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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평점 :
우선 이 책은 쉽게 읽힌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시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결말이 끝에 가서야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례들이 나온다.
핵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제목이 '타인의 해석'이라고 번역을 했다. 그냥 '낯선 이와 이야기할 때'라든지, '낯선 이와 만날 때'였으면 훨씬 좋은 제목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때 낯선 사람은 자신과 관련되어 처음 만난 또는 여러 번 만난 사람이다. 여기서 예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정보부에 일하는 사람, 경찰과 관련된 사람, 그리고 학교와 관련되거나 그와 비슷한 경우에 만난 사람, 또 유명한 시인인 실비아 플라스 같이 자살을 한 사람이다.
결국 낯선 이라고 하지만 이 낯선 이는 나와 관련을 맺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 책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서로의 갈등을 줄이면서 소통하면서 잘 지낼 수 있는가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세 가지 쟁점을 들어서 우리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진실 기본값'이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선 의심하기보다는 환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진실 기본값이고, 이 진실 기본값 때문에 종종 속아넘어간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믿음은 의심의 부재가 아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믿는 것은 그에 관한 의심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107쪽)
그러니 우리가 그 사람이 진실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문에 속아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상대를 무조건 의심하는 것보다는 믿고 시작하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속는 것은 이런 경우라고 한다.
당신을 믿음의 경계 너머로 밀어낼 만큼 충분한 위험 신호가 있었는가? 만약 없었다면, 진실을 기본값으로 삼은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107쪽)
만약 경찰이 진실 기본값을 지니지 않고 시민들을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시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책 처음에 나온 경찰과 시민의 갈등처럼...
또다른 하나는 '투명성 가정'이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면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정과 이런 행동,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표정과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는 투명성 가정.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가정인지는 여러 실험을 통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다르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건에 따라서 거의 모두가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표정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면 오판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여러 장에 걸쳐서 주장하고 있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을 예로 들었을 때, 그런 표정,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하긴 이 책에는 더 중요한 예가 있다. 바로 영국 수상이었던 체임벌린과 히틀러의 대담.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나 그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판단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체임벌린의 판단이 내려졌던 것.
여기에 미국 판사들이 피의자들의 얼굴이나 태도를 보고 판단한 결과가 컴퓨터가 피의자들을 보지 않고 판단한 결과보다 형편없었다는 통계. 또 세계적인 경제 사기범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할 사람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들을 들어, 투명성 가정이 얼마나 낯선 사람을 잘못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술이고 또 하나는 고문이다. 술로 인한 성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한데, 술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린다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법부에서는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술은 판단력을 흐리는 근시의 위력이라고 한다.
즉 눈앞에 있는 일만 보이는 것. 그 뒤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 정말 심신미약이 아니라 판단력이 지금 당장 자신의 앞에 있는 일에만 작동한다는 것. 그래서 술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성폭력(폭력사건 등등)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심신미약이라고 감형하는 것이 아니라. 술로 인해 이미 자기 행동의 결과를 잘 예측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많이 마시는 것 자체가 미필적 고의가 아니라 '고의' 그 자체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고문으로 인한 자백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 점을 입증하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모건의 연구에서 이 점이 잘 나와 있는데... 이런 구절을 참고할 수 있다.
심문의 관건은 대상자의 입을 여는 것이었다. 대상자의 기억을 억지로 열어서 그 안에 있는 내용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만약 굴복을 확보하는 과정이 대상자에게 너무도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해서 그가 실제로 기억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임이 밝혀졌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모건은 성인이 아이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303쪽)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인 군인들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억을 왜곡한다. 그러니 고문을 통해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낯선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의 진실에 다가가기가 매우 힘들다. 자신을 복잡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남을 단순하게 판단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글래드웰은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탐색에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절대 진실의 전부를 알지 못할 것이다. 온전한 진실에 미치지 못하는 어떤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올바른 방법은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하는 것이다. (311쪽)
그러면서 세번째는 행동이 특정 장소나 특정 대상과의 결합됨을 제시한다. 어떤 행동에는 장소나 대상이 결합되어 있어서, 장소를 바꾸거나 대상을 바꾸면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실비아 플라스다. 실비아 플라스를 예로 들고 있지만, 이는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아간다.
즉 그들의 행동은 특정 장소나 대상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행동을 막으려면 그 장소에서 행동하기 힘들게 하든지, 대상을 바꾸어야 한다.
경찰이 단속을 전국적으로, 수시로 하는 일이 얼마나 효과 없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장소나 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여 이 세 가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낯선 이를 판단하고 행동했을 때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낯선 이와 이야기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만약 낯선 이와의 대화가 틀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낯선 이를 비난한다. (401쪽)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경우, 책임을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마지막 구절이 머리를 때린다. 그래, 낯선 이를 비난하긴 쉽다. 그러나 낯선 이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은 낯선 이와 얼마나 제대로 이야기를 했는가를...
감수한 사람이 쓴 글(감수사)에서 타인을 파악하려 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 세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내용을 정리했다고 보면 된다.
첫째, 우리가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해석하는 것에 지독하게 서툴다는 점을 인정하자. (9쪽)
둘째, 낯선 사람을 보고 곧바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그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10쪽)
셋째, 낯선 이와의 대화에서는 대화 내용보다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