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죽음
호세 코르데이로.데이비드 우드 지음, 박영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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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불멸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불멸의 존재. 예전에 과학계에서는 영구동력을 연구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번 작동하면 다른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아도 계속 작동하는 동력.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영구동력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영구동력과 불멸을 비교할 수 있는가? 저자들은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적 기술적으로 영구동력은 불가능하지만, 불멸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없다고.


불가능하지 않다면 불멸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불가능이 아닌 경우 시일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가능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저자들은 불멸은 '어떻게'라는 질문 보다는 '언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약간의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갈 길이 멀다는 말을 불가능이 아니라, 갈 수 있음으로, 가능으로 판단하고, 저자들은 이 갈 길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불멸 운동에 참여한다면 그 시기는 많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지금도 필멸에서 불멸로 넘어가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을 냉동시키는 업체도 생겨났다고 한다.


'언제'가 '언제'일지 확실히 알 수 없으므로, 그 '언제'가 다가올 때까지 인간을 냉동시켜 보존했다가, 불멸의 존재로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


몇 십 년 전부터 냉동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 왔다. 서양에서 이미 그런 일을 하는 업체가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고. 그냥 그렇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들이 단지 현재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한 과정으로 '냉동인간'을 도입했음을 알게 됐다.


저자들은 과학적, 의학적으로 불멸이 가능하고, 또 많은 성과들이 있으며, 최신 과학기술을 동원하면 '언제'가 더 앞당겨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노화로 인한 치료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 이제는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자, 또 신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례들을 들어 불멸이 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런데 과연 이 지구에서 인간이 불멸한다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가 시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하지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멸을 꿈꾼다. 불멸을 꿈꾸는데, 건강하게 -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것이다. 나이 들어서 약해진 몸으로 온갖 약을 달고 살면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청장년기와 마찬가지로 활달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 사람들이 계속 살아간다면...    


넘치는 인구는 어떻게 하지? 지금은 효용성이 떨어진 '맬서스'의 이론이 다시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는다. 결국 인간은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겪으면서 죽어가게 된다?


여기에 대한 답은 내놓지 않지만, 이들은 이런 주장이 터무니 없음을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암시하고 힜다. 즉 그 인구에 맞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함께 발전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이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먹는 즐거움을 제외한다면, 식량은 최소한의 또는 최대한의 영양소로 구성된 알약처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죽지 않게 만드는 기술을 지닌 사회가 그 정도 기술도 만들 수 없지는 않으니까. 이런 사회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기아로 죽는 사람은 없는 세상이라고 하면, 인구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죽지 않고, 또는 몇 백 년 살아간다면 태어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엄청나게 많아질 것은 분명한 일.


그 많은 인구들,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치 엔트로피 법칙을 연상하게 하는 인구증가일텐데, 그런 지구에서 과연 인간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이들 논의에서는 그래서 우주개발이 함께 되어야 한다. 노화를 방지하는, 불멸의 존재로 인간을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다면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즉 이들이 말하는 불멸에 관한 논의에서 '언제'는 우주에서 인간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제'와 함께 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이 함께 하지 않으면 이미 태어난 인간들은 자신들의 불멸을 위해서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불멸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는 어쩌면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 아닐까?


불멸의 존재를 꿈꾸기보다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살다 가는 인간을 꿈꾸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 한다. 죽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이런 연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활발하게 불멸을 향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전지구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자들은 전지구적 노력으로 불멸을 향해 가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연구가 시행되기 전에 전지구적으로 불멸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과학기술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가장 보수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불멸 또는 노화방지, 노화역전에 관한 주장을 하는 근거 몇 구절 적어본다. 아직은 무어라 확신을 할 수 없는데... 이들이 '어떻게' 보다는 '언제'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나는 '왜'에 중점을 먼저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노화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비극이다. 세상의 모든 다른 사망 원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매일 노화로 사망한다. 구체적으로 말라리아, 결핵, 사고, 전쟁, 테러 및 기근 등 다른 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노화로 인한 사망자가 2배 이상 많다.'(42쪽)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노화로 인한 죽음이다. 죽음은 항상 우리에게 최악의 적이었다.'(43쪽)


'우리가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모르지만, 특정한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살기 위해 태어났지,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상적인 조건에서 대칭적으로 번식하는 박테리아는 그렇다. 하지만 비대칭적으로 번식하는 박테리아는 나이를 먹는다.

  죽음은 항상 존재해왔음이 분명하지만, 최초의 생명체는 이상적인 조건에서 영원히 젊게 살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영양소 부족이나 질병과 같은 삶의 가혹한 현실은 노화하는 유기체와 노화하지 않은 유기체 모두에게 죽음을 초래했다.'(55쪽)


. 분열 효모 새표는 이상적인 성장 조건에서 노화하지 않는다.

. 비노화는 분열의 대칭과는 무관하다.

. 노화는 스트레스로 인한 비대칭 손상 분리 후 발생한다.

. 스트레스 응집체의 유전은 노화 및 죽음과 관련 있다. (57쪽)


'우리는 기본적으로 노화하지 않는 다른 유기체, 즉 노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유기체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신체에서 '최고의' 세포(생식세포)는 노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즉, 생물학적 불멸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문제는 오히려 언제 인간의 노화를 멈출 수 있는지가 되어야 한다.' (70쪽)


'노화의 일곱 가지 원인은 무엇인가? 1. 세포 내 노폐물, 2. 세포 간 노폐물, 3. 핵 돌연변이, 4.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 5. 줄기세포 손실, 6. 노화 세포의 증가, 7. 세포 간 단백질 연결의 증가 (89쪽)


'노화의 일곱 가지 근간, 1. 염증, 2. 스트레스 적응, 3. 후생유전학과 조절 RNA, 4. 신진대사, 5. 고분자 손상, 6.. 단백질 항상성, 7. 줄기세포와 재생' (97-98쪽)


'노화를 질병으로 치료하면 연구와 자금 지원의 수준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의료, 제약, 보험 산업의 명확한 목표를 파악할 수 있다. 

  항노화 및 노화 역전 산업이 곧 세계 최대 산업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은 큰 기회다.'(106-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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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시간 - 내촌목공소 김민식의 나무 인문학
김민식 지음 / 브.레드(b.read)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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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한 사람. 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 내촌 목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민식의 글이다.


나무에 관한 글. 그냥 나무 종류를 이야기하고, 나무의 특성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다. 나무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을 엮어서 들려주는 글이다.


그래서 나무를 통해서 삶을 만나게 된다. 나무는 바로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많은 나무들이 있지만, 어떤 나무가 좋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재료로 삼아 만든 집, 물건들이 좋은 물건이라고 하는 말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무엇보다 나무들을 등한시 했을 때, 그 나라 경제도 휘청거렸음을, 또한 나무들이 사라져갈 때 우리들의 삶도 황폐해졌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무, 많은 종류를 알지 못하지만 몇 종류는 구분할 수 있는데, 예전에 읽었던 글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는 내나무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다.


여기에 건축자재로 우리나라 소나무가 좋다고 소나무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데, 김민식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나라 소나무는 목재로 사용할 만큼 자란 나무가 그리 많지 않으며, 소나무보다도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들도 많고, 가공하기 쉬운 나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어떤 나무가 최고라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목적에 맞는 특성을 지닌 나무를 이용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


황무지를 나무를 심어 가꾼 기업인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도, 장기적으로 나무를 심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으니, 나무는 이렇듯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야기 한편 한편이 읽기에 좋다. 여러 생각을 하게도 한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나무들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언제든, 어느 부분이든 펼쳐서 읽어도 좋은 그런 글들이 모여 있다.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이 책은 이러한 글들이 모여 책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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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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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혼란스럽다고 느낄 때, 도무지 어떤 질서를 찾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틀을 원한다.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틀. 그런 틀을 인식하고, 인정하게 되면 마음이 편해진다. 틀 속에서 살면 되기 때문이다.


틀을 유형이라고 해도 좋고, 습관이라고 해도 좋다. 패턴이라고 해도 좋고. 이런 패턴 속에 자신을 놓아두면 편안해진다.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삶이 일정한 방식을 따라 익숙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삶이 그런가? 삶은 혼돈이다. 정해진 길이 없다. 정해진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문득 다른 것들이 튀어나온다. 같은 길이라도 늘 다른 길이 된다. 불안해진다. 무언가 확실한 변하지 않는 길을 찾고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질서를 부여한다면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고, 자신이 삶을 좀더 안정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안정된 삶.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을 발견한다. 생물학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 사람. 온갖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추구한 사람.


룰루 밀러는 이런 데이비드 조던을 자신의 스승으로 삶아 자기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래서 조던의 삶을 추적한다. 그가 쓴 글을 모두 찾아 읽는다. 어떻게 그런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했고, 또 어려움을 이겨나갔는가를 찾고 배우려 한다.


이 책은 그렇게 조던의 삶을 추적한다. 마치 조던의 평전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책은 중반부를 향해 간다. 그러다 길을 달리 한다. 역시 삶에는 온갖 변수들이 작동한다. 조던이 살던 방식에서 하나하나 의문점이 생긴다. 그가 그렇게 물고기를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는 활동을 했는데, 어째서 그는 우생학 쪽으로 돌아섰는가?


왜 그는 사람들조차도 분류를 하고, 존재해서는 안 될 인간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는가? 아니,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그는 불임수술이라는 단종 작업에도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게 되었는가?


룰루 밀러는 이 점에서 의문을 갖는다. 사람이 사람을 분류하고, 우열을 나눌 수 있을까? 우열을 나누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다른 존재의 멸절을 시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밀러가 찾던 답을 조던은 제시해줄 수가 없다. 아니 조던은 잘못된 답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답을 찾아야 한다.


찾다가 룰루 밀러는 물고기는 없다는 주장을 만난다.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을 물고기라는 이름으로 규정지었는데, 과연 물고기는 존재하는가? 그 많은 생물을 '물고기'라는 범주에 넣어버리면 각 생물의 독립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독립성을 잃고 그 커다란 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런 분류가 결국 우열의 사다리를 만들어내고, 우열의 사다리라는 범주 속에서 다른 생물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그 생물들의 생존까지도 우월한 종이 결정하도록 하게 하지 않나.


결국 범주가 우열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그런 기준에 의해서 다른 존재들에 대한 억압, 약탈, 죽임이 이루어진다는 결론을 나아간다. 그러니 물고기는 없어야 한다. 이 장면까지 읽으면서 [장자]와 [노자]의 글귀가 떠올랐다. 


[장자]의 글귀는 다음과 같다. 장자 '내편' 끝에 실려 있는 글인데...


                                                혼돈칠규(混沌七竅)


  남쪽 바다의 임금을 숙이라고 하고, 북쪽 바다의 임금을 홀이라 하였고,그 중앙의 임금을 혼돈이라 하였습니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때마다 둘을 극진히 대접했습이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했습니다.

  "사람에겐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줍시다." 했습니다.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주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습니다. 

(오강남 풀이, 장자, 현암사. 347쪽에서)


혼돈이 자연스러운데, 그것을 자신들이 판단해서 질서로 바꾸려고 한다. 즉 어떤 범주를 다른 대상에게 강제로 적용하려 한 것이다.


혼돈이 살지 못하고 죽게 되는 이 결과, 분류라는 이름으로 범주를 나누고, 그 범주에 속하게 다른 개체들을 집어넣고, 또 범주들 사이의 위계를 정해버리는 일. 이는 다른 개체를 자신의 행동으로 죽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오래 된 동양의 지혜가 서양 과학자들의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고도 할 수 있는데, 룰루 밀러 자신의 삶과 연결지어 쓴 이 책에서는 이런 장자의 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위계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도덕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구 또는 우주라고 하자. 이런 지구나 우주의 처지에서는 인간이든, 다른 동물이든, 식물이든 별 차이가 없다. 그냥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일 뿐.


노자의 말을 보자.


  하늘과 땅은 편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성인도 편애하지 않습니다.

  백성을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합니다.

(오강남 풀이, 도덕경, 현암사, 35쪽)


그렇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에 더 낫고, 더 못함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냥 함께 존재할 뿐이다. 함께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집단에 의해서 범주로 나뉘고, 그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배척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질서로, 틀로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 그냥 개체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체들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혼돈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튼튼한 벽 안에서만 살아갈 수 없고,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길에서 삶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룰루 밀러의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삶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연결지으면서, 우생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장면까지 나아가는 책. 그리고 자신이 혼란스러운 삶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발견되었는지, 그런 발견 과정에서 '물고기는 없다'는 깨달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다른 존재들을 어떤 범주로 규정짓고, 그 속에 넣어버리는 행위들, 이런 행위들이 자칫하면 위계로 나아가고, 위계는 손쉽게 차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룰루 밀러는 말하고 있다. 흥미롭게, 그러나 우리 삶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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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의태어의 발견
박일환 지음 / 사람in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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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모양을 흉내낸(?) 말을 의성의태어라고 한다. 어떤 말들은 명확히 소리를 흉내내었고, 또 모습을 흉내냈다고 구분할 수 있지만, 소리를 흉내내었는지, 모습을 흉내내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딱 의성어, 의태어로 구분하기 힘들다.


하긴 어떤 모습이나 동작에서 소리가 날 때도 있고 안 날 때도 있으니 의태어라고 해서 소리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의성어라고 해서 모습이나 동작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의성어, 의태어를 굳이 구분하기보다는 그냥 의성의태어로 하자.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세분해도 좋고.


박제천이 쓴 시 '통사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역사는 주어와 서술어만으로도 이루어지지만 / 시는 부사어를 사랑한다'


그렇다.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감정을 담아서 전달하려면 부사어가 필요하다. 꾸며주는 말, 일명 수식언이라고 하는 말들이 말에 어떤 느낌을 더해준다.


그 중 부사어는 가장 쓰임이 많은데, 부사어를 이루는 말 중에 의성의태어는 표현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준다.


건조한 말이 아니라 무언가 톡톡 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말, 그런 역할을 바로 의성의태어가 한다. 이 책은 이런 의성의태어에 관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동작, 태도, 말과소리, 동물과 식물에 관한 의성의태어를 소개하고 있고, 그 말들의 어원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 또한 어떤 느낌을 주는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말들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의성의태어뿐만이 아니라 우리 말을 어떻게 쓰면 더욱 효과적일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여기에 기존 사전(주로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 샘을 참조했다고 한다)에서 다루고 있는 방식도 비교해주고 있어서 같은 말이라도 사전 편찬자에 따라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사전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언어들은 사전에 표제어로 수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사전이 더욱 풍부하게 그 말의 어원 및 쓰임들을 각종 예를 들어서 수록해주었으면 한다.


요즘은 종이책으로 사전이 발간되기보다는 인터넷으로 다 찾아볼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사전의 수정 작업도 예전에 비해서는 빨라질 수 있고, 또 용량에 제한받지 않고 수록할 수도 있으니 사전을 보면 그 말의 다양한 쓰임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의성의태어를 사전에서 찾아 그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책, 읽으면서 그냥 단순한 사실 전달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담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미를 담은 어휘를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박제천 시인의 말처럼 꼭 시에서만 부사어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서 부사어를 사랑해야 한다. 그 부사어에 속하는 말 중에 의성의태어는 말맛을 살리는데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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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식탁
박현수 지음 / 이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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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식민지의 식탁이라니... 식민지 음식이 따로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식민지란 바로 일제강점기를 의미하고, 식탁이란 그 당시 사람들이 조선에서 먹었던 음식을 말한다. 그것도 집에서 먹는 가정식보다는 외식을 할 때 먹는 음식들.


즉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돈을 주고 먹어야 하는 음식들에 대한 소개라고 보면 된다. 근대가 되면서 우리나라에 어떤 음식들이 들어왔고, 그것들이 음식 문화로 자리잡았는지를 알려주는 책.


첫 시작을 이광수의 <무정>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초의 근대소설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광수의 <무정>. 여기서 샌드위치가 나온다.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무정>에 나오는 음식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차 안에서 병욱이 영채에게 음식을 준 장면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음식이 샌드위치였다는 사실을 어찌 기억하겠는가.


이렇게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이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문학이니, 소설 속에 나온 음식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식일 수밖에 없다. 또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언급할 정도라면 이미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고.


<무정>이라는 소설부터 시작해서 거의 발표된 연대 순으로 음식들을 등장시킨다. <무정>에 이어서는 염상섭이 쓴 <만세전>이다. 물론 예전에 읽었을 때는 음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책을 통해서나 이인화가 먹게 되는 음식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무정>이나 <만세전>에 나오는 음식은 여행하면서 먹는 음식이다. 기차라는 근대 문명의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끼니를 해결하는 음식들. 그만큼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철도를 부설하고, 기차를 운용했으며, 그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또 기차와 기차를 연결하는데 바다로 막혀 있으면 배를 이용해서 연결을 시키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개발하게 된다. (관부연락선이라는 말이 바로 일본과 조선, 그리고 만주의 철도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배를 의미한다고)


낯선 음식이었을 것이다. 기차라는 문물도 낯설었을테니.. 그러다 이런 문물이 일상이 되면서 다른 음식들이 등장한다.


이제는 가게에서 파는 음식들 이야기로 가게 된다. 현진건이 쓴 <운수 좋은 날>이다. 바로 설렁탕이야기. 지금도 많이 먹는 설렁탕이니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 없을 듯하지만 아니다. 설렁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읽을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왜 하필 현진건이 김첨지 아내를 통해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영양이 좋아 보양식으로 많이 먹었다는 사실.


이제 책은 선술집, 카페, 빠에 대한 이야기로 가다가 김유정으로 오면 시골 주막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감자'도 빼놓지 않고. 


30년대가 되면 서양식이 소설에 나오기 시작한다. 카페는 기본이다. 이상이 '제비'라는 카페를 차렸다는 사실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상과 친구인 박태원이 그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로 '카페'를 선택했다는 사실. 이상도 선술집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 언급된다.


여기에 <날개>에 나왔던 미츠코시 백화점에서 파는 음식들 이야기가 나오고, 조선호텔에서 파는 음식들까지 다양한 일제강점기 시대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서 당시 어떤 음식들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이 즐겨 찾았으며, 그것들의 가격은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당시 발표되었던 소설을 만나게 되고, 그 소설을 통해서 음식을 만나게 된다.


이렇듯 일제강점기에 사람들이 외식으로 먹었던 음식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소설과 음식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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