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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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연예인 못지 않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나 싶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작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방송에서 보던 얼굴이니... 출연 횟수로 따지면 어느 연예인 못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탄핵 심판을 진행했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그리고 올해 4월 침착하게 읽어가던 탄핵심판 선고문. 그것을 많은 국민이 지켜보았으니, 그를 아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얼굴은 안다. 그런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단편적으로밖에는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법관의 신상을 어떻게 잘 알겠는가? 신상이라고 해봤자 언론에 알려진 아주 적은 부분밖에는...


그가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 퇴임을 했다. 그리고 책을 냈다. 책? 좋은 기회다. 문형배라는 판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주어지는 셈이니.


그가 판사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블로그를 운영했다고 한다. 그 블로그에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올린 글도 있고, 기쁜 마음으로 올린 글들도 있었겠다. 여기에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도 있었을 테고.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보지 않아서 추측을 할 뿐. 이 추측은 책에 기반하고 있고.


자신이 올린 글 중에서 고르고 골라 이 책을 엮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거의 20년의 시간을 두고 있다. 20년이라면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두 번이 아니라 서너 번은 바뀌었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과거 시기의 글들을 실은 이유는 그 글들이 과거에만 매어 있지 않고 현재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쓴 글들과 읽은 책들을 소개하는 글들, 마지막으로 법원과 관련된 글들이 실려 있는데...


읽어가면서 판사 문형배(그냥 판사로 직함을 통일하련다. 전 판사라는 말도 좀 우스우니까)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는 느낌, 판사 문형배 속에 사람 문형배가 들어있음을, 그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던 어느 판사의 기록'(7쪽)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그는 성공했다. (이 성공이 평균인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인지,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인지는 헷갈리지만, 두 경우 모두로 해석해도)


최근에 읽은 커트 보니것의 연설 중에 마크 트웨인을 인용한 글을 보면... 그 글은 이렇다.


마크 트웨인은 참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았지만 노벨상은 못 받았죠. 그런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사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네 마디를 대답으로 떠올렸습니다. 저도 그 답이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마음에 들 것입니다.

"우리 이웃의 좋은 평가" 

(커트 보니것,,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문학동네. 2019년 1판 5쇄. 57쪽.)


이 글을 보면 문형배 판사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감사의 말'에 보면 그가 버스를 탔을 때 버스 기사님이 '이 버스에 문형배 재판관이 타고 있습니다. "박수 한번 칩시다"'(405쪽)라고 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이웃의 평가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바로 우리와 같은 삶을 산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 아니겠는가. 이보다 더한 성공이 어디 있는가. 앞에서 언급한 두 의미 모두에서.


그만큼 책을 읽다보면 문형배 판사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그가 몇몇 글에서 '착한 사람이 법을 알아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평균적인 사람에 대한 호의를 드러내는 말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법을 몰라서, 그냥 사람은 다 자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겠거니 해서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착한 사람들이 법을 알아야 한다고,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 법 공부는 해야 한다고 하니, 그가 사람에 대해 지닌 사랑을 이런 말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또한 그는 판사 재직 시절 사형 선고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며, 판사의 선고 이전에 당사자들끼리 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 점을 봐도 그는 사람에 호의를 지닌 판사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가 '여는 말'에서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자 애썼다고 하는 말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판사가 아니라 사람들 곁에 있는 판사 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책에서 은인으로 언급하고 있는 김장하 선생의 말처럼 그는 자신이 받은 것을 다른 존재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고, 그것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표현한 것은 겸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비록 판사로서 또 헌법재판관으로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지만, 본질은 평균인의 삶을 살았다고, 그런 평균인의 삶이 바로 그의 삶에 체화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읽으면서 추웠던 작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를 다시 떠올리기도 했는데, 그 추위를 그의 탄핵 심판 선고문을 통해 따스한 봄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도 그의 삶을 통해 계속 그러한 따스함을 우리 사회에 전달해주기를 바란다.


그와 같은 판사들이 있다면 차가운 법이 아니라 따뜻한 법이 될 것이고, 그러한 따뜻한 법이 바로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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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 졸업을 앞둔 너에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용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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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보니것이 이 말을 들었다면 아마 무슨 헛소리야? 했을 거다. 당당하게 미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 중 한 사람인 제퍼슨을 비판하면서 '불이 안 났는데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경우를 빼곤, 제 맘대로 말할 자유가 있거든요.'(153쪽)라고 한 사람이니...


대통령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는 모습을 봤다면, 이 말을 다시 우리에게 들려줬을 수도 있겠다.


'요즘엔 그 어느 때보다 고문실이 많습니다. 이 나라가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는 많죠. 미국이 종종 우방이라 부르는 나라들 말입니다.'(200쪽)라는 말을.


그만큼 그는 말할 자유를 옹호한 사람이다. 그래서 검열을 반대했고, 검열에 반대했던 사서들에 대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서 검열을 가장 많이 당한 작가' 181쪽-188쪽)


그는 자신의 말할 권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할 권리, 심지어는 극단주의자들의 말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고통을 줄지라도.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유가 책임져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추악한 사상 하나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유의 대가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옛날 미국의 영웅들처럼 씩씩하게 자기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188쪽)


이런 보니것에게 입틀막이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것도 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이 비판할 권리를 막는 일은 민주주의 국가 (누가 좋아하는 말을 쓴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수정헌법1조를 옹호한다. 이 법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고.


주로 대학 졸업식 연설문을 담은 이 책은 이렇게 보니것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가 각 졸업식에서 하는 말은 다양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이제 성인이라는 것, 성인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회를 좋아지게 하는 쪽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졸업이 예전의 성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생을 즐기라는 것. 커다란 일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작은 것에서도 인생의 행복을 찾으라는 것.


그래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라는 말을 때때로 하라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제대로 받은 교육으로 세상의 억측가들에게 굽실거리지 말라는 것. 억측가들을 독재자라고 해도 좋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선동가라고 해도 좋다. 그런 인물들이 많은데, 지금 미국의 트럼프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아마 보니것이 살아 있었다면 이 트럼프를 풍자하는 말을 통렬하게 했을 텐데... 단지 트럼프 뿐만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지도자랍시고 트럼프의 아류들이 너무도 많은 현실이니... 보니것이 졸업생들에게 한 이 말,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나라 2030세대 (세대론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보니것은 이러한 세대론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개의 세대에 속한 구성원들이 아닙니다. ... 우리는 모두 같은 시간을 살며 떼어낼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겨야 합니다. ... 나의 아이들이 이 행성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조용히 해! 나도 여기 좀 전에 도착했어. 내가 므두셀라-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969년동안 살았다고 전해진다-라도 되는 줄 알아?" ... 우리는 대체로 동일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28-29쪽)라고 하고 있으니, 이 말 정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에게 그대로 전해줘도 되겠단 생각이 든다.


'억측가들에 관한 사실 하나가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관심을 끄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터무니없는 것이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남성과 현명한 여성입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우리의 생명과 여러분의 생명을 구하십시오. 존경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46쪽)


우리나라도 이런 억측가들이 있으니, 보니것의 이 말을 자꾸 되새겼으면 좋겠다. 그가한 것처럼 그들이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회에 갓 발을 들여놓거나 사회 생활을 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들에게, 당신들이 배운 것을 생각해라. 그리고 지금 큰소리치는 사람들의 주장을 잘 생각해봐라.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는 이 말. 이것은 부탁이다. 그리고 당신들과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지 않다. 세대 구분이 아니라 우리는 동시대에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니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 이 말들.


여기에는 사랑이, 믿음이 그리고 연대가 깔려 있다. 이것이 보니것이 평생 동안 추구한 일들 아니었을까? 이런 그에게 '입틀막'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를 그는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으니... 보니것 연설이 지닌 보편성이 이런 데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참조할 만한 문장이 많은데, 친절하게도 책의 맨 뒤에 '시대로부터 동떨어졌지만 생각해볼 만한 문장 모음'이라는 장이 있다. 보니것의 문장 중에 생각해볼 만한 문장들이 실려 있으니, 그것을 읽어도 좋다.


이 책의 제목을 바꿔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 이 맛에 읽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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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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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고 하면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에게 읽히려고 쓴 글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말을 담은 글. 그것이 일기다. 그러므로 일기는 솔직하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드러냄. 드러냄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자기 성찰의 도구가 일기라면, 왜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을까? 다른 사람의 내밀한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어떤 위로를 느끼려고 하는 걸까?


나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을 비춰보기도 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일기는 더더욱.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세월호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픈데도 읽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는 여전히,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진행 중이니까. 아직도 그와 비슷한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까. 그래서 작가가 이런 문장을 들고 갔다는 내용의 글을 읽을 때 먹먹하기도 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109쪽)


이것은 특정한 누구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런 일들 속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


누군가의 고통으로 내 행복을 만들 수는 없다는, 그런 사회는 되지 않아야 하고, 물신, 돈에 사람을 종속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여기서 생각의 힘, 아니 생각을 해야 한다는 당위를 발견한다.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행동한다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쉽게, 너무도 쉽게 '혐오'와 연결이 된다는 것.


사건, 사고, 혐오.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이런 사회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너무도 쉽게 다른 존재들을 비난하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 '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조금만 경계심이 풀려도 누군가를 즉시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다'(141쪽)


경계심이 풀린다는 말,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각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 그런 존재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문장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없음을 게으름이라고 한다면, '혐오라는 태도를 선택한 온갖 형태의 게으름을'(72쪽)이라는 문장을 곱씹어야 한다.


더 살펴보고 더 고민해보고, 더 들어보고 해야 하는데, 그것을 생략하는 게으름, 그냥 자신이 살아온 관성대로 행동하는 게으름. 그것은 나만을 고수하는 게으름이다. 오로지 나만이 있을 뿐. 하지만 나는 남이 있어야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일기'를 읽으면 그런 게으름에서 조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적어도 읽는다는 일이 게으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되니까. 그렇게 황정은의 '일기'를 읽으며 작가도 나도 건너왔던 시대를 다시 생각한다. 


그런 사회에서 어떻게 지내왔는지도 생각하면서... 무엇보다도 고정관념이라는, 편견이라는 게으름에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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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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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하다. '나는 사람들을 웃기면서도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왔다.'(12쪽)고 커트 보니것은 말하고 있다. '웃음은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13쪽)고, '유머는 두려움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다. ... 어떤 웃음은 두려움에서 나온다.'(13쪽)고 하고 있으니, 보니것이 살았던 시대가 결코 행복한 시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베트남 전쟁을 목격했으며, 부시가 대통령일 때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 왜 세상이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지냐고 분노했던 사람. 또한 인간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걱정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그는 신랄한 풍자로 사람들을 각성시키려 했다. 그러한 풍자에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풍자가 아니라 비난이 될 것이다. 고도로 세련된 비난, 이것이 바로 풍자 아니겠는가. 당하는 사람조차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그러나 이러한 풍자를 아무나 할 수 없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강자를 풍자할 때는. 사실 풍자라는 말은 약자에게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약자를 풍자할 수는 없다. 약자를 풍자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실 약자를 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니. 풍자는 강자에게 해야 하는 것. 강자를 풍자해 약자의 곁으로 강자를 내려보내는 것. 그것이 풍자다. 그러니 풍자를 통한 웃음은 사실 두려움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강자에 대한 두려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풍자를 통한 웃음.


이와 비슷한 말로 '유머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한 발 물러서서 안전하게 바라보는 방법이다'(126쪽)가 있다. 그는 평생을 웃음으로 이 세상을 이겨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풍자, 풍자를 통한 웃음은 바로 세상을 향한 그의 발언이다.


세상이 아무리 개떡같아도 살아야 한다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그의 삼촌이 했다는 말...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랴!"(129쪽)


그럼에도 그는 절망한다. 그렇게 신랄한 풍자를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기에. 그래서 뒷부분을 읽으면 슬퍼진다.


'나 역시 더이상 농담을 못 할 것 같다. 농담은 더이상 만족스런 방어 메커니즘이 아니다. ... 너무 많은 충격과 실망을 겪은 탓에 이제 나는 더이상 유머로 방어를 할 수가 없다. 웃음으로 처리할 수 없을 만큼 불쾌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까다로운 사람이 돼버린 듯하다.'(126-127쪽)


웃음으로 넘길 수 없을 만큼 세상이 망가져버렸다는 인식. 그럼에도 그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은 사람믈에게 웃음으로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127쪽)고 하고 있으니, 그는 웃음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는지도, 그것이 안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그는 신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 신에게 맡기기보다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한다.


'우리 휴머니스트들은 사후에 받을 어떤 보상이나 처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한 점잖고 공정하고 올바르게 행동하고자 노력한다. 우리 휴머니스트들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추상성에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사회다.'(81쪽)


이 얼마나 현실적인 말인가? 신에게로 도피하지 않고 자신이 발딛고 살고 있는 현실에서 해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자세. 그렇게 살겠다는 자세. 그것이 바로 예술을 하는 작가들의 일이라고.


'얘술은 삶을 보다 견딜 만하게 만드는 아주 인간적인 방법이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32쪽)


그렇다. 보니것의 글을 읽으면 영혼을 생각하게 된다. 사후의 영혼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영혼. 어떻게 살아야 내 영혼이 건강한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러한 작품들.


보니것의 신랄한 풍자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 우주의 전존재들에 대한 사랑. 그러므로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것에 마음 아파하고 있으며,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파괴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 절대로 안 된다고...


그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글들이 실려 있는 이 책.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으면 좋다. 여기에 촌철살인의 경구들이 그림과 더불어 실려 있으니, 그것들을 곱씹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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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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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수필집이다. 1948년에 태어났다고 하니 70을 훌쩍 넘어 곧 80이 되는 나이다. 예전에 60이 되면 이순(耳順)이라고 했다. 귀가 순해진다고... 그리고 70을 고희(古稀)라고 해서, 귀한 나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70이면 노인이라고 명함 내밀기도 그렇다. 80넘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90에 고종명해도 좀 이른 나이라는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되었다. 8899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젠 100세 시대다. 그런 시대에 60이나 70은 청춘이다.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70-80대의 몸이 이렇게 많은 인구를 차지한 적은 최근의 일이다.


몸은 아직 예전의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니,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여기저기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온다. 그렇다. 확실히 나이를 먹은 것이다. 몸이 그것을 일깨워준다. 아마 김훈도 그러리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자신이 아끼던 등산장비를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이야기가 있으니... 또한 병원에 가는 이야기, 친구들의 부음을 듣고 문상을 가는 이야기가 있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주 오랜 이야기, 6.25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이 분이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이듦. 지혜로워짐. 나이든 사람의 말을 흘려듣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큼 살아오면서 몸으로 겪은 지혜가 있기 때문이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나이쯤이면 말보다는 귀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순(耳順)이라는 말, 귀가 순해진다는 이 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자신의 잣대로 구분하여 듣지 않는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귀를 지녔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자신의 틀에 가두지 않고 그 사람 자체로 보고 듣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남과의 관계 정립에서 지혜로워진다. 또한 특정 경계에 매어 있기 보다는 경계를 허물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것이 어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은데... 요즘은 60-70대에도 어른스럽지 못한 나이든 사람이 많으니... 특히 정치권을 보라. 이들 대부분은 이순(耳順)인데도 귀가 순하기는커녕, 오히려 귀가 더 사나워졌다.


자신의 잣대를 굳건하게 지키고, 자기 틀을 절대로 깨지 않으려 하며, 남의 말도 자신의 틀에 끼워맞추는 듣기를 하는 경우, 그리고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물리적 시간이 몸을 채우고는 있으나, 현대 의학의 힘으로 과거 중년의 몸을 지니고, 정신은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필을 읽는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면 읽으면서 그 선입견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으니까.


김훈이 한 이 말... 


'나는 공적 개방성을 갖춘 글 안에 많은 독자들을 맞아들이려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사적 내밀성의 순정으로 개별적 독자와 사귀고, 그 사귐으로 세상의 목줄들이 헐거워지기를 소망한다. 글을 써서 세상에 말을 걸 때 나의 독자는 당신 한 사람뿐이다. 나의 독자는 나의 2인칭(너)이다.' (331쪽)


그렇다. 이 책은 김훈이 내게 건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는다. 물론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김훈은 내 앞에 없으므로. 하지만 일방적이지는 않다. 내 앞에 없는 김훈에게 말을 건네면서 읽을 수 있으므로.


이렇게 나와 작가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수필이다. 이런 수필을 읽을 때는 자신만의 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틀을 내려놓고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왜 그런지 생각해 보고. 속으로 반박도 해보고. 또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귀가 순해진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므로. 나 홀로만 세상에 존재할 수는 없으므로. 홀로들이 모여 함께하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므로. 


김훈의 사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 그러한 일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책에 실린 글 중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데... 순한 귀를 갖기 힘들게 하는 상대를 어떻게든 추락시키려는 언어들.


그런 언어들이 판치는 사회는 견디기 힘든 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김훈이라는 작가가 '말-언어'에 대해서 얼마나 고심하고 고민하고 글을 쓰고 말을 하는지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다.


더욱이 이 말,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말. 소통이 아니라 불통의 말. 그런 말들이 넘쳐나는 현실은 우리가 만들지 말아야 한다. 김훈의 이 말,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명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소통 불가능한 언어의 창궐입니다. 지금, 언어는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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