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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배움이 있는 수업만들기, 개정판
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 옮김 / 에듀니티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學校)를 토박이말로 바꾸면?
예전에 한자말을, 그리고 외래어,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는 운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글이 창제된지 600년 가까이 가지만 한글보다는 한자말이,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어, 외래어들이 많아지고, 거리에는 정체모를 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니, 그 때의 운동이 실패했다고 봐도 될텐데...
이 책 얘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왠 토막이말 할지도 모르지만, 말에는 우리의 사상이 담겨있으므로, 말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에 관한 책에서는.
학교를 토박이말로 바꾸면? 쉽게 답하면 '배움터'다. '배움터' 얼마나 좋은 말인가. 배우는 곳. 이 말이 학교라는 말이라면, 우리는 학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학교, 배우는 곳, 배움터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교육은 있되, 배움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배움은 실종되었고, 배움이 실종되었기에, 교육도 실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혁신학교'라는 이름을 걸고 배움을 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배움을 살리는 길로 유럽의 교육에서, 일본의 교육에서, 아니면 기존 우리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던 대안교육에서 여러 방법을 배워오고 있다.
혁신학교가 실시된 지도 이미 몇 년. 어떤 곳에서는 성공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어떤 곳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을 어느 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 각 학교의 교육이념과 실천이 달라지는데... 이 책은 수업을 바꿈으로써 학교를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에 있다.
학교 폭력, 부등교, 이지메 등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인권 교육, 인성 교육, 봉사활동, 체육 활동, 예술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이름에 충실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책이다.
학교는 배움터이기에, 배움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학교라면 다른 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아니, 부차적인 문제라는 문제의식하에 이 책은 출발한다.
배움이 있는 곳에 폭력이, 부등교가, 이지메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 왜냐하면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배움에는 자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사물도, 사람도, 전통도, 사회도 다 함께 참여하기에 진정한 배움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배움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일어나고, 이렇게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며, 듣기를 잘할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진심으로 자신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어찌 부정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런 것에 동의한다면 지금까지 학교가 배움터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는 '일반 중학교에서 교사는 교과의 전문가이며 특별 활동이나 생활지도나 진로지도의 전문가이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배움의 전체성에 책임을 지는 교육의 전문가로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교사의 일은 분산되고 단편화되어 전문직으로서의 성격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220쪽)'고 이 책의 지은이는 주장한다.
이걸 인정한다면 교사부터 바뀌어야 한다. 학생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교사 자신부터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하고, 이 책에는 많은 학교들에서는 이렇게 바뀐 교사들이 결국 학교를 바꾸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교사가 바뀐다? 이는 당연한 말이다. 우리네도 예전부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을 써오지 않았는가? 교사가 학생들 개개인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때 학생들은 인정받는다는, 소외되지 않았다는, 그럼으로 그들은 배움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수업에 잘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학생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게 되면, 그를 경험하는 교사도 역시 변하게 되어 있다.
교육이 가르치고 기른다는 의미의 교사 중심이지만, 교사는 전문가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열어두고, 항상 완결된 존재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완결되어가고 있는, 영원히 진행하고 있는 교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명심하면 교사들은 자신들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동료교사나 학부모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보여주는 일(수업 공개, 또는 수업 연구)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설렘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을 지니면 자신의 수업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라는, 또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면 교사는 변하지 않고, 자신만의 교과에 갇혀버리게 된다.
반면에 자신이 계속 만들어져 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교사라면 이번 수업에서는 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설렘을 지니게 되기에 자신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게 되고, 매번 그 수업 속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들끼리는 동료성을 형성하게 되고, 이런 동료성이 좋은 수업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건강한 학교 문화를 형성하게 한다.
이런 교사들이 존재하면 학생들도 변하게 된다. 물론 한 번에 변하지는 않는다. 그건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점인데, 학생들의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니 조급해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배움을 중심으로,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중심으로, 학생의 변화보다는 교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두면 '배움의 공동체'는 만들어진다.
이 책에서는 배움의 공동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배움의 공동체'로의 개혁이란 학교를 아이들이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장소로 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장소로 하여 학부모와 시민이 학교교육에 참가하여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 만들어가는 개혁을 의미한다.
이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실에 활동적이고 협동적이고 반성적인 배움을 조직하고 교사들 간에 교실을 서로 열고 수업을 서로 창조하는 동료성을 구축하고 교장의 지도성을 확립하여 직장의 민주화를 도모하여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립적인 존재로서 협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으로 학교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보호자나 시민과의 연대를 기초로 학교의 자율성을 구축하고 교육행정과의 관계도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234-235쪽)
꿈같은 얘기인가?
아니다. 바로 우리 학교 이야기다.
우리 학교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꼭 남의 학교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 그것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