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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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데, 사실 말로만 심각하다 심각하다 하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고, 정부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읻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나 과학재단들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쪽)

 

그러니 기후 위기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카산드라의 예언밖에는 되지 못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해줘도 누구도 믿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는 그런 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책의 또 다른 쪽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또는 식물을 많이 심으면 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387쪽)

 

공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느라 힘을 그쪽으로 써버리는 식물들이 영양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식물은 땅과 하늘, 양쪽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만 지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활의 전환 없이 기후 위기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런 호프라는 과학자가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식물과학자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식물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113쪽)

 

바로 다르게 보기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래야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거리두기. 어쩌면 식물을 인간의 일부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다르다. 모든 대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다 다른 대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무기물이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르게 보기는 곧 함께 살기다. 함께 살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런 호프 역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학위와, 외모, 그리고 말투까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어디 성차별뿐이랴. 모든 차별이 바로 이렇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자가 과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 과학계의 차별뿐만 아니라 연구 기금 부족까지 이겨내야 한다. 자런 호프는 이 과정을 이겨내고 식물에 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접어든다.

 

그 지난했던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척 흥미롭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이를 대하는 자런 호프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367쪽)

 

이 말을 과학으로 바꾸어보면 자신의 성과(결론-주장)를 놓아줄 수 있는 과학자,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가 좋은 과학자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식을 놓아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과학자 역시 좋은 과학자일 수 없다.

 

자런 호프는 이런 것을 식물, 나무의 입장에서 깨닫게 된다.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려는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서전에 그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게서 배워가는 과정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또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닥터 두리틀'이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어떤 영장류 학자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고. 과학을 어렵게만 여기고, 재미없게만 여기는 사람, 이런 책들을 읽으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과학을 무슨 공식만으로 교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선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행동.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이 책은 적절하다. 단지 과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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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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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는데, 사실 말로만 심각하다 심각하다 하지,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직접 눈 앞에 닥친 일이 아니고, 정부 관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며, 과학자들에게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읻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투자할 기업은 없다.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정부나 과학재단들도 가시적인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일에는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쪽)

 

그러니 기후 위기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카산드라의 예언밖에는 되지 못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정확히 말해줘도 누구도 믿지 않고, 또 행동하지 않는 그런 일.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이 책의 또 다른 쪽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 진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를, 또는 식물을 많이 심으면 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예측되는 향후 수백 년에 걸친 온실가스 수준의 환경을 만들고 거기서 고구마를 기르는 실험을 해오고 있었다. 이 온실가스 예상치는 우리가 탄소 배출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계속 현재처럼 산다면 생길 것이라고 예측되는 수치다. 고구마들은 이산화탄소 양이 늘면서 더 크게 자랐다.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고구마들에는 우리가 아무리 비료를 줘도 영양소가 더 적게 들어 있고, 단백질 함유율도 낮았다. (387쪽)

 

공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느라 힘을 그쪽으로 써버리는 식물들이 영양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식물은 땅과 하늘, 양쪽에 모두 걸쳐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만 지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활의 전환 없이 기후 위기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자런 호프라는 과학자가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고, 식물과학자의 이야기라 해도 좋다. 그것은 바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간이 식물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눈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인간의 삶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고방식이 절실했다. 어쩌면 세상을 식물들의 관점에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식물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식물들의 세계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환경 과학을 상상해보려고 노력했다. (113쪽)

 

바로 다르게 보기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래야 그 대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거리두기. 어쩌면 식물을 인간의 일부로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대상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은 다르다. 모든 대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다 다른 대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또는 무기물이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르게 보기는 곧 함께 살기다. 함께 살기에 실패하는 경우는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런 호프 역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과학자 집단은 자신들의 모습을 설정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학위와, 외모, 그리고 말투까지...

 

전 세계 공공기관 및 사립 기구들에서는 과학계 내 성차별의 역학에 대해 연구하고 그것이 복잡하고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결론지었다.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62쪽)

 

어디 성차별뿐이랴. 모든 차별이 바로 이렇다.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계에서도 이런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소수자가 과학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차별을 이겨내야 한다. 과학계의 차별뿐만 아니라 연구 기금 부족까지 이겨내야 한다. 자런 호프는 이 과정을 이겨내고 식물에 관해서 연구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접어든다.

 

그 지난했던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무척 흥미롭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녀야 할 자세를 아이를 대하는 자런 호프의 이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아이를 놓아주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367쪽)

 

이 말을 과학으로 바꾸어보면 자신의 성과(결론-주장)를 놓아줄 수 있는 과학자,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과학자가 좋은 과학자라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식을 놓아보내지 못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자신만의 것을 고집하는 과학자 역시 좋은 과학자일 수 없다.

 

자런 호프는 이런 것을 식물, 나무의 입장에서 깨닫게 된다. 새로운 시각, 그리고 식물들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해석하려는 모습에서 과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과학에 관한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자서전에 그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떻게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식물에게서 배워가는 과정도,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도, 또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인 구달은 '닥터 두리틀'이란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다. 어떤 영장류 학자는 제인 구달의 이야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다고 했고. 과학을 어렵게만 여기고, 재미없게만 여기는 사람, 이런 책들을 읽으면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과학을 무슨 공식만으로 교육할 수는 없다. 과학은 우선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행동.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에 이 책은 적절하다. 단지 과학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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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슬픈 열대
폴 고갱 지음, 박찬규 옮김 / 예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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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고흐다. 그리고 장소로는 타히티다. 또 그를 떠올리면 소설 '달과 6펜스'도 떠오른다. 읽은 것 같은데,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소설. 어쩌면 제목만 보고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해설만 읽고 넘어갔을 수도 있고. 아님, 어릴 때 읽었는데, 기억에서 사라졌는지도... (이 참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여간 고갱이라는 사람은 요즘 컴퓨터 검색 용어로 치면 연관 검색어에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 파리라는 대도시의 삶을 견디지 못해 타히티라는 원시성이 강한 곳으로 가,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사람.

 

고흐와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불화로 헤어졌지만, 고흐에 관한 그의 글을 읽어보니, 고흐를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가족과 헤어져 살았는데, 어찌보면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가족과도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 많다.

 

그렇게 헤어져 살고 있으면서도 가족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았던 고갱. 부인인 마테에게도 타히티에서 같이 살자고 말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홀로 타히티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고갱.

 

전시회에서 호평을 받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림은 잘 안 팔리고, 그래서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타히티에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하니... 고흐 역시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이 책에서 고갱이 쓴 편지글을 보니 자살 시도를 했지만 비소(?)를 너무 많이 먹은 바람에 다 토해서 살아났다는 것.(223쪽)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심장마비(이게 사인이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216쪽)로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고생은 현세에서의 삶은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가정 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못했을 것이고. 자식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견뎌내야 했으니...

 

하지만 그는 역작을 남겼다. 제목도 철학적인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그린 미완성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자기 작품을 스스로 평가한다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내가 전에 그린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고 앞으로도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나오기 어려우리라고 믿네.

  죽기 전에 내게 남은 모든 힘과 극한상황에서 나오는 고통스런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순수하고 티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네. 그래서 작품의 미숙함은 사라지고 삶이 솟아올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

  이 그림은 모델과 기교를 배제하고, 그림이 내세우는 규범들을 무시해버렸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터 이런 것들을 뛰어넘고 싶었네. (223쪽- 226쪽) 

 

이렇게 그는 우리에게 작품을 남겼다. 그가 살던 곳을 과연 슬픈 열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자신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남긴 곳인데... 슬픈 열대라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안식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슬픈 열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고갱이 살아가던 그곳이 다른 식민주의자들에게는 그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곳에 불과했다는 것. 동등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고갱이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그는 말년에 탄압받는 원주민들을 위해 일을 하려 했다고 한다. 탄원서도 내고. 그에겐 그곳이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무시 당하는 그런 곳이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일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자신의 예술을 지속하게 해준 그곳을 그는 적어도 동등하게 대했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고갱 자신이 직접 쓴 글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려고 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고갱의 글을 읽음으로써 고갱의 작품에 더 많은 의미가 있음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글만큼 고갱의 그림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니, 여러모로 고갱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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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만한 당신 - 함께 있어 든든했던,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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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만한 당신'이다. '가만한 당신'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이 책에도 35명의 사람들 부고가 실려 있다. 적어도 부고를 실을 정도면 무언가는 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렇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 이름을 남긴다는 것, 억지로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애쓴 사람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갔을 따름이다.

 

그런 충실함이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평판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나간 사람들.

 

물론 이 책에는 세파에 휘둘려 살아간 사람도 나온다. 하지만 그에게도 자신의 삶으로 인해 남에게 무언가를 준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 이야기. 여기에 '함께'라는 말이 더 와닿는다. 지금처럼 힘든 시대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이 책 발문에 실린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김탁환이 쓴 발문인데... 이런 문장이다.

 

'함께'란 단어가 제목과 부제에 모두 포함되었다. '함께'란 단어만 보면 존 버거가 던진 질문이 떠오른다. "연대가 중요한 것은 지옥이지, 천국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나요?" 이 책에서 '함께'가 반복되는 까닭이 혹시 지금 이곳의 고통이 두 배 이상 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함께 도모하지 않으면 쓰러지고 지쳐 목숨까지 위태로운 시절에 '함께 있어 든든했던,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가 나와서 다행이다.

 

그래, 이렇게 함께 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들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해졌음을, 지금도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생각하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 사람이 없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도 실어줬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는 내내, 지금 우리나라도 겉으로 드러난 사람들 말고도 정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티내지 않고, 드러나지 않음에도 그 자리에서 세상의 소금이 된 사람을 기리는 작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곁에도 이렇게 '함께' 있어주었던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한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 앞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한다.

 

무엇보다도 '함께'가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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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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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하다'는 말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말이다. 즉 남 앞에 나서서 특별한 존재로 우뚝 솟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다.

 

어떤 사람들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 말이 잘 들어맞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꼭 알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한 일을 남에게 이야기하고 남들에게 칭송을 받기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이 책은 제목에 어울리게 아주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가만한 당신'이라는 말에 맞게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 다섯 명의 부고'

 

부고라면 죽음을 알리는 글인데, 이 책은 이들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인지를 기록한 전기문이라 할 수 있다. 약전(略傳)이나 소전(小傳)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인데... 한 명 한 명의 삶이 절대로 '가만한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정말로 이름 없이 살다간 필부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부고조차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부고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무언가를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제목에 맞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삶을 살아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신을 남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은 대로 행동하고 살아갔을 뿐이다. 이런 삶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좀더 좋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고.

 

한 사람 한 사람 읽어가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네 세상이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따라서 이 책은 참 의미가 있다. 이들을 기리는 부고 형식을 택했지만, 우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 존재들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바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변해가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음 들어본 사람이다. 그들이 한 일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에도 그들은 그렇게 앞에 나서기 보다는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다.

 

여성의 삶을 위해서, 흑인들의 삶을 위해서, 재소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또 어려운 처지에 있는 환자들을 위해서,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등등... 이 사람들 이름을 여기에 적어두지는 않겠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보다는 이들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관한 이 책. 읽을 만하다. 읽어야 한다. 우리들 세상에 소금이 된 사람들 이야기니까. 다음 권은 '함께 가만한 당신'이다. 이 책도 함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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