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 - 생명 사상의 큰 스승
이용포 지음 / 작은씨앗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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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돌아가신 지가 15년이 넘었는데도 더욱 그리워지는 분. 

살아 생전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사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분. 

원주에 살면서도 원주에 머무르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삶으로써 자신을 드러낸 분. 

녹색평론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통해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생각했고, "좁쌀 한 알"이란 책을 통해, 그 분의 일화를 접하고, 삶이란, 위대한 삶이란, 결코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 때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 일이 있으면 그래서 이 "좁쌀 한 알"을 선물하곤 했는데... 

"좁쌀 한 알"이 일화를 중심으로 해서 장일순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조금은 힘들 수 있다면, 이 무위당 장일순 책은 전기문의 형식을 취해, 누구나 쉽게 장일순을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전개된다. 

한국의 현대사와 장일순이 삶이 작가 이용포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어 스승을 그리워하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훌륭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다. 

스승이 없는 시대,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주위를 잘 살펴보면 어른들, 스승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바로 이 무위당 장일순처럼. 

다만 스승은 우리들이 찾으려할 때 찾아지지, 그냥 왜 없을까 하며 지내면 스승은, 어른은 결코 찾을 수 없다.  

교육운동가에서 사회운동가로, 그리고 사회운동가에서 생태운동가로 꾸준히 자신을 변모해가는 데는 평등, 평화주의라는 기본 사상이 밑받침되어 있고, 위를 보고 운동을 하지 않고, 아래를 보고 운동을 하는, 아니 아래와 함께 할 때 운동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분이 무위당 장일순이다.  

그는 자신의 다른 이름인 호를 여러 번 바꾸는데, 처음에는 맑은 물처럼 살고 싶다고 청강이라는 호를 쓰고, 다음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삶으로 무위당이라는 호를 쓰고, 그리고 자신은 아주 작고 낮은 존재이지만, 그 존재 속에는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는 뜻의 일속자(즉, 좁쌀 한 알)라는 호를 쓴다. 이렇듯 호는 바로 당시 장일순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4대강이다, 뉴타운이다 하여 개발만이 살 길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이 시대에 무위당의 말 하나, 글 하나,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는 우리들에게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큰 스승, 무위당 장일순. 

드러내지 않아 드러났던 그 분.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어도, 생전에 뵙지 못했어도 지금 나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늘 생각하게 해주는 스승으로 남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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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동문 평전 - 시대와의 대결
김판수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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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문 하면 4.19를 노래한 시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언제부터 활동했는지, 시적 경향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시집을 몇 권이나 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만큼 알려지지 않은, 잊혀진 시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염무웅의 평론집을 읽다가 신동문을 다룬 글을 읽고,어, 이 사람, 그리 만만하게 봐서는 안되네, 그냥 잊혀져선 안 되는 시인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항시인, 참여시인 하는데, 60년대 하면 주로 김수영, 신동엽만 이야기 하지 신동문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이 나라에서 평균보다는 높은 학력에, 평균보다는 많이 시들을 읽고 있고, 시집도 평균보다는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신동문은 그냥 4.19를 노래한 시를 하나 쓴 시인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으니.. 참.. 

하긴 시인이 꼭 시를 많이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함형수는 '해바라기 비명'으로 우리 시단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신동문도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이란 이 시 하나로 문단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 이미 이 시 하나로 60년대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신동문이 이 시 하나만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다른 시도 있고, 비록 시집은 한 권만 내고는  끝이었고, 나중에 전집으로 묶인 시집도 한 권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각광받는 시인이었다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이게 이 평전을 읽게 된 이유인데... 

읽어가면서... 신동문의 생애와 겹쳐, 머리에 박봉우의 '창(窓)이 없는 집'이란 시가 자꾸 떠올랐다. 

어쩌자는 건가 / 괴로운 시대에 / 시인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 어둠이 깔리는 / 

대지에 서서 / 별들에게 / 고향을 심는 것인가 / 어쩌자는 건가 / 어둠이 쌓이는 / 

무덤가에 서서 / 시인은 무엇을 노래할 것인가 / 구름이 흘러가는 심중(心中)에 /  

그래도 저항할 것인가 / 자유지대에서 / 괴로우며 / 시인의 혁명은 / 싹트는 건가/ 

창이 없는 하늘에 / 남겨 둔 꽃씨를 뿌리는 건가. - 박봉우, 창이 없는 집, 전문 

신동문의 삶이 바로 이 시에 나온 시인의 삶이 아니던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세상에 나름대로 씨앗을 하나 뿌려두는 삶의 태도. 그는 그래서 독재가 판치던 6,70년대 저항시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아닌가. 시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름을 건호에서 동문이라는 필명으로 바꾼 일화도 새길만하다. 동문이란 병원에서 중환자들이 죽음에 이르러 실려나갈 때 쓰던 문이란다. 서울로 말하면 시구문일텐데, 결핵을 앓으며 언제 죽을지모르는 그는 죽음과 늘 대면하면서, 자신의 이름에도 죽음의 문인 동문(東門)을 쓰고 있으니, 그가 현실에서 벗어난 시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편집자로서, 발행인으로서, 그리고 산문을 쓰는 문필가로서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어느 순간 그는 어떤 글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충청도 단양 땅으로 가 거기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농민으로서, 침술가로서 살아간다. 

이렇듯 그의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젊은시절, 시인으로서의 신동문이라면, 중년시절이후는 농민, 침술가로서의 신동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삶을 끝냈다고 보기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삶을 활자로서의 활동에서 온몸으로 하는 활동으로 전이했다고 봐야한다고 평전의 저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시를 지으려면 마음이 들뜨거나 흥분할 수밖에 없어. 얼음같이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어찌 좋은 시를 내놓을 수 있겠나. 침술은 그렇지 않아. 냉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제 시각에 제 자리에 정확하게 침을 꽂아야 해. 그것이 곧 정곡 찌르기야."(316쪽)라고 하듯이 젊은시절 열정이 넘치던 때는 시로 세상을 대하고, 나이가 들어 열정을 다스릴 수 있을 때는 침으로 세상을 대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그가 저항시인 소리를 들을 때 참여문학 대 순수문학 논쟁이 벌어질 때 비판했던, 서정주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신동문 시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신동문의 이 말은 서정주의 국화옆에서 중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이 구절을 생각나게 했다. 그는 이제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침술이라는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영위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그의 침술은 일찍이 시로써 현실에 참여하고 독재에 저항했던 일에 못지 않은 존재감이었다"고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그는 평생을 시인으로서 살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자, 그가 한 일을 정리해 보자. 그는 시인으로서 시를 썼고, 문필가로서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썼으며,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서 많은 좋은 책(특히 전집류 중에서 우리 문학계를 풍성하게 했던 좋은 전집이 처음에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고 한다)을 냈고, 좋은 시인(신경림 등), 소설가(이병주 등)를 발굴해 내었으며, 농민으로서 농촌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서, 양잠업, 과수원 경영, 그리고 젖소 사육까지 수양개 마을이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되기 전까지 수양개 마을 사람들과 한 마음, 한 몸으로 잘 지냈다. 

국가권력의 횡포로 마을이 수몰되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떠나가 공동체가 파괴되었을 때, 그의 몸도 파괴되기 시작하여, 용하다고 소문난 자신의 침술로도 자신의 몸을 고치지 못해, 담도암으로 93년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잊혀지기 시작한 시인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문단사에서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기 위해 시비를 건립하고, 아직도 수양개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은 한 때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신동문 시인을 복원한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의 삶, 그의 성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많은 것을 전해주고 있다. 온몸으로, 자신의 삶 자체가 시였던 신동문, 그가 다시 우리 문학사에 복원이 되는 순간, 우리 문학사는 좀더 풍요로운 문학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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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2011-06-12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동문 시인은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 시가 왜 공공장소마다 걸려 있는 거야? 당신, 저 시에 속아서는 안 돼! 먼 나라의 시인이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사람들의 삶을 걱정해준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돼!>
1980년대 후반 어느 날 식당에서였습니다.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 있었는데, 이 시를 가리키며, 못마땅하다는 투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으리니...> 어쩌구저쩌구 하는 싯구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당시 이 시는 식당 뿐 아니라 버스터미널, 기차역, 이발소 등 공공장소에 널리 걸려 있었지요. 신동문 시인의 지론은 <삶에 속았다고 생각되면 슬퍼하거나 노하라>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언제부턴가 갑자기 사라져, 지금은 공공장소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 당시 저희 세대는 김소월의 <진달래꽃>만큼이나 이 시를 즐겨 외우곤 했습니다.
하긴, 그 번역 시가 이 땅에서 널리 유행했다가 갑자기 썰물처럼 사라진 연유를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뉴욕으로 출근한다 - 뉴욕에서 12년, 평범한 유학생에서 세계 유수의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활약하는 아트디렉터가 되기까지 한국인 애니메이터 윤수정의 뉴욕 스토리 해외 취업 경험담 시리즈 (에디션더블유)
윤수정 지음 / 에디션더블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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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 낯선 이름이지 않은가. 

애니가 만화라고 해석을 하고, 메이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만화를 만드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만화라고 하면 범위가 너무 좁아지니, 이를 애니메이션, 또는 영상작업으로 해석을 하여 영상작업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만화가 좋아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그 방면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윤수정 씨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1부에서는 본인이 참여했던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2부에서는 본인이 애니메이터가 되기까지 겪은 일들을, 3부에서는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4부에서는 미국, 특히 뉴욕에서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1부를 보면 치열하게 작업하는 모습들이, 정말로 열심히 하는구나, 온갖 상상력, 창조력, 그리고 끈기까지 동원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2부에서는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실력도 쌓아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한다는 것을 3부와 연관지어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애니메이션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형식의 4부는 진로를 이 방면으로 정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하면 소위 만화영화라는 것만을 떠올렸는데, 그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점에서 이 책이 좋았다고나 할까. 

이 방면도 정말로 다양하고, 진출할 수 있는 분야도 많고, 또 특히나 앞으로도 쓸모가 매우 많은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이 재능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사람들과도 잘 관계맺고, 또한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또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해야지만 이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분야와 광고 분야가 다른 분야가 아니라 통하는 분야라는 사실도 중요한 점이다. 

애니메이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싶은 사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자. 어렵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술술 풀어가고 있어 잘 읽히는 책이다. 그래, 어쩌면 이 책은 20대 초반까지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관심이 없더라도 이런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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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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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인은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우리나라 원로시인이다. 아니, 시인에게 원로란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원로란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 붙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인에게 은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시인은 젊었을 때도 나이 들었을 때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시를 쓴다. 그 시세계가 변해가기도 하고 평생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세상을 새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시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어린 사람들에게 차분히 들려준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도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요'라는 말 때문일텐데, 이 말이 친숙하게 들리고, 마치 곁에서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근대를 살아온 시인이 자신의 삶과 당시 세상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일제시대, 공부에 흥미가 없던 소년이 문학작품을 읽고,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레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는 과정이 1부에서, 공부하는 대신 원없이 놀았던 것이 시인을 더 시인답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부에 펼쳐지는 일제 말기 시인이 함흥고보에 다니던 시절 이야기는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일제시대라고 일본인은 다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이 좋다. 일제시대, 함흥고보에서 한문을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 이야기는 민족, 국가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이것은 월남하기 전에 만났던 유채룡이란 분의 이야기에서 알 수가 있다. 

3부에서는 월남한 뒤, 6-70년대까지 시인이 겪은 일을 다른 시인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그리고 잘 모르는 박거용이라는 사람까지. 특히나 전쟁통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시인이 직접 겪은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어, 지금까지 잘 몰랐던 일화가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시인의 시가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이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어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돌파구를 찾아서> 이 책 42쪽

할 때까지 하고, 그러나 막막할 때, 그 땐 잠시 쉬자. 그러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무조건 나아간다고 해서 길이 보이고, 길이 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 시에서 이렇듯 잘 표현하고 있으니.  

그래, 시인은 그래서 가끔 쉬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꾸준히 걸어왔으리라. 그 걸어온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 낸 글들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리라. 

분단의 비극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나이들어 버린 시인이, 고향 땅을 밟고 고향에 있는 느릅나무를 만나는 날,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단지 김규동이라는 시인의 자서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긋나긋하게 해주고 있다. 시 쓰고 싶은 사람, 문학 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한 사람, 한 번 읽어보라. 

어렵지도 않고, 술술 읽히는 이 책, 시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덧말 

올해 2011년 9월 28일 김규동 시인이 별세했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하늘나라에서는 가보고 계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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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둑 - 한 공부꾼의 자기 이야기
장회익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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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 예전에 녹색평론에서 온생명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생명의 단위를 이야기할 수도 있구나.  

참신한 생각에, 그가 물리학자라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왠지 물리학하면 이러한 생명하고는 관련이 없는 물질의 세계에만 관여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도 그의 말대로 하면 선입견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그의 탄생부터 70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인생역정을 공부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는 자서전이라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성장사를 알면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정통 물리학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자신은 야생이라고. 

즉, 틀에 박힌 사고를 하지 않고, 올바름을 위해서, 자신의 진정한 앎을 위해서 남들을 따라가지 않자신만의 방식으로 공부한다고.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 했고, 또한 중학과정도 편입으로 제대로 공부하지 못 했으며, 고등학교도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계가 아니라, 공고를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공부방식으로 공부를 했으며, 남의 의견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이 검증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만들어 갔다. 그러했기에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가서도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가 유학을 마치고 서울대 교수로 부임하여 자신의 학문 방향에 대해 정리한 이 구절은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제도권 학계의 평가 잣대에 나를 맞추기보다는내 가치기준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가장 잘 위하는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고, 이를 위해 내 활동의 방향을 잡아왔다." (271쪽) 

우리는 공부를 왜 하는가? 왜 학문을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에 자기만의 대답을 하지 못 한다면 남을 따라가는 아류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학문에서 만능열쇠를 하나 마련하고자 했으며, 이 만능열쇠를 물리학에서 찾았다. 지식의 창고를 여는 만능열쇠. 

그러니 그 열쇠를 가지고 창고에 숨어있던 여러 학문 분야를 꺼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전공 하나에 매여 그 속에 함몰된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장회익은 물리학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물리학을 이용하여 다른 학문분야로 자신의 관심사를 폭넓게 넓혀가고 깊게 하고 있다. 

그가 말한 온생명.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요즘 학생들, 스승의 손가락만 볼 줄 알지, 달은 볼 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손가락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보면 바른 공부가 무엇인지 깨우치게 된다. 

시간을 두고 차분히 이 책을 읽으며, 난 왜 공부를 하는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신도 지식의 창고를 여는 열쇠를 하나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건 꼭 물리학일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에게 맞는 열쇠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지은이가 바라는 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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