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메이드
프리다 맥파든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 메이드2가 출간되었다고 하기에, 몇 년 전 읽을 기회를 놓친 이 책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펼쳐 들었다. 세상에나, 이런 몰입감의 책 오랜만에 읽어본다.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나는 있는 그대로, 읽은 문장 그대로의 내용만 생각했다. 이런 반전은 생각 못 하고 말이다. , 추리소설 제대로 읽은 지 오래되어서 그랬나 보다. 몰랐어. 이런 결말을 볼 줄은...


밀리는 전과를 숨긴 채 부잣집 가정부로 입주한다. 안주인 니나는 밀리가 자기 집에 어울리는 최적의 가정부라는 칭찬도 아끼지 않은 채로 그녀를 고용하는데, 막상 니나의 집에 입성한 밀리는 놀랄 뿐이었다. 이런 쓰레기장이 있을 수가. 면접 때 봤던 이 집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놀랄 시간도 없었다. 이 일을 못 하게 되면 더는 갈 곳도 없었으므로, 니나의 비위를 맞추며, 말도 안 되는 상황도 견디며 이 집에 정착한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밀리의 다락방이었다. 그녀가 머물 곳은 이 집의 다락방인데, 하나 있는 창문은 열리지 않았고 문도 밖에서만 잠글 수 있었다. 니나는 마치 잘못 지어진 다락방처럼 설명했지만, 다락방의 열쇠를 주면서 밀리를 안심시켰다. 거처가 없어서 차 안에서 살았던 밀리에게 몸을 뉠 수 있는 곳이 생기자 이 방의 의심스러운 부분은 금방 잊힌다.


니나의 남편 앤드루는 최상의 조건을 가진 남자였다. 잘생기고 자상하고, 돈도 많다. 가족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그런 남자가 왜 니나 같은 여자와 사는 거지? 몸집은 계속 부풀어 오르고, 머리카락은 염색도 안 하고 엉망이고, 말도 안 되는 행동으로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자기 멋대로인 여자와 함께 사는 앤드루를, 밀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신병을 앓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듯한 니나의 행동은 이 집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앤드루는 니나를 이해하고 감싸주기만 했다. 밀리는 점점 니나의 남편 앤드루에게 마음을 두지만,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는 생각에 가슴에 품기만 한다. 가끔 이 집의 외국인 정원사 엔조가 밀리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밀리가 그 경고를 알아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의 다락방 문이, 열리지 않았다.


모든 게 발각된 줄 알았다. 이 집 사람들이 밀리의 과거를 알게 되고, 그녀의 거짓말이 괘씸해서 그녀를 다락방에 가둔 거로 여겼다. 아니었다. 다락방 문 너머의 사람은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그녀를 가두었고, 그동안 해왔던 대로,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조종하려고 했다. 기가 막히고, 여기서 또 한 번의 교훈을 얻는다. 겉모습 멀쩡하고, 누가 봐도 최상의 조건을 누리는 사람들이, 그 여유로움과 완벽함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살아가는 게, 보이는 모든 게 다 진실은 아니라고.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 뒤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사이코패스의 본능을 숨기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지만, 인간은 누구나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 했다. 보기와는 다른 모습을 갖고 사는 거, 어떤 계기나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그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며 살아갈 일은 없을 거라는 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가장 좋은 모습만 보이며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면 그만이고, 서로의 목적에 맞는 시간만 함께하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누구도 이 집의 비밀을 모를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인지 내가 제대로 파악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다음이었다. 밀리의 다락방 문이 열리지 않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떻게 그 문을 열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이 집 안의 또 다른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되었을 때는 밀리의 최후를 떠올리기까지 했다. 아무도 없었다. 사이코패스 가해자와 다정한 연인을 생각했던 피해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소설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사이코패스가 사이코패스를 낳는, 세상에서 이상한 인간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장하게 되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한숨과 함께 그런 악인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했다. 그렇지. 선하고 열심히 사는 인간들이 뭘 잘못했다고 계속 피해자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잘 살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왔는데 반납 문자가 왔다. 미뤄두다가 반납 마감일 전날에 읽게 되었는데, 몇 시간이 그냥 휘리릭 지나갔다. 안 읽고 반납했으면 후회했을 뻔했다. 이 소설이 왜 후속편이 나와야 했는지 충분히 이해되더라. 올해 말 영화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더 궁금해진다. 2권도 도서관 대출 완료!


심장이 어찌나 쿵쾅거리던지 현기증이 났다. 그제야 니나가 왜 나를 이 집에 강력히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니나는 진짜 내 모습을 알고 있다. 어쩌면 나보다 날 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인데요.” 리사가 칼을 제자리에 꽂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의 파랗고 커다란 눈동자가 불안해 보였다. “밀리, 도와줘요.” (386페이지)




#하우스메이드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하우스메이드2

##책추천 #소설 #추리소설 #사이코패스 #스릴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5-04-29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어엇 하우스메이드2 사러 갑니다. 슝 =3=3=3=3

구단씨 2025-05-06 23:34   좋아요 0 | URL
오오오~ 다락방 님 마음에 쏘옥~ 들어야 할 텐데요.
저는 아직 2권을 펼치지 못했어요. 마음은 벌써 마지막 장인데, 어서 읽어봐야겠어요!!
 
드라이브
정해연 지음 / &(앤드)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이었다. 서둘러 아침 출근길, 등굣길을 준비했는데, 직장에서 한창 일하던 김혜정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너졌다. 딸이 등굣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말에 그럴 리 없다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닐 거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딸의 시신을 확인하고 혼절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죽은 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제 막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오는 신체에 웃음이 났던 딸의 몸이었는데, 딸의 가슴은 폭삭 내려앉은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뒤로 하고 현실의 문제는 해결해야 했다. 딸의 장례식을 치르고 멀리 보내주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이성과는 다르게, 그녀는 점점 딸의 죽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노균탁은 76세의 노인이다.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냈다.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핸들을 돌렸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가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세상이 달라졌다. 그의 차에 10대 여학생이 치여 사망했다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70대 노인인 운전하는 차에 10대 여학생이 사망한 사고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피해자의 장례식장에서 무릎까지 꿇은 그는 그 자리에서마저 거부당한다. 딸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만나지만, 피해자를 위한 보상 방안을 의논하는 방식에서조차 그의 의견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줄거리를 알고 읽었음에도, 무거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뉴스에서도 자주 나오는 사건이자, 앞으로 많은 이가 초고령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조심하며 운전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고, 누군가는 가해자,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처리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수습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남은 사람들은 마음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 사람을 보내는 일을 정신없이 치러낸다.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다는 걸 마주한다. 이 소설에서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 사망 후의 처리 문제가 있을 거고, 혹시나 질병으로 사망했다면 또 다른 문제를 처리해야만 한다.


죽음을 직면한 그 순간이 가장 슬플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것 같았는데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일들에 또 한 번 고통의 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주변의 상황은 슬픔에 빠져있을 수조차 없게 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찾아와 사과한다. 서로의 변호사끼리도 원만한 합의를 하지 못하자 가해자는 법원에 공탁금을 걸어놓는다. 피해자는 그 공탁금을 받을 수 없다고 하지만, 상대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주는 것 말고는 어떤 처벌을 내릴 수도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김혜정의 딸이 70대 노인이 운전하는 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한숨만 푹푹 나왔다.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나도 모르게 선입견이 먼저 튀어나왔다. 노인이 운전하면 모두 사고가 난다? 아니다. 교통사고 발생을 알고 보면 고령 운전자의 사고보다 다른 운전자의 사고가 더 건수도 많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요인이다. 운전하면서 사고가 일어날 요인들을 먼저 확인하고 조심하며 단속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혹시라도 운전에 불안 요소가 늘어난다면 면허증 반납이라는 제도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 면허증 반납이 답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고령 운전자가 운전하면서 생길 불안 요소를 낮출 수 있다면 면허증 반납도 하나의 방법이긴 할 것 같다. 나부터도 택시를 타면서도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운전하시면 나도 모르게 안전띠를 더 단단히 매는 건 사실이다. 운전을 너무 불안하게 하셔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린 적도 있다. 소설 속 가해자 노균탁은 오토바이를 피하려고 운전대를 틀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다. 그가 밟은 건 브레이크가 아니라 액셀러레이터였다. 노균탁이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아야만 했던 나름의 사정은 있었지만, 이 사고 앞에서 그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야 할 태도와 마음이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시아버지는 70대 중반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오랫동안 버스를 운전했을 정도로 운전에 베테랑이었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시면서 승용차와 트럭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면서 운전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눈이 불편해지시고 농사를 정리하면서 집안의 모든 차도 처분했다. 시골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그런데도 본인이 운전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자 과감히 차를 정리하는 걸 보고, 위험 요소를 안고 불안하면서 운전하고 사는 것보다 몸이 조금 불편한 게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노화는 도로 위에서 위험 인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노인은 운전하면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니 개인의 선택으로 운전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강요가 아니니 순전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마냥 수월하지도 않으니, 차라리 스스로 운전하는 것을 계속하려는 마음도 들 테다. 오늘 운전대를 잡고서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으니 내일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듣고 있자니, 계속 생각하자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반복으로 이 문제를 고여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사회적 제도에 더 의지하게 된다. 면허증 반납으로 제공되는 금액의 변경이나, 노인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더 편한 시스템으로 변경되거나 하는 등의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시급하다는 생각만이 남는다. 나도 곧 노인이 될 테고, 지금처럼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아가게 될 텐데, 단순히 나이 들어서 운전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에서 빠져있을 수는 없다. 고령 운전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 만한 제도가 뭐가 있을지 계속 고민할 일이다.



#드라이브 #정해연 #고령운전 #사회적책임 #생명의가치 #죄의무게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내는 마음 마음산책 짧은 소설
서유미 지음 / 마음산책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분을 하나 들여놓는 건 어때?”

집이 좁은데도 앞쪽 베란다에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엄마 집에서 상비약으로 가져다 놓은 알로에는 돌봄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 채로 시들다가, 결국 다시 엄마 집으로 돌아갔다. 블라인드를 걷어놓으면 거실 앞쪽은 훤하다. 베란다에 쌓인 먼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쪽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쪽을 차지하는 답답함은 사라지는데, 이상하게 허전할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어서 개운한데, 또 아무것도 없어서 마음이 허해진다. 이런 걸 외로움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르겠다. 한숨처럼 이런 마음을 꺼내놓으니, 지인이 고양이를 한번 키워보라고 한다. 생명체를 돌보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하니, 이번에는 화분을 하나 들여다 놓으라고 권한다. 고양이보다는 그나마 덜 힘들게 돌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베란다 쪽을 보면서 휑해서 허전한 것보다는 뭔가 하나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지는 기분이 들지 않겠느냐면서. 글쎄. 게으른 사람도 누구나 잘 키울 수 있다는 알로에마저 목숨이 위태로워지게 하는 내가, 또 어떤 식물이라고 기를 수 있을까?


지나가야 하는데, 잊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193페이지, 보내는 마음)


서유미의 소설 보내는 마음의 많은 주인공에게 다가온 일들이 마치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서 무서웠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 일이라고 해야 할지. 어떤 식으로든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진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많은 일과 너무 닮아서 멍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다들 비슷하게 가슴의 상처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덜 힘들기도 한데, 왜 매번 새로운 수위의 힘듦이 찾아오는 건가 싶어서 여전히 어렵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일을 겪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떠오를 것 같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으로 옷을 사들이고, 그 옷들이 쌓이다 못해 무너지는 순간에야 비로소 내려놓는 마음은 무거우면서 슬펐다(무너지는 순간).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많은 것이 나를 떠나가도 이렇게 사들인 옷들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고 여겼을까? 그렇다면 다른 방식의 채워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니다. 이렇게 쉽게 찾아질 대책은 아닌 듯하다. 그걸 알았다면 옷장에 걸어놓은 옷이 무너질 정도로 채워 넣지는 않았을 테지.


우연히 찾은 쉴 공간에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돌아가는 것처럼(숲과 호수 사이) 마음 한번 활짝 열어놓고, 쏟아낼 것은 쏟아보고 비워진 곳에 채우고 싶은 것은 다시 채워서 일상을 버틸 힘을 주는 곳 하나쯤 만들어보는 거, 정말 필요하다.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나에게 박힌 상처를 보듬는 방법을 찾는 일이 바로 이런 거라고. 작은 화분 하나 집안에 들여놓으면 어떠냐고 묻는 지인의 말이 계속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뜻 드러내놓지 못하는 상처 입은 마음을 보듬어주는 무언가를 옆에 두고 보라고. 완전히 사라지는 상처가 아니더라도, 조금 옅어지는 상처의 흉터 정도로 머물지 않겠느냐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살아가는 일의 극히 일부분인 줄 알았는데, 사실 인간관계가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을 주관하는 것 같다. 한 사무실에서 내 밥벌이만 해도 되는데 옆자리 동료와 잘 지내야 하고, 부모와 형제, 친구 사이의 갈등 역시 인간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면서 사실 너무 신경 쓰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보다 더 넓은 관계의 사람들까지 나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언젠가는 끝이 있기 마련이라는 말도 너무 막연하게만 들려서 종종 버겁다.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면 버틸 힘이 남아 있기도 할 텐데, 이마저도 너무 어려워서 이 계절을 보내는 게 힘이 든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에 머릿속은 복잡해서 그런가 보다. 매번 잘 넘겨왔으니 여기까지 왔을 텐데, 매번 새롭게 시작하는 어려움으로 느껴지는 거 왜인지. 누군가 모든 것이 다 끝난 후로 나를 넘겨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이런 마음도 웃기기만 하다.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어. 이 시간을 잘 넘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도 괜찮기를 바랄 수밖에 없지.


어떤 여름의 주인공이 본인의 노력에도 풀지 못할 상황을 피해 더운 여름을 지내기 위한 곳으로 향할 때,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하나로 그 바람을 느껴야 하는 게 여전히 더워 보였는데, 낯선 곳에서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이상했다. 어쩌면, 이게 정상인 건가. 일상으로 돌아갈, 이 더위를 그대로 받아쳐 낼 수 있는 용기가 그녀 안에 담기는 것 같더라. 그래서였나. 이 소설집이 술술 읽히면서도 한 번씩 가슴에 콱 막히는 순간을 몇 번씩 넘겨야 했다. 왜 많은 것이 머물다가 떠나가고,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 입히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묻고 싶기도 했다. 원래 그런 거라고,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냐고 답이 없는 질문과 푸념을 이어가다가도, 그래도 한 번쯤 명확한 답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 답이 이해되든 안 되든 말이다. 연인과의 이별은 슬픈 거고, 사회의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건 다반사고, 누군가 돌보는 일은 고단하고, 이 많은 일 가운데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건 뽑아내기 어려운 상처일 테고. 우리 일상이 이렇다고 거울처럼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K가 떠나기 전까지 나는 옷장이 부족한 거라고, 저 옷들을 잘 걸어두고 아름다운 옷들을 새로 사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가고 내게는 그것이 아름다운 옷일 뿐이었다. 그것에 몰두하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K에게는 달라지고 싶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야 K를 붙잡을 수 있으니까. (33페이지, 무너지는 순간)


얘도 이러네, 나도 그래서 힘든데 하면서, 누군가의 마음 깊숙한 곳을 섬세하게 듣는 시간이었다. 사는 게 왜 이러냐 하면서 한숨 토해내고 싶을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로 남을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조용하게 쉴 곳을 찾아다니면서, 그런 곳에서 숨 한번 크게 쉬고 돌아올 수 있는, 전혀 이해 못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해되는 시간을 만들면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와 대화하는 일도 편안해지는.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무너지고 많은 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점점 더 자주 이별하는 일을 겪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라고, 무너지고 헤어지는 것 사이에서 마음을 쉬고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애정 어린 것을 놓치지 않게 하는 이야기에, 속 시원하게 꺼내놓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대신해 울기도 했다. 사실은, 이 포근하고 따스한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울고 싶은 마음을 터트릴 수 있게, 누가 옆구리 좀 찔러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평범하게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유난히 돌봄의 의미를 가진 상황들이 각 단편에 담긴 걸 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 과정을 걷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위로받으며 살아가고 있고, 그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이상할 게 없다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보내는마음 #서유미 #마음산책 #짧은소설 #한국소설 #한국문학

#돌봄 #위로하고위로받는 #무언가에기대어살아가는 #다괜찮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더 크리스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에 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종교와 상관없는 사람도 누리는 휴일? 이상한 의무감이라고 해도 약속을 잡아서 좋은 날? 분명한 이유를 대기는 애매하지만, 당당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요구해도 민망하지 않은? 그것도 다 어렸을 적 얘기인가 싶을 정도로, 지금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이다. 이유가 없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굳이 하루 세끼 안 챙기고 늦잠을 자도 좋고.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라고 해두자. 교회에 다닌다면 성탄 예배에 참석하기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니 그냥 하루 푹 늘어지면서 행복한 날이다. 산타클로스가 사실은 부모님이었다는 거, 정말 바라는 선물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을 알게 된 후로, 그냥 일 년 중 하루인,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로 남았다. 그렇다고 크리스마스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은 아니다. 누구라도, 혹시나 살면서 많이 힘들었다면, 이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곤 하니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마도 많은 사람의 이런 간절한 바람을 알았나 보다. 누가 읽어도 가슴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 기억에 남을 만한 크리스마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선물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있는 산타 협회로 세계의 산타 대표들이 모인다. 정기 산타클로스 회의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회장직을 맡은 미국 지부 산타클로스가 은퇴하면서 그 후임을 뽑는 자리이기도 하다. 회장이 후임을 지명하고, 다른 산타클로스의 반대가 없다면 그대로 임명된다. 그런데 회장이 지명한 사람은 여자였다. 갑자기 회의는 시끄러워지고 서로의 의견을 내놓느라 소란스럽다. 여자가 산타가 될 수 있느냐면서 논쟁을 벌이고, 각자의 생각을 토해내느라 바쁘다.


여자는 산타클로스가 될 수 없나? 이런 질문을 떠올려야 한다는 게 이상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그려온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는 여자를 떠올릴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미지 속의 산타클로스는, 몸집이 크고 하얀 수염과 눈썹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여기 산타 협회에 모인 각국의 산타클로스들 역시 모두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여자가 산타클로스를 하겠다고 나타났으니 놀라기도 했겠지. 이런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지원자 토미 엄마는, 자기가 직접 만든 쿠키를 대접하면서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생각이 옳다면서 큰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잠잠해졌고, 토미 엄마의 지원 동기와 진정성을 알게 되고 그녀의 산타클로스 첫 임무를 조용히 응원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면 단순한 흐름이었다. 남자들만 계속해왔던 산타클로스를 여자가 한다고 나타난 것, 과정은 다소 소란스럽기도 했으나 모두가 이해하고 서로의 임무를 해내는 것만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건 아마도 편견일 거다. 그동안 익숙하게 봤던 산타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어 우리에게 각인되었는가. 처음 이들은 서양에서 만들어낸 모델이라고 하다가, 누군가 서아시아의 터키라고 증명하자 그들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미지에 금이 간다. 그러면서 한 명씩 자기가 맡은 구역이 일반적인 것과 다른 부분이 있기에 산타의 활동에도 다른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오세아니아에서 온 산타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때문에 산타클로스 표준 스타일에 따를 수 없다고 한다. 너무 더워서. ㅠㅠ 그래서 요즘에는 알로하 셔츠를 입고 서프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선물을 나눠준단다. 하하. 상상만 해도 너무 즐겁지 않은가? 산타가 알로하 셔츠를 입고 보드를 타면서 선물을 준다고? 이거 너무 신나잖아! 아프리카 산타의 말은 또 어떻고. 산타클로스의 상징인 빨간색 옷이 아니라 초록색 옷을 입는다고 한다. 빨간 케이프를 두르고 다니다 보니 펄럭거리는 빨간 색이 사자에게 자극을 주어 공격당하기도 한다고, 마치 자연 속 보호색처럼 초록색으로 입는 게 안전하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아버지의 위상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 요즘에, 여자가 산타클로스를 한다고 하면 그나마 남아있는 부성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기도 한다. 급기야 산타가 부성의 상징하는 의미까지 언급되면서 저마다의 주장이 쏟아지고 더 소란스러워진다. 그리고 조용히 수습되는 과정에서 토미 엄마의 말에 그 자리의 모든 산타는 숙연해졌다. 부성이 아주 중요하고, 산타가 부성의 상징이라는 말도 맞겠지만, 부성을 부여받은 게 남성만은 아닐 거라고, 모성 역시 여성에게만 한정적으로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겉모습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회의에서 각국의 산타클로스는 자기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원칙을 깨는 상황도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산타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산타 이미지와 어긋난다는 말에 차별을 느꼈다고 했다. 무엇이 차별과 편견을 만드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했다. 원래, 당연히, 처음부터, 뭐 이런 말들로 우리 머리와 가슴에 심어놓은 고정된 생각이 ‘00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라는 인식이 된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책에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한 가지로 고정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뭔가? 산타클로스가 몰래 다녀가면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사랑도 흠뻑 뿌려주고 가는 날 아니었던가. 외모가 어떤 산타클로스가 나눠주고 가도 문제 되지 않을 일인데, ‘누가어떤 모습으로 다녀가는지 꼭 구분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고, 일상에서 익숙(?)하게 이어져 왔던 많은 것에 당연함을 떠올리지 않고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더라.


이 책 읽다가 많이 반성했다. 오늘도 밖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혔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상대방에게 원래 그래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더라. 세상에나. 나는 거의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함과 편견에 빠져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듬뿍 나눠주면 되는 거지, 산타클로스의 성별이나 외모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반드시 어떤 이미지를 갖춰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닌가. 토미 엄마가 흰 눈썹이 아니라고 하자 다른 산타가 방법도 알려주었다. 온몸에 밀가루를 뿌려!! ㅎㅎ 크리스마스에 흰 눈썹으로 루돌프 썰매를 타고 바쁘게 달렸을 토미 엄마, 여성이 아니라 그냥 산타클로스가 온 세상에 사랑을 뿌려놓는 시간이었다.



#마더크리스마스 #히가시노게이고 ##책추천 #일본소설 #힐링

#편견 #차별 #크리스마스에뿌려진사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집에 왜 왔어?
정해연 지음 / 허블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는, 취향이나 입맛에 따라 고르거나 정할 수 없이 주어지는 가족이라는 운명.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들리는 단어이지만, 때로는 그 가족이란 관계 속에서 느끼는 버거움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좋은 것만 공유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화기애애하게, 감정 상하고 서운하지만 괜찮다는 듯이, 가슴에 쌓여가는 울분을 눌러가면서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발하겠지. 상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분노가 최고치에 오른 만큼 잔인하게.


우리가 평소에 가족의 이미지를 어떻게 그리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작품 세 편이 담겼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우리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그러니까 반려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착각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반려, 라는 작품은 인간이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남자의 광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어떤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 섬뜩했다. 한치훈은 우연처럼 이정인을 만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자의 마음을 표현한다. 정인은 치훈이 자기에게 보인 호의가 조심스러웠지만, 조금씩 친해질 수 있는 관계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치훈은 정인이 마치 자기 여자인 것처럼, 정인이 보인 호의가 자기만의 연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선을 한참 넘어버린다. 급기야 표출된 그의 광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반려의 의미를 잃게 된다.


대한민국 어느 가정의 가장으로, 선량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남자 준구. 그의 일상에 예상하지 못 할 일이 생긴다. 두 번째 단편준구에서는 우리가 사는 동안 맞닥뜨릴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게 당연한 건지 희생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자 속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것이기에, 준구의 선택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때로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해야 가족인 건가 싶은 마음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고된 몸을 이끌고 지하철 막차를 탄 준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기 방에서 자는 줄 알았던 딸이 납치된 것을 알게 된다. 갑자기? 이유도 모르겠다. 그때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준구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연루되었다는 걸 인지하고, 딸을 구하기 위해 그는 이제 위험한 선택을 해야 한다. 자기 목숨을 걸고 딸을 구하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 속에서 매 순간 나는 고민하고 궁금해야 했다. 부모는 다 그런 것인지, 똑같은 상황이 자식에게 닥쳤어도 부모를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혹시 자기를 희생하는 선택이 아니라고 해서 비난받게 되는 건지. 여전히 이 단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고민은 계속된다. 나는 아직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했으므로.


세 번째 단편 은 가장 공감되고 익숙한 느낌의 작품이었다. 선경이 이룬 가정은 완벽해 보였다. 다정하고 유능한 남편, 외모부터 능력까지 겸비한 스튜어디스 큰딸, 큰딸보다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대학생 작은딸. 아침마다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며 이웃 여자의 부러움을 받는 선경은 이 순간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선경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남들에게 얘기하지 못할 속사정에 가슴이 썩어들어간다. 큰딸이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한 달 넘게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기력이 쇠하면서 누워지내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점점 더 마른 몰골이다. 전국의 온갖 병원을 다 다녀봐도 병명을 얻지 못했다. 이대로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데, 뾰족한 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젊은 남자가 선경에게 말을 건다. “그 집에 아픈 사람 있죠?” 누군데 남의 집 속사정을 알고 말을 건넬까 싶은 것도 잠시, 남자는 연락하라면서 명함을 한 장 주고 떠난다. 이 집안의 말 못할 속내는 점점 더 깊어진다.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정석이 있을까. 어느 집이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순간, 그들만의 방식은 깨지기 쉽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렇게 보여주면서 즐기기까지 하게 되는 일은 오래 못 간다는 게 살면서 배워온 진리다. 세 번째 단편에서 선경의 마지막 선택에 씁쓸했다. 오래된 균열을 못 본 척 감추고 살아오기 급급했는데, 이번에는 더 큰 균열을 마주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 있을까? 완벽한 가족이라고 포장하고 보여주기 위해 집착하면서 살아온 시간이 무색하게, 그 집 안의 모습은 곧 무너질 것 같은 균열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족이기 때문에 숨기고, 가족이기 때문에 상처 주고 원망한다. 이게 맞는 걸까, 가족이니까? 작가는 말한다. 가족이니까 그래서는안된다고. 그 말에 계속 생각하게 된다. 혹시라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없이 봐주기를 바란 적은 없는지, 가족이니까 내가 주는 상처 정도는 괜찮다고 여긴 적은 없는지, 가족이니까 원망의 대상으로 삼은 적은 없었는지.


정해연이라는 이름 하나로 고른 책이다. 분량도 적어서 가볍게 읽을 작품 정도로 생각했는데, 요즘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주제여서 그런지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어느 부분에서 내가 가족들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기도 하더라. 이런 반성(?)과는 별개로, 그동안 만난 정해연 작가의 탄탄하고 몰입도 높은 장편소설과 비교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재미로만 따진다면 좀 아쉬운?



#우리집에왜왔어? #정해연 #추리미스터리 #소설 #한국소설 #추리소설

##책추천 #가족 #완벽한가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25-03-1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죠!! 이걸 좀 더 풍성하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까요? 뭔가 겉으로만 쭉 훑은 느낌이랄까요.
전 <준구>에서 괜히 도와주다 죽은 남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모든 건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나쁘지만 그 안에 우리는 여러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선택을 할지를 결정해야 하니 참 어렵습니다.

구단씨 2025-03-11 21:51   좋아요 0 | URL
괜히, 좀 서운했어요. 조금 더 만족감을 주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고요. ^^
뭐, 그래도, 이런 서운함을 뒤로 하고,
앞으로 정해연 작가의 다른 작품을 계속 읽어보긴 할 거라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