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 - 교육사회학 관점
성열관 지음 / 학이시습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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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을 보면 우리나라 학교 교실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교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칠판을 바라보거나, 딴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의 모습만 떠오른다.


상록수에서 영신이 일제의 탄압으로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의 인원수를 제한하자, 창문에 매달려 공부하겠다고 애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은 더이상 없다. 어쩌면 사토 마나부의 말처럼 배움으로부터 탈주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지울 수 있을까? 학생들 개인의 심리적 요인으로, 의지박약으로, 성취 의욕의 상실로 돌릴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장 단순하고 쉬운 일이다.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너희들의 의지 문제야! 하려고만 해봐, 다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말하기는 쉽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교육에 관계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를 담당하고 있는 기성세대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다.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당신들 책임이야 라고.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교육은 한 학생도 소외됨 없이 모든 학생들이 잘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 공공의 책임이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소외되는 학생들이 있다면 그것은 인권이나 교육권 측면에서 큰 훼손이다. 그러므로 학생이 수업 시간에 소외는 것은 전적으로 공교육의 책임이라 볼 수 있다. 이에 수업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의식적 회복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단지 활성화된 수업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수업 소외를 인권, 사회정의, 인정, 권리 옹호의 문제로 인식하고 수업 자체가 평등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 언제나 수업을 바꾸려는 행위는 변별 시스템으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와 대결을 벌이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358쪽)


책임이 학생에게 있지 않고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아니 사회를 이끌어간다고 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있음을 명확히 한 것에 이 책의 장점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것은 기존의 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예측불가능의 세계에서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학습량이나 학업 목표때문에 자연스레 소외된다는 것이다.


그런 소외를 막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가에 대해서 번스타인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는 앞부분에 이어,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온 우리나라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교육이 이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이론에서 학업에 대한 질서와 생활에 대한 질서로 학교가 운영된다고 하는데, 둘 다 잘하는 학생을 '성실'의 분류 항목에, 학업 성취는 어느 정도 이루지만 생활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분리'에, 생활 질서에는 적응하지만 학업 성취에는 부족한 학생을 '간극'에, 그리고 둘 다 안 되는 학생을 '소외'라는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런 분류의 장점은 수업을 재조직할 때 고려할 사항을 찾기 쉽다는 것이다.(그만큼 분류는 문제를 단순하게 할 수 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그래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런 단순화는 문제의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왜 학생들이 생활 질서에, 또는 학업 성취에 문제를 보일까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가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책임을 학생에게 묻게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번스타인 이론이 지닌 장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의 저자인 성열관은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 당연이 당연이 되지 않음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교육이었으니...


교실사회학적 관점 취하기

모두가 존엄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존엄한 수업을 운영하기

국가교육과정 난도를 낮추기

1교시에서 6교시까지 협력의 매개로 수업하기

절대평가를 중심에 놓기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이 여섯 가지를 보면 학생들이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교육관료들이나 교사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즉,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교육관료, 교사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단지 교육 분야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것은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적인 책임은 교육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져야 한다. 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문제를 사회에 자꾸 제기해야 할 책임은 바로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사들은 어느 정도는 수업 시간에 자는 책임이 학생에게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는 학생들을 대할 때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고. 또 그런 학생들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협력 수업을 조직하는 등, 다양한 혁신학교 움직임을 보였다는 것.


다만, 교사들 역시 교육이라는 큰 체제에서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교육관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그대로 통보하는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저자가 제안한 여섯 가지가 요원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메리토크라시가 판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이런 제안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당연하지 않게도 하지 않고 있는,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고 하지도 않는 관료들. 교사들이 혁신학교 운동으로 수업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한 노력은 전체 틀을 바꾸지 않는 한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들은 결코 학생들 책임이 아니다. 그것은 기성세대 책임이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책임지고 한 학생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이 되도록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이 시급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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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 - 대한민국 교사로 살아남기
최선경 지음 / 프로방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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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텔레마케터를 비롯해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한다. 이들은 손님을 대할 때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만큼 감정노동을 하는 집단이 교사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는 확실히 감정노동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의 모습을 통해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매일매일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다.

 

학생들 앞에 서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사는 절대로 군림하지 못한다. 오히려 학생들의 감정에 맞춰 교육활동을 하려고 몸부림친다. 학생들과 정서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면 지식 전달부터 행동방식까지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의 관계만이 그런가. 아니다. 학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교사들, 또 교육관료들도 관계된다. 이 많은 사람들과 날마다 접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래서 교사는 감정노동자로서 나날이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자칫하면 이 많은 관계들 속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런 과정을 한참 거치게 되면 교사들은 자포자기가 된다.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억누르고 주어진 매뉴얼대로만 행동하면 그다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해진다.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이런 교사들과 정서적인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학생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요원해진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 다르다. 그렇게 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들 수 있는 것은 진정성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진정성. 그런 진정성을 지니고 지내다 보면 다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때부터는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꽤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이상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한다.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저자가 지키는 태도는 바로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태도다. 그런 태도가 학생들에게 전해지게 노력을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교사가 되어서 한 활동들, 다양한 수업 방법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의 저자인 최선경 교사가 말하는 것은 수업 방법보다는 왜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가르쳐야 하는가? 이 질문을 학생 입장에서는 왜 배워야 하는가로 치환될 수 있다. 즉 의미를 발견해야만 그 다음 활동들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교과 지식이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러니 다양한 수업 방식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을 습득하게 한다기보다는 삶의 태도를 형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사가 긍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생활을 하면 더 도움이 되고.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생활해야 하는 사람이 교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교사가 얼굴을 찌푸리고 수업을 하면 학생들에게 지식전달에서도 실패할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까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늘 사람을 만나는 직업인 교사는 자신의 표정, 행동 하나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긍정의 힘을 전파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 최선경 교사는 한 해에 단 한 명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단 한 사람조차도 변화시키기 힘들다. 다만, 그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교사는 그렇게 학생들에게 단 한번이 아닌 수많은 기회를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추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는 존재, 그런 존재가 교사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교사들은 긍정의 힘으로 교직에 있어야 한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나 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는 교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교사 자신도 긍정적이어야겠지만 교사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긍정적이어야 한다.

 

자신과 만나는 사람을 부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자신을 더 힘들게 할 뿐이니까.

 

이 책은 이렇듯 어려서부터 교사가 되어 지내온 20여 년을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특히 교사들에게 긍정의 힘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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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읽기 수업 - 어디로 튈지 모를 학생들과 함께한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실제
송승훈 지음, 코피루왁 그림 / 나무연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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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매체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전자책이 나와 종이책이 없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시대라고 해도, 종이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질 수가 없다. 전자책 읽기와 종이책 읽기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이사전과 전자사전을 예로 들어보면, 이제는 종이사전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단어를 검색하면 뜻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종이사전을 굳이 들고 다니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사전은 종이사전만이 지닌 특징이 있다. 강점이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손맛을 말하지 않더라도, 한 단어를 찾기 위해서 여러 장을 넘기면서 우연히 다른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의도와 무관하게 더 많은 낱말들을, 더 많은 쓰임을 종이사전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종이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과 다른 장점이 있기에 이 시대에도 종이책은 여전히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과서가 전자책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으로 이루어진 교과서가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종이책이 전자책보다 더 오랜 시간 잡고 있을 수 있끼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종이책 읽기, 과연 학생들이 많이 하고 있을까? 책은 넘쳐나지만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은 더 없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책읽기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왜? 책읽기는 곧 삶 읽기고,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책읽기 교육을 꾸준히 해온 교사가 있다. 그가 그동안 책읽기에 관해 낸 책만 해도 여러 권인데.. 이번엔 자신이 수업 시간에 한 경험을 담은 책을 냈다. 책읽기 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정시 확대를 논의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오히려 정시 확대가 왜 문제가 되는지, 정시 확대가 어떻게 학교 교육을 왜곡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도 해준다. 책읽기 교육과 정시, 수시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말들이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연결이 된다.

 

왜냐하면 정시가 확대되면 이 책을 쓴 교사가 한 책읽기 수업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송승훈은 이렇게 주장한다. 한 학기에 한 번만 지필고사를 보자고. 문제풀기로 학생들을 측정하지 말고 평소 수업시간에 한 활동으로 평가하자고.

 

그런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필고사를 줄여야 한다고. 소위 말하는 수행평가를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수행평가를 늘린다는 말은 과정중심 평가를 한다는 말이고,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깊이 있는 활동을 하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 시간을 지필고사를 한 번만 줄여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적어도 20%정도의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학 입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대학 입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으니, 결국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문제가 해결되고, 학력으로 차별받지 않는, 자격증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야 교육도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해야 한다.

 

생각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책읽기를 통해서 키울 수 있다고 하는데, 단지 읽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읽고 함께 이야기하고, 글로 써보고, 글쓴이를 만나 인터뷰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여러 방법이 함께 어우러진 교육이 바로 책읽기 교육이다.

 

그런 책읽기 교육, 한번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 여러 차례 실패를 하고, 그 실패를 통해서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한데, 이 책을 읽다보면 송승훈의 책읽기 교육이 자리를 잡은 것은 대학 입시에서 수시가 정시보다 많은 것에 큰 도움을 받는다. 우선 지필고사 비중을 줄이고, 수행평가 비중을 높였기에 문제풀이식 교육을 하기 보다는 생활기록부에 독서활동부터 다양한 활동을 쓸 수 있는 책읽기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 대학 입시과 관련이 있나 하는 마음에 편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의 사고력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또 책에 관심을 갖게도 된다. 물론 송승훈이 다양한 분야, 다양한 수준의 책들을 제공하고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게 된 책읽기 교육 방법은 받아들일 점이 여럿이다.

 

문제는 송승훈의 책읽기 교육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교사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이 근무하는 학교 현실에 맞게,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실펀해야 한다.

 

책읽기 교육에 관한 책이라고 꼭 교사들만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는 가정에서 책읽기 교육을 하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아이들이 책읽기 습관은 어릴 적에 형성이 되는데, 송승훈은 초등학교 5학년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이 때 책읽기가 평생을 좌우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때까지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설명해주고 있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조금 아쉬운 점은, 그렇지 못한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좀 힘든 방법이지 않나 싶다.

 

일주일에 두 권씩 책을 사라고 하는데, 책을 집 곳곳에 두라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지 않은가. 이들은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경제적 여유도 없다. 그럼에도 책읽기 교육을 해야 한다.

 

어떻게? 송승훈은 부모들에게 이 방법을 제안한다. 물론 이 방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겠지만, 이 방법은 이들의 자식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바로 교육감이나 교육장을 찾아가 학교에서 책읽기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면담 요청을 하라는 것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를 위해서, 또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면담을 제시하고 있는데, 결국 여유가 있는 층은 가정에서도 책읽기 교육을 할 수 있지만, 없는 층에서는 학교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이런 책읽기 교육을 담보하고 책임져 주어야 한다. 그것이 송승훈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각 교과에서 수업시간에, 절대로 학교 밖의 시간이 아닌, 수업 시간에 책읽기 수업을 해야 한다는 송승훈의 주장에 동감한다.

 

숙제? 하지 못한다. 아니면 베낀다. 그러니 이 둘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학교 수업시간에 해야 한다. 그 점이 핵심이다.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도록 교육 정책이 실시해야 한다. 지필고사를 줄이고,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 등 책읽기를 할 수 있는 기반부터 조성해야 한다.

 

이 기반 위에서 교사들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책읽기 교육을 하면 된다. 그런 책읽기 교육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에서 점점 멀어지는 학생들을 책을 가까이 하는 학생들로 변하게 하는 그런 책읽기 수업. 한번 해볼 만하다. 아니, 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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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 가지 교육 미신
데이지 크리스토둘루 지음, 김승호 옮김 / 페이퍼로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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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다. 이 말이 먼저 나온다.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답이 있다는 말인지... 최근에 'SKY 캐슬'이란 드라마가 이야기 중심에 서 있나 보다.

 

서울대,고대, 연대를 영어 앞 글자를 따서 이름도 찬란한 하늘, SKY라고 하는 것도 우스운데, 이 대학들 중에서도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는 드라마라고 한다. (사실 이야기만 들었지 잘 보지 않았지만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니...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에 무슨 창의융합, 배려, 관계지향, 민주시민, 공동체 그런 역량이 필요하고, 또 포함되는지 모르겠다.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닌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는 마치 다 끝낸 것처럼 다음부터는 공부하고는 멀어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어떤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들은 공허한 울림으로 되돌아오기 쉽다.

 

정말 답이 없다. 학교는 거대한 입시 기관이 된 지 오래고, 학교만으로는 부족해서 학원이 입시 기관으로 학교 위에 덧칠되어 있고, 이런 학원으로도 모자란지 무슨무슨 컨설턴트(사람들 참, 무언가 일을 할 때 외국어 잘 쓴다... 마치 있어 보이는 양)라고 하여 그 위에 또 덧칠이 된다.

 

여기서 지식이든 역량이든 어떤 것이 교육되는지 따지지 않는다. 오로지 좋은 교육은 좋은 대학에 보내줄 수 있는 교육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많이 대두되는 것이 - 통계가 잘못되었다든지, 잘못 인용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 학력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학력이라는 말은 진학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며, 진학이라는 말은 곧 좋은 대학에 얼마나 학생을 많이 보냈느냐로 결정이 된다. 여기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했느냐, 그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철저한 결과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데, 교육과정은 핵심역량 강화, 학생의 배움 중심 교육, 창의융합 교육, 공동체 정신 함양 등 좋은 말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지식위주의 교육은 안 된다고, 프로젝트 위주의 수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교육과정을 이루고 있는 기본 지침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영국 교육과정을 비판한 책이고, 그것도 2013년도에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지금 교육과정이 2015년에 개정된 것이고, 이때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교육과정을 참조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참조 자료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론적 배경-> 적용 사례 -> 왜 미신인가?라는 세 과정을 통해서 일곱 가지 주장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일곱 가지 미신을 먼저 살펴 보자. 아니 미신이라는 말보다는 신화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미신이라는 말에는 이미 좋지 않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신화라는 말에는 좋음이라는 의미가 함께 하고 있으니.  

 

지식보다 역량이 더 중하다

학생 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인터넷에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전이 가능한 역량을 가르쳐야 한다

프로젝트와 체험 활동이 최고의 학습법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의식화 교육이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이 교육 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역량이 어떻게 발휘되지?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역량이 발휘될 수 있나? 또 학생 주도의 수업이 가능해지려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런 지식도 없는 학생들에게 체험 해 봐라 토론 해 봐라 하면 무엇이 나오지, 제자리에서 겉돌거나 너무도 얕은 수준에서 학습이 끝나지 않나. 뭐가 있어야  전이가 되고, 아는 게 조금이라도 있어야 검색을 하지... 새로운 교육이란 과거를 몽땅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지식 위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위대한 과학자 뉴턴이 왜 위대한가?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 시작했기 때문인가? 그는 과거를 바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위대한 과학자가 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자신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서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77쪽)

 

스마트폰만 있으면 더 많은 지식이 검색되는 시대, 손 안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에 지식 운운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자. 검색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지?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검색하는 것과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검색하는 것이 같은가? 아마도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조목조목 자신의 근거를 들어서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이 일곱 가지 교육 미신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사회 경제적 차이가 교육에서도 그대로 차이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미 가정에서 많은 지식을 쌓고 학교에서 이런 학습을 하는 아이들과 가정에서 지식을 쌓을 기회가 없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이런 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출발점부터 다를 뿐더러 결과도 분명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교육, 평등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리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는 사람들, 이 점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이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교육인지...

 

하여 저자는 학교에서 반드시 가르쳐야 할 핵심 지식을 정리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 수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지식을 체계화 해서 교육해야 한다고, 그것이 먼저 시행되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학습자 중심, 프로젝트, 체험 활동, 역량 강화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또한 지식과 역량은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임을 명심하라고 한다. 교육현장에서 결코 지식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교육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사회적으로 방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가상 현실이 되게끔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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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31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의 반창고 - 노래하는 교장 방승호의
방승호 지음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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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장 큰 방을 쓰는 사람은? 답은 교장이다. 홀로 넓은 방을 쓴다. 회의실로 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사실 회의실은 따로 두면 되는데도, 무슨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겠다는 건지, 교장은 늘 정중앙,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그냥 들어갈 수 없어 행정실을 통하거나 교무실을 통하게 하고 있고.

 

그만큼 교장은 만나기 힘든 사람이다. 교사들도 그러한데, 학생들이 교장을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힘든 정도가 아니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사실 교장 얼굴을 모르는 학생도 많고 교장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학생은 손꼽을 정도다.

 

이 정도면 교육 현장에 교장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 군림하려? 아님, 그냥 그렇게 출세(?)하고 싶어 노력한 사람들이 한 자리 차지해야 해서. 이런 교장보다 더 불필요한 자리가 교감이 아닌가 한다. 교장을 보필하는 자리? 우습다. 보필이 아니라 교장이 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자리가 교감이다. 그러니 교감이 무슨 교육적 역할을 한다는 것인지...

 

이렇게 교장과 교감은 군림하고 있다. 학교에서. 그들에게 어떤 교육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교사가 아니다. 행정가다. 하지만 행정가임을 한사코 부정한다. 자기들도 교육자란다. 교육을 하지 않는 교육자.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교장-교감에 대해서 비판만 하면 되는가? 아니겠지. 그들도 한때 교사였을테니... 다만 과거를 잊고, 잃고 그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많아서 자연스레 행정가가 된 것이겠지만.

 

이런 교장들을 보다가 특이한 교장을 만나면, 사실 특이한 것이 아니라 교장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서양을 보면 교장이 상담사 역할을 늘 한다.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미국을 그렇게 따라하면서도 교장이 하는 역할은 따라하지 않으려 하는 이 모순.

 

특이한 교장 중에 방승호가 있다. 노래하는 교장, 상담하는 교장이다. 학생들 곁에 있어주는 교장이다. 언제든지 학생들이 교장실을 방문하도록 하는 교장. 아이들과 몸을 부딪히며 상담하는 교장. 놀이치료라고 해도 좋다. 모험기반 놀이치료라고도 하는데... 함께 몸을 부딪히며 아이들의 마음을 열어가는 교장이다.

 

교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참 애석하게도 다른 교장들에게는 이런 사례가 전파가 안 되나 보다. 다른 교장들은 여전히 큰 교장실에 홀로, 문을 꽉 닫아놓은 상태로 지내니 말이다.

 

이 책은 방승호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다. 아이들과 어떻게 만났고, 어떤 상담을 했는지... 사실 상담 사례야 아이들마다 다르고 그 아이들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니, 이 책은 그냥 방승호라는 교장이 아이들과 만난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상담은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기 위해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함께 몸을 쓰는 과정을 통해 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장 방승호는 서두르지 않는다. 아이들과 팔씨름을 하는 등 몸을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냥 함께 몸을 부대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 표정이 변하면 그때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은 마음이 열려야 진실하게 나올 수 있다.

 

물론 한번에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 한번에 해결되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알렉산더처럼 단칼에 자를 수가 없다. 하나하나 길게 어렵게 풀어가야 한다.

 

풀어가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상대를 온전히 이해해 줘야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생각, 감정으로 닫혀 있던 문을 몸을 움직임으로써 열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 교장 방승호는.

 

아이들을 재단하지 않는다. 아이들 모두는 하나하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 그들은 모두 존재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아이들이 자기를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는 생각. 교장 방승호가 하는 일이다.

 

아이들 마음에 생긴 상처에 반창고 하나 붙여주는 것. 그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그동안 몸을 잘못 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판단하고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 상처엔 우선 반창고를 붙여줘야 한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그 다음에야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런 교장. 분명 존재하는데, 다른 교장들이 좀 배웠으면 좋겠다. 공연히 목에다 힘만 주고 학교 생활을 하지 말고. 이런 교장이 늘어나야 교육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교장을 만나는 몇몇 아이들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런 교장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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