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부터 -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스카 와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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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를 읽으면 참 행복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

 

세상이 악보다는 선이 더 많다는 것, 받는 것보다 주는 행위에서도 행복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동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으면서는 삶에 대해서, 삶이 자신의 몸에 어떻게 새겨지는지를 생각했다. 내 몸은 내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미주의니, 탐미주의니 하는 것들을 떠나 그냥 그렇게 그의 작품을 읽으며 삶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동성애자. 그게 무엇이 문제인가? 서양의 고대에서는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사랑의 한 종류 아니었던가.

 

기독교가 지배 윤리로 작동하면서 동성애는 배격해야 할 사랑이 되었다. 그래서 동성애는 죄악이고, 질병이고, 어떻게든 사회에서 격리하든지, 치료하든지, 처벌해야만 하는 악이 되었다. 감정이 죄가 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

 

하여 오스카 와일드는 작가로서 정점에 있을 때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패소하면서 감옥에 가게 된다. 그는 정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이 책 표지에 적혀 있는 '감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라는 말처럼 사랑을 했다고, 그것을 밝혔다고.

 

그래서 그는 감옥이라는 심연에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심연은 그에게 그냥 바닥이 아니다. 삶을 더 깊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자신이 한 사랑을 되돌아 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사랑했던 사람을 더 깊게 볼 수 있게 된 시간과 공간. 바로 그 장소.

 

그 장소, 심연으로부터 그는 편지를 쓴다. 그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 내용 중에서 몇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 역시 환상을 가지고 있었지. 나는 내 삶이 한 편의 눈부신 희극이 될 거라고 믿었어. 당신은 그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우아한 인물 중의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알고 보니 내 삶은 한 편의 역겁고 혐오스러운 비극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 대재앙의 사악한 - 한 가지 목적만의 추구와 편협한 의지력의 발현에서 - 동인은 바로 당신이었지.  (88쪽)

 

사람은 상상력을 먹고 자라지. 우리는 상상력에 의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현명해지고,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나아지고, 지금의 우리보더 더 고귀해질 수 있어. 상상력에 의해 우리는 삶을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오직 상상력에 의해서만 실제적이고 이상적인 관계 속에서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고 말이지. 오직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게 상상된 것만이 사랑을 살찌울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증오는 무엇이든 먹고 살을 찌울 수 있지. (90쪽)

 

증오는 우리를 눈멀게 하지.  ... 사랑은 아주 멀리 떨어진 별에 쓰인 것도 읽을 수 있게 하지만, 증오는 당신을 철저히 눈멀게 해 담장으로 둘러싸인 옹색한 정원, 방탕함으로 꽃이 시들어버린 저속한 욕망의 정원 너머는 볼 수 없게 만들지. 당신의 끔찍한 상상력 부족 - 당신 성격 중 실제로 치명적인 단 하나의 결점 - 은 전적으로 당신 안에서 살았던 증오의 결과물이야. (92쪽)

 

예술가는 오직 표현을 통해서만 삶을 상상할 수 있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겐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그리스도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 그는 우리를 경외감으로 가득 채우는 광범위하고도 경이로운 상상력으로, 목소리를 잃어버려 표현을 하지 못하는 고통의 세곌르 자신의 왕국으로 삼아 스스로 그곳의 영원한 대변자가 되었지. ... 아름다움의 개념을 슬픔과 고통을 통해 실현하는 사람의 예술적 기질과 함께, 어떤 생각이든 하나의 이미지로 구현되지 않는 한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느끼고는 자신을 고통의 인간의 이미지로 구현한 거야. 그는 그런 식으로 예술을 매료하고 지배했어. (170-171쪽)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이지. 그리고 난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 (188쪽)

 

사실, 나의 몰락은 삶에 개인주의를 지나치게 요구해서가 아니라 너무 적게 요구한 데서 비롯된 거야. 내 삶에서 유일하게 수치스럽고 용서받을 수 없고 경멸할 만한 행위는 당신 아버지로부터 나를 지켜달라며 마지못해 사회에 도움과 보호를 요청했다는 거야. (194쪽)

 

속물은 사회의 무겁고 거추장스럽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힘들을 지지하고 돕는 사람, 그리고 인간이나 어떤 운동 속에서 역동적인 힘을 만날 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지. (196쪽)

 

그는 이렇게 감옥에서 더 깊어졌다. 그런데 그 깊어짐이 작품활동으로 나왔어야 하는데, 더 이상의 작품활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언급하는 것은 감옥에 가기 전 작품들인 것이다.

 

삶이 예술을 이긴 경우라 해야 하나? 이미 감옥에 다녀온 와일드로서는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사회 속 개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늘 동성애자라는 딱지가 따라다녔을 테니, 개인주의자로서 사회를 무시하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든 딱지였을 것이다.

 

주홍글씨... 이것을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오스카 와일드처럼 정점까지 올라갔던 사람에게는. 하지만 그는 그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편지글을 남겨주었다. 편지글을 통해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또 그가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어 그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 뒷부분에는 앙드레 지드의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지드가 만난 와일드. 이 글들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와일드가 이런 일을 겪은 지 100년도 더 지났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와일드가 겪은 일에서 자유로운가?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와일드가 개인주의적인 일을 사회에 호소했다는 실수를 자책하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개인주의를 사회적 압력으로 굴복시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더더욱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 여전히 부족한 것이 개인주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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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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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많이 들어본 작가다. 나혜석. 나는 그를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은 화가로서의 나혜석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나혜석이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온전한 자아를 글을 통해 내보낸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림으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지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에게는 더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그들은 글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림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이 집중하는 것은 새롭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사생활이다. 흠집을 내기 위해, 그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조그마한 잘못을 트집잡기 시작한다.

 

본말전도가 시작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또 그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들이 한 말이 아무리 옳아도 시대와 불화하는 생활이 약점으로 잡혀 처절하게 무너져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권리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존재들을 무너뜨린다.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선동으로. 하여 그들 주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이미 등을 돌리게 만든다. 나혜석도 그런 반격을 받게 된다.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 나혜석은 사생활로 인해 당시 주류 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그가 주장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나혜석은 그림이나 글로 후대 사람에게 알려지기 보다는, 남성 권력들의 이야깃거리로 남겨지게 된다.

 

프랑스 유람, 거기서 최린을 만나 불륜에 빠져 결국 이혼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우리나라 여자 화가. 이정도로. 자, 여기에는 나혜석이 무엇을 주장했고, 어떤 삶을 살고자 했는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흥미거리, 또는 시대를 앞서 연애를 해서 불운한 삶을 살아간 사람 정도로만 남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혜석이 왜 그렇게 살았는지, 그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를 그의 글을 통해서 알아야 한다. 나혜석이 쓴 글을 읽고,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달랑 몇 문장으로만 기억하는 나혜석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이혼한 경과를 당당하게 글로 써서 발표할 수 있던 사람이 그 당시에 얼마나 되었겠는가. 나혜석은 자신이 어떻게 결혼을 했고, 또 이혼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글로 써서 세상에 공표했다. 이 책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이다. '이혼 고백장'이란 글이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해 뒷담화로서의 나혜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나혜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글 전에 소설도 발표했다. '경희'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경희는 나혜석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교육,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이 소설에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소설은 교육을 받은 여성이 집안일도 잘하는 것으로 표현해,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은 공부만 하면 되지만, 여자들은 공부에다 집안일도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했던 시절이었음을 소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혜석은 점점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글로 써 발표한다. '모母 된 감상기'에서 나혜석은 임신과 출산이 여성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표현한 사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산 사람.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갔기에 더욱 힘든 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혜석은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는 이들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나혜석은 '글 쓰는 여자'가 되었을 거고, 그런 글들이 남아 씨앗이 되어 발아되어 싹을 터서 열매를 맺기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경희'에 나오는 장면으로 글을 맺는다. 경희가 자각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나혜석 자신이 자신에게 한 말이리라.

 

  경희도 사람이다. 그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 또 조선 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 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

  오냐, 사람이다.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더러 찾으라 하리! 산정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것도 사람이 할 것이다. 오냐, 이 팔은 무엇하자는 팔이고 이 다리는 어디 쓰자는 다리냐?

  경희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두 다리로 껑충 뛰었다.

 (소설 '경희'의 끝부분. 이 책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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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라고 당당히 말해요 -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외침 라임 틴틴 스쿨 15
다니엘레 아리스타르코 지음, 니콜로 펠리존 그림, 이현경 옮김 / 라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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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사회를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런 사람들을 허균의 말을 인용하면 호민이다. 앞서 가는 이. 이들이 앞서 갔기에 후대 사람들이 조금더 좋아진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호민들. 나중에 역사 책이나 전기에서 보면 그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 역시 그렇게 행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냥 고민없이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그에 따르는 불이익이 엄청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행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짧은 분량으로 그 사람들이 한 일을 정리해주고 있어서 청소년들이 읽기에 좋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일들을 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어서 좋다. 또한 그 행동을 한 시기도 나와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 인간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면 이들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

 

체사레 베카리아(사형 제도에 반대한 사람), 에멀린 팽크허스트(여성에게 참정권을 위해 노력한 사람), 나짐 히크메트(글 쓸 자유를 위해 감옥에서도 시를 외부로 내보낸 터키 사람), 지몬 비젠탈(나치 범죄자들을 추적한 사람), 프랑카 비올라(성폭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몸 권리를 지킨 사람), 마바쉬 사베트(종교의 자유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사람) 등등.

 

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이다. 행동해야 한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고 교육은 지식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적어도 배우는 공간에서 부당함을 느끼면 그것부터 고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 청소년들에게 이런 책을 읽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생각하는 인간, 주체로 설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 역사를 통해 호민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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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 지구를 살리는 어느 가족 이야기
그레타 툰베리 외 지음, 고영아 옮김 / 책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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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그레타 툰베리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레타 툰베리가 쓴 책이 아니라 그레타의 엄마가 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인 말레나 에른만이 주요 화자로 나오고, 간간이 그레타의 말이나 편지가 실려 있다. 여기에 동생인 베아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해가는 남편 스반테 툰베리 이야기도 나온다.

 

그레타 툰베리가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은 있지만, 어느 정도인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레타의 상황을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

 

스웨덴은 복지국가다. 선진국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델로 생각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스웨덴도 한계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지국가라고 하는 스웨덴이 탄소 배출량이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많다고 한다.(143쪽)

 

이 책을 읽다보면 단지 탄소배출량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문제가 있고, 또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우리나라보다야 편하겠지만 이곳도 역시 만만치 않은 곳임을 알게 된다.

 

물론 이는 그레타의 주장이다. 스웨덴 정부는 이것보다 탄소배출량이 적다고 발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정부 발표에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절반 이상이 통계에는 아예 포함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국제선을 이용하는 비행기 여행은 통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하는 화물선 운행도 통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국내의 적절한 임금을 피하기 위해서 수많은 제품의 생산 공장을 임금이 싼 나라에 세웠다. 그리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꽤 많이 감축되었다. (265쪽)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스웨덴도 이 정도인데 아예 대놓고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한 트럼프의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 친환경이라는 말을 하지만 성장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에 대해서 이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나가는 듯이 언급하고 있을 뿐, 큰 비중을 두고 방송을 하거나 기사를 쓰는 언론이 별로 없다. 이 책에서 그레타가 지적한 스웨덴 언론들처럼.

 

그렇게 지내다 보면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결국은 우리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파리기후협정에서 채택한 섭씨 2도 목표를 달성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의 연쇄반응을 막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 ... UN의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지금 이 순간 남은 시간은 정확히 18년 157일 13시간 33분 16초다 (188-189쪽)

 

이 책이 2018년에 쓰였으니까 일년 정도가 더 지나간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과학기술의 힘을 믿는 사람이 많다. 그 과학기술의 힘으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왔음에도.

 

이렇게 이 책은 기후위기에 대응하자는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내용과 더불어 그레타 툰베리 가족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레타 동생인 베아타 역시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소리에 굉장히 민감해서 어떤 소리를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뒤에보면 '미소포니에'라는 증상이라고도 한다는데... 여전히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라고 한다.

 

그레타 역시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한다. 그래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레타의 엄마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들이 기후위기에 더 민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들은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네 가족이 모두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행기 안 타기다. 현대 교통수단의 총아인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몇 시간이면 갈 거리를 몇날 며칠에 걸쳐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비행기에서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열차에 비해 너무도 엄청나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으로 꼭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비행기 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을, 또 이들은 자연스레 채식으로 가게 되고 페미니즘이나 인권운동에도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통해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왜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를 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레타 툰베리 자신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레타의 민감성은 지구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민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단지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까기 나아가야 하는데... 내 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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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멀리 뛰기 - 이병률 대화집
이병률.윤동희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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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알지 못한다.

단지 그의 시집 두 권을 읽었을 뿐.

그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마음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느낌만 지니고 있을 뿐.

두 권의 시집을 읽고 다시 그 시집을 펼쳐 보아도 비슷한 시에서 눈길이 멈춘다.

마음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나 보다.

아직은 이병률 시집을 다시 펼칠 때가 아닌가 보다.

대화집을 읽었다.

이병률이란 시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울림소리들이 반복되는, 무언가 그 이름을 부르면 울림이 느껴진다.

어던 종교에서 '옴'이라는 말만 외워도 좋다는 말을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옴, 옴, 옴' 하다보면 마음에 어떤 울림이 생긴다.

마음에 파장이 생긴다.

그 파장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이병률. 마찬가지다. 울림소리. 소리가 몸을 울리고 마음을 울린다.

시인 이름이 시란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이병률 시인하면 알지도 못하면서 축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시에서 받았던 인상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이름에서 연상이 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축축하다는 표현이 무겁다면 촉촉하다는 느낌.

젖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대화집을 읽으니 이병률 시인이 술을 좋아한다고 한다.

허, 역시 젖어 있군. 하는 생각을 한다.

술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좋아한다.

젖어 있다. 사람 몸의 70% 이상이 물이라고 하니, 젖어 있는 것이 맞다.

젖어 있음, 물이다. 그런데 그의 시집 제목은 '바람의 사생활'이다. 바람, 불. 물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하지만 대칭이다. 물과 불은 함께 존재해야 한다.

그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 이 대화집에 자주 나온다. 세계 곳곳을, 생각나면 훌쩍 떠났다고 한다.

낯선 곳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 여행의 묘미다.

그런데 대화집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통해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런 자신을 남에게 다시 드러내 보인다.

대화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또 대화 상대라는 사진사를 통해 자신을 내보이게 된다.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 사진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사진사가 포착하고 남기고 싶은 것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듯이, 대화자도 대화를 통해 남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을 끌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최소한 대화자는 시인 이병률이 함께 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읽어가면 된다. 이 책은.

그러면 자연스레 젖어든다.

이병률이란 시인에 대해서, 그가 하는 이야기에.

'안으로 멀리 뛰기'다. 밖으로가 아니다.

안으로 멀리 뛰기가 얼마나 힘든가?

특히 요즘처럼 온통 밖으로만 뛰는 세상에서는 더 힘들다.

온갖 매체들이 밖으로 뛰기를 강요하고 있다.

강요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밖으로만 뛴다.

여기에 반해 이병률은 안으로 뛰어야 한다고, 그것도 멀리 뛰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필요한 시절이다.

적어도 밖으로 뛰는 만큼 안으로도 뛰어야 한다.

인생은 대칭 아니던가.

안으로 뛸 수 있는 사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사람.

이 대화집에 나온 말처럼 서랍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안으로 뛰어야 자신에게 서랍을 만들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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