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데시벨 존스(소설 속 등장 인물)를 찾아라'로 할까 잠시 고민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록밴드 '앱솔루트 제로스'를 통해 약 30초 가량의 인기를 누린 데시벨 존스의 이름이 우연히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라는 경연 참가자 후보 목록 가장 마지막에 실린 것을 본인이 알게 된 날, 전 지구인들은 이 대회 소식을(이런 대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포함해) "동시에" "가장 친숙한" 방식으로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 즈음에 최종 경연이 끝나고 이야기도 함께 막을 내린다.

솔직히 이 소설을 어떤 태도로 읽어야할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지루하고, 딱히 흥미가 생겨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분으로 300페이지대에 진입하고 나니 이 감정의 정체를 찾아내고 싶어졌다(번역본 기준으로 이야기는 딱 417페이지에서 끝난다). 나는 SF를 좋아하고 음악도 두루 좋아하는데, 게다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대중문화 레퍼런스가 책장 곳곳에서 팡팡 터져나오는 작품을 어째서 이렇게 무감하게 읽고 있는지 근본적인 원인이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월리를 찾아라》를 떠올렸다.

어릴적 나는 이유를 모르게 《월리를 찾아라》를 상당히 좋아했다(비록 내가 사랑하는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는 왜 우리가 백인 남자를 쓸데없이 찾고 다녀야 하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마는). 이 책이 내게는 막내 삼촌네 집에 가야만 잠깐씩 읽을 수 있는 신문물이었는데 지상파 채널에서 방영해주던 TV판도 즐겨 봤다. TV 만화를 보면서는 째깍째깍 초 시계가 흐르는 동안 브라운관 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월리를 찾는 식이었다. 이후 성인이 되고 이 책을 틈나는 대로 모았다. 아마 시리즈별로 해서 모으다 만 게 총 6권쯤 된 것 같은데(듣기론 저작권 문제 때문에 한국어판은 나오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다) 사놓고는 그냥 꽂아만 두다가 올해 초에 런던 체류 생활을 접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전부 챙겨다 조카들에게 가져다 줬다. 그러고는 조카들이랑 같이 엎드려서 월리를 찾는데 어릴 때와 달리 이젠 내게만 월리가 너무 쉽게 나타나 못 찾은 척 시침을 떼느라 진땀을 뺐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말하자면 내가 '월리'를 찾으며 느낀 재미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같은 논리 요소만을 따지자면 읽을 거리가 없는 이야기다. 내 초반의 접근이 일종의 독서 실패를 낳은 것처럼. 대신 작가 캐서린 M. 발렌티가 그려낸 세계를, 그의 시선을 쫓아가며 부지런히(매우!) 머릿속으로 함께 따라 그려가며 읽어야 하는 이야기다. 제목 역시 이러한 일환으로 붙인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이 이야기를 별안간 재밌게 읽게 되었느냐? 하면 신묘한 우주의 힘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그렇진 않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만으로 눈앞에 바로 보이는 월리가 더 꽁꽁 깊숙한 곳으로 숨어드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대신 일종의 검토서를 쓰는 마음으로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를 열심히 고민해 보았다. 그 고민의 결론을 이 책의 제목을 이용해 간단히 설명해보겠다. 우선, 이 물이 풍부한 행성 지구의 지성체들을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단어를 아는 개체와 모르는 개체로 나눈다. 그런 다음 이 단어를 알게된 지 오래지 않은 개체를 추려본다. 알게된 지 오래지 않는다는 건 호기심의 샘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임을 뜻한다(즉 다분히 상대적인 기준이다). 이 집단이 내 생각에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가장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들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캐서린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 레퍼런스 다루기에 능하고 수다스러운 닐 게이먼이나 닉 혼비 같은 남자 작가들의 이름이 몇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의 끝에서 세 번째 페이지에서 만난 이름 '더글라스 애덤스'가 내게는 이 그룹을 대표하는 네임태그 같은 인사다. 이제는 내게 다소 권태감을 느끼게 하는 이름들이라고 할까. 아직 그들의 책을 미련 없이 내다버릴 만큼은 아니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를 통해서 캐서린 M. 발렌티라는 이름이 새로이 “어떤” 여자 작가들을 대표하는 네임태그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SF를 사랑하고, 대중문화에 관해서라면 밤낮 없이 떠들어댈 수 있는 아주 수다스러운 여자들이 보이지 않는 연대라는 끈으로 묶인 그룹으로, 파편화되지 않은 패거리로 인식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 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넘치도록 담겼으면 좋겠다. 그 즈음이면 나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 즈음이라면 이걸 다시 읽을 차례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테니까. 아참, 방금 이 그룹을 대표하는 이름은 그냥 '조 월튼'으로 바꿨다. 미안합니다, 캐서린…(?)

코로나 19의 여파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취소된 2020년의 5월, 팬들에게는 그 허전한 마음을 이 책 《스페이스 오페라》로 달래보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그런 국가별 음악 경연이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야 말긴 했지만. 그러고 보면 《스페이스 오페라》는 여러모로 어딘지 "있지도 않은"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덕분에 10년 전쯤 뭣도 모르고 뛰어든 밴드(1달만에 그만둠) 합주 연습 때문에 들은 이후 아주 오랜만에 '건즈앤로지스'의 음악을 찾아 들었다. 여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더 멀어져가는 중이지만, 어느덧 좋아하는 것들 속에 놓여 지내게 된 삶 속에서 건즈앤로지스의 음악과 이 책 《스페이스 오페라》는 내가 얼마나 "내가 재밌는" 것만 하며 재밌게 지낼 수 있었는지를 또, 앞서 그러기 위해서 셀 수 없이 겪고 쌓아올린 시행착오와 성취를 깨닫게 해줬다는 점에서 제법 즐거운 시간 낭비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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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자금을 털어 장난감 가게를 연 사람이 '미란다'뿐이라는 착각―그리고 그에 관한 기타 등등의 오해, 《이것도 출판이라고》




* 제목을 뭘로 하면 좋을까 하다가 《FEMINISTS DON'T WEAR PINK and other lies》로 대표되는 작가이자 활동가인 스칼렛 커티스의 시리즈물 이름을 애매하게 패러디해 봤다. 대체 몇 권부터 시리즈라고 지칭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 답을 구하는 일은 좀 까다롭지만 어쨌건 이미 두 권의 책이 나왔으니 이를 시리즈물로 소개하는 데 동원되는 핑계는 확실히 줄어들지 않았을까? 물론 저는 1권도 시리즈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오늘의 리뷰 내용은 살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풍이라고 미리 말해둔다. 생각나는 말을 최대한 줄이기 보다는 괄호로 묶어서라도 장황하게 늘어놓겠다는 뜻이다(ㅋㅋㅋㅋㅋㅋ).

BBC1의 유명한 TV 시트콤 <미란다>의 원작 혹은 모티프라고 할 수 있는, BBC 라디오2에서 2007년 방영한 라디오 드라마 <미란다 하트의 장난감 가게Miranda Hart's Joke Shop>에서 '미란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신탁 자금을 장난감 가게를 사는 데 덜컥 써버린다(신탁 자금이란, 말하자면 상속을 예비해 양육자가 어릴 때부터 찬찬히 돈을 붓거나 부자라면 아예 처음부터 거금을 할당해 놓는 보험 같은 느낌인데,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작품들에서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유산 상속'이라는 단어가 제각각의 거리감을 갖는 것처럼 사실 신탁도 모두가 상속 받는 것은 아니다. 채널4에서 제작한 <데리 걸스>에서도 이를 소재로 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와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 '미란다'는 성인이지만 성인에게 으레 기대하는 정형화된 삶의 모습에 거부감을 갖고 이를 친구이자 동업자인 스티비 그리고 카메라 렌즈 너머에 있는 "우리"에게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미란다'와 이 자전적인 캐릭터로 관객 앞에 선 배우 미란다 하트를 모두들 처음에는 조금 별나게 여긴다. 나는 그게 어쩌면 '질투'의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속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하며 살고 싶지만, 자신이 체면을 생각해 차마 '저지르지' 못하는 일들을 저지르며 (그럭저럭) 행복하게 사는 누군가를 손가락질함으로써 용기가 부족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기분이라고 할까.

여기에, '미란다'가 신탁자금을 털어 장난감 가게를 사는 동안 자신의 퇴직금을 털어 1인출판의 길로 뛰어든 또 한 사람의 미란다가 있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말하자면 '미란다'에 의한, '미란다'에 관한, '미란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만('미란다'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게 전부라고 하기에 이는 조금 성에 차지 않는 설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저자가 고른 첫 책이 미란다 하트의 《Is it Just Me?》 였던 게 뒷목으로 소름이 오도도 끼치는 운명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출판사 책덕의 코믹릴리프 시리즈 첫 번째 책인 《미란다처럼: 눈치 보지 말고 말달리기》 출간 소식을 처음 알게 됐을 때 이야기를 아주 잠깐 해보려고 한다. 당시에 나는 첫 직장을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칩거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한가롭고도 조금은 울적하게 거실 TV를 차지하고 누워 <콜 더 미드와이프>를 보면서(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데 조산사들에 관한 이야기로 시즌1 2화에서 미란다 하트가 신입 조산사로 합류한다. 솔직히 말하면 미란다 때문에 시작한 시리즈라서 딱 3편 쯤 보고 그만뒀던 기억인데 어쨌건 미란다가 연기한 '첨니'의 첫 등장 에피는 추천한다. 귀여우니까…) 가향 청포도 냉침차를 연거푸 마시다 말고 갑자기 미란다를 검색해보았다. 한 블로그 포스트로 책의 표지 그림을 본 직후 내가 느낀 감정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결이 비슷한 질투였다. 내가 게으르게 누워 <콜 더 미드와이프>를 보는 동안 누군가는 부지런히 한국어로 미란다 하트의 이름을 새긴 책을 만들었다니……. 하지만 되돌아보면 아마 코믹릴리프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행길에 호기롭게 산 《YES PLEASE》와 《Is It Just Me?》를 절대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나라 말을 쓰는 저자의 책이 자국어로 번역 출간돼 손쉽게 구매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행운이란 새삼 참 감사하고도 복된 일이다.

이후 두 번째 책, 에이미 폴러의 《예스 플리즈》 크라우드 펀딩이 있은 2017년 펀딩의 리워드로, 번역가이자 편집자이자 또, 책덕의 대표인 저자를 뵙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나도 앞으로 (남 신경 덜 쓰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제법 한 탓인지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번역에 애매모호한 관심을 보이던 조금은 수상한(?) 후원자인 내게 저자는 직접 쌓아올린 시행착오와 성취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눠주고 또 격려해주셨다. 그 귀중한 조언들이 내 삶에 직접 영향을 끼치게 된 건 또 조금 나중 시점의 일이지만, 저자가 자유일꾼을 표방하며 운영하는 책덕의 가치가 다음 문장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왕이면 남의 실패에서 배우는 게 좋다."

- 프롤로그, 방구석에서 세상의 구석으로 중에서


2천년대 초반 원하면 뭐든 배울 수 있다던 소위 '인터넷'의 시대를 지나, 현재 우리는 "정말로" 원하면 무엇이든 최소한의 인프라와 적은 비용으로 배울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 재밌는 점은, 이런 가성비의 시대일수록 "제 신탁 자금으로 장난감 가게를 사도 될까요?"라든지, "1인 출판사를 세워 책을 내도 괜찮을까요?" 같은 질문에는 모두들 입을 모아 "절대 그러지 말라"는 답을 한다는 것이다. 2016년, 내가 처음 한겨레 센터에서 출판 번역 강의를 들었을 때도(내겐 스무 살 경 아르바이트 해 번 푼돈으로 처음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이후 나름 최고의 일탈이었다) 같은 수업을 들은 나보다 조금 더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번역가가 될 수 있나요?" 같은 질문에 "너는 그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니(20대 후반이었다) 우선은 출판사에 취직해 편집자로 경력을 쌓은 다음 번역을 해보아라" 같은 답을 해주었다(물론 정말 진심어린 친절한 답변이었고, 사실 그분 역시 어떻게 하면 번역가가 될 수 있나 하는 물음에 답을 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 수업에 등록한 거였을 테니 둘 다 뾰족한 수가 없기로는 매한가지인 처지였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 다른 어떤 논리적으로 작동하는 개체였다면 답을 찾았으니 다른 질문으로 옮겨갈 수 있었을 테지만, 사실 애초에 우리가 궁금해하는 질문의 답을 우리는 내심 정해놓고 있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그 질문에 "예스 (OF COURSE)"라는 답을 하기 위해 그 과정을 쌓아간 사람의 기록이다. 이는 '임프랍(improvisation)'이라 줄여 말하기도 하는 즉흥 코미디의 먼지 냄새 풀풀 날리는 오랜 불문율이기도 한데, 우선은 "예스"라고 답한다. "YES! And……" 그 다음을 어떻게 잇느냐에 따라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솔직히 대부분의 경우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야유를 하거나 손에 들고 있느라 잔뜩 눅눅해진 토르티아 칩스를 무대로 던질 것이다. 물론 3-3 번째처럼 관객 매너에 어긋나는 인권 유린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코미디언도 사람이니 뭐, 매번 웃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름의 행복을 찾고 충만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을 비뚤어진 감정으로 대하며 치졸한 질투나 일삼는 (한 때의 나 같은)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으려면, 우선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이 늘 부족한듯 하면서도 공허함만이 넘쳐나는 삶을 뭘로 채워나갈 것인지.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아주 고될 것임을, 어떤 이치인지는 몰라도 모두가 쉽게 안다. 하지만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문제의 답은 하나만 존재하지 않으며(심지어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하나라고 배운 그 객관식 문항의 답 마저도 하나가 아닐 때가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너무 여러 개라 머리가 아파 하나로만 믿게 돼 버리는 게 소위 '어른들의 삶'이라 일컫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미란다'처럼 솔직하지 못한 이 세계의 어른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느끼는 이들이다. 빠르고 편하게 도출되는 하나의 답 변두리에 숨어있는 또 다른 답의 지표를 발견하거나 혹은 그 발견의 믿음을 놓지 않는 이들이다. 저자 역시 그렇게 해서 아주 멋진 답을 찾아낸 어른이며, 나도, 우연히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당신도, 우리 모두는 경쟁하지 않고도 답을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는 그 경험을 주변에 나누며 다른 이들이 각자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이것도 출판이라고》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마음, 그것과 그럭저럭 엇비슷한 마음으로 나도 이 리뷰를 쓴다.

돌아가지만 "안전한" 길의 존재를 그 누구보다도 믿고 싶어한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제는 모든 목적지가 미로를 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방법을 통해 몇 년 전 내가 던진 물음의 답을 얻었다. 쓰면서도 너무 약팔이 같은 기분이 드는 말이지만, 사실 답은 당신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그 답으로 향하는 길 역시 당신의 눈앞에 있다. 그리고 당신이 보려고만 하면 이내 모습을 드러내줄 것이다. 그 기적을 믿고 싶은 자들이여 이 책을 읽으십시오(죄송합니다 진심입니다……).

PS1. 뭔가 이렇게 마무리하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신 바로 어제 따끈따끈하게 전해들은 사소한 성취를 공유한다. 지난 달에 작업한 영화 <Never, Rarely, Sometimes, Always>를 납품할 당시 영화가 너무 좋아서 스스로도 좀 투머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을 하나 제안했다(극장 개봉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VOD/스트리밍 쪽은 자막 작업자의 권한이 그렇게 크진 않다). 업체에서는, 제안해준 것은 고맙지만 그냥 음차표기한 제목을 쓸 것 같다고 답을 주었다. 그런데 최근 영상심사 목록에 등재된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이 내가 제안한 것으로 채택된 것을 바로 어제 알게 되었다. 소셜미디어상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하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뭔가 내가 작업한 영화가 극장에라도 걸린 것처럼 가슴 벅찬 기분으로 맞이하게 되는 주말이다. 그리고 어젯밤 조금 눈물을 찍으며 마지막장을 덮은 책의 리뷰를 부지런히 업로드해본다. 작업한 영화에 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 이 영화의 서비스가 시작되면 해볼까 한다.

PS2. 나는 어릴 때부터 거의 내내 IT 분야를 맴돌았기 때문인지, 앞서 언급한 어떤 친절한 귀인으로부터 "편집자가 되어 경력을 쌓은 다음 번역가가 되어라"라는 답을 얻은 일화 이후로(사실 나와 같은 수업을 듣고 스터디도 함께 한 어떤 수강생분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런 루트로 번역가가 되셨다) 대체 편집자는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건가, 를 넘어서 "편집자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하는 의문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편집자 출신이자 여전히 현역 편집자인 저자 덕분에 아주 확실하게(?) 해소가 되어 마음이 후련하다. 올해 초에 본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통해 "영화 프로듀서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에 관한 의문을 해소한 것만큼이나 통쾌한 경험이었다. 사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영화다. 이것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리뷰를 마칩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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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천년대 중후반엔 나도 일본 소설을 좋아했다. 매체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10선과 내가 관심 갖는 책이 크게 다르지 않던 시절에 나는 국내에서 발간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전부 모아야지 다짐했었다. 그 마음으로 산 마지막 책이 《왕국》 시리즈였고 이후로 10년 이상 이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즈음에 이력에 한 줄이라도 채워넣자고 난이도 낮은 JLPT 급수를 취득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일본과 일본 소설에 관해 내가 아는 배경지식은 딱 거기서 멈춘 기분이 든다. 이후에 아는 척 좀 하고 싶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으면서 회사를 다녔고 내게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여자 같다는 말을 칭찬 삼아 해준(ㅋㅋㅋㅋㅋㅋ) 남자와 맨정신으로 잘 지낸 과거도 있으니 이 정도면 이 정도면 제법 훌륭한 스까적 이력 아닐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체하며 나는 이제 일본의 문화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더러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어는 내가 공부가 아니라 실사용성을 따지며 배워본 첫 외국어고 또, 이 나라가 10대에서 20대 중반까지 내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문화권인 탓인지 아직도 일본 영화에 입힌 영자막보다는 어설프게 이해하는 일본어오디오에서 더 날것의 감정을 만난다고 느낀다. 뭔가 오랜만에 일본 이야기를 하려니 말이 쓸데없이 길어진다.

이런 배경에 비해 '일본 여자'에 관해서라면 아는 게 전혀 없다. 미디어를 통해 스테리오타이핑된 '일본 여자는 자고로 이래야지' 같은 알맹이 없는 이미지 말고, 일본 여자들이 직접 만들고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일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일본 여자에 관한 상식은 '마츠 다카코'나 다케우치 유코처럼 이름에 '코(子)'가 주로 들어간다는 것 정도(두 사람이 나온 드라마는 거의 다 봤다는 사족에 3천자짜리 축약 버전 썰을 덧붙이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는 중ㅋㅋㅋ). 이외에는 흔하게 남자 이름으로 쓰이는 이름이 아니라면 이름을 통해 성별을 짐작해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이름처럼.

책을 읽기 직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작가 소개를 읽는 순간이다. 구체적으로는 작가가 여자라는 걸 확인할 때, 그리고 어떤 작품을 쓰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그 녹록지 않았을 자취를 쉽게도 읽어내려가는 그 짧은 순간에 가장 가슴이 두근거린다. 일본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하루키남 자리를 (어떤 의미로) 여성 캐릭터가 차지하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엔진의 달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게 된다.

"이렇듯 폭력적이면서도 복잡다단한 여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기리노 나쓰오는 매 작품마다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켜 왔다.

(중략)

주인공인 아이코의 잔인한 행동과 이기적인 모습은

여태까지의 작품 속 인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력하다.

그는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필요하면 훔치고, 눈에 거슬리면 죽이고

단지 질투가 나서 유괴하고 방화한다.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아이코의 시선에서는 모든 것이 추악하다.

(중략)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은 단순한 범죄 소설의 차원을 뛰어넘어

여성의 잔혹하고 비이성적인 심리와 행동을 통해

사회적 규범과 틀에 갇혀버린 현대 여성상을 예리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현대 일본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벗어나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괴물 같은 여성상을 통해 세상을 조명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세계(역자: 이은주)


익명 사건(?)으로 시작하는 범죄수사 시리즈물처럼 《아임 소리 마마》 역시 어떤 사건으로 문을 연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범인을 찾아내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전개 방식 대신 이 소설은 범인이자 주인공인 아이코가 끝내고 싶을 때 제 결말을 맞이한다. 영상이 아니라 글인데도 편집점이 탁월하다는 느낌이 단번에 들고, 매끄러우며 흡인력 있게 읽힌다. 또, 애쓰지 않고도 아이코라는 인물과 그의 삶을 한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 아이코의 성별은 그의 삶과 이 이야기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지만 적당히 뭉퉁그리는 식으로 안일하게 넘어가지 않을 때 이는 아이코라는 한 개인을 비춰보여주는 더없이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아이코가 저지른 범죄는 그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허나 잠시나마 우리가 아이코와 꼭 같은 자리에 서있다고 상상해본다면 고뇌와 소외, 그리고 충동으로 혼란스럽게 뒤엉킨 머릿속 어느 몇 가닥을 절묘하게 엮는대도 결코 아이코와 같은 삶이 되진 않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을 거라는 점에서 《아임 소리 마마》는 씁쓸하고도 묵직한 뒷맛을 남긴다.

현재 해당 도서는 절판인데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을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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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자 발견으로 유명한 제임스 채드윅은 입학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줄을 잘못 서서 물리학과에 서 있었는데, 그것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만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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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그리고 물리학에서 우리는 정말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본다.

기존 이론의 결함은 우리에게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기존 이론의 결함은 더 정확한 실험으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낼 새로운 물리 현상의 전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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