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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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시선으로 행간의 의미를 잘 파악하면서 읽어야 하는 게 시일 것 같은데, 막상 펼쳐본 정호승의 시는 그냥 일상을 듣는 기분이다. 세상의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바라본 어느 장면을 그려내고, 과거의 어느 날을 추억하는 말들. 하나의 문장이 구절이 되면서 쌓인다는 게 어떤 건지 보는 것 같다.


그동안 그가 펴낸 13권의 시집에서 추린 275편의 시가 담긴 시선집이다. 7부로 나뉘어 담겼는데, 살펴보니 시가 발표된 순서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시인이 나이 먹어가는 흐름을 시의 구절들이 따라온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 등단 50년이라는 시간에 어울리는 시선집이 아니었나 싶다. 다양한 생각들, 경험들, 시선들이 보이는 그대로 적혔다. 있는 그대로 다 담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대로 다 담아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시인의 감정은 넘치듯 넣어두었는지도.


푸른 바다의 길이 하늘의 길이 된 그날

세상의 모든 수평선이 사라지고

바다의 모든 물고기들이 통곡하고

세상의 모든 등대가 사라져도

나는 그대가 걸어가던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되어

그대가 밝히던 등대의 밝은 불빛이 되어

오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364페이지)


팽목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길이 없다고, 그래도 그대를 만나러 간다는 첫 번째 단락으로 시작하는 시다. 어떤 시간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온 국민이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했던 날이다. 바닷길이 하늘길이 되었다고, 왜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이냐고, 잊지 말자면서도 잊어버리는 세상의 마음이 두렵다고. 그래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마지막 구절은 마치 다짐처럼 들린다. 잊은 적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는 약속 같은 말.


아무리 중요하고 큰일이라도, 매체에서 한참을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진다. 1년쯤 지나고 비슷한 시기가 오면 기념한다고 과거의 같은 날을 기억한다. 그리도 다시 바쁜 일상에서 잊기 쉬운 날들이다. 누굴 탓하랴. 우리 삶이 그런 것을. 그렇다고 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을 상기하게 하는 시인의 구절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고통의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상처를 가슴에 묻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 시인의 가슴에도 상처가 되고 슬픔으로 남아있구나. 그 슬픔은 우리 일상에서도 깊게 자리한 감정이라는 걸 드러내기도 한다.


눈조차 오지 않는 쓸쓸한 오늘밤에도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더 불행하다

(밤길에서, 84페이지)


꾸역꾸역 잘 견뎌온 오늘이 또 다른 희망으로 불행의 크기는 줄여준다는 걸까? 살아가는 수많은 날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마치 우리 삶의 종착역이 희망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처럼, 누구나 똑같이 그곳을 향해 가는 게 인생이라는 듯이.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그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건가 싶은데, 정말 아직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슬퍼할 수도 있다는 말을 알 것도 같고. 희망을 가운데 두고 생기는 이 묘한 감정을 한 마디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씁쓸하고 쓸쓸한, 살아가는 일의 고단함, 그래도 걸어야만 하는 삶. 뭐 이런 걸 자꾸 생각하게 하는 시다. ‘밤길에서라는 시 제목이 그렇고, 밤길을 생각하니 그 어두운 골목이 떠오르고, 한겨울 느지막한 시간에 그 골목을 걸어 집으로 가는 무거운 발걸음이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이 그렇다.


어떤 일상을 보내든, 어떤 감정을 배우든, 우리는 또 이렇게 걷고 걸어서 삶을 채운다. 온갖 감정을 다 경험하고, 그 감정을 다 감당할 수 없음에 또 이렇게 쏟아낸다. 말하고, 적고, 듣는다. 아마도 그건 아직은 괜찮다는 안도이면서 위로이기도 하고, 어느 날 닿게 될 행복을 생각하는 일일 거다. 시인이 적어간 시들이 세상으로 나와, 우리에게 읽히고 담긴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이제 그가 쓴 시는 읽는 우리의 것이 되어 마음을 달랜다. 모든 인간에게 날아가 닿을 그 시가 각자의 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누구의 가슴속에서나 시가 가득하다고, 그러니 그 가득함 누리면서 꺼내 읽는 맛이 나겠다. 한 번으로는 다 알지 못할, 두 번으로는 더 깊어질 구절들을 새기기에 좋은 만남이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에 대하여, 216페이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277페이지)


담백하게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기 좋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은 구절들에 빠져도 좋은 시간.



#내가사랑하는사람 #정호승 #정호승시선집 #비채 #김영사

##문학 #공감 #한국시 ##책추천 #시집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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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은 시인의 눈처럼 세상을 바라보며 가슴에 남는 시구절을 음미하는 달로! 구단님 9월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ㅅ^

구단씨 2021-09-02 22:32   좋아요 1 | URL
네. ^^
제법 긴(?) 장마가 계속되는 것처럼, 여긴 오늘도 비가 내렸어요.
바람이 달라진 요즘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2021-09-0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 시인이 되고 쉰해가 됐군요 그렇게 오랫동안 시를 쓰다니 대단합니다 잊지 않아야 할 일을 시로 써서 그 시를 보면 그걸 생각하기도 하겠습니다 여전히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도 많겠네요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희선

구단씨 2021-09-02 22:33   좋아요 1 | URL
그렇다네요. ^^ 저는 잘 몰랐어요.
이름도 알고 몇몇 시를 읽기도 했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기도 했지만,
발표된 시가 이렇게 많았다니요.
시로 표현하는 마음, 생각을 만나는 시간 좋았습니다.
 
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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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었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약한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온다고. 귀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장악하려고 든다고 말이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걸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불안과 걱정이 자는 동안 나를 침범하고 찍어누르는 거라고. 자꾸 그 걱정에 머무는 내가 악몽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어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안을 내려놔야 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느 정도 맞았다. 근심이 사라지면 악몽도 찾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고, 제법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궁금해진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마음이 약하고 불안한 사람들인 걸까?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 악령에 씌어 대불호텔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다가온 게 정말 귀신인 걸까?


액자 구조 형식으로 써진 이 소설에서, 작가 강화길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화자인 <니콜라 유치원>을 집필 중인 소설가다. 어렸을 적부터 씐 악령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소설을 쓸 때마다 악의에 찬 목소리가 공격하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는 위축된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기에, 그녀는 다짐한다. 더 깊은 악의를 담은 소설로 복수하리라, 이 저주를 끝내리라. 그러던 중에 듣게 된 대불호텔 이야기에 빠져들고, 급기야 대불호텔의 저주에 깊게 관련된 그 여자, 고연주를 보기에 이른다.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악의가 악의를 낳는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대불호텔의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면서도 무섭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싶어 두려우면서도, 어쩌면 나도 모르게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나 역시 이런 마음을 가진 인간이었던 건 아닐까 싶어 괴롭기까지 했다. 인간의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끊어내고 싶은 간절함이 부풀어 오를 때, 이성은 날아가고 독한 감정만이 남는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힘을 갖고 싶은, 기어코 버티려는 오기 같은 것. 이런 감정은 누가 만드는 게 아니다. 내 안에서 저절로 태어난다. 막으려고 애써도 스멀스멀 피어오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고통받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치유하고 싶은 바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악의야말로 그 치유법으로 생존한다.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말할 수 있다. 절대 풀리지 않는 원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망치고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악의. (49페이지)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그건 무엇일까요. 원한, 고통, 절망. 그런 것들일까요. 무엇에 원한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죠. 그렇기에 두렵죠. 실체를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왜 원한을 가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존재들. 그래서 오직 원한만 기억하는 존재들. 지우고 지워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 (141~142페이지)


고연주는 생존하고 싶었다. 대불호텔이 아니라 그 어디에 머물렀어도 그녀는 생존의 이유가 가장 컸을 테다. 셜리 잭슨도 마찬가지. 오직 쓰려는 마음, 그녀가 애타게 완성하고 싶은 저주에 걸린 저택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다. 뢰이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명감처럼 화교의 삶과 자리를 유지하고 싶었겠지. 모두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만은 남아야 했던 이유가 있다. 지영현이라고 다를까. 어렸을 적부터 바랐던 제법 괜찮은 삶을 갖고 싶었을 그녀에게 지영현으로 살아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 네 사람 사이에서도 싹트는 악의는 여전했다. 대불호텔의 수상함을 느끼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영현은 이들에게 또 다른 악의를 품는다. 왜 이들에게만 악령이 나타나는 걸까? 나는 왜 이들과 같은 삶으로 스며들지 못하는가? 심지어 귀신마저 고연주를 보호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질투하고 흠모하던 고연주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 그 벽을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다짐은 잔인한 결말을 그린다.


대불호텔은 실존했던, 1888년 인천에서 문을 열고 성업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라고 한다.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을 보다니 놀라웠지만, 그 성업도 오래가지 못했다. 경인선이 놓이고 숙박객이 줄면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으로 바뀌었고, 화교의 경제적인 압박 정책으로 곧 문을 닫으면서 1978년 건물이 헐렸다고. 이런 역사 때문인지, 원한이 서린 공간으로 대불호텔은 너무 잘 어울렸다. 한 생애가 끝나가듯 쇠락해가는 그곳은 이들의 음침하고 우울한 이야기가 제법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죽고 다치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게 일상이 된, 그래서 나쁜 기운이 더 느껴지는 곳. 쫓아내려고 해도 기어코 들러붙어 나가지 않는 고연주의 존재는 이 호텔의 으스스한 생존력과 결을 같이 한다. 오히려 고연주 때문에 이곳의 원한이 배가 되고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 고연주의 공간에 셜리 잭슨과 뢰이한, 지영현까지 함께하게 된 걸 보면, 대불호텔은 원한의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곳이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칫하면서도 애써 그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슬픔이 한곳에 모여있는 곳이 대불호텔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대불호텔에 슬픔과 고통이 가득한 이들의 한을 다 불러모았나 보다. 단순히 망해가는 호텔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사건으로 악의를 한곳에 모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을 쓰는지 모르지만, 대불호텔에 온 지 두 달 만에 피폐해진 셜리 잭슨의 변화는 어떤 악령이 자기를 둘러싼 공포였다. 동양의 억울한 자매가 있다고, 죽은 자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고을의 한 수령이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고, 나쁜 것들을 처단함으로써 자매의 억울함은 풀어졌겠지만, 또 다른 원한이 생긴 것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들도 나름의 억울함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억울한 영혼이 아닌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원한을 풀어주려는 이가 있다면, 그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원한이 생기기 마련인, 그렇다면 원한은 쳇바퀴 돌 듯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고연주를 동경하던 지영현이 결국 고연주에게조차 마음이 돌아서 버렸던 것을 보면 말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을까. 삶이 그들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서럽고 외로운 고아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약자로 남았으며,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받고 핍박받는 존재였다. 무력한 희생자가 되어 버텨냈을 뿐이다. 공포로 가득한 그들을 견디게 해주었던 게 증오와 원한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도달한 감정의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악의의 본질이었다.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혐오와 적대감, 감정의 폭력과 이방인을 향한 배척 같은, 약자를 바라보는 태도였다. 소설 속 화자가 찾아낸 것을 여기에서 멈췄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악의만 보았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작가는 그들의 파국 같은 결말에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악령에 시달리며 괴로웠던 화자가 <니꼴라 유치원>을 완성함으로써, 매번 달라졌던 박지운(뢰이한의 아내)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 건물에 남아 있는 원한을, 현재에 사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바꾸려고 한다. 화자가 변했듯이,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마지막을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들에게 슬픔과 악의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어차피 그 감정은 양면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던가. 애정과 증오가 하나일 때가 대부분이듯, 악의와 호의, 원한과 사랑이 하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풀어낸다.


결국 이야기를 쓴다는 건, 살아가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냥 계속 살아가는 것. 삶을 그런 식으로 지속되는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 마음이 결국은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것이라 믿는다. (301페이지)


유령 같은 호텔에 갇힌 목소리가 날아가면서 자유로워졌기를, 실체 없는 악의에 계속 빠져 있지 않기를. 내가 버티고 살아가게 하는 것은 원한이나 악의가 아니라 사랑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대불호텔의유령 #강화길 #문학동네 #소설 #한국소설

#역사 #원한 #증오 #애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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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8-27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나오는 대불호텔이 제가 아는 곳이 맞다면
대불호텔은 지금도 있는데, 지금은 아마 호텔로 쓰이지는 않고 전시관인 것 같았어요.
구단씨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보내세요.^^

구단씨 2021-08-31 19:54   좋아요 0 | URL
네. 거기 맞다고 합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는 그 전시관에 가보고 싶어요.
그 시대의 대불호텔을 재현한 장면 눈에 담고 싶습니다. ^^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를 하네요. 듣기 좋은 빗소리지만, 너무 과한 건 별로... 조심하세요. ^^

scott 2021-08-2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왠지 이 리뷰 👌등수 안에 들 것 같은 느낌이 사알짝 ~*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8-31 19:55   좋아요 1 | URL
이 책 후기가 다양해서 흥미로웠어요. ^^ 저는 재미있었는데요.

희선 2021-08-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는 자세가 조금 이상하면 가위 눌리기도 해요 걱정 때문일 때가 많기는 하지만, 걱정을 해서 자는 자세가 조금 굳어서 가위에 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힘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기 힘들겠습니다 덜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7   좋아요 1 | URL
저는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잠을 설쳐요. 물론 자는 자세도 안 좋고요.
정말 피곤하지 않으면 깊은 잠을 잘 못 자요.
이 소설의 내용을 제가 완전히 파악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인간의 모습이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서 재미있었어요.

오후즈음 2021-08-30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이 그래선지 표지가 참 오묘하네요.

구단씨 2021-08-31 19:56   좋아요 0 | URL
작가의 전작 <화이트 호스>와 자매처럼 보이는 표지입니다. ^^
 
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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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바라보는 손자는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피 여사로 부르며 돌본다. 이 돌봄이 처음부터 기꺼이 시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저자 역시 코로나 상황으로 시간이 생긴 그때. 저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할머니를 시청하며 그 기록을 남긴다. 마냥 평범하기만 했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리라. 거동이 불편하고, 몇 번의 병원 신세와 수술을 거쳐,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일상이 요즘 세상에 그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조합,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일흔을 바라보는 딸 박 여사’, 마흔을 바라보는 미혼의 외손주가 한 집에서 부대끼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쩌면 이 조합,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조금 이상해졌다. 뭐랄까, 내가 경험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느 날 더 힘들게 마주할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저자는 지난 2년 동안 어머니 박 여사와 함께 외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냥 지켜만 본 게 아니라, 피 여사의 일상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외출에 동행했다. 말로 하고 보니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해본 사람은 알 테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나마 남자의 힘이어서 다행인 걸까. 육체적인 힘으로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저자는 피 여사의 옆에서 오늘의 일상과 지나온 세월을 들으면서 그녀의 건강을 돕는다. 돕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저자가 피 여사의 몸 상태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육체는 물론이고, 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까지 말이다.


어머니 박 여사의 일 때문에 어린 저자를 돌봐주던 피 여사였기에, 저자에게 피 여사는 단순히 외할머니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심히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피 여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가난한 살림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시집가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겪은 피 여사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그대로 몸으로 겪은 존재다. 시대가 그랬고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스무 살에 결혼했다. 책임감 없는 남편 때문에 고생은 당연했고, 그마저도 남편은 한국전쟁 때 죽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재혼했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더 낳고도 피여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복은커녕 오늘을 견디는 삶에 급급했다. 피 여사의 인생에 드리운 고단함이 세월이 흘렀다고 변할 리 없다. 고생하고, 힘들고, 외로움과 불행에 찌든 세월이었다.


피 여사는 하루하루를 견디듯 보냈다. 피 여사의 삶에선 딱히 즐거운 일이 없었다. 고통과 고독과 권태가 날마다 습격하듯 찾아왔다. 나이가 든다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된다는 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일이었다. (65페이지)


우리는 모두 늙는다. 우리는 모두 그들처럼 된다. 노인이 되면 젊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들이닥치는데, 이 고통은 전 세계 공통이다. 외로움, 생계 곤란, 건강 악화, 배우자와의 사별, 자식 문제, 시대 변화 부적응 등등.

피 여사는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노후를 맞았다. (17페이지)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 시절의 모든 삶을 다 똑같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 삶의 방향은 달랐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며, 시대의 불운을 비껴가고 이겨내고자 애썼겠지. 그토록 노력하고 버티며 사는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들과 지금과는 다른 삶을 만들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서. 그런 바람은 오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는 인생으로 변했다. 그걸 견디는 마음이 뭘지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병원 생활을 했던, 지금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우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무릎 연골 시술을 받고 엄마는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서도 혼자서 움직이기를 힘들어했고, 나는 혹시나 엄마가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옆에서 돌봤다. 식사를 챙기고, 옆에서 계속 대화 상대를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울해했다. 어느 날에는 밤에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어느새 자기 몸은 이렇게 늙어버렸고, 몸이 제 기능을 못 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노쇠한 몸이라도 그나마 잘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엄마는 잘 걷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순간순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듯했다. 한때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왔던 엄마의 삶이, 몸이 이제는 혼자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엄마도 나도.


피여사의 인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정한 몸으로 자식과 손자를 돌봤던 그녀의 현재는 혼자서는 지낼 수 없다는 거였다. 한쪽 눈은 감겼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는 거의 씹지 못할 상태였고,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한다. 위가 망가져서 소화도 어려웠다. 혈액순환도 잘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서 아팠고, 잘 움직이지 못하니 배변 활동이 안 좋았다. 온몸은 순환하듯 아팠다. 다리가, 팔이, 무릎이, 호흡이, 피부가, 심장이... 잠시 후 숨이 멈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런 그녀가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며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이 거듭되자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형제자매가 한 명씩 죽고,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최근에 한 달에 한 번씩 장례식을 다녀온 내가 느끼기에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듣는 일은 설명할 수 없이 가득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내 가족이 죽고,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언젠가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저자와 피 여사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도 다양했다. 가까운 이들, 가족과 친척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편하지 않았다. 가족의 배웅조차 받지 못한 죽음도 있었으니, 그 죽음을 바라보는 피 여사의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으리라.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지난한 삶을 듣는 일은 힘들었다. 살아온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오늘의 일상을 보는 일이 괴로워서, 이 노인의 마지막이 어떨지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손자의 병간호가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정신적인 피폐까지 완성하는 과정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을 돌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버거웠다. 자꾸만 나의 경험과 비춰 생각하다가도, 언젠가 내가 더 겪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을 알기에 겁부터 나지만, 또 당연하게 감당하게 될 것도 알아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 없을 테고, 누구도 자기 죽음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할 것이기에, 모른 채로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서 겁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힘든 건 사실이고, 그렇게 또 견디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피 여사의 외롭고 괴로운 시절을 듣다 보면 저절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피 여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다. (181페이지)


한 편의 소설로 읽히는 게 신기한 책이었다. 한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당연한 예상처럼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과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 여사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의 흐름으로 보면, 자꾸만 들려오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피 여사의 몸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 피 여사가 저자의 옆에 없을 거로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흐름과 결말을 당연하게 기다리고 있던 걸까 싶지만, 오히려 마지막에 확인한 피여사의 안부에 마음이 놓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그래야지.


참 많이 애썼다. 고생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행복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상황에 적응하느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후에 맞이한 또 다른 마음이 이 관계에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긴 시간 피 여사를 지켜보면서, 타인의 삶을 담담하게 이해하고, 때로는 귀찮고 버거웠을 존재를 더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가 된 저자가 배웠을 행복이 어떤 것일지 그대로 느껴진다. 힘들었지만 더 돈독하게 된 관계,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찾아낸 행복의 조각들이 이 가족의 공간에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 조각들 하나하나 더 찾아가면 꿰어맞추는 재미를 찾고 있을 것 같다.


피 여사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뜻밖에 피 여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여사와 내가 옆에서 챙기는 게 고마워서 한 말이겠으나, 피 여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답변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 (294페이지)


덧붙임)

제목에 쓰인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白手가 아니라 아흔아홉 살을 뜻하는 백수白壽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의까칠한백수할머니 #이인 #에세이 #한겨레출판 ##책추천

#간병 #돌봄 #노년 #외로움 #행복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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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8-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예전에도 있었는데 잘 몰랐던 건지... 몇 해 동안은 죽음을 말하는 책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직 더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다고 해서 그런 일이 찾아오면 제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파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기쁨을 찾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2   좋아요 0 | URL
점점 이런 경험이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고, 혼자인 삶이 많아지니...
어쩌면 각자 혼자인 3대가 한집에서 사는 이런 일을 자주 보게 될지도.
외로워 보이면서도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 투닥거림, 돌봄이 애틋합니다.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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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여행지, 회식 메뉴, 텔레비전 채널 같은 사소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 (95~96페이지, 가출)


누군가의 간절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데 동행한 이가 시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웠고, 그 불편한 동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했다. 작가가 여성의 연대를 말하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왜 하필 그 연대의 한편이 시어머니였던가 의아했다. 이 단편을 읽고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범한 오류를 찾아냈다. 나는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인간, 여성의 삶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껏 내가 생각한 시어머니로만 봤던 거였다. 생각의 시작이 틀렸던 거다. 시어머니가 시어머니 이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 그 사람 고유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했던 것을. 그래서 단편 오로라의 밤을 다시 읽고 다시 생각했다. 세 여성이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지켜봐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성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남편의 말처럼, 다 늙어서 이제 개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 단순한 이름 하나에 누구는 행복과 자신감을 얻는다. 언니 금주, 은주의 이름대로라면 셋째딸인 그녀의 이름은 동주여야 했다. 그런데 왜 말녀인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 딸은 이제 그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말녀. 남동생이 둘이나 태어났는데 왜 말녀냐고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매화나무 아래의 동주는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금주 언니를 보러 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름만큼이나 차별받으며 살았던 시간과 싸우듯 그녀는 늦게라도 삶을 바꾸려 애쓴다. 그 증거가 개명이었고, 동주라는 이름이었다. 이어지는 시간은 단편 오로라의 밤으로 들려준다. 아들을 잃은 후 며느리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며느리와 오로라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향한다. 말녀의 삶과 너무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동주의 오늘이 상상되는가? 읽으면서 너무 신났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지금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게 더 슬펐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후의 웃음이 그녀의 진짜 미소 같아서 말이다. 고부 사이가 아니라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는 이 고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 조합을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여든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와 예순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오로라를 보겠다며 그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이 늙은 여자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일일드라마나 볼 것이지 뭐 한다고 그 길을 나서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두 과부가 저지른 일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였다. 이것부터가 나의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나이 든 여자가 뭐? 남편 없는 여자가 뭐? 이들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일을 하고, 자식을 키웠고,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 것뿐이다. 노년의 삶을 손주를 보면서 보내는 게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이들의 행보는 낯설면서도 너무 늦게 찾은 당연함이었다. 자기 삶에서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했던 당연함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을 되찾은 기분. 딸이 엄마에게 아이를 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을 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가?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항상 엄마여야만 했던가 묻게 되었다. 그러다 그 물음은 꼬리를 물고 다시 묻게 된다. 한 여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가.


82년생 김지영을 몰입해서 읽었는데도, 순간순간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에 숨을 죽이곤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김지영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 소설집은 그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말하는데, 나처럼 봐야 할 것을 놓친 독자들에게 던지는 김지영의 생애였다. 8편의 단편을 통해 10대부터 80대까지 여성이 겪는 삶의 다양한 면을 드러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삼대의 모습은 페미니즘을 겪는 세대 차이를 그대로 보여줬다. 30여년 전 지방 소도시의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 이제 의 중학생 딸은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성추행 남학생들을 응징한다.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왔어도, 살다 보니 변하는 세상에 흡수되느라 외면했던 것을 딸의 한마디로 소환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예쁘기는 해야 할 것 같잖아.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줄 순 없어?"(290페이지)


그 여자아이는 자라서 자기 의지대로 세상에 맞서며 살아가다가도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처럼 은근한 불빛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나를 위해서, 나를 편하게,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남성 보호자로 여겼던 대상이 어느 순간 들여다보니 나를 조종하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절망에서 벗어났고, 진짜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 깍듯하게 존칭하며 불렀던 그 이름은 끝은 개자식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여성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 마주친 성차별은 그 당당함에도 물리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직급도 없는데 그 회사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미스 김. 그녀의 영역이 넓어지자 미스 김의 자리는 사라진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능력에 의지하던 인간들의 연대로 밀려난 미스 김의 활약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력 갑이었던 그녀가 회사에 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유령처럼 그녀는 존재감을 뽐낸다. 학연과 혈연으로 뭉친 어느 중소기업에서 횡행한 성차별의 결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스 김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미스 김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선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런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매도당하기도 한다. 오기의 초아는 한 편의 소설로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시도를 꺾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때야 비로소 꺼내지 못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상처 입고 고통받은 사람은 어느 한 명이 아니었다고. 나는 내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79페이지)다며, 작가가 여성의 삶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흐름으로 읽다가 분위기 전환하듯 양가감정을 느끼게 한 작품이 가출이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 써놓고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두 아들, 화자인 막내딸이 자주 모인다. 처음에는 사라진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이상하게 이 가족은 부재중인 아버지의 자리에 익숙해진다. 항상 중얼거리듯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린다.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편안해진 모습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생애를 본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의무로 살아온 세월에 퇴직하고 이제는 좀 편안해진 아버지. 가출한다고 하고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지만, 정작 본인은 딸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린다. 앞서 읽은 작품들이 억눌리고 차별받아왔던 여성의 삶을 보여줬다면, 가출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겪어온 세대의 흔적이고 살아가는 일의 고충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우리가 누군가를 볼 고 생각할 때 한 인간의 생을 보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자 남자,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이런 구분 말고 그냥 인간, 사람, 인생을 보는 일에 먼저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잘살아 보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 흐릿하지만 분명 빛이었다. 하얀 별들이 콕콕 찍혀있는 까만 하늘에 파란빛과 노란빛이 규칙 없이 섞인 한 줄기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러다가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고 넓어지고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지난가을, 서울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빛. 하지만 더 크고 선명하고 역동적인 빛. 누군가 빛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우주의 창을 여는 것 같기도 했다. 살이 있는 무엇.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적인 영혼.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빛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얼어 버릴 틈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245~246페이지, 오로라의 밤)


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 주면서도 다시 보고 새롭게 보기를 바라는, 함께 여행하는 고부가 수평적 관계가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페미니스트 삼대가 업뎃하고 균형을 이루는, 우리가 쓰고, 우리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첫사랑 2020이 써 내려갈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어린 영혼들이 펼칠 내일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달라지고 있을 한 사람의 인생일까.



#우리가쓴 것 #조남주 #민음사 #한국문학 #문학 #소설

##책추천 #한국소설 #여성 #여성의삶 #조남주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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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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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집을 몰래 지켜보는 여자. 그 여자의 시선에 딸이 들어온다. 창문 너머 집안에서 바깥을 쳐다보며, 엄마를 발견한 딸은 여전히 표정이 없다. 반갑지 않은가? 엄마는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고, 그 안에서 딸은 다른 아이를 살갑게 대하고 있다. 마치 엄마가 이걸 봤으면 하는 듯이. 너무 다정한 남매의 모습을 연출하며 눈으로 말한다. ‘내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이제 알겠어?’


당신은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주곤 했어. 당신은 우리 둘 머리를 토닥여주기도 했지. 당신의 여자들. 당신의 세계. 당신이 방을 나갈 때면 나는 울곤 했어. 나는 당신과 아이, 둘이 돌고 있는 이 축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하는 삶이 막 시작한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나는 어째서 그 애를 원했을까? 어째서 나는 나를 낳은 엄마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68페이지)


전남편 팍스의 집을 바라보던 여자는 블라이스.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팍스와 결혼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완벽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녀의 재능은 자라고 있었고, 팍스 역시 나무랄 것 없는 남자였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이 가족은 더 완벽해질 거였다. 사실 그녀는 아이를 낳는 일에 두려움이 많았다. 자기 성장을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남편과 딸이 이제 그녀의 행복에 더 크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녀의 엄마와는 다르게 좋은 엄마가 되겠다며 노력했다. 하지만 육아는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엄마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엄마를 밀어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이상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육아 스트레스를 겪는 거라며 이 상황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 탓으로 여겼다. 엄마의 엄마, 엄마에게 물려받은 결핍된 모성이 자기에게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딸 바이올렛이 자기를 자꾸 밀어내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읽는 내내 불안했다. 바이올렛이 보여주는 게 진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지켜봤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엄마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적도 없지 않은가. 대개 우리가 거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 전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니까 미워해야지 싶은, 다가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의 닫힘. 블라이스와 바이올렛 사이의 감정이 닫히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보였던가?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서 지친 모습이었을 뿐이다. 나는 블라이스가 아니라 바이올렛을 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드러나는 블라이스의 성장 과정에서 생긴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블라이스의 엄마 세실리아, 세실리아의 엄마 에타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타는 의사가 되려는 루이스와 결혼하지만, 에타의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의사가 아닌 농사를 요구한다. 루이스는 위험한 농사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고, 에타는 딸 세실리아를 낳는다. 에타가 딸을 온전히 키우지 못할 상태에 이르자 세실리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다. 무관심과 학대 속에서 자란 세실리아는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세실리아는 아이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고, 결혼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도 없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죽은 엄마 에타가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블라이스를 키웠고, 블라이스 역시 그녀의 엄마,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온전하게 사랑받으며 자라나지 못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불안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을까.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여성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지. 모성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 좋은 엄마가 있기를,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20페이지)


유전적으로 모성애가 결핍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블라이스의 불안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그랬듯, 자기에게도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바이올렛에게 엄마의 당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아이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아이를 돌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녀 안의 갈등을 꾹꾹 내리누르며 바이올렛을 사랑하고자 애썼다. 왜냐고? 그녀는 엄마니까, 바이올렛은 그녀의 딸이니까. 그녀가 노력할 때마다 아이는 더 심각하게 반대의 기질을 보였다. 엄마를 자꾸 밀어내기만 하고,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결국, 끔찍한 죽음을 불러오고야 만다. 그런데도 그 고통을 다 말하지 못하고 외면받아야만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진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 블라이스는 이제 말하지 못한 것들을 써 내려간다. 당연하고 강요된 모성에 대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엄마의 태도에 대해, 모성과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무도 보지 못하고 누구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일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겪는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이 책의 제목 푸시(Push)’는 몇 가지 중첩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 출산의 행위, 유아차를 밀어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 그리고 문장을 읽을 때마다 더 적나라하게 와닿는 엄마와 딸 사이의 밀어내는 감정, 점점 고조되는 모성애의 강요를 이 한 단어에 다 담았다. 아이를 낳았으니 키우는 건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육아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그 고됨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블라이스의 남편 팍스도 좋은 남편이었지만, 아내의 육아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바뀐 것들에 전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어렵고 힘든 사람은 블라이스뿐이다. 하고 싶은 글쓰기는 자꾸 멀어지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 아이는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더는 황홀하고 다정하지 않았고, 악의 없는 시어머니의 한 마디는 폭력 같았다. 도대체 좋은 길을 찾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견디는 것만이 남은 길이었다. 모성이란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부터 찾고 싶어졌다.


"알지,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점이 많이 있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하지만 가끔 어떤 부분은 본 것에 따라 형성이 되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따라.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에 따라." (387페이지)


한 여성의 삶이, 어느 순간 아이가 살아 있도록 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는 과정은 끔찍했다. 내내 불안이 깔려있었고, 장면들은 불편했다. 이상하게도 이 가족의 관계에서 불행한 사람은 한 사람뿐일까. 그 불행이 엄마를 침범할 때마다 점점 더 불안은 쌓여간다. 내가 부족한 엄마여서, 유전력으로 모자란 모성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스스로 괴물이라고 여기기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자기 딸이 자기와 같은 괴물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하기에 이른다. 어쩌다가 그녀는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 당연하지 않은 모성이 당연시되면서 만들어낸 악몽은 아니었을까. 소설의 결말을 보면서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녀에게 강요된 자세가 가린 눈을 이제야 마주했다는 늦은 후회였다. 그녀의 부족한 모성에 원인을 돌리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들은 이 위험을 또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그 어떤 감정도 자세도, 당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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