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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반역자들 - 역사에 도전한 여성 운동가 ㅣ 봄볕 청소년 4
조이 크리스데일 지음, 손성화 옮김 / 봄볕 / 2017년 3월
평점 :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여전하다. 이 말은 여성들이 아직도 남성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는 얘기다. 운동은 막힘이 있을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근에 채제공이 쓴 만덕전을 읽었다. 아주 짧은 글인데, 이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시 제주에는 여성들이 뭍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었다는.
그런데 흉년으로 백성들이 굶어죽을 때 백성들을 구휼해진 공을 세운 만덕에게 소원을 물으니, 서울과 금강산 구경이라고 했단다. 제주 여성이 할 수 없는 일. 만덕은 이 일을 해내고 만 것. 이렇게 제주여성에게 주어졌던 틀을 만덕은 깨고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는 만덕만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선구자 역할을 하는 사람. 비록 그는 힘들게 그 시대를 살아갔을지라도 그로 인해 세상은 좋은 쪽으로 한 발 더 움직이게 되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알게모르게 차별을 해서 여성을 역사에서 제외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만덕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지금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500년이 넘는 조선 역사에서 여성 인물들의 이름과 한 일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몇 명이나 들 수가 있을까?
조선시대 여성이라? 신사임당, 허난설헌, 황진이, 논개, 명성황후 그리고... 한참을 생각해야 한다. 이만큼 여성들은 잊혀진 존재였다. 분명 세상의 절반이라고 하는데도.
이 책은 서양 역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여성 10명을 소개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이들 열 명 중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들어본 적은 있었다고 어렴풋이 떠오를 듯 말 듯한 사람은 있었지만 정말로 몰랐다.
이들로 인해 세상이 좋은 쪽으로 움직였음에도, 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고 지내온 것은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는 반증이리라. 이런 책이 계속 나와서 여성들도 역사 속에서 제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기는 하지만. 한 번 살펴 보라.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올랭프 드 구주, 소저너 트루스, 사로지니 나이두, 루스 퍼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 존 바에즈, 레일라니 뮤어, 템플 그랜딘, 미셸 더글러스, 섀넌 쿠스타친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정도,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존 바에즈 정도.
올랭프 드 구주,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 이 사람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해도 이 말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 (24-25쪽)는 말.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썼다는 구주는 결국 단두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여성의 권리는 지금까지 계속 쟁취되어 왔으니...
흑인 여성으로서 노예 해방을 위해 일했던 소저너 트루스. 간디와 함께 영국에 저항하는 비폭력 운동을 펼쳤던 사로지니 나이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맞서 싸우다 경찰이 보낸 폭발물로 세상을 떠난 루스 퍼스트, 페미니즘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그리고 베트남 전쟁 반대 등 평화의 노래를 불렀던 존 바에즈.. 이들은 유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레일라니 뮤어에 오면 우리나라 한센병 환자들에게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우생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에 침투해 열성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 사람들에게 자식을 낳지 못하게 불임 수술을 했던 시대. 그런 폭력의 시대에 그것을 폭로해서 바로잡으려 했던 사람. 레일라니 뮤어.
자폐증을 앓아 오히려 동물들을 읽을 수 있게 된,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일한 템플 그랜딘. 인도적인 환경에서 동물들이 사육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 자폐증 환자에 대한 인식도 바꾸었고.
최근에 우리나라도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동성애에 관해서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정적인 관점을 많이 지니고 있으니... 하다못해 청소년 인권 조례에 성적인 지향 자유 항목이 있어서 조례를 거부하는 지방의회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인데.
앞서 간다는 캐나다에서도 얼마 전까지 군대에서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범죄 취급했다고 하니,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한 미셸 더글러스의 일은 남의 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셸처럼 이미 앞서 간 사람, 틀을 깬 사람이 있으니, 우리나라도 틀을 충분히 깰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
마지막 인물은 너무도 어린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섀넌 쿠스타친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캐나다에서도 원주민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다는 사실, 그들에게 제대로 된 학교도 지어주지 않아 원주민 학생들이 학교를 지어달라고 청원하고 시위하게 되었다는 것, 그 사실을 널리 알린 쿠스타친.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틀을 깬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단순히 소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신영복의 글에 있는 말처럼, 세상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한 사람들이다. 어리석은 사람, 우직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이들을 기억하자. 역사는 기억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에 대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