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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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흠뻑 빠져들고야 마는 상황이 있다. 서맨사가 사형수인 데니스 댄슨을 본 순간이 그랬다.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사이, 여러 매체와 데니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단체의 다큐멘터리로 접한 게 전부이지만 그녀는 데니스에게 빠지고 말았다. 감옥에 있는 데니스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는다. 그렇게 화면 속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다.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던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런 게 가능한 것이 또 우리 사는 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니, 어쩌겠나. 인정하는 수밖에. 뭔가 투명하지 않은 관계에 빠지고, 두 사람의 행보가 불안해 보이지만, 어쨌거나 응원하는 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녀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서맨사는 영국에서 교사로 일했다. 사회적인 관계가 원활하지만은 않았던 그녀였다. 게다가 애인인 마크가 그녀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녀는 마크와의 관계에서도 완전한 정리가 되지 못했다. 여전히 그에게 신경을 쓰고, 혹시나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이미 끝난 관계, 그것도 가장 위험하고 안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였으니 서맨사가 기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녀에게는 데니스가 있으니까. 비록 감옥의 투명한 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사이지만, 그녀의 사랑이었고 데니스의 무죄를 믿었고, 곧 풀려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데니스가 정말 무죄일까? 그가 외치는 것처럼 그는 누군가의 조작으로 연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쓴 걸까? 데니스의 죄명은 살인이다. 그것도 어린 여자아이들을 죽였다. 하지만 그가 무죄를 외칠수록 그의 무죄를 믿는 여성들이 늘어만 갔다. 그의 외모, 그의 순진한 표정이 하는 말을 믿는 것일까? 하지만 그가 정말 무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애쓰며 다큐멘터리 제작에 열을 올리는 캐리의 역할이 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게 진실일 뿐.

 

사랑에 빠지는 일. 서맨사가 데니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의아했다. 누군가의 사랑을 저런 방식으로 가능해지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뭐랄까, 인간의 마음을 흔들고 끌어당기는 게 꼭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고 설레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그 사람의 팬이라고 말하지만, 마음은 어떤 우상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작동할 때. 마치 그 사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착각하는, 나의 애인이라고 믿어버리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일들이 만드는 위험. 서맨사가 데니스와 하는 게 곧 터질 위험의 증조 같았지만, 그래도 무슨 일이 있을까. 데니스 역시 서맨사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그녀가 믿어주는 그의 무죄에 힘을 얻게 되었다. 데니스의 생각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맨사의 마음은 알 것 같다. 곧 데니스는 풀려날 것이고, 옥중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이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일만 남았다는 것만 믿으면 된다.

 

읽으면서 점점 궁금증이 커져갔다. 데니스는 정말 그 많은 살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인지, 서맨사를 사랑하는 것인지,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하는 것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상상해보지만,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을 앞에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독자의 그런 상상에 서맨사가 느끼는 불안함은 날개를 단 것처럼 커졌다. 데니스의 무죄를 같이 외쳤던 서맨사. 그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했던 선택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믿음 앞에 왜 자꾸 불안함이 끼어드는지 알 수 없지만, 그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불안은 커진다. 달콤하기만 기대했던 신혼생활이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더 미궁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 다가가면서 더 파헤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을 다 표현하지 않는 남자와 그의 사랑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여자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기대되면서, 이들이 다 말하지 않고 감추려고 애썼던 것들을 듣는 재미가 상당하다.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으며 사랑을 주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사랑이 무엇보다 잔인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설의 도입부에서는 이렇게 사랑이 시작되는 게 가능한 일이었는지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면, 중반부에서는 그들이 보는 게 전부 진실일까 싶은 호기심과 의심이 생기더라. 후반부에 다다르니 누군가는 밝혀낼 진실에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싶은 기대가 피어올랐다. 마지막에 서맨사가 선택한 사랑의 방식은, 어쩌면 서로가 가장 안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다. 서맨사가 처음 데니스를 사랑한다고 여겼을 때, 데니스가 처음 서맨사의 편지를 받고 매력을 느꼈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들에게는 사랑일 테니 말이다. 사랑하지만 서로가 같은 모습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안전한 사랑이 된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일들이 넘쳐나니까 이들의 모습이 이상할 것도 없으리라.

 

이거 아니면 저거. 둘 중 하나의 결말만 생각하다가 의외의 결말을 맞이하고 보니 이 소설이 색다른 맛이 난다. 인간에게는 무수히 많은 모습이 있고, 그 모습이 내재한 본성 역시 한 가지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보이는 많은 생각과 행동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여겼던 욕망일지라도, 그 욕망이 변이하고 색을 달리한다면 더는 순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욕망이 일으키는 광기는 그 누구도 쉽게 잠재울 수 없다. 그저 인간이기에 드러내는 본성이라는 것밖에는...

 

인간의 심리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사랑하니까 가능한 행동들,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며 동조하는 범죄들, 불안하고 의심되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들, 진실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자꾸만 밀어내고 싶은 회피.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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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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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이기에 항상 전쟁을 염려하면서도,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나 다른 대륙의 국가들까지 이 전쟁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두지 않을 거로 믿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쟁 상황의 모습을 잘 생각하지도 않았다. 금을 사두어야 한다, 현금은 휴지조각이 된다, 생필품을 쌓아두어야 한다는 등등. 이런 일이 내 앞에 펼쳐질 거로 생각한 사람 얼마나 될까? 이번 전 세계를 공포에 떨며 뒤흔든 ‘코로나 19’는 마치 전쟁 상황을 눈앞에서 보게 해준 거 같다. 세상에나, 마스크를 사려고 몇 시간을 줄 서는 경험 해본 적 있던가? 자주 사용하던 소독용 에탄올이 거의 두 배의 값으로 오르고 그마저도 품절이라는 답변을 듣고 황당했던 적은?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고,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이끈 이 바이러스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017년 세계보건기구가 슈퍼버그 12종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매년 70만 명이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사망자 숫자는 더 늘어나겠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슈퍼버그의 등장은 다양하고 그 속도도 빨라져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 슈퍼버그가 무엇이더냐. 항생제 내성이 있는 신종 박테리아로, 20세기 의학의 기적을 일으킨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 이후로 항생제 개발과 무분별한 사용의 결과로 만들어진, 박테리아가 진화한 결과이다. 백신이 존재하지 않고 변이된 슈퍼버그.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공포를 일으키는 이것에 인류의 목숨은 위태롭다. 저자와 그의 동료들은 이 슈퍼버그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하나의 항생제를 개발하면 인류의 건강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끝날 것 같은데, 이놈의 바이러스는 신종의 출현과 변이를 거듭하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의학의 연구와 노력 역시 멈출 수 없는 장거리 레이스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임상시험을 통해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인류의 안위를 도모하는데, 이 책은 그가 진행하는 임상시험의 기록이면서 그 지난한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저자는 신약 ‘달바반신’이 미국 FDA(식품의약국) 임상시험 허가를 받고 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에게 투약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들려준다. 어떤 사람들이 이 임상시험에 참여할까? 대상자는 복합성 피부 연조직 감염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고, 저자는 그들을 참여시키면서 각 개인의 인생사까지 함께 듣는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도한다. 그들 모두가 이 임상시험을 무사히 통과하여 살아남기를, 못된 병을 이겨내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를. 저자는 항생제의 개발 역사도 같이 풀어내고 있는데, 이는 인류가 진보하면서 함께 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페니실린에서부터 항진균제인 니스타틴, 항생제인 반코마이신 같은 약들. 이렇게 항생제가 꾸준히 개발되어야만 했던 이유가 인류의 진보와 그 맥락을 함께한다는 게 무섭다. 인류가 발전하고 진화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는 환경이 되었을 테고, 그에 따라 새롭고 변화하는 바이러스의 등장이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슈퍼버그의 존재는 우리 인류가 영원히 같이해야 할 존재인가?

 

사실 슈퍼버그는 1960년대 이전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단다. 그 후로도 산발적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그게 1990년대 이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뭘까. 누군가는 그 이유를 상업적 농업의 확산에 있다고 말한다. 흔히 보는, 식용과 판매를 위한 동물의 사육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동물의 생장을 인간의 의도대로 조절하려다 보니 항생제의 필요성은 커졌고, 그에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의 약효와 싸우면서 빠르게 변이했다는 이야기. 그렇게 지구 구석구석에 퍼진 박테리아들이 지금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라고.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슈퍼버그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슈퍼버그로 인한 사망자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고. 처음, 병상에 누워있는 병사들이 파상풍이나 패혈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막고자 발견한 항생제가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인 건 맞다. 하지만 인류의 발전 속도에 따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는 걸 이 책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인간 중심으로, 인류의 발전과 변화와 편리함은 분명 좋은 것이라고 여겼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중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도 없다. 인류가 항생제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뤘지만, 지금 우리가 감염병에 취약한 상태에 놓인 것 역시 사실이니까 말이다. ‘글로벌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올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끊임없이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가 개발하고 사용하는 항생제를 무력화시키는 슈퍼버그. 아무리 경고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위험해도 필요한 순간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슈퍼버그의 등장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우리는 그 속도에 뒤지지 않게 계속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 속도가 같지 않다. 인류가 더 빠르지도 못하다. 새로운 항생제 개발의 속도보다 내성이 생긴 병원균의 등장이 더 빠를 것이기에 말이다. 그 경제성 때문에 제약회사가 항생제 개발에 망설이기도 한다는데,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숙제를 같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서로가 머리 맞대고 꾸준히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는 목적은 같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 19’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평범하게 누리던 일상은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고, 친한 사람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두려움에 떨게 한다. 심지어 가족 모임도 안 한다고 하는 게 현실이다. 언제까지 이 위기가 계속될까? 아마 지금 사태에 관해 종식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 의료진과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확진과 사망자가 줄어들 뿐, 이제 ‘코로나 19’는 감기처럼 우리 옆에서 언제 어디서든 발병할 수 있는 질병이 될 것 같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노력은 멈추지 않는다. 저자가 시도하는 또 다른 연구는 항생제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떤 방법이든 이 상황을 종식할 수만 있다면, 인류를 위협하는 슈퍼버그의 출현을 막을 수만 있다면 다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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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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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조디는 남편의 바람을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다고 표시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남편 토드 역시 아내가 자기의 바람을 알고 있다는 걸 인지한다. 그렇다고 바람을 멈추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어떤 생각 때문인지 현재의 상태를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냥 지금 이대로 흘러가게 놔둘 뿐이다. 조디가 바라는 건 현재의 평온한 삶이고, 토드 역시 조디의 평온을 망치지만 않으면 이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으니 나쁠 게 없다. 하지만 평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토드의 바람이 조디의 평온을 깨트리는 순간이 왔다. 조디가 간절히 바라던 안정적인 삶이 더는 계속될 수 없게 되었다. 무난히 흘러가기만 한다면, 조용히 이 삶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더는 바랄 게 없던 조디는 이제 살아가는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설은 아내 조디와 남편 토드의 시선을 교차로 보여준다. 같은 상황 다른 느낌. 우리가 언제나 경계하고 들어야 할 상대의 마음이 아닐까 싶은 진심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아내인 조디가 바라보는 가정의 모습과 남편인 토드가 유지하는 가정 안에서 개인의 삶이 하나인 듯 아닌 듯 애매하다. 이렇게 유지하는 게 부부의 삶일까? 우리가 아는 가족, 가정이란 게 이런 모습이 맞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 조디와 토드의 마음이 하나씩 비출 때마다 의아하면서도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누구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각자가 바라는 최선의 선택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정상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부르는 부부의 모습이 꼭 한 가지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바라보면 조디와 토드의 관계가 틀린 것은 아니다. 이대로 유지만 된다면 굳이 나쁜 결말도 아닌 채로, 그들의 진심은 누구나 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부부의 모습으로 그들의 관계를 끝까지 보여줄 수 있었으리라.

 

조디는 왜 토드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고 화내지도 않고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을까? 이 부분이 정말 궁금했다. 일반적으로 바라보는 누군가의 모습, 특히 나를 기만하고 부부의 약속을 배신하는 행위를 한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조디가 토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약간 달랐나 보다.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자 심리상담사인 조디는 토드를 좀 더 전문가의 시선으로 봐왔던 듯하다. 토드는 현재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있는 그대로, 혹은 심각한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축소하여 생각하곤 했다. 어머니와 자기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불편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특히 자기 어머니에 관해 애착이 심했다. 그래서일까, 보이는 모든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가진다. 실제 자기의 모습과 상태보다 과장해서 스스로 판단하는 토드의 어리석음과 그런 토드를 바라보는 조디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 특히 토드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서 완벽하다고 생각할 텐데, 정작 거짓말을 하는 당사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웃기고 황당한 상황 같은 거 말이다. 그에 반해 조디의 침묵 역시 궁금했다. 조디는 단지 평온한 일상 한 가지 때문에 토드의 행동을 모른 척하면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일까? 어떤 마음이어야 그런 대응이 가능할까? 이상하게도, 읽으면서 조디의 태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토드의 배신으로 변한 조디가 오히려 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다. 한 여자의 심경 변화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삶이 흐르기를 바란다. 침묵을 깨기로 한 조디의 선택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아내가 칼을 들고 상대를 겨누기 시작한다. 왜? 이 끔찍한 배신은 더는 참을 수 없는 게 인간이니까. 그동안 참아주고 침묵했던 조디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한 토드의 행동이 더는 그 참을성과 침묵을 유지할 필요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때부터 조디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달려든다. 어떻게? 역시 그녀만의 방식으로, 그동안 해왔던 대로, 조용하고 간결하게, 의외의 타이밍에 완벽한 결과를 얻기까지 하는 운까지 따라주는 행운의 여신으로 변신한다.

 

분노의 방식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궁금증으로 끝까지 읽게 되는 소설이다. 물론 조용히 참는 아내와 그런 아내의 진실을 알면서도 무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진행하는 남편의 배신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싶은 호기심에서, 결국 터져버릴 게 터지고 나니 이제는 이 싸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하는 시선으로 지켜보게 된다. 인과응보처럼 배신의 종말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20년을 한집에서 따로 인생을 살아왔던 두 사람의 모습으로 계속 가게 될 것인가 하는 결말을 보고 싶어서. 그리고 여전히 선택에 관한 고민은 계속된다. 나는 조디처럼 평온을 위해 배우자의 배신을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배신을 알게 된 순간 바로 드러내서 해결을 보고 싶을까. 어쨌든, 적어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토드를 응원한 적도, 토드의 바람을 이해한 적도 없다. 서로 합의하고 유지하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깨트린 그를, 그런데도 일말의 미안함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맞이하게 될 결말만이 궁금했을 뿐이다.

 

읽는 내내 조디의 심리를 따라가게 되는데,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맞이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감정 변화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찾고 싶은데 어렵고, 결국 더는 내가 잃을 게 없다고 여기게 되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게 꼭 인생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만 문제가 끝나는 운명이니까. 어렵게 침묵을 깨고 부딪치는 일상의 벽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 궁금하다. 잔잔하게 시작되었다가, 커다란 해일을 일으키는 이야기였다가, 밀실 추리소설처럼 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긴장된 결말로 보이는 다양성까지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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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악센트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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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본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봐서는 보이지 않는, 숨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멋진 것이나 아름다운 것은 그렇게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눈을 돌리고 싶은 거나 아름답지 않은 수많은 것 안에도 어딘가에 반짝이는 빛이 깃들어 있다. 나는 그런 믿음으로,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 결코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128~129페이지)

 

매일 보던, 지겨울 정도로 익숙한 장면들에서 찾아오는 어떤 느낌이 있다. 때로 그런 느낌들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생각의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오늘을 바라보는 작은 지침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일상을 채우는,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는 순간들은 예고 없이 무심한 듯 찾아온다는 거다. 계획하지 않았던 순간에, 무심코 바라보던 작은 꽃잎 하나에서 일상의 생각들이 피어나는 일들. 낯설지 않은 경험이지 않은가? 저자가 조그맣게 얘기하듯 들려주는 일상의 단편들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어제의 경험과 오늘의 시선이 만들어낸, 인생의 작은 지침들이 쌓이는 순간을 만든다.

 

처음 만난 작가다. 그렇다고 낯설거나 어색하지도 않다. 오히려 친근한 말투에, 조심스럽게 자기 의견을 건네듯 말하는 문장들이 여자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수다를 떠는 기분에 가깝다. (실제로 저자가 여성인 줄 알았다가 남성인 것을 확인하고 ‘깜놀’했다는 건 안 비밀) 수다를 떤다고 하면 시간 낭비하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데, 오히려 이 짧은 글들 속에서 인생의 작은 지침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는 말을 좋아한다.

무척 근사한 말이다. 직접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우니 한 번 에두른다고 할까. 조금 물러나서 “혹시 만날 수 있으면 꼭 만나자.”라는 마음을 담아 쓰는 말이다.

(중략)

그런데 이 말의 본질은 “당신이 좋으니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어떤가? 그런 식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연애 감정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좋아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92~93페이지)

 

그 순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좋게 생각하면 좋은 기억으로, 나쁘게 생각하면 나쁜 기억으로. 하지만 좋은 느낌이 계속 전달되기를 바라는 건 나뿐이 아닐 터. 저자의 저 문장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묻는다.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투자해야 한다. 시간, 마음, 비용 그 이상의 여러 가지. 때로는 물리적인 이유로 만남을 거절해야 하기도 하고, 마음과는 다르게 만남을 성사해야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은근 따라오는 스트레스로 그 대상을 떠올리면 괜한 미움까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고 보듬어 안는다. 내가 좋으니 만나고 싶다는 의미로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네. 내가 싫으면 아무리 일 때문에 만난다고 해도 얼굴에서 표가 날 텐데. 누군가가 나를 만나고자 한다면, 귀찮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보다 만나자는 그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저자의 말을 들을수록 생기는 의문이 있다. 왜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일쑤일까. 뻔한 답일 것 같지만,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부정의 시선으로 보면 한없이 부정적이다. 저자처럼 긍정의 시선으로 보니 세상 모든 것이 차례대로 진행되는 어떤 일처럼 차근차근 흐르는 느낌이다. 작가의 사인본에, 직접 인쇄된 서명의 편지지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어떤 값어치의 계산보다 그 선물에 담긴 마음이 먼저 보였기에 그 기쁨을 아는 것이다. 이 선물을 주기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편지지가 되었으니,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 정도였다는 걸 알게 된 감동 같은 거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감동을 발견한다. 발견하는 것은 감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떤 시선들을 알아챌 때마다 감동한다. 어떻게 해야 이런 마음으로 일상을 지낼 수 있지? 솔직히 말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상황이나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 나 같은 사람은 저자의 한없는 긍정과 감동을 쉽게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긍정의 에너지를 받아 나도 조금은 착하고 좋은 생각을 먼저 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품어본다. 긍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건만, 평소의 습관으로 보면 쉽게 바뀌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를 하게 된다. 그만큼 저자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기운’이 있어서다.

 

이 책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단조로운 일상에 순간순간 스미는 시선이 어떻게 하루를 변화시키고 삶 전체를 달라지게 할지 궁금해서다. 저자의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하기는 어렵겠지만, 저자가 보여준 그의 삶의 바탕이 어떻게 일상을 흐르게 하는지 그대로 보여서 무시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 거는 긍정의 주문이 그동안 내 안에 자리했던 부정의 힘을 밀어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분명하게 삶의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내 안으로 들이기 싫었던 투정을, 이제는 좀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 반성에 의미를 두고 싶은 글이다. 저자가 말하는 그 경험에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믿는다. 자기가 쌓은 경험만큼 인생을 만드는 건 없다. 이미 알고 있었고, 누군가가 보여준 검증의 순간도 봤다. 그러니 저자의 긍정에너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안다. 저자를 통해 일상이 무기력하지 않게, 매 순간 힘을 내게 하는 방법을 더 잘 듣고 싶어진다.

 

무슨 일이든 저마다 ‘알맞게 무르익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만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 순간에 이르러야만 만날 수 있는 뛰어난 품질을 바쁘다는 이유로 멀리하면 안 된다. 결코 안 된다. (중략) ‘알맞게 무르익은 순간’이란 ‘즐거운 순간’이다. 좋은 것보다는 즐거운 것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고 나는 믿는다. (156페이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2년이나 살았다면 당신만 아는 로마의 진면목이나 에피소드가 넘쳐날 텐데 왜 그런 것들을 쓰지 않느냐고. 당신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마음을 열지 않는 한 무엇을 써도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다고.

글쓰기는 괴로운 일이다. 괴로워도 쓰고 싶은 것이 글이다. (38페이지)

 

여행지에서 단골 식당을 만들고, 신발 장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A 씨를 만나는, 일주일을 준비하려고 일요일마다 셔츠를 다리는 일들. 누군가는 듣고 웃을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한없이 진지하고 중요한 일상의 단편들이다. 그런 조각들이 모여 채우는 하루가 인생이 되어간다. 그런 소박함이 우리 삶 곳곳에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게 행복이 아니면 뭐가 행복이란 말인가. 저자는 자기의 그 소박한 조각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다양함을 증명한 셈이다. 읽으면서 저절로 느낀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그 행복의 기회에서 멀어지지 말라는 메시지에, 행복의 크기보다 행복 그 자체에 의미를 둔 문장들에 조용히 긍정의 끄덕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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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미 2020-03-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저도 사소한 일상의 단상들이라고 여기며 읽기 시작했는데 ... 책을 덮고나니 마치 좋은 스승을 만난 기분이었어요.ㅎ 회사 다닐때 이런 상사가 있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싶고...ㅎㅎ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게 이런 일이구나 싶었답니다. 가볍게 시작한 마음과는 다르게 깊게 남은 책이 되었어요.^^

구단씨 2020-03-18 12:22   좋아요 0 | URL
무슨 문장들이... 삶의 문장들 같은 느낌이었네요. ^^
작가가 남자라는 데서 한번 놀랐는데, 어떻게 보면 여학생의 일기 같은 낙서를 훔쳐본 것도 같고... ㅎㅎ
다정하게 들려오는 그 말들이 좋았어요.

노란장미 2020-03-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ㅎㅎㅎㅎㅎ 여자인줄 알고 한참 읽다가 어느순간 뉘앙스가 이상한 부분이 나와서 검색해보니 남자분이시더라구요. 진짜 엄청 놀랐어요.ㅎㅎㅎㅎ

구단씨 2020-03-18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게 글의 분위기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었나 봐요.
이런 경우 몇 번 있기도 했어요. (특히 에세이 만날 때요. ^^)
 
잠자는 미녀들 1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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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염병이 여성에게만 접근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마음이 들까? 왠지 여자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리고 이유가 궁금해지겠지. 왜? 왜 어떤 병이 찾아올 때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일까? 그 원인을 찾고 싶기도 할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어하고 싶어지겠지.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 오언 킹이 만들어낸 한 편의 소설은, 인간이 맞이할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의 두려움과 인간의 기질을 보여줌과 동시에 잔인한 남성들에게 맞선 여성들의 방어가 얼마나 대단해지는지 보여준다.

 

‘오로라 병’이 전 세계를 뒤흔든다. 여성이 잠이 들면, 그 여성은 고치 같은 물질에 뒤덮여 다시 깨어나지 못한다. 이 병이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에 인접한 소도시 둘링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오로라 병으로 고요했던 마을의 일상은 한 번에 흐트러진다. 모두가 긴장한다. 원인도 알 수 없어서 대책이 없다. 사랑하는 여성들이 잠들고, 잠든 후 둘러싸인 물질을 제거하려고 할 때마다 여성들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기까지 한다. 처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병했다고 해서 ‘오스트레일리아 수면병’으로 불리다가,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 오로라의 이름을 따서 ‘오로라 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성이 잠이 들면 거미줄처럼 얽힌 것이 여성의 몸을 덮어버린다. 이런 현상이 전 세계에서 보이고, 번지는 속도에 비하면 치료법이나 대응 방법은 없이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병보다 빠르게 번지는데, 현재로서 오로라 병에 걸리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여성이 잠들지 않는 것. 잠들지 않으면 이상한 물질이 여성을 감싸지도 않고, 여성이 폭력적으로 변해 공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언제까지 잠들지 않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하루 이틀, 짧은 시간의 단편적인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해결책은 아니다. 인간은 활동하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에 익숙해진 존재니까.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갑자기 들이닥친 병으로 일상이 마비됐다.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빈번해지고, 이 이상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여들어 병원은 붐빈다. 아직 발병하지 않거나 잠들지 않아서 병을 겪지 않은 여성들은 이 병에 대비하고자 몸부림친다. 잠들지 않기 위한 약이나 드링크를 사려고 약국을 습격하기도 하는 모습들. 오로라 병에 걸린 여성들을 감싼 물질이 병을 전염시킨다는 누군가의 말에 여성들을 불태워 죽이기도 한다.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이 장면이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를 위협하는 ‘코로나19’ 상황과 닮았다. 치료제를 개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현재 닥친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대비해야 하는 사람들. 평소에는 흔하게 있어도 필요성을 잘 몰랐던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서 있고, 비슷한 증상에 혹시 내가 감염된 게 아닐까 싶어 선별진료소에 달려가기도 하는 사람들. 온갖 가짜 뉴스에 혼란은 가중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에 또 다른 것들이 공격하는 듯하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운데, 가짜 정보로 그 답을 찾아가는 길은 더 어려워졌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위기에서, 인간을 공포에 밀어 넣는 그 어떤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의 상황에 맞춰 일어난 일처럼, 소설은 그 생생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를 미리 알아챈 것도 아닐 텐데, 이 소설을 구상하면서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의 눈이라도 가졌던 것일까? 상상력으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이미 상상으로 멈추지 않을 이야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1편은 그 상황의 시작을 보여주고, 집단 발병의 시작과 그 엄청난 공포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기도 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게 한다. 엄청난 몰입을 주는 전개와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 그 갈등 안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욕망은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게 한다. 남자와 여자의 성대결이라고 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대조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2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이 병이 다양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날 것 같다. 무엇보다 인간 전체가 아닌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감염병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고 차별 같지만, 끝까지 지켜보면서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가까워지길 바란다. 어쨌든 현재의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위기와 닮은 모습에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스티븐 킹과 그의 아들 오언 킹의 합작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받기 쉽겠지만, 이야기의 완성도 역시 뒤지지 않을 듯해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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