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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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술술 읽힌다. 글들이 긴박하고 빠르게 사건을 이끌고 간다. 잠시 망설임 틈도 없이 내용이 전개된다. 짧은 호흡으로 글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끝에 이른다. 이런 결말이 나버렸네. 이렇게 결말이 나는군 하고 소설 읽기를 끝낸다.


두 편의 소설이 길지는 않다. 중편 소설 두 편이라고 봐도 좋다. 하나는 책 제목이 된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악어'다.


둘 다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제목에 킬러란 말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살인이 나온다. 킬러다. 의뢰받은 사람(소설에서 이 킬러는 표적이라고 한다)을 죽이는 일. 그는 깔끔하게 처리한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 이것은 자신의 킬러 생활이 끝나는 것으로 나아간다.


킬러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끊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활을 없앤다는 말이다. 그런 킬러가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킬러로서 지녀야 할 차가움을 잃는다는 말이니.


하여 그는 마지막 의뢰를 끝으로 실업자가 된다. 마지막 의뢰, 멕시코 사람을 표적으로 받았을 때 든 느낌. 그리고 그가 한 말. 마약을 공급하던 사람인데, 그는 주로 미국에 싼 값으로 마약을 공급한다. 이유는? 미국을 타락으로 이끌려고. 미국에 당한 멕시코 사람들을 위해서.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을 지나치듯이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세풀베다가 사회적 현실을 눈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킬러가 등장하는 이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킬러는 무감각해야 하지만, 왠지 라틴아메리카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일에는 망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소설에서 자신의 생활을 파탄내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결론이 나기까지 소설은 빠르게 진행이 된다. 킬러의 입장에서 서술이 되면서. 


이 소설에는 라틴아메리카가 처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감출 수 없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반면 '악어'란 소설은 자본이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들의 삶을 파탄내고 있음을 살인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보호해야 할 동물을 죽여 밀수입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의 횡포. 그런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원주민들. 그런 갈등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살인 사건을 쫓아가는 형사(보험사 직원)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질 뿐이다.


빠른 속도로 사건은 결말에 이르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보호를 위한다는 자본가의 딸이 지닌 이중성을 만나게 된다. 원주민들을 도와주지만 결코 원주민이 될 수 없는 사람. 그러기에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이국 땅까지 와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을 죽이지만, 자신들도 돌아가지 못하고 죽게 된다.


결국 파괴된 환경에서는 원주민들 역시 삶을 영위하기 힘든 것이다. 그들이 몇몇 자본가들을 처치한다고 해도 삶터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자본은 깊숙이, 치명적으로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악어'란 소설을 통해 세풀베다는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가, 자본이 자행하는 환경 파괴, 또는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일은 몇몇의 복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풀베다의 이 두 소설을 읽으면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넘어서 집단이(또는 사회가)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킬러가 표적을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또 개인적으로 한 사회를 타락시킨다는 복수를 행한다고 해서 원주민들의 삶 또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개인보다는 좀더 넓고 깊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함을 두 소설에 나오는 살인들을 통해서 세풀베다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파괴, 전쟁 등을 보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개인을 없애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제도와 구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개인들이 모여 더 큰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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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시인선
최승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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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발간한 시집이 199권이 넘었다.  50권, 100권, 200권째는 그동안 시집을 냈던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을 (50권은 기념 자선, 100권, 200권은 티저 시집이다) 냈고, 또 두 번 이상 시집을 낸 시인들이 있으니, 총 시인은 200명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시집에는 시인의 말들이 실렸으니, 시인의 말이 그들의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도 해줄 수 있고, 때로는 시의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


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시인의 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로는 시인의 말이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런 시인의 말을 만나면 반갑다. 그리고 기쁘다.


하지만 가끔 시인의 말이 시를 이해하기 힘들게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시인의 말은 '사족'에 가깝다. 물론 대부분 시인의 말은 화룡점정이라고 해야겠지만, 가끔은 도대체 시도 난해한데, 시인의 말은 그런 난해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아무 말 하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그런 시인의 말은 사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공연히 뱀발을 그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예전에 문학의 갈래를 정리하는 글에서 시는 '세계의 자아화'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즉 시는 자아의 외적 대상을 자아로 끌어들여 자아로 말하는 문학이라고 해석해도 된다. 그렇다면 시는 세계를 자신에게로 끌어온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아로 들어온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즉 존 버거의 말을 빌리면 세계와 자아의 거리를 없애는 것.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계, 사람과 동물, 사람과 식물, 동물과 식물 등등 존재하는 것들의 거리를 없애는 것이 바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시와 다른 존재와의 거리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런 시인의 말이 바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동네에서 펴낸 이 책, 시인의 말 모음집은 또 한편의 시집을 읽는 것처럼 읽어도 좋다. 대부분의 시인의 말이 '사족'보다는 '화룡점정'에 가까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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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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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등장인물들이 겹친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고 한다. 각 소설마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이들은 한 공간에서 함께하고 있다.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이렇게 세 편이 실려 있는데 공통된 공간은 지하세계다. 인류가 지상에서 살기 힘들어져 건설한 지하 세계.


이 지하세계는 철저하게 통제되는 사회다. 세 편을 읽다보면 연결되는 점이, 이들의 머리에는 칩이 심어져 있어서 이들이 어딜 가나 확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지하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특정 약물을 섭취해야 한다.


이 약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정신개조를 받으러 끌려간다. 이는 인간의 의식까지도 통제가 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이동의 자유는 있을지라도 모든 것이 감시받는 사회, 하다못해 통신까지도 감청이 되는 사회고, 허락되지 않은 아이는 낳아서는 안 되는 사회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도 다른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저항이라고 해도 좋은데, 이런 저항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발견과 모험'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바다눈'에서 은희와 마르코의 대화에 이 말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말들은 다른 두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존 세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며, 그곳으로 나아가려는 모험을 한다. 물론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다.


"모험과 도망."

하나는 대범했고 하나는 조급했다.

"발견과 추방."

하나는 위대했고 하나는 초라했다.

"미지의 세계와 타락한 세계."

하나는 신비로웠고 하나는 두려웠다.

"우린 산 채로 묻힌 거야."

우리의 세계는 조급하고, 초라하고, 두려웠다. (83쪽. '바다눈'에서)


하지만 은희는 사라진다. 목소리를 잃었다고(팔았다고) 하지만 사라질 필요가 없을텐데, 사라짐은 타락한 세계로부터의 추방과 도망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은희는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파는 모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타락한 세계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발견을 통해 모험으로 나아갔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래서 남아 있는 마르코가 친구인 소마를 위해서 모험을 하는 '이끼눈'으로 연결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의조. 의주의 쌍둥이인 의조는 둘 중 하나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그러나 있는 존재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무리 약물로, 통제로 없는 존재로 만들어도 있는 존재는 나름대로 있음을 증명하게 된다.


환풍구로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하는 의조. 그런 의조가 나중에는 이 지하 세계를 폭발시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렇다. 타락한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면 안 된다. 그러나 아직 타락한 세계는 굳건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은 실패하고,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물거품이 되며, 노동 근무 조건도 열악해서 언제든지 사망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끼숲'에서 유오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죽는다. 그런 유오의 클론을 데리고 유오가 가고 싶어하던 지하 1층 돔으로 가려고 하는 친구들.


그 친구들은 모두 조급하고, 초라하며, 두려운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친구들은 소마를 돕는다. 유오의 클론과 함께 식물들이 있다는 돔으로 소마를 가게 하려고.


한명 한명 자신이 맡은 일을 통해 소마를 지하 1층의 돔으로 보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식물들은 죽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이 닫힌 세계를 나와 지상으로 가는 것. 


지상에 나온 소마는 온몸이 이끼로 덮이지만 비로소 자신이 닫힌 세계에서 나왔음을 인식한다. 그렇다. 그들은 지하 세계라는 곳을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모험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밖으로 나온 사람은 소마 하나지만, 모두가 함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소설은 암울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자신들의 삶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유오의 죽음으로 자신을 유폐시켰던 소마가 친구들과 함께 유오의 클론을 데리고 지상으로 가는 장면은, 닫힌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그를 벗어나려는 존재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마르코가 파업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들에게 동조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안락은 홀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만드는 일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닫힌 세계에 갇혀 사는 삶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이 세 편의 소설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다른 곳을 꿈꿀 수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 그런 존재들로 인해 세상은 열린 세상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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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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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상황에 처한 세 사람이 있다. 수연, 완다, 난주


외롭다고 비슷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다르게 행동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든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았든.


하지만 외롭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 외로움을 견디고 없애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얻지 못하면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들에게서 그것을 얻으려고 한다. 온갖 '반려'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소설은 이 외로움에서 시작한다. 외로움을 파고드는 존재가 있다. 외로움의 끝이 죽음인데, 이 소설은 죽음을 뱀파이어로 설정한다. 


뱀파이어는 밤에 움직인다. 사람의 인생에서 밤이란 어려움, 고통, 외로움, 끝 등을 의미한다. 그러니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라는 말은 밤을 끝나게 해주는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밤을 끝나게 해주는 존재, 즉 현재의 외로움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존재.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의 끝이기 때문이다. 이 끝을 


하지만 외롭다고 모두 죽지는 않는다.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누군가는 작중 인물인 서난주처럼 외로움에 먹혀 그것에 자신을 맡길 수도 있지만 수연이나 완다처럼 외로움과 함께 하면서 그것을 이겨내려고 할 수도 있다.


세 인물이 중심축이지만 수연과 완다에게는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외로움에 먹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수연에게는 은심 할머니와 선배 형사 은경이 있었다면, 완다에게는 완다를 입양한 모리스와 클레어가 있다. 그리고 완다와 함께하는 뱀파이어 릴리가 있었다. 이것이 이들이 외로움에 먹혀버리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로 상징되는 죽음도 사람들에게는 상반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사람들을 한없는 공포로 몰아넣는 죽음과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잘살아가게 하는 죽음.


결국 완다가 만나는 릴리나 수연이 나중에 만나게 되는 그레타와 같은 뱀파이어들은 삶을 더 잘살게 해주는 뱀파이어-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곁에 있어요."

수연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그들에게서 인간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로운 자들을 홀로 두지 않는 거예요."  (296쪽)


즉 삶 곁에 있는 죽음은 외로움을 발판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마치 그것밖에 없는 양. 소설에서 뱀파이어는 자신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줬다고 말한다.


하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죽음일까? 아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 함께해주는 모습이다.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그러니 뱀파이어의 방식은 잘못됐다. 작가가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겠다. 뱀파이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니..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고 죽이는 존재,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만 인간에게는 해롭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니. 죽음도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죽음을 삶의 다른 면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들을 대하는 서로 다른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것도 한 면만을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외로움은 이런 뱀파이어를 부른다. 외로움은 이 세상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뱀파이어가 온다. 


이런 은유로 소설을 읽을 수도 있지만, 살인사건에서 세 사람의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면서 점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


누가 범인일까? 왜 살인을 저지를까? 어떻게 살인을 막을 수 있을까? 세 인물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갈까?


처음에는 전개가 좀 느리다고 여겨졌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속도가 붙는다. 사건의 전모와 인물들의 관계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그리고 결국 사건은 해결된다. 해결되지 않는다. 수연의 입장에서는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 된다. 도저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는.


소설을 읽으면서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가 아니라 '낮에 함께하는 사람(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무엇인가와 함께할 때 외로움을 이겨내거나 최고한 외로움과 함께할 살아갈 수 있음을. 그래서 어려울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즐거울 때도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소설을 읽으며 생각한다.


뱀파이어라는 환상적인 존재를 등장시켜 외로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 소설이다. 천선란의 다른 소설에서 느꼈던 따스함은 덜하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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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제목만 보고, 우리들 서정(사랑과 비슷한 우리들 마음을 울리는 그러한 감정들이라고 좁게 서정을 생각하며)을 노래하는 시들을 모아놓았나 했다. 그런데, 시집 제목이 된 시는 그게 아니다. 서정시를 쓰는 시인도 감시를 받아야 했던 시절.


  감시 목록 파일 이름이 서정시였다는 거다. 살벌한 시대에는 서정시조차도 저항시가 되는 세상이니.


  아니, 서정을 노래하는 시들은 독재에 대항하는 시들일 수밖에 없다. 독재는 개인의 서정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런 서정시들이 널리 퍼진 사회에는 독재가 깃들 수 없으니까. 그러니가 서정시는 독재에 대항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왜 이리 죽음이 많이 나올까 했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한 죽음들과 시인 개인사에 얽힌 죽음으로 읽힐 수 있는 시들까지. 세상이 죽음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 두 단어가 마음 속에서 자리 잡았다. '기슭'이라는 말과 '대각선'이라는 말. 두 말의 공통점을 '경계'에서 찾는다.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곳이자, 이곳과 저곳을 나누는 곳. 그것이 바로 기슭과 대각선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죽음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기슭과 대각선을 핵심으로 본다면, 죽음의 대각선 너머, 또는 죽음의 기슭에는 삶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삶을 사각형이라고 하고 대각선을 그어보면, 한쪽은 삶이고 한쪽은 죽음이리라. 그리고 삶과 죽음은 사람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될테고. 이 대각선은 삶 쪽에서는 죽음과 이어지는 기슭이 될 것이고, 죽음 쪽에서는 삶과 이어지는 기슭이 될 테다. 


결국 기슭은 대각선이다. 그리고 대각선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대비해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꼭 삶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기슭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기슭에 있을 때 어떠해야 할까.


무섭다고, 두렵다고 눈을 감아야 할까? 그냥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있어야 할까? 아니다. 시인이 시집에서 수많은 죽음을 이야기한 것은 죽음의 대각선 너머에 있는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기슭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슭에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90-91쪽)이라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 발을 멈추고 구름에게라도 물었어야 했다 / 산을 내려오는 산에게 / 길을 잃고 머뭇거리는 길에게 물었어야 했다'('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3연)


그러면서 '모든 무서움의 시작 앞에 눈을 감지는 말았어야 했다'(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8연 2행)고 한다. 


'대각선의 길이'(118-119쪽)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디론가 불려가는 것들 / 불려가면서 다른 존재를 불러오는 것들 / 종종걸음으로 / 수평선과 수직선을 가로질러 아주 멀리 가는 것들 / 짧은 궤적을 남기며 사라지는 것들' ('대각선의 길이' 7연)


이것이 '기슭과 대각선'이 지닌 공통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동전의 양면처럼 한 면을 볼 때 다른 면을 볼 수 없게 되는데, 이 기슭과 대각선은 한쪽 면과 다른쪽 면을 동시에 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볼 수 있을 때 선택은 우리 몫이다. '하느님은 부사를 좋아하신다'(100-101쪽)는 시도 있지만, 기슭과 대각선을 생각하는 우리들은 '부사'(꾸밈말)가 아닌 '동사'를 좋아해야 한다. 경계에서는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집의 마지막 시('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는 결국 기슭과 대각선에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빛의 옥상에서

  서른세개의 날개를 돌려라

                   

  오다 가다 오르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


  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파도가 밀려가고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

  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


  기다리지만 말고 서른세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

  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 '서른세개' 시인이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다.)


나희덕, 파일명 서정시, 창비. 2021년. 초판 6쇄.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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