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데부 - 이미지와의 만남 동문선 현대신서 184
존 버거 지음, 이은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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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결코 가볍게 읽을 사람이 아니다. 그가 쓴 책들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그가 생각해 내는 것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읽다 보면 놀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떤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건을 바라보는 것, 또는 인물을 바라보는 것은 존 버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단순화 해서 보았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됐다.


하나의 존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하나의 존재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로 얽혀 있고, 이런 존재들이 지닌 의미를 자신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하나를 제대로 읽는다는 것, 하나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본다는 것과 통할 수 있다.


이 책 첫 장면은 '광부들' 사진이 나온다. 광부들 하면 우리나라에서 독일로 파견한 광부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소위 막장이라고 하는 말과 더불어 태백에 있는 광산, 광부들, 그리고 임길택 시인의 시들도 떠오르는데, 존 버거의 이 사진을 보면 영국 광부들이 떠오른다.


영국 대처 수상의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 가던 사람들. 그리고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떠오른다. 


사진 하나를 보면서 우리나라와 영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또한 광부를 다룬 문학과 영화도 떠오른다. 왜? 이 사진이 의미가 있을까? 이 이미지는 어떤 역할을 할까?


많은 생각을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존 버거의 글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술이 종종 재판관을 재판해 왔으며, 무고한 자들에게 복수하라고 탄원했으며, 과거의 고통을 미래에 보여 줌으로써 그런 고통이 결코 잊혀질 수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고 믿는다. 나는 또한 권력을 쥔 자들이 무슨 형태의 예술이든 예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예술이 그런 일을 수행할 때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예술은 종종 루머와 전설처럼 떠돈다. 왜냐하면 예술은 인생의 야만성이 정당화할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단결을 합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궁극적으로 정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이와 같은 기능을 할 때, 예술은 비가시적이고 환원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배짱과 명예가 만나는 장소가 된다. (13쪽)


그렇다. 이미지들은 예술이다. 그리고 이런 예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지 않을 것들을 보이게 만든다. 과거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결코 잊을 수 없게. 그래서 과거의 권력을 단죄할 수 있게 하고, 현재의 권력에게 경고할 수 있게 한다.


미래가 단순히 권력자들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와 비슷한 말이 또 있다. '분노의 곶에서 실종되다'라는 제목에 있는 글이다.


작가는 그가 쓰고 있는 것에 관해 최대의 정보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현대 세계에서는 매시간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잘못된) 정치의 결과로 죽어 나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인식과 원칙에 대한 정보가 없는 한 어떤 글쓰기도 신빙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작가들은 유토피아적인 쓰레기를 생산해서는 결코 안 된다. (241쪽) 


단지 작가에게만 해당할까? 아니다. 존 버거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우리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최대의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정치의 결과에 희생당하지 않을 수 있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정치다. 결국 우리 삶은 정치에 달려 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치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지녀야 한다. 단 하나로 정리될 수 있는 일들은 없다는 생각으로, 다각적으로, 더 깊고 더 넓게 보는 눈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그런 연습, 존 버거의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정치, 경제, 예술을 비롯한 우리 삶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이야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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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2020년 2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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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의 산문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이 된 구절은 '고아'란 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고아'란 말에 부모가 없다는 뜻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그러한 고아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보면 우리들 삶이 어쩌면 고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는 너무도 빠르게, 그것도 너무도 급격하게 과거와 헤어졌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단절된 현대인들의 삶이 바로 고아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인데...예전에 자연과 더불어 지내던 삶에서 자연과 완전히 단절된 삶도 모자라, 이제는 멀쩡한 자연까지 죽이는 일을 하는 정치권들의 모습에서 '고아'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서울이 개발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불도저라 불리던 김현욱과 건축가 김중업이 쓴 글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우리 사회는 김현욱의 주장처럼 변해왔고, 그에 따라 과거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갈 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함께 울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더욱 달라질 수가 없다. 아니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더욱 안 좋은 쪽으로. 우리를 고립시키는 쪽으로.

 

그래서 제목 뒤에 따라오는 글이 더 중요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157쪽)

 

이렇듯 이 산문집은 마음을 울리는 글들이 많다. 글들이 머리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으로 내려온다. 마음에 자리를 잡아 지속적으로 마음을 두드린다. 이게 바로 글의 힘이다.

 

제목을 약간 비틀면, '읽는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읽는 인간의 탄생은 주체적 인간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산문을 읽는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간다는 것이고, 이때 주체적이란 말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박준 산문집을 읽으며 이 제목과 연관지어서 생각하면 '운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읽는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무것도 없겠지만'으로 바꿀 수 있다. 여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바로 뒤에 오는 말과 함께 해야 한다.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란 말. '같이 읽으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란 말이 될 수 있다.

 

'고아'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 이것은 바로 운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다.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런 공감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고아'란 글을 포함해 많은 글들이 이렇게 마음에 들어온다.

 

내 마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들어갈 수 있는 글이란 생각이 들고, 글을 통해서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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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신 - 1인 크리에이터들의 롤모델 대도서관이 들려주는 억대 연봉 유튜버 이야기
나동현(대도서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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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라고 신인류 시대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신인류가 등장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로 '대도서관'이라는 유튜버를 인용했었는데...

 

이 책은 그가 쓴 책이다. 1인 미디어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 사실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검색을 해도 이들은 문자로 된 텍스트에 주목하지 않는다. 이들은 검색을 유튜브로 하고, 유튜브에 나와 있는 동영상을 통해서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찾고 얻는다.

 

그만큼 세대가 변했고, 유튜브는 우리 생활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그야말로 '포노 사피엔스' 시대. 특히 스마트폰은 청소년들이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는데, 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검색을 너무도 쉽게 한다.

 

그러므로 유튜브는 이미 대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유튜브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너도나도 유튜브로 몰려 들어서 유튜브는 이제 경쟁이 너무 심한 한물 간 '레드 오션'이 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대도서관은 아니라고 한다.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는 사람들이 몰리면 몰릴 수록 오히려 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는 '블루 오션'이라는 것이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먹자골목에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1인 미디어에 참여하면 할수록 1인 미디어 시장은 더 넓어진다고 한다.

 

일견 타당하다. 영상을 하나 보고 마음에 든다면 비슷한 영상을 찾아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내 취향에 맞는 유튜브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해주곤 한다. 그러니 자연 관심이 가는 영상을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로, 또는 1인 미디어로 성공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것, 흥미로운 것만을 올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돈만을 목적으로 해서도 안된다고 한다. 대도서관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컨텐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에 한 게임 방송은 욕설, 비방이 거의 없어 '유교 방송'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채널을 찾아와 시청했다는 것. 그만큼 유튜브나 1인 미디어를 B급도 아닌 C급 취급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순간적인 이익을 취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신이 당당할 수 있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그의 노력이, 그의 진심이 그의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게 유튜브에 대한 인식을 많이 바꿔놓은 사람이 '대도서관'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텍스트로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고.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것 중에서 명심해야 할 것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일에 치여서 힘들어 하면 그것은 오래 못 간다. 이는 돈보다는 자기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일명 덕후, 또는 덕질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그 일에 빠져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끈기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1-2년 동안 1주일에 두 번 정도는 영상을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처음 몇 개월 동안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꾸준히 올리라는 것. 그러면 반응이 온다는 것.

 

또 남을 따라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 잘 나가는 유튜버가 있다고 그를 무작정 따라하려고 하다가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징도 잃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자세를 지니고 1인 미디어에 참가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영상 편집이라든지, 광고로 어떻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또 컨셉은 어떤 식으로 잡는 것이 좋은 지 등등, 뒤에 부록으로 세 집단을 예로 들어(주부라면, 20대 대학생이라면, 30대 직장인이라면) 설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세세한 기술보다는 우선 자신의 마음이 먼저겠다. 하고 싶은 마음, 내 것을 남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 그것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자세. 그는 이것을 강조한다. 세세한 기술은 그 다음이다. 무엇보다 한탕을 노리는 활동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접어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몰리는 지금, 이 책은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참고 정도가 아니라 지침서로 삼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대도서관이 강조한다고 여겨지는 것. 세상에 쓸 데 없는 일이란 없다와 1인 미디어를 하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지는 말라는 것. 왜 그런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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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가는 길
정찬주 지음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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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이 쓴 답사기와는 좀 다르다. 소설가가 쓴 것이라 그런지 감상적인 내용이 많다. 주관적인 감정도 많이 들어가 있고.

 

그래서 돈황에 관한 책을 읽는 순서가 유홍준의 책을 맨 먼저 읽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유홍준은 돈황까지 가는 과정을 중시했다면 이 책에서는 서안(장안)에서의 일과 그 다음에는 비행기를 타고 가기 때문에 돈황까지 가는 중간 과정이 없다.

 

다만 서안에서 양귀비와 현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고로 성에 관한 것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마련.

 

이 책에서도 핵심은 돈황석굴, 즉 막고굴이다. 그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특히 소설가답게 학문적인 분석보다는 직관에 따르는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더 친근하게 막고굴에 다가설 수 있다.

 

게다가 저자인 정찬주는 막고굴에 있는 벽화에서 삼국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았고, 그때문에 돈을 더 주고도 삼국시대 사람이 나온 석굴을 돌아보았다는 사실이 그 먼 곳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감동을 준다.

 

하긴 비단길이라고, 실크로드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드나들었을테니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혜초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이 책은 저자의 직관을 앞세우고, 감정을 표나게 드러내서 서술하고 있다. 사진도 있어서 막고굴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살펴볼 수도 있고.

 

지금은 이때보다 달라졌을테지만, 그래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유홍준처럼 과정을 중시하는 답사도 좋지만, 일반 관광객에게는 정찬주처럼 여행할 수도 (물론 그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 묻어서 가긴 했지만)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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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 돌아올 수 없는 사막
브루노 바우만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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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그야말로 모래가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곳. 물이라곤 찾을 수 없고 보이는 것은 모래들뿐. 사막하면 그런 심상이 떠오른다. 사막하면 대표적으로 사하라 사막과 고비 사막을 떠올리는데, 예전에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해서도 이름만은 들어본 적이 있다. 실크로드와 관련해서.

 

유홍준이 쓴 중국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촉발해서 돈황에 관한 책을 읽고, 돈황을 지나 펼쳐져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렇듯 한 책은 다른 책을 불러낸다.

 

스벤 헤딘이라는 사람이 1890년대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한 다음에 책을 냈다고 한다.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정도로 매우 고생을 했다고 하고, 현지인 두 명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또 낙타들도 많이 잃고 간신히 물이 있는 호탄 강까지 도착했다고 하는데...

 

그가 쓴 책을 읽고 그와 똑같는 시기에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가 한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또 스벤 헤딘이 사막이 놓고 온 것들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약 100년 뒤. 그러니까 스벤 헤딘이 살았던 시대보다 더 월등히 성능이 좋은 장비를 갖추고 출발을 하는 것이다. 스벤 헤딘이라는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에 물도 더 준비하고... 그가 간 경로를 따라 가는데...

 

그런데 사막은 우리 인간이 예상한 것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존재할 때가 많다. 타클라마칸 사막도 마찬가지다. 낙타 6마리와 현지인 두 명, 통역할 수 있는 중국인 한 명, 그리고 동료 한 명과 함께 출발한 바우만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에게는 위성으로 위치를 알려주는 도구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먼저 간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사막이 그의 계획대로 되어 주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물이 떨어지자 낙타들이 죽어 간다.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명도 낙타에게 걷어차여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된다.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죽음을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다행히 이들은 사막을 무사히 건너 호탄 강가에 도착하지만, 사막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읽으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흔히 고(苦)라고 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도 한다.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한다. 함께 가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한다. 사람만이 아니다. 다른 존재들에게도 빚을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인생에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또 예측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게 소중했던 존재들을 잃기도 하고, 큰 어려움에 처해 이도저도 못할 때도 있고, 그럼에도 다른 존재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한다. 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안도한 순간, 더 큰 어려움이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이 책의 저자인 바우만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할 때 겪었던 일처럼.

 

이 책 318쪽에 있는 사막 사진을 보자. 정말 광대한 사막이다.

 

 

이 사막에 있는 한 점의 모래와 같은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만큼 인생은 사막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 끝을 행복하게 마치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쩌면 이렇게 광대한 사막을 횡단하려는 모험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이 이와 같은 모험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진과 먼저 간 스벤 헤딘의 발자취와 그를 통해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바우만의 여정이 우리의 인생과 겹쳐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바우만처럼 이렇게 사막을 횡단하지는 못하겠지만, 사막 횡단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갖게 해준 책이라는 점에서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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