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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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복도, 입추도 지났는데, 너무 덥다. 늘 그렇듯, 읽고 싶은 책 쌓아두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계절이다. 게다가 깜냥도 안 되면서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벌여놓으니, 멀티가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은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야금야금 책을 한 권씩 사고, 참새방앗간 들르듯 도서관에 가서 책도 좀 빌려오고, 그러다 다 못 읽고 반납하는 건 습관이 되어버렸고.


이 책을 읽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해야 할 일을 쌓아두고 미적거리면서 시간만 보내던 중, 어차피 할 일도 안 하고 이렇게 시간 보내야 한다면 읽고 싶은 책이라도 읽자는 해야 할 일 현명하게 미루기(?)’를 떠올렸다. 그럼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역시 더운 여름에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추리소설이 최고라는 생각은 당연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최근작보다 오래전에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목록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그 유명한 테스 게리첸의 외과의사를 고민 없이 선택했다. 책값은 저렴한데, 절판이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기에 쓰레빠 끌고 어슬렁거리며 또 도서관에 입성하여 이 책을 찾았는데. 오마낫! 이 책 상태가 영 거시기하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 빌려오긴 했지만, 며칠째 쌓아둔 책 사이에서 또 잊혀가고 반납일이 다 되어간다. 안 되겠구나 싶어서 그냥 반납하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물감 님의 페이퍼에서 다시 언급된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이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에 기어코 읽고야 말았다.




여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한밤중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한 범인, 앤드루 캐프라는 피해자를 강간하고 배를 갈라 자궁을 꺼내 간다. 4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다섯 번째 희생자가 될뻔했던 캐서린 코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연쇄살인은 끝났지만,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캐서린의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2년의 세월 동안 세상에 벽을 세우고, 집안에 갇혀 살다시피 한 그녀가 이제 좀 숨을 쉬려나 싶은 순간, 3년 만에 다시 앤드루 캐프라가 저질렀던 연쇄살인이 시작된다. 분명 앤드루 캐프라는 죽었다. 그럼 그때의 사건을 똑같이 재현하는 이 살인마는 누구인가? 이번에도 똑같다. 피해자들은 목에 깊은 상처로 피를 흘리고, 배가 갈라있으며 자궁이 사라졌다. 날카로운 수술 솜씨,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해 보이는 이 살인마는 어느 순간 외과의사라고 불린다.


뭐 단순한 살인마는 아니라는 게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으로 이미 밝혀졌다. 보스톤 경찰청의 강력반 형사 토마스 무어와 제인 리즐리 형사가 이 사건의 추적을 시작하는데,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지난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캐서린 코델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막막할 때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건은 당연지사. 게다가 그때의 사건을 재현하는 이 살인마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 역시 앤드루 캐프라는 파악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추적하다가 보니, 어느 순간 범인의 근처에 다다르게 되고 오래전 사건부터의 또 다른 진실이 펼쳐지게 된다.


전직 의사인 작가가 어련히 알아서 잘 썼겠느냐 마는, 의학적인 지식 없이도 의학적인 장면들을 흥미롭게 읽게 된다.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아마 많은 독자가 읽으면서 저절로 상상하고 범인을 추리하게 될 거다. 캐서린 코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많은 사건과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부터, 범인이 다음 행보로 어떤 짓을 저지를지 예측하는 긴장감까지. 나 역시 많은 사람을 의심했다. 세상에는 안 그럴 것처럼 평범하게 생겨서 또라이 짓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사람의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에 갇히면 안 된다고 스스로 세뇌하면서 살고 있지만(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그러면서도 선뜻 이미지가 주는 호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 정신 차려. 섬세하게, 날카롭게,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보란 말이야. 그래서 집중하고 의심했다. 캐서린 옆의 가장 친한 동료이자 그녀에게 끊임없이 호감을 보이던 피터 팰코. 그 정도면 호감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워 보이던데? 아내를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토마스 무어도 의심된다. 점잖아 보이고, 동료 여자 형사를 무시하는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조차 그대로 볼 수만은 없었다. 토마스 무어와 파트너가 된 제인 리즐리 형사 역시 매의 눈으로 봤다. 그녀는 살면서 쌓아온 성차별의 역사를 가진 인물이기에, 세상에 대한 증오나 뭐 예쁜 여자에 대한 혐오 같은 뭐 이상한 개념이 머릿속에 쌓여 혹시 이런 살인을 저지른 건 아닐까 싶은? (상상이 너무 나갔나?)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을 범인으로 의심할 때마다, 중간에 한 번씩 등장하는 범인의 독백은 이런 의심을 더욱 짙게 했다. 화자인 로 시작하는 범인의 이야기는 도대체 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하기도 했다. 너무 쉽게 의심되는 인물은 아닐 것 같은데, 상황이 흘러갈 때마다 너무 쉽게 의심되는 인물을 다시 소환하게 되고. 그러다가 소설의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이 독백의 는 누구인지 점점 범위가 좁혀온다. 특히 캐서린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며 위급한 순간에 완벽하게 해내는 수술 실력은, 범인이 수술 도구로 잔인하게 여자를 모습과 대조적이다. 같은 도구로 누구는 사람을 살리고 누구는 사람을 죽이네? 작가의 전문성이 발휘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직 의사인 작가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이면서, 그 안에서 생활하지 않으면 모를 분위기를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과 사람을 죽이는 일이 같을 수도 있다는 묘한 대비를 뿜어낸다.


잔인한 살인 사건과 그 범인 추격하는 과정이 추리소설을 읽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 성폭행당한 여성이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있는지 그 감정을 섬세하게 녹여낸다. (성폭행당하고 신고하지 못하는 그 어려운 마음 같은 거, 사건 이후로 무서워서 문밖에 나가는 일을 포기하는 거 등등) 보이지 않는 인간의 잔인성 역시 줄곧 의심하게 될 것 같다. 착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면서 조용하고 얌전했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로, 누구도 범인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는 게, 어디 살인 사건에서만 알 수 있는 일일까.


 


그나저나 진짜 많은 사람이 읽긴 했나 보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데, 나는 설마 이 책일 줄 몰랐다. 여기저기 테이프가 붙어 있고, 테두리는 누렇고 어둡게 때가 껴있다. 정말 오랫동안 인기 있는 인기도서였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의 손때로 누런 종이가 부풀어 올라 있고, 쩍벌이는 기본이다. 그래, 인기 있는 책의 운명이겠지. 근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책 읽는데 왜 틈새마다 뭐가 그리 묻어 있고 숨어 있냐? 페이지 중간중간에 이물질이 떡이 되어 있고, 갑자기 틈새에서 뭐가 막 떨어진다. , 진짜. 너무 더러워서 빌려올까 말까 몇 초쯤 고민하긴 했다만, 읽고 싶은 유혹이 이기고야 말았다. ㅠㅠ


#외과의사 #테스게리첸 #랜덤하우스코리아 #소설 #추리소설 #스릴러

##책추천 #리졸리아일스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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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8-18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킹왕짱 재밌었다는 강한 인상은 남아있습니다 ㅋㅋㅋ
무더위에 아주 그만인 작품이지요!

구단씨 2023-08-20 22:58   좋아요 1 | URL
몰입도는 좋더라고요.
같은 도구로 대조적인 행동을 하는 캐서린과 범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 - 감기에서 암까지 의학이 더 쉬워지는 생생한 이야기
고병수 지음 / 바틀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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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보던 수술 장면은 언제 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집게로 저렇게 집어서, 양쪽 혈관을 연결하고, 피부를 덮어 또 꿰매고. 인간의 피부가 저렇게 두꺼울까 싶어 궁금하기도 하고, 이렇게 연결한 혈관을 통해 피가 흐르게 되는 게 놀랍기도 하다. 처음부터 의술이 이렇게 진화하진 않았을 테다. 정확하게 증상을 파악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병명은 물론이고, 치료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환자를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그 연구나 치료 방법을 찾아보면서 정착했을 방법이 지금 우리가 아는 의학이겠지.


그 분양에 종사하거나 연관되지 않았다면, 누구도 잘 알지 못할 많은 분야 중의 하나가 의학이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치료받는 게 전부인지라, 이런 책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흥미롭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자 역시 영화광으로, 영화 속 장면들과 의사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에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있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장면에서 의학의 단면을 발견하는 건 물론이고, 오늘날의 치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학의 역사까지 한꺼번에 듣게 된다. 그 안에 우리에게 익숙한 의학 지식이나, 바르다고 믿었던 의학 상식의 오류까지, 의학과 연관된 사회 정치적 문제까지 다양하게 풀어낸다.


영화 <맨 프롬 어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을 통해서 원시 인류의 상처 치료와 질병을 말한다. 아마도 원시시대에는 감염병과 외상이 많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알파 : 위대한 여정>으로 인류 생존을 위한 싸움을 연상하게 한다. 아마 다치고 부러지고 하면서 수술이란 과정이 필요했을 테고, 부목을 대고 묶어주어 고정해서 뼈가 다 붙을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행해진다. 감염으로 썩어가는 부분을 잘라내는 절단술도 있었을 거로 추측한다. 이집트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고대 문명의 의학을 확인하기도 한다.


정말 흥미롭게 봤던 부분이 2장인데, 정신의학에 관한 이야기다. 고대에는 정신질환이 귀신 들린 상태라고 생각해서 무속인이나 사제 등이 치료했다. 가톨릭의 구마 의식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점차 병으로 인식되었으나, 그때만 해도 신경증이나 타고난 기질 탓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정신질환이 뇌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현재에 이르게 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셔터 아일랜드> 등으로 정신질환 치료를 이마앞엽 절개술로 치료하려고 했다. 긍정적인 치료법일 수도 있지만, 워낙 섬세하고 위험한 수술이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환자를 조용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선택되기도 했다. 아마 이 방법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발작을 일으키거나 소란스럽게 했던 환자가 조용해지니, 나름 완벽한 치료법으로 여겼을 테다. 하지만 이 수술로 고요해진 환자는 치료된 게 아니라, 뇌의 어느 부분을 잃고 정상적인 사고나 대화나 불가능한 상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치료법이 아주 많이 틀렸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게 아이러니다. 분명 성공적인 부분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참호족과 동상은 증상이나 위험성이 비슷해서 혼동할 수 있다. 동상은 얼어버릴 만큼 아주 차가운 조건에서 생기는 반면, 참호족은 15도 안팎의 따뜻한 온도에서도 생길 수 있다. 동상은 신체의 말단인 귀나 손, 발이 손상되지만, 참호족은 습한 군화를 오래 신어서 생기는 것이라 발에만 발생한다. 그리고 동상은 감염과 관련이 없지만, 참호족은 세균 감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차이도 있다. (133페이지)


전쟁으로 더 심각해진 병도 있다. 이 책에서 참호족이란 병명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병을 잘 알려준 영화가 <저니스 엔드>라고 하는데, 전쟁통의 참호 속에 오래 있으면서 공기가 통하지 않은 군화 속에서 습한 상태에 무방비가 되어버린 발이 썩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때 세균 감염이 되고, 항생제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던 환경에서는 발을 자르거나 패혈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영화 <마리 퀴리>에서는 딸 이렌과 함께 엑스레이를 설치한 구급차를 만들어 1차대전의 전장을 누비며 부상병을 치료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차처럼 보이던 이 구급차는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구급차 형태를 갖추었을 것으로 본다.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에는 암이 있다.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이 높지 않은 췌장암을 다룬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에서부터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는 일본의 오랜 풍습에서 이해해야 하는데,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동물의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또 중요 장기를 먹으면 영혼이 그 사람 속에 머문다는 미신도 있다고. 그러니 병을 고치기 위해 췌장을 먹겠다는 의미인데, 제목만 보고 이 영화에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말기 암 환자의 현실을 다룬 영화 <아들에게>도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고 해서 더 진지하게 보게 된다. 난소암을 앓는 엄마가 난소와 자궁까지 적출했지만, 더는 어떤 치료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강한 진통제만 남았다. 그녀는 아들 토미에게 남길 말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과의 마지막 정리를 준비하는데, 이걸 지켜보는 독자(관객)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말기 암 환자의 심리나 존엄사(안락사) 문제까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치매를 다룬 영화는 가족 중 한 사람이 기억력 상실을 겪으면서 지인이나 날짜 등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된다. 더 파더(2020)는 치매에 걸려 시공간을 혼동하는 노인의 눈으로 영상이 만들어진 독특한 전개 방식의 영화다. 그리고 한국 영화인 로망(2019)은 노부부가 함께 치매에 걸린 상황을 그려내면서, 대한민국 노인들의 삶이 어떠한지 현실을 살펴보게 한다. 미국의 유타주립대 노인의학 연구팀에 의하면, 부부 중 한쪽이 치매를 앓으면 그 배우자는 그렇지 않은 배우자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6배나 높고, 특히 아내가 치매에 걸리면 남편의 치매 위험은 11.9배나 높다고 한다. (181페이지)


어쩌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의학 상식은 많이 잘못된 정보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안에서 상식으로 지식 습득하여 병 앞에서 올바른 선택과 처치를 제때 해내고 성공적인 치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자꾸만 변하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병은 마치 우리 안심을 공격하듯 휩쓸려 오기도 한다. 우리가 3년여의 세월 동안 겪은(아직도 진행 중인) 코로나 19 역시 어설프게 들은 지식으로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그렇다고 어떻게 지식을 습득해야 올바른 건지도 막막하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갑고 고맙다. 우리 일상에 부담스럽지 않게 존재하는 영화라는 매체로 의학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의학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로 본 의학 기술, 사람의 마음, 사회가 이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까지 다양한 시선을 담아낸다. 영화와 의학을 잘 조합해서 의학과 인간의 이야기를 전문적이고 따뜻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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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들어올 거라 우산을 챙길까 말까 하다가 그냥 나갔는데,
들어오는 길에 기어코 비가 내린다.

끈적해서 씻고 나오니 바깥이 온통 노랗게 빨갛게...
이상하다.
내가 바깥쪽 불을 켜두었나?
그리고 우리집에 노랗게 빛이 나올 조명이 없는데.

밖을 보니 이 비 속에서 해가 넘어가고 있더라.
진짜 오랜만에 이런 빛의 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을이 바짝 다가온 느낌.

이 더위에도 올 계절은 오네...

(구름에 가려지는 햇빛이 너무 예쁜데,
사진으로 다 담아지지가 않는다.
워낙 똥손이라 기대도 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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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8-09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노을이 이뻐서 몇장 찍었어요. 남양주 사는 친구는 하늘이 핑크였다더군요🙂

구단씨 2023-08-10 14:24   좋아요 1 | URL
어제 이 동네 사람들에게 쌍무지개 사진을 엄청 받았어요.
그런 날이었나 봐요.
더위에 지치고 많은 일로 힘들었는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한 컷에 잠시 마음 놓는 시간.
 
노인들은 늙은 아이들이란다 I LOVE 그림책
엘리자베스 브라미 지음, 오렐리 귈르리 그림, 김헤니 옮김 / 보물창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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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애가 된다.’라는 말을,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도 잦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 말에 꼭 한마디 덧붙인다. ‘애는 귀엽기라도 하지!’ 그 말에 또 살짝, 무슨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 들고. 그러니까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하며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늙은 모습에 실수하는 건 귀엽지 않으니까 밉다는, 뭐 그런 마음일까?


요즘 엄마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물건 하나 주문해달라고 해도 뭐가 그리 요구하는 게 많고 거슬리는 게 많은지, 그렇게 까탈스럽게 할 거면 그냥 사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순간 뜨끔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엄마보다 젊은 나이이지만, 물건 하나 구매하는데 하는 행동이나 생각은 엄마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ㅠㅠ 아, 아직 노인이 아닌 나도 늙으면, 지금과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밉게 보이려나 싶은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어디에 소속되거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 찾아오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말이다.


노인복지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이 책이 언급되어서 찾아봤는데, 나이 듦을 공감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기본이고, 노인의 말과 행동을 더 깊게 잘 이해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 ‘노인들은 모두 머리가 하얗게 세거나 완전히 대머리가 되기도 하지.’ 대화하듯 이어지는 문장에는 게다가 우리는 이제 치아가 없어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종종 쩔거덕거리는 하얀 틀니를 끼고 견뎌야 한단다. 무척 불편하고 재미없는 일이야.’라는 말로 앞선 문장을 설명하듯 말한다. 치아가 없어서 틀니를 끼워야 하고, 음식 먹을 때마다 틀니가 움직일 수도 있고, 잇몸과 틀니 사이에 끼는 음식물들을 씻어내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비단 불편함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지금 이런 내 모습이, 내가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면 한없이 울적해지기도 할 거다. 가끔 어떤 상황에서 젊은 사람이 노인의 말과 행동에 틀딱이라고 조롱하며 무시하는 때도 봤다. 물론 나이 먹고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단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많은 것에서 배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도 문제이지 않을까.


누구나 부모를 잃는다. 우리의 부모가 그랬고, 내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도 자식이 있는 노인들은 부모로 살아가거나, 조부모가 되기도 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잘 채워지는 가족 관계가 이어질 것만 같다. 자식이 있는 노인들은 시간이 나면찾아오는 아이들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말을 계속 생각했다. 그마저도 자주 오지 않으니 이런 만남이 결코 충분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없는 시간 쪼개서 시골에 가고, 한 번 더 통화하며 안부를 묻는 것을 무슨 생색내듯 생각한 적도 있다. 각자의 일상을 살다 보면, 바로 코앞에 살아도 찾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여겼으니까. 굳이 명절에 시골에 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이유로 남편과 싸우기도 했다. 이제 나도 늙어가고, 엄마는 혼자 계시고, 여전히 일상은 바쁘지만 챙겨야 할 목록에 늙은 부모가 당연하게 자리했다. 남편에게는 형제가 없고, 우리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다. 언젠가는 나와 연관된 모든 가족 관계가 끝날 테지. 그때는 어떤 기분일까. 애타게 기다릴 자식이 없으니까 가끔 찾아오는 자식에게 느끼는 서운함도 없으니 나쁠 것도 없지, 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노인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서 더 의미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버텨 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지만, 어떤 노인은 다른 이의 도움을 반기지 않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삶에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도 있지만, 많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눈가에 예쁜 햇살 같은 주름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나이에 비례해서 얼굴에 담아내는 주름의 아름다움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말이 가슴에 꽂힌다. 인상만 쓰다가 박제되어버린 사나운 주름이 아니라, 나도 많이 웃고 행복하게 늙어가는 예쁜 주름을 갖고 싶어진다.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는 고민이 덧대어지는 이야기에, 이 짧은 표현들에 울컥해지기도 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세월의 흔적과 인생의 끝부분에 닿았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면서도, 감히 어떤 모습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만이 정답인가 싶어서.


생일을 축하하는 일도, 지나온 세월을 추억하는 일도,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을 하는 것도 다른 나이의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얘기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여행을 가고,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두는 것도 똑같다. 그러면서 더 나이가 들고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순간이 오면 어딘가로 떠나게 되기도 한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고, 주변의 많은 것을 정리하며 어떤 순간을 준비하기도 한다. 이 책 속의 노인은 당부한다. ‘혹시나 우리 정신이 오락가락하거나 기억이 그다지 또렷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같은 얘기를 자꾸 되풀이한다 해도그게 노인들이 멍청하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그냥 평범한 사람,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듯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사람, 사랑으로 삶의 맛을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노인이 된다면’, 상상하기는 쉽지만, 상상 속 현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만 봐도 쉽게 알게 되는 현실 속 노인의 모습이 있다. 언젠가 우리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은 물론, 그 시간을 사는 지금 노인의 일상을, 인생을 알게 될 거다. 모른 척하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게,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세상을 모습을 본다. 특히 대한민국의 고령화는 속도가 겁나게 빠르다지. 이런 흐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노인에 대한 이해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관계를 유지하고 소통하는데 필수요소가 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하며, 노인의 모습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으면서, 그 일상의 섬세한 감정까지 전달하고 있다. 노인의 현재이면서 자신의 미래가 될 시간을 공유하는 이야기에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한다.


#노인들은늙은아이들이란다 #너희들도언젠가는노인이된단다 #엘리자베스브라미 #보물창고

##그림책 #어린이책 #책추천 #책리뷰 #노인에대한이해 #세대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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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보 이판사판
리사 주얼 지음, 김원희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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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받아왔는데, 막상 읽을 시간이 안 되어 시간만 흘렀고, 그냥 반납하기에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살짝 내용만 살펴보려고 하다가, 결국 끝까지 다 읽고야 말았다는 사연.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뉴스에서, 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접하던 이야기였다는 게 씁쓸해지기까지 했다. 이거, 소설이 아니니까 말이다.


“25번째 생일을 맞은 리비는 변호사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는다. 거기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친부모가 자신에게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매일매일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하던 직장인이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리비는 이 저택에서 세 사람이 동반자살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한다.”


책 소개 글에 혹하지 않은가? ^^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대한 생일 선물을 받는 기분은 어떤 걸까 싶어 상상하다가, 선물로 받은 대저택에 죽음의 사연이 있다는 게 찜찜했다. 내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이 저택을 받아놓고 혼자 고민하는 게 우스꽝스러웠다. 그래도 뭐, 상상은 할 수 있는 거잖아? 리비는 양부모 아래서 성장했고, 사실 친부모를 찾아보려고 애썼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삶에 충실하느라 어떤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유산에 좋아하기에는 약간 미심쩍은 사연을 듣게 된다. 상속이 되었으니 받긴 받겠지만, 이놈의 호기심은 이 저택의 사연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오래된 신문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그 기자에게 연락한다.


소설은 현재의 리비와 신문기자 밀러 연합, 1988년의 첼시(대저택)의 세월을 들려주는 화자, 또 한 사람인 현재의 루시가 이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듣다 보면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시선으로 이 저택의 모습을 재연하는 듯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리비는 이제 자기 몫이 된 저택에 관해 알아야 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그때의 진실을 알 방법이 없다. 화자인 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를 에게 그때의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고 파괴되었는지, 왜 그 저택에 죽음이 깃들었는지 설명하려는 듯했다. 정해진 주거지 없이 떠돌면서 하루를 견뎌내는 게 최선인 것으로 보였던 루시와 아이들은 또 어떤 사연으로 이런 인생을 살고 있던 건가.


세 사람이 차근차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또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빼앗는 이의 최후는 어때야 하는지. 물론 나는 이 저택에 남겨진 3구의 시신이 당연한 죽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데이비드 톰슨은 이 정도로 끝나서는 안 될 인물이기에 화가 좀 나기도 한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상대의 나약한 면을 파고들어 가스라이팅하거나, 강압적으로 상대를 누르면서 자기만 챙기는 인간이라면 죽어도 싸다. 생각해보면 이런 인간 여러 번 본 것 같다. 전혀 이해 안 되는 어느 종교의 교주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과 당연함을 강요하다가, 어떤 관계인지 이름 붙이지 않아도 만들어질 수 있는.


영원할 줄 알았겠지. 남의 것을 탐하고 빼앗으며, 다른 이의 고통쯤은 가뿐히 무시하며 살아가는 게 줄곧 쉬웠겠지. 공동생활의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하고, 이것만이 옳은 거라며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며, 혼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하며 자기 것을 채우는 만족감을 누리고 사는 동안, 다른 이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헨리의 가족이 나약해지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없게 되고, 저택에 모인 이들이 느끼는 부조리함에 떠나고, 이제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까지 심어줬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폭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보이는 것 말고 상처 안에서 곪고 있을 때 더 심각하다는 거다. 읽는 내내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른들이 저질로 놓은 폭력과 나약함으로 이 아이들이 빼앗긴 25년의 세월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지?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되고, 그때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 세월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 나이에 한참 누리고 배우고 사랑받아야 할 것이 사라져 버린 지금, 모든 게 좋은 것으로만 마무리되지 않는다. 뒤끝이 긴 독자의 삐딱함이라고 해야 할까.


성장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각자의 인생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건 안다. 그걸 알게 되기까지 누군가 끌어줘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이가 가장 먼저는 부모일 테다. 어른이, 부모가 자기 역할을 망각하거나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기를. 누구보다 내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지킴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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