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라고 말했다. (436쪽)


명심해야 할 말이다. 과학 교육을 강조할수록 인성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함을, 아인슈타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과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적이 좋다는 ('머리가 좋다는'과 '공부를 잘한다는'과는 다른 의미로) 학생들이 주로 의대에 간다. 의학을 공부한다. 그런데 이 의학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지성-실력도 필요하지만 인성-사랑이 우선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능을 ('성적을'이라고 쓰고 싶지만, 성적이 우수한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니까) 쓸 뿐,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쓴다고 할 수 없다. 비록 그가 실력 있는 의사라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훌륭한 의사라는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든 사례 중 두 가지가 의학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얼음송곳으로 머리를 뚫어 뇌절개술을 한 의사. 또 성적 지향은 문화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자신의 뜻대로 아이들의 성을 결정해버린 의사. 과연 그들의 인성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수술이나 치료를 통해서 사람에게 유익함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일으킬 결과에 대해서는 숙고하지 못했다. 또 자신의 재능 (실력)에 도취되어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듣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 지성은 있어도 인성은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지성만 믿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결국은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되었다. 어디 이런 의사들만이겠는가.


과학-의학 분야에서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남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는데... 박물학 분야에서 자신의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 노예 무역을 하는 상인들과 결탁한 사람도 있고, 의학의 발전을 이룬다는 목적으로 시체를 도굴해서 해부한 의사도 있으며, 성병을 치료한다고 사람들을 성병에 감염시킨 의사들도 있다.


이들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목적을 지니고 활동을 했겠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들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 지성보다는 인성이라는 말이 다가온다. 예전에 읽었던 '유나바머'의 경우도 이 책에 나온다. 그가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에 심리적 실험으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 꼭 그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그러한 비윤리적인 방식이 사람의 행동을 왜곡할 수 있음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 과학-의학 분야에서 일어난 비윤리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처음 시도할 때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는 초래할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성찰은 듣기에서 온다. 다른 사람의 말도 그렇지만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말들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바로 인성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과학자-의학자에게는 지성보다 인성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저자는 미래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현대 과학기술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과학사-의학사를 통해서 살펴봐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 책을 맺고 있다.


'기술이 남용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모든 악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세계에 새로운 힘을 도입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완화시킬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458쪽)


이 말은 과학-의학에 삶을 투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지니라고 해야 하는지를 지금 우리 사회를 살피는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르시시즘의 고통 - 우리는 왜 경쟁적인 사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신동화 옮김 / 민음사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르시즘을 자아 도취로 보지 않고, 자기 이상을 향한 추구로 본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나르시스트가 된다. 자기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하지만 자기 이상이 무엇일지, 자기 이상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판단할지가 문제가 된다. 자기 이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준거가 외부에서 온다면, 그 외부에서 오는 준거는 무엇일까?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한방에 해결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외부에서 오는 준거는 없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틀은 자신의 내부에서 와야 한다. 자신의 내부에서 온 틀을 가지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 이상은 보편적일까? 사람이 저마다 개성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 있을 수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보편성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고, 추구하는 이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여 보편성을 제외하고 개별성에 적용되는 특수성을 이야기한다면, 그런 특수성들은 다른 특수성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 특수성들을 인식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 외부에 있는 외적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그런 외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이상을 정하게 된다.


어렵다. 나는 나로만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나의 이상은 나의 이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이상이기에. 그러므로 나르시스트라고 해도 남을 배제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볼 수는 없다.


즉 자신이 바라보는 자신이 자신이 외적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설정한 또다른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상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하여 나르시즘을 실현하는 사다리로 저자는 '성공과 공동체'를 든다.


'성공'은 자기 이상을 실현했음을 의미하겠지. 그런데 자기 이상이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이 성공이라는 말에는 남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남이 끼어든다면 이는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의 준거와 남의 준거가 함께 맞물려 있기 때문에...


여기에 공동체를 이야기하면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나르시스트조차도 홀로가 아닌 남과의 관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이상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자발적 복종이라고 해도 좋고, 동일시라고 해도 좋겠다.


이러한 공동체 속에서 성공을 추구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다면 나르시즘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령 우리 사회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 사회에서 주요 화두로 작동하는 가치가 '공정'이다. 공정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으면 공정을 실현하려 한다. 그런데 이 공정에는 남을 배제할 수가 없다. 공정은 나만의 행위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에는 공동체가, 남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


자, 내가 공정이라는 이상을 실현하려 하지만 공정이라는 이상은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또 반 발짝 멀어진다. 나는 공정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가지만, 공정은 거리는 좁혀지지만 닿지는 않게 된다. 


하지만 공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자기 이상이고, 나르시스트는 결코 자신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정을 향한 무한한 내디딤. 하지만 결코 공정에 도달하지 못함. 그러한 공정이라는 가치에 자신을 복종시킨다. 자발적 복종이 된다. 나르시스트는 자발적 복종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책임을 완수해야 하므로.


우리가 이러한 '공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기 이상을 삼았지만, 그 이상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외적 모습에 혹해 진실을 살피지 않고 그의 '공정' 실현이 우리의 '공정 실현'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이 지난 뒤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 하지만 한번 틀어진 길, 다시 나아가기가 더 힘들다. 지금이 그런 상황 아닐까.


이 책은 우리 내면의 이상을 '나르시즘'이라는 이름으로 고찰하고 있다. 그것이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준거라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실현하려고 하고 있음을. 또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이것이 잘못되면 자발적 복종으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그것을 조심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 사피엔스 - 전혀 다른 세상의 인류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가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을 방도는 없다. 막는다고 해서 개발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쓰지 않는 나는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듯 이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휩쓸려갈 뿐이다. 그러니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거부하고, 부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또 시대에 뛰떨어져 허덕허덕거리며 살아가지 않으려면.


이 책은 그런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지금 AI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준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세상이 변해버렸다. 이제는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AI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예술이라고 해서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미 사진과 그림 분야에서 또 영상 분야에서 AI는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제작을 해내는 솜씨.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 그것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고...


물론 젊은 세대는, 요즘은 Z세대와 알파세대를 합쳐 '잘파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은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AI 기술에 친숙하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더불어 지내왔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은 적이 거의 없는 세대다.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들이 더 편하다.


그리고 AI 시대는 스마트폰으로 많은 것들을, 앞으로는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런 세상이 온다.


아무리 그런 세상을 거부하고,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해도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여유 있는 사람은, 그런 AI 기술을 거부하고, AI 세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미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은 그냥 남이 자신을 위해 해줄 수 있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일수록 반대로 첨단 기술에 앞서간다. 그들은 어쩌면 먼저 AI 기술에 접근하고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을 고용해서 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런 여유집단들을(사업을 해서 더 많은 이윤을 내겠다가 하는 사람은 제외하고) 빼면 다른 사람들은, 생존-생활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AI 기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무시했다가는 취업하기도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앞으로 올 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면, 배워야 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분야에 이미 AI 기술이 도입되었음을 보여주고, 이런 추세는 거스를 수 없을 강변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AI 기술을 활용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잘 활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미 우리는 AI 시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다.


AI 시대가 되었다고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저자 역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지 않으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말, 심장이 노래하게 했다는 그 말을 저자는 많이 인용한다. 딱딱하고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부드럽고 따스한 기술이어야 한다는 것.


AI 시대에도 AI 기술은 그런 점을 목표로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왜 AI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를 사람들이 납득하기 쉽게 경제 지표를 이용해서, 즉 자산의 규모를 인용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AI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그러한 기업들이 계속 잘나가고 있음을 수치를 통해서 보여주고, 그런 시대가 되었으니, 우리가 준비를 안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다양한 AI 기술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활용 사례도 알려주고 있어서 막연히 AI 기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AI 기술이라고 해서 모두 인간을 배제한 기술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자산으로 AI 기술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감을 지닐 수도 있고, 또 차페크의 [R. U. R. - 로줌 유니버설 로봇]이나, 아시모프가 쓴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솔라리아'를 연상하면서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또는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기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AI 시대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 흐름에 우리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을 고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즉 어떤 기술도 중요하지만, 왜 그 기술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도 꼭 해야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AI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만, 아직은 인간적인 온기, 또는 불편하고 조금 엉성하더라도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그런 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릴 수가 없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용어로 시작해야 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했던 철인 정치... 거의 완벽한 사람인 철인이 정치를 해야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이런 철인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는 철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그 중 가장 낫다는, 또는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여 실행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세계에서 민주주의가 대세인 지금은 철인 정치는 해서는 안 될 정치다. 전체주의는 당연히 철인 정치가 불가능한데, 민주주의에서도 철인 정치를 이야기하면 안 된다. 특정한 개인에게 우리들의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이 있다고 해도. 


하지만 지금 세상에 그런 철인이 있을까? 철인은 없다고 봐야 한다. 급변하는, 엄청나게 분기된 분야가 편재한 현대 사회에서 철인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래야만 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도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삼권분립이라고, 권력이 분산되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라고 물으면, 답을 그렇다라고 쉽게 할 수가 없다. 그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권한을 십분 활용하는 사람은 제왕적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자신을 제왕이라고 하지 않고 민주적 운영자라고 생각하면? 대책이 없다. 이를 유시민은 주관적 철인왕이라고 부른다. 아니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완성형 권력자라고도 하고.


주관적 철인왕이든, 완성현 권력자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런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로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 국가다. 이런 말에 비추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보고, 그것에 대한 비평을 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유시민의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서. 그가 '정치 잡문'이라고 해야 좋을 글이 되었다(6쪽)고 하고, '인상 비평'이 많다(7쪽)고 할 정도이니. 


이렇게 이 책은 유시민의 주관적인 생각을 쓴 책이니 받아들여도 그만, 안 받아들여도 그만이다. 다만 끝까지 읽어볼 필요는 있다. 그런 태도가 백가쟁명을 이루는 민주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유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를 살펴보자.


그는 말한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7쪽)고. 그가 잘못된 장소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잘못을 윤석열에게만 전가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그랬다고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한 책임이 있다. 어느 정도는.


그래서 박물관에 코끼리가 들어가면 내보내야 한다. 빨리. 내보내기 전에 조용하게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게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유시민의 말을 빌리면 '민주주의는 선을 최대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악을 최소화하는 제도'(23쪽)라고 하니, 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코끼리가 박물관에서 사고를 치지 않게 할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최소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현명하고 유능한 권력자가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받고 야당과 대화해 가면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최대한 실현하는 민주주의를 '최대 민주주의', 선과 미덕을 실현하지는 못해도 사악하고 무능한 권력자가 마음껏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를 '최소 민주주의'라고 하자.'(26-27쪽)


이런 최소민주주의나마 유지해야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구분할 수 없으면 적어도 정치가들이 정치를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유시민의 생각이다.


유시민은 정치가와 정치업자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정치를 위해 사는' 사람과 '정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 편의상 전자를 '정치가', 후자를 '정치업자'라고 하자. 정치인은 누구나 '대의(大義)'에 헌신하는 동시에 '소리(小利)'를 추구한다. '대의'는 정치적 이상과 사회적 선을 실현하는 것이고, '소리'는 공직과 당직 등 이익과 지위를 챙기는 일이다. '대의'와 '소리'가 충돌할 때 대의를 앞세우면 '정치가', '소리'를 먼저 챙기면 정치업자가 된다. (197쪽)


그렇지만 정치가는 대의를 위해 일을 한다고 해도, 완벽할 수 없다. 그도 실수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한다. 악인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을 하면 위선이라고 안 한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이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하면 위선이라고 비난한다. 그에게 수모를 준다. 이때 유시민은 정치가는 그런 수모를 견뎌내야 한다고 한다.


오직 정치를 해야만 이룰 수 있는 이상을 품었거니, 정치 말고는 달리 충족할 수단이 없는 욕망에 사로잡혔거나, 둘 중 하나라야 정치의 남루한 일상을 감내할 수 있다. (36-37쪽)

대중에게 정치가로 인정받으려면 대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정치판에서 오래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수모를 견디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 (199쪽)


정치가들에게 수모를 견뎌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 수모를 이겨내고 계속 대의를 위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제도다. 대의와 소리(小利 ). 정치가가 취한 소리만을 보고, 그를 재단하고, 그를 몰아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철인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는 더한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치는 '전쟁의 문명적 버전'이다. 권력투쟁을 할 때도 정책경쟁을 내세운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264쪽)


이런 그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대통령에 대한 유시민의 개인적인 생각을 알 수 있다. 철인이 아닌데 철인인양 정치하는 사람. 국민보다는, 대의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그러니 지금대로 나가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래봤자 3년 뒤면 바뀌겠지만...


3년이 짧은가? 길다면 엄청 긴 시간이다. 우리나라가 거꾸로, 과거로 돌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무리 퇴행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최소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는 절대로 독재 사회가 아니다. 전제 왕정도 아니다. 제도가 살아 있고, 시민의식이 살아 있다. 유시민은 거기에 기대를 건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한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 적어도 우리 사회를 보는 다른 눈을 가질 수는 있을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더풀 사이언스 - 아름다운 기초과학 산책
나탈리 앤지어 지음, 김소정 옮김 / 지호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과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정말 어려운 방정식이나 수식이 나오지 않고, 과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하는 책이다.


왜 우리는 천문관측소로 여행을 가면 안 되는가? 과학박물관은? 기껏 공룡화석박물관은 아이들 데라고 가본 적은 있을지라도, 그것은 아이들이 한껏 공룡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지, 어른인 우리가 관심을 가져서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 생활이 과학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데, 또 과학(수학)을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학을 멀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 생활과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나 과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땅부터 별을 보는 하늘까지, 우리가 먹는 음식부터 우리 몸까지, 또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모두 과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과학은 곧 우리 삶이다.


이렇게 과학이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데 어찌 과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랴. 관심을 가져라. 말만 한다고 관심을 갖게 되지는 않는다. 무언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것을 충족시켜 주어야 관심을 갖는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부터 시작한다. 과학적 지식이 있음에도 착각하는 경우, 잘못 알고 있는 경우를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사례들을 통해 과학이 그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착각에 이어서 확률과 척도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라고 해서, 확률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고민하고 계산하는 것도 확률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생명체가 있는 다른 행성이 있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도 확률로 말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니, 그것을 파악하는 척도도 필요하다. 큰 것부터 아주 작은 것까지. 이렇게 과학에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한 다음에 물리, 화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설명을 한다.


나같이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과학이 다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차분히 한 분야씩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과학을 멀리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도 과학의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과학이 필요함을, 과학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정도로 이 책은 과학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과학이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사람, 이 책을 읽으면 과학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그릴 수 없을지 몰라도 전반적인 윤곽이 잡힌 그림은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