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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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랑=연애=결혼'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순수하게 마음의 소리 하나만 듣고 연애하기에는, 인생을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되는 분위기. 소설이나 영화 속 로맨스는 그 안에서 품는 바람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 이 현실에서 마음 하나만 봐달라고 말한다면 허황되고 지독한 꿈인 걸까.

 

그 지독한 꿈에 현실의 공포를 더 하게 만들고 있는 소설이 『로맨스 푸어』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떠올리기만 해도 무서운 '5포세대(5포시대)'의 인생에서 무엇을 더 도려내란 말인가. 여기서 더 포기할 게 남아있기는 한 건가? 주인공 유다영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도 기대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가 지금 처한 배경이 살아갈 만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에 격한 공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유다영만이 아닌, 나에게도, 주변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현실에 섬뜩하고 쌉싸래한 시선을 던지게 한다.

 

서른둘의 은행직원 유다영. 위에서 까이고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어정쩡한 나이와 위치에서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열심히 다닌다. 여유 부릴 돈도 없다. 남자친구도 없다. 그래서 머릿속 계산기를 굴렸다. 은행 고객으로 왔던, 40대 후반을 달려가는 남자 이성욱에게 여자로 어필하려 애쓴다. 강남 120평의 유토피아팰리스에 입성하기 위해 비위 상하는 식사자리에서 소화할 수 없는 상대의 말까지 꼭꼭 씹어 넘긴다. 그 정도쯤이야 뭐, 참으면 된다. 인생 안정권으로 스며들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릴 수 있다. 이 남자만 꽉 잡으면 전염병처럼 좀비가 창궐하는 서울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가 준 백신은 생명줄이고 그의 유토피아팰리스는 단단한 성벽이다. 그녀를 감싸줄 안전지대다. 방심하면 나 혼자 죽는 세상에서, 없는 사람만 당하는 현실에서, 그녀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

 

편의점도, 약국도, 커피숍도, 내 뒤를 노리는 좀비보다,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이 더 무서웠다. 솔직히 나도 좀비가 돼서 저 인간들 목덜미를 물어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거리 쪽 사람들도 밀리진 않았다. 격분한 사람들은 유리문을 부수고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끼고 싶지 않았다. (67~68페이지)

 

유다영은 전염병이 창궐하여 좀비가 공격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았을까?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부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유유히 찾아가고, 폐쇄된 강북을 방치하며 강남을 안정권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음모론이 사람들 사이를 돌며 와해를 불러온다. 누군가 빠져나간 자리가 내 자리가 되어야만 하는 간절함과 이기심이 힘을 발휘한다. 그 과정을 보여주며 적나라한 현실을 비추는 게 이 소설의 포인트인데, 섬뜩하다. 안타깝지만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 하는 삶의 진실을 그대로 쏟아낸다. '누구라도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과 '아마 나도 그랬을 거'라는 답을 동시에 내놓는다. 그 가운데서 또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며,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게 꿈으로만 머물 로맨스일지라도 말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버리는 게 의리였다. 오늘날, 함께 잘살아 보자고 부르짖는 '연대'는 목숨을 앞에 두고 떠올리기 힘든 단어다. 말 그대로 각박한 시대, 타협의 선은 없다. 오직 내 목숨 지키는 게 나에 대한 의리고 소신이다. 정의가 세상을 구하는 게 아니라 정의를 버려야 내가 사는 세상이 되어버린 거다. 좀비가 내 목을 물어뜯고, 내가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아이볼을 획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시쳇말로 영혼이라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건 어느 영역에서나 공통으로 적용되는 방식이다. 전쟁터 같은 전염병이 발악하며 공격하는 지금, 안전지대로 입성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인 거다. 그래서 다영은 사랑 운운하며 의리와 정의를 말하는 우현에게 선뜻 진심을 보일 수 없다. 열정적으로 연애했던, 돈이 없어도 좋다는 20대의 연애를 품기에 현실은 냉정했다. 적당한 온도의 연애와 돈이 필수라고 여기는 30대의 여자 다영은 현실을 대하는 소신을 지키고 싶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땐 옆에 있어줄 사람이 중요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생기면 옆에 있는 사람이 거치적거리는 법이다. 우현은 한참 동안 방문을 긁어댔지만,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223~224페이지)

 

답이 나와 있는 쉬운 선택 같지만 늘 그렇듯, 인생에서 딜레마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좀비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백신을 놓아줄 남자 이성욱, 함께 좀비와 맞서 싸우며 목숨을 지키고자 했던 남자 우현. 한 남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 로맨스는 빠진 상태로 오직 자신을 지켜줄 사람을 선택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복병은 여기서 등장한다. 다영이 지키고자 했던 인생의 소신이 오작동하면서 계산기의 고장이 다른 삶을 열기 위해 꾸물대고 있었다. 그 선택의 문제가 단순히 사랑에서만은 아니다. 다영이 보여주는 것은 지금 처한 상황을 타개하며, 오늘, 내일을 살아갈 어떤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바로 1초 후에 후회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아직은 정의가, 의리가, 희망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나는 괜찮다, 괜찮다, 진짜 괜찮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포기해야 할 게 생긴다. 경제학 수업을 얼마나 들었는데, 여태 이 기초적인 공식을 부정해왔던 거다. (309페이지)

 

맨스를 선택하며 '푸어'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기회의 문제와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포기하며 기회비용을 생각하는데 '로맨스'가 해당되는 문제라는 게 조금 씁쓸하다. 그게 현실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더 암담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가지가 갈수록 늘어나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서글프다. 그 간극의 크기를 느낄 때마다 좌절한다. '정말 이것 밖에는, 정말 다른 선택의 길은 없는 걸까?' 싶은, 답이 없는 물음표를 계속 던지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무섭다. 좀비나 메르스보다 더한 공포인 거다. 백신도, 마스크도, 손세정제도, 비타민이나 홍삼도 구해주지 못할 양심과 의리, 정의가 사라진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고 답을 던져준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고, 희망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간절하다. '왜?'라는 물음에 명확한 이유를 댈 수 없는, '본능'의 소리를 들었던 우현과 다영의 선택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희망을 그려본다. 많은 것에서 '푸어'를 노래하는 세상이지만, 그래, 아직은, 아직은...

 

로맨스가 주를 이루는 소설일 거란 기대와는 다르게 살아가면서 놓지 말아야 할 것, 아직은 품고 살아야 할 것에 대한 희망을 부르는 생존모험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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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1 - 광해군의 누이, 정명공주 이야기
유광남 지음, 김이영 원작 / 미래플러스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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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주인이 된 여인, 정명공주. 『화정 1』

 

 

오랜만에 역사소설을 읽었다. 한참 드라마로 방송되고 있는 내용이기에 어떤 전개로 흘러갈지, 소설과 드라마가 얼마나 다른 여운을 줄지 비교하는 맛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활자를 통해 영상을 떠올리는 맛이다. 이런 장면, 이런 대사, 이런 배경의 어울림을 배우의 연기가 한층 돋보이게도 할 가능성이 있기에 기대되는 거다. 솔직히 첫 회만 본 상태라 어느 정도 비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첫 회의 장면을 책 속에서 발견하니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흘러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 소설을 읽어보니 다음 장면, 다음 회가 기대될 거란 생각은 그대로다.

 

의외의 전개에 잠깐 생각했다. 그동안 역사를 주제로 한, 왕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왕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는 흘러갔고, 온갖 정치 싸움과 권력을 얻고자 발버둥 치는 인간들의 향연을 보곤 했다. 소설 『화정』역시 그 큰 틀에서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아직 1권만 읽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광해의 등장과 그가 왕이 되는 배경을 풀어놓는다. 성군이 되고자, 백성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애쓰며 고뇌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적자도 아니고 장자도 아닌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버티고 견뎌야 했던 시간의 암울은, 그가 뜻을 펼치기 위해 쌓은 주춧돌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세상이, 권력이 어디 그렇게 흐르게 놔두겠는가. 그의 출신 성분은 변할 수 없었으니 그게 늘 발목을 잡는 구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들이, 수시로 왕권을 흔들려는 자들과 혹시나 목숨이 위태로울까 미리 선수 치는 염려 속에서 그는 오해와 불신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거기에 정명이 있다. 이 소설이 더 기대되는 이유이자 새로운 영웅이 묘사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하는 까닭. 정비의 소생이자 그의 이복누이 정명공주. 그가 세자가 아니라, 임금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남자이자 오라비로 살아가는 인간미를 갖게 하는 누이. 정명의 미소 한 방, 천진한 표정 하나면 잠깐이지만 그의 시름은 사라진다. 이제 정명이 성장하고 십 대의 여인이 되었다. 1권은 그렇게 성숙한 정명의 마지막 모습과 부마 간택의 갈등을 두고 끝이 난다.

 

“하지만 얘야, 그렇다 해도 잊지는 말거라. 야만과 불의에 승리를 내준 것은 인간이나 다시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것도 그들이니! 하늘의 뜻보다 강한 것은, 사람의…… 의지라는 걸……!” (196페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비밀의 등장. '불을 지배하는 자가 진정한 세상의 주인이 된다'라는 격암 남사고의 신탁이 무엇을 남길지 혼란스럽지만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언제쯤 그 의미가 밝혀질까 싶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그 운명이란 게 또 우습기도 하지. 때론 위선과 거짓, 의미 없는 증표를 믿으며 피와 전쟁을 불사하게 한다. 불로 상징되는 그것,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벌이는 싸움과 치열함이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가장 흥미로운 건 그 신탁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 여기에서 정명의 활약이 기대된다. 기구한 운명처럼, 그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이라고 들었던 그녀의 삶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거기에 또 다른 인물들, 정명공주를 사이에 두고 사내다운 면모를 보이는 홍주원과 강인우.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보이는 출중함과 영민함, 너무 뛰어나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팽팽함을 이미 1권에서 복선처럼 보여줬다. 두 사람의 활약이 더욱 기다려진다.

 

숨겨진 비밀 같은 예언이 이제 조선을 어떻게 흔들지, 광해와 정명의 우애를 어떻게 시험대에 올려놓을지 궁금하게 한다. 작은 염주 하나, 해석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글귀, 오래 전에 예언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들. 피를 부르는 권력이라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차지하는 게 제자리라는 걸까. 실제 역사 속에서 정명과 광해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인이기에, 공주이기에 왕권의 계승에서 제외되었던 법도를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그녀가 영민하고 큰 인물이었을 거란 호기심은 생긴다. 이 소설이 미처 보여주지 못한 그녀의 삶을 재조명하여 독자들에게 다가온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 추측한다. 광해의 집권 시기를 넘어서 인조의 시대까지 그 생명력과 권력을 이어가던 이 여인의 이야기가 비치고 있는 시대상과 인간상을 함께 보는 맛이 있을 듯해서 2권이 기다려진다.

 

실존 인물과 허구의 설정이 모호한 게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본은 역사가 바탕이 될 테니 드라마나 소설로 즐기며 그 이면의 것들을 추리해가는 재미도 상당할 듯하다. 이미 여러 버전으로 만났던 광해의 다른 모습도 보게 될 것 같고, 김개시나 이이첨, 광해의 호위무사 이정표, 홍주원과 강인우까지 보여주는 흥미로움이 진하다. 소설로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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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을 대표하는 리터러리 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
스웨덴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그리고 한 이슬람 이주 청년의 긴박한 하루
소수자, 약자, 혹은 혐오 대상으로서 살아가는 한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 낸 문제작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는 2010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타이무르 압둘와하브(Taimour Abdulwahab)라는 남성의 자살 폭탄 테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스웨덴은 이백 년 넘게 어떠한 전쟁과 분쟁도 겪지 않은 중립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민 2세대인 케미리는 이 작품을 통해 스웨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공포와 불안을 퍼뜨리는 테러, 그와 함께 확산되는 인종차별주의와 이슬람 혐오주의, 그리고 그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소수자, 약자, 혹은 혐오 대상으로 살아가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류 사회’의 시각에서는 관찰할 수 없는 이민자-외국인-이방인의 모습과 생각을 보여 줌으로써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 간의 소통과 교류를 시도하는 케미리는, 새로운 주제와 서사 기법으로 스웨덴뿐만 아니라 유럽 문학 지형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문제적’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2015년 6월 25일 ~ 7월 1일
- 당첨자 발표 : 7월 2일 (리뷰 작성 기간 : ~7월 14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해주세요.(필수)
-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서평단 응모 링크(https://goo.gl/wiEUIv)를 클릭하여 설문지 작성

4. 당첨자 미션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 서평이 등록되지 않는 경우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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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 사랑하지만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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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상처 없이 그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 궁금증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지금껏 살아온 내 경험으로 보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니까 이렇게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일이 계속 이어질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들려주는 행복한 관계 만드는 법으로 그 상처를 극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전작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대부분 이러했다. 상처받은 영혼들, 그 영혼을 달래주는 일, 그렇게 행복해지는 길을 말하고자 애쓰는 게 보였다. 2010년 출간된 <너에게 닿기를 소망한다>의 개정판인 이 책을 이미 읽어본 사람도 있겠다. 나는 그때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개정판 출간이 더 반갑다.

 

꾸준히 사랑해야 할 관계들이다. 기본적으로 가족부터 친구, 동료, 지인들. 그 외 많은 사람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가 어떻게 다독여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보이는 이기심이 상처를 부른다. 높은 기대감, 지나친 집착 같은 변질된 사랑이 상대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한다. 거기에는 자기애가 곁들여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 되어 상대의 감정을 돌보지 않기에 사랑의 부정적인 면을 만들어 상처를 내는 것. 그 상처들을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나아가는 삶을 만들기 위해 저자가 다정하게 처방을 내린다.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고 다독여주고 안아주라는 말. 처방이라고 내놓은 말들이 다 따뜻한 말들이다. 손짓과 품이 만들어내는 포근함이다. 거창한 무엇이 필요한 게 아니어서 ‘이런 게 필요한 거였나?’ 하는 웃음도 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가장 필요한, 정말 간절했던 반창고는 바로 이런 게 아니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여기에서 9가지 방법으로 그 상처를 다독여주라고 말하고 있지만,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어디 그 방법이 9가지뿐이겠나. 누군가에게는 더 모자랄 수도, 더 많은 수도 있겠지. 저자가 내린 처방을 근거로 그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범위를 넓혀갈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바로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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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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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지만, 이번 세 번째 도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읽히는 책 한 권을 만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얼마쯤 읽었을까, 저자의 글에서 '제임스 설터'가 몇 번 언급된 부분을 보다 생각났다. 아, 그 책의 번역가였구나. 제임스 설터의 전작 두 권을 읽으면서 봤던 이름이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번역가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감정적으로 흥분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제임스 설터가 그렇게 썼는지, 아니면 번역가의 번역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법 담담하게 읽었던 여운 때문이었다. 저자와의 그런 인연(?)이 생각난 순간, 이 책이 달리 보였다. 편하게 읽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흥분되지 않는 감정의 선을 더 그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분명 어떤 감정이 들어가 있기는 한데, 내가 읽은 이 책은 감정의 흐름보다는 조금은 담담하게 읽혔다. 저자의 말투와 흐름이 여전했다는 느낌?

 

무엇을 강요하거나 억지스럽게 소개하려는 애쓰는 게 없다. 담담하게 풀어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며, 저자의 생활 대부분을 이루는 책과 예술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지극히 사적인 저자의 시선을 담은 뉴욕이란 도시 생활기이자, 그곳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일기처럼 풀어낸 글이다. 때론 타지에서 겪는 향수가 살짝, 삶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세상 보기가 약간, 그림과 작가에 대한 지식이 많이, 담겨 있다.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자신이 쓴 글을 되짚어보는 일이자, 앞으로의 시간을 꾸려갈 어떤 마음의 확인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시선으로 읽게 했다. 무엇보다 저자의 사적인 도시의 이야기다, 그동안 내가 뉴욕이란 도시에 가졌던 선입견을 흐리게 했다는 거다. 상당히 거리감 있게, 뭔가 어울리지 못하고 삭막하게,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표본처럼 여겼다. 그런데 말이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니, 뉴욕이든 어느 도시든 특별해지는 건 한순간이더라. 그 특별한 감정을 함께한 곳이 저자에겐 뉴욕이었을 뿐이다. 뉴욕에서 살면서 크게 작게 저자가 겪어간 시간이나 장면이 저장한 기억이 이 글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러한 것들이 모여 저자에게 특별하고 사적인 도시로 만든 거다. 그 도시 전체가 아니라 저자를 품었던, 저자가 걸었던 그 길이 이젠 그냥 도시가 아니고, 그냥 길이 아닌 게 된 것. 읽다가 문득, '나에게 그런 도시는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쉽게도 그런 특별한 기억저장소로 들어갈 도시가, 나에겐 없더라.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숨 쉬고 걸었던 그곳의 이야기가 사적이고 특별해 보였다. 반면에 그 특별함에 속하지 않은 나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한다. 낯선 곳을 걷는 기분으로, 낯선 사람들과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표정으로, 낯선 기분을 즐기게 하면서.

 

사람들이 내가 쓴 책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뉴욕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87~88페이지)

 

거의 모든 예술가의 도시라고 여겼던 곳. 뉴욕의 갤러리들과 거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게 한다. 공연과 영화를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귀를 붙잡고, 그 시대의 패션과 스타일을 그리게 한다. (이 책은 2005~2010년까지의 기록이다) 예술 작품들을 이야기하고, 무심코 책 한 권을 꺼내 어느 구절을 찾게 한다. 사실 나에게는 저자의 관심사나 기록, 저자가 언급하는 예술 작품들의 흥미로움이 그대로 전해지지는 않았다. 내가 잘 몰라서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다. 하지만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예술을 대하는 자세와 의미를 고민하게 한다. 평범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그 진지함과 특별함에 눈길을 머물게 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그 분위기를 끌어가며 뭔가 더 말하고 가르쳐주려고 하는가 싶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읽는 이에게 강요하는 게 없어서다. 그저 저자의 생활 주를 이루는 것들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런 관심사가 있고, 이런 일을 하며, 이런 사람들과 이런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다. 바로 여기, 뉴욕에서...'라고 말하는 듯이.

 

언급되는 작품들과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미술을 보는 전문적인 눈을 가지면 좋겠다는 부러움의 시선도 가지게 된다. 그림을 자유롭게 보면 된다고 하지만, 제대로 볼 줄 아는 자연스러운 지식을 말한다. 여러 작가를 말할 때는 애정과 관심이 넘쳐 보였고, 그들의 작품과 생을 들려줄 때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관심 두게 된다면 예술을 접하는 깊은 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많이 들어본 작가도 있었지만, 저자가 어디에 아껴두었다가 꺼낸 것처럼 생소하게 들리는 작가도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저자의 취향을 살짝 엿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패션, 미술, 문학 등 다양하게 그 취향의 멋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가 번역한 작품들, 애정 있게 보는 그림들, 시대의 흐름을 말하는 패션의 대가들.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작가와 작품들의 이야기가 연결된 듯하다. 같은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위대한 질문이야말로 큰 영감을 준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질문이었고 다른 작가들이 밟고 올라서는 토대였다. 이렇게 우리가 방을 채워가는 수많은 답들은 그 자체로 다시 방만한 질문이 된다. 과연 우리가 이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중요한 것들을 누구의 힘으로 어떻게 지킬 것인가. (171페이지)

 

뉴욕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느낌이 강했다. 오랜 시간 뉴욕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저자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곳과 이곳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 몰랐던 장면들에 낯선 시선을 던지면서도 신중하게 듣게 하면서, 단어 하나가 품은 여러 의미를 어느 순간에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한다. 이건 아마도 살아가는 태도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적용하는 듯하다. 매일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적어낸 것을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나게 되어,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다. '아, 이런 문화의 이야기가 여기서 들려오는군요.'라고 알게 되었다고 말해야만 할 것만 같다. 번역자로 만났던 저자 특유의 분위기가 글 곳곳에 녹아있어 이국의 도시를 이야기하는데도 친근함은 있다. 번역자로만 알고 있던 저자의 이름에 다른 이름이 많이 더해질 듯하다.

 

 

덧)

책 재킷을 벗겨내어 펼치면 안쪽에 자리한 뉴욕의 지도가 하나의 산책로로 정리되어 있다. 손끝으로 그 산책로를 짚어가며 눈으로 걷는 길을 만끽해도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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