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 하는 중입니까?
김지운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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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굴 빨개져가면서, 누구 앞에서 마음 붉히며 수줍어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고 느낄 즈음 만난 이 책이 설렜다. 늙은 여자 사람이 추하게 느끼는 설렘이 아닌, 인간적으로 느끼는 설렘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만나 공유한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일 것이다. 상처 하나 없는 사람 없을 것이고, 살아가면서 장애물 하나 만나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이 후회되고 안타까워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 자리에서 다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일 테고... 두 주인공은, 특히 그 남자 문정효는 그래서 지금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한 순간에 과거를 한번 후회 했으니, 이 시간 이후로 살아가는 순간에 만날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

아스퍼거 장애를 가진 동생의 상담을 기다리다가 만난 희한한 남자, 정효. 긴 머리와 함께 그가 툭툭 던지는 말들은 그 남자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린의 손에 쥐고 있던 큐브보다 더 큐브 같았던 그 남자 정효를 그렇게 눈에 담았다. 한번 스칠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그린은 정효의 공방에서 베이비시터(강아지 또또)를 하게 되고, 정효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시작을 열게 된다. 정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함께 점점 더 알아가게 된다. 문정효라는 남자, 그의 과거, 그의 시간, 그의 상처, 그의 다짐 같은 것들을. 그리고 정효와 함께 할 그린의 시간, 그린의 상처, 그린의 치유까지...

왠지 제멋대로인,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을 것 같은 정효와 ‘토실토실’이 ‘사랑스럽다’는 말과 동의어로 들리게 하는 그린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웃음이 입술 끝에 걸리게 했다. 물론 이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던 그 과정에서는 지나간 상처도 다시 꺼내야했고, 그로 인해 아픔도 견뎌야했지만, 이루고자 하는 그 끝을 만났으니 된 거다, 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쉬운 길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길을 걷는 시간마저 소중하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그 종착역에서 만나고 싶은 거다. 가고자 하는 그 길의 끝에 도착했을 때, 지나온 그 여정마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싶은 소소한 바람... 그래서 그린과 정효에게 새롭게 시작될 오늘, 어쩌면 내일이 아름다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었다. 집중력 최고의 초록을 수제자 삼아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을 것 같은 정효, 정효를 ‘싸부님~ 나의 싸부님~(초록이처럼 강하게 발음해야 함!)’이라 부르며 자신의 재능을 신나게 즐기고 있을 것 같은 초록, 평생 청소는 안하게 만들겠다는 정효를 머슴 부리듯, 발끝을 리모콘 삼아 정효를 향해 까딱대고 있을 것 같은 그린, 아장아장 지후와 아직 이름이 없는 베이비가 함께 하는 그림이, 막 그려지지 않아? 물론 배경색은 그린이어야 한다.(좀 연한 그린이었으면 좋겠다.) 편안해 보이고 쉬어갈 수 있게 만드는, 마치 삶의 피곤 따위는 없는 것처럼 보이게. 연분홍 나비가 살랑살랑 날갯짓 하며 날아와 새겨졌을 것처럼 싱그럽게...

‘사부님’이란 단어가 이렇게 말랑말랑한 줄 몰랐다.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나오는 호칭으로만 기억하던 나에게 이런 정신적 충격을 선사하다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많은 호칭 다 내다 버리고 이렇게 불러줄 테다. “사부님~ 나의 사부님~(아주 부드럽고 연하게 불러줄 테야!)”이라고 불러야지. 맘에 안 드는 말이나 행동을 봤을 때는 입술을 쭉 내밀고, 뿌~ 해야지. 의자가 아닌 책상에 걸터앉아 발을 구르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의자 따위 필요 없어!) 휴대폰에는 ‘사부님 나의 사부님’의 이름은 ‘내 남자’라고 저장해야지. 평범한 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 이렇게 구구절절 말해놓고 보니, 나는 그린이한테 진 거다. (읽는 내내 그린이가 하나도 부럽지 않아! 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었는데... ㅠㅠ) 정효의 왼쪽 어깨에 새겨진 빨강(연분홍이라 우기고 싶은) 나비 문신이 지워지지 않을 테니... 에잇~ 부럽네. (인정!)

이 책이 나를 건드렸던 한 가지 있는데(물론 더 많지만 콕 찍어서 말하자면), 도예가라는 정효의 직업이, 나에게 이렇게 한 번씩 떠오르게 하는 지나간 시간이다. 정효의 공방이 나에게는 그랬다. 영화 <사랑과 영혼>을 교복을 입은 채로 극장에 들어가서 봤었던 기억, 벌써 23년이나 지난 영화지만 이 영화의 물레씬이나 포스터만큼은 잊을 수가 없을 만큼 강렬했던... 하긴, 사춘기의 여고생이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어. 긴 생머리가 넘버원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짧은 헤어스타일의 여자가 예뻐 보였고, 그전까지 내 눈에 미남이라고 할 수 없었던 패트릭 스웨이지(안타깝게도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가 상의 탈의하고 데미 무어를 뒤에서 백허그 하듯이 끌어안고 함께 물레를 돌리다니!! 허...어....억....! (하지만 입꼬리는~ 므훗~)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사랑과 영혼 공홈>

오래전 좋아해 마지않던 영화를 기억나게 하면서 나에게도 있었던 푸릇푸릇함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지나갔나 싶게 KTX 고속열차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이십대 초반. 학교 다닐 때, 내가 다니던 단과대 바로 옆 건물이 도예과의 작업실이었다. 겉으로 보면 창고 같지만,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그곳을 지날 때면 그 특유의 흙냄새와 지저분한(?) 실내를 볼 수 있었다.(청소는 무지 안하더라.) 흙이 잔뜩 묻은 비닐 앞치마를 입고 주변을 돌아다니는 학생들, 우연히 봤던 늦은 시간까지의 작업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까지 곁들여져서 나는 그곳-도예과의 작업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었다. 내가 손대는 것은 슬픔인데, 바로 버려야할 쓰레기 수준으로 만들어놓는 나의 손을 보면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인 곳이다. 더군다나 언니가 도예를 전공해서 그런지 그 흙덩어리를 패대기치듯 던져가면서 작업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중학생이었던 그때의 나는 언니의 학교 작업실에도 가끔 놀러가기도 했었으니까. 아직도 우리집에는, 언니가 실습삼아 만들었던 그릇이 있다. 이름도 몰라, 용도도 몰라, 생김새는 민망해, 진짜 안습이다. 차마 식탁에는 절대 올려놓지 못할 저질 상태이지만, 가끔 내가 맥주 마실 때 쥐포를 잘라서 놓는 그릇으로 만들어주면서 그 그릇의 존재를 각인시켜준지 오래... ^^


공방이란 이름, 반죽이 되어있는 흙,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가면서 가마에 그릇을 굽던 장면이(직접 본 장면이라 더 생생하다.) 정효와 그린의 사랑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으나, 아직 지워지지 않았음에 웃을 수 있는...

이 책 『곰곰, 하는 중입니까』 속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할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줄지, 얼마나 많은 공감으로 여운을 남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지독하게 싫어하는 빗소리마저 음악소리로 듣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그린의 부모님은 지금 어떤 소통을 하고 있을지, 정효의 아픔은 말끔히 치유가 되었을지, 그들의 ‘곰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지...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냥 궁금함 그대로 남겨두려 한다. 궁금한 채로, 계속 기억되고 있을 테니까... ^^

풋풋함이 사라진 연애와 현실 속으로 뛰어든 연애에 익숙해졌을 때, 아마도 그때 처음 소설을, 로맨스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설 속의 허구에 빠져 허우적대려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읽었던 한권의 소설 속에서 공감했던 현실이 먼저 다가와 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문학에 빠져들고 로맨스소설을 즐기면서 겪었던 감정은 공감과 기대, 혹은 위로였다. 주인공들의 이야기에서 가깝게 지내던 나의 지인들을 봤다. 또한 나를 보기도 했다. 그건 공감이란 이름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로맨스소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읽어본 책 앞에서는, 글 앞에서는... 앞으로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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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이유는 참 많을 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단순하게 하나의 이유만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분명 그-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므로 나 혼자 '그'라고 부른다-의 몇 문장을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자기 혼자 사는 세상에 익숙해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니, 이런 생각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겠지만...
어찌되었든 나도 눈과 귀를 가진 사람이니, 나와 관련이 없지만 눈에 들어오니 볼 수밖에..
그런 그에게 반해버린-인간적으로- 순간이 생겼다. 너무나도 단순했다. 내가 조용히 보관함에 담았던 책의 이야기를 그가 하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책의 이야기를 그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완전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똘기 충만하게(이 표현 역시 나의 주관적인 시선일 뿐이다.) 술술~ 아주 술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나는, 나도 모르게, 가끔씩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정기 구독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이다. 책으로 이야기하고, 책으로 소통하고, 책으로 인간적인 예의를 주고 받는 것...
결국은 책쇼핑으로 개미허리가 되어도 용서가 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 것...










조정래의 <정글만리> 예상했던 것처럼 해냄출판사에서 나온다. 또 하나의 대서사시가 되어줄 것 같아서 기대하지만, 나에게는 살짝 어려운 감도 있다. 감히 도전까지 어려워 당분간은 망설이게 될 책이 아닐까 싶다.
정이현이나 한창훈의 신간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한번은 읽어봐야 개운해질 책이다.
김려령의 <너를 봤어> - 이 책은 알사탕 안주실 건가욤?... ^^ 알사탕을 기다립니다. 미친듯이 읽고 싶지만, 아직 구매를 못 했어요. 나에게 힘을 주세요, 알사탕!!!

 









김얀과 이병률이 함께 이야기하는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은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살짝 놀랐었다. 여기서 그 이유를 다 말할 수는 없고, 다만 이런 이야기가 결국 나오기는 하는구나 싶어 흥미가 동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
너무나도 유명한 아르미안 시리즈의 소설... 넬레 노이하우스의 신간까지...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간은 두번 말하면 입이 아프게 기대되는 책이고...
솔로몬의 위증은 역시 3부까지 완료가 된 듯하다. 이미 예판중이므로... 복불복 이벤트도 기대되지만... 아직 구매하지 못했다는 점~ 2부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다는 점~ 언제 읽을까 두려워 구매결정이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해야 안심이 될 것 같다는 점~ ㅠㅠ




정말 사고 싶은 책이 몇 권 더 있는데... 마음이 아파서 말을 못하겠다.
말하고 나면, 지금 안 사면, 울 것 같아서... ㅠㅠ
폭우를 뚫고 오기 전에 구매완료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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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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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유정! 책의 무게감 때문에 손목이 아프지만 그 무게감이 책 안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집중하고 싶을 때 무조건 펼쳐야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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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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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색다른 그림과 독특한 느낌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풋사랑이란 이름 앞에 미처 듣지 못한 그 마지막 말이 궁금해 미칠 지경. 아마도 주인공에게 첫(?)사랑의 맛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염소의 맛이라고 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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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울 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진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 한쪽 팔이 거의 마비에 가깝게 움직일 수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럴 때 정말 책이 읽고 싶어진다.
책을 손에 들 수도 없는데 말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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