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 비폭력 교육혁명가 비노바 바베의 배움과 삶, 교육 이야기
비노바 바베, 김성오 옮김 / 착한책가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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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 바베

 

그에 대해 알게 된 건 평전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브라만 출신으로 간디의 제자로 평화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교육운동에도 참여한 사람. 나중에 토지헌납운동을 벌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운동을 한 사람.

 

그 정도였다. 그의 교육론에 대해서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토지헌납운동이 더 내 마음에 다가왔고, 그 토지헌납운동이 자비가 아니라 의무임을, 토지를 달라고 하는 일들이 애원이 아니라 권리임을 천명한 그에게 놀랐고, 또 그런 운동으로 많은 토지를 기부받아 공동체를 형성하게 됐다는데 더 놀랐었다. 인도란 나라 만만한 나라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

 

그런데 그가 교육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는 사실, 그것이 토지헌납운동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이탈림

 

그가 관여한 교육운동을 나이탈림(새로운 교육)이라고 한다. '새로운' 이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교육을 거부하고, 새시대에 맞는 교육을 하나는 의미도 있고, 새로운 인간으로 교육한다는 의미도 있다.

 

즉, 낡은 교육을 거부하고 새로운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교육을 '기초 교육'이라고도 하는데, 이때 기초는 유치원이나 초등 교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기초'를 배우게 하는 (분명 '가르치는'이 아니고 '배우는'이다. 이는 교사를 중심에 놓은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 그리고 교사 역시 학생이 되는 교육이라는 의미다) 교육을 한다는 의미다.

 

이 나이탈림에서 교사와 학생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이 지금의 교육처럼 학교라는 공간에, 교실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수업시간이라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교과서로 특정한 교사에게 배우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식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윤리가 기본이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비노바는 인도의 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특히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대학교육을 배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고, 또 그들은 지식위주로 배웠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자부심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노바는 대학을 나왔다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거나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행하는 것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좀더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비윤리적인 경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옳지 않은 행위를 덮으려고 하는 경우는 윤리가 중심이 되지 않고 오로지 지식이 중심이 된 교육의 결과인 것이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지금과 너무도 비슷하고, 비노바의 이 외침이 지금 우리에게 적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나이탈림은 이런 실생활과 괴리된 교육을 거부하고, 실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추구한다.

 

지행일치

 

그래서 비노바의 교육은 지행일치, 언행일치를 추구한다. 배운다는 것은 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행한다는 것은 가르친다는 것이자 곧 배운다는 것이다. 말이란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말은 곧 행동이다.

 

이것들이 따로 논다면 그것은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교육이 아니다. 하여 교사는 독립된 공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단지 학생들과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그의 생활 자체가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

 

직업인으로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교직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존재로서의 교사인 것이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에서도 전문가가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교사다.

 

그는 말로만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또 함께 함으로써 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게 하는 존재다. 따라서 말과 행동이 가르침과 달라질 수가 없다.

 

통합교육

 

비노바는 통합교육을 주장한다. 통합교육은 교과목을 통합한 것만이 아니라 일과 공부를 통합한 것을 말한다.

 

그는 일에서 멀어진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일을 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옷을 만드는 실잣기가 필요했고, 농사가 필요했다. 비노바는 교사는 직접 실을 잣고,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그 원리를 배우게 해야 한다고, 학생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교육의 우선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데 있다고 한다. 오로지 '가르치는 것'만 할 수 있다는 학생에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보는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이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오로지 '가르치는 것'만 아는, 실생활에서 자신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모르는 교사들만 양성하고 있지 않는가.

 

일을 할 줄 모르는 교사들이 일을 천시하는 교육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아니던가. 이런 교육을 비노바는 낡은 교육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생활과 괴리된 교육, 이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교육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비노바의 교육철학이다.

 

교육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

 

비노바의 교육에 관한 글을 읽어보면 교육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은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철학이다. 아이들이 어떻게 배우게 해야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을 보자.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철학을 주고 있는가? 아이들이 어떤 것을 배우고자 하는가?

 

적어도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의미있게 사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직 대학입학을 위한 교육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은 천시하고, 어떻게 하면 일을 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까 궁리하게 하는 교육을 하지 않는지... 대학을 나오고 과연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게 하는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부끄럽기도 하다.

 

자신의 생명을 잇는 존재들을 모두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기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실, 오히려 그런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현실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우리는 교육개혁을 운운하지만 늘 방법론에 치중했지 철학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이제는 교육에 대해서 진정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인지 교육 철학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

 

비노바의 교육은?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옛날 고리타분한, 그것도 발전하지 않고 농업이 중심이 된 인도의 이야기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가 이야기한 것들은 당시 인도의 상황에 맞는 교육론이었지만, 일이관지(一以貫之)라고 그의 주장이 지닌 핵심을 추구하면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의 교육철학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한 지식보다는 실생활과 연계된 지식을 추구하게 해야 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윤리가 중심이 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교사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말... 그는 나이 들어서도 자신을 학생이라고 지칭한다. 교사는 학생이어야 하고, 학생은 교사이어야 한다는 말...

 

이런 것들은 지금도 꼭 필요한 교육론이다.

 

이 책 글 하나하나가 참조할 것이 많은 교육에 관한 책이었다. 비록 마음이 더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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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창비교육총서 1
고용우 외 24명 지음 / 창비교육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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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시대를 막론하고 화두다.

 

언제나 중심에 있고, 사회의 고민을 집약하고 있다. 특히 그 나라 자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에서는 더더구나.

 

우리나라 역시 국어교육에서는 고민이 많다. 자기 나라 언어를 가르치는 일, 그것은 단지 언어를 가르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을 가르치고, 또 민족의 영속성을 지켜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 않았던가. 자국어 공부가 삶이자 목표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외국어에 밀려, 특히 영어에 밀려 천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게다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우리말은 다 알아요 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가. 굳이 배울 필요없다고... 배우지 않아도 말하고 쓸 수 있는데 왜 배우냐고?

 

여기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하면 국어교육은 계속 축소될 수밖에 없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교육에 학생들이 집중할 리가 없고, 학생들이 집중하지 않는 교과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국어교육을 우리말이니까라는 당위로만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제는 당위가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국어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일선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고민이 있다.

 

과연 국어교육을 받지 않아도 될까? 물론 몇몇은 자신만의 노력으로 학교 교육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국어교육을 받지 않으면 학교 교육을 넘어설 수 없다.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며, 더더구나 우리말로 된 문화를 향유하기가 힘들어진다.

 

글자는 읽을 수 있는데 의미가 들어오지 않는다거나 의미는 알겠는데 감동을 못 느낀다거나, 그냥 기계적인 언어만을 나열할 뿐이라던가... 그런 모습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국어교육과 관련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창비 교과서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국어교육 전반에 관해서 제각기 글을 써서 모았다.

 

그렇게 모은 결과물이 이 책이다.

 

국어교육에 대한 총론부터 시작하여 국어교육의 교육과정, 교과서, 그리고 국어교육의 각 분야에 걸쳐서 한 고민들과 실천의 결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예비교사들에게는 국어교육의 전반에 대한 지침서 역할을 할 책이고, 현직 국어교사들에게는 자신의 국어교육을 돌아볼 거울 역할을 할 책이고, 학자들에게는 국어교육을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책이다.

 

국어교육에 관계된 사람들로 독자가 국한되겠지만, 적어도 국어교육에 관계된 사람들은 한 번은 읽고 생각해 볼 만한 책이다.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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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독해 매뉴얼 -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독해력 강화 노하우
김배균 지음 / 작은사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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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는 예로부터 우리와 함께 했다.

 

예전 사람들도 시서화(詩書畵)라고 하여 시와 글(글씨)과 그림을 잘하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는 우리와 함께 있었고, 또 마음이 우울할 때나 기쁠 때나 시를 읊조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시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시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학교 시험에 시가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 음미하고 입으로 음미해야 하는 시를 찢고 자르고 해부하여 정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면서부터 시는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시를 답을 찾아내라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시란 어느 하나로 해석이 되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또 읽는 시간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고, 다르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는데...

 

무엇이 정답이다 하고 찾으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도 헷갈리고 문학적 감수성이 둔한 사람은 더욱 헷갈리는 것이 바로 시에 대한 시험이었다.

 

오죽하면 그 시를 쓴 시인들도 자신의 시가 문제로 나오면 틀리기 일쑤라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시는 배워야 한다. 언어의 사용법을 익히는데 시만큼 좋은 재료도 없고, 시만큼 마음을 울리는 문학 갈래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울린다는 점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현실적인 시험을 생각하자. 시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시를 잘 이해해서 점수를 잘 맞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수험생들은.

 

그러니 일반적으로 문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를 쉽게 이해하고 시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반면에 보통 이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만 나오면 고개를 젓고는 한다.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과 성향의 아이들(이건 보통의 경우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문과 이과 성향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려 않다)에게 시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문과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시를 정서와 행위와 시공간으로 나누어 그것을 파악함으로써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좋은 점은 시에 나온 언어로 시를 파악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시에 나온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하지 않고, 시에 나온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의 구호는 이렇다.

 

뜯어 모아 엮어라!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라!

 

시를 읽다보면 시에서 말하는 사람과 말해지는 대상,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과 행동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감정과 행동은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하니, 이것들이 바로 시를 이루는 구성요소다.

 

여기에 세세한 표현법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정서, 행위, 시공간을 가지고 시를 뜯어 모아 엮어서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언뜻 보면 시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우선은 시의 내용을 이해해야 즐기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시 감상으로 가는 첫걸음이자, 시에서 점수를 잘 받는 첫걸음을 떼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시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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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학교다 - 함께 돌보고 배우는 교육공동체 박원순의 희망 찾기 2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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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동체가 교육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근대화 되면서 마을은 학교에 교육의 자리를 넘겨주고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만다.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학교는 마을에서 독립하여 교육에 관해서는 전권을 휘두르게 된다. 마을과 교류없이, 교감없이.

 

현대에 들어와서 마을은 교육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가령 비행청소년(이 말이 적당한가? 담배 피고, 남녀가 몰려다니고, 함께 술 마시는 아이들... 한 때의 방황 또는 마음과 몸을 둘 데 없는 아이들을 우선은 이렇게 말하자)이 있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타이르려 하지 않는다.

 

우선 학교에 전화를 한다. 이 동네에 이런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에서 지도하라고, 그렇게 해도 되지 않으면 경찰서에 전화를 한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은 학교에 그들에 대한 처벌은 경찰에 넘기고 마을은 아이들의 교육과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존재한다.

 

이게 현실의 모습이다. 바람직한가? 이렇게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마을이 교육에서 멀어졌기에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맺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관계맺기의 실패가 두려움으로, 교육의 두려움이 포기로 나타나고, 이러한 포기가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생활하는데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도시라면 어디에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시골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요즘은 마을이 제 역할을 못한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마을로 대표되는 공동체는 해체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없는가? 다시 마을이 교육으로 돌아올 방법은 없는가? 아니다. 있다. 학교 자체의 교육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기에 학교에서 마을에 손을 내밀고 있다.

 

2015년인 지금 학교는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함께 하자고, 이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서 지역사회에서도 학교 교육에 적극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렇게 된 것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이 시장이 되기 전 희망을 찾는 여행을 했다. 그는 희망을 마을에서 찾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라고 하겠다.

 

공동체가 유지되는 가장 기초는 함께 삶이다. 함께 삶에는 함께 앎이 따른다. 함께 알기 위해서는 함께 가르쳐야 한다.

 

생활과 교육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서 전문적인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교사는 학교에만 존재해서는 안된다. 배움이 있는 곳에는 교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배우고자 하는 곳에는 늘 가르치는 사람이 존재한다.

 

다만, 찾지 않았을 뿐이다. 찾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마을이 교육에 참여하는,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는 곳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 책은 2010년에 발간되었다. 하여 한 달이 멀다하고 급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참으로 먼 옛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 먼 옛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것은 다 빨리 빨리 변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느린 속도를 지닌 곳이 바로 학교이기 때문이다. 이미 5년 전에도 마을과 학교가 하나되는 이런 활동들이, 이런 장소들이 존재했음에도 얼마나 확대되었느냐 하면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오히려 줄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공동체가 생겼어야 했는데, 공동체들이 사라지고, 학교가 더욱 비대해지는 현상이 지금까지 계속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귀하다. 우리에게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 그런 움직임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고, 미래형이라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과 학교가 함께 갈 때 아이들은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교육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지금 제도권 교육에서 마을에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이런 활동들이 있었기에 가능함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이미 유명해진 풀무학교로부터 시작한다. 풀무학교는 학교와 마을이 하나가 되어 교육을 해나가는 전범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아예 마을공동체가 되어 생산과 소비, 교육이 함께 되어가고 있느니, 풀무학교로부터 시작한 것은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풀무학교에서 시작하여 '대안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공교육에서 달라진 초등학교를 소개하고 있다. 아이들의 심성이 형성되는 초등학교 시기에 마을과 하나되는 학교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 교육에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제도권 교육에 이어서 학교 밖에서, 그러나 마을 안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교육공동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어른과도 연결된 명실상부하게 마을공동체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공동체들은 지금까지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기에, 앞으로 통섭의 시대, 융합의 시대에 마을과 학교가 함께 가려는 노력을 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에 가망이 없다고 할 때 박원순은 교육에도 분명 희망이 있다고, 그런 희망이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다고 그 희망들을 찾아 보여주고 있다. 5년 전 일이다.

 

그리고 이런 희망을 보여준 지 5년... 우리 교육은 과연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는가? 우리는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 학교가 과연 마을 속으로 들어갔는가? 마을이 학교 안으로 들어왔는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교육혁신지구 등등의 말로 마을과 학교가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지금은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을 이 책에서 사교육걱정없는 세상의 송인수가 말했듯이 정치권에만 맡겨서는 안된다.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도록 시민들이, 바로 우리들이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좋은 때 아니던가. 교육이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때는 지났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는 지금이. 이미 우리는 마을이 학교가 되고, 학교가 마을이 된 사례들을 몇년 전부터 만나지 않았던가. 이제는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자신의 마을에서 실천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런 희망이 바로 길이다. 우리 교육이 가야 할 길. 그 길에 우리 아이들은 행복은 웃음을 지으며 다니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은 또 우리들을 모두 웃게 할 것이다.

 

그런 희망, 길... 아이들의 행복은 웃음, 어른들의 행복은 웃음. 우리 사회의 행복이다. 이게 우리 교육이 나아갈 길이다.

 

그 오래된 미래(참 이 말 좋은 말이다). 이 책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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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한 수업 - 평범한 아이를 특별한 아이로 바꾸는 기적의 교육법
레이프 에스퀴스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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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이 잘돌아가고 있을까?

 

답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별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까지도 한국 교육을 본받자고(이 사람 참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종문제로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갔으니, 그런 나라를 교육이 잘되고 있는 나라라고 하기엔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무시할 수 없는 나라다. 50개 주에서 자기들만의 법이 있어서 나름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자치들이 무서운 힘으로 작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도 많지만 해결책도 많고, 문제 교사도 많지만 좋은 교사도 많은 그야말로 다양성이 살아 있는 나라다.

 

이래서 문제가 많음에도 미국이 아직도 세계 최강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교육에 대한 책을 읽으면 미국 교육이 지닌 문제점을 잘 알 수 있는데, 이들도 역시 교육당국의 압력이 너무 세고, 또 표준화시험이라는 것을 실시함으로써 학생들을 시험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상태에서는 사람다운 공부, 원리를 알고 즐기는 공부를 할 수가 없는데, 이런 현실에서도 교사들에 의해서 제대로 된 공부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우리나라 역시 교사들의 자율권보다는 교육당국의 힘이 너무 커서 거기에 종속되고, 또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입시에 아이들이 찌들리고 있는데, 이를 이겨나가는 것은 결국 교사들의 노력이라는 점을 미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 초등학교 5학년이 대상이긴 하지만 레이프 에스퀴스 선생님이 한 교육은 단지 초등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교육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는 읽기, 쓰기, 수학, 역사·지리, 과학, 음악·미술, 체육, 경제 시간으로 나누어 자신이 한 활동을 안내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에스퀴스 선생님은(이 책에서 아이들에게 그는 레이프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으니, 다음부터는 레이프 선생님은 으로 하겠다.) 자신이 중심이 아닌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수업을 하고 있다.

 

레이프 선생은 아이들이 독서를 좋아하게 만들고(그래서 그는 꼭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을 모두 미리 읽어본다), 글쓰기를 꼭 하게 만들며, (이 반 학생들은 한 학년이 끝나갈 때 이미 한 작품집을 가지게 된다), 수학을 문제풀이 중심이 아닌 원리를 깨우치는 쪽으로 활동을 통한, 또 고민과 협동을 통한 공부를 하며, 역사와 지리를 알아야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국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와 지리도 공부하며,(그것도 암기식이 아닌, 영화와 이야기가 결합되고 학교 행사와도 결합하여 진행된다), 성적으로 인해 자칫 소홀하기 쉬운 음악,미술,체육이 생활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인식하고 아이들이 반드시 참여하게 하며(그러나 즐겁게), 한 학기 동안 반을 살아있는 경제체험을 하도록 운영을 하고 있다.

 

이렇게 8교시로 나누어 자신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레이프 선생은 시험을 중시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게 한다는 점에서 그는 아이들의 성적에도 신경을 쓴다.

 

다만 이것이 주가 아니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느냐, 왜 공부하느냐는 것이 주가 되고, 공부는 그 사람이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실천하고 있다.

 

즉, 시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서 바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가르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이고, 그의 학생들은 이미 훌륭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껏 부럽기만 한 그의 교실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는 무한정의 노력을 한다. 주말도 반납하고, 자신의 돈도 학생들을 위해 쓰고, 아마도 그가 사명감이 없었다면, 또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해가는데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육을 위해 자신 개인의 생활을 희생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 아이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약속은 꼭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참여하는 수업을 할까를 고민하는 그런 교사.

 

읽으면서 부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우리에게도 이런 교사들이 많이 있을텐데, 자꾸만 외국에서 사례를 찾는 것은 아닌가 하고.

 

외국의 사례에는 감탄하면서 우리나라의 사례에는 시기와 질투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찌됐건 우리나라 교육이 여기까지 온 것은 교사들의 힘일텐데... 우리나라 교사들에게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그들의 교육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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