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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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리뷰대회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실제로 죽음을 본 적은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죽음은 멀리 있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적도 없었다. 서른을 넘기고 점점 장례식에 익숙해졌지만, 이미 예견했던, 혹은 갑작스러웠던 죽음을 마주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가까운 이들이었지만, 타인의 죽음이었다. 죽음 이후의 시간을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때까지도 죽음은 나에게 한 발 떨어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마주한, 나에게 닿은 첫 번째 죽음은 아버지였다.


새벽에 전화를 받고 갔던 요양병원에서 아버지는 중환자실 한쪽 침상에 누워 있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상하다. 몸에 연결된 기계에서는 몇 분에 한 번씩 심장이 죽지 않았다는 흔적을 보여주었지만,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돌아가셨지만 가족들과 인사하라고, 약물을 투여해 심장의 멈춤을 늦추었다는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사라진 생명에 약물이 흐르면서 심장을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몇 분이 더 지나고 의사는 사망 선고를 했다. 그 새벽에 씻지도 못하고 나와서 들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은 장례식 준비와 여러 가지 절차를 해결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우리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던 건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떠난 사람을 두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함께했던 많은 것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정리하며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많았다. 그걸 애도라고 불러도 좋다면, 우리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우리의 장례식 날에 우리의 삶이 비극의 형식과는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어휘와 다른 상황의 언어로 회상될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스릴러, 로맨스 시리즈, 신화, 심지어 대중적인 코미디 영화처럼 간주될 수 있기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우리의 죽음으로 요약되지 않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7페이지)


생소한 이력의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 역시 우리가 죽음과 슬픔을 통과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많은 이의 장례식에 초대받고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죽은 이의 생이 있다.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저자가 아는 그들의 삶을 하나씩 반추하기도 한다. 죽음을 맞이한 지금이 마치 살았던 시간과 연결되어 계속 흐르는 느낌이다. 하긴, 그 말이 맞는다. 한순간에 죽음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분명 우리 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생각하면 슬프지만, 인간이기에 죽음과 연결된 시간을 살아온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남겨진 우리는 죽음을 중심에 둔 삶을 이야기한다. 상실을 공유하며 이어가는 오늘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을 여기서 확인한다. 삶의 마지막에 보는 것은 분명 죽음이겠지만, 죽음으로 우리 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시간, 남겨진 이들과 그를 추억하는 일이다. 랍비인 저자가 많은 이의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그곳에서 올린 기도는 죽음과 함께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였다. 랍비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녀인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음을 넘어선 생의 의미였다. 살아오면서 겪은 많은 슬픔과 죽음, 많은 이별과 눈물을 대면하면서 저자에게 비극은 둔감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죽음도 같지 않았다.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러한 죽음들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새겨지는지 말한다. 죽음과 생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남겨진 이들과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감당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어떤 죽음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엘자 카야와 마르크가 주고받은 서신에서 느꼈던 죽음의 공포는 나의 것이었다. 시몬 베유와 마르셀린 로리당이 겪은 아우슈비츠는 특별한 우정으로 남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사라의 죽음은 외로움이 새겨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병에 걸린 친구 아리안의 끝을 예감하면서도 옆에 있어 준 저자의 마음이었다.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알면서도 위로를 건네야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죽음 이후에 남은 이들과 나누었던 말들을, 죽음이 다가오는 친구에게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친구이면서 랍비의 역할도 함께 해내야 했으니, 죽음에 관해 잘 알면서도 중심을 잡아야 했겠지.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저자의 역할을 분명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죽음과 삶을 연결하는, 죽은 이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달하는 사람이 저자였다. 누구나 죽음과 삶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선뜻 연결하지도 못하는 게 우리인 듯하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의 거리를 채우는, 우리가 배우는 애도의 방식이었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음을 전하는 데에만 종종 쓰일 뿐이다. (139페이지)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우리 삶은 죽음과 가까이 있고, 죽음은 두렵다. 보건소의 코로나 검사 일을 돕고 있는 지금, 그 두려움이 더 잘 보인다. 지방의 작은 도시인데도 하루에 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이른 아침부터 검사를 받겠다고 줄을 서는 사람들을 매일 본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초조하다. 자가진단 양성 키트를 손에 들고, 병원에서 받은 소견서를 품고, 확진자 가족이라는 문자를 보면서 자기 순서가 되기를 기다린다. 팬데믹의 시대에 죽음은 더 가까이 있는 것만 같다. 혹시나 양성 판정을 받지 않을까,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다는데 나에게만 위험한 병으로 다가오는 건 아닐까. 내가 가족에게 전염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검사를 받기도 전부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사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는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금 살아가는 일에 의미를 담는다. 알 수 없어서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거라고.


저자가 죽음의 장소에서 읊어주는 기도문은 죽음 이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나 우리에게 닿아 있는 죽음은 상실을 생각하기 쉽지만, 상실에 담긴 생을 같이 받아들인다. 마주해야 할 것, 버리고 지워야 할 것, 마음을 전해야 할 것 등 삶의 말을 향한다. 떨어져 있지만 가까이 닿은 삶과 죽음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저자가 물었던 죽음의 정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 후에 듣는 삶의 이야기로, 죽음 후에도 살아갈 날들을 이렇게 하나씩 알아간다. 죽음이 더는 상실이 되지 않기를.





#당신이살았던날들 #델핀오르빌뢰르 #북하우스 #죽음 #애도 #랍비 #기도

#삶과죽음 #죽음이후의시간 #살아남은것들 #삶을말하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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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손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지음 / 내로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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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요술램프 결말이 뭐였더라? 마지막 소원이 얼마나 허무했는지 기억한다면, 원숭이의 손을 들고 함부로 외치지 못할 터이니. 차라리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에게 슬픔은 다가오지 않으리라. 인간의 호기심이란 기발하기도 하지만 어리석기도 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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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에르와 장 창비세계문학 9
기 드 모파상 지음, 정혜용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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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뭔지 정말 궁금하긴 하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진심으로 축하해주곤 하는데, 분명 축하할 일에 기쁜 것 맞는데, 그 축하와 함께 찾아오는 질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 상황의 질투는 비단 가족에게서만 생기는 건 아니다. 친구나 동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감정이라 더 궁금하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며칠 전에 이 지역에서 정말 뜨거운 경쟁률의 아파트 청약이 있었는데, 주변에 당첨된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남편의 직장 동료가 당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진짜? 잘 됐다, 식구도 많은데 작은 집에서 고생하더니, 이제 3년만 참으면 넓은 새집으로 이사하네? 근데 부럽다. ㅠㅠ 너무 좋은 일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축하의 말을 남겼는데, 축하하는 내 마음도 진심인데, 부러운 건도 진심이라서 말이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은 일상의 곳곳에서, 특히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면 더 속상하다. 나의 진심이 전하면서도 부러움 역시 소화해야만 하니까.


막연한 질투,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거의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자라나다가 결혼식이나 상대방에게 우연처럼 찾아온 행복을 계기로 터져 나오고 마는 질투, 그처럼 가라앉아 있는 질투 때문에 두 형제는 우애와 뒤섞인 무해한 반감의 불씨를 서로에게 품고 있었다. 물론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도 서로를 탐색했다. (37페이지)


롤랑의 두 아들, 삐에르는 의사이고 장은 법을 공부한다. 곧 변호사가 되겠지. 둘 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 것 같은데, 이 가족의 삶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래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 친구는 가족이 없이 사망했는데, 그가 유언으로 장에게 이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왜 콕 찍어서 장일까? 가족이 없어서 롤랑에게 유산을 남길 정도면 그냥 롤랑 가족에게 남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롤랑도 아니고, 롤랑의 두 아들도 아니고, 두 아들 중 하나인 장에게 유산을 남기는 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하지만 롤랑은 자기 아들에게 갑자기 뚝 떨어진 돈에 흥분한 나머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은 친구를 잠깐 기억하는, 오래전에 만나고 못 봤는데 자기를 기억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 그와의 인연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구나 하는 감탄 정도가 전부였다.


이때부터 각자의 생각에 바빠진 장의 가족이다. 장은 이 돈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돈을 받으면서 피어날 자기 인생을 생각한다. 롤랑은 자기 돈은 아니지만 자기 가족에게 생긴 돈에 같이 부자가 된 기분을 즐긴다. 자식이 부자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나쁠 일은 없겠지. 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를 꿈꾸며 그 돈으로 변호사로 살아갈 장의 집 꾸미기에 푹 빠졌다. 단 한 사람 삐에르만이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동생에게 질투도 났지만, 이 가족의 분위기가 한 번에 변한 게 더 화가 났다. 아름다운 미망인 로제미유 부인이 장에게 마음을 주는 것도 짜증이 난다. 장에게 돈이 생겼으니 더 매력적으로 보이겠지? 무엇보다 이 유산 상속의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보니 뭔가 꺼림칙하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부자연스럽고,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의문은 점점 의심으로 짙어지면서 삐에르는 이 유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게 된다. 사실은 엄마의 정부가 장에게 유산을 물려준 것은 물론이고, 장은 그 정부의 아들이었던 거다.


그는 어머니가 이처럼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이고, 그러한 고통이 자신의 원한을 덜어주고 어머니의 타락으로 생긴 빚을 줄여준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만족한 판사처럼 어머니를 응시했다. (155페이지)


막장드라마는 한국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도 있었네그려. 이 모든 상황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에게 따질까? 세상에 폭로하고 장의 유산이 더러운 돈이라고 떠벌릴까? 아버지에게 먼저 말하고 어머니와 장을 내칠까? 삐에르가 이 사건의 내막을 알아가기까지 굉장히 흥분하면서 읽었다. 이거 훤히 보이는구먼, 수상하다 수상해. 그 과정에서 조금씩 비치는 삐에르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이 소설이 막장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라는 걸 말한다. 상황이 만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장에게 어머니의 비밀을 터트렸지만, 삐에르가 이 비밀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점점 어머니의 목을 죄어오듯 하는 삐에르의 태도는 잔인하게 보이면서도 이해가 된다. 어머니의 불륜을 알고 난 후에 어머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새집을 구하고 꾸미기에 바쁜 장이 얼마나 미웠을까, 혼자 돈벼락 맞은 듯이 즐거워하는 아버지를 보는 마음은 또 어떻고. 잔잔하게 흐르면서 이 가족에게 떨어진 유산이 초반부의 흥분을 고조시켰다면, 소설의 중반 이후로는 삐에르가 느끼는 혼란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든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묘한 심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슴 속에서 들끓는 것을 꺼낼 수도 없는데, 이걸 또 담아둘 수도 없다. , 나는 이럴 때가 가장 싫더라. 나쁜 결정을 했을 때보다 더 정신이 피폐해지곤 하는 이유가 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떤 선택과 결정도 쉽게 이뤄지지 않을 때 말이다. 그것도 가족을 상대로 끊임없이 이 상황에 휘둘리고 있으니 어쩌면 좋은가. 문제는 롤랑을 제외한 이 가족 모두가 괴롭다는 거다. 아들이 알아버린 어머니의 불륜을 서로가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하고 받아들이고야 마는 결정 앞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완벽한 해결은 아니니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나기 마련이고,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그 해결의 주체가 장이 된다는 게 예상 밖의 흐름이었다. 순둥순둥해보이던 장에게도 인간의 본성이 있긴 했구나 싶다. 가진 것을 놓칠 수도 없고, 어머니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도 없으니, 뭐라도 해야 했겠지.


참 고약하지, 삶이란 건! 어쩌다가 거기에서 약간의 달콤함을 발견하면, 거기에 빠져드는 죄를 범하고 훗날 호된 댓가를 치르잖니.” (212페이지)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던 건 등장인물 모두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벼락 맞고 좋아하는 것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도, 지켜야 할 것을 먼저 계산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또 한 번 확인한다.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소설이다. 여담이지만,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돈벼락이 즐거운 롤랑이 되고 싶기도 하더라.



#삐에르와장 #모빠상 #문학 #창비세계문학 #소설 #막장드라마 #불륜

#인간심리 ##책추천 #인간의마음 #가족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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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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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카페에 가입한 지 1년 정도 되었다. 처음에는 이 동네 정보가 좀 필요해서 몇 가지 도움을 받고자 가끔 눈으로만 보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은 카페에 접속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 동네의 많은 정보를 쏟아내고, 누군가는 질문을 올리고 답변을 구한다. 한동안 나는 이 카페에서 올라오는 층간소음에 관한 글을 엄청나게 찾아 읽었다. 굳이 검색하지 않으려고 해도 하루가 멀다고 층간소음 피해 호소 게시글이 등장한다. 아이들인데 뛰지 말라고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래층에서 올라온다, 위층은 이 새벽에 공구를 사용한다는 등. 셀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에 댓글을 남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피해에 공감하는 마음이 넘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문제에 한 개의 댓글도 남기지 않았다. 댓글을 남기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노출될 거고, 나중에 이사해야 하는데 아파트 매매 글 올리면 우리 집이 층간소음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테고, 그럼 사람들이 아니까 아파트가 잘 팔리지도 않겠지. 아니면 헐값에 내놓아야 조금 관심 가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웃기지만, 그랬다.


층간소음 문제 하나로 나는 몇 년 후가 될지 모를 문제를 지금부터 고민했다. 고충을 털어놓는 것도, 그 문제의 공감을 얻고 싶은 바람도 묻어둔 채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아파트에 사는 누가 이런 문제를 호소한다면 새겨듣는다. , 거기는 피해야지 하면서. 하지만 그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이다. 신축 아파트라고 층간소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사람의 문제고,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결론으로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게 뭐라고, 나는 내 마음을 돌보는 일보다 이 동네와 이 아파트의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것이 두려워 말을 못 했을까.


어느 집단이든 이기주의가 판을 치기 마련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존재이니까. 태어나서 처음 인연 맺은 가족이라는 집단도 자기 가족 우선의 이기심이 발동하곤 한다. 내 가족, 내 새끼가 먼저이고 중요하다. 세상의 많은 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건 인정한다. 나도 그러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보는 건 이기심을 넘어선 개인의 욕망 때문에 누군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배려와 호의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습관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알아도 나를 먼저 생각하면 그런 행동도 가능하다. 내가 덜 아프고 상처받기 위해서, 내가 조금 더 편하고 많이 가지려고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보는 양가감정을 우리 모두 느끼고 살아간다는 게 현실이다.


서영동 동아1차아파트의 입주자 카페에 글이 올라온다. ‘봄날아빠는 아파트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에 울분하고, 용산보다 여기가 못한 이유가 없다고 피력한다. 그에 사람들은 동조한다. 맞다고,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제 가격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옆의 아파트가 1년 사이 1억이 오를 동안 자기 아파트만 그대로라고. 이 사람 참, 말을 잘하네 싶은데, 한편으로는 의심도 된다. 이 사람 누구지?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이지만, 몇 마디만 쏟아내면 몇 동 몇 호의 누군지 아는 건 시간문제다. ‘은주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키우는 일에 집중한다. 그 동네에서 유명하고 오래되었다는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내 아이에 최선을 다하는, 다른 아이들 보다 뒤지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희진은 전세 만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던 중 살던 아파트와 같은 아파트를 무리해서 매매한다. 대출이 있지만, 그것도 갚아가면 다 재산이라고, 점점 부동산에 눈을 뜬 희진은 이제 15억짜리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산다. 행복하다, 고 생각했다. 서영동에서 대형 학원을 운영하는 경화는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아들을 무기로 보습학원에서 시작해 그 동네 제법 입소문을 탄 학원의 원장이다. 좀 더 좋은 곳으로 학원을 옮겼지만, 학원 확장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쳤다. 아들과의 사이는 멀어졌다. 경화 모자를 돌봐주던 엄마는 아프기 시작했다.


인상적인 인물이 안승복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이면서, 시골에서 상경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의 딸 보미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다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한없이 다정하고 무조건 딸을 믿어주던 아버지, 아버지가 마련한 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보미에게 이제 아버지는 어떤 인물로 비칠까.


그냥 우리 건물 학원들이 좋은 거죠, .”

서영동 학교들은 입시 성적이 좋지 않다. 서영동 아이들은 그런 서영동 학교를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백은빌딩 학원은 떠나지 못했고, 서영동 인근의 아이들은 백은빌딩으로 학원을 다니면서도 굳이 서영동을 우습게 생각하고 싶어 했다. 들어오고 싶은 욕망과 나가고 싶은 욕망이 섞여 부글부글 끓는 곳. 학원장이자 학부모이면서 서영동 주민인 경화는 종종 그 입장들이 자기 안에서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149페이지)


얼마나 가지게 되면 욕심부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들은 각자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면서도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대부분 타인이 가진 것들은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것으로, 나에게 결핍된 것들이다. 노력한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되지도 않는다. 이 지점에서 무엇을 우선에 두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나는 불행하지 않은 쪽을 택하곤 했다. 완벽하게 마음을 채울 수도 없고 언제나 모자란 것들이 나를 아쉽게 할 테니,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욕망이더라. 그러니 이 정도도 괜찮다라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나의 그런 마음도 다 위선인 것 같다. 집 안 팔릴까 봐 층간소음도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 더 오르면 좋지 뭐 하는 마음도 있고, 지금도 이 지역에 예정인 청약 소식을 듣느라 귀는 바쁘다. 너무 비싸서 청약이나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도 신축으로 가고 싶은 이 마음이 조금 웃기다. 나에게 이 정도는 얼마만큼이었을까.


집마다 저마다의 계획과 사정이 있다.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안승복은 더 만족하기 위해 오늘도 1인 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노인치매요양원이 내 영역 근처에서 웬 말이냐고 외치던 경화에게는 바뀐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자꾸만 오르는 집값에도 넓은 집으로 갔던 희진에게 가족의 행복과 고마움은 여전할는지, 위대해 보이던 아버지의 투자 능력이 아직도 보미에게는 능력으로 보일지,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아파트 주인이 된 세훈과 유정 부부가 각자 본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간 아영에게 편히 쉴 곳은 언제쯤 나타날까. ‘빚투영끌이란 말이 익숙해진 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지 불행을 쫓아가는 건지. 언제부터 부동산이라는 화두가 우리 인생에 계급을 만들고 이렇게 큰 논쟁거리가 되어 있었던가. 내릴 줄 모르는 집값과 내 집 마련의 꿈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지? 거기에 부모의 직업이 아이의 수준을 만들고,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대우로 구별되는 삶의 차이는 알고 있으면서도 읽는 게 불편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전하는 현실적인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인가. 내가 사는 곳이 나를 더 살게 해준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사는 이 작은 동네가 서영동이었다.


그걸 왜 원장 선생님이 고민하세요?”

그럼 모른 척해요?”

그럼요. 남 일인데.”

그런가? 내가 이러는 거 웃기는 일인가요?”

아영은 그냥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원장이 혼자 대답했다.

근데 남 일이기만 한 일은 세상에 없더라고요. 나이 먹을수록 더 그렇고요. 그게 맞는 거고.” (238페이지)


지난번에 읽은 세대주 오영선이 부린이의 내 집 마련 입문기 정도로 읽혔다면, 조남주의 연작소설 서영동 이야기는 아파트를 둘러싼 서영동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읽으면서도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에 섬뜩해졌다. 살아가는 일이 사는 곳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 역시 다양해진 게 사실이다. ‘보금자리라고 불렸던 집은 이제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었고, 굳이 내 소유의 집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가 생기기도 한다. 내 소유의 집이 있다고 모두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 순간 그 상황에 내가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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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 제4의 벽 에디션 세트 - 전8권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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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이야기를 언제 떠올리는가? 오늘의 현실이 팍팍할 때, 어떤 달콤함을 상상하고 싶을 때,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뭐 이런 거 아닐까? 하나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잠시 고통을 잊고자 할 때 몰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나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


처음으로 소설을 읽은 순간을 기억한다. 손가락 끝에 닿는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드넓은 백색의 대지에 꽃핀 까만 활자. 내 손으로 접어 넘기던 페이지의 감촉.

활자를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활자의 행간에 있단다.

책을 좋아한 어머니는 가끔 그런 말을 했는데, 적어도 어린 내게 그것은 비유가 아니었다. 활자와 활자가 만든 빈틈. 그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나만의 작은 설원(雪原). 그 공간은 누군가가 들어가 몸을 누이기에는 터무니없이 좁다랗지만, 숨기 좋아하는 어린 나에게는 꼭 맞는 장소였다. (8105페이지)


주인공 김독자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놓을 수 없던 연재 한편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잘 못 해서, 다음 회의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연재를 못 보는 나 같은 독자도 있지만, ‘김독자처럼 한 회 한 회 마음을 다해 빠져들면서 기다리는 독자도 있다. 그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의 연재를 기다리는 것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다릴 희망이 되는 일이다. 그가 몰이하면서 읽는 그 소설은 그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게 한 처방전과 같다. 거의 십 년 동안 그는 멸살법을 읽으며 견뎌왔다. 처음 그 소설을 읽는 독자는 많았으나, 연재가 계속되고 오랜 시간 이어져 오면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김독자는 그 소설의 유일한 독자로 남았다. 이럴 수 있을까? 독자에게나 작가에게나 이런 상황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글을 쓰기 위해 버티는 작가나 그 글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독자나, 이 상황은 말 그대로 일대일, 유일한 작품에 유일한 독자 아닌가. 작가는 마지막 연재를 끝내고 김독자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김독자가 작가의 선물을 받은 그 순간, 그의 현실 속 세계가 변한다. 멸살법 속 이야기가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SF영화 속 한 장면처럼, 도깨비의 등장과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션이 주어지는 상황이 몰아친다. 지하철 속 사람들은 그가 소설 속에서 본 인물들과 맞춰지고, 이제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 그는 금방 눈치챈다. 하지만 그가 내용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이 상황이 쉽게 풀어지지도 않는다. 어쨌든 소설 속 상황과 거의 일치하면서 흐른다고 해도 그가 그 순간을 해결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의 현실과 다른 세계, 하지만 현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게 비슷한 이 세계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마치 실감 나는 게임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주어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그 대가로 코인을 얻는다. 이 코인은 후에 그들이 목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얻는 데 사용된다. 매번 시나리오를 수행하고 완성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성좌들에게 코인도 받는다. 그들의 능력을 활용할 배후도 선택하고, 때로는 그들의 능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자의 스킬을 장착함으로써 위기를 탈피할 무기로 쓴다.


흥미롭다. 등장인물 모두 다양한 캐릭터였다. 어린아이부터 아이 엄마, 학생, 군인, 조폭까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어쩌겠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든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면서 그 결말에 다다라야 했다. 그 가운데서 김독자의 활약은 빛난다. 그는 이미 이 소설을 읽었던 사람이고, 이 소설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으니,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응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스킬, 그 스킬은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무기가 되고, 김독자의 스킬은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txt)였다. 이미 읽은 소설을 금방 떠올릴 수 있었고, 등장인물들이 가진 무기, 생각 등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김독자는 이 세계의 시나리오는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 된다. 많은 사람이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누군가를 따르면서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김독자를 따른다. 그의 스킬은 매번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 데 필요했으며,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다. 그런데 뭔가, 그가 아는 것과 다르게 흘러간다. 소설 속에서와 뭔가 다른, 스킬의 속도와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 이제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시나리오는 클리어될 것인가. 누가 살아남아 이 소설을 완성할 것인가.


무수한 활자들이었다.

활자는 모여서 단어가 되었고, 단어는 모여서 문장이 되었다. 문장은 모여 문단이, 다시 문단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는 곧 사람이 되었다. (8254페이지)


읽는 내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자꾸 그려진다. 처음 그들이 갇히듯 사건이 시작되었던 지하철, 여러 다른 지하철역에서 완성해가는 싸움의 결말들, 소설과 다르게 흘러가는 장면에 당황할 겨를도 없이 매번 위기를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긴장감은 고조된다. 목숨을 건 일이니 그들이 살아남아 이 시나리오를 끝낼 수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코인을 날려주는 성좌들은 또 어떤가. 그리스 로마 신화, 건국 신화 등 국적 가리지 않은 많은 신화 속 인물이 성좌로 나오며 신비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물론 이 성좌들의 능력 또한 대단하다. 각자가 살아남는데 굉장한 힘이 되어주니까. 거기에 각자가 가진 스킬을 활용하면 살아남는 건 노력의 결과로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중에서 능력을 더 보이는 김독자의 활약이 대단한 것도 당연하다. 이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십 년의 세월 동안 이 소설연재의 유일한 독자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게, 주인공 김독자가 이 세계를 구할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Part 1 보는 것도 이렇게 흥미진진한데, 다음 이야기는 또 어떻게 펼쳐질까. (Part 2 빨리 내주세요) 김독자가 마주한 인생의 장르가 바뀐 순간은 이제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궁금하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러운데,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완성하는 데 집중하면서 읽다가 8편에서 만난 김독자와 엄마의 이야기는, 그동안 살아온 그의 시간과 그가 연재되는 소설에 빠져들면서 읽게 되었는지 공감하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현실 회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고단한 현실을 이기고 건너갈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많은 것에 빠져들고, 꼭 생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몰입하고 싶은 게 있다. 그 순간 위로가 된다면, 이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 고통을 마주할지라도 말이다.


매력적인 인물들, 역사와 신화를 가미한 요소들, 이야기에 빠진 세계, 시공간을 초월한 이 소설에 빠져들 이유가 충분하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이 소설이 소설로만 남지 않을 매력이기도 하다. 김독자가 이 소설의 결말까지 어떻게 이끌어갈지, 어쩌면 그가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소설을 연재하든 출간하든, 작가가 있다면 독자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작가가 없다면 독자를 이야기를 만날 수 없고, 독자가 없다면 작가의 이야기는 읽히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소설의 역할을 더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왜 소설(이야기)을 읽는지, 그 소설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 안의 인간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남기게 될지. 당신은 소설에서,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찾았는지, 찾고 있는지...


이번 ‘PART 1(8)’은 전체 이야기 중 약 1/3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이번에 출간된 건 페이퍼백 에디션이고, 올해 여름 페이퍼백 에디션 PART 2-3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거기에 하드커버 에디션 PART 1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마무시한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소설 출간을 기다려온 독자에게 기쁨이 되겠습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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