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탄생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7월에 엔도 슈사쿠 선생의 『예수의 생애』를 읽고 난 후, "예수님의 참된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그 책의 내용들을 떠올리며 끼워 맞춰보기도 하고, 내 스스로 답을 내보기도 했다. 그리고 『예수의 생애』의 후속인 『그리스도의 탄생』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 온라인 서점을 찾았으나, 이미 절판이 된 지 한참이 지난 터였다. 게다가 중고로 거래되고 있는 책은 너무 고가에 거래되는 터라, 원서를 사서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사실 최근까지도 아마존을 드나들며 살까말까 고민을 하던 차에, 가톨릭출판사에서 재 출간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기쁘고 들뜬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이토록 『그리스도의 탄생』을 찾고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전작이 가져다 준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충격이란 표현이 다소 과할 수 있으나, 내 느낌을 적절히 표현할 만한 낱말이 '충격'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예수의 생애』에서는, 제목 그대로 예수님의 30년 남짓한 삶을 보여 준다. 다만,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복음서를 기반으로 한 예수님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흰옷을 입고 우아한 동작으로 설교하시는 예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도 없다. 그저 힘든 이들 곁에서 함께 있어 주고, 아픈 이들 곁에서 묵묵히 함께 해줄 뿐이다. 무기력한 한 남자로서의 예수를 보여준다. 소설가의 상상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게, 엔도 선생은 성서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못해 전문가 수준인 사람이다. 각 복음서의 내용들을 유추하고 끼워 맞추는 그 능력을 보노라면, 그가 말한 예수님의 모습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그 나약한 예수님을 변함없이 믿고 있다.

이번에 접한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시 제목에서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먼저 '그리스도'는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왕,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구세주, 구원자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공통점은 '힘이 있는 자'라는 뜻이다. 보통 신자들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혼용해서 쓰는데, 혼용해서 써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외연만 다르지 내연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절대적 모습을 다루지 않는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면서 박해를 받고, 그럼에도 그 뜻을 관철해 갔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담고 있다. 정의를 한다면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의미는 '교회'라는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여러 제자들, 특히 사도들은 예수님의 성공과 몰락 그리고 부활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신비로운 일들을 목격한 행운아들이다.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사도들의 이면에는, 예수님을 여러번 배신한 어두운 과거가 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채, 그리스도교의 시대를 열고자 했다. 예수님이 하던 대로 행동하면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라는 이름을 드러내는 순간, 마찬가지의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처럼 살고자 했다. 그 원동력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부활'이 가져다 준 힘이었다.

소극적이나마 예수님의 행동을 따르던 사도들을 대신해, 새로운 예수의 모습을 한 이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스테파노였고 바오로였다. 이 두 남자는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누구보다 바로 이해했다. 스테파노가 예수님처럼 살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 바오로는 예수를 부인하던 인물이지만, 회심한 이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했던 인물이다. 역시 죽었다.

제자들, 사도들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리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세 번의 질문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죽게 된 스테파노와 바오로의 죽음을 통해, 부활을 세 번 경험했다. 예수님, 스테파노, 바오로의 행동과 죽음이 가져다 준 큰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들은 변화했다. 그리고 모두 비참하게 죽었으며, 죽음으로 예수님을 증거했다. 그 후, 많은 이들이 우리가 아는 대로 대박해 시대를 온 몸으로 견뎌냈다. 죽고 죽어도 견뎌 냈다.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대박해 시대를 견뎌 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정신을 잇는 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져서 끝없는 부활을 이끌어 내며 이를 이어주고 있다. 그리스도란 부활을 통해 점점 완성되어 가는 무리를 뜻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교회를 또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보면 불완전하고 한숨 쉴 일만 가득한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 의미는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진행되어 간다. 시대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었을 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 수많은 예수들에 의해서 말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신자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라 평한다. 자신이 믿는 그 분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또한 자신이 섬기는 종교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