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 30년 전쟁의 한 연대기 범우희곡선 25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이연희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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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작품은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거나 보면 안 된다. 브레히트가 의도했던 것은 등장인물과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 그것을 한자어로는 소격효과라고 했는데, 이 책에서 옮긴이는 생소화효과라고 한다.


즉 낯설게 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게 하는 것. 그러니 브레히트의 이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도 주인공인 억척어멈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으면 안 된다. 억척어멈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자식을 잃고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여인의 삶에의 의지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브레히트가 의도했던 것이 그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브레히트는 개인의 운명조차도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속해 있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개인의 삶을 바꾸려는 것보다는 사회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가 마르크시즘에 빠져 있었으니, 개인보다는 사회, 제도를 우선시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유럽의 30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에서도 사회구조를 찾아야 한다. 즉, 전쟁 속에서 전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개인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전쟁을 이용해서 살아남으려는 모습이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억척어멈은 전쟁터를 따라다니는 종군상인이다. 변변치 않은 물건을 얻고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자식들 또한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억척어멈의 기원일 뿐이다. 자식들은 전쟁의 와중에 하나둘 죽어간다.


병사로 죽어가고, 도시가 함락될 위기에 처했을 때 경고를 하다가 죽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자식 셋을 모두 잃고도 억척어멈은 전쟁 부대를 따라간다. 왜? 살아가기 위해서.


여기서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억척어멈처럼, 그렇게 억척스럽게 전쟁 통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고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자식을 모두 잃고 살아남은 억척어멈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살아남기 자체가 아니라 전쟁이 아닐까? 이념이나 종교로 분열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거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용한 삶이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이 희곡은 억척어멈을 통해서 전쟁을 거부해야만 우리의 삶도 평안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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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성스러운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1
김보영 지음, 변영근 그래픽 / 알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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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모두 잘 어울리며 함께 일하면서 살아가던 세상이 갑자기 너와 나를 분리하고, 남녀를 분리하고 다른 것들로 서로 나뉘어 갈등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는 자연까지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든 인간에게 종속시키고 있는 중이다. 인류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 철학자들, 인문학자들, 종교학자들 모두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답은 없다. 답은 없이 오로지 상상만이 있을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억측이라고, 또는 해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


이렇게 논리적으로 대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우리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문제를 끌어내고,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답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답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특히 소설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소설은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상이 현실인 세계, 그런 세계가 소설인데, 이 소설은 특이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전지전능하고 사랑과 자비로 인간에게 다가와야 할 신이 만약 차별주의자라면? 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다름을 차별로 전환시킨 데에는 만약 신이 있다면 신도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소설은 인류가 행복하게 모두 동등하게 잘 지내던 시대로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일을 같이 했다. 들에서는 다 함께 무장을 하고 짐승을 잡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같이 아이를 돌보며 요리를 했다. 정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모두 함께였으며 평등하게 공사를 정했다.

  신이 보기에 세상에는 좀더 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은 지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자는 우수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신은 그 말을 남기고 도로 하늘로 올라갔다. (15쪽)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찾기 시작한다. 왜 신이 그런 말을 했을까? 차이는 단 하나... 남자에게는 고추가 있었다. 이 달랑 고추 하나 가지고 남자들은 자신들의 고추를 애지중지하면서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는...


  신은 다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증오가 세상을 휘감고 있었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를 증오했고 부모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늙은이와 아이들이 서로를 증오했다. ... 다른 세상 한구석에서는 권력자들이 과학자들과 성별이 모호한 이들을 신의 이름을 살해하고 있었다. ... 이에 신은 만족하며 말했다.

  "이제야 세상에 질서가 잡혔구나." (25쪽)


섬뜩하지 않은가.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 인류는 바로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 소설 속 모습이 아니라 지금 우리 모습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별 차이도 아닌 것으로 이렇게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차별을 없애나가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그렇게 세상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소설은 더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함께 평등하게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신이 광화문에 내려온다. 거대한 모습으로... 이런 신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다른 방도를 찾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협력하는 모습이 아니라, 신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그것을 자신이 위대하다고 하는 근거로 삼는다.


신이 차별의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신(소설에서는 신 중에 알파다)만 있지는 않다.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간으로 재림해 몸소 경험하는, 즉 차별을 경험하는 신들도 있다. 오메가, 입실론, 감마 등등. 


그들은 광화문에 재림한 신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즉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차별주의자인 신을 등장시켜 인간들의 삶을 조망한다. 신이 차별주의자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모두들 멸망할 때까지 차별주의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찾는다. 찾아야 한다. 모두 차별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신과 비슷한 형상을 지녔다고 안전한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면에서 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의해 도전받고 투쟁의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신이 우리 인간은 어떤 질서를 찾을 것인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서로가 협력해서 좀더 평화롭고 안전한 생활을 질서로 삼을 것인가? 답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신이 차별주의자라고 해도 우리는 평화로운 질서를 추구해야 하는데, 과연 신은 차별주의자인가? 아니라고 모두들 답하지 않을까? 신이 차별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 인간들이 서로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투쟁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소설은 결국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신이라면 차이가 있을까?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차별로 가는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함께 어울리며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을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읾을 입에 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본인 자신이 신이기에 신을 소환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뿌려진 신의 파편이며 지상에 내려온 신,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88-89쪽)


자, 우리 모두 신이 되자. 세상에 차별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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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소설 -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당신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설 땀 시리즈
김혜진 외 지음, 김동현 외 엮음 / 창비교육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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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삶에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학교 교육에서는 노동에 대한 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지식을 채우는 교과과정으로 주로 짜여 있지 노동에 관해서는 가르치려고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노동에서 학생들은 격리되어 있다. 자신들 삶이 노동과 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노동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인권과 합쳐서 노동인권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다.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받은 12년의 중고교 교육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있었던가.


교과서를 익히고, 문제집을 풀면서 대부분의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노동 현장이 어떻고는 둘째치고, 학교에서 어떤 노동을 했지 생각해 보니, 노동이랍시고는 청소를 했던 것이 전부다. 기술 시간에 실습을 한다고 해도, 잠깐 동안 하는 활동으로 끝이어서,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익히지 못하고 보냈다.


그만큼 노동은 교육 현장에서 떨어져 있다. 그 점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소설 중에서 노동을 중심으로 표현한 소설 여덟 편을 골랐다.


다양한 노동 현장에 대한 소설을 읽고 노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지니라는 의도로 엮었다고 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다양한 노동들이 나온다.


김혜진 소설 '어비'는 많은 일 중에서 '개인 방송 - 일명 유튜버'를 다루고 있다. 과연 이 일이 노동이라는 개념에 어울릴까?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이 타당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


김세희 소설 '가만한 나날'도 이러한 사이버 공간의 노동을 다루고 있다. 의뢰를 받아 기업들의 제품을 자기가 쓰고 후기를 단 것인양 하는 가상 생활을 사이버 공간에 올리는 직업. 이것이 자칫 여론 조작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더 심하게는 댓글 조작 사건으로까지 나아감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두 소설과 비슷하게 인공지능에 관한 소설이 있다. 서유미가 쓴 '저건 사람도 아니다'라는 소설인데, 이 소설은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의 고단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 고단함을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서 분담하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여전히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잘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인간의 몸이 버텨낼 수 있을지... 그래서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우리들 일을 분담하는 것이 괜찮을지, 오히려 그런 노동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인간적인 삶이 아닐까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청년 실업 이야기가 빠지면 안 된다. 젊은 사람들이 평생 직장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는 노동을 하기 힘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모습을 김애란의 '기도'란 소설에서 만날 수 있다.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을 통해 감정 노동의 고됨을 보여주는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와 이주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을 표현한 김재영의 '코끼리', 그리고 자본의 힘에 완전히 종속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고은의 'p'.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의 모습과 권리를 보여준 장강명의 '알바생 자르기'까지 한편 한편이 여러 노동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 노동 현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의 다양한 노동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교과서에 갇힌 삶이 아니라 교과서를 넘어 사회를 만나게 하는 소설집. 이렇게 소설은 간접 경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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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1-02-23 0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로와 직업>이 노동에 관한 교육을 합니다. 근로계약서 라든가 노동 환경 그리고 직장인 예절 등을 가르쳐요. 창의적체험활동에 ‘노작 교육‘이라는 항목이 있기도 하고요 ^^

kinye91 2021-02-23 10:05   좋아요 2 | URL
아. 감사합니다. 학교에서도 노동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감은빛 2021-02-23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특성화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입니다. 제 주위에 강사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해마다 더 많은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시더라구요. 물론 20년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시정지 상태지만요.

kinye91 2021-02-23 13:09   좋아요 1 | URL
특성화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에서 노동 현실과 노동인권교육이 잘 이루어졌으면 해요. 그래도 예전보단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퇴근길엔 카프카를 -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
의외의사실 지음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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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의 문학작품이 나온다. 그렇다면 13명의 작가가 나오는 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다. 그 작품들을 읽고 그것을 만화로 다시 표현한 책이다.


작가만 언급하면 (작품은 단 한편이기도 하고, 여러 편이 함께 소개되기도 하니까. 또 작품들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에 있는 책들이라고 하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을 수도 있으니까) 체호프, 버지니아 울프,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피츠제럴드, 보르헤스, 이디스 워튼, 무라카미 하루키, 카뮈, 소포클레스, 이탈로 칼비노, 카프카, 가즈오 이시구로다. 


'일상이 여행이 되는 패스포트툰'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는데,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여행이다. 우리들 삶을 찾아가는 여행. 그렇지만 우리가 여행이라고 하면 단단히 마음 먹고, 준비하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일을 흔히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런 통념을 뒤집는다. 바로 일상이 여행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방법이 무엇일까? 책을 읽는 것이다. 언제? 퇴근길에... 아니 출근길에 읽어도 좋다. 점심시간에 읽어도 좋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읽으면 그것이 바로 여행이 된다. 일상이 여행이 된다.


하지만 긴 문학 작품을 일상 생활을 하면서 읽기는 힘들다. 토막내어 읽은 작품들은 읽을 때마다 앞 줄거리를 생각해야 하거나, 등장인물 이름을 잊어버려 다시 앞으로 가서 읽어야 하는 무한 반복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일상이 여행이 되지 않고, 오히려 여행을 포기하고 일상에 주저앉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문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을 내기가 너무도 힘든데... 그렇다고 문학 작품을 읽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휴가기간이라든지, 주말을 이용해서 문학 작품을 읽을 생각만 있다면, 이 책은 그렇게 문학 작품을 읽을 동기를 마련하는데 적격이다. 문학 작품으로 가는 여권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바로 '패스포트(passport) 툰(cartoon)'인 것이다.


13편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만화로 정리해냈다.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인물에 대한 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읽은 내용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에 비추어 그 작품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만화란 그림과 글이 적절히 어우러지는 장르 아니던가. 그러니 많지 않은 글에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 곁들어져 문학 작품에 대한 또다른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한 작품씩 퇴근길, 출근길, 점심시간에 읽을 수 있다. 분량이 잠시만 시간을 내도 충분히 읽고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리 작품을 읽었다면 더 좋다. 자신이 읽기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지 않았어도 좋다. 왜냐면 이 책을 읽다보면 그 작품을 읽고 싶어질 테니까. 제목에 '카프카'를 인용하고 있지만, 카프카 하면 왠지 신비주의를 연상시키고,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는 작가 아니던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변신'만 해도 그렇고, 그가 쓴 '성'이란 작품을 봐도 도대체 미로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카프카뿐만이 아니라 많은 작가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삶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삶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너무도 모르기에 문학 작품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본다. 그런 엿봄 여행을 통해 내 삶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래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바로 여행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게로 향하는 여행.


그 여행의 티켓이 바로 문학 작품이기도 하고. 문학 작품의 내용을 정리하고, 문학 작품에 나온 글들을 인용하고,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하는 3단계 구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도 만화라는 매체의 친숙성, 가독성에 기대어 문학 작품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고 있으니, 일상을 여행이 되게 하는 이 책, 한번 읽어보자. 


한번에 주욱 읽을 필요 없다. 말 그대로 잠시의 시간을 내어 하루에 한 편씩 읽어도 좋다. 그러면 최소한 13일간 여행을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작품들을 읽는다면 더 긴긴 시간을,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장소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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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고백 김동식 소설집 4
김동식 지음 / 요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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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소설집 두 권째 읽다.


읽으면서 이 작가의 상상력이 그냥 공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 소설집의 첫번째 소설인 '인간 평점의 세상'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서열 사회를 사는지 알게 된다. 이놈의 서열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세상이라면, 참 두려운 세상이다. 


수능 점수 하나로 자신의 위치가 매겨지는 이 나라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지식을 추구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험을 잘 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의미다. 그러니 지혜와는 상관없는, 오로지 서열을 위한 공부만이 있을 뿐이다.


악마에게도 평점을 매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악마의 복수는? 소설의 결말을 보면 그 다음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지만, 상상하면 끔직하다. 아마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다. 그 뒷부분을 상상해서 채워가면서 평점 사회, 서열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생각하면 좋겠다. 


평점이나 서열이 능력주의와 연관될 때 불평등이 평생 족쇄로 사람들을 옥죄게 되면 그 사회는 행복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김동식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외계인이 아주 단순한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만 준다는 발상. 그런데 근로조건이 너무 좋아 외계인이 제시한 일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상상. '톡 쏘는 맛'이란 소설은 노동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지만, 외계인이 최저임금을 준다는 발상을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연결지으면, 기본소득이 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은 상상력으로 외계인을 불러냈지만, 우리는 그 외계인에게서 실현 불가능한 공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 또는 기본배당이라는 우리 삶이 최저선 이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장장치를 보게 된다.


김동식 소설집 첫권에서도 그랬지만 기발한 상상력이다. 그런데 단지 기발한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자꾸 현실을 소환한다.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경쟁, 경쟁,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모습, 내 삶만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살아가는 태도 등등...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전혀 다른 세계가 소설 속에 펼쳐지는데도 이상하게 자꾸 우리 사회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이 된 소설 '양심 고백'은 우리가 써 나갈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양심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더 필요한 양심 고백은 무엇일까?


그렇게 양심 고백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해가지 않을까? 자본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논리, 한정된 지구, 우주의 논리로 우리 삶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짧은 소설들로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집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깊이 있게 생각할 수도 있는 소설들이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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