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1 - 제1부 격랑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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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리도 똑같은 일이 지금도 반복되는 걸까?

빈곤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아사리판과 잡배들의 농단과 핍박이란.... 


13p. 그건 원조받은 곡물을 마구 풀어 몇 년째 농산물 값이 폭락하고, 파산상태에 빠진 농민들의 이농이 속출하게 된 정책 실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117p.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인데도 이승만 정부가) 미군정법을 끌어다 대는 건 일제 총독부의 법을 끌어다 대는 것과 뭐가 다르냐 그겁니다.


139p. (진보당 사건 또는 조봉암 사건은 19597월 조봉암을 비롯한 진보당 간부들을 국가변란, 간첩죄 혐의로 체포하여 조봉암을 사형 집행한 사건으로 이에 대해 이승만) 정부가 끌어다댄 총독부령의 유족 행위억제는, 사형자의 비석을 세울 수 없다. 대중을 상대로 공공연히 부고를 낼 수 없다. 집단이 모여 장례식을 할 수 없다, 는 세 가지였다. 그건 총독부가 독립투사들을 사형시키고 나서 민심의 자극과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대비책이었다.


167p. 국어가 (단순히) 낱말 뜻풀이나 하는 게 아니잖니?


257p. 잘 채래진 굿판서 신명 못 내는 건맨치로 큰 빙신이 웂는 법잉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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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 소나무총서 31
박현채 지음 / 소나무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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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부터 1992년까지 정치와 경제사 내용을 포괄해 심도있고 유용하다.
직접 경험이 없는 책의 앞부분 815 해방 전부터 625, 419, 516쿠데타까지 내용이 유익했고, 정치적 사건을 발생시키는 경제적, 계급적 원인과 요인의 심층 추적이 흥미롭다.
특히 박명림 교수의 625 관련글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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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우실하 지음 / 소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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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연구하고, 길게보고 움직이는 국가가 있다. 

반면 다른 나라 국가전략의 종속변수 역할을 국제적으로 자청하며 권력층은 자기 나라와 역사에 대한 열등감만 있고 스스로 비하하기를 공공연히 일삼고 민족 자체를 끌어안기 보다 자기 집단의 이익과 정략에만 앞장서 헌신하고 대대로 매국과 매판으로 태연충실히 처신하는 그런 나라가 있다. 

이 두 나라의 근본적 차이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32p. 우리에게 '민족주의'라는 단어는 전체 국민을 단합시키고 하나로 묶는 의미를 지니지만,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서 '민족주의'는 56개 민족으로 뿔뿔이 흩어지자는 '분리주의' 혹은 '분열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아주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우리의 '민족주의'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와 유사하게 사용하는 것은 '애국주의'라는 단어입니다. 56개 민족의 단합은 각각의 민족끼리 뭉치자는 '민족주의'로는 안되고, '애국주의'라는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42p. 중국 최고 지도자를 밤낮없이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고 통치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신경서야 하는 아킬레스건은, (1)홍수로부터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 '치수治水의 문제'와. (2)광대한 중국 땅덩어리의 분열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통일국가를 유지해야 하는 '분열방지의 문제'였습니다.


92p. 이런 모든 것은 1980년대부터 요하 지역에서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어마어마한 신석기유적들이 대대적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황하문명의 중심지인 앙소문화보다 1000년 이상 앞선 이른 신석기유적들 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모든 역사에서 이 요하遼河 지역은 중화민족과는 상관없는 만리장성 밖의 동이東夷와 북적北狄의 활동 영역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야만인 취급하던 이 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중화문명의 기원지'를 황하에서 요하 일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중화문명=황하문명'이라는 것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106p.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와 장강(양자강) 하류의 하모도문화보다 2000년 이상 앞서는 신석기문화가 요하 일대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는 것입니다.


123p. (요하문명) 흥륭와유적에서는 중원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됩니다. 흥륭와문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요하 일대 신석기유적에서도 이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런 빗살무늬토기는 '시베리아 남단→만주 지역→한반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라는 점입니다.

126p.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259p. 이런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1)'중화민족과 사방의 야만인인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는 전통적인 화이관은 무너지고, (2)사방의 야만인들을 모두 중화민족의 개념 안에 넣어버린 '새로운 중화민족 개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실 '중화민족' 이라는 개념 자체기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속한 사람을 '중국인' 이라고 합니다. 이 '중국인'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56개 민족'을 하나로 묶어서 또 다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인'은 있을 수 있어도, 56개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 '중화민족'은 없습니다.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인'은 있어도 이들 민족들을 모두 합쳐서 '미국민족'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268p.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중화문명의 시발지를 요하遼河 유역으로 옮기고 있는 중국은 요하문명을 새롭게 설정하고, 이 요하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라는 논리를 세우고 있습니다.


275p. 요하 유역의 신석기문화 특히 홍산문화가 발견되면서 이제 야만인 취급받던 '동이'와 '북적'이, (1) 가장 이른 시기에 문명사회에 진입한 중화민족의 시조로, (2) 이들이 거주하던 요하 일대가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재정립되고 있는 것입니다.


277p. 전설과 신화의 시대에 '3황5제'가 도대체 누구인지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각종 사서에서도 '3황5제'는 서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분명한 '3황5제'를역사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주로 <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은 이덕일 의 <사기, 2천년의 비밀>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사서의 기록을 통해 '3황5제'의 민족귀속성을 추적한 책이다.


301p. 이제까지 중국학자들이 보아온 것처럼, 이 지역(요하 지역)은 동이東夷의 강역이었고 예.맥의 선조들이 주도하던 새로운 문명권인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용龍.봉鳳문화'와 '옥기 문화' 등이 남하하여 중원 지역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보이는 많은 문화적 요소들은 한반도 쪽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까닭에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요하 일대 만주 지역과 한반도 일대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요하 일대의 여러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한반도에서 보이는 것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곧, (1)빗살무늬토기, (2)세석기, (3)적석총, (4)석관묘, (5)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6)비파형동검, (7)고인돌 등이 대량으로 발견됩니다. 이것은 모두 중원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북방문화 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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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천 년의 비밀 롯데학술총서 3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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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기史記를 포함한 중국 역사책의 기록을 통해 삼황오제로부터 하은주 삼대에 걸친 고대 왕조의 민족귀속성을 추적한 책이다.

전한시대 태사공 사마천의 기전체 역사서 <사기史記>에 대한 악평은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악평은 내용 짜집기, 끼워맞추기와 선후가 전혀 맞지않는 정합성의 오류를 주로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전 악평들에 더해 이번엔 "하화夏華역사 창작"이라는 내용을 하나 더해야겠다. 특히 동이東夷의 역사를 이용해 하화夏華를 창조해냈다는 것인데 예전에 없던 하화를 새로 만들면서 동이를 애써 지우고 가감과 윤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기史記가 현재 중국의 역사공정에서 주재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르뽀이다.


35p. 양계초는 사마천을 "사학계의 조물주"라고 불렀다. ...... 사마천이 '조물주'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 그야말로 실체가 없었던 한족族을 만들고 그 한족들의 중국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한족들의 천하사가 바로 <사기>다.


73p. 현재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도하는 국가 차원의 여러 역사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핵심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80p. 중국은 최근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중원의 고고유적들이 대부분 동이문화임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동이문화는 후대에 하화문화로 편입되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화문화가 언제 시작하는지 즉, 하화족夏華族이 언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역사공정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164p. 사마천은 황제도 신농도 치우도 모두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보다 유명한 동이족은 신농과 치우였고, 특히 치우는 유명한 동이족 군주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동이족 군주임이 명백한 신농, 특히 치우와 싸운 황제를 하화족의 시조로 설정해 중국사의 계통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사마천이 중국과 만이蠻夷를 구분하는 '화이관華夷觀'을 갖고 있었음은 앞서 인용한 "효무본기"의 중국과 만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유학자들은 화이관을 하화족의 중요한 사상의 하나로 만드는데, 사마천은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를 제후들의 사적인 <세가>에 편입시킬 정도로 유학에 깊이 경도되었던 인물이었다. 공자와 사마천에 의해서 '화이관華夷觀'이 동아시아 유학 사회의 기본 관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마천은 비록 때로는 유학의 틀에서 벗어난 <화식열전>이나 <유협열전> 등도 서술해 비판도 받았지만 그 근본은 유학적 화이관을 갖고 있었다.


166p. 사마천은 그래서 황제부터 시작하는 중국사의 계통을 만들어 유방이 만든 한漢나라를 화이관 계승자로 만들 수 있었고, 이후 중원을 차지한 여러 왕조들이 이 화이관을 바탕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다른 이夷들을 방위개념의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비칭卑稱하면서 화이관은 중국인의 세계관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하화족 자체가 만들어진 민족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이관 자체가 공상의 개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2p. 중국은 현재 자신들을 한족漢族, 또는 하화족夏華族 이라고 부르는데 누구도 그 뿌리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 중국에서 전해지는 고대 사료를 통해 하화족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족族의 역사가 드러날 뿐 하화족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227p. 하화夏華와 사이四夷 개념은 사마천의 <사기> 이후에 뚜렷해지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이런 개념을 앞 시대에 적용해서 상고시대부터 하화와 사이의 개념이 있었던 것처럼 호도된 것이다. 고사변학파가 말한 것처럼 중국상고사는 뒤로 갈수록 시대는 올라가며, 뒤로 갈수록 상고시대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사이四夷의 개념 역시 후대에 만든 것을 앞 시대로 소급시켜 마치 옛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만든역사'이다.


229p.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들 지역들은 모두 동이족들이 살던 지역이고, 각지에 봉해진 나라들은 모두 동이족 국가들이다. 중원 고대 국가들의 민족귀속성을 살펴보면 이른바 하화족의 국가는 찾을 수 없다. 중국상고사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공자가 이상사회로 높인 하은주夏殷周 삼대도 모두 동이족 국가이다.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 하화족의 나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주나라도 다름 아닌 사마천이 작성한 계보를 보면 동이족 국가이다. 주나라 시조 후직이 동이족 소호의 손자인 제곡의 아들이자 후직의 어머니 강원이 동이족 유태씨니 부계로 보나 모계로 보나 주나라는 동이족 국가이다. 하화족이라고 볼 수 있는 사료적 근거가 없다. 


331p. 이족의 실체는 중원에 널려 있지만 하족의 실체는 모호하다. 즉 하화족의 중국사는 사마천을 비롯한 여러 역사가들이 만든 개념인데, 이제 그런 만들어진 역사의 실체를 찾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P.S. 요하와 패수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국과 한국의 상고사, 고대사 논쟁에 대해 이덕일님의 <사기, 2천 년의 비밀>은 역사책, 사료를 재료로 민족귀속성 추적(결국 모두 동이東夷족)을 얘기해 나갔다면 , 우실하님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은 요하遼河 주변 최근 고고학 발굴 결과와 유물, 유적을 중심으로 사료 이전 한국, 중국 두 나라의 상고사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 및 동북공정 관련으로 함께 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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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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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몇몇 대학들에서 벌어진 어떤 유력인 학위논문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발표를 보는 참담한 기분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반복된다.

똑같지 않는 분야에서, 그동안 고명과 권위로 군림해온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참담한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23p.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말했다"라고 언급했다.


25p. 그런데 (식민사학자나 한국 주류사학계의 주장처럼) 어떻게 평양 일대의 소국에 불과한 고조선이 한나라에 불안감을 야기한다는 말인가? 고조선이 평양 일대의 소국이었다면 두 나라가 왜 전쟁을 치렀는지 설명조차 할 수 없다.


60p. 역사학은 사료에 의거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며, 이렇게 재구성한 내용이 타당한지 비평하는 학문이다.


63p. 한국 주류 사학계가 해방 60년이 지난 현재도 일제 식민사학의 왜곡된 논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스승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학문풍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당대에 쓴 1차 사료를 직접 검토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 한국인 제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고대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한나라 시대로 직접 들어가 그 시대의 사료로 분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81p. 그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은 벽돌성이고 석성은 돌로 쌓은 우리 전통의 돌성이다. 재료와 축조 방식도 모두 다르다. (이병도처럼) 이 석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본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석성도 만리장성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86p. 거짓말은 하나만 들어보면 진짜 같지만 여러 말을 종합해보면 논리의 모순이 생기게 마련이다.


147p. 일제 발굴조사보다 26배나 많다는 북한의 발굴 결과는 무조건 부정하면서 일제의 발굴 결과는 경전처럼 떠받드는 것을 학문적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172p. 역사란 일정한 사관으로 서술되어 그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데 한 문단 안에 서로 다른 사관이 충돌하고 있으니 그저 외우는 수밖에 없다. 이해과목이어야 할 국사가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은 것이다.


323p. 단적으로 말해 노론은 임금에 대한 충성이란 개념이 부족한 반면 개인과 집안, 당파의 이익에는 민감했다. 그러니 왕조 국가에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개인과 집안의 이익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일제 수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객관적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체 76명 중 56명이 노론)


35p. 청동기시대가 되어야(만) 고대 국가가 시작된다는 <국사 교과서>의 공식이 단군조선을 부인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한국에만 있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 또한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한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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