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의 말
이예은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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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에 유독 화난 고객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처음부터 고객이 불만을 품은 채로 수화기를 들어서다. 서비스를 아무 문제 없이 사용했다면 애초에 콜센터에 연락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고객은 일단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상담원과 연결된다. 게다가 회사는 영업이나 개발 등 다른 부서보다 유독 콜센터에 들이는 비용을 아까워한다.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하려니 어쩔 수 없이 길어진 대기 시간도 고객의 짜증을 유발하기 쉽다. (165~166페이지)


맞다. 콜센터에 전화할 일이 생긴다는 건, 현재 나의 상황, 혹은 상품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개인 쇼핑몰까지, 요즘에는 일상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고객센터와 연결되어 있다. 나부터도 오늘 대형쇼핑몰 고객센터와 통화하기 위해 거의 5분의 넘게 듣기도 싫은 멜로디를 듣고 있었다. 잘못 구매한 신발 사이즈 때문에(여러 가지 이유로 앱으로 처리 못 할 상황) 굳이 상담원과 통화해야 해서 참고 기다렸다. 그래도 이건 내 잘못이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 왜 기다리면서 아까운 내 시간을 버리게 하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전화기를 드는 순간 화가 난 상태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화까지 해야 할 상황이 된 게 이미 짜증이 난 거다. 고객의 이 기분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건, 통화가 연결된 그 순간의 상담원이다.


저자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드폰을 끼고 마이크로 전달되는 목소리에, 눈을 모니터를 향해 있고, 손가락을 쉬지도 않고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기고 있겠지. 여느 콜센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일 테다. 거기에 하나 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일본어가 능숙한 한국인이, 수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고객을 상대로 이 까다로운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는 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고객이 무슨 내용으로, 어떤 마음으로 전화했을지 모를 상황에 아무리 유창한 외국어라고 해도 그냥 대화하는 게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일이라면, 글쎄, 어느 정도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을까?


이미 높은 확률로 화가 나 있는 고객을 대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상대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말로 대화하는 일상에서 조금 더 높고 정중하게 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감정까지 헤아려야 한다. 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사과 먼저 하고 시작하는 대화가 참 마음이 아프다. 일부러 시간 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수화기를 붙들게 만든 당신에게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일. 콜센터 상담원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이직률이나 흡연률이 높다는 어느 보고에서도 느꼈지만, 이들의 업무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껏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시작하는 대화가 쉬웠을까. 이곳에서 일하는 게 저자의 꿈이나 바람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던 일자리 시장에서 그의 구직에 회신을 준 회사였다. 잘할 수 있겠다는 용기는 가능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부딪히는 감정 노동은 대혼란이었다. 그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기만의 공간에 풀어놓은 것이, 이렇게 책이 되어 독자 앞에 놓인 거다.


온갖 감정을 가지고 전화를 해오는 고객에게 적응이 좀 되었을까. 본인만 견딘다면 퇴사할 일 없을 것 같은 콜센터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전 세계 모두가 겪은 코로나 19. 특히나 여행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저자에게는 더 크게 다가온 위기가 아니었을까. 갑작스러운 펜데믹에 여행 취소와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해 콜센터 전화가 폭발할 지경이었고, 한 차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콜센터에 정적이 흐르듯 인원 감축 바람이 분다. 여행 금지(자제) 분위기에 여행사인 회사의 어려움이 닥쳤고, ‘부득이하게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메일을 받고서도 괜찮다라고 말하고 떠나는 동료들을 괜찮게볼 수 없음을 경험했다. 그러고도 남은 사람들은 콜센터에 걸려오는 고객의 불만에 응대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여행 취소나 조건 변경 등 고객이 뭔가를 원하거나 조정하는 상황은 그대로였으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늘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상담원의 입에서 떠나지 않았고, ‘또 이용해 주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당신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했음에도 또 이용해달라는 간절한 부탁까지 덧붙이는 게, 어떤 마음일지. 그들이 하는 말은 감정은 담은 것보다 그저 업무를 위한 말들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밥벌이의 고단함일 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인격체로 감당하기에 너무 심하다 싶은 경우도 많기에, 어떤 말을 듣고 어떤 말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언제나 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 같다.


선의를 베푸는 데는 대단한 수고가 들지 않는다. 무심코 건넨 배려 섞인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단비와 같은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있어 누군가는 그날 하루, 혹은 더 긴 시간을 너끈히 버티기도 한다. (121페이지)


이곳에서도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그 시간 동안 견디며 일해왔을 수도 있다. 익명의 누군가가 반말로 시작해서 험한 말을 퍼붓기도 하고, 외국인 상담사여서 근거 없는 차별을 받기도 하면서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가 하는 고맙다는 말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한 마디에 또 많은 시간을 견딜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저자의 글 곳곳에 담긴 많은 이야기가 단지 콜센터 경험만을 이야기하지 않았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일, 겁도 없이 무작정 부딪혔다가 알게 되는 힘든 시간, 경쟁 사회에서 노력과 상관없이 밀려나며 대신 찾은 자유, 어느 곳이든 사람이 머무르는 곳에 넘치는 애틋한 관계까지 경험한 저자의 성장일기 같은 이야기다.


세상에 완결 무결한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기업이 만든 제품을 소비자가 사용하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다시 불완전한 콜센터 상담원이 해결하려 애쓴다. 이 사실이 의도된 잘못을 감싸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힐 이유는 되지 않을까. 당장 콜센터 상담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거나 사회적 시선을 변화시키기는 힘들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19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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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1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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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2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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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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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맘때쯤 찾아오는 장마가 낯설지는 않았다. 매해 그렇듯, 이 꿉꿉함을 좀 참고, 우산을 챙겨야 하는 불편함을 며칠 견디면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괜찮았다. 올해의 장마는 다른 것 같다. ‘극한을 붙인 폭우가 등장했다. 비가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쉴새 없이 안전안내문자가 온다. 집에서 한 블록 내려가면 보이는 사거리는 차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겼다. 해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느 정도 발목을 적시는 정도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언젠가부터 폭우가 쏟아지면 위험한 곳이 됐다. 맨홀 뚜껑이 날아가 사고가 난 차가 있을 정도다. 수시로 일기예보 확인이 습관이 됐다. 비단 비 오는 날 뿐만 아니다. 너무 더워도, 폭설이 쏟아져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살펴보게 된다. 갑자기? 아니다. 늘 그랬지만, 새삼 요즘의 날씨가 변덕이라 더 챙겨보게 되는 거였다.


날씨에 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날씨는 대기와 땅, 햇볕이 만들어내는 음악 같다는데, 오늘 날씨는 어떤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굉장히 어둡고, 거칠고, 심란한 음악 무엇일까 찾아보게 될 정도다. 저자는 장맛비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듣고 싶다고 말하더라. 폭풍우에 갇혀 밤새 돌아오지 못한 연인 조르주 상드를 걱정하며 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쇼팽.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내리듯 맨홀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을 얘기한다. 이렇게 듣고 보면 참 분위기 있어 보이는데, 미안하지만 오늘의 장맛비는 분위기만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위험을 동반하기에, 솔직히 좀 밉다. 어쨌거나, 단순히 불편하고 싫다는 마음으로만 말하는 날씨가 아니라, 기상학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날씨의 과학과 음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절로 날씨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게 되면서, 다양한 날씨의 모습을 설명하는 문장은 또 어떻게 들려올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대륙의 동쪽 끝에 있다는 한반도. 북쪽의 육지와 남쪽의 바다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지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의 중위도 온대 지방에 위치하며 저기압과 고기압의 영향을 반복적으로 받고 있고, 이 기압의 이동으로 날씨의 변주가 이루어진다.


변화무쌍한 한반도의 봄 날씨는 강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단다. 시베리아 적도를 흐르던 찬 공기가 양쯔강 자락의 따뜻한 기운과 만나 요란한 비를 쏟아낸다고. 잔잔하게 내리는 봄비를 연상하면 봄날의 건조함을 사라지게 해줄 적당한 비가 생각나는데, 이미 문장에서 들려오듯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 비구름을 만들 때 얼마나 무서운 분위기로 비가 내리는지 안다. 기상 현상에 대해 잘 몰라도, 이 정도는 우리가 많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 빠른 리듬의 음악이 저절로 생각나는 건 당연하다. 둔탁하고 무겁고 세게 두드리는 악기를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지금 내리는 비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는 수시로 끼어드는 효과음에, 경쾌함이 아닌 운명이 바뀔 것 같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딱 맞는 시기인 여름 장마철.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로 오면서 그 가장자리의 수증기가 비구름대가 만들어진다. 이때 많은 비가 내리는데,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되어 한반도를 덮는다면 수증기 물길이 한반도를 피해가고 열대야가 온다는데. 생각해보니 장마철 폭우도 싫고 열대야도 싫은데, 여름을 견디는 게 참 힘든 일이구나. 들으면 들을수록 날씨에 관한 예측과 현상은 신기하면서도, 지구의 기후변화에 더 민감하게 다가가게 된다.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그 자리를 다른 공기가 채우고, 태양의 높이에 따라 열의 양이 달라지고, 육지와 바다의 분포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날씨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자연이 그러하니,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문제가 더 심각하게 다가온다.


짧은 듯,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는 가을을 생각하면 괜히 울적해진다. 겨울의 추위가 오기 전, 가을 특유의 서늘함을 좋아했다. 한반도에 북풍이 불어오면서 북쪽의 찬 공기가 높은 구름을 만들어내고 구름층이 엷어진다고 한다. 가끔 우박이나 소나기가 가을의 운치를 위협하면서 대기 불안정을 만들기도 한다. 농작물의 우박 피해 뉴스를 보다 보면, 날씨는 우리 삶에 너무 밀접하다. 농사뿐만 아니라 식량과 관련된 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하다. 적당히 물이 찬 논에 모내기하고, 뜨거운 햇살에 잘 자랄 때 풀이 나지 않게 한 번씩 관리해주고, 가을바람 불어오면 추수하면서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게 농업인만의 일은 아니다. 농산물은 농업인의 수입이기도 하지만, 그 농산물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과 다른 업계에까지 하나로 연결된 것을 생각하면, 날씨 문제는 단순히 날씨의 문제가 아닌 게 된다. 이쯤 되니 이 책이 새롭게 보인다. 날씨와 음악, 서정적인 문장이 들려올 거로 생각했던 건 착각이고, 조금 더 관심 두어야 할 분야가 되었다.


몇 년 전에 겪었던 혹한을 떠올린다. 지독하게도 추웠던 날, 기차를 타려고 역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어르신의 말이 생생하다.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이런 추위는 처음 겪어본다고. 대기의 방향이 바뀌어 시베리아 고기압이 세력을 키워 한반도를 지나가면서 추위가 찾아온다. 예전에 들었던 말인데, 삼한사온.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온대저기압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반도 주변을 지나갈 때, 저기압이 접근하기까지 나흘 정도는 남풍 계열의 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조금 오르다가, 저기압이 통과하면 북풍을 타고 한기가 내려오면서 사흘 정도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이라고 배우고 겪으면서 자랐는데, 어느새 대한민국의 사계절은 거의 두 계절로 변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했다. 지독한 더위 아니면 추위. 그사이에 낀 봄과 가을은 월급이 통장을 찍고 지나가듯 잠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느낌이다.


날씨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저자의 시선을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 유감이다. 하나하나 다 적자니, 날씨의 변화를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느끼는 기후변화의 문제를 저자도 인식하고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 확인된다. 계절을 클래식 음악의 악장과 같다고 느꼈던 거에 비하면, 가속하는 지구온난화는 악장의 길이가 바뀌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래서 저자는 짧은 1악장의 봄이나 점점 길어지는 2악장의 여름처럼, 다양한 변주곡으로 날씨를 이야기한다. 날씨의 음악이 얼마나 더 다양하게 들려올까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건, 지금 지구의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건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날씨로 전하려는 음악을 듣는 건 즐거웠지만, 그 음악이 자연의 현상에서 들려오는 거로 생각하면 내가 되돌려줄 음악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의 폭우가 아름다운 음악을 망가뜨린 것처럼 여겨지는 건 나뿐인 걸까.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의 지식과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테고, 여러 가지 기후변화를 지켜본 이가 전문적인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고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진다. 특히나 어느 순간부터 예측에서 벗어나는 기후 문제가 등장하면서 정확한 날씨 전달은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라도 일기예보가 빗나가더라도 구라청이라는 오해보다 그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삶은 날씨에 따라 일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마음의 리듬이 달라지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니까. 며칠 전에도 엄마는 이 더위가 힘들다며 달력을 들추었다. 처서가 언제냐며, 이 폭염이 좀 사그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하루를 견디고 계셨다. 개인의 생활과 우리나라의 많은 것을 살피는 날씨, 크게는 이 지구상에서 연주되는 날씨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날씨나 기후의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다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흐름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조금 더 깊게 집중해서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는 살면서 겪는 다양한 날씨와 우리 살아가는 기후 환경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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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기발한 생각 10 - 기후위기 탈출로 가는 작지만 놀라운 실천들
박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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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일 오늘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해 스페인의 국제 환경단체 가이아가 제안해 만들어진 날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다행히(?)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일회용 비닐봉투보다 더한 낭비를 한 것 같아서 말이다. 주방 뒤쪽에 분리수거를 위해 공간을 마련해두었는데, 큰 비닐에 대충 담아두다 보니 지저분해 보이던 걸 참고 있었다. 나름 정리한다고 선택한 게, 분리수거함을 주문하는 거였다. 이것도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버리게 되고, 또 쓰레기가 될 텐데. 쓰레기를 버리겠다고 쓰레기가 될 물건을 사버렸다. 이런 반복이 지구를 죽이는 일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까먹고 반복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미 이 책의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우리의 지구가 망가지고 무너져가는 이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에 해야 할 일을 말한다. , 솔직히 말하면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해서 환경문제 해결에 더디게 다가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기발한생각에 더 눈길이 간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방법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나은, 더 기발한 그 생각에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 것도 있고 기발한 다짐으로 약속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고, 보이는 것보다 마음을 더 보게 하는 선물 포장에, 물건 재활용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의 방치가 아니라 재생에 관심 두고, 생태 도시와 생태 환경 만들기에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자폐기물 늘리기에 힘쓰지 말고, 공정무역 등장의 의미를 새기고, 친환경 경제로 가치 소비에 참여해야 한다. 탄소 중립 사회에 더 관심 두고 우리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게 당연한 과제였다. 듣고 보니 어려운 말은 아니다. 너무 많이 들어와서 귀에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더욱더 기발한 생각에 빠져들어야 하는 이유에 오늘 날씨가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 한 해가 다르게 더워지는 여름과 이런 추위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웠던 한파를 기억한다. 혹은 이게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 포근해서 한겨울에 벌레와 해충이 자주 보이던 때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뚜렷한 4계절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뭔가 많이 변했다는 건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러니 저자의 설명과 공동의 과제처럼 주어진 다짐이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소비 행동이, 귀찮음으로 생긴 습관이 우리의 지구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몇 번을 들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개해준 여러 가지 현상과 방식이 다 중요하지만, 두 번째 장에서 들려준 포장지 없는 가게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천연 수세미나 대나무 칫솔, 고체 치약 같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알맹 상점. 개인 용기를 가져와서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담아서 사가는 시스템이 좋았다. 번거롭긴 하지만 쓰레기를 줄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요즘에 음식 포장하러 갈 때 일부러 집에 있는 밀폐 용기를 가져갈 때가 있다. 처음에는 포장 용기 값을 따로 받는 매장이어서 돈을 아끼려고 가지고 다녔는데, 그렇게 개인 포장 용기 가지고 다니니 내가 분리수거할 때 버리는 쓰레기도 줄어서 편해졌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음식 포장하러 갈 때 포장 용기 챙기는 일이 번거로워서 그냥 가면 그 후에 생기는 쓰레기는 앞에서 편했던 내 몸을 뒤에 불편하게 하는 일이 되니 똑같은 거 아닌가. 게다가 쓰레기가 생기니 지구가 병드는 속도에 내가 한몫하는 게 된다. 별 것 아닌데, 이게 습관이 된다면 일거양득이 되는 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특히 포장지 없는 가게 이야기에서 더 반성하게 되는 건,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자는 틀에 박힌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가 보내는 경고를 그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 19 영향으로 음식 배달과 택배의 증가로, 쓰레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겠다고 쓰레기를 늘린 셈이다. 그래서 더 각성하게 된다. 제로웨이스트숍이 익숙해지고, 뉴질랜드 기업의 식용 그릇(먹을 수 있는 컵)이나 독일의 리컵시스템 등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은 물론 가게로 포장지를 되돌려주는 방식이 생기기까지 했다. 우유 팩을 재활용해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고, 폭탄을 재활용하여 액세서리도 만든다. 생각하지도 못한 것에서 우리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생활용품들이 많아서 놀랐다. 찾아보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안 하고, 모른 척하고 살아왔는지 반성의 시간이 참, 깊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환경문제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일상의 불편함이 지구를 살리는 아이디어로 변한다는 게 이 책이 전하는 놀라움이다. 사실 아는 것도 있었지만 몰랐던 것도 많았기에, 이 책에서 소개해주는 기업이나 나라의 방법들이 신기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으로 지구의 쓰레기를 줄이는 참신한 방법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친환경 소비 생활, 재활용으로 쓰레기가 예술이 되는 놀라움과 상상력, 늘어나는 전자폐기물에서 광물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방법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방치된 산업시설을 도시재생으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생태여행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배우게 한다. 세계 환경문제를 우리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걸 설명하면서,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게 우리의 과제임을 말한다.


며칠 전에는 비 오는 날씨에 꿉꿉함을 견디지 못해서 신상 제습기를 주문했다. 몇 년 동안 고민하다가 이제 겨우 주문했으니 충동 구매가 아니라고 정당화하면서, 몇 시간 틀어놨다고 방안이 뽀송뽀송해지는 걸 경험하고 신세계에 빠진 듯했다. 이걸 왜 이제야 샀을까 하며 신났었는데, 이 책 읽다 보니 진짜 내가 편해지자고 샀던 이런 제품들이 지구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 비가 오고 날씨 흐리고 겨울의 흐린 날씨에 잘 사용할 것 같아서 좋더라만,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옷장을 열고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하는 건 이제 금지어가 됐고, 예쁜 그릇에 눈길이 가면 그냥 남의 것 보는 것으로 만족, 일회용 물티슈가 아니라 걸레를 빨아서 청소하는, 작은 습관들이 나를 살린다는 교훈을 오늘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내가 조금 불편하면 되는 일이 지구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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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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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제들은 요양병원에 모셨어. 매달 돈 걷어 병원비 내고 시간표 짜서 주말마다 들르고. 간병이란 게 그렇잖아. 해도 해도 티도 안 나고. 누가 혼자 독박 쓰다간 화병 나고 말지. 화병뿐이야? 집안이 다 작살나는데. 그래서 우린 딱 엔분의 일로 해.”

예순 살 반장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명주는 협동이 잘되는 반장 형제들이 부러웠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 집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 자기들 먹고살기 힘들다고 부모고 형제고 외면하는 세상에.”

맞아. 병원비는 별도로 하고 하루 간병인 쓰는 것만도 10만 원, 11만 원 하는데, 거기에 기저귓값 삼사십 들지, 잘 봐달라고 간병인한테 몇만 원씩 찔러줘야지. 웬만한 벌이로는 요양병원도 못 보내요.” (87페이지)


이 책을 읽다가 본문의 이 문장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 그것도 부모를 돌보는 일이 당연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몸도 힘들고 내 시간이 없고, 무엇보다 끝을 모를 일에 마음이 더 지쳐갔다. 사람이 뭔가를 할 때 결과를 기대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어떤 결과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도대체 어떤 결과를 기대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게 있다. 내 몸이 그래도 좀 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꼬박꼬박 병원비가 나가고, 시간 내서 병원에 가봐야 하고, 환자가 아니라 돌보는 이들을 위한 간식도 들고 가고. 마음은 여전히 지친 상태였는데, 돈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견디기 힘든 게, 어쩌면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주변에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도 있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는 친구네는 집안에 가스레인지 사용도 안 하고 있던 정도였다. 가족을 돌본다는 건 이런 불편함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여겼다가 금방 후회했다. 머지않은 시간에 그 돌봄의 역할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까.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서 치매에 걸린 친정엄마를 돌보는 50대의 명주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린 20대 청년 준성의 현재에 미래를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도 다가올 내일을 기다리고 싶은 건, 오늘의 절망이 절망으로만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준성이 치매 걸린 아버지를 돌보며 야간에 대리운전하고,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물리치료 자격증을 준비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대로 머물러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아버지를 돌보는 게 준성의 몫이라면, 더 안정된 환경에서 아버지와 준성 둘 모두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만드는 게 좋을 테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오늘을 살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언제나 돈이 필요했다. 먹고 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아픈 부모를 돌보는 일에도 돈을 필수인데, 돌봄을 하고 있으면 돈을 누가 버나?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하는데 연금이 있었다. 명주에게는 엄마의 연금이 엄마의 병원비며 이들의 생활비가 되었고, 준성에게는 대리운전과 아버지의 연금이 생활비를 채워줬다. 외출에서 돌아온 명주가 죽은 엄마를 발견했을 때, 간병의 고단함과 함께 그녀의 삶도 더 유지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 끝내려고 했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죽은 엄마를 미라로 만들고, 엄마의 공식적인 삶을 끝내지 않은 채로 연금을 받는다. 화상 때문에 통증을 이기지 못하는 그녀가 일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이 비밀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 옆집 청년 준성에게도 명주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명주와 준성, 이들은 같은 경험과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관계이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자기 인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이들이었다.


언젠가 뉴스에서도 봤던 이야기가 이 소설에 등장한다. 부모가 죽은 것을 숨긴 채로 부모의 연금을 꾸준히 받아왔던 자녀의 이야기 말이다. 글쎄, 그 뉴스의 주인공과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얼마나 같은 상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이들이 부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부모의 연금을 계속 받아야만 했던 순간의 선택이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었고, 돌봄이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남겨진 이가 살아가고자 발버둥을 치던 모습이 눈에 그려질 정도다. 간병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순간에 시작되고, 끝이 없는 터널을 통과하는 시간이 되고, 그 터널의 끝에서 마주하는 게 행복만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돌봄의 대상이 되었던 이가 죽거나, 이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생계를 위해 불법적인 선택을 하거나, 오랜 시간 빚에 시달리다가 인생이 끝나거나. , 그런 결말이 저절로 그려지는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테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부담하는 구조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한꺼번에 바꾸지 못하는 것도 모르지 않기에 답답하게 읽히기도 했다. 그렇게 두 주인공에게 한없이 감정을 이입하며 읽다가도, 심장 쫄깃해지는 긴장감 또한 놓치지 않게 그려내는 소설이기도 하다. 명주가 관을 사다가 엄마의 시신을 숨기기 시작했을 때,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틀어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수시로 방을 소독하며 시신의 부패를 늦추려는 노력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누군가는 알아채지 않을까? 생활 흔적이 없으면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생기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들이 있다. 명주도 몰랐던 엄마의 남자친구 진천할아버지, 오랜 세월 연락도 없이 살다가 엄마의 인생을 갉아먹으려 나타난 딸 은진. 수시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 진천할아버지는 호의가 가득했지만, 명주의 딸 은진은 이 소설의 빌런이다. 어쨌거나 명주에게 이들은 이 순간 예상하지 않았던 복병들이다. 방법은 하나, 방안에 둔 엄마의 시신을 이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만 한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이 어땠으리라는 건 짐작되기에, 명주와 준성의 행동과 선택에 누가 돌을 던지며 욕할 수 있을까 싶다만.


눈이 쏟아지던 고속도로를 지나는 이들의 내일은 어떨까. 겨울이 이렇게 지나고 있으니 좀 괜찮아지지는 않을까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다지 밝아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런대로 또 살아가면서 오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명주와 준성이 연대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간병도 각자의 몫이고, 남겨진 이의 삶도 다 자기가 꾸려나가야 하니까. 그런데도 이들이 느끼는 공포나 죄책감이 더는 이들을 감싸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오늘 즐거웠으면 좋겠다. 간병을 단순하게 돌보는 일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이 소설에 많은 이가 관심 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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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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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정작 읽어본 적이 없는 유명한 이야기 중의 하나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항상 다짐하면서도 정작 읽을 시간이 없다고 밀어두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레고르 잠자는 갑자기 왜 곤충으로 변했는지, 그의 변신 후 가족들은 또 어떻게 변신했는지 궁금했던 것도 컸지만,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그 질문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자기가 아침에 일어났는데 곤충으로 변해있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한 번쯤은 묻는다고 한다. 아마 이 책의 내용에서 시작된 질문인 듯하다. 갑자기 내 아이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순간 말문이 막히고 버벅거리지 않을까 싶더라.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사랑을 가득 담아 가족이란 이름의 따뜻함만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말이다. 내 가족이 곤충으로 변했을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의 한계를, 이미 한 번쯤은 작게나마 경험한 것 같아서 그 순간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후반부에 하녀의 말로 판단하자면, 아마도 말똥구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들다. 병가를 내고 하루 쉬지 그러냐고 생각하던 찰나, 출장영업사원으로 일하는 그는 그날 아침에 시간 맞춰 기차를 타야 했다. 월급쟁이의 비애가 이런 건가. 아프거나 사정이 생겨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하고, 몇 분의 지각에도 밥줄이 흔들릴 수 있는 현실이여.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가 방에서 나오지 않자 식구들은 돌아가면서 그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가 잠긴 문을 열지 않고 알겠다며 대답만 하자, 식구들은 그 대답(?)을 듣고 돌아간다. 잠시 후, 지배인이 그의 집을 찾아온다. 그가 기차를 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왔겠지. 잠긴 방문 사이로 그가 아무리 말을 해도 그의 가족들과 지배인은 알아듣지 못하고, 어쩌다 열린 방문을 사이에 두고 모두가 얼어붙는다. 인간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하게 생긴 벌레 같은 존재가 있을 뿐이었다. 놀란 지배인은 뒷걸음질 치면서 그의 집을 떠났고, 가족들은 이 사태에 대해 놀랄 사이도 없이 적응해야만 했다.


그가 벌레의 외모로 변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열심히 말한다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가족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그가 하는 말은 그저 동물의 소리로 들렸다. 소통이 안 되는 건 당연했다. 그는 힘껏 그의 사정, 마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받고 싶었으나, 가족들은 변한 그의 존재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만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이 가족의 수입원인 그가 일을 못 하게 되었으니, 당장 이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그도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벌레의 몸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기 방 안에서 열심히 걷고 매달리고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의 방문은 처음 그가 벌레로 변한 날부터 꽉 닫혀 있었다. 그가 방 밖으로 나와 할 수 있는 게 없었을뿐더러, 가족들은 아직도 그의 변한 외모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그의 방안으로 그의 음식을 갖다 주거나, 그의 방을 청소해주는 게 전부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쉽다. 그가 돈을 벌지 못하니 다른 가족이 생계에 뛰어들면 된다. 하지만 이들이 일하지 못하는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 아버지는 과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은행의 제복을 입은 채로 앉아 있기만 하고, 어머니는 천식으로 건강 때문에 일을 못 하고, 여동생은 뭐, 그냥 처음부터 일을 안 해서? 어쨌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던 그는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 누가 볼까 두렵고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존재로 남았을 뿐이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도 갑작스럽게 생계를 걱정하게 되는 것도, 지치고 막막할 테다. 이 과정에서 왜 이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병 앞에 효자 없다라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해야 했고, 좋게든 나쁘게든 언젠가는 끝이 있을 테니 지금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게 내 인생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인지 답을 찾고 싶기도 했다.


처음 이 소설에서 가족들이 벌레로 변한 그를 돌보는 상황 자체가 혼란스러웠지만,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그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동안 가족을 돌봐왔던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를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의 여동생이 더 참을 수 없다고,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외치던 순간, 알았다. 그 어느 것도 당연한 건 없다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면서도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변하기 전부터 그의 가족이 보여준 행태는 너무 이기적이기도 했다. 가족의 빚을 그 혼자 감당하는 게 맞는 건가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가 싶어서. 그의 모습이 변하고, 그가 더는 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니, 이 가족은 변한다. 소파에 앉아 늘어진 뱃살을 보여주기만 했던 아버지는 외모를 말끔하게 갖추고 외출을 한다. 아프다던 어머니는 하숙인을 챙길 정도가 된다. 착하게만 보였던 여동생은 오빠를 챙긴다는 이유로 이 가족의 꼭대기에 군림하려고 한다. 이 가족이 이렇게 활동적인 사람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음에도 그의 등에 빨대 꽂고 살아왔던 건가.


이 가족에게 그레고리 잠자의 존재는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이었을 텐데, 그 역할을 잃자 그의 존재도 사라져간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까지 추락한다. 여동생에게는 혐오의 대상으로, 어머니에게는 안쓰러운 아들이지만 부담스러움으로, 아버지에게는 이 집안에서 별 쓸모없어 사과를 막 던져도 되는 벌레쯤으로.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인정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 역할과 능력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가족 안에서 존중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당연함은 사라졌다. 가족 관계에서도 분명하게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그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기본 예의였다. 부모가 아이를 낳았으니 키우는 게 당연한 책임이고 역할인 것처럼, 자녀나 다른 구성원에게도 각자의 책임과 역할이 있다. 모두가 함께 자기 자리에서 상호협조했을 때 가족의 이름은 힘을 가진다. 일방적으로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은 게, 맞는 거였다. 새삼스럽게도, 그걸 이렇게 다시 알게 된다.


별것 아닌 사과 한 알을 맞고 죽어가는 그를 보면서, 인간의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나 싶어서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 살면서 직업이란 생계와 연결되기도 하지만, 자기 존재를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변신하고, 직업을 잃고, 자기 기능이 멈춰버린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잃기 쉬웠다. 가족의 생활비를 벌고 있을 때 그의 존재는 인정받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희미해져 버리거나 사라진다. 이 상황이 그레고르 잠자만의 일이 되는 걸까? 바로 1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게 우리 현실인데, 매 순간 불확실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무엇을 장담하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삶의 모든 순간 우리는 불안을 함께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불안은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때의 기회를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확신하며 살아갈 수 없는 게 삶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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