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품절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페이지)


대문 밖 아버지는 호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잘 사고, 얘기도 잘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동네 경로당 출입문을 열고 마주한 장면은,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버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그런데 집에서는 왜 그래? 웃기는커녕 욕하고 화내고 큰소리만 치던 기억이 전부였는데, 지금 내가 본 건 뭐지? 뭔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에 더 오래 고민하진 못했다. 나중에 그날의 장면을 가끔 떠올렸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소설 속 평생 빨치산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는 딱히,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삶이 조금 평탄했을까.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아버지의 혁명은 계속되었으나 함께한 동지들은 죽어갔고, 아버지의 위장 자수 계획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가 바라던 평등은 지금 우리에게 닿은 세상일까? 일상의 많은 부분이 평등하게 이뤄진 세상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혁명에 힘을 쏟았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아버지의 빨치산이라는 수식어는 작은아버지의 인생을 무너뜨렸고, ‘의 인생에도 도움 될 게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노동절 새벽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긴 생을 그대로 담아낸 것에 놀랐다. 누군가의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평생 형을 원망하며 살아온 작은아버지가 이 장례식에 등장할지 궁금했다. 형의 죽음을 알았지만, 대꾸도 없이 끊어버린 전화는 그의 닫힌 마음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고, 그러니 증오하는 이의 죽음 따위 애도할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확인하고 싶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딸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에게도 평생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를 준 이였기에 말이다. 반면에 아버지가 구례에서 사귄 이들은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꽉 채운다. 누군가는 사흘 내내 머물면서, 누군가는 바통 터치하듯 찾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의 추억을 꺼낸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면서도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온 이가 있는가 하면, 다문화 소녀의 인생 한 장면에 기록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혁명을 위하는 중에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며 딸 같은 나이 청년의 삶도 바꿔놓았다.


그들이 소환하는 아버지는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너무 달랐다. 생활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아버지, 습관처럼 보증 서주며 집안을 말아먹은 아버지, 어느 시절의 ‘-라떼인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는 아버지를,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테다.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음을. 막무가내 같았던 아버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오지라퍼 같은 행동이 감동을 불러왔으며, 기억에서 사라진 아버지와 의 애틋한 시간을 다시 그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늦게나마 차근차근 아버지의 삶을 복기하던 는 아버지가 바라던, 딱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이번 생에서 놓아주려고 한다.


책으로 농사를 배우고, 그마저도 완전하게 배울 생각을 못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그놈의 혁명이고 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농사라도 지어야 식구들 먹고살 텐데, 이놈의 영감탱이 허구한 날 혁명 타령이나 하고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으로 평생 살아가는 모습에 화병도 났을 법하건만, 아버지의 혁명 동지로 살아온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변하지 않더라. 사상의 지향점 앞에서 한편이 되었다가 상황에 따라 반대편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이 우습다. 아마도 아버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해방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 사흘의 시간이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하는 시간 그대로 가치 있었다. 이래서 죽은 이를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이룬 자유를 이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딸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답게 살다간 아버지의 인생을 이렇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하고 죽음 후의 자리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루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는 다 풀리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8~249페이지)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시간마저 희미해졌다. 대화다운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혹시 또 모르겠다. 살아있는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한 채로 떠났는지도.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지금 내 마음이 다독여질 것 같다. 평생 자기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기억된다면 내 인생에서 작게나마 남아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참 의미 없어질 것 같다. 어쨌든, 각자의 고단한 인생을 잘 정리하고 떠났다면, 그랬다면 된 거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나.


#아버지의해방일지 #정지아 #창비 #소설 #한국소설 #가족소설 #혁명 #가족

##책추천 #감동 #웃음 #한남자의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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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에 새로 온 동료는 나와 비슷한 나이인데, 난임 치료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던 듯하다. 지금은 남편과 둘이 살아가는 순간을 즐겁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가끔 남편과 통화하는 걸 들을 때가 있는데, 세상 이렇게 다정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얘기하는 부부가 있나 싶어서 종종 놀란다. 그래, 이렇게 두 사람이 나이 들어간다면, 이것도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입양에 관해 얘기하게 됐다. 입양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고려해봤고, 입양은 그 부부의 인생 계획에 넣지 않기로 했단다. 그 얘기를 나누었던 날, 우연히 TV를 보다가 입양아의 인터뷰까지 보게 됐다. 자기가 입양될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한국 입양 시스템의 문제점,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으나 그 과정이 너무 어렵고 어떤 정보도 얻기 힘들다고 말하는 장면에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 날 도서관에서는 의외의 책까지 만나면서, 무슨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입양에 관한 화두는 최근 나의 곁을 계속 맴돌고 있다.


여자는 자신이 수입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자신이 수출품이었기에 화가 난다.

여자는 어린이를 입양 보내는 국가는 물론 입양기관도 국가 간 입양을 통해 돈벌이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18페이지)


마야 리 랑그바드의 책 그 여자는 화가 난다를 도서관 신착 자료 코너에서 뽑아 들고 읽었다. 읽기 전에는 제목과 표지만 보고 세상의 불평등에 관한 여자들의 분노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첫 문장부터 충격적이었고, 몇 페이지 읽다가 알아버렸다. 이 책의 부제가 이 책의 반복된 화가 난다문장과 연결되어 있음을... 저자는 한국계 입양인으로 덴마크 시인이다. 시처럼 들리지만, 오랜 세월 담아둔 감정의 고백 같았다. 아니, 고발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부제 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이라는 수식어 그대로였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으로 국가 간 입양이 얼마나 허술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이걸 알면서도 쉽게 용인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거의 10년 전에 덴마크에서 출간되었다는데, 상당한 화제였던가 보다. 이 책을 읽고 해외에서는 입양을 생각했다가 그만둔 가정들이 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컸다는 걸 알겠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문장으로 그 격한 분노가 얼마나 큰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화자인 그녀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고, 해외로 입양된 모든 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국가 간 입양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이로운 일인지 들으면서 자라왔다고 하는데, 이게 정말 좋은 일이기만 할까? 그 이로움은 누가 판단하는 거지? 이 책 읽자마자 오월의봄에서 출간된 아이들 파는 나라를 바로 이어서 읽었는데, 두 책은 비슷한 맥락으로 국가 간 입양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 말한다. 특히 한국이 아동 수출국이 되어버린 과정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런 정책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졌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배경에는 우리가 흔히 정상 가족이라고 말하는 가족의 형태가 있었고, 경제 성장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횡행했던 해외 입양이 하나의 사업처럼 성장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작 그 입양의 중심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삶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다.


여자는 한국에는 부모가 자녀를 입양시킨 후 그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리케는 호주에선 자녀를 입양시킨 부모가 28일 내로 결정을 철회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는 이러한 법적 철회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78페이지)


여자는 입양은 친밀감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헤이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화가 난다. 헤이그협약에서는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또한 각각의 회원국 정부에서는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만약 아이들이 친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정부는 우선적으로 국내입양부터 고려해야 한다. 만약 국내입양조차 쉽지 않다면, 그때 국가 간 입양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여자는 화가 난다, 128페이지)


우리나라는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3년에 국제 입양을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정부를 거쳤지만, 국제 입양은 계속됐다. 일부 국제 입양 성공에 가려진 수많은 해외 입양인의 비극적인 삶은 가려졌다. 그런데 왜 국제 입양은 시작된 걸까? 이 책에서 추적한 대한민국 국제 입양의 실태는 놀라웠고, 잔인했다. 한국전쟁 이후 전쟁고아를 구제한다는 취지로 국제 입양을 장려했으나, 실제로는 청소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혼혈아동이 국제 입양의 대상이었으나, 점점 그 대상은 넓어졌다. 부모를 잃은 미아까지 입양 대상이 되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제 입양은 줄지 않았다. 국가 주도로 경제 성장을 추진하면서, 국제 입양은 국가의 복지비용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면서 이민 확대나 민간외교라는 허울로 국제 입양은 계속 이뤄졌다. 한해 태어난 총 출생아 중 1%가 넘는 아이가 해외로 입양된 적도 있다는데, 이거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은 지워질 시간이 없었을 테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아이를 원하는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걸 국가가 도와주는 것쯤으로 여겼던 거다. 입양 과정에서 돈이 오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입양 문제를 얼마나 순진하게 생각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물론 국가 간 입양 절차에 비용은 발생하겠지 싶었다. 사람이 오고 가는데, 비용이 발생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게 아이를 보내고 맞이하면서 거래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정부는 이 절차와 책임을 민간 기관에 넘겼다. 국제 입양에 최대 종주국은 미국이었고, 우리나라 해외 입양인의 70%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는 국제 입양기관들이 존재하고 있다. 국제 입양이 정부에 많은 목적을 제공했다면, 국제 입양의 중심에 있는 입양인들이 겪는 문제는 누가 해결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물어도 대답해주는 이가 없다. 많은 입양인이 낯선 땅에서 낯선 부모의 폭력에 쓰러지고, 정신적으로 학대받으며, 부여받지 못한 시민권으로 세계를 떠돌거나 불법체류자가 된다. 처음 입양이 시작될 때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일이 훗날 이들의 인생을 크게 뒤흔드는 일까지 만든다. 이 참담한 비극은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헤이그협약은 원가정 보호를 천명하고, 원가정 보호가 불가능할 때는 국내에서 보호 가능한 가정을 찾고, 국제 입양은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140페이지)


헤이그국제입양협약 가입이 그 답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입양 과정과 책임이 민간 기관이 아닌 국가가 관리 감독하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 입양된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보장하는 내용인데, 그러려면 법 개정을 비롯한 많은 문제 해결과 절차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게 이루어지지 못해 이 협약에 닿지 못하고 있는 듯한데, 이 문제의 본질 역시 간단한 게 아니었다. 국가와 민간 기관, 국가와 국가 간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 이어지는 동안 국제입양인의 삶은 여전히 불행하고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입양이란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 그 날, 내가 TV에서 봤던 장면은 한 국제입양인의 호소였다. 자라면서 겪은 많은 차별과 학대 말고도 자신을 괴롭게 한 건 정체성의 문제였다고 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줄곧 물어왔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 대답을 찾으려고 한국에 왔으나 찾을 수 없었다고. 단지 태어났을 뿐인데, 다른 나라로 보내어지는 과정에 왜 당사자의 목소리는 없었는지조차 물을 수 없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느라 노력했을 테고, 그런데도 온전히 그 가족, 그 나라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시간 속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차별에 노출되어 성장했지만, 남은 것 역시 그동안 살아온 모습의 인생일 뿐이다. 많은 국제입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지 묻는 책인 듯하다. 입양을 마냥 좋게만 봤던 나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많은 사례와 진실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헤이그협약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 보였다. 이설아 작가의 가족의 온도에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다.



가족의 온도는 결혼한 부부가 세 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입양에 관한 이야기에는 아이를 입양한 부모나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뤄졌다면, 이 책은 입양된 아이의 목소리를 담았다. 앞부분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마음과 과정을 잘 드러낸 작가의 다짐과 입양 절차를 다룬 이야기가 있다. 정상(?)적으로 결혼한 부부가 불임도 아닌데, 아이를 낳는 게 아닌 입양을 선택한다. 부부의 마음이 같아서일까. 입양을 결정했다고 그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았지만, 부부의 마음이 같으니 입양을 대하는 자세가 경건했다. 한번 버림받은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줄 알고, 사라지지 않을 부모의 자리에 머물 줄 알며, 온전히 아이의 성장을 살피며 마음을 다한다. 오랫동안 뿌리박혀 있던 가족의 개념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듯했다. 같이 산다고,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니라는 건 살아오면서 저절로 알게 됐다. 어떤 관계에서도 갈등은 존재하겠지만, 이렇게 살아가도 가족이라는 걸 보여준다.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함께한다면, 그게 가족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으면서 입양을 공개했다. 완전한 가족이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했고, 그 시간 동안 사랑을 쌓으며 부모와 자식 관계가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감정의 문제까지 아낌없이 들려주면서, 입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입양에 직접 관계된 이들의 자세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아이를 읽어야 할 책으로 보라는 말은 입양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라면 더욱 깊이 새겨야 할 조언입니다. 입양 아동의 삶은 입양 부모의 품에 안기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아이는 우리와 너무 다른 신체적 특성과 성격, 여러 재능과 고유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옵니다. 아이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어떤 경험을 하며 우리에게 왔는지를 파악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에 적절한 양육을 제공하려면 몇 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고유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이와 연결된 출생 가족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랑하는 입양 자녀를 위해 부모가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출발선입니다. (가족의 온도, 120~121페이지)


한때 어린 조카를 입양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내가 돌보던 조카가 서너 살 즈음일 때, 내가 그 아이를 직접 돌보며 양육하는 당사자인데도 법적인 문제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곤란해질 때마다 했던 생각이었다. 그 당시에는 결혼한 부부가 아니면 아이의 입양이 불가했었는데,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읽고 알았다. 싱글인 상태에서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물론 비혼이어도 입양의 자격이 생겼다고 해서 이 과정이 쉬운 건 아니다. 다만, 꼭 결혼으로 이루어진 부부가 아니어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고, 가족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안도했다고 해야 하나. 이제껏 우리가 알아 왔던 정상 가족의 개념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서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아이의 성장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럼 가족인 거 아닐까. 앞서 두 책이 국제 입양 실태에 관한 고발의 분위기로 참담하고 우울했다면, 이 책은 뒤의 두 책은 국내입양의 현실적인 장면을 그려주는 것 같다. 입양의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가 바로 이런 거 아닐까.









#그여자는화가난다 #아이들파는나라 #비혼이고아이를키웁니다 #가족의온도

#입양 #국제입양 #국내입양 #정체성 #문학 ##사회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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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9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11-09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 되세요.^^

thkang1001 2022-11-0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였던가.

이 책을 사서 고이고이 모셔두었었지. 읽어야지. 너무 궁금했던 책이니까, 읽고야 말거야.

시간이 흐르고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또 생각했지.

언젠가는 읽겠지. 그냥 지금은 다른 책에 밀려있을 뿐이야...









세월이 흐르고 한 권으로 모아놓은 이 책을 다시 샀지. 

세 권짜리보다 더 금방, 한번에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새책을 사고 신났었지.

합본 개정판이 있으니 이제 구판은 필요없어. 책장에 자리도 없는데 구판은 팔아야지 싶었지.

그래서 냉큼 구판을 팔고 이 책을 또 고이고이 모셔두기 시작했지.


2년쯤 전에 이사하면서 어느 정도 책장 정리를 시작했는데, 그때 이 개정판도 정리 목록에 있었다.

이제까지 안 읽었는데, 아마도 이 책을 금방 읽지는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다시 읽고 싶어지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는 거지 뭐. 그래도 좀 아쉽기는 한데.

아, 정말 생각도 단순하고 판단도 빠른 인간이여... 그래서 중고로 팔아버렸네. 미련이 없.............이?



그런데 말입니다.

이 책이 또 새로 나왔다는 말입니다.









두번이나 중고로 팔아버린,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셔두다가 내보내버린 이 마음은 뭐란 말인지...

출간 소식을 듣고 다시 사버렸단 말입니다. 하아.....


네에, 받고 보니 양장입니다. 탄탄해 보입니다. 그동안 출간된 버전보다 표지 디자인이 참, 좋습니다.

이거 이거 오래 책장에 모셔두어도 될 정도로 저의 인내심이 생길 것 같은 소장각입니다만............

이번에는 제발, 혹시 되팔더라도, 읽고서 내보내고 싶은 간절함에,

새책 사고 기분이가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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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2-10-14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읽기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첫 합본으로 읽었는데, 에곤 실레 그림 좋아해서
새로 나온 표지보다 예전 표지가 더 맘이 듭니다만~

구단씨 2022-10-14 16:07   좋아요 1 | URL
제발요...... ^^
저도 첫 합본 표지 정말 좋아했어요. 이 책이 합본으로 나오다니!
합본으로 나온 세 가지 표지 다 예뻐요. ^^

호우 2022-10-1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저를 보는 기분이네요. 너무 끌려서 사고 안 읽고, 정리하고 후회하고. 표지 그림이 좋군요. 어쨌든 새 책은 기분을 좋게 하지요^^

구단씨 2022-10-26 23:0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ㅎㅎ 새책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정말 이번에는 꼭 완독하고 싶습니다!!!

여명에선풍적수 2022-10-25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이 책보다 님 글이 더 재밋습니다 진짜로

구단씨 2022-10-26 23:03   좋아요 1 | URL
저만 이런 거 아니죠? ^^

정상맘 2022-10-2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링링 2022-12-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너무 재밌어요 ㅋ ㅋ ㅋ
 


자라면서 끊임없는 비교에 시달리고 괴로웠던 게 나만의 기억은 아니리라.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 비교와 간섭으로 받아왔던 고통이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럼 결혼하면 끝이냐고? 그것도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낳는 데로, 딸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혼자는 외로우니 둘 이상은 낳아야 한다 등등 남의 인생 계획에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이 나의 자녀 문제를 정하려고 든다. 듣기 싫은 소리 들으면서 참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러다가 정말 살인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정도의 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자기 인생이 아니고, 남의 인생이다. 그들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사는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그들의 몫인 거다. 제발 멋대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파헤치고, 걱정이랍시고 오지랖 떠는 일 좀 그만해주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행이 아니라 불쌍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려워지곤 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아이 문제 때문이다. 새로 관계를 맺고, 무슨 통과의례처럼 호구 조사가 시작된다. 나이는 몇이냐, 어디 학교 나왔냐, 결혼은 했냐, 아이는 몇이냐. 특이 이 나이 먹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특히 같이 일하는 사이로 엮이는 사람들은 아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다. 여기 나와 일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 아이가 없다고 말하면 순간 몇 초쯤 침묵. 그러고 나서 돌아오는 대답은 '아...' 이미 아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특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이 없는 우리 부부의 삶을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아이를 낳는 건 개인의 선택이고, 낳았으면 책임을 다해 길러야 하는 게 부모의 의무이다. 그거면 된 거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그냥 각자가 감당하면 되는 일 아니었나.


아이 없는 우리 부부가 어떤 마음과 계획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되던 중에, 아이 없이 살아가는 부부에 관한 책 몇 권을 읽게 됐다. 사실 다 읽을 필요도 없긴 했다. 온전하게 우리 둘이 잘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고, 노후의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 외에 뭐가 더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읽어본 이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우리 부부가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게 잘한 일인지 아직도 100%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까지 다 고려해야 하니까. 그래서 인생에서 아이를 선택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어떤 자세로 노년을 준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다를 거로 예상했지만, 역시나. 각자의 이유로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고, 각자에게 맞는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인 10년 차 부부의 이야기 우리, 아이 없이 살자에서는 부부 사이의 변화를 찾아냄으로써, 관계 재정립과 아이 없는 부부생활을 잘 만들어가는 계기로 여행을 선택했다. 1년간의 여행 후 이 부부는 분명 달라졌다. 보편적인 정답이 아니라 그들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고도 부부 관계에 조금은 고민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들이 함께 겪은 여행지에서의 고단함을 같이 경험해도 좋겠다. 어쩌면 실컷 싸우기만 하다가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 힘든 시간을 같이 경험하다 보면 사랑을 넘어선 동지애가 싹틀지도 모른다. 전통적 사고나 사회적 규범이 만든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던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룰을 만들어 지켜나가기로 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175페이지, 우리, 아이 없이 살자)


딩크족 여성 18명의 이야기를 직접 담아낸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역시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그들의 선택이고, 본인의 선택에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과 말들은 어김없이 이들의 선택이 틀렸다는 듯이 참견하며 인생 지도를 다시 그려주려고 한다. 타인이 잊고 있는 그것, 아이 없는 삶을 여성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와 같이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라는 것. 무례한 오지랖에 상처 입으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노하우를 같이 듣게 된다. 실질적인 경험담을 듣는데 최적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을 지나고 마흔을 향해 가는 동안 알게 된 것이 있다.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대개 결혼을 중심으로 한 번, 출산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재편된다. 삶의 형태, 사는 지역, 관심사, 친밀도, 시간적 여유, 금전적 여유, 자유와 책임의 문제까지 서로 달라지는 부분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60페이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몇 권 더 읽긴 했는데, 비슷하게 중복되는 부분도 많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중에 객관적으로 들리면서도 당당하게 아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이었다. 저자는 아이 없는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선택을 위한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이들에게서 나오는 확신을 들려준다. 중립자의 시각에서 아이 없는 삶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다. 저자가 상담했던 사람들은 거의 세 가지로 나뉜다. 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으면 아이를 낳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어쩌다 보니 아이 없이 살게 된 사람들), 행복하게 아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들(사정상 어쩔 수 없이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그 기저에는 위의 세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감정의 문제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본인의 선택에 잘 책임지며 살아가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치 비정상의 삶이라는 듯 바라보는 시선은 좀 거둬주시기를.


저자는 우리 사회의 세 가지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자녀를 가질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자녀 없는 삶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부 부모는 자녀를 낳은 일을 후회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다. 피임약의 등장은 아이를 낳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결혼했으니(결혼하지 않았어도) 아이를 낳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겼던 시대는 지나갔다.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누가 탓하거나 혀를 찰 일이 아니라는 것.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에 책임을 지듯,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있는 가정과 아이가 없는 부부가 겪는 경제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를 놓치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기에 이 부분에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다. 노키즈존을 선호하는 사람과 비선호 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시선의 차이가 있는지, 아이가 있는 집에는 세금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을 주면서 아이가 없는 집에는 필요해도 받지 못하는 혜택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더 많고 다양한 생각들이 언급되는데, 싸움판 벌어질까 봐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결혼이 선택이든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의 문제일 텐데, 개인의 선택 문제에 누군가는 부당하다고 여길 문제가 있다면, 이는 깊게 고려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 주제의 많은 책이 아이 없는 삶 자체를 찬양하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 없는 삶을 선택했고, 그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이 고단함에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아이 없이 살아가는 일의 긍정적인 면만 말하지도 않는다. 아이 없이 살아갈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이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이 없이 살아간다는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고민에 저자는 말한다. 아이 있는 삶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라고, 어떤 불안이 더 큰지 비교할 것 없이 비슷하다고, 이런 고민 자체가 헛된 일이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아이 없는 삶에 대해 누군가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려고 든다면 참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다. 사생활을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다고, 이 삶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말하면 된다고,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를 인지할수록 불안감은 덜하다고 말이다. 어떤 선택도 완벽하지 않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하는 게 인생이 아니었던가.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여러 갈래의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아이가 없다면 택할 수도 있는 몇 가지 길을 부모가 됐다면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혹은 생물학적인 조건으로 부모가 될 수 없다면, 인생의 다른 목적을 찾아 즐겁게 살면 된다. 우리의 사명은 각자 내린 결정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풍요롭고 알차게 살아가는 것이다. (270~271페이지,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아이 없는 삶을 먼저 살아본 이들의 이야기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표현하는 ‘childfree’가 더 어울리긴 한다. ‘childless’가 부정적으로 들리는 반면 ‘childfree’는 아이 문제를 우리가 선택했다는 어감을 담고 있어서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와 더 맞는 듯하다.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유는 제각각이더라도, 아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을 찾아가게 하는 글이다. 지금 내가 늦은 저녁 시간에 남편과 둘이 각자의 책을 읽으며 뒹굴뒹굴하는 것 같은 취미가 필요하다.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노년의 만족이 다를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성격도 아주 다른데, 다행히 비슷한 거 하나는 책을 보는 일상이라는 거다. 나는 출간된 종이책이나 전자책을, 남편은 지금 연재 중인 작품들을 찾아서 본다. 서로 시간 보내는 일이 아주 다르지 않게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이 없는 부부를 바라보는 편견에 무심해지는 것. 아이가 있어도 불행할 수 있듯이, 아이가 없는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 지금 바라는 소박한 세 가지다.



*) 이 책에는 더 많은 사례와 그들의 선택에 대한 근거, 아이 없는 부부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불평등한 정책들이 언급된다. 여기에 다 옮길 수도 없지만, 각자의 선택과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를 것이기에 한마디로 말할 수도 없다. 많은 사람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국가의 정책과 세금 문제에 관해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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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29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동감 합니다!
사회의 관습 통념
가족의 개념 의미가
각자의 삶의 방향과 추구하는 삶의 모습에 맞게 살아 가는 것!

서로 조율 하면서 ^^

구단씨 2022-09-29 22:07   좋아요 3 | URL
그냥요... 더도 바라지 않아요. 서로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지 않다는 것만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미미 2022-09-29 14: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감입니다. 저도 별의별 일 다 겪었어요.
최재천 교수님이 그러더라구요. 출산률이 떨어지고 있어도
워낙 기본값?이 (세계인구) 상당히 커져있기 때문에 인구증가가 소폭 상승해도
증가율이 과거와 비교가 안되게 크다구요.
이런 상황에서 보면 출산율 저하는 ㅡ위기다 뭐다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ㅡ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다수의 횡포는 어디에나 있는것 같아요. 최근 통계를 보니 이제 절반이상은 비출산을 선택하던데
머지않아 왜 안낳느냐등의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질문은 사라질거라고 예상합니다.
저도 이 책들 다 읽어보고 싶네요.^^

구단씨 2022-09-29 22:11   좋아요 4 | URL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오늘 갑자기 옆자리 20대 중반 남자 동료가 출산율이 더 떨어지고 있어서 큰일이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는 말 듣고 깜작 놀랐어요. 어디서 내가 쏟아내는 속내를 듣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변화하길 바라고 있네요.

서니데이 2022-10-07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구단씨 2022-10-10 22:1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mini74 2022-10-07 22: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이가 하나인데 어떤 분이 대뜸 하나 더 낳아
애국하라고. ㅎㅎ 아니 이 무슨 소리지 했습니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1 | URL
애국의 기준이 뭘까 궁금해지긴 해요.
감사합니다. ^^

이하라 2022-10-07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단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구단씨 2022-10-10 22:1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하루 평균 400~500명의 민원인을 나와 옆자리 동료가 상대하고 있다. 짧게는 1~2, 길게는 4~5분씩 많은 사람과 얼굴 맞대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반년이 넘게 일하면서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매일 느낀다. 좀 심하게 말하면 매일 진상을 마주한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진상은 매일 업그레이드되어 나타난다. 말 그대로 X진상.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한 적도 없거니와 세상에 이렇게 많고 다양한 진상이 있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하루하루 멘탈이 뿌리째 흔들리곤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마스크 안에서 내 입은 소리 내지 않고 욕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다음에 마주할 사람은 더 심각한 진상이다.’라고 읊조리며 눈앞의 사람을 상대한다. 사람 성격 쉽게 안 변한다고, 어차피 두 번 볼 사람은 거의 없으니 진상 개조에 마음 둘 일은 아니다. 빨리 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정말 오랫동안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데, 나이 든 사람의 반말이다. (나이 든 사람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볼 때마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다짐한다. 내가 하루에 마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 나이가 든 사람이다. 보통 60대 이상의 노인분들. 딱히 적당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 보통은 어머님, 아버님, 혹은 어르신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에는 겉으로 보이는 차림새에 상관없이 예의가 바르고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존대하면서, 찾아온 용건을 차분히 말하고 잘 해결하고 가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반말인 사람들이 있다. 이거 해줘, 안 했어, 모르지, 내가 어쨌는데, 등등. 반말로 시작해서 반말로 끝난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그런 거지? 나이를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 저렇게 말을 놔도 되는 건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초면에?


이럴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는 나이를 왜 먹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경험도 많아지고, 뭘 배우고 배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될만한 세월인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뭔지... 나이를 먹었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보다 어려 보인다고 당연하게(?) 말을 놓는 사람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뭐든 양보하고 우선으로 해줘야 한다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었으니 당연하게 먼저 해주고 양보하고 상대가 손해를 봐야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몸이 불편할 테니, 판단이 둔해질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말한 것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 도와 드리고 안내하고 살피는 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도 계속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눈앞 노인의 나이가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이 든 사람을 배려하는 건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여겼다. 나의 부모이고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 배려를 버리고 싶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많은 노인을 만났고, 많은 반말을 들었다. 반쯤 올린 존댓말에 거의 내린 반말에 익숙한 하루를 보내던 중,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민원인을 마주했다. 너무나도 심한 반말 폭격에 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쁜지 표현해야 하는데, 싸우지 않으면서 적나라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몇 초 고민하다가 말이 쏟아져 나왔다. 민원인이 찾아온 목적을 다 해결해주고 한마디 건넸다.


구단씨 : 어머님, 혹시 저를 아시나요?

민원인 : 그럼, 알지~

구단씨 : 어머, 정말요? 저를 어떻게 아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민원인 : . 전에도 여기서 본 적 있어~

구단씨 : 아니요. 그런 거 말고요. 혹시 원래 저를 알던 분이신가 해서요. (진짜 내 기억에 없는데?)

민원인 : 아니, 그건 아니고. 여기서 처음 봤는데?

구단씨 : , 그러세요. 저는 또... 처음 오시자마자 너무 편안하게 반말을 막 하셔서, 제가 아는 분인데 못 알아뵌 줄 알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려고 여쭤봤어요.

민원인 : (정말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죄송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을까? 사과하는 걸 보니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아마 뒤돌아서서 육두문자를 날렸을지도 모르겠다. 저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음 사람을 부르며 그 민원인에게서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으니까. 옆자리 동료 역시 나와 비슷하게 정신이 피폐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한 달 반가량 겪은 정신적인 피폐함은 그에게 절대 서비스직은 못 할 것 같다는 교훈을 주었다지. 내가 그 민원인에게 하는 말을 듣고 옆자리 동료가 잠깐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더라만. 글쎄, 반년 넘게 벼르고 벼르다 꺼낸 말이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모르겠지만, 그 민원인이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처음 본 사이에 전혀 친하지도 않고, 많은 관공서나 은행 등등 이용하면서 만나는 직원에게, 자기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말부터 시작하는 무례한 태도가 바로 본인의 얼굴이라는 것을. 자기 자식이 어디에선가 자기같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누구나 늙는다. 언제까지 젊은 나이에 머물 수 없다는 게 인간의 몸이니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이렇게 배우면서, 혹시라도 다 알지 못하는 것을 계속 배워가는 게 나이 듦의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기 살아왔던 라떼만 계속 고집하지 말고, 나이 든 사람의 특권같은 것만 찾지 말고, 요즘 세상의 모든 것을 흡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 다른 생각도 들어보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쌓는 것. 말하는 것처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겪는 감정의 고통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건 안다. 이렇게 해야지 하는 다짐보다 이렇게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는, 장점으로만 채울 수 없다면 단점을 지우면서 살아가는, 그것도 잘살아가는 잘 늙어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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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8-17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인류애가 사라지게 하는 진상들이 많군요ㅠㅠ 저도 일하면서 반말 제법 듣는데 제 동생은 정말 심한가 보더라구요. 약국에서 일하는데 진짜 자기는 노인포비아라고, 너무 공포스럽다가도 너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하더라구요. 배려를 권리로 여기고 나이를 훈장처럼 생각하고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구단씨 2022-08-18 00:54   좋아요 3 | URL
방송으로 비유하자면, 정말 비방용 진상들이 어마무시합니다.
겪을만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진상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말하기 조심스러웠는데, 저 정말 노인포비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ㅠㅠ
동시에 배우게 됩니다. 사람이 존중받으려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요...

햇살과함께 2022-08-18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힘드시겠어요..
제 친구도 공무원인데 민원실 발령 받으면 정말 괴로워하더라고요.
전화 받자마자 욕 하는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나이 들어가면서 의식적으로 반말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되요.
친근감 표시(언제 봤다고??)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구단씨 2022-08-18 09:53   좋아요 1 | URL
저는 공무원은 아닙니다만, 정말이지 어느 관공서든 일반 회사 민원실이든 괴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알라딘 고객센터 통화도 조심히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

오후즈음 2022-08-18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비슷한 일을 해 본적이 있어요. 마스크 없는 그때 집으로 오면서 수없이 혼자 속으로 욕했던때가 있었어요. 특히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 너무 괴롭더라고요, 저도 늘 반성합니다. 난 저렇게 늙지말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님 내일도 화이팅 입니다

구단씨 2022-08-25 21:59   좋아요 0 | URL
고된 한주였어요. 월요일부터 사건이 터졌고요.
결국 사건이 폭발하고야 말았습니다. 다른 파트에서 다른 민원 건으로요... ㅠㅠ
결론은 뭐, 저희가 참고 해야 한다는 지침 같은 조언 같은 뭐 그런 공지가 있었더랬죠...
화가 난다고 다짜고짜 반말부터 쏘아대는 인간들 보면, 누가 잘못 했는지가 아니라 그냥 저런 인간이 되지 말아야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