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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고 정운영 교수의 유고집이고 현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정운영 선생의 글은 덮어두고 좋아하지만 거기에 맛깔나는 역사 분석이니 여간 군침이 동하는 책이다.


19p. 20세기를 맞는 노동자 계급의 가장 큰 공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 증강과 전쟁 위협이었고, 따라서 반전은 제2인터내셔널의 가장 절박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창립 대회부터 1912년 스위스 바젤의 임시 대회까지 모두 9차례나 열린 제2인터내셔널의 세계 대회에서 반전 결의가 채택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 소속의 각국 사회당과 사회주의자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투쟁이라고 거듭 확인한 이제까지의 반전 결의를 외면하고 참전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조국에 스미고 민족에 담긴 숱한 인연이 국경을 넘는 사회주의 형제애다짐으로 간단이 잊힐 일은 물론 아니었다.


25p.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의 세계) 투쟁은 강자의 승리로 끝나고, 강자의 승리는 진보의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는 부적격자의 희생으로 얻어진다. 1919년 이후에는 오직 파시스트와 나치만이 국제 관계를 합리화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장치에 집착했다. 그러나 서구도 이에 못지않게 의심스럽고 불길한 방편에 의지했다. 이해의 조화(harmony of interests) 붕괴에 강타당하고 다윈주의의 탈선에 충격받은 뒤, 그들은 새로운 국제적 도덕을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소유자 권리의 토대 위에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지금까지 제도화한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이 유토피아도 기득권의 도구가 되고, 현상 유지의 모루로 변했다.


30p. 확실히 1930년대는 동서 양 진영에서 전체주의가 활개를 쳤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존을 희롱하는 초유의 대공황과 대결했으며, 그 탈출구는 뉴딜과 파시즘처럼 크게 달랐다. 그러나 뉴딜식 개입과 지원이든, 파시스트의 통제와 징발이든 전체주의적 처방이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케인즈가 실업이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히틀러는 그 대책을 발견했다는 존 로빈슨 여사의 탄식은 이런 사정을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자본주의 반대쪽의 사회주의도 1930년대 들어와 자신의 운명을 걸고 모험을 강행했다. 스탈린 경제의 강제와 탈선, 스탈린 정치의 공포와 전율이 그것이다. 스탈린의 방법이 승리한 것이라면, 그 승리는 전체주의적 방식의 승리였다. 스페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프랑코의 대포에 장렬히 맞선 국제여단의 의기는 차라리 악과 선이 대결하는 세기의 에피소드였다. 자본주의든 파시즘이든 사회주의든 동시에 위기를 맞고, 각기 전체주의적 처방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를 이룬다.


32p. 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 진영과 파시스트 세력의 전쟁이었다.

...... 1차 세계대전 뒤의 베르사이유 체제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설계한 얄타 체제(미국, 영국, 소련)도 전혀 정직하지 않았다.

33p. 세계는 즉시 적대 진영으로 분열했고, 열전에 이은 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냉전의 빌미가 된 한국전쟁을 계기로 독일의 재무장과 일본의 경제 건설이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 핵심 현안이 되었다. ...... 냉전은 체제와 체제의 대결만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모순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발전해왔다.

 

사회주의가 뚫린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소련 경제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교섭이었다. 1970년대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경제 체제를 개혁하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대결하는 대신 새로 발견한 세계시장의 자원들(유가, 편리한 차관)을 활용하는 쪽을 택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무덤을 팠던 것이다. 냉전의 역설은 소련을 패배시키고 결국 파산시킨 것이 대결이 아니라 데탕트였다는 사실이다.


38p.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광기는 무대와 주역을 달리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벌어졌다. 소련이 탱크를 몰고 들어와 프라하의 봄을 작살냈기 때문이다.


49p.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77p. 역사의 모든 탈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제국주의 통치마저 식민지 개명과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81p. 2의 일본을 우려한 미국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본때를 보이고, 가속적인 유럽통합에 맞서 아시아 시장을 자국의 주도 아래 확실히 묶어두려는 미국의 작전이 외환위기를 방조하거나 적어도 조기에 진화하지 않았다는 음모설을 되뇌는 것은 부질없는 푸념일지 모른다.

 

84p. 회폐 축적과 실물 축적의 '양분화'는 실물 경제의 회전을 능가한 금융 계약의 양적 증대와, 근융체제에 대한 실물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예속이란 질적 변화로 표현된다._세기말 자본주의 단상, 1998.08.21


106p.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자본에 의한 지구 석권이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지구 질서의 재편이기 때문이다.


107p. 자본주의 자체가 지본의 자유의 성과이자 탈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113p. 투기자본의 원천은 1980년대 호황에서 집적된 이윤이다. 그러나 그 성장 배경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탈규제 정책이다. 그리고 세계화는 그것을 전지구로 유인하고 확산한 통로가 되었다.


126p. 완전고용과 사회 평등의 이상에 입각한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형'은 근래의 실업률 증대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고용 확대 및 '적극적 노동 시장' 이란 전통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반면 영미계 '신자유주의 모형'은 임금 규제와 노동 시장 신축화로 불황을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불완전 고용과 빈부 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 불안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138p. 더 많은 소비, 그리고 그 뒤를 대는 생산력 증대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자신도 모르게 취한 '가상 소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이기마저 선동하는 제도이므로, 그 문명에서 자기 해방과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경제가 생산력 증대의 함정을 피하는 것은 경제가 자신의 존립 근거를 부인하는 격이다. _세계화에 대한 '비우호적' 질문, 1999.01.26


254p.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_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 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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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정운영 교수의 마지막 글모음 책이다.

DJ 말기부터 노무현 대통령 임기 전반기까지의 사설을 모았다.

2005.9.8. 날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238p. 영웅을 본뜬 영웅본색따위로 한순간이나마 위로를 찾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면, 그것은 너무 삭막하지만 또한 피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글처럼 삭막하지만 피할 수 없었던 세상을 2005년 9월 24일에 떠났다.


22p. 1963년 박정희 정권은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개칭했다. 역사적으로 근로자란 지칭에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일제의 통치 음모가 배었다고 한다.


37p. 시장 경제의 핵심은 이윤 창출에 있지 사회적 책임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같은 투자라도 소수를 위해 ... 지갑을 불려주는 것과, 다수를 위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유전자부터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돈 버는 일만이 투자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69p.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산업화의 역사와 민주화의 현실이 충돌하는 시대이기에 독재의 사슬도 기억케 하고, 빈곤의 사슬도 기억케 하라(태준) 회장의 외침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71p. 새로운 민주주의의 핵심은 참여이다. 그 참여는 입법, 행정, 사법의 전통적인 3권 분립에 제4시민 권력을 추가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한 것이다.


77p. 한 바라문과 카스트 제도 토론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신분을 귀족이나... 농부로 결정하는 것은 마치 최초의 불쏘시개로 사용한 재료가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불을 장작불, 나무쪼가리 불, 지푸라기 불, 쇠똥 불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이나 같습니다. 그의 인과 관계 강조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가끔 파계의 걱정마저 감돈다. 예컨대 윤회를 앞세워 겁주는 장사하는- 무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망고 씨앗에서 망고 나무가 자라고 망고 열매가 열린다면 이는 씨앗의 환생이다. 그러나 이 망고에 영혼이 어디 있으며, 이런 환생이 과연 윤회냐고 말이다.


79p. 학식이니 인품이니 경륜이니 하는 덕목들은 흔히 고상한 명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쓰이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신분과 지위 안보를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91p.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이 있었다. 서구에서 타오른 68혁명의 봉화는 부패한 자본주의 문명을 성토했고, 중국 대륙을 휩쓴 문화혁명은 주자(走資)로의 탈선을 고발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경직된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과녁이었다. 카프카 복권으로 개시된 1960년대 해빙기에 작가 밀란 쿤데라, 영화감독 밀로시 포르만 등 문화계 지식인이 저항의 불씨를 지폈다.


98p. 감세, 복지 축소, 기회균등은 자고로 우파의 전매 특허였다.


101p. (칠레) 인민연합의 슬로건대로 구리는 칠레의 봉급이고 외화벌이밑천이었다. 그러나 칠레 구리의 주인은 미국 자본이었다. 일례로 미국의 아나콘다 구리 회사는 1969년 전 세계에 행한 투자의 17퍼센트를 칠레로 돌렸을 뿐인데, 전 세계에서 얻은 이윤의 79퍼센트를 칠레에서 챙겼다. 아옌데가 동광(銅鑛)국유화를 외쳤을 때 그의 제거는 예고된 운명이었다...

비행기 폭격에 이어 탱크가 관저로 돌진하는 가운데 아옌데는 내가 인민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라고 고별 방송을 했다. 그 약속대로 망명 제안을 거절한 채 최후까지 싸우다가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으로 65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아옌데의 실패는 한 교수의 논평대로 부자와 빈민이 서로의 에고이즘을 정부 강요한 데 있었다”. 게다가 개혁의 물질적 준비조차 없이 개혁을 서두른 정부의 에고이즘이 또 있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서두르면 안 됩니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풀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편지를 보냈고, 카스트로 역시 마르크스라는 만병통치약의 쉬운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개혁은 단박에 되는 것이 아니며, 개혁을 위한 만병통치약은 없다.


103p. 캄보디아에는 지금도 600만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

그 지뢰보다 무서운 것이 빈곤이다. 지뢰는 묻은 곳에서만 터지지만 빈곤은 심지 않아도 퍼지기 때문이다

600만 봉지의 쌀 대신 600만 개의 지뢰를 묻은 어른들의 횡포와 잔인에 목발 짚은 저 소년은 어떤 분노를 지피고 삭일 것인가. ...

어른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받는 벌은? 어른을 잘못 만난 죄밖에 달리 없을 터이다. ...

문제는 결국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너와 나의 차별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

우리는 아이들을 굶길 만큼 가난하지도 않고, 도시락을 숨길 만큼 인색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보다 더한 가난 속에 그들을 가둔 것은 내가 나설 일도 아니고, 나선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오해때문이었다.


124p. 금리가 제구실을 못할 때 재정이 나서는 것은 케인스 이래의 상식이다.


130p. 세율이 0퍼센트면 납세자는 즐겁겠지만 세수가 한 푼도 없어 나라 살림이 안 된다. 세율이 100퍼센트면 버는 것을 모두 세금으로 빼앗기니 누구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생산 의욕과 세수 안정을 감안해 최적 세율을 결정한다.


154p.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 그 야유가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든, 혁명이 빈곤에서 폭발하지 않고 불평등에서 폭발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79p. 나도 투기는 잡고 투자를 앞세워야 한다는 완고한 사람이지만, 돈에 물꼬를 터주고 몰아야 한다. 그것은 부자들에 대한 굴복도 아니고, 투기와의 전쟁에서 패배도 아니다. 먼저 돈을 흐르게 하라. 결코 출몰하게 해서는 안 된다.


187p. 내일 열릴 남북 축구에서 길거리 응원을 막는 진짜 이유가 소문대로 반미 시위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면, 반미 역시 하나의 사회 현상이고, 규제의 역효과보다 완화의 효과가 더 크다면 일상적 수준의 반미주의에는 일정 정도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미국이 한국에 대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반한이 아니듯이, 한국이 미국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것도 반미가 아니다.


204p. (다니엘 벨) 그가 주목한 것은 신용카드로 상징되는 신용 사회의 출현이었다. 신용 사회의 하드웨어가 외상 거래나 할부 매매라고 한다면, 그 소프트웨어는 단연 거래에서의 신뢰일 것이다. ... 그럼에도 할부 판매의 트릭은 부채(debt)라는 단어를 피하고 신용(credit)이란 단어를 강조한 것이라는 석학의 관찰은 정말 예리하다. 채무자라는 지칭보다 신용차입자라는 지칭이 훨씬 점잖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208p. 세상을 사노라면 한편도 생기고 우리와 저들로 나뉘기도 한다. 그러나 애초에 내 편 네 편으로 가를 대상이 아닌데도 우리와 저들, 동지와 적의 대립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녕 불화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음험한 계략이다.


212p.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가 산다는 말이 진정으로 빛나려면, 근로자가 죽으면 기업은 어떻게 되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233p. 생활은 궁핍했지만 모두의 생각조차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인은 사후에 더욱 오래 사는 사람이라는 장 콕토의 절창에 격려되고, 사회는 거대한 생산력주의의 굉음에 이목을 집중하라는 약삭빠른 평론가들의 호소에 선동되고 있었다.


253p. 섣부른 세계화 찬가와 설익은 글로벌 스탠더드설교가 어떻게 국가 경제를 거덜냈는지는 외세의 기업 사냥과 엄청난 국부 유출이 증명한다. ... 새 정권에 새로 전하거니와 개혁은 쿠데타가 아니라 일상의 생존방식(modus vivendi)이 돼야 한다.


255p. 글쎄 정권에 정권을 바꿔가며 출세에 출세를 거듭한 전천후 고관중에 정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 몇이나 되고, 그래서 꼭 다시 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한번 내놔보라구! 유능의 내막이 실은 기막힌 처세와 변신이란 말이렷다.


283p. 한반도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전쟁 방지라면 군사적 견제 못지않게 정치.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 그들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보다 위험을 동반한 공존이 한반도 평화에 그래도 나은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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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랩소디
정운영 지음 / 산처럼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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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후반기부터 2002년 후반기까지의 정운영 선생(1944~2005)의 글모음이다.

세상 돌보는 일에 몸 돌보는 일마저 더해진 처지에 IMF탁치와 새천년은 열렸지만 광기의 암울한 세상은 선생을 도대체 편하게 해주지 못했다.

"정운영 선생 같은 분 요새는 없습니다." 라는 말밖에... 

정운영 선생의 그 투명한 천재성과 따뜻한 탁견이 요새 더더욱 그립습니다.


21p. 실로 그 이념이니 제도니 하는 화상들이 우리의 삶과 사랑에 제법 근사한 세계를 선물한 적이 별로 없다. 정의와 평화보다는 압제와 수탈이 본령이었다. ...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는 세계화, 금융자본, 신자유주의 암흑에 허덕이는 세기말(世紀末)의 절망적인 영혼들한테 구원의 르네상스는 과연 어디 있는가?

 

32p. 자유의 방종을 누르고 평등의 여지를 넓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정의를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한테 희망이 없다.

 

36p. ...‘늙은 피라고 우리를 비웃으면 안 된다. 작은 목숨을 이어준 메마른 뿌리의 고투를 쉽게 잊겠다면, 당신들이 가꿀 목숨들과 그 뿌리의 정성도 뒷날 쉽게 잊힐 수 있기 때문이다.

 

93p. 개혁은 행사가 아닌 생존 방식이 되어야 한다.

 

95p. 준칙(rule)이냐 재량(discretion)이냐의 논쟁은 경제학계의 해묵은 숙제이다. 정부가 준칙만 정하되 재량은 당치 않다는 것이 고전파 경제학의 주장이라면, 준칙만으로는 경제가 멋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재량이 필요하다는 것이 케인즈 경제학의 반론이다.

 

100p. 정책의 실패를 처벌하면 누구도 국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반명 정책적 실수라는 이유로 항상 면죄부를 준다면 국정 운영에 견제 장치가 없어진다.

 

102p. 각국의 생산 조건이 상이한데도 이처럼 교환 기준만 세계적으로 통일하려는 폭력적시도가 세계화의 경제적 현실이다.

 

138p. “나는 젊어서 급진파가 될 엄두를 못 냈다. 왜냐하면 늙어서 보수파로 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라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고백을 들어둘 가치가 있다. 늙어서도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정직한 분노를 간직할 자신이 없거든, 아예 젊어서 분노를 얘기하지 않는 편이 낫다.

 

193p. 자신의 득점보다 팀의 승패를 먼저 생각하고, 그래서 개인보다 조직을 앞세우라는 와스프(WASP)의 윤리는 누구라도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배 계층 내에서만 통용되고, 지배 국가 내에서만 유효한 규범이라면 피지배 계층이나 주변 국가들로서는 오히려 경계할 대상이다.

 

195p. 결국 있지도 않는 적을 만들어내고, 변변한 적이 아닌데도 자꾸 그 위험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세기 전의 아이젠하워는 군산 복합체의 위협을 경고했고, 경제학자들은 항구적 전시 경제의 위험을 강조했다. 적이 없으면 가상적(假想敵)이라도 만들어서 무기를 팔아라, 그래야만 미구 경제가 수요 부족의 공황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시대의 모토로 등장한 오늘 군비 증강 주술에 묶인 세계 최강국 대통령(조지 W. 부시)의 취임사에서 풍기는 화약 냄새는 정말 유감이다. 미국(개인)의 홈런보다 세계()의 승리를 함께 생각하자는 권고 따위는 아무래도 편치 않은 모양이다.

 

203p. (사무라이) 전국 시대의 원죄 외에 현대사의 오류도 있었다. 예의 그 반공 신드롬이 말이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석권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돌발하자, 미국은 동북아 안보와 일본의 재무장을 서둘렀다. 반공의 맹우로 군국주의 세력과 제휴한 것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었다. 재벌이 부활하고, 전범은 석방되어 정계로 진출했다. 그들의 혈관에 도도히 흐르는 파시스트 광기는 재무장, 헌번 개정, 부전(不戰) 결의 반대를 필두로 식민지 정당화 망언, 신사 참배, 교과서 왜곡 등 아주 잡다하게 터져 나왔다. 반공의 보루로서 독일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 잔당은 반공의 우군이 아니라 역사 청산을 위한 사냥감이었을 뿐이다. 코뮤니즘과 함께 파시즘을 억누른 연합군의 독일 점령 정책은 무엇보다 스탈린과 유대인과 드골이 두려웠기 때문이고, 파시즘으로 코뮤니즘을 막으려던 일본의 경우는 미국을 필두로 이승만과 장제스 및 그 후계들의 레드 콤플렉스단견에도 일말의 원인이 있다. 정권이 아니라 나라가 문제였는데...... .

 

237p. 밥줄이 정의감보다 무거운 현실은 참으로 치사하지만, 그 치사한 현실이 우리네 삶의 집합이라면 참고 견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38p.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제도의 내실과 운영이다.

 

300p. 그래 반민주도 살고 반민족도 살지만 반미국은 살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의 역사였다.

 

323p. 그러나 국내의 언론과 식자층 일각에서는 미국인 보다 더 반미 감정을 걱정하고,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진상 규명에 앞서 미국과의 혈맹 관계 손상을 염려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 점 변함없이 되풀이된 민족 비하의 발로이고, 사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327p. 공급자의 양식이나 소비자의 의식이 성숙하지 못했을 경우, 자유 방임 설교는 이렇게 방종과 탈선만 선동할 뿐이다.

 

335p. 정치는 수시로 음모론 따위를 퍼뜨리며 유권자를 홀립니다. 설사 누구의 음모일지라도 그 음모에 속지 않는 일이 중요합니다. 박정희 집권 초기에 부산 시민은 특별히 그 정권을 반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투표를 며칠 앞둔 어느 날 대문 앞에 떨어진 삐라한 장이, 그러니까 거기 적힌 전라 도민이여 단결하라는 선동 한마디가 편안한 시민의 마음을 마구 들쑤셔 놓았습니다. 전라 도민의 단결을 외치는 괴문서를 부산 시민의 집에 누가 어떤 의도로 뿌렸을지는 직접 보지 않고도 능히 짐작할 만합니다.

 

347p. 무역 수지에도 잡히지 않는 세계 최대의 교역 상품은 무기이고, 그 다음은 마약이 차지한다. 1995년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I)의 한 보고서는 마약 거래가 연간5000억 달러 규모의 ‘지하 경제를 형성하여 원유시장을 압도한다고 추산했다.

사람을 즉석에서 죽이는 무기와 서서히 죽이는 마약이 세계 교역의 수위를 차지하는 이 문명의 역설을 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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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질주 - 정운영 교수가 천년대의 전환기에 던지는 화두
정운영 지음 / 해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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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p. 자유에 대한 모독은 시대 해체의 징후이다. 봉건 사회가 해체되면서 지배 계급은 생계와 생산의 수단인 토지로부터 농민을 추방한 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자유'를 하사했다. 경쟁력과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현대판 주문(呪文) 역시 일터에서 내쫓은 자유와 눈치껏, 재주껏, 요령껏 살아남을 자유에 대한 훈시이다. 시대의 유행인 사회 안전망이란 결국 재주와 요령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의 적선 수단일텐데, 실로 그것은 걸인과 부랑민 수용으로 책임을 다한(?) 자본주의 역사의 구빈법 시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과 삶에 대한 불안의 극대화, 기껏 그것이 세기말 인류의 지혜가 안출한 경쟁력 향상의 첨단 비기(祕器)란 말인가?

 

23p. 오해가 없도록 못박는 말이거니와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원흉은 단연 재벌의 방만한 차입 경영과 문어발 확장의 탐욕이며, 거기 뒷돈 대며 함께 놀아난 금융의 탈선이다. 그것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실책 역시 공범이다.

 

26p. 하느님의 섭리였는지 결국 로마가 굴복하고 회개했지만, 나는 그 탄압을 자초한 기독교의 배타성에 주목하려고 한다. 나만이 구원의 길이고 너는 가짜라는 그 배타성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이 지구를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서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는 대신, 두 체제가 서로 나든 너든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 지구에는 자본주의의 유일 체제가 형성되었다. 사회주의라는 견제 세력이 소멸되자, 자본주의는 온갖 독선과 횡포를 자행했다. 이윤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잘라도 무방하고, 자본이 뻗어나가는 데에 이웃 나라의 희생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여기 걸려든 것이다.

 

38p. 세계화는 주변부의 무장을 원천적으로 해제하려는 강대국의 국가 이기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p. 대포를 녹여 밥을 만드는 것은 정치의 일이다.

 

78p. 국제통화기금은 달러를 중심으로 세계의 경제 질서를 편성하려고 만든 기구이며, 그 창설 의도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86p. 2차 대전이 끝난 뒤 1차 대전의 치부책을 다시 꺼내는 영국인의 기질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이들 선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과거에 대한 집요한 책임 추궁과 장래에 대한 철저한 경계이다. 선거는 현재 치르지만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묶는 노끈이기도 하고, 그 관계를 자르는 가위이기도 하다.

 

136p. 미국의 모라토리움을 막아주는 힘은 미국 경제의 실력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이고 군사력이다.

 

143p. 1976년 대자보로 가득한 천안문 광장(1976년 저우 사후 천안문 광장에서 2,600명이 사살됨)에 대고 민주 벽은 좋은 것이다. 인민이 자유로워야 하니까라고 칭찬했던 덩이 1989년 천안문 시위대를 향해서는 적에게 일말의 동정도, 먼지만큼의 관용도 보여서는 안된다고 외치면서 피를 흘리고라도사태를 진압하라고 정치국에 독촉했다. (이후 3,700명이 천안문에서 죽었다.)

 

185p. 박정희가 아니면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가 아니었다면 더 잘 이루었을 것이란 반론만큼 무력하기 때문이다.

 

207p.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아저씨는 정식 근로자이나, 염색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청년은 연수생에 불과하다. 그런 낯간지러운 궁리를 마련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한다.

 

223p. 매국노의 재산권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일제 35년의 강점이 그대로 합법적이고, 해방 이후 52년 동안의 일제 청산 노력이 말짱 헛것이었다는 증명이다. 법관이야 법률에 따라 고지식하게 판결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런 법을 방치한 역사가 잘못이다. 일제와 싸운 보답으로 조선족 자치주를 만들어준 중국에 낯이 뜨거웠다. 저들은 잊어도 그만인(?) 은혜를 잊지 않는데,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매국조차(!) 잊은 것이다

서노불이(恕怒不異) 용서와 분노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분노해야 한다. 분노 없는 용서는 분별 잃는 비굴일 뿐이다.

 

260p. 요즘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자유를 의심합니다. 지난날 우리를 괴롭혔던 공안 기구의 검열이나 정보기관의 압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전시대적 유물이 크게 줄었는데도 불안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언론 자유의 과잉 때문입니다어떤 인물이나 행위에 대한 평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읽으며 특정인을 듣기조차 간지러울 만큼 추켜세우거나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저질 선동성 활자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검열 불가의 인터넷을 비롯한 최첨단 전자 매체가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가히 언론 공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사람 잡을 얘기를 함부로 써대고도 언론의 자유라고 뻗대는 한, 쉽사리 손대지 못한다는 세상의 약점을 파고든 영약한 언론 장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듣기 민망한 아첨과 근거 없는 독설로 독자를 홀리며, 그렇게 세를 불리고 돈을 버는 언론 간상배(奸商 輩)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도 언론이라고 우기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301p. 4410개월 만에 석방되어 세계 최장기 복역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김선명은 내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폭력에 굴복하면 그 폭력을 휘두른 자들과 공범이 됩니다. 이데올로기 그 자체는 잣대가 아닙니다.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뎠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쁨이었습니다라고 전향 거부의 사연을 토로하면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도 내 조국이고 여기도 내 조국이라고 대답했다. 이 시대의 치부를 도려내고 분단의 상처를 쓰다듬을 지혜와 용단을 새 정치에 바랄 수는 없을까?

 

304p. 나의 관심은 오히려 전체 이익을 위한 강대국의 책임 따위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질문과 그 대답에 있다.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대로 이것은 한낱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

 

305p. 실제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구별은 강대국 편의의 레토릭일 뿐이고, 세계 경제에 대한 공헌과 자국 이익의 추구 역시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동의어에 불과하다.

 

337p. 저항에는 역설이 따릅니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구호로 내건 프랑스혁명은 인류 역사에 가장 치열한 저항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저항으로 혁명에 성공한 뒤 지배 계층은 즉시 더 이상의 저항을 불법으로 단죄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저항과 저항 거절의 반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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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를 위한 비망록
정운영 / 한겨레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죄의 기억을 지운다는 "레테를 위한 비망록"이 책이름인데 그 안 머리글 제목은 선행의 기록을 알린다는 "에우노에를 향하여" 이다.

고 정운영 교수가 잊지말자 하는 1995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진행부터 1997년 IMF 발발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개혁과 과거사 단죄의 후퇴를 포함해 시작만 호기로웠던 용두사미 문민정부의 한계와 OECD 가입 후 어려워져만 가는 나라안팍 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이념적 돌파구 모색과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67. 198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초유의 국제수지 흑자가 투기 광풍을 몰고 왔다면, 90년 초반의 호황은 투자와 소비의 급격한 '초과수요' 열기를 불렀다. 확실히 우리 경제는 흑자에 약하다. 가계든 정부든 항상 적자에 시달리다 보니 적자에는 제법 단련이 되었는데, 어쩌다 흑자를 대하면 어떻게 주체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딱한 체질이 되어버린 탓인지 모른다.


69. 투기와 독점은 시장의 실패 가운데 그 천민적 속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다. 투기가 집과 땅을 휩쓸어 사회가 온통 망국명을 앓고, 분신 자살과 신도시 건설이 뒤를 이은 것이 불과 수년전이었다. 


136. 저의 전망으로는 '당분간' 한국 사회에 혁명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마르크시즘을 비롯한 진보적 대안 탐색이 반드시 어떤 성과가 기대될 때만 의미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폐기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 예수의 말씀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음전파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220. 색깔 유령은 계급적 적대를 부추기며 미구에 '급진' 유령으로 변신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는다는 자신감의 반영인지 사회의 보수화 추세는 도처에 역력하며, 누구도 그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혁이 보수의 목을 비틀어 주머니라도 터는 듯이 비뚜로 선전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여권이 내놓는 개혁은 개량이고 개선이지만, 재야가 부르짖는 개혁은 불온으로 덧칠되곤 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독재자가 민주주의 '형식'의 요구조차 불온으로 단죄하며 권력 유지의 명문으로 악용했던가?


284. 대학의 지식은 "대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역설이 그것입니다. 생태학자 배리 코머너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올바로 제기된 질문은 잘못 제시된 답변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이 바르면 언제라도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면 해답에 이를 기회가 영영 없기 때문입니다.


290. 지식인이란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다.


307. 일찍이 마르크 블로흐가 갈파했듯이 허위란 그 나름대로 하나의 증거가 되는 법이어서, 허위를 방관하면 그것이 곧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 재산을 기증하고 작고한 김철호 선생은 "뼈에 무슨 색깔이 있겠느냐"면서 분단 희생자의 진혼과 위령을 당부했다.


317. 정신이 왜소하면 사람과 사회의 관계가 한층 피폐해진다. 계급과 민족의 절박한 현안은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소멸될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실종된 담론의 복원에 열중해야 한다. 사회 정의의 실현과 분단 해소가 결코 포기할수 없는 과제라면, 거대 담론에 집착하고 그 열망을 간직할 의무가 우리한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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