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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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잘나갔던 상담가 임해수는 하던 일을 접고 은둔 중이다. 최소한의 외출만 하면서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한다. 그날 이후 임해수의 일상은 달라졌다. 내담자들에게 자신 있게 조언했는데, 이제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조언할 수 없는 마음이다. 당연히 일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욕을 먹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녀에 대한 악성 댓글은 여전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비난의 대상이 된 그녀가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설상가상 상담소에서는 그녀에게 퇴사를 통보하고, 남편과는 이혼한다. 자신 있게 해냈던 일은 이제 두려운 대상이 되었고, 외로움도 모를 정도로 혼자인 생활에 익숙해진다.


어쩌면, 실수라면 실수일 수도 있는데, 그녀의 말 한마디로 누군가 세상을 등졌다. 국민 상담사로 칭송받던 그녀가 한순간에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 그녀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편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한다. 그녀의 기사를 썼던 기자, 죽은 이의 가족들, 그녀에게 진심을 건넨 친구 등 이 사건으로 그녀와 대척하거나 거리를 두게 된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데, 이상하게도 이 편지들은 항상 끝맺지 못하고 부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지 못한 걸까? 아니면 이 말을 끝내 전하지 못하는 마음인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쓴 편지의 내용은 수신인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과하기도 하고, 반성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편지는 계속 쓰면서도 미완성으로 남겨지고, 폐기되는 순서를 반복한다. 읽으면서 느끼겠지만,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반복될수록 그녀의 자기 연민은 짙어지고, 그때의 자기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합리화는 계속된다.


어쩌면 임해수는 지금 가장 큰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비하와 부정으로, 매일 밤 울분을 토하고 자신과 세상을 원망하며 보내는 시간이 그 벌이라면 벌일까. 그러던 중 심하게 다친 길고양이 순무를 구하려는 세이를 만나면서 전환점을 만난다. 고양이에 관심도 없던 그녀가 우연한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순무 구출 작전에 투입되면서 은둔의 장소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 그녀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면서 대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제 은근한 내담자가 된 세이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임해수가 우연히 세이를 만나고, 세이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걸 알면서도 참견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게 의아했다. 한마디라도 해줄 거라고, 실력 있는 상담가로서 이 아이에게 닥친 문제를 자연스럽고 편안한 방법으로 해결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본인은 세상에서 차단당했지만, 그래도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본성은 어딜 못 가는 거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둘 사이의 흐름을 이끈다. 임해수는 세이의 몸에 있는 멍 자국, 피구 연습이 없는 시간에도 여전히 연습한다고 말하는 아이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이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모른 척하기를 바라는 듯 행동하면서도, 자기가 잘하고 있음을 피력하려고 애쓴다. 결정적으로 세이의 내면이 폭발한 순간에도 임해수는 그저 지켜본다.


왜 그랬을까. 불행은 빨리 처리하면 좋은 거 아닌가. 어서 내 옆에서 불행을 모조리 쫓아내 버려야 속이 시원한 거 아니었나. 착각이었다. 나는 임해수가 왜 세상으로부터 차단당했는지 이 짧은 시간 사이에 잊고 있었던 거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다 알지 못하면서 말을 보태지 말 것. 말하는 것보다 듣는 일 먼저 완수할 것. 사람들은 이 모든 사태에 임해수의 한 마디가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임해수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다. 매일 밤 쓰는 편지조차도 부치지 못한 채로 쌓아두는 걸 보면, 그녀 역시 편지로 하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기까지 고민하는 것일 테다. 느리게, 그저 듣는 일은 세이가 임해수에게 진심을 꺼내놓는 순간이 오기까지 시간이 길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거기에 그녀가 고양이 순무를 구하자고 들이는 시간을 보면 더 확실히 알게 된다. 기다리는 것. 고양이를 구조하려고 기다린 시간만큼, 고양이를 지켜보는 시간도 많아지고, 고양이를 더 관찰하여 구석구석 볼 수 있었으며, 마음을 전달하면서 천천히, 그녀의 손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자기 자신을 구조하듯 고양이 순무를 구조하기에 이른다.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182페이지)


처음에는 이 소설이 무슨 말을 하려고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지 몰라서 혼자 우왕좌왕. 작가의 전작으로 진하게 감동했는데, 이 작품은 어디에서 공감을 찾아야 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점점 눈에 보이는 게 있더라. 구조하겠다고 기다리던 순무, 아픈 걸 아는데도 말하지 않는 세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이 눈에 읽혔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상담자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가 보다. 언젠가 때가 되면, 내담자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아는 것처럼 듣고 있었다. 강요하거나 자기 얘기로 유도하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누구도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그녀를 지켜보는 것처럼 서술되는 분위기가 그렇다. 과거의 그녀가 어땠는지 상관하지 않고, 이제 그녀가 다시 상담가로 살아갈 모습을 기대하게 할 뿐이다.


#경청 #김혜진 #민음사 #소설 #한국소설 #문학 #한국문학

##책추천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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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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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요기를 느껴 일어났을 때 깜짝 놀랐다.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던 엄마를 봤을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혹시 정신을 놓은 건 아닐까 싶은 두려움에, 조심스럽게 물어봤을 때 들려온 대답은 말문을 막히게 했다. 이렇게 아픈 바에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내 몸에 붙어 있는 다리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니 괴로워 죽을 것 같다고. 몇 년 전부터 엄마를 괴롭혀온 무릎은 시술을 받은 다음에도 아무 일도 없던 때로 돌아오지 못했다. 통증은 계속될 것이고, 회복되어도 자연스럽지 못한 걸음을 걷게 될 테다. 회복이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본인의 마음은 마냥 긍정적이지 못했던가 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화장실에 드나들 수 있었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급할 때 속옷을 버리는 건 다반사였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 몸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서글프다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게 미안하고, 앞으로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 내가 건네는 괜찮다는 말은 엄마에게 온전히 전해지지 못했다. 나 역시 엄마를 괴롭히는 통증을, 마음의 고통을 다 알지 못했던 거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환호성을 지를 때 저자에게 찾아온 사고는 불행과 불운이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기분도 좋고 달도 너무 밝아서, 좋은 사람들과 걷고 싶어서 올랐던 그 다리에는 왜 난간이 없었을까. 많은 사람이 걸었어도 괜찮았는데, 왜 난간이 없어서 생긴 사고는 나에게 왔을까. 왜 사고 수습은 이렇게 두서없이, 책임 없이 진행되어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놨을까 싶은 원망. 그런데도 눈앞에 놓인 시간을 살아가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재활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간절함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불편한 몸을 적응하게 하는 게 재활이라고 인정해야 했다. 말은 쉽다. 어쩔 수 없다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당신이라면, 바로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이 불행이 왜 나에게 와야 했는지 따져 묻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내 발가락 끝을 움직여보려 안간힘을 쓰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일은 고단했다. 가장 힘든 일은 수시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이었다. 통증의 강도를 계산해 보지만 의미 없다. 내 몸에 칼을 쑤셔 넣는 것 같은, 한참을 견뎌야만 그나마 조금 사그라드는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통증을 조금이라도 잊으려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하지만, 집중하는 일에도 어김없이 고통은 끼어든다. 그러니 온전히 고통을 잊을 수도 없는 거다. 그래도 글 쓰는 일에 몰입하는 집념은 저자가 작가라는 걸 증명하는 듯하다. 전에는 소설을 쓰는 이였다면, 이제는 소설에 머무르지 않는다. 장애를 가지고 휠체어를 타는 일상이 주는 불편함을 말하는 이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다 알지 못할,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살아가야 했고, 남은 생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채워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보며 일상을 함께하는 엄마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온 똥을 뭉개고 앉아서 엄마를 기다린다.’(9페이지)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들려왔던 건,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오늘이었다. 달라진 삶 속에서 겪은 것을 들려주는 입이 되어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소설만큼 타인의 공감을 이루는 글로 모두에게 전하려고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면서, 모두가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누구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음을 여기서 확인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는 일. 친구들을 만나고 음식점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두 다리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을 넘어 안전하게 지하철에 오르고, 예매한 좌석에 편히 앉아 뮤지컬을 관람하는 일이 저자를 비롯한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애써야만 하는 일이었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다. 계단을 휠체어로 오를 수도 없었거니와 이들에게 공간을 내어줄 음식점도 없었다. 극장에서 흔하게 보던 장애인석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로 입장 불가 상태인 건 무슨 이유인지, 뮤지컬 한 편 보려고 지하주차장과 객석을 오가던 날의 이야기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에 오르는 여정 역시 험난했다. 읽는 내내 등에 땀이 흘렀다. 저자의 문장이 그리는 장소와 상황에 나의 시선이 그대로 꽂혔다. 휠체어를 타고 끙끙대며, 많은 이의 시선 속에서 그 난관을 헤쳐 오르려고 발버둥 치는 내가 그 안에 있었다. 혼자서 겪는 고통으로도 모자라, 사회가 만든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보건소에서 대여해온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칼국수를 먹으러 집을 나선 적이 있다. 평소 같으면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면서 15분 만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인도는 휠체어의 속도를 늦췄고, 뒤에서 미는 힘을 배로 증가시켰다. 인도와 인도 사이의 높이는 있는 힘껏 휠체어를 밀어야 앞으로 나아갔다. 두 번의 보행자 신호를 건너는 동안에는 휠체어를 밀면서 뛰어야 했다. 보행자 신호가 이렇게 짧았다는 걸, 이 길로 다니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이 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칼국수 가게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 일단 한숨 한번 쉬어주고 테이블 위에 차려진 칼국수를 먹는데, 참 고되더라. 가는 길에 기진맥진 힘이 다 빠진 터라,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이게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한 채로 허기진 배만 채웠다. 그러고 나니 저자가 느낀 불편함과 고통에 조금이나마 닿은 느낌이었다. 뮤지컬 한 편 보겠다고 건물을 몇 번 오르내리면서 지치고, 지하철 한번 타는데 승강장 사이의 틈새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막 차려진 음식이 아니라 배달된 음식으로 대신해야 했던 모임까지. 안간힘을 써서 버텨온 시간에 이렇게 아픈 일상을 그래도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함께 알아가야 하는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그 시간이 아프기만 한 것도 아닐 테다. 포기할 수 없는 일상, 삶 때문에 이 글은 의미 있다. 거기에 저자가 해야 할 말이 늘어났다. 본인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기에, 저자를 지켜보고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라도 이 글은 빛난다. 엄마는 여전히 저자의 손과 발이 되어 옆에서 도와준다. 어린 조카는 고모의 휠체어를 밀어주고 조심하라고 말할 줄 안다. 소설의 출간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만나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지만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여전히 세상과 사회가 힘들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살아갈 것이라고, 저자를 아끼고 보살펴주는 사람들 때문에 이 삶이 가치 있다고 말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쓰는 글을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게 될 것 같다. 소설가가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 결국 우리는 극복하면서 살아갈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해줘서 말이다. 아마 나는 다 모르겠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결코 같은 크기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테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타인에 공감하는 삶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33페이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보장되지 않은 것을 배우겠다는 무모함에, 몸이 불편한 엄마도 챙겨야 하고, 마무리되지 않는 서류 확인에 피곤했다. 쉬는 기간 없이 바로 다음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우습게 여겼는데,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걸 무시했다. 진짜 아픈 건지 뭔지 멀쩡하던 치아에 통증을 느끼고, 마지막 근무를 하던 날부터 오늘까지 지독한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이 며칠을 절망하고 원망하며 보냈을 것 같다. 부끄럽게도, 왜 순탄하고 편한 일상이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나이를 잊은 투정을 부렸겠지. 더는 누구 탓을 하면서 나의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나아가는 인간이기에, 하나씩 차근차근 바라보면 해결되는 것도 있겠지. 저자의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듯, 누군가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는 사회도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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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일이면 지금 하는 일을 마무리한다. 석 달만 하려고 했던 일을 어쩌다 보니 열 달이나 하게 되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사람들 만나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원한다면 계속 일할 수도 있는데, 다른 것을 배워보고 싶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말하고 보니 가슴 속이 뭔가 횅하다. 내가 나를 더 존중해주고 싶어서, 좀 더 길게 일할 수 있기를 원하기에 지금 일은 여기에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5월에 등록했던 학원 일정이 늦어져서 이제 시작하는 건데, 막상 학원비까지 결제하고 보니, 하기가 싫어지는 이 마음은 뭔지 모르겠다. 처음 등록할 때의 간절한 마음은 어딜 가고, 불안이 가득한 내 마음은 또 갈팡질팡. 사실, 겁이 난다. 괜히 시간 들여 돈 들여서 했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상태로, 시작하기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 이거 괜찮은 건가?


임지이 작가의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를 읽고 있다. 나이 마흔에 회사원에서 만화가로 살아가는 게 쉬울까? 묻고 보니 좀 그렇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도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한 번 더 묻고 싶었던 건, 내 마음과 너무 닮은 것 같아서 말이다. 뭔가를 다시 시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지만, 그런 말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현실이 그 나이를 고민하게 만들어서, 어떤 변화나 다른 시작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와 시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생길 거다. 시간과 비용을 고민해야 하고, 그 후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또 고민하게 되고, 혹시나 이 도전이 무모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고. 그럼 또 그렇겠지. 시작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고 어떻게 결과를 알 수 있느냐고,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렇구나. 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니까. 해봐야만 하는 거구나. 그런데도 자꾸 걱정되는 걸 어쩌란 말이냐.


일 낮 시간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단다. 그럴 수밖에. 아파서 병원에만 가더라도 반차나 월차든 내고 가야 하니, 평일 시간을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건 당연하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서점으로 외근 나갈 때, 서점이나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는 말에,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꾹 누른 것처럼 아팠다.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갖고 싶은 바람 같아서 공감했다. 나 역시 꽤 오랫동안 평일 낮 시간을 즐기며 살아왔는데,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하고 고마웠다는 걸 알겠더라. 월차를 내더라도, 이게 하루를 쉬면서 해야 할 만한 일인지, 혹시 한두 시간 잠깐 나갔다가 올 수는 없는지 계산하게 된다. 그러니 평일 하루의 시간은 계산하고 또 계산해가면서 결정해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런 날이 저자에게 갑자기 생겼다. 회사에서 잘려서. ㅠㅠ 저자가 바란 건 이런 반전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갑작스러운 일에 얼마나 걱정이 심했으면 일주일 만에 8kg이 빠졌을까.


이런 상황에 우리는 무슨 결정을 하게 될까. 빨리 다른 직장을 구해야지, 아니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이 기회(?)를 누리고 있을까. 겉으로는 태연해도 마음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또 다른 기회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저자가 당장 취직보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했던 것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게 된다면 좋은 결과 아닌가? 현실이 녹록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공장에서 나사도 박아보고, 동네 돌면서 빈 병 주워 팔기도 하면서, 어쩌다 엄마 돈도 훔치기도 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평일 낮 시간을 얻은 대가였으니까.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본인이 만화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이면지와 모나미 볼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면서, 그렇게 완성해가는 이 만화가 더 기가 막힌 건, 저자가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는 거다. 진짜? 정말로? 이런 능력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회사에서 잘린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거 아닌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만화로 그려나가면서 재미를 알게 됐다. 취미로 그리던 만화가 이제는 만화로 먹고살게 된 거, 이거 운명 아니면 뭐야?


나이 마흔에 지금껏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구나 싶은 안심과 내 시간을 내가 주인으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돈도 버는 일이 어디 흔할까. 그러니 저자의 지금이 너무 부러운 거다. 발로 그렸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없던 그림은, 계속 그리면서 실력을 키우고 현재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너무 귀엽고 개성이 있다. 그림에 더해진 스토리가 너무 잘 어울려서 읽는 재미까지 더한다. 만화로 표현하는 자기 생활이 이렇게 다른 이에게 전달될 수도 있구나 싶어서, 나의 똥손에도 모나미 볼펜 하나 쥐여줘 볼까 잠깐 고민했더랬다. 손인지 발인지 모를 것을 그리면서 나도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라도 표현해볼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더해진다. 생각이 많아지니 별걸 다 한다.


지금 어떤 상황을 바뀌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고, 다가올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알면서도 자꾸만 주저하는 건, 겁이 나서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지금 이 변화를 시도하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당장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걱정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건, 내 선택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내가 나를 잘 몰라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닐까 하는 후회를 할까 봐. 알면서도 듣고 싶은 말을 저자가 해주고 있어서, 그렇게 눈앞에 놓인 일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은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계속 읽게 된다. 웃기지만 진지하고, 씁쓸하지만 기대되기도 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보다 나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그래도 믿는 거 말고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러니까 나에게 한 마디만 해줘. 저자, 당신이 그랬어. 재촉 말라고, 믿고 기다리면 다 잘되게 되어 있다는데, 그 말 진짜지?


우연처럼 순간을 바꿔주는 이야기들을 찾고 있다. 읽고 있는 책들과 읽고 싶은 책들 사이에서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찾으면서, 그림 한 컷이, 문장 하나가 나를 더 토닥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더좋은곳으로가고있어요 #임지이 #빨간소금 #당신이모르는이야기 #이백오상담소 #책과우연들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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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2-15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인데 구단씨 독후감 읽으니 꼭 읽어야겠네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때입니다.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계시든 다 잘 될거라고 응원드리고 싶습니다. 화이팅!!!

서니데이 2022-12-1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01-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 마니아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올리앤더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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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준비에 그렇게 필요하다던 스토리가 이 아이들에게는 없었다. 없는 스토리도 만들어내야 할 정도로 열을 올리는 엄마의 주장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스토리가 이렇게 시작되려고 한다.


엄마의 재혼으로 호주로 쫓겨간 해솔, 홈스테이하는 집주인 딸 클로이, 불법 이민자로 살아가는 집안의 문제아 엘리. 세 사람의 이야기가 각자의 시선에서, 또 같이 들려온다. 처음에는 엄마가 버리듯이 호주로 보내진 해솔의 방탕한 유학기가 펼쳐지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한국에서도 공부에 집중하던 해솔이 호주에서도 우등생으로 살아가는 걸 보고 있자니, 이 아이는 도대체 어떤 삶을 바라는 걸까 궁금했다. 반항하고 싶고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싶은데, 그걸 봐줄 엄마가 옆에 없다는 거. 삐뚤어지기 딱 좋은 배경 아닌가? 그런데 해솔은 호주에서도 공부를 놓지 못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학원을 찾아다닌다. 한국에서의 공부가 호주에서는 이미 앞서가는 우등생의 수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해솔에게 같은 집에 사는 클로이는 서로 안쓰럽게 보면서도 경쟁자 관계다. 공부 잘한다고 호주 한인 사회에서도 유명하고, 딸의 그 유명세로 목에 힘을 주는 클로이의 엄마. 엄마의 꿈이자 클로이의 목표인 의대에 가는 게 유일한 일상의 힘이 되는데, 그 힘을 빠지게 하는 해솔의 등장은 경계 대상 1호다. 홈스테이의 규칙을 줄줄 읊어가면서 주시한다. 마약, 술 안 됨. 친구 데려오지 말 것. 남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짓 하지 말 것. 먹는 것은 정해진 곳에 둔 것만 손댈 것. 뭐가 더 있지만, 내 귀에도 그냥 귀찮은 아줌마 잔소리로만 들려서 금방 잊힌다. 언제나 의대를 부르짖으며 공부에 매달리는 클로이의 일상이 정상적인가 싶으면서도, 한국이나 호주나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똑같구나 싶다. 거기에 등장하는, 클로이네 앞집 사는 문제아 엘리는 두 아이의 삶과는 다르다. 마트에서 물건도 훔치고, 마약도 하고 술도 마신다. 이 아이에게는 호주에서의 삶이 목표가 없는 걸까.


한국에서처럼 죽기 살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분위기가 읽는 나도 낯설었다. 그런 곳이 있다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싶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일정이라면 그곳의 분위기에 푹 빠져 살고도 싶었다. 그런 환경에서도 클로이는 1, 최고의 성적에 닿으려는 몸부림을 멈출 수 없었고, 언젠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해솔에게 그곳의 환경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클로이와 해솔의 중간쯤에 있는 게 엘리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가 호주에 머물기 위해 없는 형편에 대학에 다녀야 했고, 호주에 있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없기에 돈을 벌면서도 불법체류자로 머물러야 했으니까. 오직 현금으로 주고받는 일을 해야 했고, 누구네 집 창고에서 사는 일에서조차 을이 되어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이들은 왜 호주를 떠나지 못하는 거지? 왜 호주에서조차 숨이 차게 사는 한국과 닮은 일상은 보내는 거지? 이민자 1.5세대, 유학생, 이민자 2세대. 제각각의 이유로 그곳에 머무는데, 정작 그 시간을 사는 당사자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또 문제네.


자기만의 서사를 쓰는 일이 쉬운 것 같지만,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 것 같다. 살아온 시간, 지금의 삶, 살아갈 시간을 채우는 게 한 사람의 서사라고 해도 된다면 간단해 보이는데, 그걸 어떻게 채우고 써야 하는지 모른다면 한없이 어려운 일. 이 나이 먹고도 잘 모르겠는데, 10대의 이 아이들은 얼마나 알까. 그걸 알게 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고 부모의 의무 같은데, 이 아이들의 부모는 자기 삶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무조건 의대에 가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며 딸의 스펙이 자기 목표인 것처럼 구분하지 못하는 엄마, 자기 행복 찾느라 혹시 걸림돌이 될까 봐 피해버리는 엄마, 무엇을 위해 호주에 머물러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끝까지 호주를 떠나지 못하는 부모. 이 환경에서 자기 삶을 찾고,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법을 온전히 배운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가. 오히려 이 아이들이 일탈하는 게 반가울 지경이었다. 꽉 막힌 일상에서 불법이든 뭐든 많은 것을 보고 부딪히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을 찾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은 방법 아닐까 싶어서.


이만큼 살아왔는데도 모르겠다. 당장 다음 주에 펼쳐지는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10대에 놓인 이 아이들의 내일이 불안하면서도 같이 보고 싶은 건 왜일까. 궁금한 것도 세상에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으니까 나아가고 싶은 호기심, 사소해 보이지만 인생을 걸어야 한다고 믿는 무모함마저 무기로 보이는 이 시기를 잘 건너갔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처럼, 만지기만 해도 독이 닿고, 조금만 흡입해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올리앤더 나무 같은 시기를 건너고 있는 듯하다. 가까이하기에는 마냥 어려운 상대, 위험한 시기를 감당해 낼 수밖에 없는. 언젠가, 어떻게든 완성될 이 아이들의 스토리가 기대된다. 호주 조기 유학의 실상을, 한인 이민자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그 사회에 머물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이렇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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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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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인적 구성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상황과 이주민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 인구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 소도시인 이곳은 인접한 시골과 생활권이 같다. 병원, 공공기관 등 웬만큼 큰 곳을 찾으려면 모여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자주 보는 이주민을 생각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24명의 이주민이 그들의 한국 생활과 상처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피해를 들어오면서 화를 내곤 했는데, 이들의 한국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회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야 이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주민의 구성은 커졌다. 그만큼 우리 관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인식은 같은 비례로 커지지 않은 듯해서 이들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까. 인종, 국격, 피부색을 넘어,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 생활 3, 그사이 여러 지방을 떠돌며 살았어요. 남편은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뜯긴 일도 여러 번이고,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가기도 했어요. 이집트인이라서, 또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어요. 나도 일하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 회사들은 히잡 쓴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봐요. 덕분에 한국어 공부할 시간을 얻었으니 열심히 배워 일을 찾고 싶어요. (224페이지)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서 인정받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생활고에 시달린다. 난민 심사를 3년째 기다리는 이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꾸리려면 결과를 기다리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주는 이도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 와중에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주민이라고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테다. 국적, 배경, 이주의 목적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시선은 비슷하다. 부당함 역시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새로운 사회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혐오를 먼저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빠진 것은 그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과 차별을 이제는 바로 봐야 할 때인 듯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그냥 관광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다문화를 이룬 가족,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광객과 다르게 보는 모습에 뭔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이주민을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타인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 그들의 목적에 맞는 생활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 기분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 나라로 돌아갈 목적이더라도 이 사회에서 똑같이 노동하고 생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제도의 악용도 뚜렷했다. 이 제도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노동자의 가족 역시 동반 입국이 안 된다. 사업주가 아무리 잘못해도 노동자가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억울함을 주겠지.


듣다 보면 몰랐던 이주민의 삶에 아픔을 같이 느낀다. 차별을 알면서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목적이 분명해서 말이다. 이주민의 이런 고충은 성인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주 청소년의 삶을 더 혼란스러웠다. 이주 배경 학생 수가 전체 학생의 3%를 넘는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이 비율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다문화, 이주민의 적응에 같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실에 그에 발맞추지 못해서 지금도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읽어야 할 때이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평소에도 일손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많은 수가 이주민이다. 농사철이 되면 더한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마다 시에서는 일반 실직자나 이주민 노동자를 농사하시는 분과 연결해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농사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커졌다. 가끔 몇 시간씩 나도 농사라고 불리는 일에 참여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다. 최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해내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열악한 거주 환경까지 이들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부당함과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기에, 이주노동자의 여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 우리를 비롯한 사회의 관심은 필수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공존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도 있고 찍어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너는 왜 나처럼 안 먹느냐고 비난해봤자 소용없죠.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다문화든 아니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외모가 어떻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요. 우린 다 똑같이 사람인데요. (46페이지)


지금도 이주민을 향한 나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주민이 오면 한국이 망한다고, 우리 고유의 민족은 점점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주민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돌보미부터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골의 농사일, 산업 현장의 노동자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들을 본다. 어느 한순간 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가 멈추니까 붙잡고 있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듯이, 이들도 이제 우리 곁에서 그들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주민의 삶, 현실을 이렇게 듣고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의 삶으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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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점점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건 더 많아지고 일반화될텐데,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면이 많지 싶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부당하다고 당연히 생각할텐데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래가지는 못하리라고 믿습니다. 세계는 어쨌든 더 하나로 연결되고 있고, 그 거대한 흐름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을거 같아서요. 그에 따라 이주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식도 바꿔나가야 하기에 이런 책들의 기획이 더 많아져야지 싶네요.

호우 2022-12-0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지역에도 이주민이 정말 많아요. 조선족이 가장 많지만 동남아에서 온 결혼 이주민 여성들도 많아요.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쓰는 곳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구하기 어려운 곳일 경우가 많아서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 현장들이 없어져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