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김구 선생이 했다는 말을 정치인 노무현이 부산에서 출마할 때 다시 썼다는 말이다.

 

시류에 굴복하지 않고 시류를 거슬러 옳음을 추구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대붕이고, 살아 있는 물고기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지역구도의 타파를 위해 당선이 가능한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럼에도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우리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히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자신이 대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는 데는 다른 말을 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이" 성공과 좌절 "이듯이 그리고 자신이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회고록을 쓰는 일밖에는 없다고 했듯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였을까 되짚어보는 일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이 책은 노무현의 손에 의해 쓰여지지 못했다.

 

그의 사후 그의 글들을 모아 다른 사람들이 펴낸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무현의 마지막 육성이 담긴 글이라는 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라는 점에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표지에는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고 쓰여 있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당부의 말일텐데..

 

그가 대통령이 되어 한 일 중에 잘한 일과 못한 일이 있고, 성공한 일과 성공하지 못한 일이 있을텐데, 그것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역사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정치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정권이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보다는 실패 쪽에 무게를 두고 그를 과장하여 보도하였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으며, 특히 언론은 그들만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언론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던 노무현은 그의 정책이 언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오해를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분열이 치명적이었으며, 심지어는 그를 지지하던 정당조차도 분열되어 버렸으니, 그의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기는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이제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 올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 풍토가 되게 하는 것이었고,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되게 하는 것이었으며, 노동자도 사람대접 받으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을텐데...

 

한 개인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처지가 다르기에 생각도 다르게 해야 하고, 행동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 그렇겠단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은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과연 서민 경제가 더 나빠지지 않았을까. 그는 중산층이 괴멸되어서 그렇다고 말을 하는데, 그리고 중산층의 괴멸은 과거 정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 중산층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갔는지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미 지난 일이지만...

 

서민들이 과연 언론의 보도만을 믿었을까. 그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바로 언론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든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정치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어렵사리 끌어올린 정치 수준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독재를 인정할 수 없듯이 한 단계 끌어올려진 우리나라 정치, 다시 밑으로 곤두박질 치게 국민들이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애증이 교차하는데... 인간 노무현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정치인 노무현에게는 애정에서 미움으로 변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이미 그는 갔고, 그가 원했던 세상은 오지 않았으며, 그런 세상은 이제 온전히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대붕이었든 아니었든, 판단을 못하겠지만, 그가 살아 있는 물고기였음은 확실하다는 생각. 우리도 대붕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살아 있는 물고기는  되어야겠다는 생각.

 

그렇게 되려면 역사인식이 있어야겠고, 우리 사회를 파악하는 눈을 지녀야겠고, 또한 행동하는 실천력도 지니고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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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가 있다
하근찬 / 엔터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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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난이대.

 

국어시간에 배운 소설. 지금도 학생 때면 어김없이 읽어야 하는 소설.

우리나라 현실을 소설에 잘 담아냈다고 하는 소설.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난이대'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

 

이대에 걸쳐 수난을 당했다는,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 때, 아들은 6.25전쟁 때 각각 부상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시련으로 상징되는 외나무다리를 함께 협력하여 건너는 모습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표명한 작품이라고 배웠는데...

 

헌 책방 순례를 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책이다.

 

하근찬 하면, 우선 수난이대가 떠오르고, 그 다음이 흰종이수염이 떠오른다. 왜 그러냐 하면 이들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편이라는 특성이 교과서에 실리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또 하근찬 하면 '내 마음의 풍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여제자가 교사를 짝사랑하는 이야기.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아마 영화가 되기 전에는 '여제자'란 단편소설로 먼저 발표가 되었으리라.

 

이렇게 보면 하근찬의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해야 한다. 이 정도면 문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이름이 나오는 작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는데, 물론 작가의 삶을 안다고 해서 작품을 더 잘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작가의 삶에 대해서 알면 작품에 대해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지니고 있으니.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풍금"이 작가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이 산문집에 그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또 6.25로 인해서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비극을 겪은 사람으로서, 순박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작품으로 표현해내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어떤 이념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사회적 격랑 속에서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작품으로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사실 이 책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만든 이유는 이 책에 '수난이대'의 창작과정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과정을 밝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책에도 '수난이대'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가, 어떤 의도로 쓰게 되었는지가, 결말을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살 필요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밖에 많은 점에서 하근찬이라는 사람을, 작가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책이 나온지 10년 뒤 그는 타계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의 목소리의 울림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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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엑스 -상 - 제3세계총서 1
알렉스 헤일리 지음 / 창비 / 197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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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검은 것이 아름답다."

 

이 말은 흑인들이 백인들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로서 만들어진 말이다. 흑인들을 비하하는 세상에서 흑인들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이 말처럼 좋은 말이 있을까.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생학을 잘못 도용하여 인종간에 우열을 나누는 경우도 꽤 있었고, 그러한 우생학을 바탕으로 유색인종은(세상에, 그렇다면 백인은 유색인이 아닌지...) 열등하다는 주장을 했고, 또 그렇게 대우를 했다.

 

그런 차별 대우가 언어에도 녹아 있어, 흑인들은 니그로라는 말로, 또는 혼혈임을 나타내는 말로 쉽게 지칭이 되었으며,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도, 살고 있는 지역도 모두 차별을 받았다.

 

아주 오래 전, 중세 시대의 이야기? 아니다. 이것은 현대의 이야기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러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사람으로는 미국인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가 있다.

 

킹 목사는 평화주의자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으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연설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지만, 말콤 엑스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전기를 구해서 읽기도 쉽지는 않다. 킹 목사가 계속 간디와 더불어 조명을 받는 것에 비하면 말콤 엑스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그에 대한 오해와 그의 종교.

 

그는 이슬람교도다. 젊은 시절 온갖 방황을 거쳐(이런 방황이 사실은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 이것을 인식해야만 사회는 변할 수가 있다. 그는 학창시절 뛰어난 성적을 거둔 학생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장래 희망에 대한 무시를 견딜 수 없어 자신의 피부색에 맞는 동포들을 찾아 할렘으로 간다. 이 할렘에 거주하는 동안, 그는 밑바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해야 한다.) 감옥에서 맞이하게 되는 이슬람.

 

그것은 그에게 구원의 빛이었다. 그 빛을 향해 그는 앞으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갔으며, 그러한 그를 언론들은 과격하다, 증오를 빚는 사람이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언론을 누가 장악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백인이다. 하여 말콤 엑스는 증오는 바로 백인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자신은 그러한 증오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 증오를 없애는 방법, 그것은 흑인의 권리를 되찾는, 흑인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라는 주장, 이 주장이 백인게에는 또다른 증오의 모습이었으리라.

 

게다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이지만, 미국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인 나라에서 이슬람을 믿는 말콤 엑스는 이미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목사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킹 목사와 그가 다른 점이다. 요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을 보라. 아마 그 때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도 그를 이슬람으로 이끌었던 종교지도자와의 갈등으로 그 단체에서 정권(권리를 중지당함)을 당한다. 그 후 그는 다른 단체를 이끌게 되는데, 이것이 흑인과 흑인의 갈등으로 보이게 되는 소지를 남기게 된다.

 

백인에 대한 증오가 있었던 말콤은 성지 순례를 통해 인종간의 갈등을 어느 정도 극복한다. 그는 이제 흑인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즉 사람에게는 피부색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한 단계 나아간 말콤의 의식이 사회운동으로 정립되기에는 활동 시기가 너무 짧았다. 곧 그는 암살을 당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인종을 넘어선 더욱 폭넓은, 인종을 초월한 평화주의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오래 된 책.

 

다시 읽으니 참으로 흥미롭다.

 

사회의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헤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말콤 엑스의 이야기는 희망을, 가능성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사람을 나락으로 내쳤더라도, 깨어있는 사람은, 그 사회의 모순을 파악하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 그러한 깨어있는 사람이 결국 사회를 바꾸어 간다는 사실. 이를 말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된다.

 

그의 삶은 정말로 바닥에서 시작했으니 말이다.

 

진흙에서 핀 연꽃. 그 연꽃은 사회 변화의 상징이다.

 

많은 책 중에 창비 판으로 읽었는데, 다시 활자를 현재에 맞게 고쳐서 재출간하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어려운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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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철완, 최동원 프로야구 레전드 2
최준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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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구의 계절이다. 이제는 9개 구단이 되었고, 신생 구단이 첫승과 첫 연승을 했으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해야 하나... 이제 몇 게임 하지도 않았는데, 좀 섣부르기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활약을 하고 있어, 더 야구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는데...

 

이 때 최동원이라는 투수가 생각났다.

 

저번에 장효조를 읽었으니, 이번엔 최동원이다. 둘 다 같은 해에 세상을 떴는데...

 

최동원의 경기나 장효조의 경기를 중계로 본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과 함께 했던 이들 중 감독이나 코치가 된 이들도 많은데, 이들은 이제 야구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최동원의 투구야 뭐, 하도 언론이나 여러 글에서 이야기를 해서, 게다가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새삼 거론할 것이 없고, 이 책을 통해서는 시대를 앞서갔던 야구인 최동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초대 선수협 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 또 투수로서 자신의 어깨에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 이런 것들이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었으니...

 

지금의 선수협이 이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이런 선배들의 노력이 있어서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는 선수로서도 대단했지만,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길 원했던 사람으로서도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기를 바랐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700만 관중의 시대를 열지 않았을까 한다.

 

철완으로 불리던 최동원. 그가 야구인으로서도 앞서간 인물이었다는 사실. 그런 인물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야구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

 

그렇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한 사람의 일로 되지 않는다. 모두 앞서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다. 지금의 프로야구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최동원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 기억이 지금의 선수들에게도, 팬들에게도, 또 미래의 선수, 팬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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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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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학생이면 국어 시간에 반드시 배우고 넘어가야 하는 시인이 김수영이다.

 

그의 시는 교과서에 수록이 되어 있으며, 시를 배우지 않더라도 '참여시인'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나는 그를 떠올리면 '한국의 아우슈비츠'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퀭한 눈, 그러나 맑은 눈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는 유대인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김수영의 사진 한 장도 함께 보내주었는데... 그것도 좋다. 그를 연상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진으로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김수영의 아내로 산 사람이 가장 가까이에서 김수영을 겪은 사람일테고, 그런 사람이 쓴 글은 김수영을 신화의 자리로 올려보내지 않고 우리 곁으로 내려오게 한다.

 

김수영이 피와 살을 지닌, 격정과 열의와 분노와 좌절을 지닌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그런 글이다. 그래서 더욱 정감있게 다가온다.

 

김수영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그와의 결혼, 파경, 또 재결합. 김수영 시에 대한 아내로서의 생각, 김수영의 글 중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글들, 또 그 때 그 때 써 놓았던 김수영과 관련된 글들.

 

이런 살아있는 글들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김수영을 만나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책 겉표지에 "나는 아직 당신과 동거 중입니다"라고 한 김현경. 그는 김수영과 아직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도 김수영과 함께 하고 있다. 아직도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의 시는 우리 곁에 계속 남아 있을테니까.

 

덧글

 

이 책 109쪽에 '1969년 강릉에 살던 여동생(김수연)내외가 칼기에 실려 납북되었을 때도 수영은 몹시 괴로워했다.' 고 되어 있는데 김수영은 1968년에 세상을 떴다. 어떻게 된 것인지, 이런 년도의 정확성은 교정을 볼 때 살폈어야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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