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 - 학생인권이 교육에 묻다 오늘의 교육 총서
한낱.최형규.조영선 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가장 인권적인 교육이 가장 교육적인 교육이다. 그러면 동어반복이 되나?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생각하게 하는,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이라는 제목.

 

이런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은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어쩌면 당연한 조례를 가지고 반대파와 찬성파가 나눠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에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역이 몇 개의 지역이 있지만, 그 지역들에서도 과연 인권조례가 잘 지켜지고 있나 하면 그렇지 않다는데 이 책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책에 나오는 한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인권의 한계가 교육의 한계다.

 

이 구절을 보고, 샴 쌍동이가 생각났다. 늘 함께 붙어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 교육과 인권도 그러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우리는 억지로 어느 한 쪽을 떼어내려고 하지 않았던가. 특히 교육이라는 이름을 살리고, 인권이라는 부분을 없애는 쪽으로.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인권에도 계급과 계층이 있나? 하는 생각.

 

도대체 학생인권과 교권이 어떻게 상충된다는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다른 개념을 동일한 수준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이 책에서는 교권과 학생인권은 다른 개념이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는데, 그럼에도 학생인권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서는 아무래도 인권이라는 상위 개념에 학생이라는 하위 개념이 속하고 있단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인권은 사회 계급, 계층, 신분고하, 빈부, 인종, 연령 등을 막론하고 인간이 지녀야할 보편적인 권리이다. 이 보편적인 권리는 어리다고, 가난하다고,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다른 민족 출신이라고, 다른 계급에, 다른 계층에 속해 있다고 제한되거나 차이가 나서는 안된다.

 

그런데 왜 학생인권조례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얼마나 학생 인권이 지켜지지 않았으면 이런 조례까지 생길까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학생인권조례만을 이야기한다면 학생이 아닌 집단은 자기들 나름대로 또다른 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지나친 비약인가?

 

오죽 세계인권선언이나 유엔아동청소년권리규약이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면, 얼마나 유명무실했으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생각을 했나 싶어, 인권 후진국인 우리나라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러한 인권선언이나 규약들이 우리 사회에 관철되게 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하지 못했기에 학생이라는 특정한 집단을 놓고, 인권조례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자조감이 든다. 그러니 학생인권과 교권을 등치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

 

자, 이러한 보편적인 얘기를 그만한다면,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어떻게 교육에 들여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또한 문서로만 남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고민들을 모아 놓았다.

 

물론 학생이라고 하니까 학교 현장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고,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해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읽으면서 내 학창시절, 그리고 지금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학창시절,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 또 인권조례도 많이 사문화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인권은 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인권은 쟁취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권을 실현할 것인가, 이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에게도, 그리고 교사에게도, 또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고, 인권의식을 가지며, 인권을 지키려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교육이 해야 할 일이다. 교육에서 인권을 떼어내면 안된다. 떼어낼 수도 없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은 학생인권에 대해서 강조점을 찍고 있지만, 이는 곧 모든 이의 인권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인권, 그거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내가 하기 싫은 것,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이는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지혜 아니던가.

 

여기에 한 가지, 인권은 어느 집단, 어느 계층, 그리고 어느 나이대, 어느 경제상태, 어느 민족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사실. 우리는 누구나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이 사실이 교육이 되지 않으면 인권은 요원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교폭력, 멈춰! - 보살핌 우정 배움의 공동체 평화샘 프로젝트 2
문재현 외 지음 / 살림터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뜨거운 화두다.

 

학교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하고, 또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고 경찰들까지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기엔 다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배움에서도 생활교육에서도 학교에 그리 만족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보낸다. 아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도 행동도 학교에 규정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존재인가? 자아실현을 하게 하는 장소이어야 하는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공간이 학교이다. 학교는 지식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지식 습득에 뒤처지면 생활도 뒤처지게 된다. 자연스레 그런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집단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결국 성적, 성적 하는 학교가 폭력을 조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반복될 뿐만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된다.

 

청소년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폭력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단순한 한 때의 다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역시 정신적으로, 삶적으로 피폐해진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은 교사들이 평화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천결과를 책으로 내었다. 북유럽의 실천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고쳐서 폭력을 없애는 나름의 지침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침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폭력의 반대가 평화라는 사실, 보살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핌이 학교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자신들의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실천 중의 하나인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을 보자.

 

1.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누구나 실천하기는 힘든 이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멈춰!"를 도입한다. 괴롭힘이 있을 때 피해자가, 또는 주변의 친구들이 멈춰라고 말하고,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과정에서 역할극을 하고, 이를 다른 경우로까지 적용하여 일반화한다. 그래서 폭력을 단지 방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평화를 만드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 제도가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교사부터 선언해야 한다는 사실, 본인부터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겠다는, 폭력에는 끝까지 책임지고 대처하겠다는 그런 선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교사가 하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평화가 깃들도록 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아니, 반드시 교실에 평화가 깃들도록 해야 한다.

 

남학생의 사례에서 여학생의 사례, 직접적인 폭력에서 간접적인 폭력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그 해결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학교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사들이 꼼꼼이 이 책을 읽고 대처한다면 학교 폭력이 많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책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풀어가기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그 수준에 맞는 해결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데 있다. 담임이 거의 모든 시간을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초등학교와 담임이라고 해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중,고등학교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실천사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평화샘들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럴텐데, 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실천사례들을 정리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처하기보다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평화로운 학급, 보살핌이 있는 학급,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학습에 시간을 쫓기는 아이들에게서는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남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가 알아야 할 학부모 마음 학부모가 알아야 할 교사 마음
하이데마리 브로셰 지음, 이수영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학교, 교육, 우리나라에서 늘 문제가 되는 일이고, 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가려져 있지만, 학교는 폭력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문제 중의 하나가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 상황이 아닐까 하는데...

 

학부모와 교사는 학생을 사이에 두고 함께 가기도 하고, 때로는 대립하기도 하는 존재이다. 교사가 학생의 앞에서 학생을 이끄는 존재라고 한다면, 학부모는 학생의 뒤에서 학생을 밀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학부모와 교사를 파악하면 학생을 사이에 두고 이들은 다른 방향에서 학생을 볼 수밖에 없다. 앞에서 보는 학생과 뒤에서 보는 학생은 전혀 다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관점이 바람직할까. 꼭 어느 관점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이들이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지라도, 한 가지에서는 일치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발전, 학생의 바람직한 성장.

 

이것은 교사나 학부모가 모두 공통적으로 지녀야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을 사이에 두고 학부모나 교사는 갈등보다는 공존을 지향해야 하는 관계가 맞다.

 

교사와 학부모가 갈등을 할 때 정작 피해를 보는 존재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학생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학생을 망치게 되는 역설이 작동한다.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독일에서 이런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것은 독일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겪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지 하는 생각.

 

서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으로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교육의 목표를 이룰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교사와 학부모가 현명하게 공존할 수 있나, 하는 공존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불필요한 갈등은 많이 줄어들게 되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많은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어 설득력이 더 있으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

 

학부모나 교사가 읽어두면 서로의 입장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 배움이 있는 수업만들기, 개정판
사토 마나부 지음, 손우정 옮김 / 에듀니티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學校)를 토박이말로 바꾸면?

 

예전에 한자말을, 그리고 외래어,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자는 운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글이 창제된지 600년 가까이 가지만 한글보다는 한자말이, 그리고 최근에는 외국어, 외래어들이 많아지고, 거리에는 정체모를 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니, 그 때의 운동이 실패했다고 봐도 될텐데...

 

이 책 얘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왠 토막이말 할지도 모르지만, 말에는 우리의 사상이 담겨있으므로, 말에 대한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교육에 관한 책에서는.

 

학교를 토박이말로 바꾸면? 쉽게 답하면 '배움터'다. '배움터' 얼마나 좋은 말인가. 배우는 곳. 이 말이 학교라는 말이라면, 우리는 학교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배우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학교, 배우는 곳, 배움터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교육은 있되, 배움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만큼 배움은 실종되었고, 배움이 실종되었기에, 교육도 실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혁신학교'라는 이름을 걸고 배움을 살리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배움을 살리는 길로 유럽의 교육에서, 일본의 교육에서, 아니면 기존 우리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던 대안교육에서 여러 방법을 배워오고 있다.

 

혁신학교가 실시된 지도 이미 몇 년. 어떤 곳에서는 성공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어떤 곳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을 어느 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 각 학교의 교육이념과 실천이 달라지는데... 이 책은 수업을 바꿈으로써 학교를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에 있다.

 

학교 폭력, 부등교, 이지메 등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인권 교육, 인성 교육, 봉사활동, 체육 활동, 예술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이름에 충실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책이다.

 

학교는 배움터이기에, 배움에 충실할 수 있는 그런 학교라면 다른 문제들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고, 아니, 부차적인 문제라는 문제의식하에 이 책은 출발한다.

 

배움이 있는 곳에 폭력이, 부등교가, 이지메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 왜냐하면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깨닫는 과정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배움에는 자기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움에는 사물도, 사람도, 전통도, 사회도 다 함께 참여하기에 진정한 배움은 공동체를 형성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배움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할 때 일어나고, 이렇게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잘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며, 듣기를 잘할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진심으로 자신을 열고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어찌 부정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런 것에 동의한다면 지금까지 학교가 배움터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는 '일반 중학교에서 교사는 교과의 전문가이며 특별 활동이나 생활지도나 진로지도의 전문가이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배움의 전체성에 책임을 지는 교육의 전문가로서는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교사의 일은 분산되고 단편화되어 전문직으로서의 성격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다.(220쪽)'고 이 책의 지은이는 주장한다.

 

이걸 인정한다면 교사부터 바뀌어야 한다. 학생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교사 자신부터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하고, 이 책에는 많은 학교들에서는 이렇게 바뀐 교사들이 결국 학교를 바꾸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교사가 바뀐다? 이는 당연한 말이다. 우리네도 예전부터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을 써오지 않았는가? 교사가 학생들 개개인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때 학생들은 인정받는다는, 소외되지 않았다는, 그럼으로 그들은 배움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수업에 잘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학생들이 수업에 잘 참여하게 되면, 그를 경험하는 교사도 역시 변하게 되어 있다.

 

교육이 가르치고 기른다는 의미의 교사 중심이지만, 교사는 전문가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열어두고, 항상 완결된 존재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완결되어가고 있는, 영원히 진행하고 있는 교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명심하면 교사들은 자신들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동료교사나 학부모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보여주는 일(수업 공개, 또는 수업 연구)에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설렘을 느껴야 한다. 자신이 완성된 존재라는 생각을 지니면 자신의 수업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라는, 또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면 교사는 변하지 않고, 자신만의 교과에 갇혀버리게 된다. 

 

반면에 자신이 계속 만들어져 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교사라면 이번 수업에서는 또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설렘을 지니게 되기에 자신의 수업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게 되고, 매번 그 수업 속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들끼리는 동료성을 형성하게 되고, 이런 동료성이 좋은 수업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건강한 학교 문화를 형성하게 한다.

 

이런 교사들이 존재하면 학생들도 변하게 된다. 물론 한 번에 변하지는 않는다. 그건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점인데, 학생들의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그러니 조급해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배움을 중심으로,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중심으로, 학생의 변화보다는 교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두면 '배움의 공동체'는 만들어진다.

 

이 책에서는 배움의 공동체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배움의 공동체'로의 개혁이란 학교를 아이들이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장소로 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이 전문가로서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장소로 하여 학부모와 시민이 학교교육에 참가하여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 만들어가는 개혁을 의미한다.

  이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실에 활동적이고 협동적이고 반성적인 배움을 조직하고 교사들 간에 교실을 서로 열고 수업을 서로 창조하는 동료성을 구축하고 교장의 지도성을 확립하여 직장의 민주화를 도모하여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립적인 존재로서 협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으로 학교를 재편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보호자나 시민과의 연대를 기초로 학교의 자율성을 구축하고 교육행정과의 관계도 민주화할 필요가 있다. (234-235쪽)

 

꿈같은 얘기인가?

 

아니다. 바로 우리 학교 이야기다.

 

우리 학교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 꼭 남의 학교 얘기만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 동네에 있는 학교,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 이야기. 그것이 바로 배움의 공동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강수정 옮김 / 해나무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오래 된(?) 책이다. 이 책이 2003년에 나왔다고 하고, 우리나라에는 2004년에 번역이 되었으니, 벌써 8년이나 지났다. 과학분야에서 8년이란 천지개벽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간인데... 아마도 그동안 뇌과학 분야에서는 더 많은 성과들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들이 뒤집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오히려 이 책에 나온 가설들이나 주장들이 더 정교하게 증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뇌란, 완성되고, 고정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변할 수 있다는 뇌의 가소성에는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연일 언론에서는 떠들어대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새삼스레 떠들어대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청소년 문제는 늘 심각했음은 사실이니...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동조, 걱정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인데...

 

뇌과학의 도움으로 인간의 행동들이 뇌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으니,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는 이 책의 제목은, 행동만을 겉으로 보지 말고, 또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청소년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해결점을 찾자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고...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방법들은 이미 8년 전에 나온 이 책에 비해서도 한참 뒤떨어지는 방법들이니... 교육계에서만은 최신 뇌과학들의 성과가 들어오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것인지...

 

이들이 거칠게 행동하고, 일탈행위를 하고,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은 아직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전두엽은 발달하지 못했는데, 흥분과 모험을 일으키는 도파민은 왕성하게 분비가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물론 여기서는 다시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데, 일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 여기서 환경을 생각하는데... 자신의 뇌에 전두엽이 발달되지 않았다면, 외부에서 그것도 자신이 공감하는 사람이 전두엽의 역할을 한다면, 일탈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청소년의 상황을 이해하되,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런 환경을 교육에서 갖춰야 하는데, 단지 상황을 경찰에 넘기는 것은 이 책에서도 반대를 하고 있고, 또 체육활동만으로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체육활동만으로 자신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환경을 통해 제어하는 것이고, 지나친 체육활동은 피로를 유발하기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한다.

 

펀안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 그리고 적당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실수를 하되, 그를 바로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교육에 필요한 요소이고,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청소년의 잠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다른 문제보다 오히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잠을 보장하는 교육제도, 그걸 마련하는 것이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전문기자가 써서 쉽게 읽힌다. 뇌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분석하지 않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알게 된 내용을 쉽게 정리해서 썼기에 이해하기도 쉽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다음 관심이 있으면 뇌에 관한 전문서적을 찾아 읽으면 된다. 요즘은 좋은 책이 많이 나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 청소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우선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개괄적으로 알려주는 책.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유효성이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