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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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광고를 하는 사람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광고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란 책을 낼 정도로 인문학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광고와 자본과 가장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인문학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둘이 잘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광고가 자본의 총아로서만 기능하지 않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도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여덟 단어"라는 책을 냈다. 키워드라고 하나, 여덟 단어로 광고 또는 인문학,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강연을 한 것이다.

 

단지 광고에 대한 강연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산 사람으로, 먼저 고민을 한 사람으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굳이 박웅현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박웅현은 박웅현이고, 나는 나니까. 이 책에서 거듭해서 박웅현이 말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것이다. 그의 권위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마라.

 

그럼에도 참조가 많이 된다.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 단어는 다음과 같다.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

 

이 중에 모든 것은 마지막 단어 '인생'으로 수렴된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앞의 일곱 가지가 필요하다.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직업을 갖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왜 공부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살기 위해서? 기준은 다양한다.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다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존'이 필요하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남을 존중할 수 없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에 다름을 인정할 수 없다. 즉 우리는 다 다르지만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본질'에 대한 생각에 이르지 않는다. 반면에 '자존'하는 사람은 다름을 인정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본질' 무엇인가? 그때그때 변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보편적인 것. 오래 가는 것, 세월의 흐름에도 견뎌내는 것, 그것은 바로 '고전'에서 올 수 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인간이 지닌 어떤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본다는 것(見)의 중요성에 이른다. 그냥 보이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견(見)'이다. 놓치고 있던 것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 바로 '견'이다. 이 '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재'를 보는 것, 현재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 동물이 되어 보지 않아서 돌물들이 과연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도 개를 예로 들어 현재에 충실한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 과거와 미래를 자꾸 현재로 불러온다.

 

그래서 현재를 현재로 즐기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 되돌리려 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는 미래로 밀어 넣으려 한다. 자연스레 자존도, 본질도, 고전도 놓치고, 제대로 보지 못한다. 현재에 살아야 하는 자신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권위에 자신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식으로 권위를 세우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재'를 살지 못하는 모습이다. '권위'는 자존을 지니고 본질을 추구하며 현재를 잘 살 때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권위는 바로 바깥에서 오지 않고 안에서 와야 한다. 그것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으려면 '소통'이 되어야 한다.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동물 아니던가. 정치적 동물 아니던가. 아니 언어적 동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간에게 소통은 필수적이다.

 

'소통하는 인간'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결국 이 '소통'이 필요하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여덟 단어'를 이렇게 정리해 봤다. 꼭 이 여덟 단어이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한 단어로도 우리의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박웅현이 쓴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삶에 대해서 되돌아볼 수는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자신들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이 여덟 단어를 자신의 삶으로 불러올 수 있다. 좋은 책은 그가 쓴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듯이 바로 '도끼'여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도끼'의 역할을 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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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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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죽은 문자라고 한다. 실제로 사용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각 나라는 자기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를 사용하지 한때 세계적인 언어였다고 하는 라틴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라틴어 하면 무언가 교양이 있는 분위기가 풍긴다. 좀 젠 체하는 사람들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가 아닌 라틴어를 쓰기도 한다. 무언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라틴어 수업을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이런 옛날 언어를 가르치는 대학이 있었다니... 한문을 가르치는 대학도 줄어드는 판국에, 서양의, 그것도 서양에서도 한 나라의 언어가 되지 못한 언어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가르치다니...

 

좀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아니다, 세상의 어느 언어를 가르치는 일이 불필요한 일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에는 역사와 문화가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틴어는 지금은 죽은 문자라고 하지만 서양언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지 않나. 이 책만 해도 만은 라틴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언급되고 있는 라틴어 중에는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 제법 있다.

 

영어를 배운 사람들에게 낯익은 글자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 역시 비슷하고.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를 배우면 서양 언어를 배우기가 더 쉬워진다. 단지 그뿐이면 라틴어는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서양 언어를 배우기 위해 또다른 서양 언어의 기원이 되는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양에서도 라틴어는 여전히 가르친다고 한다. 왜냐고? 우리가 한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그들의 역사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라틴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삶, 문화, 역사를 라틴어를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바로 라틴어 수업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내 삶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의도로 쓰여졌다.

 

라틴어 문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라틴어 문법은 복잡하기로는 세계 언어에서 첫손에 꼽으라면 꼽힌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 라틴어 문법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다가는 아마 몇 장을 읽지도 못하고 책을 내팽개칠지도 모른다.

 

대학에서의 강의도 마찬가지겠지. 문법만, 언어 자체만 이야기해서는 듣는 학생이 별로 없을 것이다. 금방 지쳐떨어질테니.

 

그래서 이 책은 라틴어에 대해서도 알려주지만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삶을 유지해나가기 때문에, 이 라틴어를 통해서 삶에 대해서 성찰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함께 라틴어를 통해서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각 장마다 라틴어 경구가 있고, 그것을 통해서 라틴어에 대해서, 또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기에 라틴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도 있고,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천천히 읽으며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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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3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Dora 2017-09-2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평 156호에 이 책의 리뷰가 담겨있는데요... 감동적...꼭 읽고 싶은 책입니다.

kinye91 2017-09-23 10:23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면 여러가지로 생각할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하라 2017-09-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본 책인데요 라틴어 수업이라기 보다는 라틴어 에세이나 라틴어 감상이란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각 라틴어로 묵상해보는 것도 운치있을듯한 저작이더라구요^^

kinye91 2017-09-23 11:0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수업이라기보다는 라틴어를 통해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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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는 말을 앞에 달고 있고, 제목은 "설전(雪戰)"이다. 책이 조금 친절하지 않게 두 스님의 문답이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긴 이 문답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닐 것이고, 또 그것이 언제인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때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무엇을 말하였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깨우치게 하는데 문답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두 스님의 문답은 손가락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달을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면 자신의 진면목을 깨달을 수가 없다. 그런데, 자꾸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대화들을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도 손가락에서 벗어날 수가 없나 보다.

 

이 손가락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마음에 낀 먼지를 조금은 날려보낼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책의 겉표지 뒷부분에 쓰여 있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마음에 와 닿는다.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성철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다른 스님들이나 일반인들이 함부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스님이 성철 스님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엄격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보여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생 동안 자신이 지니고 있었던 결심을 지켰던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런 구도자의 자세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다만, 법정 스님만은 성철 스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역시 법정 스님을 도반(道伴)으로 인정했나 보다. 책을 편찬할 때는 법정 스님에게 도움을 구했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 곳곳에서 성철 스님을 모셨던 원택 스님의 글이 있어서 성철과 법정 스님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또 이 책의 처음과 끝에 성철 스님과의 인연을 말하고 있는 법정 스님의 글이 있다. 그 글을 통해서도 두 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의 묻고 답하기를 통해 불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문답이라는 형식은 어렵지 않게 일반인들에게도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하나의 질문과 답이 모두 마음에 받아들이고 명심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몇몇 구절은 가슴을 때리고도 남았는데...

 

법정 : 그렇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독립된 현상만이 아니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저희들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종교인에게도 그런 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철 : '종교인에게도'가 아니지요. '에게도'가 아닙니다. 우리 종교인이란 정신을 지도하는 근본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근본 책임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 그러니 종교인이라는 사람, 성직자라는 사람부터 근본 자세를 바로잡아서 참다운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에서 정신적 지도자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면 밑에서 지도받은 사람이 탈나고 잘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러니 근본 책임을 맡은 종교인, 성직자인 우리가 참회해야 한다고 봅니다.  (36-37쪽)

 

지금 사회가 어지러운 지경에 처한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하는 중에 나온 말이다. 법정 스님은 '종교인에게도'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성철 스님이 '에게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졌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경시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어지러운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떤 종교인이 이렇게 참회를 하고 있단 말인가.

 

종교인에게 세금을 내게 하자는 안건도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고, 통과되지 않고 있는 현실 아닌가. 자기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지면서도 점점 가난해져 땅과 가까워지는 사람들은 외면하는 종교인들이 많지 않은가. 부끄러워해야 할 말이다. 이 말이 단지 종교인에게만 해당하겠는가.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 참으로 진리를 위해 살려면 세속적인 일체 명리는 다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앞서면 진리는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어 버리니까요.' (51쪽)

 

'불교 믿는 첫 조건으로 모든 생명,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같이 섬겨라. 모든 사람,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80쪽)

 

'불교의 사회봉사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사상 같은 데서는 어떠한 선한 일을 하더라도 아무 자취 없이 하라고 강조합니다. 내가 선한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보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82쪽)

 

'인간의 가치란 누구나 똑같습니다. 남을 도우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지, 조금이라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 저쪽 인격을 무시하는 겁니다.' (82쪽)

 

이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턱 막혔다. 도대체 지금 이 나라는 봉사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정치인들이 선거철만 되면 무슨 무슨 기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사진 촬영을 해서 언론에 내보내는 그 작태는 그들이야 그렇다치는데, 이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잘못된(?) 학교 교육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점수화하고 있다. 몇 시간 이상을 해야지만 기본 점수를 받는 것이다. 알리지 않고, 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학생 시절부터 점수를 위해서, 그것도 기록이 되지 않은 봉사활동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 꼭 기록을 하게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학교 교육 아닌가.

 

그렇다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인가.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봉사조차도 자신을 드러내는 쪽으로 쓰게 하는, 현재의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런 사고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는데... 아마도 거꾸로이겠지. 정치인들의 그런 행태가 학교에서 하는 봉사활동을 점수화 할 생각을 하게 했겠지만... 참, 이제는 이렇게 지낸 학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동을 하는 나이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성철 스님은 말을 적게 하라고 했다. 글 역시 마찬가지다. 주옥 같은 말들이 더 많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아가면 될 듯하니... 이만 줄여야겠다.

 

다만, 당장의 깨우침은 없을지 몰라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깨우침에 대한 생각, 즉 손가락이 무엇을 가리키려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이름은 들어봤음직한 성철, 법정 스님의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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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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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라니. 멋모르는 어린아이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어른이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청춘 시절에는 그 시절에 흠뻑 빠져 나이들어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청춘 시절은 현재만이 있는 시절이다.

 

어쩌면 어린시절은 미래가 더 많이 보이는 시절이라면 청춘은 현재에 몰입한 시절이다. 그런 시절이 지나고 서서히 늙어가면 이제는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를 보게 된다.

 

미래는 조금, 과거는 많이. 과거가 많이 보일수록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이 앞으로 살아갈 세월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빨리 압축되어 존재하고, 미래는 느리게 펼쳐서 존재하길 바란다.

 

어느 순간 나이듦에 대해서 저항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하고, 현재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이때부터가 늙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늙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늙음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 그것은 무(無)다. 도무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언어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다. 칸트 식으로 말하면 '물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절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경험할 수도 없는.

 

사람은 누구나 늙고 죽어간다는 것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험은 우리가 언어로 다시 전달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일회성이다. 불가역적이다.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경험을 하되 경험했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상태가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저항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저항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몸은 자꾸만 중력의 법칙에 따르게 된다. 땅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점점 더 중력이 몸에 강하게 작용한다.

 

그러니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운 것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자신이 서서히 죽음이라는 구멍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게 된다.

 

청년기를 지나고 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아무리 수명이 늘어났다고 해도 인간이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이 아무리 젊다고 생각해도 이미 뒤쳐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힘들어지고, 최근에 나온 책들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부정하려고 해도, 자신의 언어와 젊은이들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체념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일회적인 것 아니겠는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삶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다. 이 책에서는 많은 문학작품이 언급된다. 거기서 늙어감, 죽어감에 대해서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회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과 더불어 산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또 무의 무의미함에 익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저 공허하고 잘못된 기대, 자기기만을 되풀이하는 연습에 익숙해질 뿐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한사코 부정하며 자기기만의 희생자가 된다.  204쪽.

 

늙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자신과 거짓말 타협을 하며 살아간다. 207쪽

 

이것을 꼭 자기기만이라고 해야 할까. 현재를 살면서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불러올 수 인간이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과연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인간은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 자기기만을, 거짓말 타협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념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수용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단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늙어감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유한한 삶, 일회적인 삶을 잘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올 미래를 미리 당길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미래는 현재에는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간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도 이미 죽음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 살아갈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럼에도 우리는 늙어감, 죽음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한다. 만약 죽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지금보다 나아질까... 그 점을 생각하면...

 

늙어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있는 책이긴 하지만, 서양문학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지만 그래, 그래 하면서 읽을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프루스트, 괴테, 토마스 만 등의 소설이 기본 바탕이 되고 있으니... 원. 그래서 내게는 많이 난해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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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 2017-08-12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kinye91님의 이 글에 공감하는 내용이 참 많아요. 과거가 더 많이 보일수록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도, 자신이 아무리 젊다 생각해도 어느 순간 이미 뒤처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도 느무느무 공감했어요. 저는 제가 나이가 들더라도 태생이 철이 없어서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다 죽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것과 무관하게 어느 순간 꼰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볼 때가 있거든요. 그럴수록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kinye91 2017-08-12 14:13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나와 있는 글들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어요. 저도 적어도 꼰대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노력해야겠지요.

돌아온탕아 2017-08-1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리뷰네요. 잘 읽고 갑니다. :)

kinye91 2017-08-13 1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 - 수의사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생명, 공존, 생태 이야기
해를 그리며 박종무 지음 / 리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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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말에는 '사람 사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인(人)'이라는 글자 역시 서로를 받치고 있는 모습이니까 사람이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 즉 자신 홀로가 아닌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여기에 '간(間)'이라고 하여 사이란 뜻을 하나 더 첨가하고 있으니, 인간은 결국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관계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존재들과 관계맺는다는 것이다.

 

책의 닫는 글에서 '아인쉬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4개월 후에 지구상의 인류도 사라질 거라고 이야기했단다.'(282쪽)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들끼리만 잘 살면 될 줄 알지만,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그래서 만물은 서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우주에 확장하면 우리는 우주의 어느 행성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면 그곳에 제2의 지구를 만들어 이주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우리는 우리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박테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꿀벌뿐만이 아니라 많은 미생물들이 없다면 인간이 살 수 없을 거라는 얘기다.

 

그만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이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여 인간 이외의 생명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멸종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기만 하고 있다. 그런 결과 지금 인간들도 살기 힘든 상황으로 지구를 몰아가고 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을 무시하고, 배제하기만 하면 결국 인간 자신도 살아갈 수 없음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가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대, 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학대, 병원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배제하는 온갖 박테리아, 미생물들, 자신들의 편리란 이름으로 뭉개버리는 자연들...

 

이들을 이렇게 무시하고 배제하기만 하면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이 된 지구라는 결말에 도달한다. 여기에 우주의 다른 별들을 개척한다고 해도 인간이 잘 살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지금껏 관계맺어 왔던 다른 생명체들이, 또 무생물들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보장이 없고,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이 적응이 되기까지는 살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딸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인간과 생명, 진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 많은 질문들이 있지만 이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만이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우리의 생명은 다른 생명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면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삶, 대량 축산에 의지하는 육식 위주의 삶을 버리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그렇다. 우리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들과이 관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들과의 관계, 또 무생물들과의 관계. 그 관계 속에 바로 우리 인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읽고서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생명들의 관계에 대해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지만 살아갈 수 있음을 저자는 잘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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