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행복합니다
김가지(김예지) 지음 / 책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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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날짜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학생들 시험과 상관없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조카들이 있다 보니 아주 남의 일도 아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는 고3 조카가 전화했다. 중간고사와 수능시험, 수시고사를 앞두고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한다면서, 시험이 끝나면 보자고 했다. 이놈의 시험은 언제 끝이 있으려나. 이 나이를 먹고도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공부하기 싫어서 괴롭다. 계약직이나 단순 업무 아르바이트하더라도 서류 심사와 면접까지 통과해야 하는 걸 보면, 아마 죽을 때까지 시험 보고 평가받는 일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조카와 통화하면서 마지막 인사로 건넨 말은, 지나간 일에 미련 두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라도 시험을 못 봤다고, 점수가 몇 점 부족하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말했다. 이게 말이 되는지 아닌지, 이상하게 그것마저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어쩌랴. 누구에게나 한계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은 제목 때문에 펼쳐보게 됐다. 청소일을 하는 게 뭐가 어떻다고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는지 궁금했다. 말 그대로다. 청소일이 뭐? 왜?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인데, 그게 왜 무언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어떤 인식, 청소 일은 많이 못 배우고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일로 보이는 걸까? 20대의 젊은 여성이 청소일을 하는 게 낯설긴 한가 보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기 꿈을 위해서 나아가는 그 과정을 묵묵히 걸어가는 저자의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누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마다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곤 했다.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지금 자기 상황을 열심히 사는 사람.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부모의 좋은 환경,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으니까. 그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저절로 알게 되더라. 사람의 상식적인 태도는 가방끈과는 무관했고, 돈이 많다고 다 예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기도 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과 마음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저자는 그림만 그리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림만으로는 일상에서 지출되는 모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투잡은 기본이 되어야 했다. 그때 청소일을 시작했다. 이른바 요즘에 종종 듣게 되는 N잡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안이 가득했을 때, 저자는 엄마가 하는 청소 일을 같이하게 됐다. 혹시 엄마가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은근히 각인된 세상의 편견을 무시하고자 한다. 안정된 생계를 위해 청소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간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자기 몫을 살아가면서 밥벌이하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귀하고 또 귀하다는 것. 그런데 세상이 내놓으라는 답은 그것과 달랐다. 이미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는 어떤 기준이 답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어디 내놔도 감탄할 수 있는 명함을 가지는 게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속상하다.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지 보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서 이 책이 의미 있다.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어떤 길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꿈을 꾸다가도 방향 전환을 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던 것을 후회만 할 텐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가끔은 익숙하지 않은 길로 돌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진 않겠지만, 이게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방식을 불안하지 않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른 선택의 삶을 원하면서도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에, 내 선택에 선을 넘어 참견하려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에 나도 모르게 움츠려둘 때가 있는 걸 보면. 그 선택이나 답은 지금 바로 알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야 확인하거나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인내심이 필요하다. 선택하는 당사자도, 옆에서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그러니 각자가 원하는, 진정한 나의 삶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좀,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기를.


수능을 앞둔 조카는 수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수학 교사를 하고 싶은지 수학을 연구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시 또 수학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학교에 다니다가 또 다른 선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자기가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현실은 청소일을 하고, 청소일로 소득을 올리고 그 여유로 그림 그리는 것에 만족하게 된 것처럼,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울 가능성도 충분히 크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부모 못지않게 그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는 이모의 기도를 담아, 지금 눈앞에 놓은 과제인 수능시험을 응원한다.



#저청소일하는데요 #김예지 #책폴 #에세이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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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3 - 하우스메이드의 집
프리다 맥파든 지음, 정미정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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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위험하고 나쁜 일을 하긴 했지만, 어려움에 부닥친 여성들을 도우면서 밀리가 덕을 쌓았나 보다. 밀리의 인생 이제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좁은 집이 불편하니 더 큰 집으로 이사도 했다. 내 아이들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바람을 드디어 이뤄냈다. 뉴욕의 좁은 집에서 살던 밀리의 가족은 롱아일랜드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밀리도 우리네 인생과 다를 거 없었다. 크고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도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대출금을 갚으려면 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야 했다. 돈 때문에 걱정하는 걸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려면 엔조가 하던 일을 롱아일랜드로 옮겨와야 하는데, 새로운 고객을 찾는 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이 집의 상황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옆집 여자 수젯은 부동산 중개업자로 엔조에게 고객을 많이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앞집 여자 재니스는 세상의 위험에 과하게 걱정하고 살아가면서 예민하게 군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밀리는 수젯과 재니스를 보면서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수젯은 엔조에게 추파를 던지며 밀리를 짜증 나게 하고, 재니스는 밀리의 집을 감시하듯 쳐다보면서 불안감을 심어준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지만, 역시 이웃을 잘 만나야 일상이 평온하다.


수젯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밀리는 퇴근 후 수젯의 집으로 향한다. 수젯과 담판을 짓고 다시는 엔조에게 추근대지 못하도록, 자기 신경 거슬리는 짓을 못 하도록 따끔하게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막상 수젯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다시 나와야 했다. 거실 바닥에 목이 베인 시체가 있었고, 그 주변으로 피가 흥건하게 퍼져 있었다.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조용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다시 살인 사건에 말려들고 말았다.


모든 게 안정되어 간다고 믿었는데, 왜 또 이상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지. 엔조도 하는 일이 정착되고 있었고, 사회복지사 일을 하는 밀리도 자기 일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도 밝게 잘 지내면서 새로 옮긴 학교생활도 적응하고 있었는데, 왜... 본의 아니게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 밀리는 자기 전과 때문에 용의자나 범인으로 몰릴까 봐 걱정이다. 아직 아이들이 밀리의 과거를 알지 못하기에 더 걱정되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족, 아이들, 어렵게 일군 행복을 지켜야만 했기에, 이 살인 사건에 연관되지 않은 존재로 남으려면 뭐든 해야 했다. 그런데, 뭘 해야 하지?


심장을 조여 오는 심리 스릴러라고 했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솔직히 중반까지는 밀리와 엔조의 결혼 후 10여 년 세월이 종종 언급되면서, 옆집 여자 수젯과의 갈등에 이 부부에게 권태기가 왔나 싶기도 했고, 본격적인 스릴러는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자꾸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레발만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밀리와 엔조가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부모로 등장한다는 소개 글에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 같아서 우려했어도, 앞서 읽은 시리즈의 두 편은 나름 괜찮았기에 역시나 이번에도 밀리의 활약을 기대했건만. 솔직히 너무 지루해서, 이 시리즈가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3편 같이 흘러간다면 다음 편은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아, 어쩌면 세대가 달라지면서 주인공이 바뀌게 된다면, 혹시 분위기가 다시 시리즈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재미가 살아날지도.



#하우스메이드3 #프리다맥파든 #북플라자 #소설 #추리 #스릴러 #하우스메이드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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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와 광기
야콥 하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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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하고 있을 때(그래봤자 운동을 싫어하니 먹는 것만 조절하고 있을 때), 가장 힘든 건 한밤중에 허기가 찾아올 때다. 먹는 양을 줄이고 움직임을 평소보다 더 늘리다 보니 때때로 찾아오는 허기짐은 배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빨래하러 세탁기 쪽으로 가고 있는데, 아파트 뒤쪽에 열어둔 베란다 문틈으로 라면 냄새가 밀려 들어오더라. 하아, 도대체 누구냐. 누가 이 시간에 라면 냄새를 풍기며 내 속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냐. 화가 난다. 먹으면 그만인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마음은 곧 분노가 된다. 내가 안 먹는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먹는다고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물론 건강과 외모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 맘대로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온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슬프다.


나의 상황과 조금 다른 얘기지만, 주인공이 자기가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는 상황은 내가 경험한 다이어트의 시간과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까운 미래의 독일. 채식주의가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개인의 기호에 맞게 먹는 걸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채식주의를 안 하면 이상한 인간 취급받는 분위기였다. 알 것 같다. 틀린 건 아닌데 틀렸다고 보는 시선들 말이다. 그런 분위기가 거기서 멈췄다면 다행인데, 이미 세상이 달라졌다. 정육점이 거의 사라졌고, 그나마 몇 개 안 남은 정육점은 유해시설로 분류되었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떻게 정육점이 유해시설이 될 수 있느냐고?! 주인공인 ‘나’는 육식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지만, 자신을 미개인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육식을 끊어보기로 한다.


채식주의 생활에 들어간 ‘나’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렇게 바뀐 세상에 일원으로 인정받는 건 쉬웠으나, 그의 몸은 폐허가 되어갔다. 육식의 금단 증상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머릿속에는 고기 생각으로 가득했다. 눈앞으로 헛것이 보이는 것은 일상이고, 치아도 빠졌다. 고기가 채워주던 단백질이 부족해서 그런가. 얼마나 고기가 그리웠던지, 누가 먹다가 땅에 떨어트린 소시지가 그의 시선을 한참 붙잡기도 했다. 갑자기 채식만 해서 그런지 왜인지 똥 싸는 것도 문제가 생겼다. 이상하다. 나는 변비가 찾아오려고 하면 일부러 채소를 더 먹고 공복에 차가운 우유도 때려 넣고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갑자기 바뀐 채식의 삶으로 똥 싸는 게 어려워졌다니. 갑자기 채식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먹는 걸 조절하기 어려웠을 때 단식원에 들어가 볼까 고민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혼자서 이 조절에 성공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채식주의 세상에 속하고자 애쓰던 그는 유명한 채식주의 블로거 ‘톰 두부’가 공유해주는 정보를 참고해서 채식 생활을 잘 이뤄내고 싶었다. ‘톰 두부’는 ‘나’에게, 이 위기를 견디는 방식의 하나로 육식이 그리울 때마다 글로 써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먹지 못하는, 육식으로 가득했던 삶의 즐거움을 글로 적어보면서 상상으로나마 섭취해보라는 의미인가. 어쨌든 뭐든 이 위기를 넘기는 방법이 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점점 ‘나’에게도 채식이 익숙해지는 듯했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육식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오를 거로 믿었다. 남편의 육식을 이해하지 못해 떠난 아내도, 회사의 동료 속에도 다시 속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렇게 왕따 취급받는 삶은 더는 겪고 싶지 않았다. 좋았어. 이제 ‘나’도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어. 성공의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목표를 향해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다고 믿을 때. 그 믿음을 훼손하는 무리가 찾아오는 건 다이어트의 순간과 닮았다. 식사 조절에 내 몸이 익숙해질 무렵, 줄어든 식사량이나 칼로리 낮은 음식 섭취에 적응되어 안심할 때, 한밤중의 라면 냄새처럼, 어느 상가 근처를 지나다가 달콤·짭조름한 갈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처럼, 나의 뇌를 뒤흔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라면 국물 한 입만, 잘 익은 갈비 한 조각만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미치겠다. 이미 아는 맛이라 견디는 게 더 힘들다. 주인공인 ‘나’에게도 라면 냄새, 갈비 냄새가 찾아왔다. ‘톰 두부’가 비건 친구들을 앞세워 채식주의를 주도하려고 했다면, 또 다른 토론의 장에서는 ‘육수맛내기69’라는 닉네임으로 글을 쓰는 인물 ‘베르트’가 채식주의를 비판하면서 육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피력했다. ‘나’는 베르트를 만나고 채식주의를 중단하기로 한다. 채식주의가 선전하는 좋은 의도를 믿지 말라면서 그가 권하는 육수 한 잔에 마음이 요동친다. 우리가 혹한 채식주의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면서 속지 말라고. 동물의 존재 이유가 육식주의자를 위해서라나 뭐라나, 비타민이나 두부로 육식을 대신하며 채식의 건강함을 말하는 게 특정 회사의 배를 불리는 계략이라는 듯이 말하는 베르트의 언변에 ‘나’의 몸은 다시 육식의 세상에 푹 담긴다.


‘나’는 어떻게 변할까. 주인공이 채식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이유도 괜히 억울한 마음이 컸지만, 다시 육식의 세상으로 뛰어든 주인공이 어떤 삶을 또 만들어갈지 궁금했다. 이미 아는 맛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 고기를 굽고, 맛있게 적당히 익힌 고기를 씹는 식감, 잘 어우러지는 소스를 얹어서 한입 베어 물면 입에서 녹아내리는 그 맛. 아.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나’는 이 즐거움을 나만 느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자기와 같은, 채식주의를 하다가 육식주의자로 개종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가 베르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스러운 채식주의에서 행복을 되찾은 육식주의자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 자기와 같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공감하면서.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새로운 육식주의 신도의 전도에 성공하면서, 이제 그의 모든 삶은 육식주의로 가득 채워졌다. 다시는 과거로, 사람들의 시선에 총을 맞으면서 견뎌냈던 채식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리. 절대.


주인공의 육식주의는 계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혹시나 다른 채식주의자들이 그를 공격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채식주의자들은 돌아선 그의 육식주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니, 그의 사회생활이 예전의 일상으로 정상으로 여겼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 같은 독자의 이런 평범한(?) 궁금증이나 결말을 깡그리 무시한 것처럼, 전혀 다른 반전을 내놓음으로써 뒤통수를 갈겼다. 아니, 이럴 수가! 정말이지,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이었나? 아니, 추리소설이 아니어도 이런 반전이 가능하구나. 이 배신감, 이 분노를 책임지라고. 아아아아아아악~~!!


채식이냐 육식이냐 그걸 따지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의 육식을 위해 재배하듯 키워지는 가공육의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만 해야 하는 건가 하면 그것도 아닌 듯하다. 극과 극으로 치달을 필요도 없고, 최소한 각자가 바라는 식습관의 방향, 육식이든 채식이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맞는 거 아닌가? 타인이 나의 식탁 위 음식을 정하거나 방향을 정하는 건 아니어야 하니까. 그래도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육식과 채식은 공존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는데, 그 육식의 식탁에 오르기 위한 고기들을 어떻게 키워내고 가공해야 하는 게 맞는 방식인지 고민할 필요는 있겠다. 이 소설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결론처럼, 그들 모두 옳습니다.


“부탁입니다. 제게는 창살 밖의 자유로운 삶이란 없습니다. 저 밖에서는 두 번 다시 안전해질 수 없을 겁니다. 목숨을 걸지 않고는 길을 건널 수도, 레스토랑에 갈 수도, 이 세상 어느 간이식당에서 먹을 수도 없을 거예요. (중략) 너무나 모순된 이야기로 들리지만, 그들 모두 옳습니다.” (125페이지)



#소시지와광기 #야콥하인 #문학동네 #소설 #독일소설 #문학

#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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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이라서 ㅣ Dear 그림책
한지원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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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 못 봤어?”

“거기 서랍 안에.”

“없는데?”

“다 떨어졌나? 그 많던 게.”


흔하디흔한 소모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도 ‘다 있다는 그 매장’에서 사서 온 면봉. 1천 개가 들어있는데, 1천 원이다. 한 개에 1원이라는 말인가. 요즘 세상에서 이런 가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지만, ‘다 있는 매장’이라 가능한 가격인가 생각하기로 한다. 어쨌든, 언젠 사다 두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사용해왔을 거다. 최소 1년 이상은 충분히 사용할 양에 1천 원이라는 가격은 합리적인가 아닌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사용해야지.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렸으니, 가격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게 될 테니 말이다.


이 면봉이란 아이는 스스로 광부라고 말한다. 어둡고(콧구멍), 비좁은 동굴(귓구멍)에 들어가서, 누렇고 딱딱한 걸 캐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에이~지지~) 얼굴이 까매지도록 석탄을 캐기도 하고(눈화장 정리), 가끔은 피를 묻히기도 한다(립스틱 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문질문질~). 때로는 구급약 상자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지키기도 하고, 공구함의 보조 기구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특히 쌓여가기 쉬운 틈새의 먼지를 쓱싹쓱싹 닦아내면서 꼼꼼함을 자랑하기도 한다(놓치지 않을 거예요~).




이런 거 기억하면 정말 옛날(?) 사람인데, 요즘 사람 중에 성냥 아는 사람 있을까? 십 대인 우리 조카들도 어렸을 때는 거의 몰랐던데, 최근에는 케이크 사면서 초를 같이 받을 때 긴 성냥을 주기도 하고, 언젠가는 상품 구매하면서 사은품으로 제작된 성냥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 예전에 그거 있었잖아. 팔각성냥. 그 팔각 통에 가득 담겨 있던 성냥이 굳이 불을 붙이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자꾸만 사라지는 이상한 일이 흔했다. 그 안에 담긴 성냥 꺼내서 사각으로 만든 도형 이동 퍼즐에 쓰기도 했는데, 성냥갑에서 나온 개수와 사용하고 다시 들어가는 개수가 꼭 달라진다. 어디로 탈출한 건지 증발한 건지. 아, 내가 성냥 얘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닌데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그때의 우리가 성냥갑으로 놀던 퍼즐에 지금은 면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거지. 성냥 길이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워져서, 혹시나 이런 퍼즐을 하고 싶다면 자리를 넓게 펴야 할 것 같아.


생각보다 면봉이 하는 일이 참 많았다. 일상의 곳곳에 비치되어 손만 뻗으면 손에 닿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자리에 있었다. 쓸모가 많아서 귀한 아이인데, 그 귀함을 모른 채로 가볍게 사용해온 건 아닌가 싶어서 미안해지기도 하더라. 밀도가 높았던 면봉의 집에서 면봉이 하나둘씩 탈출하면서 점점 그 대열이 흐트러진다. 반듯하게 세워져 있던 아이들이 가로로 세로로 대각선으로 그 자리를 이동하면서, 몇몇은 사라져서 안 보이기도 한다. 시절 인연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건가 싶을 때, 한 친구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거여. 면봉의 삶이 지겨워졌나? 새롭게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건가? 뭐지, 도대체?


가끔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지금도 수시로 그런 감정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는 이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건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한 번씩 자기 검열 같은 시간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타인의 인생이 기준이 된 계산법은 항상 어긋났고, 나와 맞지 않았다. 기본적인 성향부터 살아온 환경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관의 기준까지 달랐다. 그러니 비교 대상부터 틀렸던 거다. 그냥 나 자신과 비교하는 나의 모습이 우선이어야 했다는 것을.



면봉도 꿈이 있었다. 오색찬란한 색을 칠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더 넓은 세상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내가 갖지 못한 타인의 재능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수시로 묻기도 했다. 처음에, 면봉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워하기도 했지만, 그 화려함 뒤로 친구의 진심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뭔가 크게 다를 줄 알았는데, 결국 변신에 성공한 그 친구가 자기와 비슷한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인생의 얄궂음을 떠올린다. 여기서 뛰쳐나가면, 지금과 다른 것을 향해 가면 인생 항로 크게 달라질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더라 하는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다른 시도를 하지 말라거나, 변화를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 모습이 하찮거나 쓸모없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가끔 부러질 때도 있지만, 이게 끝이 아님을. 재밌고 설레는 일들이 생기는 게 우리 일상일 테니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이 가치 있음을 시사하는 이야기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면봉이 주인공이 되어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는지 놀라우면서, 습관적으로 면봉을 사용하면서 겪었던 일상의 소박한 에피소드에 가치를 담아냈다. 한 개에 1원 취급받고, 함부로 쓰고 버려도 괜찮은 일회용품 같지만, 없으면 불편한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아닌가. 앞으로 면봉 사러 가면 분명 지금과 다른 시선으로, 이 제품의 가치를 새롭게 느낄 것 같다.



* 이 책에 면봉을 표현한 즐겁고 유쾌한 그림이 많이 담겨 있다.

  그 그림을 다 옮기고 싶은데, 스포일러가 될 까봐 못 옮기는 게 아쉽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면봉의 궁금하다면 펼쳐 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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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9-1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면봉을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군요. 굿 아이디어 같습니다.

구단씨 2025-09-19 14:08   좋아요 0 | URL
재밌었어요.
때마침 면봉 사가지고 들어온 날이어서요. ^^
면봉이 하는 일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게 놀랍기도 하네요.
 
소란한 속삭임 ㅣ 위픽
예소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품절




이런 경험, 참 오랜만이다. 많은 사람이 아닌 척하며 살아가기 바쁜 시대에, ‘-척’하지 않아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만 같다. 오늘도 나는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지 못해서 한숨만 푹푹 쉬곤 했다. 반복되는 한숨 소리에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고, 안 그럼 병이 생긴다고 말했다. 안다. 그래도 그 말을 다 하고 살지 못해서 얻어지는 병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슴 속에 묻어두는 말들이 스트레스가 되어, 병으로 쌓여가는 것을 놓치고 있다가 항암 치료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오늘의 나는 그랬다. 해야 할 말을 못 해서 끙끙 앓다가 돌아와서, 몸보다 마음이 지쳐 곯아떨어질 것 같은 날이다. 희한하게도 이 소설 속 네 명의 여성에게서, 오늘의 나를 보았고, 세상 어디선가 나와 같은 오늘을 보낸 사람들을 떠올렸다.


‘모아’에게 퇴근길 1시간이 종일 일에 시달리던 회사에서의 시간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만원 지하철, 휴대폰이든 뭐든 큰 소리로 틀어놓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 때문에 말이다. 그걸 견디며 얼른 목적지에서 내리기만을 바랄 텐데, 그때 한 여성이 큰 소리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보고 있는 아저씨에게 시끄럽다고 말한다.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낄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틀어놓지도 않았겠지. 민폐를 끼치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아저씨를 물리칠 방법은 없을까? 그때 모아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내는 여성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서 모아도 한마디 거든다. 시끄럽다고. 이상하다. 혼자 옳은 말을 하면 잘 들어주지 않는 상대방도, 여러 명이 옳은 소리를 하니 찌그러진다.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참나. 모아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던 여성, ‘시내’는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고, 두 번째 회원으로 모아를 가입시킨다. 이 모임은 무엇을 하는 건가? 비밀이든 아니든,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여야 한다’라는 게 이 모임의 취지다. 뭘 속삭여?


이 모임의 세 번째 회원은 ‘심판의 날’을 외치며 예수를 부르짖는 ‘수자’였고, 네 번째 회원은 시내의 아파트 위층에 사는 ‘두리’였다. 이상하게 모이게 된 네 명의 여성은 각자 숨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고, 이들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은 뻔하다. 시내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더 예민하게, 모아는 소란을 참아내며 내일도 한 시간 동안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할 것이다. 수자는 더 시끄럽게 예수를 외치며 거리를 누빌 것이고, 두리는 썩고 쌓여가는 쓰레기를 가족 삼아 그 집에서 나오지 않은 채로 살아가겠지.


이유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든지, 마치 말하면 안 될 것처럼 여기며 고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이거 말하면 부끄러울 거 같은데, 남들이 흉볼 거 같은데, 그랬던 마음을 정말 비밀을 털어놓듯 속삭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별것 아닌 일이었을 텐데, 뭐가 어려워서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이다 보니, 다른 사람이 그 이야기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듣고 나니, 그냥 쉽게 꺼내도 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속삭이듯 말하니 중요한 일처럼 들리고, 그렇게 한번 말을 꺼내고 보니 속이 후련해지면서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는 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아,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내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누고, 이렇게 하는 말들이 소란스럽지만 중요한 속삭임으로 의미가 있다. 큰 소리로 외치며 따지지 않고, 조용히 들어주는 일. 간섭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를 존중한다. 이게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늘 어렵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동시에 나의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는 거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속삭이는 일은 그 선을 지켰을 때 가능해진다. 모아의 말처럼, 속삭이는 일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려면 말이다. 다 잘 될 거라고, 해피엔딩의 결말처럼 보이는 이 소설의 끝이 마냥 개운하진 않지만, 어차피 우리가 소설을 읽는 많은 이유 중의 하나도 이러한 것일 테니 아주 이해 못할 결말도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속 상처도 치유되고 위로받기를, 삶의 긍정적인 자세를 배우고 싶은 바람으로 오늘도 한 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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