하는 삶.


공감이 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 때 동물과 교감을 하기 쉽다는 사실은 '샬롯의 거미줄'이란 동화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해도 알 수 있다.


많은 아이들은 동물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동물과 함께 있으면서 정서 안정도 얻는다. 그런 모습이 과연 아이들에게만 해당할까?


이 책은 아니라고 한다. 동물과 교감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은 아이고 어른이고 마찬가지다.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동물과 함께 하면서 얻는 경우가 많다.


자, 이 경우를 보자. 태풍이나 허리케인 또는 지진과 같은 재난상황이 닥쳤을 때 함께 지내던 동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구조대원들은 동물을 외면하고 사람만을 구하려 한다. 동물을 구할 여력까지는 없다고 하면서. 그런데 동물과 함께 피난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또다른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또 가정폭력을 겪는 사람들이 대피소에 가지 않는 이유가 자신과 함께 사는 동물에게 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만 대피소에 가면 함께 있던 동물이 학대를 당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그 동물과 함께 남아 있기를 선택한다고...


이 두 경우의 해결책은 힘들지만 단순하다. 사람을 구조할 때 동물도 함께 구조할 방법을 훈련하면 된다. 또한 대피소에 동물도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된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 군대에서의 폭력으로 겪는 트라우마 문제도 동물과 함께 지냄으로써 심신의 안정을 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고, 폭력적인 심성을 지니고 그를 행동으로 옮긴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도 교도소에서 동물을 함께 지내게 했을 경우 재소자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그렇게 동물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그 점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에 아름다움과 친절함, 웃음을 선사한 이런 사람들이 나를 구한다. 그들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구할 것이다.' (266쪽)


'공감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우리는 서로 공감하면서 신념과 자신감, 용기가 생긴다.' (311쪽)


이 점을 거꾸로 살피면 동물학대는 살인으로까지 가는 경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폭력에 대해서 둔감해지기 때문인데, 자신이 동물학대를 하지 않더라도 동물을 죽이는 도살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트라우마는 물론 폭력성을 노출하기도 한다고 한다.


동물학대나 도살장에 근무할 경우, 그 동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동물에게 해를 끼칠 때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자신의 공감능력을 짓밟는다. 우리는 이런 공감이 약점이라 여기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하지만 문제는 공감능력이 실제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죽였다고 여겼지만 아직 살아 있는 잡초처럼, 공감능력은 우리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 채 다시 모습을 드러낼 시기와 장소를 기다린다.' (248쪽)


'슬픔과 절망, 트라우마는 전염된다.' (262쪽)


이 책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언젠가는 트라우마로 드러나게 되니, 동물학대를 하지 못하도록 사회가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지금 동물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가족을 학대하는 경우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학대를 막는 길이 바로 공감이며, 동물에 대한 공감능력을 높이고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동물학대만이 아니라 사회를 폭력으로부터 막는 방법이 된다.


'모든 학대는 공통점을 지닌다. 학대는 침묵 뒤에 숨는다. 침욱을 깨고 목소리를 내야만 그것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낸다.' (311쪽)


저자는 동물과 함께 하면서 그 동물로 인해서 자신이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동물과의 공감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부당한 일에 저항할 수 있게 했으니, 이것이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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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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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검은 혈액이라 부른다고 한다. 피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지. 사실 커피만큼 많이 마시는 음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커피집을 찾기가 너무도 쉬우니 말이다.


온갖 이름을 달고 있는 커피집들... 외국에서 들어온 커피집부터 자신이 내린 커피를 파는 커피집까지 너무도 다양하다. 그리고 쉽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요즘은 청소년들도 자연스레 커피를 마시니 커피 소비량은 더 늘 수밖에 없다.


이런 커피가 어떻게 등장했고, 또 세계사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이 책의 저자는 살펴본다. 아랍에서 처음에 정신을 각성시키는 음료도 등장한 커피가 서양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경위를 살펴보고, 세계사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도 알려준다.


우선 아랍 무슬림 중에서 수피교도들에 의해 커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기도를 할 때 졸지 않기 위해서 마시는 검은 액체... 이를 처음에는 검다고 해서 석탄과 비슷하다고 여길 수도 있었으나 (꾸란(코란)을 살펴보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꾸란에는 '석탄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규정한다-56쪽'고 나와 있다고 한다.


그러니 무슬림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와인(술)도 아니고 석탄도 아닌 다른 종류의 음료여야 했다. 이때 찾아낸 것이 바로 '잠잠성수(매카의 카바신전 옆에 있는 신비한 우물물-32쪽)'라는 말이다.


신비한 물, 커피를 검은 잠잠성수라고 해서 합리화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커피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커피는 아라비아 상인들과 함께 전파되었다.


영국에서는 공론화의 장으로 커피하우스가 기능하였지만, 어느 순간 커피하우스는 사라지고 홍차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배제했기 때문에 더 확산이 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을 한다.


반면에 같은 공론장의 역할을 커피하우스가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계속 확산된다. 이는 여성을 배제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혁명과정에 커피하우스가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데 기인하기도 한다고 한다.


여기에 군대에서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커피를 이용하기도 했고, 뒤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독일이 커피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고 아프리카 주민들을 어떻게 혹사했는지도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1차세계대전 때도 커피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브라질에 독일에 맞서게 되는 것도 커피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커피는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식민지를 겪었던 나라들이 독립을 이룬 뒤에도 서양에 커피를 공급하기 위해서 단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이런 경제구조가 그들을 계속 힘들게 했음도 다뤄주고 있다.


이렇게 커피는 세계사에 등장한 이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공론장의 역할을 커피하우스가 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 커피집들에서는 누군가와 토론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각자 조용히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의 대화 역시 그들만이 공유하는 사적인 대화라고 할 수 있지, 사회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를 이끄는 공론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이제 커피집의 역할은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는 많이 소비된다. 우리나라도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지역이 있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커피를 수입할 수밖에 없다. 세계 무역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음을 기억해야 하는데...


내가 마시는 한 잔의 검은 혈액, 커피. 그 커피와 관련된 세계 역사를 알면 내가 마시는 커피가 달리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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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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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은 상반될 것 같지만,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전쟁은 적을 죽음으로 몰아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약도 몸에 들어온 안 좋은 요소들을 쫓아내야 한다. 즉 상대에 대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전쟁은 가능하면 우리 편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한다. 약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에 대한 해로움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이나 약이나 다 긴급한 상황에 쓰인다. 물론 오래도록 준비도 해야 한다. 오랜 준비, 그리고 과감하고 빠른 실행. 이것이 전쟁과 약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보통 전쟁은 죽음, 약은 살림으로 대별된다. 전쟁과 약을 함께 생각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 책은 전쟁과 약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약을 이용하는 경우, 이 경우는 생물학 무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지금도 무서운 질병인 페스트 균을 무기로 사용한 적도 있다고 하고, 스페인 독감을 연구하여 그를 무기로 쓰려고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 편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 약을 개발해야 하기도 한다. 약을 통해서 우리 편의 전력 상실을 막고, 상대편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렇게 전쟁에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나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질병들의 원리가 밝혀져야 한다. 전쟁을 통해서 질병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 일반인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전쟁과 약은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지금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그 점을 반증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 특히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 더 잘 알려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는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을 거치면서 그 심각성이 잘 알려졌다. 또한 그를 치료하기 위한 약들도 개발되고 있는 중이고.


단지 전쟁만이 아니다. 전쟁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이런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되니, 전쟁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약들이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질병과 전쟁의 관련성이 소개되고 있다. 인류가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과정도 잘 나와 있다. 물론 전쟁이 꼭 약의 발전을 이끈다고 할 수만은 없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짧은 기간에 집중적인 투자와 연구로 약의 발전을 이끈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전부터 꾸준한 연구의 집적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만들어진 약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잘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항생제가 우리 몸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지만, 내성이 생긴 균들이 등장해(일명 슈퍼 박테리아라고 하는 것들) 항생제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듯이, 약도 잘 써야 한다고 한다.


약은 아무리 좋아도 우리 몸에 외부에서 들어온 외부세력일 수밖에 없다. 이런 외부세력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저자는 그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쟁과 약이라는 제목과는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말도 전쟁과 관련이 있다.


'약을 사는 행위는 불편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약을 사는 과정은 최대한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맞다.'(310쪽)


전쟁은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약도 가능하면 복용할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좋다. 그 점에서도 전쟁과 약은 비슷한 점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약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쉽고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좋은 책이다.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쓰는 약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나왔는지, 또 그 약의 효능과 부작용은 어떤지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보자.


약을 통해 인류가 겪어온 현대사를 알게 되기도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를 이룰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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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5-31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과 약의 관계를 보면서 지난 몇년간 유행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를 막기 위해 세계굴지의 제약회사들이 만들었던 각종 백신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위기의 순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새롭게 개발되고 그러면서 인류가 발전해 나가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kinye91 2023-05-31 19:04   좋아요 1 | URL
그 동안 축적되어 왔던 성과들이 위기 상황에서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전쟁은 없어야겠지만 약은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고 발전되어야겠지요.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와 그 연결에 숨어 있는 놀라운 과학
톰 올리버 지음, 권은현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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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이 영어 제목과는 좀 다르다. 영어 제목은 THE SELF DELUSION인데, 이것은 자아라는 환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자아'가 무엇인가? 바로 자신을 자신이게 하는 요소 아니던가. 그런 자아를 강조하다 보면, 개인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개인을 홀로 존재하는 자아라고 한다면, 그런 자아들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책은 그 점을 내내 강조한다. 자아가 환상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수많은 관계 맺기를 통해서 존재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우주에서부터 미생물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글 제목은 영어 제목을 풀이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모두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그중 어느 연결이 끊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이 끊긴다면 자신이 지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의 환경에 들어설 수 있다.


너무도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너무도 길고 방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이 모두 얽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연결을 잊고, '자아'라는 환상에 갇혀 살기도 한다. 연결의 끊김이 바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음도 인식하지 못하고, 연결을 되살리는 쪽으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오로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과학기술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는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지낼 것을 이야기한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결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만물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런 연결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이런 삶은 자연과 우주와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어 사는 삶이기도 하고, 또한 '나'라는 몸으로 국한시키더라도 내 몸에도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최근 과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인 중심주의에서 연결성을 중심에 놓는 사고와 행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한 나라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을 저자는 실과 천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실의 삶에서 벗어나 천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볼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291쪽)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계가 바로 인간이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을 사회적이라는 말로 한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뿐만이 아니라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고, 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세계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 우리가 그런 인간이란 생각을 지닌다면 개인에 매몰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는 인간이다. 사람 사이... 아니 모든 존재 사이. 즉 이 사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의 끈을 만들며, 또 서로 엮여 살아가는 존재.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실들이 모여 이룬 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올이 나가면 천도 망가진다. 다른 실들이 온전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연결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살아야 하는 세상. 이때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보이지 않는 존재부터 볼 수 없는 존재까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연결되어 살아감을 이 책의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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