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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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소설이었나. ‘어쩌다 한집에 살게 된 두 여자의 왠지 부끄러운 소원이 오로라의 너울 속으로 빨려 올라가 회오리쳤다.’라는 문장이었을 거다. 시어머니와 오로라 여행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이 무슨 이상한 여행 조합인가 싶었다가,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여자로 살아가는 순간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생각에 한참을 바라봤다. 아무 생각 없이 눈밭에 누워 바라본, 쏟아지는 오로라를 그대로 맞고 돌아온 이들의 일상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달라졌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분명 그 여행을 떠난, 오로라를 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권오철이 찍은 오로라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을, 그때 그 문장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떠올렸던 단어 오로라를 이제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던가 보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우아한 오로라 사진, 낯선 땅 밟고 멈춰선 곳에서 바라보는 오로라는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어떤 이는 생애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하나일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어디선가 일어나는 자연 현상쯤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달라도 이 책 속의 장면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던 건 똑같으리라. 이미 저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던 터라 익숙하지만, 정작 그가 찍었다는 사진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번 책은 나에게 그의 사진과 가까워질 기회이기도 했고, 문장으로 봤던 오로라의 우아함에 취할 시간이 됐다.


신의 영혼이라 불리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완전 무장을 하고 닿은 곳에서 마주한 오로라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굳이 어딜 가서 뭘 봐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니다. 이건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봐야 할, 생애 꼭 한 번은 보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 신비로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리 아름다운 색을 골라서 칠해봐도 오로라의 모습과 색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니 어쩌겠나, 직접 보는 수밖에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을 테다. 어디선가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오로라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저자의 친절한 안내로 새롭게 알게 됐다. 캐나다의 옐로나이프에서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미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되어버린 오로라 여행 목적지는 정해진 셈이다.


오로라는 왜 생기는 걸까? 그 빛의 출처는 태양이었다. 태양에서 나온 전기 입자들이 행성의 자기장에 이끌려 오면서 대기와 반응하여 빛을 낸다고 한다. 사진에서는 대부분 초록이었는데, 오로라의 색이 꼭 초록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그럼 언제 오로라를 가장 잘 볼 수 있을까? 태양의 활동이 극대기에 달하면 오로라를 볼 확률이 높단다. 특히 춘분이나 추분을 전후로 한 시기가 안성맞춤이라고 하니, 오로라 여행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시라. 듣다 보면 이 책에는 저자의 사진뿐만 아니라, 오로라를 더 자주, 잘 볼 수 있는 여행 팁까지 함께한다. 혼자서 찾아가는 오로라도 의미 있겠지만, 여행 상품을 정해서 가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저자처럼 이 분야를 직업으로 삼은 이가 아니라면, 대부분 오로라 여행은 초보일 거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행 상품으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지구 자기력선이 강하게 형성되는 오로라 존은 대개 춥고 교통마저 좋지 않은 곳이다. 저자의 말로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오로라를 보기 위한 최적 날씨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다. 미국 NASA가 꼽은 최고의 오로라 관측지라고 하니 믿고 가도 좋겠다. 흐리면 오로라를 볼 수 없는데, 옐로나이프는 연중 맑은 날이 240일이나 된다니 딱 맞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오로라 여행 상품이 있더라. 저자가 항공편부터 숙박까지, 그 추운 날씨에 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오로라를 보러 갈 수 있는지 오로라 여행 전 알아야 할 기초 상식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사실 어떤 여행이 처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게 시행착오 아니던가. 생애 몇 번이나 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차피 두 번 가능한 여행이 아니라면 안심하고 안전하게, 만족할만한 여행이 되면 좋지 않을까. 저자의 권유 같은 추천 방법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오로라 폭풍을 만날 방법을 들려준다. 거의 11년 주기로 활동하는 태양의 극대기에 오로라 폭풍을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고 하니 참고하시라. 오로라 예보와 실시간 관측자료까지 잘 숙지하고 간다면, 그곳에 머무는 동안 부족함 없이 오로라를 가슴에 담아올 수도 있겠지. 거기에 언제 또 담아올 수 있을지 모를 오로라를 사진에 잘 담을 수 있는 비결까지 들려주고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겠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저자가 그동안 찍어왔던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느낀 황홀함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에게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가 사진 찍는 일을 전업으로 삼기까지 혼자 고민하고 갈등하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의 그가 있기까지 많은 시간 노력이 빠지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그러니 이런 사진을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거겠지. 여행서라고 하기에는 그 퀄리티가 높다. 누구라도 이 책에 담긴 사진을 본다면 당장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질 테다. 막상 오로라를 보겠다고 하니 막막할 것을 알아채고 작가는 친절하게 오로라를 찾아가는 방법까지 안내한다. 마치 그가 봤던 그 장면을 독자도 놓치지 않고 보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뭐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소화제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때 펼친 이 책에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그 눈밭에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오로라를 눈에 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오직 눈앞의 빛만 가득한 것처럼, 그때만큼은 다 잊어도 좋을 만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 듯했다. 이런 사진을 보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그 장면을 눈으로 그리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밀어두어도 괜찮은 마음이 이런 건가. 정말 그래도 괜찮다면 한동안은 계속 보고 있어도 좋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어와 버린 여행지로, 오로라로 남아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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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책리뷰 #하니포터 #하니포터6_신의영혼오로라 #오로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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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두 구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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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살인사건을 분명히 보여주고 시작하는 이야기하는 걸 보니, 범인을 찾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살인 그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독자가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사건을 버젓이 드러내놓고 범인까지 알려주었다. 살인의 이유도 분명했다. 현도진은 질척거리는 여자를 이제 떼어내고 싶었고, 그에게 살인은 본능처럼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가 잡힐까? 완전범죄를 만들까? 우연히 일어난 살인이라고 하기에는 즐기는 것으로 보였던 그의 본성은 무엇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호기심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바삭 깨져버렸다. 또 다른 시체의 등장은 그를 살인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었고, 그의 가까운 곳에 그와 결이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강력 1팀 형사 현도진은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출근한다. 강심장이다. 아니, 그에게는 처음부터 심장이 없던 건지도 모른다. 동료가 힘들어하는 현장의 메스꺼움조차 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잔인함을 보고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를, 우리는 사이코패스라고 부른다. 직장생활의 불편함이 없던 그에게 어느 날부터 출근하기 싫어지는 대상이 생긴다. 강력 1팀 반장 장주호. 현도진을 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싫어하는 이유도 분명 존재할 테다. 현도진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장주호의 시선을 받아내기 바쁘지만, 노련한 그는 그 눈빛조차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 세상은 어려울 게 없었고, 그의 즐거운 놀이(?)는 완벽했으며, 그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 대한민국 거물의 실종 신고가 들어오고 강력 1팀이 담당한다. 실종자를 찾아야 했지만, 현도진은 알고 있다. 실종자가 이미 살해되었음을. 우연처럼 그의 눈에 들어온 시신은 그의 본능을 피해 가지 못했다. 끝까지 사건을 추적하는 장주호 반장과 그의 팀원들, 그 중심에서 이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보던 현도진까지. 두 건의 살인사건과 두 명의 사이코패스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도진과 장주호의 대결 같은 심리전으로 가득하다. 거물의 실종은 곧 살인사건으로 전환되고, 이 사건에 연루된 누구라도 범인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사건을 추적하는 팀원들과 이 살인을 알지만, 범인을 모르는 현도진 사이의 추적이 얼마나 다를까 기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장주호가 현도진을 나는 너를 아주 잘 알아.’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둘 사이에 예전에 나쁜 인연이 있었던가? 아니면 현장 감각이 뛰어난 형사와 엘리트의 모습으로 형사를 표현하는 비주얼의 대결이었나? 외모로 보나 사건 해결 방식으로 보나 두 사람의 결은 너무 달랐다. 그런데도 너무 닮은 듯한 이 느낌은 뭔가 싶었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태연한 현도진, 눈앞에 주어진 살인사건 해결에 목숨을 건 듯한 장주호, 두 사람 사이에서 형사의 길을 차분히 밟고 싶었던 새내기 형사 선우신까지.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을 수가, 누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두 명의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것인지 환경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더 공포가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알고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다 알 수 없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닐까? 인간의 본성을 알고 싶으면서도, 막상 알고 다면 더 큰 두려움에 빠질 것 같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아는 많은 이가 선하고 인심 좋은 이웃 같은데, 그 내면까지 속속들이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무섭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는 내 앞의 당신이, 혹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한 작가의 작품이 오랜 세월을 지나 다시 출간되는 이유는 많겠지만, 정해연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된 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구나 싶다. 다른 작품처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범인 한 사람을 악인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누구도 악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남겼다. 나는 안 그럴 거라고 누가 감히 자신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하나씩, 차근차근, 자기만의 이익과 본성을 채우느라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다.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은 많아지고 그걸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함께 사는 사회의 기본이겠지만, 그 기본을 깨트리는 것 역시 인간이라는 것을.


그 후에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는데,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말에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문장으로 채운 스릴러의 긴장감을 마무리하듯 영상으로 더해준다고 하니 기다려야겠지. 무엇보다 장주호와 현도진의 캐릭터를 소설만큼 완벽하게 소화해낼 배우로 누가 캐스팅될지 기대된다. 살인을 완성하고 즐기듯 바라보는 그 눈빛, 궁금해 미치겠다.


#더블 #정해연 #해피북스투유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책추천 #책리뷰 #K스릴러 #드라마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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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2-06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해연 작가님 좋아요!! 데뷔작이 다시 나왔더라구요. 저도 보러 갑니다^^

구단씨 2023-02-06 22:23   좋아요 1 | URL
데뷔작이라는 걸 이 책 소개 보고 알았어요. ^^
재밌네요.
 
마음의 연대
수잔 글래스펠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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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보안관 피터스 씨가 헤일 씨와 함께 사건의 장소 라이트 씨 집으로 간다. 남편 라이트 씨가 침대에서 죽어 있었고, 유일한 목격자이자 가족인 아내 미니는 남편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아내는 당연하게(?) 용의자가 된다. 그럴 수밖에. 밖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고, 그 집에는 부부만이 살고 있었으니까.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와 헤일 씨는 사건 현장에서 단 하나의 단서라도 놓칠까 봐 구석구석 파헤친다. 보안관 피터스가 혹시라도 그 현장에서 뭐라도 발견할까 싶어 아내까지 동반하고, 혼자서 그 집을 둘러볼 용기가 없던 피터스 부인을 위해 이 사건의 신고자인 헤일의 아내 마사까지 함께 현장에 모이게 된 상황이다.


라이트 씨 집은 평소에 봐도 음침해 보였는데, 이곳에서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하니 더 어둡고 음산한 곳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라이트 씨가 자던 침대에서 밧줄에 목이 감긴 채로 죽었다고 하니, 이 기괴한 장면을 그리는 집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시신 발견자가 봤을 때도, 담당 검사가 봤을 때도 아내가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확실한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한데, 아직 완벽한 범인이 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답답하기도 할 테다. 그런데도 그 집에 모인 남자들은 자신만만하게 살인의 증거를 쫓으며 용의자인 미니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여자들을 비웃는다.


발견 당시의 모습을 설명하던 헤일 씨의 말을 끝으로 남자들은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니고, 마사와 피터스 부인은 사건 용의자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떠난 주방을 서성인다. 병에 담기다 말고 쏟아져 내린 설탕 가루, 선반에 놓여있다가 추위에 깨져버린 잼 병. 뭔가 다급한 상황이 펼쳐졌을 거란 예상이 되는 주방의 장면에 여자들은 생각한다. 유난히 더웠던 그 여름에 잼을 만드느라 애썼을 텐데 이렇게 깨져버려서 속이 상했을 미니의 마음을, 정리하다 말고 쏟아버린 설탕을 허무하게 바라봤을 미니의 눈빛을. 또 한 번 남자들은 비웃는다. 이 상황에서 잼이 담긴 병이 깨져버린 거나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글쎄, 같은 공간에 같은 이유로 모인 사람들인데, 무엇이 이들의 생각을 이렇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일까.


수건이 더럽네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주부는 아니었던가 봐요. 부인들이 봐도 그렇지 않나요?” (55페이지)


보안관은 식탁 앞으로 다가와 헨더슨 검사에게 물었다.

자네 우리 안사람이 뭘 챙겼는지 확인해 보겠나?”

헨더슨 검사는 피터스 부인이 챙겨놓은 앞치마를 집어 들고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부인들께서 뭐 크게 중요한 물건을 고르셨을 것 같지는 않군요.” (131페이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집에서 마음을 누르며 살아왔을 미니의 시간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 남편의 무심함은 하늘을 찔렀고,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녀의 시선을 붙잡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정말 남편을 죽였을까? 만약 그녀가 정말 범인이라면 왜 그랬을까? 사실은 그 이유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살인사건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테다. 다만, 어떤 마음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던 남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생각할 필요가 없던 마음이 여기에 있다. 두 여자는 미니의 주방을 살펴보면서, 남편의 사망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던 의자를 보면서 미니의 삶을 반추한다. 마사는 알고 있었다. 결혼 전 그녀의 삶이 어땠는지, 얼마나 빛나고 밝았는지를. 그녀의 주방 한쪽에서 문이 부서진 새장을 보고 미니를 연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장의 부서진 문은 지금 미니가 뚫고 나갔던 거라고. 그렇게밖에 이 공간을 벗어날 수 없던 그녀의 삶이 이제야 비로소 보였다고 말이다. 평소 그 집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현관문을 두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는 마사. 노래하는 새처럼 맑을 목소리를 뽐냈던 미니의 지난날을 이제야 기억해낸다. 맞아,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녀의 지난날은 그렇게 빛이 났었지.


한 남자가 죽었고, 남자의 아내가 용의자로 몰린 실제 일어난 사건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시 기자였는데,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보고 싶었던 건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범인으로 몰린 아내가 어쩌다가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대 안에서도 인간의 삶이 있고, 한 개인의 존재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 그렇기에 두 여자가 미니의 주방에서 주고받았던 눈빛, 섣부른 손놀림을 이해하게 된다. 엉망이 되었던 조각의 마감 처리, 바구니 아래에 깊게 숨겨놓았던 작은 상자의 존재를 그녀들이 다시 감출 수밖에 없던 마음을 이렇게 읽는다. 미니는 남자들이 찾아낸 어떤 증거 하나로 살인자로 낙인찍힐지 몰라도, 그녀에게 마음을 보내는 어떤 여자들의 연대를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저자가 실제 사건으로 이렇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도 비슷하리라 믿는다.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통을 가진 이들이 있을 테고, 그들에게도 전해지는 이 공감은 구원이 되리라고.


공감이나 이해 같은 말이 얼마나 힘이 될까 생각한 적이 있다. 며칠 전에 봤던 어느 방송에서, 심한 고통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방송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용기를 얻어서 살아갈 힘을 냈다는 그의 모습에, 누군가는 정말 힘이 된다면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단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용기를 얻고 있다면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얼마만큼의 위로로 다가오는지 안다.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 마음만큼은 크기를 따질 수 없는 연대의 힘을 가진다. 이 소설을 읽고, 미니의 삶과 두 여자의 공감을 우리가 가슴에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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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룡소의 그림동화 314
리타 시네이루 지음, 라이아 도메네크 그림, 김현균 옮김 / 비룡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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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힘들 때 읽어서 그런가. 아빠가 아이에게 전하는 작은 희망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게 들려온다. 그래, 괜찮겠지. 좋아질 거야. 어떤 주문은 희망이 되기도 하면서, 살아갈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꿈을 꾼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그 꿈이 만드는 희망이 우리를 어떻게 살아가게 하는지 보고 있노라면, 정말 나를 부르는 한줄기 마법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것 같다. 저자는 2015년 시리아 내전 중 튀르키예 해변에 떠밀려 온 아이 알란의 기사를 보고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4년을 걸쳐 우리 앞에 나타난 이 책은 지금도 계속되는 난민의 상처와 아픔을 들려주면서,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 기막힌 일에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곁의 이야기로 남겨두기 위한 저자의 노력에 독자의 눈길은 깊어진다. 우리는 인간이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남겨져 있고, 꿈을 꾸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끝나지 않는 전쟁은 총성 소리를 불러온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아빠를 아이와 집을 떠나기로 하는데, 이 탈출이 쉽지가 않다. 폭설에 몸이 빠져들어도,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린 날에도 이 여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 길 끝에서 그들이 도착한 곳은 경계와 장벽이 없는 곳. 괜찮겠지? 이제 그들은 여기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겠지? 하지만 난민이라는 이름의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들을 맞이하는 건 천막이 즐비한 난민수용소였다. 거기에 머물면서 그들을 받아줄 곳을 찾아야만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었는데, 아빠는 아이에게 희망을 놓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지금 절망의 순간을 걷고 있는데도, 이 비극의 순간을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려고 애쓴다.


그 상황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 그림책 속의 아빠처럼 말할 수 있을까? 이 탈출을 숨바꼭질이라고 말하며 가방 안에 잘 숨어있으면 된다고, 그들을 막아선 군인이 두려울 만도 한데 이 완벽한 나라에 초대장을 두고 와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아무도 그들을 맞아주지 않아서 절망한 순간에도 그들을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아빠. 읽으면서 혹시 이 아이가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모른 척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이 아니라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품어본다. 아직은, 이 아이에게 이 지독한 세상의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겁이 난다. 아니라고, 아이 아빠의 말처럼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라고 말하고만 싶다. 기다리는 일이 힘들겠지만, 적어도 이 현실을 모르고 있다면 꿈과 희망을 품으며 이 순간을 견딜 수는 있을 테니까.



난민 생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같이 머무는 곳이니, 무얼 하나 하려고 해도 긴 줄에 서야 했다. 이를 한번 닦는데도 긴 줄을 서야 했고, 한번 씻으러 갔다가 오는데 발에 진흙을 다시 묻혀야 했다. 다시 또 긴 줄을 서서 밥을 먹어야 했고, 혹시나 딱딱한 빵 한 조각이라도 떨어트릴까 봐 전전긍긍했다. 학교도 너무 작아 번갈아 가면서 가야 했다. 이런 일상이 정말 우리의 삶이란 말인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 이탈리안 피자와 파스타,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나라가 있다는 핀란드를 꿈꾼다. 날마다 학교에 가서 진짜 공부를 하고, 최고의 멋진 장난감이 있는 덴마크 장난감 공장을 상상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들은 그곳에 있단다.


아이가 몰랐으면 했지만, 알고 있다. 서야 할 줄이 많으니 제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점심때가 되어야 아침을 먹고, 아파서 기다리는 사이에 병은 낫는 일을 경험하면서,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그러는 사이 알게 되는 건 더 많아진다. 그들이 받아야 할 도장의 색깔이 바뀌기를 바라면서 그 공간의 삶을 버틴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있다. 떨어진 빵을 재빠르게 주우면서도 그곳에 함께 있는 쥐를 위한 빵조각을 살짝 내려놓는다. 이 마음은 뭘까 싶을 때 아빠가 아이에게 건네던 말들이 생각났다. 전쟁으로 그들이 떠나오던 순간부터 난민촌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힘들고 불편했던 모든 장면에서 아빠는 아이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말만 들려준다. 어떻게 그 순간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읽는 내내 맴돌았는데, 그러지 않고서는 이 아이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현실은 난민촌에서 언제 벗어날지 모를 절망의 순간뿐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난민이 없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난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오랜 시간 자료를 찾고 기록했다는 저자의 노력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이다. 그림 분위기는 물론이고, 문장 하나하나가 이들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때로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들려준다. 언젠가 우리는 경계가 없고 장벽이 없는 곳에서, 마음껏 배우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읽는 우리도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들이 바라는 그곳으로 갈 수 있기를, 상상하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말이다. 전쟁과 아름을 우리 사는 동안에 더는 느끼지 않는 세상을 보고 싶다.


#집으로돌아가는길 #리타시네이루 #비룡소 #그림책 #난민 #어른이함께읽는책

#자유 #상상 #희망 ###책추천 #책리뷰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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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은 아내가 겁이 나는지 같은 여자 한 명이 함께해주기를바라고 있다며 서글서글한 말투로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마사헤일은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당장에 따라나설 수밖에 없게 된것이다.
"마사! 서둘러!"
루이스 헤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추운 데서 기다리시잖아!"
서둘러 현관을 열고 나가니, 앞자리에 남자 셋과 뒷자리에여자 하나를 태운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뒷자리에 올라탄 마사 헤일은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옷깃을 여민 뒤 옆자리의 피터스 부인을 바라보았다. 일년전 지역사회의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보안관의 아내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말고는 생각나는 특징이 없었다. 피터스 부인은 키가작고 왜소하며 목소리도 흐릿했다. 피터스 보안관 이전에 근무하던 고먼 보안관의 부인은 목소리부터 우렁차고 힘이 있어서그 말이 곧 법이고 규칙인 것처럼 느껴졌었기에 더욱 비교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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