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형벌이란 말인가. 귀족 신분의 로스토프 백작은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4년간 머물렀던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된다. 아니, 이걸 감금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한 걸음도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미 몇 년을 살아서 익숙한 곳에서, 그것도 호텔에서 지내라는 말인데 이걸 어떻게 형벌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 가혹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동안 그에게 호텔은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에 불과했지만, 그의 의지가 아니라 법으로 강제되어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건 아주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그에게 주어진 공간은 그동안 그가 머물렀던 317호 스위트룸이 아니었다. 9제곱미터의 다락방이 주어졌다. 백작이나 각하로 불리던 그의 삶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 거다.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그는 호텔의 다락방으로 이사한다. 그가 가졌던 계급과 부를 잃은 채로, 호텔의 창고 같은 방에 머무는 신세가 됐다.
하루아침에 추락해버린 삶.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내쳐진 신세. 백작의 뒤바뀐 신분과 환경을 보고, 인간은 어떻게 어디까지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한순간에 그를 수식하던 모든 환경이 바뀌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을 상상했다.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부잣집 구성원들이, 전에 발을 들인 적도 없는 낡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그것도 겨우겨우 얻은 집이다),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고(교통 카드라는 것도 모른 채로), 시중드는 사람에게 시키던 생활의 필요한 모든 것을 이제는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생활. 적응하기 힘들겠지. 있었던 것들은 사라지고, 없는 것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예전의 삶을 동경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백작의 현재 상황도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는, 더는 백작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한 칸의 호텔 방에 머물면서 살아가는 동안 그의 생활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이제 그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대는 가차 없이 변한다. 필연적으로 변한다. 창의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시대는 변하면서 케케묵은 경칭과 사냥용 호른뿐 아니라 은으로 만든 호출종과 자개를 입힌 오페라글라스, 그리고 이제는 쓰임새가 없어진 온갖 종류의 공들여 만든 물건들을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린다. (124페이지)
사실, 그가 그동안 살아온 자신의 체면을 버리지 못하고 이 생활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곧 이번 생을 지워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는 못 살아, 내 체면이 있지, 나름 백작이었거든?! 뭐 이런 마음으로 남은 생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 같았다. 귀한 신분이었던 것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누리던 것을 다 잃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나라면?’이라는 의문을 계속 떠올렸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의 삶을 이끌었다. 읽는 내내 내 가슴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고 있었다. 한 마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변화하는 삶을 지켜보면서 내 안에 켜켜이 쌓이는 어떤 것.
그는 변화하는 시대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쉬울 리 없다. 그가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세상이 바뀐 것을 금방 인정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호텔에서의 감금 생활을 시작도 할 수 없었으리라. 거기에 그가 가진 책의 격언도 그의 남은 삶 내내 큰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을 상기했다. (이 말은 후에 그의 딸 소피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 스스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그가 이끌어가는 삶으로 만들었다. 그의 나이 예순이 넘도록 호텔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인생을 끝내는 큰 일 없이, 외롭지 않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거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이사하면서 가져온 짐 몇 개가 전부다. 그것마저도 물림 받았던 거다. 오래된 책상이나 의자, 찻잔, 여동생 옐레나의 사진 정도. 혹시나 오해할까봐 말해두는데, 그에게 내려진 호텔 감금형은 그냥 호텔에서의 생활하라는 게 아니다. 호텔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이지 그가 호텔 안에서 생활하는 비용까지 대주지는 않았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그에게는 일이 필요했다. 그가 오랜 세월 머물렀던 호텔은 그에게 최상의 일터가 된다. 그는 자기가 머무는 호텔의 웨이터가 되고,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와 주방장 에밀과 친해진다. 오랜 세월 쌓아온 지식과 교양으로 누구보다 훌륭한 웨이터 임무를 수행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스스로 옷을 손보기 위해 호텔의 옷 수선실 마리나에게 바느질을 배우기도 한다. 호텔의 이발사와도 스스럼없이 일상을 나눈다. 한때 그가 손님으로 드나들면서 마주했던 호텔 사람들과 이제는 급이 사라진,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만난 어린 소녀 니나와의 우정은 후에 그의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가 무난하게, 상당히 여유 있는 마음으로 호텔의 감금 생활을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 불편함, 아직은 다 받아들일 수 없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니나가 준 마스터키로 가끔 탐험하고, 그가 지냈던 방에도 들어가고 하는 일들이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는 제일 나은 방법으로, 그가 간절하게 누리고 싶은 것들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하여 이뤄낸다. 다락방의 옆방으로 통하는 벽을 발견하고 아무도 모르게 그의 생활공간을 넓힌다. 그의 서재를 만들고, 그만의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그렇게 자기를 위한 생활과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것을 동시에 습득한다. 아니, 이건 배우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그의 내면에 자리한 인간다움이 타인과의 교류와 이해와 공감을 만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는 웨이터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본다. 그가 전에 알던 사람도 있고, 새로운 손님도 있다. 그가 오랜 세월 기본으로 쌓은 소양도 그의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겠지만, 그가 현재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웨이터 일은 조금 수월해지기도 하다. 어쩌면 호텔은 그의 나라인 러시아 속의 작은 러시아였는지도 모른다. 그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에서의 적응 같은, 자기가 처한 환경을 헤쳐 나가는, 호텔이라는 나라에서 그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야만 했던 거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발을 맞추고, 친해지고, 서로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세상의 많은 감정을 읽고 배우는 것. 그는 충분히 해냈다. 어린 소녀의 이념을 이해했고, 아버지가 되었으며, 호텔 식당에서의 일을 최선으로 해내기 위해 동료들과 회의했고, 다른 이념을 공부하며 이해하려고 애썼다. 많은 사람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가 인생을 걸고 해낸 일이 정말 무엇이었던 건가.
백작의 마음을 흔든 것은 어쩌면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서 생활하는 이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되게 일하며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크리스마스의 유대감을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씨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날 이른 저녁에 현대적인 젊은 커플이 옛 방식으로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자신의 불리한 출신 성분에도 새로운 러시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싶은 니콜라이를 우연히 만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혹은 니나와의 우정이 가져다준 예기치 않은 축복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책을 덮고 불을 껐을 때 백작은 커다란 행복감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167페이지)
그가 호텔에 감금된 배경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로스토프 백작이 살아온 시간, 그를 둘러싼 시대는 밝지만은 않다. 볼셰비키 시대. 개인의 삶을 인정하기보다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서, 개인으로 살기에 어려운 상황을 선사한다. 로스토프의 친구인 미시카, 그와 노란방에서 이념을 공부했던 오시프, 다른 이념의 세상에서 사는 리처드까지. 한 끗 차이로 목숨이 달라질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고 혼란의 도가니였지만, 오히려 호텔에서 감금된 그는 그런 어지러운 세상을 직접 부딪치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그를 또 다른 모습의 위기에서 구해준 형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배경이 되는 시대의 흐름보다는, 오히려 그가 꾸려간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된다. 그의 인생에 갑자기 다가온 감금 생활을 시작으로, 호텔에서 만난 많은 사람과 그의 인생에 뛰어든 어린 소녀 니나, 니나의 딸 소피야로 이어지는 인생의 인연들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운다.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결코 알 수 없을 감정과 역할까지 말이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460페이지)라고 말하던 미시카가 제대로 본 것이다. 백작에게 주어진 호텔 연금형은, 그의 삶에 또 다른 길을 열어주면서 인간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했던 거다.
읽으면서 로스토프 백작의 인생을 독자도 같이 따라간다. 저절로 따라가게 된다. 그의 딸 소피야의 성장이 그에게 홀로 남은 외로움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의 마지막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다른 독자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백작이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이 눈에 들어오곤 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결핍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그는 독신이기에 아버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의미로 니나는 그에게 절대 불가능했던 세상의 한 장면을 선물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게 소피야의 존재는, 소피야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그의 성장도 이뤄내는 시간을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생전 처음 해보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역할을 그는 호텔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로 이뤄내야 했다. 호텔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니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는 그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는 진화하는 세상을 받아들일 줄 아는 신사였다. 그의 호텔 친구들도 소피야를 위해서 세상의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호텔이라는 하나의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소피야의 성장을 도운 사람들 덕분에 그는 딸을 예쁘게 키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부족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았을까. 그는 호텔에서의 한정된 삶이 소피야에게 더는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느끼고 소피야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사람. 그게 부모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해내고야 만다. 그때, 소피야를 안전하게 또 다른 세상으로 보낸 것을 봤을 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차곡차곡 쌓아가던 감동은 단단히 굳어져 갔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안으로 들어왔던 감동을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모스크바를 떠나기 전날 밤 아버지가 자신에게 바라는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 괴로움을 토로했을 때, 아버지는 그녀에게 한 가지 생각을 얘기해줌으로써 그녀를 위로하고자 했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은 불확실성에 의해 움직여 나가는데, 그러한 불확실성은 우리의 인생 행로에 지장을 주거나 나아가 위협적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관대한 마음을 잃지 않고 보존한다면 우리에게 극히 명료한 순간이 찾아들 거라고 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갑자기 하나의 필수 과정이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든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갈아가야 할 삶으로 꿈꿔온 대담하고 새로운 삶의 문턱에 서 있을 때조차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687페이지)
다 끝났을까? 아직 그의 인생에서 들려줄 뭐가 더 남았을까? 뭐랄까, 이 소설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처럼 여운을 남기며 독자에게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소피야는 목적지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을까? 그는 왜 그곳(?)에 갔을까? 그가 도착했던 그곳에 있던 은발의 여인은 누구일까? 그는 거기서 생의 마지막까지 살아가게 될까? 혹시 그가 속한 나라와 다른 이념을 가진, 그가 친구들과 공유하고 이해를 도모했던 이념을 가진 나라로 가지는 않을까? 이상하다. 분명 소설은 다 끝났는데, 이 소설에 관한 궁금증과 관심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소설에 관한 관심과 의문은 더 늘어난 것만 같다. 그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를, 살아가는 자세에 관해 더 들어야만 할 것 같고, 그가 가진 지식과 우아함을 더 배워야만 할 것 같고, 아직 다 알지 못한 인생의 많은 이야기가 더 남아있을 것만 같다. 작가의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으면서도 소설의 몰입도는 완전 달랐다. 상당한 분량이지만 다 읽고 나니 책의 두께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남은 이야기가 더 있을까 봐 있지도 않은 뒷장을 기웃거리게 된다.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자세를 배운 것 같은 묵직한 감동이 깊게 자리하게 하는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놓인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우리의 내일이 오지 못하게 막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어떤 태도로 그 환경을 받아들이며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지켜보게 한다. 삶의 새로운 의미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게 하는 이야기에 반해버렸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