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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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1호면 좋은 줄 아는 시대가 있었다. 반대로 1호면 안 좋다고 인식하는 때도 있었다. 하여간 숫자를 붙이고, 그 숫자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던 과거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심심풀이로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아이 때는 헷갈리기 마련, 숭례문이 남대문인지도 잘 모르는데, 여기에 동대문과 남대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남대문이다, 동대문이다 말다툼을 한 적도 있었다.


국보를 지정하고 1호라고 하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냥 편의대로 붙인 순서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숫자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국보를 지정하면서 굳이 번호를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국보나 보물 지정에 번호는 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국보면 국보, 보물이면 보물이면 되지, 무슨 몇번 몇번 하는 번호를 매기고 그런단 말인가.


하여든 국보하면 가끔 이렇게 1호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1호를 바꾸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얼핏 생각하면 번호에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보에서 번호를 빼지 못하겠으면 정말로 문화재 위원회나 국민들에게 물어서 번호를 재지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로 이렇게 실행하지는 않겠지. 국보면 모두가 소중한 문화유산인데, 그것들을 다시 가치로 경중을 매기고, 순서를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국보에 대한 모독이니)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기자가 자신의 관심 분야에 천착해 국보라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관해, 그 역사에 관해 썼다.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글이 읽기 쉽다. 잘 읽힌다. 그리고 내용이 방만하지 않고 짤막하게 핵심을 잘 전달한다. 게다가 국보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여서 더 좋다.


꼭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어도 관련된 다른 문화유산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유산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다. 그 점이 이 책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거치고, 전쟁을 거쳐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도 있어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금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런 문화재를 통해서 우리 역사를 만나고, 우리 조상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한 부분이 끝날 때마다 '국보 토막 상식'이라고 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점이나 궁금했던 점을 알려주고 있어 좋다.


국보에 관한 내용은 알고 있는 사실도, 몰랐던 부분도, 아직 확실히 정리가 안된 부분도 있으니 책을 읽으며 찾아보면 더 좋을 듯하고, 여기서는 '국보 토막 상식'에서 다루는 내용만 소개한다.


아마도 평소에 알고 싶었던 점들이 아닐까 한다.


숭례문은 왜 국보 1호인가(56-59쪽)

세 번이나 놓친 몽유도원도 (96-101쪽)

전쟁을 이겨낸 국보(146-151쪽)

고유섭, 국보 연구의 선각자(186-191쪽)

국보 신고와 보상금 (228-233쪽)

국보 도난의 역사(268-273쪽)

국보 지정의 문제점(310=313쪽)

국보의 가격(360-363쪽)


이 국보 토막 상식만 읽어도 재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아쉬움이라고 해야 하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 말고, 한 권이 더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보상 문제로 지금은 어디 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세계에서 지금까지는 딱 두 권밖에 없는 책인데, 이미 간송미술관에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로(번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지정이 되었으니, 발견된 책도 국가에서 사들여도 되었을텐데... 1000억을 요구한 소장자로 인해 무산되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니... 이거야 원.


국보 신고 부분을 보니, 보상금이 1억이 최대라고 하는데(233쪽), 그동안 개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2020년 초판이니, 아마도 개정이 안 되었다고 봐야겠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1조 정도의 가지가 있다고 하니, 그 1/10인 1000억과 보상금 1억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해외로 반출만 안 되면 국보 소장자도 판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국가에서 이 문제는 현명하게 잘 해결해서, 또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들에게도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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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 시대를 앞서간 SF가 만든 과학 이야기
조엘 레비 지음, 엄성수 옮김 / 행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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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이라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발전시켜 온 역사를 보면 공상과학이 현실에서 실현되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 순간, 우리는 작가를 놀라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들의 예지 능력에 놀라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의 예지 능력에 놀라기보다는, 그들이 상상했던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인간의 노력에 더 놀라워해야 한다.

 

우리의 상상은 가능성을 이미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한다. 도전과 실패. 우연과 필연이 겹쳐 상상 속에 존재하던 일들이 우리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옛날 공상과학 소설에 등장했던 우주선, 자율주행차(아직은 좀 미미하지만), 잠수함, 복제, 가상현실, 사이버 공간, 영상 통화 등등... 우리가 실생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 많다.

 

이 책은 이렇게 공상과학 소설 속에 등장했던 존재들이 지금은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과거의 생각이 현재에 실현되었다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일들이 미래에 실현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고 봐도 좋다.

 

어느 날, 누군가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꿈을 꾸고 그것을 이야기했다고 하자.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핀잔을 받고 무시를 당할지 모르지만, 이미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이제는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한 노력들이 시작된다고 보아도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지닌 능력이자 특성이다. 우리는 상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왜 상상이 현실이 되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을 지니고 꾸준히 노력한다. 그러므로 상상 속 존재는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우주-교통, 군사-무기, 생활 방식-소비자, 의학-생체공학, 커뮤니케이션'으로 나누어 SF소설에 등장했던 존재들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지를, 또는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꿈꾸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음을, 상상은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을 촉발하는 동기임을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존재, 다양한 작품, 다양한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주제는 명확하다. 상상은 상상에 불과하지 않다. 상상은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일 뿐이다. 바로 이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들에게 'SF소설을 읽혀야 한다'는 말,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

 

상상은 현실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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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의 눈으로 미래를 설계하라 - 연세대 공대 교수 22명이 들려주는 세상을 바꾸는 미래 기술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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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하면 기계가 떠오른다. 기계 중심의 발전을 공학 발전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학은 사람과 관련된 학문이다. 사람과 관계없는 공학은 없다. 즉 공학은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학 발전이 인간을 뒤로 제쳐두고 있다는 생각을 갖기 쉽다. 그만큼 공학 기술은 인간보다는 기계나 기술의 발달을 우선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학은 사람들이 한다. 왜 사람들이 좀더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공학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우선하지 않는 공학은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예측불가능할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고, 공학기술도 발전했지만 이들 모두는 바로 우리 인간들의 행복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다양한 공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모여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공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세상이 바뀐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상의 바뀜에 공학이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또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만, 공학이 사람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공학은 곧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위한 공학은 어떠해야 할까?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우리들 삶과 관계없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무작정 공학의 발전을 예찬하지 않아서 좋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전제하고 있다. 미래 세계에서도 공학은 사람에게 복무해야 한다. 아니 사람이 없는 공학은 필요 없다. 사람이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없듯이 사람을 전제로 하지 않는 공학은 상상할 수가 없다.

 

다만, 기술 발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회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전문가로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들이 제시한 의견이 전부라고 하지도 않고, 이러한 의견을 참조해서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많은 교수들, 22명이나 되는, 특정 대학, 연대 공대 교수들이 썼지만, 어느 대학의 학문에 편중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자신의 전공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 사회는 초연결사회이고, 그러한 사회에서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건축만 하더라도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양한 학문이 융합되어야만 건축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공학의 눈으로 미래를 설계하라는 말에는 전문가를 참조하되, 다양한 관점들, 기술들이 융합되어 사람을 중심에 놓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권유가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부정해도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이 책은 그 발전을 사람을 위한 발전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공학이 미래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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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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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곳. 우리나라에서 제왕적 권력을 지녔다고 하는 대통령을 탄핵심판할 수 있는 곳. 그런 이름을 지닌 헌법재판소를 보면 헌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우리들을 규정하는 기본 원리가 바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헌법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도(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나 행정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드물다.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정치, 경제를 배우지만, 또 법을 배우면서 헌법에 대해서도 배우지만 전체를 배우지는 않는다. 그리고 헌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모르고 지내게 된다. 물론 헌법이 법 중에서 가장 상위에 속한다고는 알고 있지만, 헌법이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헌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간 무심했던 헌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고,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에 대해서도 알게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은 존재(자인)와 당위(졸렌)로 파악하고, 당위로서의 헌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헌법을 읽을 때 한 가지 유념해야 하는 점은 가치판단을 전제로 당위규범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52쪽)

 

이 말에 따르면 우리는 헌법은 이렇게 이렇게 개인의 행복과 평화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읽어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헌법에 미치지 못하는 법률을 개정하거나 기관들을 통제해야 한다.

 

'법치의 핵심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국가기관의 권력 행사를 통제하는 것에 있다. 법치가 국가권력의 행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면서 개인을 통제하는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된다.' (93-94쪽)

 

이것은 우리가 헌법을 알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기관의 권력행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헌법을 알아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률이 그 요건과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 ... 정부의 행정명령이나 법원의 재판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110쪽)

 

이런 원칙은 우리들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 자유를 무한히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법률에 의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쉽게 제한해서도 안된다. 너무도 쉽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당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헌법이 지향하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은 개인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한다.' (248쪽)

 

이게 바로 헌법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것.

 

나라가 스스로 그렇게 할 수는 없을테니, 그런 나라를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 몫이다. 우리 권리이기도 하고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헌법에 대해서 무지하다면 어떻게 헌법이 지향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교육에서는 무엇보다도 헌법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한글이 위대한 문자라고 하면서 한글 창제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히지 않는 교육과 비슷하게 헌법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교육을 하지 못했다.

 

제 나라 근간을 이루는 법, 우리들 삶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담고 있는 법, 그리고 모든 법이 이 헌법에 위배되어서는 안되는 법. 그런 헌법에 대해서 자세하고 꼼꼼하게 가르치고 배울 필요가 있다.

 

법이나 정치와 관련된 사람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이 책을 읽으면 우리 헌법에 미진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헌법대로만 국가가 유지되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작은 제목을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라고 했을 테다. 자, 이미 우리에겐 헌법이 있다. 이 헌법이 존재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헌법이 지향하는(졸렌) 국가가 되도록 관심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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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낮은 곳에 머무르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

 

  높은 곳에서 남들을 내려다 보기도 하지만, 낮은 곳에서 남들을 올려다 보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있으면 높은 곳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도 있다.

 

  땅에 누워 세상을 보면 내가 볼 수 있는 가장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서정시학 시인선'은 이렇게 낮은 곳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한다.

 

서문을 보자.

 

'우리는 달걀을 깨서라도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문화적 발상과는 달리, 달걀 자체는 숭고한 생명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생명 의식을 갖고 역사 지평을 열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환경오염과 소외와 이기주의와 물질주의에 억눌린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5쪽)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지금. 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인간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이 때... 시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김완성이 쓴 시 '땅바닥에 누워'를 보면 낮은 곳에서 보는 눈을 지닌 사람, 그런 사람이야 말로 다른 생명들과 공존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땅바닥에 누워

                             - 김완성

 

땅바닥에 누워 숲 속의 나무를 보면

나무들도 우리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다

 

땅바닥에 누워 숲 속의 나무를 보면

나무들이 하는 소리 갈맷빛으로 보인다

살아 있을 때 모든 걸 사랑하라

 

땅바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면

별들도 우리처럼 어디론가 가고 있다

 

땅바닥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면

별들이 하는 소리 푸른빛으로 보인다

죽을 때까지 모든 걸 사랑하라

 

강은교, 최동호 엮음, 드므에 담긴 삽, 서정시학. 2006년. 63쪽.

 

낮은 곳인 땅바닥에 누워서 보면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 나무들고 하늘의 별들도 모두 우리와 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런 존재들에 대한 깨달음. 그렇다면 깨달은 나라는 존재는 또 얼마나 소중한 존재란 말인가.

 

이런 소중한 존재인 우리들이 살아 있을 때, 죽을 때까지 모든 걸 사랑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이라는 말에 답이 있다. 나만큼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 그러니 낮은 곳에서 보는 나는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허투루 하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는 길이다. 서정시학이 추구하는 방향, 이 시에 너무도 잘 드러나 있다. 아니, 서정시학이 추구하는 방향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이렇게 모든 걸 소중히 여기고, '모든 걸 사랑'하는 자세.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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