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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 빅토르 프랑클 회상록
빅토르 E. 프랑클 지음, 박현용 옮김 / 책세상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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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하다. 이 책은 참 많이 읽혔다고 하고, 무언가 고통 속에 빠져 허우적 대는 사람에게 그래도 삶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세계최고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이 얘기는 더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세계 최고로.

 

이때 삶은 살아야 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고통이 당신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면 그 고통도 인생의 한 부분이 되고, 내 것으로 내가 함께 지니고 가야할 무엇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리라.

 

이런 일을 프랑클이 해주고 있다. 아니 해주었다. 그는 20세기 격동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고, 자신의 삶으로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 또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했던 사람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족들이 죽음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의미를 찾고 이를 이겨낸 사람...

 

그가 90세를 맞이하여 자신의 인생을 종합적으로 회고하는 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가 창시했다고 알려져 있는 '로고테라피'에 관한 책도 아니고, 또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었던 그 긴박했던 순간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90이 된 프랑클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아, 그 땐 그런 일이 있었지.'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가족 사항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어린시절, 그리고 학창시절, 수용소 생활, 학자로서 강연자로서의 생활을 시간 순으로, 그러나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순간들을 중심으로, 결코 길지 않게 정리해서 들려주고 있다.

 

하여 그의 삶이 짧막한 한 권의 책에 다 녹아들어있기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의 회고록이니 말이다.

 

책을 읽어가면 그가 산 시대의 전반부는 상당히 암울한 시대일텐데, 그가 얼마나 낙관적으로 견뎌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낙관적인 태도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해내었을테고, 그 의미의 발견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그를 몰아가지 않았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의 생활은?

수용소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결코 밝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그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프랑클이 지닌 태도를 알게 해주고 싶다.

 

우리의 모든 삶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삶을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라는 말...

 

자, 우리는 삶의 의미를 우리의 삶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야만 한다. 좌절하고 절망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의 삶이 대답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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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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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신(修身)

모른다. 사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잘 닦았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모를 수도 있다.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옛사람들은 수신(修身)을 첫 덕목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안철수가 얼마나 자신을 잘 닦았는지는 모른다. 그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그가 대통령선거에 나오겠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그는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그가 기업을 사적 이윤을 위해서 운영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또 대학교수가 되었어도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사회에서 신망을 얻고 있었다.

 

이런 신망은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또 강요될 수도 없다.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삶이 사람들에게 진실로 다가올 때 신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신망 속에서 권위가 싹트게 된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을 때 신망이 싹틀테니, 지금껏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살아왔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는 말한다.

"진로를 결정할 때 저는 항상 세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의미가 있는 일인가, 열정을 지속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28쪽)

"저는 지금까지 인생의 큰 전환기마다 '내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보탬이 될 수 있을까'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30쪽)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은 안주하지 않는, 도전과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32쪽)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35쪽)

 

2. 제가(齊家)

자신의 몸을 닦은 다음에는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 가정이 화목해야 한다. 자신의 가정에서조차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가정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그는 수신에 성공했다고도 할 수 없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건 완전 가부장적 발언 같다. 아니면 가정이 해체된 집들은 문제가 있다고 하는 말과 같다.

 

그러나 가정을 다스린다는 말을 가정을 꼭 남들과 같은 형태로 유지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가정을 다스린다는 얘기는, 적어도 가정의 구성원이 사회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가족 구성원 때문에 고초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한 사람 때문에 가족이 고초를 겪은 일은 여기서 제외한다. 그것은 우리가 권장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가족 구성원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이들 때문에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지금까지 안철수의 가족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가끔 문제를 삼는 언론이 있었는데, 그후 지속되지 않고 있으니, 그냥 문제제기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앞으로 치밀하게 이 쪽 부분에서 문제제기가 나오리라.

 

이 책을 통해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가 없다. 사실, 할 필요도 없고. 다만 지금까지는 가족 때문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단 얘기는 듣지 못했으니,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언론들이 가족들의 문제를 캐고 들테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진실을 가릴 줄 아는 눈을 지니는 일이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3. 치국(治國)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몸에서 가족으로 가족에서 나라로. 이들을 순차적으로 보아도 좋고,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좋다. 사실 이를 순차적으로 하나하나의 단계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순차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적이기도 한 일이다.

 

이제 안철수는 치국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가 며칠 전에 이번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고자 한다고 선언을 했다.

 

이 선언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안철수는 의사이자 백신개발자, 또 안철수 연수소 경영자, 그리고 대학교수였기에, 그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판에 뛰어든 일은 의외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는 나라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 생각이 이 책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은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종합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정말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상식이 바로 안철수의 생각이다. 이를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런 상식이 아직까지 상식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다. 그것이 그가 대선에 후보로 나서게 된 배경이기도 하리라.

 

그렇담 이런 상식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면 안된다.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 중요하지 않고 선택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앞으로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에 따라서 그가 이 책에서 한 말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올 것인지 아니면 한낱 수사에 불과할지 판가름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가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구상을 정책으로 구체화해나갈 것인지 지켜보면 된다. 이 책을 중심으로 이 책의 상식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 지켜보는 일. 이것은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우리들이 의무이자 권리일 터이다.

 

4. 평천하(平天下)

여기까지 가진 않으리라. 이는 세계화가 된 지금도, 하루면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지구화, 세계화의 시대에도 이런 꿈은 좀 허황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우리와 관계있는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자그마한 힘을 보태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5.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아렌트는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은 사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말이었다고.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나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정치라고. 그래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 존재를 걸 용기라고.

 

백척이나 되는 꼭대기에서도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디딛는 일, 그것이 바로 정치라고.

 

안철수가 이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중도에 그만두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가 이미 한 발을 내디딘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전존재를 건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사적 영역에서 충분히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쥐고 살 수 있는 존재에서 그는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정치판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다.

 

옛날, 자신이 공부한 만큼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정치계로 뛰어든 선비들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선비들 중에 정치판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뜻을 펼친 사람도 있고, 좌절한 사람도 있는데... 안철수는 어떤 길을 밟을지...

 

그가 한 말이 그의 앞으로의 정치역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타입인 거죠. ... 저 역시 기성 정치권의 나쁜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게 장점이 될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비록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은 없지만 긴 기간 동안 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해왔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에 만일 정치를 한다면 이런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39쪽)

 

"제 인생에서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 그저 크로마뇽인의 벽화처럼, 누구인지도 잘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좋은 제도, 좋은 책, 바람직한 조직 등을 통해 세상에 흔적이 남기를 바랍니다." (257쪽)

 

덧말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안철수 생각은 우리 사회의 상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좀 동의하기가 어렵다. 국책사업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데, 4개 정부에서 하나같이 추진했기에 타당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모든 정부가 같이 추진한다고 옳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인데, 예를 들면 새만금은 노태우 정부 때 시작하여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물막이가 완공(?)이 되었는데, 이게 과연 옳은가?

 

"또 만약 옳지 않다면 그 정부에 참여했던 분들이 당시 판단에 거짓이나 오류가 있었다는 점을 먼저 설명하고 반대하는 것이 정상적인 과정이겠지요."(220쪽)란 말은 참여정부 때 찬성했던 사람들이 강정마을에 대해 반대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철수는 아직 정치인의 물이 덜 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부분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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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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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일까?'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은 크리에이터라고 말한다. 크리에이터?

 

굉장히 내용이 진지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이재익은 크리에이터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오직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한다. 그의 경험, 그래서 재미있다. 쉽다. 그렇지만 무언가 남는다.

 

이런 크리에이터에 대해 이재익이 말해주고 있다. 누가 크리에이터이고, 어떻게 해야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으며, 어떤 모습의 크리에이터가 좋은 사람인지를...

 

크리에이터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면 그냥 우리 식으로 창조자라고 해도 되겠고, 아니면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 정도, 그것도 아니면 그냥 신(神-종교적 의미의 신이 아니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뜻에서)이라고 해도 되겠다.

 

21세기가 되면서 우리는 이제는 단순한 정보의 시대도, 지식의 시대도 아닌 창의성의 시대라고, 창의적인 사람이 살아남는 사회가 되리라고 했었다.

 

창의적인 사람을 다른 말로 하면 크리에이터라고 해도 좋으리라. 남들이 생각 못했던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단지 자신의 생각 속에 가두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또 볼 수 있게 만들어내는 사람이니 말이다.

 

첨단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정보를 몰라서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이든,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든 우리는 원하는 정보를 쉽게 그리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다 아니다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정보는 이제 평준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고급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서 알기는 힘들고, 또 그러한 정보는 고도의 지적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정보는 평준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평준화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활용의 면에서 창의적인 활용을 하는 사람이 남보다 앞서 갈 수 있게 된다. 이들을 우리는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크리에이터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이재익이라는 사람으로 한정해서 보면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라디오 피디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영화계에 종사하는 감독 등과 또 다른 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크리에이터라고 할 수 있지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 (영어가 많이 들어간다. 크리에이티브를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자.)

 

따라서 이재익은 크리에이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분야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는 자신이 이미 어느 정도 크리에이터로 남들에게 인식이 되고 있으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게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재익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크리에이터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자신이 소설가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도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가 경험을 서술하면서 우리 눈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그가 펼친 세계를 따라가면서 보게 되는데, 단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가로서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 자신의 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어서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시나리오 작가와 라디오 피디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된다.

 

그래서 소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시나리오가 어떻게 구성이 되며 어떻게 영화화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얽힌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냥 재미로만 읽어도 된다. 재미로 읽다보면 흥미를 느끼고 흥미를 느끼다보면 무언가 찾아보려 할테니 말이다.

 

세 가지 크리에이터의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살고 있는 이재익. 어쩌면 크리에이티브하다는 말은 한 분야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그 분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통합시켜낼 수 있는 사고력을 지니고 있고, 이를 결과물로 만들어낼 끈기와 실천력이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이 점이 이 책에서 이재익이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고...

 

일상에 매몰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매몰돼 더이상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그냥 자신의 삶은 이거다라고 규정하고 산다. 이는 이미 크리에이터하고는 거리가 먼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단순히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갖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유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삶은 창의적인 삶이고, 우리 모두는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익은 세 분야에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각자 어떤 분야에서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을 살지 이재익의 이야기를 통해 꿈꾸고 실현하려 노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삶이 훨씬 즐거워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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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교양 교양인 시리즈 4
박석무 지음 / 한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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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이 있을까? 정약용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학자가 있을까? 아마도 박지원 정도... 서로 다른 길을 간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왜 이들은 만나지 않았을까 했더니... 이 책을 읽고 만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의 길은 엄연히 달랐으므로...

 

박지원은 에둘러서 시대를 비껴갔다고 할 수 있다면, 정약용은 정면으로 시대를 맞서 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만날 수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명문거족 출신으로 과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연암과, 과거 공부에 폐단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뜻을 펼치지 위해서는 과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과거시험에 임하는 다산.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에 쓴소리를 하던 연암과 세상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던 다산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살던 사람이었으리라. 다산의 집안이 어려웠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오해였다는 사실. 8대 옥당에 오른 집안, 이도 역시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이들은 당시 세를 잃은 남인 계열이었다는 사실이 정약용의 집안을 몰락한 집안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었다. 몰락한 집안이 아니라, 정약용 아버지도 벼슬살이를 한 나름 명문 집안인데 말이다.

 

어쩌면 정약용의 삶을 정리하는데는 3부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3부작이 아니라 2부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의 삶은 2부작이고, 나머지 생은 에필로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는 그가 벼슬살이를 하던 때, 이 때를 1부작이라고 한다면 두번째는 유배생활을 하던 때, 이 때가 2부작이다. 그리고 해배가 되어 자신의 고향에서 말년을 보낼 때 이는 인생의 3막이 아니라, 그냥 2막에 이어서 펼쳐지는 뒷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분량을 보아도 그렇고.

 

그렇다면 다산의 삶은 벼슬살이를 하던 젊은시절과 유배생활을 하던 중년의 나이에 절정을 맞이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삶도 이 시기에 걸쳐 있고...

 

그의 벼슬살이는 정조라는 임금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진다. 정조가 없었다면 다산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조의 후원하에 승승장구하던 다산은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펼치려고 한다. 이를 아렌트의 용어로 하면 행위에 나아간 것이다.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 공적인 장에 나아가는 모습.

 

하지만 우리에게 다산이 다산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행위자로서의 다산이 아니라, 판단자로서의 다산이다. 행위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그는 사유,의지의 단계를 지나 판단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신의 정치 행위를 사유하고, 판단하게 되고, 세상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는 시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유배자로서의 다산이고, 우리가 만나게 되는 실학자로서의 다산이다.

 

한 걸음 물러나 있을 때, 무언가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눈이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때, 그 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르익은 사상을 책으로 펴내는 일이다. 자신의 사상을 정리해내는 일이다. 이러한 정리는 유배생활 18년이란 세월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배생활을 통해 농익은 그의 사상이, 그의 책으로 엮어지고, 이 책들이 우리를 다산에게 이끌고 있다. 운명이란 때론 엉뚱한 방향에서 더 큰 역할을 하게 하기도 하는데, 아마도 다산의 경우가, 그의 형인 손암 정약전의 경우가 이렇지 않을까 싶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정조가 더 오래 살아서 이들이 정치의 영역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과 같은 그들의 저서를 만나보지 못했으리라. 이렇게 우연한 방향에서 이루어진 그의 유배생활이 지금껏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자양분으로 남아있으니, 이는 그를 행위에서 판단으로 이끈 운명의 바람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다산의 생애를 이토록 자세하게 치열하게 따라가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 부분에서 김남주의 시가 나오는데, 이 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곳곳에 나오는 다산의 글과 시들이 우리를 다산에게 더 가까이 가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다산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산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다산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학문이라는 사실. 현실로 돌아와야만 다산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맑스가 했다는 말. 세상을 해석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다산이 행위에서 판단으로 나아갔다고 했지만, 이는 순차적인 개념이 아니고, 판단을 통한 행위로 다시 되돌아와야지만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혼돈의 시대. 솔직히 지금, 다산과 같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다산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불러내어야 하지 않나?

아니, 다산을 그리워만 하지 말고, 우리가 다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에게 우리 모두가 다산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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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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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김수영을 위하여"지만, 실제 내용은 바로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을 위하여이다. 진정한 삶, 단독자로서의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김수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어렸을 때였던가, 아니 머리가 조금 커지고 혁명이라는 단어를 마음 속에서 좇아가려고 할 때였으리라.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이란 시를 처음 만난 것이.

 

이 단어에서 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유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존재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그러한 자유를 추구하는 혁명은 고독할 수밖에 없음을 이 시를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직도 관념 속에 있는 개념이지만, 김수영의 이 시를 읽으며 격동의 8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내는 나는, 관념 속의 자유가 실제로 피를 동반하면서 나타나는 모습을 목격했었고,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독하게 지내야 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자유로운가 하면 아니다, 라고 답해야 한다고 이 책의 저자인 강신주는 말한다. 우리가 표면상 느끼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자유를 가장한 통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해야 한다고, 김수영을 예로 들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김수영에 관한 책이지만, 강신주 자신에 대한 책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자유를 꿈꾸는 우리들에 관한 책이기도 하리라.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행동으로 나아갈 때 김수영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리라.

 

스승을 떠나보낼 때, 이는 스승을 좇는 행위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줄 때, 그 때가 바로 스승을 떠나보낼 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나는 김수영을 떠나보내야 한다. 그를 떠나보내지 않고, 그를 안고, 흠모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인 강신주가 하는 말도 이러리라. 어쩌면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옛선사들의 가르침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언제까지나 스승을 좇으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스승의 그림자로만 살아가게 될테니 말이다.

 

강신주는 "달나라의 장난"을 읽고 위안과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하지만, 나는 "푸른 하늘을"이 더 좋았다. 아니 어떤 시보다도 먼저 접했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김수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그의 시에서 단독자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 그러한 삶을 살 때 그 때서야 비로소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으로 이런 김수영에게는 참여시니 순수시니 하는 유파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특히 이 책에서 김수영의 자유를 향한 추구를, 또는 그의 시의 원점을 4.19가 아닌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잡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극도로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김수영의 모습.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자유를 추구했던 이유는 수용소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자유를 잃은 사람이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을 향해 진정한 자유는 이것이라고 외치는 모습. 그런 삶이 시로 하나하나 살아나는 모습. 이를 강신주는 이 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간 많은 문학적 논의가 많은 시인이 김수영이지만, 이렇듯 자신의 삶과 김수영의 삶, 그리고 시를 종합하여 하나의 독자적인 책으로 만들어낸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김수영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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