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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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유명한 소설. 그래서 더욱 읽지 않았던 소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명성 때문에 읽기가 망설여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니게 한 소설.

 

남미문학을 대표한다는 소설인데, 지금까지도 언급이 되는 이유는 이 작품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을 확립한 사람이라고 이 소설의 작가 마르케스를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이 소설은 현실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우리 삶이 상당히 현실적인 것 같지만 우리도 모르는 우연 또는 강렬하게 우리를 이끄는 어떤 예감 같은 것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예감들, 우연들이 소설에 나타났다고 해서 리얼리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겠지. 가령 이 소설의 1권에서 (민음사 판은 1권과 2권으로 책이 나뉘어 있다. 상품 검색을 하면 1,2권이 함께 나와 있지 않으니, 이렇게 따로 쓸 수밖에 없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경우는 자신의 운명을 또는 다른 사람의 운명을 미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도 어떤 강한 예감이 온몸을 떨 때가 있고, 이상하게도 그 예감은 맞은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남미라는 지역의 현실에 기반을 두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이 현실이 꼭 사실일 필요는 없다.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밝혀지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서 사실로 존재하는 일들은 있으니까.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로부터 시작하는 이 소설. 1권에서는 주로 그들의 아들인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를 거쳐 그들의 손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세한 내용은 2권에서 연결될테고.

 

한 집안의 역사에서 남미의 역사를 읽고, 한 집안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찾아내야 하는 소설 읽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 소설은 남미판 '토지'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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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진짜 친구
설흔 지음 / 단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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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시인의 진짜 친구"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연암 박지원이 쓴 "우상전"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우상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상전은 한문소설이다. 박지원의 작품이 한문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우리는 한글 번역본으로 읽을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이 좀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세 명이다. 이언진, 성대중, 이덕무... 그리고 이 세 명의 중심에 있는 인물 박지원.

 

작품은 고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형식은 고전이되 내용은 현대적이다. 그러니 박지원의 글쓰기법에 해당하는 '법고 창신'이 이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해설자가 작품을 사람들 앞에 펼쳐놓고 설명해주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서술자는 전지전능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들의 역할이 미미한 것은 아니다. 세 명의 인물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도 핵심은 이언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박지원이 쓴 "우상전"의 주인공인 이언진이다. 그는 역관이지만 돈보다는 시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된 "시인의 진짜 친구"는 이언진의 진짜 친구가 누구인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물론 이 세명이 모두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이언진을 유일하게 만난 인물은 성대중이다. 그는 서얼 출신이면서도 신중한 행동으로 벼슬살이를 하는, 시를 잘 쓰고는 싶으나 보통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이언진의 시적 재능을 높이 사고, 그의 시를 보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가 시인의 진짜 친구인가?

 

이덕무는 우리가 잘아는 실학자다. 책만 읽는 바보 (간서치)로 더 잘 알려진 사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 그는 이언진을 만나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시적 재능을 알아본다. 시적 재능을 알아보지만 만나지는 못한 사람, 그가 시인의 진짜 친구인가?

 

여기에 박지원은 이들 셋의 중심에 있다. 사건은 모두 박지원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언진은 박지원에게 자신의 시적 재능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러나 박지원의 대답은 냉혹했다. 이게 끝이다. 이 냉혹한 평가 속에는 덕과 재주의 문제가 있다. 바로 '우상전'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언진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고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는 끝내 박지원을 만나지 못했다. 박지원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아니, 박지원의 인정을 받았지만, 인정 받았다는 표식을 받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더 발휘해서 책으로 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의 죽음에 박지원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시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시를 잘 쓴다고, 적어도 박지원 만큼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 동등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렇다면 시인의 진짜 친구는 박지원일까?

 

답은 나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은 박지원의 "우상전"을 현대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상전"에서 더 벗어날 수 없다.

 

시인의 진짜 친구는 누구일까? 아니, 어떤 사람이 시인의 진짜 친구일까에 대한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시인의 진짜 친구는 "지음(知音)"이라는 말처럼 그 사람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얘기는 거의 동등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함께 공명할 수 있다.

 

진짜 친구라는 말 때문에 우정을 다룬 책이구나 하고 단정지으면 안 될 책이다. 이 책은. 박지원의 '우상전'을 현대판으로 개작한 작품이라고 보면 더 좋으니, 이 책을 읽고 '우상전'을 읽어도 좋고 (참 짧다. 금방 읽는다), '우상전'을 읽고 이 책을 읽어도 좋다.

 

그리고 진짜 친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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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詩集
나태주 글.그림 / 푸른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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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입한 책. 가끔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을 기웃거린다. 내가 원하는 책이 나와 있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책이 나와 있기도 한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단순하다. 나태주의 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짧지만 마음에 콕 와 박히는 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146쪽)

 

3연 5행의 아주 짧막한 시지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와 더불어 많이 인용되는 시다. 무엇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는 시.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야기가 있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즉 시에 이야기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샀는데, 이야기는 나태주 시인이 그 시를 쓸 때 든 감정, 또는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고, 시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는 멀리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닌, 또 시인이라고 하는 전문가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시집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시들을 골라 엮었다. 물론 어린들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어른들이 읽으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들을 엮었다고 하면 된다.

 

어떻게 이야기가 있는 시집에 만들어졌는지... 한 편의 시를 살펴보면 된다.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왔는데, 알아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찍은 사진인가? 이 사진에서 어떤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가?

 

시인은 이 사진을 보고 시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시의 내용에 맞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보면 되지만, 이 다리 사진에서 무엇을 찾아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선 시인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한 때 거인으로 다가왔던 아버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자그마해 지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사진의 밑에 있는 다리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꾸만 커져가는 아들을 사진의 위에 있는 다리로 표현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다리'로 떠올린 다음에는 그를 시로 표현한다. 이 과정을 그의 글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엄한 아버지에 인자한 어머니'란 말이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힘 있고 집안 식구들에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버지들의 어깨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아버지들이 점점 우울해져 간다. 더구나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아버지들은 더욱 마음이 좁아지고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런 오늘의 아버지를 사람이나 차들이 건너는 '다리'로 표현해 보았다.  101쪽

 

 

 

다리

 

 

살기가 좋아지면서

길이 새로 뚫리고

다리가 새로 놓여

헌칠하게 뻗은 새 길과

새 다리 옆에

쪼그맣게 쭈그리고 앉아

쓸모없게 되어 버린

옛날의 다리

 

 

아이가 어렸을 때는 곧잘

호령도 하고 큰소리도 쳤는데

아이가 커 가면서부터

말수를 줄여 간 아버지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 옆에

쪼그맣게 마주 앉아

할 말을 잃어버린

오늘의 아버지.

 

나태주. 이야기가 있는 시집. 푸른길. 2013년 1판 6쇄. 100쪽. 

 

이렇게 시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시로 표현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다 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풀꽃'처럼 '너'가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그렇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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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 -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소설치료사들의 북테라피
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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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랭 드 보통은 우리나라에 꽤 알려진 작가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도 있고. 그가 설립한(?) 인생학교에서는 인생에 관한 여러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 인생학교에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소설을 가지고 그 일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일명 소설치료사 정도라고 하면 좋을 그런 사람들은 상황에 맞는 소설을 추천해주고, 그 소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시치료, 소설치료, 수필치료, 이야기치료, 문학치료, 독서치료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이런 작업은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문학은 그 자체로 완성품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들어오면 독자의 마음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독자의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마음과 몸이 떨어져 있다는 이원론이 요즘은 극복되는 추세이니, 마음을 통해서 몸을 바꿀 수도 있고, 또 몸을 통해서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소설을 읽는 습관을 통해 몸을 바꾸고, 그 바뀐 몸으로 마음이 바뀌는 치료를 행할 수도 있고,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바뀌어 몸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 결국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이 지닌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이 모든 상황에 딱 맞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몸을 비비꼬거나, 또는 얼마 읽지 않아 책장을 덮거나 또는 주인공에 완전히 동화돼 그 행동을 따라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니 (일명 베르테르 효과를 생각해 보라. 이건 치유가아니라 오히려 질병을 유발한다.) 제대로 읽지 않으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책 속에만 빠졌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책을 지나치게 많이 수집했을 때 할 수 있는 방법 등 다양한 책에 관한 여러 행동들을 수정할 수 있는 방법들도 제시해주고 있으니, 여러모로 이 책은 쓸모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쓸모는 각종 질환, 또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작품을 읽으면 좋을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책에 대한 내용 설명도 조금씩 곁들이고 있어서 자신에게 필요한 책인지 아닌지 읽어보기 전에 판단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 나온 책이라 알파벳 A부터 Z까지에 해당하는 각종 문제에 대해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방대함에 놀랄 뿐이다.

 

방대함뿐만이 아니라 설명을 잘해서 그런지 이 책에 나온 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도 한다. 어떤 형태로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언가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니... 꼭 증상이 심각해서, 또는 증상을 치료할 목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 나온 여러 소설을 골라 읽으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이 책의 169쪽에 나온 '독재자처럼 굴 때'를 보면... 하.. 기가 막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재자는 저녁이면 세상을 지배하는 지침서를 들고 앉아있지, 결코 그것 대신 훌륭한 소설을 집어 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개탄할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소설을 제대로 처방받아 치료하면 누구든 인권 문제를 상당히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169쪽)

... 크든 작든 폭군들이여. 이 책들을 읽어라.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그 결과 가까운 이들에게 편집증과 불신을 주입해 그들의 심장을 공포로 물들이기로 작정한 것을 참회하라. 당신이 전쟁으로 유린된 나라를 다스리든^(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진짜 독재자들이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국제적인 대기업을 경영하든, 평범한 5인 가족의 가장이든 사람의 도리를 알고 서둘러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리고 그 자리에 민주주의를 세우라. (170-171쪽)

 

상활파악의 명확성, 그럼에도 그런 사람에게 맞는 책을 추천하는 자세. 이것을 읽고 독재자가 정말 이 책들을 읽을까? (이 책에서는 이스마일 카다레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와 패트릭 맥기니스의 "마지막 100일"을 추천하고 있다)

 

이들은 독재자가 정말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아마 독재자는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 책을 소개할까? 잠재적인 독재자, 자신이 독재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독재자, 또는 독재자에게 눌려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사람들, 독재자를 물리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이 필요할 때'이고, 소설의 유용성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사례에 맞는 책들이 잘 소개되어 있어, 가까운 곳에 두고 자신의 상태에 맞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니 곁에 두고 있기를 바란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책이 우리나라 말로 모두 나와 있지는 않다는 점, 이와 비슷한 내용의 우리나라 소설을 읽었다면 그 소설도 대체해도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좋겠다.

 

덧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한 가지. 그 많은 소설이 고전소설부터 현대소설까지 나오는데... 일본 작가의 작품도 중국 작가의 작품도 나오는데...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나라 문학은 아직도 세계문학의 변방에 있나 보다. 우리나라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됐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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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세운 집 -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이어령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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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목 잘 붙였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시를 가지고,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표현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이런 표현을 쓰기는 하겠지만, 시를 해설하는 책에서 이런 제목을 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에 한발짝 다가서게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책을 펴내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6쪽)

 

그렇다. 시를 집에 비유할 수 있다. 온갖 재료들이 합쳐져 집이 되듯이 시 역시 온갖 말들이 합쳐져 시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를 감상해야 할까? 바로 언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삶이나, 사회적인 상황을 먼저 고려하기 보다는 시에 쓰인 언어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것을 기호학으로 시를 읽어낸다고 하는데...

 

그런 시에 대한 이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시를 파악하는데 언어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언어를 통해서 조직해 낸 것이 시니까 말이다.

 

집에 초가집, 기와집, 벽돌집, 콘크리트집, 아파트, 연립주택, 목조주택, 황토집, 통나무집, 돌집 등 재료나 형태,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질 수 있듯이, 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어느 집이 특별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집에 대한 관점이 다르고, 좋아하는 집이 다르니까, 시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이름이 붙을 수 있고, 어떤 시가 좋은 시라고 꼭 전법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집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있듯이(불량재료를 쓴 집은 곧 무너지게 된다. 안 좋은 집이다. 좋은 재료를, 적절한 곳에 써야 좋은 집이다) 시도 좋은 시, 안 좋은 시를 구분할 수는 있다. 이것을 그 시를 좋아하느냐 마느냐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 역시 언어로 세운 집이기에, 기본적으로 언어가 적절한 곳에 자리잡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들이 좋은 시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를 중심으로 시를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감상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어떻게 언어에 집중해야 하는가, 언어에 집중하면 시의 맛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를 32편의 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시를 고등학교 때까지 시험을 위해서 배우고, 그래서 언어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어떤 형태로 출제가 되는지를 중심에 놓고 시를 읽었던 습관을 이 책을 통해서 버리게 된다. 시는 결코 시험으로 평가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시에 대한 해석이 이 책에서 해석하는 내용과 다른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시에 쓰인 언어 자체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리가 동요로도 알고 있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부터 시작한다. 너무도 단순한 달랑 4행짜리 시를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의미가 언어들의 조합을 통해 들어 있음을, 그래서 시라는 집의 안쪽, 우리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시라는 집의 내밀한 부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시를 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다른 시들을 읽어가게 되는데, 맨 마지막 시가 박남수의 '새'다. 제목으로는 '시인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고.

 

누구나 아는 시로 시작해서 시에 쓰인 언어를 통해 시인은 결코 사라질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글로 끝맺고 있다. 시라는 집의 안쪽을, 생활을 본 사람은 그런 집을 지은 시인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집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한 시인은 사라질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아니,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냐 없냐가 중요하지 않다. 시인은 수요자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집을 지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고, 언제라도 누군가 자신의 집을 보아주면 좋다는 생각으로.

 

학창시절 만났던 시들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그 시들을 새롭게 보게 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이다.

 

참고로 이 책에 나온 시들을 열거해 본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의 시들을 이미 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춘설, 광야, 남으로 창을 내겠소, 모란이 피기까지는, 깃발, 나그네, 향수, 사슴, 저녁에, 청포도, 군말, 화사(花蛇), 해, 오감도, 그 날이 오면, 외인촌, 승무, 가을의 기도, 추일서정, 서시, 자화상, 국화 옆에서, 바다와 나비, The Last Ttrain, 파초, 나의 침실로, 웃은 죄, 귀고(歸故), 풀, 새 

 

총 32편의 시다. 이미 알고 있지 않다면 한 번 찾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시를 찾아 읽는 민족은 문화민족일테니.

 

덧글

 

시에 관한 책에서 조금 아쉬운 점... 특히 제목이 언어로 세운 집인데... 언어가 잘못 사용되면 적절하지 않은 곳에 들어간 건축재료처럼 눈에 거슬리게 된다. 난 두 군데가 거슬렸는데...

 

하나는 청포도 시를 인용한 부분.

109쪽. 청포도 시에서 5연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

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이건 명백한 오식이다.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라고 되어야 한다. 이 책의 주석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255쪽. 유치환의 시 귀고(귀고)에서 11행 행이불언(行而不信)이라고 되어 있는데.. 한자어가 잘못 표기되었다. 행이불언(行而不言)이어야 한다. 역시 주석에는 바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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