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아이 창비청소년문학 50
공선옥 외 지음, 박숙경 엮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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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청소년문학의 시리즈가 50번째까지 이어져오는 이유를 이 책 한권에 다 담은 듯... 신뢰를 주는 작가들의 글을 한권으로 만날 수 있는 행운은 자주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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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김도언 지음 / 이른아침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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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배워야 했을까...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다. 물론 나는 비흡연자이니 이 부분은 내가 이루지 못할 로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담배연기와 함께 맡아도 좋을 것만 같은 냄새가 난다. 왠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약간 비스듬히 앉아 한 손에는 담배를 한 손에는 이 책을 들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라고 할까.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사유가,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눈앞에서 흐트러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퍼져나가라고... 이 책으로 담배연기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김도언의 두 번째 산문집이다. 2012년부터 2010년까지-나도 저자처럼 시간을 역순으로 말해본다- 약 3년여 시간의 기록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기 같으면서도 누군가의 투명한 일상을 만난 느낌은, 엿보는 것이 아닌 공유하는 기분이었다. 그 일상이 문학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라니 더 반갑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면서도 잘 알 수 없는 이야기, 독자가 아닌 작가가 문학-그는 특히 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에 대한 사유를 풀어내고 있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궁금했기에 그렇다. 공적으로, 사적으로 만난 다양한 문인들이 언급되고 그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거기에 저자의 마음을 풀어내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나의 허밍이 저절로 따르는 것 같다. 잘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음에도, 나도 같이 흘러가도 괜찮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외출에서 돌아와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을 마주하는 기분인 것도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 것도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는 편안함으로 만날 수 있는 상대 같은, 그 안에 글 이면의 문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생소했지만 편안하기도 했다. 그건 어쩌면 저자가 자신과 이야기하듯 말하는 느낌, 혹은 일기라 부를 수 있는 이 글들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의 생각들, 하고 싶은 말들, 자신이 가야할 길에 대한 바라봄, 갖고 싶은 믿음일지도. 그래서 저자가 하는 말들이 더 진솔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저자의 일상 속에서 저자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소설가들, 시인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숨 쉬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유독 내 눈과 귀에 들어왔던 것은 저자가 하는 말들이었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듯한 말들. 그중에서도 특히,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이라 말하는 것은 치유의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하는 듯해서 더 귀가 쫑긋해진다. 이 책이 역순으로 흘러가야만 했던 이유를 나는 여기서 발견했다. 이미 지나간 일의 결과물을 먼저 보고, 몇 페이지 넘어가면 그 과정이 드러나고, 다시 또 몇 페이지 넘어가면 그 일의 시작이 보인다. 아, 이렇게 시작되어 이렇게 흘러갔었구나, 싶은 생각으로 되짚어 가고 있었다. 저자가 글쓰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해왔다는 이유가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냥 흘러가는 하루라는 일상이든 누군가(무언가)와의 일들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이든, 그건 글쓰기를 통해 흘러가면서 마무리되고 치유되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문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마음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가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 아닌 그 안에 흡수되고 싶었던 거라고, 그와 동시에 이 세계의 맑음을 함께 가지고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쓴 소리를 하고, 누군가는 내밀어주어야 할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이라고.

일상을 품은 그의 문학적 사유는 일상의 구석구석을 비집고 들어오는 찰나의 생각들과 감정들을 떠올리게 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틈 하나를 보게 만들고, 그 틈을 또 하나의 문학이 채워 넣는 과정을 갖게 했다. 그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책이 어떤 느낌인지 찾아보게 만들고, 왜 그 책이 그 순간에 언급되고 있었던 건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문장들을 귀에 담게 했다. 처음 발견했던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참 다양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문학을 통해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사유를 담게 만들고 있으므로 다행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저 독자인 내가 작가라는 이름의 그들을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그들이 바라고 가고자 하는 그 길을 떠올리면 같이 뭉클해질 수 있었다. ‘모든 문장은 온도를 가진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문장도 그 온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출렁인다. 저자의 문학일기이면서 동시에 이 책을 만나는 모든 이들의 문학일기가 되는 순간이 아닐 런지.

읽어가는 동안 거꾸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랬다. 저자의 기록이 역순으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 앞에서 읽은 내용(the end)이 뒤로 가면 진행형이나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로 묘사되고는 했다. 그런 것들이 잠깐 어지럽기도 했었다. 그럼 뒤에서부터 읽으면 편할 것을, 이상하게도 그러기는 싫었다. 굳이 이렇게 역순으로 엮어낸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나도 시간을 앞에서부터 거꾸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거꾸로 흐르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름 모를 여유로움도 생긴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한발 뒤로 물러서서 보게 한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고 나 자신을...

이 책 안에 담긴 저자의 사유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생각들과 시선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문학이란 공간 안으로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틈을 준 것 같아서, 살짝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독자로 살아가면서, 문학 안에서 숨 쉬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을 테니...


당신들도 모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모든 문장은 온도를 가진다.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문장도 있고 피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문장도 있다.
좋은 문장은, 적정한 온도를 가진 문장이다.
문장의 적정한 온도는 작가의 비범한 감각에 의해 통제된다.
문장의 온도를 통제할 감각을 가지지 못한 작가는 불행한 작가이거나 혹은 가짜 작가이다.
그 감각은 훈련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천연적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뜨거운 일은 아니다.
그것이 어떤 선동에 소구되는 격문일지라도,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의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과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문장의 온도와 현실의 온도가 구분되지 못하고 연계될 때,
광고 문안이나 반성문 같은 천격의 문장이 나온다.
(6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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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소설 읽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직도... 아직도.... ㅠㅠ









 









그래도 읽고 싶은 책 앞에서는 망설이지 말자...
이 먼지 속에서 한 페이지를 넘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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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노가다 뛰고 있다. 이놈의 공사는 이번 달을 채우고 끝나려나 보다.
그러다 보니 치우는 것도 계속 이어지고...
손이 완전 ㅠㅠ, 얼굴도 완전 ㅠㅠ, 씻어도 씻어도 표가 안나...
얼마 전에 지인이 핸드크림을 주셨는데, 그 덕을 보고 있다. 열흘 동안 벌써 핸드크림 절반 이상을 다 썼다.
이거 다 쓰면 내가 쓰던 거 다시 꺼내 써야 하는데... 여분으로 하나 더 구매해야 할 것도 같고...
그렇게 바르는데도 손이 엉망이 되어서는... ㅠㅠ



게다가 책방 정리를 조금씩 매일 하고 있는데, 매일 매일 책을 내보내고 있다.

책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그 책 데리고 오려면 더 공간을 비워야 된다.
당장 데려올 수 없는 이 마음이 아쉬워 매일 매일 눈으로만 책쇼핑을...










한때 황금가지 밀리언셀러클럽에 푹 빠져있었는데, 한동안 멀리했다. 취향도 변하기도 했지만, 몰입하고 한번에 읽어야 재미가 배가 될 것이기에 그 흐름을 이어가지 못해 포기한지 오래... 그중에서도 로즈메리의 아기는 진짜 섬뜩하고 재미있었는데, 그 후속이 나왔다. 로즈메리의 아들... ^^ 제목에서 삘이 온다. 내용도 궁금하게 만든다. 오호라~ 찜콕~!!


작년 12월에 처음 나왔었는데, 이번에 3,4권이 나왔다.
노공이산... 노무현 대통령의 웹툰... 표지가 너무 귀엽다.
그리운 사람을 그릴 수 있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하다.
그래서 더 그리움을 만들어내는 거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신간들 속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까운책 시리즈다. 이번에 나온 책 속에서 또 다른 책, 그러니까 미처 사랑받지 못했다던 그 책들을 만나보고 싶어진다. <책은 도끼다> 박웅현 저자의 이번 신간 역시나 눈에 띈다. 얼른 예판이 지나고 뚜껑을 열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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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 고맙고 감사한 사람, 있으나 없으나 별 피해 안 주고 있는 사람, 차라리 없으면 좋겠는 사람... 어떤 종류의 사람이 썩 괜찮은 사람인지는 다 알지 못하겠지만, 어떤 종류의 사람이 괜찮지 않은 사람인지는 알 것 같다. 차라리 없어져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 그 사람만 없으면 다 행복해질 것 같은 생각, 나를 악하고 독하게 만드는 그 사람 때문에 인생 이렇게 꼬인 것 같은 이유를 붙이고 싶은 사람... 그런 대상이 가족인 경우, 정말 누구 하나 죽어야만 끝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정말 궁금해진다. 누구 하나 죽으면,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거냐고...

보통은 잔인한 달은 4월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잔인한 달은 5월이다. 어버이날 말고도 이런 저런 가족 행사가 몰려 있는 달,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달, 달력 한 장을 쭉 찢어내어 5월을 전멸시키고 싶은 달...
곧 엄마 생신이다. 우리집에서는 국경일보다, 명절보다 더 큰 행사, 또 한 번 가족놀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족이 아닌 가족놀이. 오늘도 한번 그 가족놀이 예행연습에 피를 볼 뻔했다. 아, 침묵해야 조용한 가족놀이라도 지나갈 수 있겠구나 싶어 다시 입을 닫았다. 이 침묵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미련하게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책이다. 평균나이 49세인 이 가족이 사는 법은 따로 국밥인데, 한 그릇에 넣고 비빈 맛있는 비빔밥 같기도 하다. 한 덩치 하는 형부터 망한 영화감독인 화자, 이혼하고 엄마 집에 들어온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딸인 조카까지. 모두가 실패한 인생처럼 엄마 집으로 모여든다. 그런데 이 엄마가 대단한 것은 그저 일상처럼 손을 내미는 것이다. 바로 오늘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오는 자식들을 보는 것처럼...

그게 가능해? 라고 묻고 싶어진다. 아무리 내리 사랑이라고 했다지만 그게 임무처럼, 의무처럼 가능한 것이냐고 따져보고 싶어진다. 그거 뭐 별건가,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가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난감하다. 하지만 익숙하다. 괜찮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하는 가족놀이와 이들 가족의 모양새가 뭐가 다른지 살펴보고, 아무리 뒤져보려 해도 큰 차이를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이들의 엄마가 아니라는 거. 이해하기 싫으면 이해 안 해도 된다는 거. 그래, 이 책이 굳이 이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근데, 이해가 아닌 듣고 싶어진다. 이들이 하는 얘기, 투박하고 거칠지만 이들의 마음속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이 가족의 이야기가 지금 나에게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지 뭐 하나는 꺼내어오고 싶어진다. 작은 바람 하나쯤은 가져와도 되는 거잖아. 콩가루라면 콩가루이고,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인 이 가족도 이렇게 살아가잖아. 그 옆구리 한 구석쯤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나눠줘도 되잖아. 그래서 들어가 보려고, 이들 가족의 사는 방식에. 나의 가족놀이를 지우고 가족이 되어보려고...

‘당신을 닮았다’는 말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험한 욕이며, 당신은 우리 집에서 암적인 존재이며, 오직 식구들을 괴롭히는 재미로 평생을 살아왔으니, 설령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누구 하나 그 죽음을 서운해 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 발악을 했다. 그저 한 사람 사라졌구나 싶은 부재를 느낄 뿐이지 그 어떤 감정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며 왜 이 공간에서 함께 숨 쉬고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사람이라면 가족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내면서 미친듯이 날뛰던 어느 한 순간이 생각났다. 여전히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며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며, 식구들의 증오와 미움을 받으면서 익숙한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느 날 가만히 바라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그렇게도 싫어했던 당신과 너무 닮아있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당신을 닮은 외모, 당신에게 그렇게 싫어했던 습관들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있을 때, 이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한참을 울부짖었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가 남겨진 것처럼...

이 책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나는 또 한 번 가슴의 조임을 느꼈다. 심장이 그 동작을 멈추면서 아주 작게 오그라들었다가 다시 늘어났다가 그 무언가가 나의 심장의 동작을 잠시 조정하고 있는 것 같은.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게 쥐고 흔드는 것 같다. '엄마'라는 존재와 가족'이란 이름으로 연결된 그들의 이야기가 내 심장의 박동수를 주관하는 것만 같다. 엄마가 살고 있는 낡고 작은 빌라, 그곳에 세 명의 자식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평균나이 사십 구세. 깡패짓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 빌붙어 사는 첫째 오함마, 영화 한편의 실패로 빈털터리가 되어 가정도 잃고 돈도 잃고 남은 게 하나도 없이 엄마에게 기어들어간 둘째 오감독, 두 번의 이혼 후에 그래도 큰소리치며 살겠다고 중학생 딸과 함께 들어온 막내딸 미연이. 그리고 그런 자식들에게 한마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래 그렇게 함께 살았던 것처럼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엄마.

실패한 자들의 집합소 같았던 엄마의 빌라였다. 그 나이면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이미 그 가정에서 또 다른 가정이 탄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인데, 이 책 속의 그들은 참 난감하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말 그대로 '멀쩡한 인간' 하나 없는, 오랜만에 만난 고기 앞에서 서로가 더 먹겠다고, 집안에서의 자신의 영역 다툼에 유치하기까지 하고, 담배 피우다 걸린 조카를 삥 뜯는 것은 교육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하나둘씩 밝혀지는 그들 가족의 웃기지도 않은 비밀들이 공존하는 그 곳. 그런데 그곳은 신성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겉보기에 막 나가는 인생들이 모인 그곳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뿐이었지만, 그랬다. 아마도 그 안에, 그 중임인 ‘엄마’가 계셔서 그런 거 아닐까 기대게 된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 페이지, 그리고 다음 페이지, 한장 한장 넘기면서 사람을 웃기게 만들어 방바닥을 뒹굴게 한다. 웃기기만 한줄 알았더니 가슴 찡하게도 만든다. 어디선가 우리집을 몰래 엿보다가 가서 그대로 담아둔 것은 아닌가 싶은 의심도 들게 한다. 어쩌면 인생의 벼랑 끝에서 차마 그 밑으로 떨어지기가 두려워 모여든 자식들에게 엄마가 베푸는 마음, 밥, 애정, 그리고 그 무엇이 더 존재할 것이다. 어떤 대가가 따르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돌아갈 곳이, 쉬어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숨을 쉬게 만들어주는 곳. 엄마가 있는 바로 그 집, 그들, 가족. 엄마이기에 가능한,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자식들 앞에서 얼굴에 혈색이 도는 엄마를 나는 이해할 것도 같다. 성공해서 큰소리치려고 모여든 것이 아닌, 그저 엄마에게 기대려고 오는 자식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흔히 '자식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순간인 것이다. 자식의 입장일 때는 절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들이 부모가 되면, 엄마가 되면 다 가능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전에 알던 누군가가 그랬다. 가족이란 존재 자체가 부담이라고.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 말을 나는 그 나이에 이미 이해하고야 말았으니까. 외로워서 함께 하고 싶은 것도 가족이며, 함께여서 고통스러운 것도 가족이라고.
같이 있을 땐 원수처럼 미워하다가도 막상 없으면 그리운 게 식구인 모양인지 나는 문득문득 민경의 짱알거리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오함마의 뱃고동 소리도 그리웠다. - 243페이지
엄마의 집에 머물렀던 그 시간은 그들에게 휴식이고 충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시간들을 겪어가면서 그 무엇도 설명해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눈물을, 웃음을 느끼지 않았던가. 서로 부딪히고 아옹다옹하고, 그러면서 조용히 서로를 위하는 것을, 이제 다시 각자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시간을 만난 것 역시도.

 

이야기가 이야기로 끝나지 않음을 느낀다. 작가가 들려주고 싶었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서도 결국은 그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비추게 된다. 온전히 나에게 다가올 느낌들과 이야기들로 다시 들려오게 만드는 것이다. 공감하지 않으면 절대 생겨나지 않을 그 감정의 변화들과 여운들을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두 번 이상 볼 수 없다는 것도 슬픈 일일 것이다. 그 감정의 격랑을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아서 다시 펼쳐들 수 없는 책이다. 여전히 내 책장에 나란히 꽂혀 있는 책인데, 손이 뻗어지다가도 다시 거두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가족놀이이 지쳐있다가도, 이 책들 앞에서 다시 ‘놀이’가 아닌 ‘가족’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는 한다. 그게 가능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순간, 빗소리마저 구슬프게 들리는 지금, 나는 다시 한 번 그 가족이란 것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한 사람이다.

왜 이제야 보였을까...
이 두 책의 표지가, 느낌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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