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고양이
모자쿠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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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옆을 돌아보게 된다. 바로 옆에서 귤을 들고 계시는 엄마가 변신술을 하여 이 책 속의 고양이로 둔갑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다는 확신에 자꾸만 돌아본다. 설마? 아니야. 혹시? 아닐 거야.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를 않는군, 흠...

 

모자쿠키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상상하다가 이런 만화까지 그리게 된 게 아닐까 싶다. 표정은 심드렁, 간식 이외의 관심사는 없을 거로 보이는 고양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고양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고 그 걱정을 못 이겨 잔소리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 말로 통하지 않으니 표정으로라도 대화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고, 그저 눈빛만으로 '우리 이런 마음 나누고 있지 않니?' 하는 마음을 풀어놓는 순간을 캡처한 듯한 네 컷. 저자는 트위터 계정을 열고 이 네 컷 만화를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10만 팔로어를 모으는 관심을 일으켰다.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고서는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팔로어 숫자 아닌가? 혹시 당신의 고양이도 이런 마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관심 두고 살펴보게 하는 계기까지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조차도 이제는 길에서 마주치는 이 녀석들을 달리 보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이 그대로 들려와서 웃음이 난다. 매일 반복하는 시행착오를 옆에서 매일 듣는 잔소리로 채우는 시간 말이다. 어질러놓고 다닌다고, 알람이 몇 번을 울리도록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늘 하겠다는 일을 계속 미룬다고,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나 숙제를 한다고, 살 뺀다더니 또 간식과 야식을 앞에 두고 있느냐고,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 오고, 스마트폰 중독에, 계획 없는 쇼핑에, 매사에 끈기 없이 중단하는 일들에, 제자리에 두지 않고 찾아다니는 일에, 정리하지 않아서 쌓여가는 물건들에, 언제나 작심삼일에 멈추는 운동에... 하, 이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끝이 없어서 다 말을 못 하겠다. 퉁퉁거리면서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말하는 이 잔소리 고양이에 대꾸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지. 엄마가 옆에서 이렇게 잔소리하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면서 뭐라고 해도, 엄마가 미운 건 아니었잖아?! 아끼고 잘되라는 마음에 계속하는 말들이잖아. 언제까지나 옆에서 지켜봐 주고 알려줄 수 없으니까, 계속 그 자리에서 나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줄 수 없으니까. 내가 혼자 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들이라는 걸 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고, 옆집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로 잔소리를 하고, 찬바람이 휙 들어오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버리는 이 겨울의 어느 날의 엄마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고로, 이 잔소리 고양이는 우리 엄마가 쓰고 있는 탈이 분명하다. 흐음...

 

 

재밌게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검은 고양이는 잔소리 고양이의 가르침에 딴지를 놓는다. 조금 늦으면 어때, 간식 좀 더 먹으면 어때, 알람 좀 몇 번 더 울리면 어때, 숙제 좀 몰아서 하면 어때, 하는 말들로 옆에서 깐죽댄다. 그런데도 잔소리 고양이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츤데레 삘의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그렇지. 그게 바로 애정이지. 암만. 까칠하고 성난 목소리로 잔소리를 넘어선 공격을 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이면의 진심을 알아서일까. 그 잔소리가 그냥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 조금 천천히 하지 뭐, 실패했어? 다시 도전하면 되는데 뭘. 실컷 등짝 두들겨 패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결국에는 그 마음 이해한다는 진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인간 세상에서, 더는 인간만이 교감하는 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애완견 애완묘를 키우는 걸 보면, 인간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나누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고양이의 잔소리가 사랑스럽게 들리기까지 한다. 내 귀가 이상해진 건가, 아니면 지금 엄마가 하는 말들이 이 고양이의 말을 녹음해서 들려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인가는 모르겠지만.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정말 화들짝 놀란 게 있었는데, 전자레인지 안에 음식 데운다고 넣어놓고 깜빡했다가 나중에 전자레인지 사용하려고 열어보고 기함을 했다. 이미 그 안의 음식은 상해있었고, 나는 그때까지 내가 거기에 음식을 넣어두고 데우려고 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고양이가 했던 잔소리와 똑같은 말을 엄마에게 들었다는 건 당연했다. 에휴... 이래서 잔소리가 필요한 걸까? ㅠㅠ

 

 

감히 고양이가 집사에게 잔소리하면 되나 싶겠지만, 읽어보니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 고양이였다. 그러니, 잔소리해도 된다. 응, 된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느낀다. 집사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런 잔소리 나오지도 않는다. 애묘인들, 한 번쯤 내가 키우는 고양이의 눈빛이나 행동을 잘 지켜봐 주길 바란다. 혹시 당신이 놓치고 있는 고양이의 진심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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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을 잘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한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난 '양 사나이'는 하루키의 초기 작품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조금은 특이한 캐릭터가 분명하다. 언제부터 생각해서 세상에 내놓은, 왜 '양 사나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키의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인물이라고 하니 하루키와 상당한 인연을 만들어낸 인물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우일의 일러스트와 함께라고 하니,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을 배경으로 양 사나이의 일화를 만들어낸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막상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양 사나이의 이야기 하나가 탄생했고, 동화 같은 이야기에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어다.

 

양 사나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양 사나이 협회에서 선택받은, 성 양 어르신 승천일을 기념하며 음악을 작곡할 대상으로 선정된 것. 크리스마스에 맞춰 음악을 내놓으면 되는 것을 여름에 의뢰를 받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양 사나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을 만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슬럼프인가? 모르겠다. 우연히 만난 양 박사의 말로는 저주가 걸렸다고 하는데, 저주에 걸렸다면 그 저주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야기는 저주에 걸렸다고 여긴 양 사나이가 양 박사의 말대로 시작한 여정에서 출발한다. 크리스마스 날 오전(새벽 아니고?)1시 16분에 성 양 어르신이 빠진 구덩이에 빠지면 되는데, 그걸 양 사나이가 직접 파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건 뭐냐? 무슨 세트 지어서 재연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저주를 풀 방법이라니 안 할 수도 없고, 참... 그렇게 열심히 판 구덩이로 들어가기만 하면 저주가 간단히 풀릴 줄 알았는데, 인생사 어디서나 밖의 변수는 있는 법.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서 양 사나이의 저주 풀기 계획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데... 이거 어떻게 잘 풀리기는 하겠어? 내가 다 걱정이구먼.

 

예정에 없던 모험인지 여행인지 모를 일들은 양 사나이의 저주를 풀기는커녕, 뭔가 자꾸 모호하고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인물과 사연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로 거듭나고, 느리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양 사나이는 특이하게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게 사기당하는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순박한 느낌에, 결국에는 그들의 진심이 나쁘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아하~!' 하는 감탄사와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바다까마귀 부인, 208 209 쌍둥이 소녀, 오른 꼬불탱이 왼 꼬불탱이(처음에 나는 이들을 꽈배기라고 불렀다는...), 양 박사와 성 양 어르신, 그리고 그 저주가 시작된 구멍 뚫린 도넛까지. 어느 것 하나 특이하고 개성 없는 것이 없어서인지,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까지 더해진 책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양 사나이를 비롯한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보였던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또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상상력과 더해진 크리스마스라는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짜잔~ 서프라이즈~!' 뭐 이런 느낌? ^^ 단순한 이야기로 머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우일의 그림과 어우러져 완성된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연히 마주한 인생의 저주와 그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 사나이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결말에서 마주한 즐거움은 그 노력의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웃음이리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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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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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다 신조의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시작이다. 하야타는 조국의 재건을 고민하면서 떠돌던 중에, 탄광의 모집인에 이끌려 갈 뻔했다. 그때 하야타의 잘못된 선택을 막아준 아이자토 미노루를 만난다. 아이자토 역시 탄광 모집인이었지만, 탄광도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자토는 조금 더 인간적이고 덜 힘든 탄광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싶어 하는 이다. 하야토는 처음에 탄광에 관심도 없었지만, 아이자토를 만나고 그를 따라 스스로 탄광으로 간다. 하야토는 아이자토의 무엇에 이끌렸을까. 어차피 같은 일본인, 엘리트인 하야토의 신분을 속이고 탄광에 넣어줄 이, 하지만 분위기가 묘한 아이자토를 믿고 따를 수 있다는 맹목적인 마음으로 그를 따른다.

 

아이자토를 따라간 탄광은 일본인 광부가 전부였다. 때는 패전 후였으니, 조선인들은 모두 떠났다. 그래도 탄광은 유지해야 하니, 정부는 일본인 광부들을 고용하면서 탄광을 이어간다.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탄광은 매 순간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작업 현장이다. 갱으로 내려갈 때마다 다시 온전하게 올라올 수 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하강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미신에 의지하면서라도 안전을 기도한다. 그들이 믿는 여우 신.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좋다. 광부들의 안전과 그 가족의 안심을 위해서라면 어떤 신이라도 필요했으리라.

 

어느 날, 이 여우 신을 교묘하게 인용하여 살인이 일어난다. 하야타가 믿고 따르는 아이자토가 갱이 무너져 매몰되었다. 곧 탄주에서는 탄광의 '기도'가 죽었다. 금줄에 목을 맨 채로. 기도의 사연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자살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서 광부 기타다가, 그리고 니와가 기도와 같은 모습으로 죽는다. 이쯤 되니 이들 모두가 자살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모두 자기 방 안에서 죽었고, 그 방의 방문과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을 죽였다면 도대체 어디로 탈출했단 말인가. 거듭되는 밀실 살인으로 탄광은 분위기기 뒤숭숭하고, 누가 범인일까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야타의 활약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탄주의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는 순간, 그는 이 죽음이 절대 살인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들을 죽이고 있는지 찾아내야 했다. 하나씩, 차근차근, 하야타는 살인이 행해진 밀실을 살펴본다. 살인에 쓰인 금줄과 밀실로 만들어버린 도구들을 눈여겨본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그런 장면으로 스쳐 지나갔을 요소들을 면밀하게 살피며 죽은 이들의 인생과 죽음의 이유를 살핀다.

 

어떤 사람은 면사무소 직원에게 "일본으로 간다"라는 말만 듣고 군청까지 끌려왔다. 거기서 높은 사람의 연설을 듣고서야 자신이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444페이지)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건. 식민지 시대를 살면서 겪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고통이 바로 연결된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면서 데려간 곳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게 만들었고, 강제 징용으로 탄광으로 끌고 갔다. 그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을 한국인으로 채웠고, 그들이 부족한 것을 한국인의 노동력으로 끌어냈다.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제공하면서, 아마도 지옥이 있다면 이곳일까 싶을 정도의 고통을 맛보게 했다. 전쟁은 끝났고 우리나라는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그때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대한민국을 아프게 한다.

 

이 소설이 특이하게 다가오는 건, 태평양전쟁 직후라는 역사적 배경에 호러미스터리의 요소를 완벽하게 녹아내면서, 일본인의 시선으로 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심정을 담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광부들의 죽음, 시간을 거슬러 찾아낸 그들의 연결고리, 연쇄살인처럼 벌어진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작가의 전작들이 어땠는지 알 수 없는 이 무지한 독자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이 작품으로 미쓰다 신조에게 입문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검은 여우를 모시며 마음속 불안을 잠재우는 사람들의 믿음을 죽음에 덧입히면서, 귀신의 장난인지 누군가의 잔혹한 계획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을 만든다.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범인인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었던 걸 보면, 작가가 잘 직조한 이 소설의 짜임새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론에 다다를 때 느끼는 그 사건의 결말과 원인, 인간적인 복수심에 누가 감히 벌을 줄 수 있을까.

 

이미 미쓰다 신조의 팬이라면, 이 소설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처음 접한 나는, 어떻게 이런 소설을 독자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 싶어서 놀랍기부터 했다.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하는 건 아니지만, 제대로 읽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드는 건 처음이다. 왜들 그렇게 이 작가의 이름을 언급하는지 몰라서, 그 궁금증에 언젠가 한 번은 완독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이제야 그 궁금증을 풀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특이했다.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감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라면 언제든지 또 펼쳐 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아마 작가의 이름을 모르고 읽었다면 한국인 작가가 쓴 소설이 아닐까 착각을 할 만큼, 누구보다 한국 독자에게 더 사랑받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소개글의 어떤 문장처럼, '참혹한 역사와 칠흑빛 공포, 합리적 추리의 완벽한 하모니'였다.

 

역사와 미스터리의 조화가 이렇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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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0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1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