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 237페이지)


요즘에 일하는 곳에 찾아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하고 가는 어르신들 볼 때마다, 항상 우리 삶이 죽음과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사는 동안 생각하는 죽음의 순간이리라. 이미 여러 번 병원을 경험하면서, 한번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비슷한 서류에 사인한 적이 몇 번 있다.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 가슴을 뚫고 호스를 끼우고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를 한 것인지 말 것인지 물으며 서류를 내미는 의료진에게 처음에는 오해했었다. 자기들 일 편하게 하려고 이런 거 미리 받아두는 건가 싶었는데, ·퇴원과 중환자실 드나드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 서류에 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미리 의논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긴 시간 고민하지 않고 이 서류에 사인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가 이 죽음을 같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죽음은, 죽은 이보다 곁에 남은 이들에게 더 죽음을 알게 하는 것 같다. 떠난 이는 모를 죽음 이후의 시간이 남겨진 자들의 몫인 것처럼, 그 시간에 견뎌야 할 감정도 남겨진 이의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은 장례지도사인 저자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의 기록이다. 그 기록의 시간 속에 죽은 이, 남겨진 이,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되겠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누군가는 해주어야 했다. 그것은 온전히 남겨진 이의 몫이었고, 저자는 남겨진 이가 의뢰하는 현장에서 그 일을 해낸다. 내가 처음 장례지도사를 본 건 외숙모의 장례식장에서였고, 그들은 그저 돈을 받고 장례식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주는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던 건, 장례지도사가 죽은 이의 집에 가서 직접 시신 수습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죽은 이를 가장 아름답고 편하게 보내줄 수 있게 돕는 사람, 유족이 슬픔으로 해내지 못하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계속 듣다 보면 정말 궁금해진다. 장례지도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망자와 유족을 대하는지 말이다. 읽고 있는 어떤 순간에는 내가 이 길로 한 번 들어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일이 만만해 보여서가 아니라, 이 일로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 의미 있게 배우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건 더 고민해야 할 문제였고. 지금은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기에도 벅차긴 하다.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는데, 시신의 화장이었다. 아버지의 입관식도 보지 못했던 터라, 정말 시신에 화장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자살한 사람의 목에 난 멍 자국을 없애려 조심스럽게 화장을 한다는 말에 놀라웠다. 훼손된 시신에 아름다움을 입혀주는 일. 수의를 입히고, 그들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조용히 보내주는 인사를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히기도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의 기록으로 보고 있자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장면으로 뛰어든 것만 같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어머니는 봄날 꽃밭 위에 이불을 덮고 잠든 딸을 만나러 입관실에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딸의 손끝 하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얼굴도 삼베 천으로 전부 가려놓아 그저 관 속에 누운 사람이 딸일 거라고 믿는 수밖에. 어머니는 왜 딸의 몸을 전부 가려놨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숨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운 이 공간에는 어떻게든 견디어 보려는 사람들만 애처롭게 남아 있다. (이 별에서의 이별, 28~29페이지)


우연처럼 장례지도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저자에게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감당하는 게 돈 때문은 아니리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와 인구 고령화, 사망자가 늘어가는 것이 이 직업에 관심 두게 한 것도 있다. 많은 이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직업에 뛰어들었다. 몇 달의 연수 기간을 채우고 현장에 투입되면서 실수도 있었을 테다. 제대로 배우려고 두 눈을 부릅뜨기도 했겠지. 저자는 그렇게 시간과 경험을 쌓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들여다보지 못한 사이에 부모가 죽고,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이 외롭게 죽어가고, 신혼여행지에서 배우자의 익사를 겪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죽음마저 쓸쓸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의 순간에 삶을 생각한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삶이 더 빛난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읽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서는 자기 죽음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 별에서의 이별을 읽다 보니 죽음을 생각하면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이가 보냈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정말 빛나지 않았을까 싶다. 안락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이 책은 읽고서도 마음에 안 든다. 종교의 색이 너무 짙다. 제목만 보고 펼쳐 들었는데, 페이지를 계속 넘길수록 제목에 낚인 기분.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이렇게 무료하고 기대할 것 없이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삶도 끝나겠지 싶은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뭔가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위기를 지켜보면서 지금이라도 내가 해야 할 것을 생각했다. 늦었지만 하고 싶은 것, 늦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삶을 더 채우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특히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아픈 사람들, 취약계층이 주로 찾아온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죽음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 내가 힘들어도 친절하게 대해야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순간을 기억해야지 하는 마음. 죽음의 현장에서 내가 죽은 이가 될 수도 있고 남겨진 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떤 자리에 있어도 덜 슬플 수 있게 살아가야지 하는 다짐.


죽음에 대한 공부는 마치 세상의 안과 밖 경계선을 더듬는 것 같습니다. 해안선처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선은 가르고 막는 역할이 아니라 만나고 접속케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그렇다면 경계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삶에게 죽음을, 죽음에게 삶을 소개하는 맞선 자리 같은 거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둘이 함께 탄생하고 함께 소멸합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134페이지)


누구나 죽는다. 삶을 맞이했으니 죽음으로 끝을 맺는 거겠지. 생전에 어떤 삶이었든, 죽음의 순간은 비슷하다. 죽은 몸을 맡기고 떠난다. 남겨진 이들은 이 이별의 과정을 묵묵히 진행한다. 그 과정에 함께하는 이가 장례지도사다. 임종과 사별의 현장, 눈물과 후회와 사랑을 느낀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 이야기에서 그리움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어떤 죽음이든, 내가 감당할 죽음 앞에서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죽은 이를 떠올리는 마음, 그 마음에 담아야 할 것들, 이별 후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까지, 이 의식 속에 있다. 죽음, 이별 후에 새로 시작되는 삶에 관해, 육신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묻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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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죽음을어떻게다뤄야할지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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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12-10 13: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점점 싸늘해지는 주말이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지금의 의료 서비스가 계속되리라 믿는 당신에게
박한슬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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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보는 환자의 수가 48.3명이라고 한다.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6배에 가깝고, 이는 환자의 목숨값이 6배나 가벼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일반 개인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일 년에 몇 번씩이나 가는 병원에 관해 관심 없을 리가 없다. 당연히 저자가 하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엄마 때문에 주기적으로 가는 개인병원이 3곳 정도 되는데, 그중 두 곳의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오전에만 거의 1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보는 곳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아했지만, 두 눈으로 목격한 일이니 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나마 차분하게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진료하는 의사도 있다는 게 인간미 느껴지기도 하지만, 환자 한 명을 대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다. 특히 종합병원 진료 때는 그 부족함을 더 느낀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1분도 안 되어 밖으로 나왔던 경험도 있던 터라, 지금 이게 치료가 되는 길인가 싶었던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테다. 병원에 드나드는 많은 이가 비슷하게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였을 거다. 그런데도 궁금하긴 하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런 현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은 더 진하게 나타날 것이고, 더욱 급속해지는 고령화 속에 내가 들어가게 될 테니까. 급여에서 착실하게 거둬가는 건강보험료가 모든 것을 공평하게, 균형 있게 해결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정도의 의료 서비스라도 받는 게 다행인 걸까. 저자는 지금의 의료 평형이 젊은 인구에 기대어 있다고, 이 평형은 곧 깨질 것을 우려한다. 더군다나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기는 곧 닥칠지도 모른다. 이 위험을 감지하고 답을 찾기 위해 현재 한국 의료 제도 및 정책을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 책은, 종합병원의 상황, 지방 의료시스템과 약업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의료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보게 되는 종합병원이 사실은 한국 의료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인기과와 기피과, 태움 현상이 왜 생기는 것인지, 왜 진료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지 말한다. 우습게도 진료 시간은 짧아지는데 검사 시간은 맞추기 힘들고 길어진다. 이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진료 예약, 진료 보고 검사 예약, 검사받고 다시 진료 예약 등 이상하게도 내 몸 상태를 한번 확인하는데 몇 번의 예약과 며칠의 시간이 걸린다. 많은 환자가 종합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은 마음도 이 현상에 한몫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단순히 환자가 몰리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거기에 당연하게 생략되는 복약지도나 가고자 하는 병원의 선택 문제까지, 이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상하게 나부터도 어떤 질병을 떠올리면 서울로,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엄마의 고질적인 무릎 통증 치료를 위해 항상 다니던 이곳의 개인병원이 아닌 서울의 대형병원 예약을 찾아보곤 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와 연결된다. 의료인에게는 지방 기피의 이유가 되고, 지방 의료에서는 더욱 의료 공백의 심각성을 보게 되는 것.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는 더욱 안전 불감증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런 문제들 가운데에 우리 목숨이 있다.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 19 상황을 겪어오면서 의료계의 현실과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의료계와 정부, 초고령 사회에 근접한 우리 현실에서 그려야 할 미래의 모습은 모두의 숙제가 된 셈이다.


저자가 하는 말에 가장 귀에 들어왔던 건, 현재 의료 정책이 젊은 인구에 기대어 있다는 거였다. 정말 걱정된다. 어떻게 겨우 유지되는 현재의 의료 정책이, 현재의 장년층이 노인이 되어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쯤에는 인구구조 자체가 지금과 달라져 있을 거라는 경고였다.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염려되는 것도 있다. 경제활동 활발한 생산가능인구가 노령인구보다 적어질 때, 현재의 의료 서비스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질병과 죽음의 문제가 가까워진다. 분명 의료 전문가는 존재하고 우리 목숨을 그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맞지만, 의료 전문가와 환자인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른 영역이다. 그러니 의료 정책의 이해와 구조 변경은 필요한 일이라는 거다.


알지만 모르는 것, 어쩌면 알면서도 지금 불편하지 않으니까 모른 척하는 것.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것도 이 책이 전하는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알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는 늙을 테고, 지금도 매일 늙어 간다. 당장 내가 처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 문제를 모른 척하면 안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이미 노인이 된 엄마가 병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겪는 문제는, 내가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말이다. 의료계와 정책이 같이 만들어가야 할 의료 서비스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떤 문제가 내 앞에서 나를 힘들게 할 때 답을 찾는 건 늦다. 문제가 다가오기 전에, 다가올 문제를 위한 답을 준비하는 게 현명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노후를위한병원은없다 #박한슬 #북트리거 #의료서비스 #건강보험 #고령화사회

##책리뷰 #책추천 #한국현실 #의료현실 #사회 #사회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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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12-10 13: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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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는 톡파원 25를 보면서 랜선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화요일에는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재미있게 하는 역사 공부의 시간에 빠진다. 목요일에는 한블리보면서 블랙박스 속 다양한 사고에 혹시 모를 일을 배운다. 금요일에는 나 혼자 산다보면서 혼자인 삶의 하루를 공감하듯 바라보고, 토요일에는 내 사랑 유느님의 놀면 뭐하니를 기다린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놀란다.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할까 싶어서 말이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인간미까지 철철 넘치게 하는 장면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그러면서 생각했다. 예능이란 단순히 웃음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웃음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라고.


미안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름을 이 책으로 처음 들었다. 어디선가 봤던 톡이나 할까프로그램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낯선 이름의 저자가 하는 말이 듣고 싶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는 피디의 이야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정도로 여겼던 것이, 내가 이 분야의 생리를 얼마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더라. 그동안 저자가 겪은 방송계 이야기, 일의 시행착오, 방송하면서 얻은 팁, 거기에 방송국 생활을 직접 겪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풀어낸다. 그는 드라마와 시사교양 그 어디쯤 예능이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예능의 위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예능이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가 예능 피디로 살아오면서 느낀 많은 것이 이 범위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듯하다.


한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게 피디라고 한다. 그의 역할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탄탄한 구성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게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완벽한 구성이 있던 게 아니었어? 한편으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애드립의 매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주먹구구식의 방송이 더 진솔하고 인간미 넘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디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지막까지 편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피디의 책임까지 확실히 감당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 역시 예능의 한 장면이었다. 상암동 이야기를 시작으로, 프로그램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물론 어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 낯선 것에서 시작해서 익숙해져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는 비결, 직업 특성상 자기관리는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것까지 현장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가끔은 요즘 흐름을 예능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피디는 그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고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이 흐름이 너무 빠르고 다양해서 생기는 우려도 있지만, 언제나 그 안에서 존재할 진실에 바탕을 두고 만든다면 누구라도 빠져들 만한 프로그램이 되리라.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도 거짓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게 그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게 톡이나 할까였던가 보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카톡을, 화려한 삶 이면의 속마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좋은 인터뷰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에 한 포인트 다르게 함으로써 새로움을 표현한다. 이게 예능이고,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매력이 된다.


사실, 예능 피디는 뭔가 달라도 아주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펼쳤는데, 그 다름을 눈을 씻고 찾아보려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다움에 더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프로그램 뒤의 사람들을 보는 느낌,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과정 등 일상의 모든 순간에 시선을 두고 사는 것만이 답인 듯하다. 그러다 보면 더 깊고, 더 멀리, 더 넓게 보는 눈으로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되겠지. 그가 이런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그가 보일 또 다른 프로그램 역시 기대된다. 시원하게 웃음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들이 와닿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직면하는마음 #권성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_직면하는마음 #하니포터

##책추천 #에세이 #책리뷰 #문학 #예능 #피디 #웃음주는사람 #마음읽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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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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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 공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일상의 모든 것이 중독이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저절로 손가락이 움직인다. 먹고 나서 꼭 후회하는데, 나는 오늘도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요기요에서 4천 원 할인하는 치킨을 포장 주문하고, 시간 맞춰 픽업하면서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신나게 걸어갔다. 뜨끈한 치킨 냄새에 코로 먼저 맛보고, 남의 살 뜯는 맛에 푹 빠져들어, 손에 기름 덕지덕지 묻혀가며 열심히 먹었다. , 물론 별점 5개를 위한 사진도 찍었다. 리뷰 이벤트로 받은 서비스에 책임을 다해야 하니까. 근데 이거 뭐냐. 이상하게 맛이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데도 열심히 발골하며 먹었는데, 뭔가 부족하다. 더 이상한 건, 이 느낌 전에도 있지 않았었나? 맞다. 그때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치킨을 사 먹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정말 간절히 먹고 싶을 때 한 번 정도는 먹어주자는 게 치킨을 향한 나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부족한 느낌을 반복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나, 이거 중독인가 보다.


저자가 풀어놓은 9가지 중독의 장은 뭐랄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중독의 늪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이 주제가 모두에게 똑같은 중독으로 다가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에는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공감의 손뼉을 치며 읽었지만, 어떤 부분은 이 정도가 무슨 중독일까 싶은 것도 있었다. 그러면서 궁금했다. 우리는 왜 이런 중독에 빠져드는가. 아마도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중독이라고 표현하지만, 굳이 유행을 좇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 현상,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흥미로웠다. ‘갓생에서 시작된 이 중독의 문은 요즘 젊은 세대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는지도, 뭐든 열심히 하는 자세로 즐기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어떤 불안감에 중독의 늪에 빠지는 건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는 방 꾸미기보다는 일단 정리에는 관심이 많다. 이 지저분한 것을 어떻게 정리하나 싶을 때 인테리어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걸 사서 정리하면 깔끔하겠구나, 저걸 사서 이 자리에 놓으면 한층 더 분위기 있어 보이겠구나 싶은 마음. 나만 보기 좋으면 그만인 것을, 굳이 사진으로 찍어서 불특정 누군가에게라도 보여줘야만 이 정리를 인정받을 것만 같은 건 또 뭔지. 다행스럽게도 나의 귀차니즘은 정리는 물론이고 꾸미기에 열을 올리면서 사진을 찍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이 관심을 끊을 수는 없다. 열정적으로 요즘 흐름을 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고 관심 있다는 생각이 주는 안심 같은 걸 표현할 길이 없네. 동시에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이 중독 현상의 이유가 되는 듯하다. 요즘 세상 이렇게 흐르고 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중독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년들이 살아가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도 이 흐름에 편승하고 있다는 게 일상의 지침에 위로가 되는 것일까.


한때 당근마켓에 빠져 정리한다는 핑계로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판매 목록에 올렸다. 이건 잘 안 쓰니까, 저건 너무 많으니까. 너무 구식이라 이걸 팔고 새것을 사야지. 이유는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도 한때였다. 중고 거래하고 싶은 물건을 사진 찍어서 올리는 것조차 너무 귀찮아서, 이제는 꼭 필요한 것을 찾는 목적이 아니면 당근마켓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데이트 앱은 사용해본 적도 없고, 시시때때로 사주 풀이를 하지도 않는다. 카톡이나 문자를 씹는 것도 거의 안 한다.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혹시 그런 적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억은 정확하지 않아서) 이 흐름에 내가 속해 있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이런 현상에 동참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런 현상에서 발견하는 사회적인 문제나 방향이었다. 배달 앱의 별점 5개의 진실, 빠른 배송으로 높은 별점을 유지해야 하는 배달 노동자와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영끌해서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게 많은 이의 현실인데, 갈수록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인테리어 관련된 분야의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묻는다.


처음에는 이 중독 현상에 나도 포함이 되는지, 이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 시대를 읽지 못하고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시선으로 읽기 시작했다. 점점 그 시선은 씁쓸한 현실 직시로 이어졌고, 어쩌다가 이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지 깊게 들여다보고 고민하다 보면 자본 없는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보인다. 갈수록 욕망은 커지고, 그 욕망을 흡수하려는 마음은 현실과 멀어져 있기만 하고, 그러다 보면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해야 하는 순간은 오기 마련. , 언제는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겠느냐만, 끊임없이 유행처럼 따라가는 중독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쩌면 이 중독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 현상에 빠져들거나 무시하거나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 욕망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보면 중독 너머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 답을 향해가는 시선도 알게 되겠지. 심지어 그 중독이 그저 욕망이라고 해도 어디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찾아가다 보면, 우리의 속내를 더 듣게 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중독 그 너머의 삶을 상상하는 일이 여기에 있다.


저자 자신의 모습을 너무 많이 풀어냈나 싶으면서도, 우리 삶에 스며든 중독의 양상이 참 재미있다. 진지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읽게 되는 책이다. 세상을, 사회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배운 것 같아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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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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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이 가능할까? 소중한 이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했을 거다. 그리운 이를 놓을 수 없어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죽은 이를 불러올 수도 없어서 괴로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들. 붙잡고 싶고 다시 보고 싶고, 함께한 시간을 다시 이어가고 싶은 간절함 같은 거.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어차피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을 그저 막연하게 담아두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 간절함을 이뤄주는 곳이 있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주어 다시 이어가게, 아니 이 세계에서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는 곳이 있다면? 고민 없이 냉큼 달려가리라. 먼저 간 이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리라. 이제 곧 다시 만날 거라고, 우리 행복했던 시간 다시 이어가자고 말이다.


미래의 어느 날, 김홀은 암으로 죽은 아내 이후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를 잊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그리움만 쌓인 채로 살아가던 시간도 이제 정리하려고 한다. 어디선가 아내가 보고 있다면 자신의 이런 모습을 슬퍼할 테니까. 정신 차려야지 하는 순간에 날아든 아내의 홀로그램 메시지 한 통. 어느 가상공간에 있다는 아내의 안부였다. 그건 아내가 죽기 전 기억을 저장한 것에서 시작된 일이다. 가상공간 욘더에 있다는 죽음 너머의 사람들, 그곳에 아내가 있다는 걸 알고 그는 찾아간다. 더는 슬퍼하거나 고통스럽지 않게, 아내를 만나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서로 사랑하던 그때를 다시 그려낼 시간만 남았다는 듯, 아내를 만나러 욘더로 간다.


그런 게 꼭 필요한 사람이 있어요. 그저 그 사람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는 마음 치료가 안 되는 사람. 아주 갑자기 죽어간 사람이나 고통스럽게 병사한 사람에 대해 회한을 가진 사람, 고인에 대해 깊은 죄책감을 가진 사람,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람이 떠난 뒤에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 (74페이지)


,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걸까.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던 건 김홀과 이후의 재회, 불멸의 세상을 꿈꾸며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누구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어딘가에 천국은 존재하고, 우리가 죽은 후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여기에서 다하지 못한 생을 이어가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이 너무 아쉽기만 해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별의 순간이 아프기만 해서 상상하는 그곳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으니, 우리가 바라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렇게 꿰뚫을 수 있는 것도 능력이구나 싶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묻곤 했다. 이런 상황에 내 앞에 펼쳐진다면, 나는 김홀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죽음을 선택해야만 그곳으로 가서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는데, 주저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마음이 나에게 있는 걸까?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상력은 기발했지만, 그 상상은 인간의 마음을 파고드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판타지에 머물지 않고 있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된다.


뇌를 다운로드해서 사는 죽은 자들의 도시, 욘더. 생의 기억을 담아 가상공간 욘더에서 살아갈 바탕을 만드는데, 이곳은 슬픔도 고통도 나이 듦도 없다. 아마도 천국이 정말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이곳이 아닌 저곳의 생을 경험한 이를 만나본 적 없으니, 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상상에 머물기만 하는 건지 정말 존재하는 곳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 번쯤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건, 우리는 이미 이별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다. 더는 함께할 수 없어서 아프기만 한 가슴을 달랠 길이 없어서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욘더로 뛰쳐 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다. 그렇게 알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그토록 바랐던 행복은 더 간절해지지만, 불멸의 생을 바라면서까지 함께 하는 게 사랑이고 행복일까 하는 의문. 저마다의 이유로 욘더로 향하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행복을 만들어가지만, 어쩌면 행복은 후회하는 것을 되돌린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불멸의 생을 영위하면서 사랑을 이어가고 불행이 없는 곳이기에 마냥 만족하는 삶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욘더에서의 시간이 말해준다. 인간의 바람이 이뤄낸 만들어진 천국에서 인간은 행복하기만 한지 묻는다.


기술의 발달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다. 소설 속의 인간 역시 자기 신체에서 원하는 부분을 바꿔놓기도 한다. 상상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이뤄줄 욘더를 만들어내는 정도로 인간 세상을 발전했다. 필요로 만들어진 사이보그마저 점점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까지 담아냈다.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 기계보다 더 이성적이고 차가워질 수 있는 인간. 인간과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세계를 상상하듯, 이 소설 역시 그 상상 속에 인간의 따스함과 불멸의 욕망이 빚어낸 씁쓸함이 존재한다. 준비하지도 못했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욘더는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가려고 애쓰던 마음이 이뤄낸 세상이다. 불행도 없고 죽음도 없다. 감정의 고단함이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 건 얼마나 평화로울까. 고요함이 흐르고, 사랑과 행복만이 넘치는 순간이 일상인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슬픔을 느낄 일이 아예 없는 게,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게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었는지 소설의 결말이 그 답을 보여준다.


우리 사는 동안 이런 세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상상은 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줬다. 구판으로 이미 읽은 독자도 있을 테고, OTT 드라마로 이미 만난 시청자도 있을 테다. 두 가지 모두 접하지 못한 나 같은 독자에게 이번 개정판은 SF의 매력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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