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행복합니다
김가지(김예지) 지음 / 책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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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과 상관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보니 아주 남의 일도 아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고3 조카가 전화했다. 중간고사와 수능시험, 수시고사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서, 시험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이놈의 시험은 언제 끝이 있으려나. 이 나이를 먹고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서 괴롭다. 계약직이나 단순 업무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시험 보고 평가받는 일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카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인사로 건넨 말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시험을 못 봤다고, 점수가 몇 점 부족하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이상하게 그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쩌랴.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펼쳐보게 됐다. 청소일을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말 그대로다. 청소일이 뭐? ?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어떤 인식, 청소 일은 많이 못 배우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일로 보이는 걸까? 20대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을 하는 게 낯설긴 한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꿈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자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마다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지금 자기 상황을 열심히 사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의 좋은 환경,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되더라. 사람의 상식적인 태도는 가방끈과는 무관했고, 돈이 많다고 다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음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는 그림만 그리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림만으로는 일상에서 지출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잡은 기본이 되어야 했다. 그때 청소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요즘에 종종 듣게 되는 N잡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가득했을 때, 저자는 엄마가 하는 청소 일을 같이하게 됐다. 혹시 엄마가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각인된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자 한다. 안정된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자기 몫을 살아가면서 밥벌이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귀하고 또 귀하다는 것. 그런데 세상이 내놓으라는 답은 그것과 달랐다. 이미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는 어떤 기준이 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내놔도 감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속상하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서 이 책이 의미 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떤 길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다가도 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던 것을 후회만 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불안하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선택의 삶을 원하면서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에, 내 선택에 선을 넘어 참견하려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둘 때가 있는 걸 보면. 그 선택이나 답은 지금 바로 알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하거나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택하는 당사자도, 옆에서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를.


수능을 앞둔 조카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 교사를 하고 싶은지 수학을 연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시 또 수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학교에 다니다가 또 다른 선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현실은 청소일을 하고, 청소일로 소득을 올리고 그 여유로 그림 그리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충분히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 못지않게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이모의 기도를 담아, 지금 눈앞에 놓은 과제인 수능시험을 응원한다.



#저청소일하는데요 #김예지 #책폴 #에세이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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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때 있죠. 노을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 여기선 그 시간을 북새라고 그래요. 나 시집왔을 때 어머님이 알려준 말인데 그때는 옛날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니 요즘엔 정겨워서 좋아요. 북새에 강변 하늘을 바라보면요, 누가 저렇게 세상을 아름답게 칠해놨을까 싶어요.”(뜻밖의 우정, 69페이지)


우리가 걷는 모든 시간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급성으로 찾아온 질병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노년의 시간을 거치며 죽음과 가까워진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 사이에 무슨 일을 만나는 게 아니면 시간의 흐름에 맡겨 놓은 것처럼 죽음의 문을 향해 걷고 있는 거다. 오랜 기간 아버지의 투병이 아니었다면, 매달 출석 체크하듯 병원을 찾는 엄마의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는 노년을 겪는 사람이나 죽음과 가까운 상황에 관해 잘 몰랐을 거다. 지금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경험했거나 지금도 경험하는 그 순간을 그래도 조금을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서늘하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기에 말이다. 몸이 아프고 마음은 쓸쓸해지고, 자식들은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고,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세상과 이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어떻게 유쾌하기만 할 텐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TV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는 일, 그게 노년의 시간이라면 나도 그 시간을 만나고 싶지는 않을 듯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어르신이 그렇게 지내고 있다. 나의 노년도 그런 모습일까?


뜻밖의 우정』을 쓴 김달님 작가는 내가 알듯 말듯 한 노년의 모습을 누구보다 많이 봐온 사람으로,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도 있겠다. 태어나서 줄곧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면서 가장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었다는 것은, 작가의 전작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느끼기는 했다. 그런 느낌을 이런 방식으로 시도할 것을 알지 못했을 뿐.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노년을 지내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그 시기를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할 거로 여겼는데,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읽으면서 많이 놀랐다. 일흔여섯의 정열 어르신은 래퍼 연습생이 된 것으로 마치 한을 풀어낸 것처럼 좋아했다. 순자 어르신은 중년에 시작해서 예순여섯 살에 검도 6단의 고수가 되었다. 영화와 책으로 일상을 꽉 채우는 승기 어르신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홍자와 옥순 어르신은 같이 노인 돌봄 일하면서 마치 여고생 단짝이 된 것 같았다. 트로트 아이돌의 활발한 활동을 지켜보면서 삶의 활력을 찾은 선자 어르신의 바람이 계속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작가가 만난 많은 노년의 삶이 내가 아는 모습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아니, ‘모습이 아니라 그 마음을 듣는 게 낯설었다고 해야겠다. 아마 누구나 갖는 일상을 바라보는 마음이었을 텐데, 노인이라고 그 마음이 다를 거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나 보다. 생각보다 유쾌하게, 축 처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즐거웠다. 우리 대부분, 각자의 일상을 그렇게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지 않나?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지내기도 하지만,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오래된 바람 하나 이뤄가면서 만족하는 삶. 시대가 그래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우선이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잊힌 꿈이 너무 오래 잊히기도 했다. MBTI ‘슈퍼 I’인 내가 그들의 일상을 보는 마음이 좀 떨리기도 했다. 노래를 쫓아 아이돌을 따라다닐 수 있지도 않았고, 운동하겠다고 체육관을 찾아가는 것도 선뜻 떠올릴 수 없는 일이다. 랩은커녕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가볼 생각도 못 하는 심장을 가졌고, 좋아하는 책도 무슨 하루 루틴처럼 읽어내지 못하는 게으름은 덤으로 갖고 있으니, 나는 그들이 보여준 일상의 방식과 다른 방향의 루틴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닮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노년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안 되는 것만 생각할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야겠다는 거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힘들겠다는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일보다,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비록 그게 무모한 시도라고 할지라도 해봤으니 됐다는 시원한 기분을 느껴보는 것.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가는 내과 병원이 있다. 나도 항상 같이 가서 선생님을 만나곤 하는데, 환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라서 선생님이 괜히 우스갯소리로 대화를 시작할 때도 많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다른 아픈 데는 없는지 물으면서 다른 이상이 없으면 평소와 같은 약을 처방해주신다. 그러면서 인사를 하신다. “어머님, 다음 달에 꼭 오세요. 또 만나요.” 그러자 엄마가 흥칫뿡 하면서 대답하신다. 병원에 오는 게 뭐가 좋다고, 또 만나자고 하냐고. 그러니까 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매달 꾸준히 오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다음 달 안 오고 또 그다음 달 안 오고 그래서 알아보면, 돌아가셨다고. 어떤 면에서 어르신들이 꾸준히 다니는 병원에 매달 정해진 약속처럼 방문하는 일은, 그 어르신의 생사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작가가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딪힌 그 순간, 어떤 어르신 이름에 두 줄이 그어진 채로 사망하셨다는 표시에 당혹스러운, 더는 이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아니라 일주일 사이에 세상과 이별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인 거다. 그래서 이 마음을 더 알고 싶어진다. 작가가 권하는 독거노인 안부 묻기봉사활동 참여에서 보고 알고 느끼게 되는 게 더 많아질 거라는 건 확실하다. 내가 향해 가는 그 시간, 지금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관심 두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말이다.


작가님은 아직 모를 거예요.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고,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하루가 어떤 건지. 그분들에겐 어쩌면 작가님과 나누는 통화가 하루의 유일한 대화일지도 몰라요. 오늘 아침엔 무얼 먹었고, 지금은 무얼 하는지, 오늘 하루 기분은 어떤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누구와 나눌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든 즐겁게 나눠주세요.” (뜻밖의 우정, 198페이지)


어쩔 수 없는 순간이 늘어나는 게 노년의 시간이다. 중년을 살아가는 나도 많이 느끼는데, 나보다 더 나이 든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은 더 많겠지. 엄마가 소화가 불편해서 내과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결과는 나이가 들어서 위장도 늙었다는 말이었다. 눈이 침침해서 찾은 안과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는 말에 절망이 앞서곤 했다.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연장자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행동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이유를 알 것 같다. 내가 노년을 향해 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나의 노년을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다.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집안에서도 자기 주변을 정리하지 않고 모든 걸 늘어놓은 채로 살아가도 이상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나도 그런 모습으로 늙어가지 않을까 싶은 어색함도 있지만, 지금 가장 가까이서 보는 엄마의 현재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듯하다.


이미 작가의 전작을 읽어서 그런지, 작가가 노년을 주제로 이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게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전작보다 더 피부로 와닿는 노년의 시간을 이야기해주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가 노년의 시간에 더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런 걸까. 어쨌든 확실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만나지 않고 생의 끝에 닿을 수는 없다는 거다. 그러니 누군가가 앞서 걸었던 그 시간, 곧 우리가 걸어갈 그 시간을 모른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는 것


사실 이 책 때문만은 아니라, 요즘 특히 노년과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이유가 있긴 하다. 이제 팔순을 넘긴 엄마가 더 노쇠해지는 게 더 눈에 보이기도 하고, 그만큼 병원에서는 어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내 몸이 불편한데 그 불편함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한 건 나뿐만 아니라 환자 본인이 가장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늙어간다는 게 이런 걸 그냥 받아들이라는 말 같아서 괜히 섭섭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오십 대 중반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가까운 이를 보고 있자니,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너무 잊고 살았나 싶기도 하다. 애써 내 몸의 늙어감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이제는 더 부정할 수 없기도 했다. 몇 년 전에 노안을 진단받았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게 예전처럼 마냥 편하지 않다. 책 읽으면서 늙어가는 할머니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한 일이 되면 어쩌나 지레 걱정부터 앞선다. 좋은 생각만 할 수 없던 요즘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또 요즘에 같이 읽고 있는 다른 책들을 떠올려 보니, 다른 이들이 전하는 노년의 시간, 상황, 마음을 들으면서 사는 일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들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정할 수 없게, 언젠가 마주할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건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안 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좋아하는 것을 해보는 시간 준비하며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나의 노년을 채울 테니...












#뜻밖의우정 #내가알던사람 #노년을읽습니다 #즐거운어른 

#즐겁게늙어가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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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넬슨의 <블루엣>

2024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한 편 더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다.

절판되어 독자의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중고 가격이 고가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더 궁금하다.

파란색이 불러낸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들려올지...

절판된 상태로 독자가 고가의 중고책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

 


 







체사레 파베세의 <아름다운 여름>

당장 읽지 않아도, 언제 읽을지 몰라도 사게 되는 책이 녹색광선 출간작이다.

책을 수집하듯 사게 된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왜인지 꼭 갖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이상스러운 마음.

거의 일 년에 두 권 정도 출간되는 듯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예쁜 책, 갖고 싶은 책으로 만들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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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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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5 16: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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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3 - 하우스메이드의 집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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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위험하고 나쁜 일을 하긴 했지만, 어려움에 부닥친 여성들을 도우면서 밀리가 덕을 쌓았나 보다. 밀리의 인생 이제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좁은 집이 불편하니 더 큰 집으로 이사도 했다. 내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바람을 드디어 이뤄냈다. 뉴욕의 좁은 집에서 살던 밀리의 가족은 롱아일랜드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밀리도 우리네 인생과 다를 거 없었다. 크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도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대출금을 갚으려면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야 했다. 돈 때문에 걱정하는 걸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려면 엔조가 하던 일을 롱아일랜드로 옮겨와야 하는데, 새로운 고객을 찾는 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이 집의 상황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옆집 여자 수젯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엔조에게 고객을 많이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앞집 여자 재니스는 세상의 위험에 과하게 걱정하고 살아가면서 예민하게 군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밀리는 수젯과 재니스를 보면서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수젯은 엔조에게 추파를 던지며 밀리를 짜증 나게 하고, 재니스는 밀리의 집을 감시하듯 쳐다보면서 불안감을 심어준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일상이 평온하다.


수젯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밀리는 퇴근 후 수젯의 집으로 향한다. 수젯과 담판을 짓고 다시는 엔조에게 추근대지 못하도록, 자기 신경 거슬리는 짓을 못 하도록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막상 수젯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다시 나와야 했다. 거실 바닥에 목이 베인 시체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피가 흥건하게 퍼져 있었다.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조용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다시 살인 사건에 말려들고 말았다.


모든 게 안정되어 간다고 믿었는데, 왜 또 이상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지. 엔조도 하는 일이 정착되고 있었고, 사회복지사 일을 하는 밀리도 자기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도 밝게 잘 지내면서 새로 옮긴 학교생활도 적응하고 있었는데, ... 본의 아니게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 밀리는 자기 전과 때문에 용의자나 범인으로 몰릴까 봐 걱정이다. 아직 아이들이 밀리의 과거를 알지 못하기에 더 걱정되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족, 아이들, 어렵게 일군 행복을 지켜야만 했기에, 이 살인 사건에 연관되지 않은 존재로 남으려면 뭐든 해야 했다. 그런데, 뭘 해야 하지?


심장을 조여 오는 심리 스릴러라고 했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솔직히 중반까지는 밀리와 엔조의 결혼 후 10여 년 세월이 종종 언급되면서, 옆집 여자 수젯과의 갈등에 이 부부에게 권태기가 왔나 싶기도 했고, 본격적인 스릴러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자꾸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레발만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밀리와 엔조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로 등장한다는 소개 글에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 같아서 우려했어도, 앞서 읽은 시리즈의 두 편은 나름 괜찮았기에 역시나 이번에도 밀리의 활약을 기대했건만. 솔직히 너무 지루해서, 이 시리즈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3편 같이 흘러간다면 다음 편은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 어쩌면 세대가 달라지면서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면, 혹시 분위기가 다시 시리즈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재미가 살아날지도.



#하우스메이드3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소설 #추리 #스릴러 #하우스메이드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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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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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그래봤자 운동을 싫어하니 먹는 것만 조절하고 있을 때), 가장 힘든 건 한밤중에 허기가 찾아올 때다. 먹는 양을 줄이고 움직임을 평소보다 더 늘리다 보니 때때로 찾아오는 허기짐은 배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빨래하러 세탁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파트 뒤쪽에 열어둔 베란다 문틈으로 라면 냄새가 밀려 들어오더라. 하아, 도대체 누구냐. 누가 이 시간에 라면 냄새를 풍기며 내 속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냐. 화가 난다. 먹으면 그만인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마음은 곧 분노가 된다. 내가 안 먹는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먹는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물론 건강과 외모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 맘대로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온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슬프다.


나의 상황과 조금 다른 얘기지만, 주인공이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상황은 내가 경험한 다이어트의 시간과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까운 미래의 독일. 채식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개인의 기호에 맞게 먹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채식주의를 안 하면 이상한 인간 취급받는 분위기였다. 알 것 같다. 틀린 건 아닌데 틀렸다고 보는 시선들 말이다. 그런 분위기가 거기서 멈췄다면 다행인데, 이미 세상이 달라졌다. 정육점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몇 개 안 남은 정육점은 유해시설로 분류되었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정육점이 유해시설이 될 수 있느냐고?! 주인공인 는 육식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지만, 자신을 미개인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육식을 끊어보기로 한다.


채식주의 생활에 들어간 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렇게 바뀐 세상에 일원으로 인정받는 건 쉬웠으나, 그의 몸은 폐허가 되어갔다. 육식의 금단 증상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머릿속에는 고기 생각으로 가득했다. 눈앞으로 헛것이 보이는 것은 일상이고, 치아도 빠졌다. 고기가 채워주던 단백질이 부족해서 그런가. 얼마나 고기가 그리웠던지, 누가 먹다가 땅에 떨어트린 소시지가 그의 시선을 한참 붙잡기도 했다. 갑자기 채식만 해서 그런지 왜인지 똥 싸는 것도 문제가 생겼다. 이상하다. 나는 변비가 찾아오려고 하면 일부러 채소를 더 먹고 공복에 차가운 우유도 때려 넣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갑자기 바뀐 채식의 삶으로 똥 싸는 게 어려워졌다니. 갑자기 채식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먹는 걸 조절하기 어려웠을 때 단식원에 들어가 볼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혼자서 이 조절에 성공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도 마찬가지였다. 채식주의 세상에 속하고자 애쓰던 그는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가 공유해주는 정보를 참고해서 채식 생활을 잘 이뤄내고 싶었다. ‘톰 두부에게, 이 위기를 견디는 방식의 하나로 육식이 그리울 때마다 글로 써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먹지 못하는, 육식으로 가득했던 삶의 즐거움을 글로 적어보면서 상상으로나마 섭취해보라는 의미인가. 어쨌든 뭐든 이 위기를 넘기는 방법이 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점점 에게도 채식이 익숙해지는 듯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육식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오를 거로 믿었다. 남편의 육식을 이해하지 못해 떠난 아내도, 회사의 동료 속에도 다시 속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왕따 취급받는 삶은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좋았어. 이제 도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어. 성공의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목표를 향해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을 때. 그 믿음을 훼손하는 무리가 찾아오는 건 다이어트의 순간과 닮았다. 식사 조절에 내 몸이 익숙해질 무렵, 줄어든 식사량이나 칼로리 낮은 음식 섭취에 적응되어 안심할 때, 한밤중의 라면 냄새처럼, 어느 상가 근처를 지나다가 달콤·짭조름한 갈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처럼, 나의 뇌를 뒤흔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라면 국물 한 입만, 잘 익은 갈비 한 조각만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미치겠다. 이미 아는 맛이라 견디는 게 더 힘들다. 주인공인 에게도 라면 냄새, 갈비 냄새가 찾아왔다. ‘톰 두부가 비건 친구들을 앞세워 채식주의를 주도하려고 했다면, 또 다른 토론의 장에서는 육수맛내기69’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는 인물 베르트가 채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육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는 베르트를 만나고 채식주의를 중단하기로 한다. 채식주의가 선전하는 좋은 의도를 믿지 말라면서 그가 권하는 육수 한 잔에 마음이 요동친다. 우리가 혹한 채식주의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면서 속지 말라고. 동물의 존재 이유가 육식주의자를 위해서라나 뭐라나, 비타민이나 두부로 육식을 대신하며 채식의 건강함을 말하는 게 특정 회사의 배를 불리는 계략이라는 듯이 말하는 베르트의 언변에 의 몸은 다시 육식의 세상에 푹 담긴다.


는 어떻게 변할까. 주인공이 채식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이유도 괜히 억울한 마음이 컸지만, 다시 육식의 세상으로 뛰어든 주인공이 어떤 삶을 또 만들어갈지 궁금했다. 이미 아는 맛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고기를 굽고, 맛있게 적당히 익힌 고기를 씹는 식감, 잘 어우러지는 소스를 얹어서 한입 베어 물면 입에서 녹아내리는 그 맛. .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는 이 즐거움을 나만 느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기와 같은, 채식주의를 하다가 육식주의자로 개종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가 베르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스러운 채식주의에서 행복을 되찾은 육식주의자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 자기와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공감하면서.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새로운 육식주의 신도의 전도에 성공하면서, 이제 그의 모든 삶은 육식주의로 가득 채워졌다. 다시는 과거로, 사람들의 시선에 총을 맞으면서 견뎌냈던 채식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리. 절대.


주인공의 육식주의는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혹시나 다른 채식주의자들이 그를 공격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채식주의자들은 돌아선 그의 육식주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그의 사회생활이 예전의 일상으로 정상으로 여겼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 같은 독자의 이런 평범한(?) 궁금증이나 결말을 깡그리 무시한 것처럼, 전혀 다른 반전을 내놓음으로써 뒤통수를 갈겼다. 아니, 이럴 수가! 정말이지,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이었나? 아니,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이런 반전이 가능하구나. 이 배신감, 이 분노를 책임지라고. 아아아아아아악~~!!


채식이냐 육식이냐 그걸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재배하듯 키워지는 가공육의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 해야 하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극과 극으로 치달을 필요도 없고, 최소한 각자가 바라는 식습관의 방향, 육식이든 채식이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맞는 거 아닌가? 타인이 나의 식탁 위 음식을 정하거나 방향을 정하는 건 아니어야 하니까. 그래도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육식과 채식은 공존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데, 그 육식의 식탁에 오르기 위한 고기들을 어떻게 키워내고 가공해야 하는 게 맞는 방식인지 고민할 필요는 있겠다. 이 소설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결론처럼, 그들 모두 옳습니다.


부탁입니다. 제게는 창살 밖의 자유로운 삶이란 없습니다. 저 밖에서는 두 번 다시 안전해질 수 없을 겁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길을 건널 수도, 레스토랑에 갈 수도, 이 세상 어느 간이식당에서 먹을 수도 없을 거예요. (중략) 너무나 모순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들 모두 옳습니다.” (12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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