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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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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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한번 무너져본 이들은 어느 날 또다시 살던 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낀다. 어느 날, 어떤 이유도 없이, 또다시 감금되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미연을 따라다녔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창문을 모두 잠갔고, 텔레비전 속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미연은 공포를 딛고서 비틀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불량품 같은 삶, 정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삶이 뭔지 미연은 알 것 같았다. (79페이지)

 

삭제하거나 희미해질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사건의 현장에서 4년을 보낸 미연의 현재는 지울 수 없는 기억에 영향을 받는다. 애써 감추려고 했던 과거는 그녀의 모든 일상에 끼어들었다. 아이의 성장 환경을 좌우했고, 남편과의 불화를 만들었다. 미연이라고 그러고 싶었을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표출되는 기억의 흔적들이 20년이 넘게 흘렀어도 그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형제복지원에 머문 시간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끝나지 않았다. 미연의 말처럼 '기억은 그림자 같은 것'이어서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무리 애써도 하얗게 되지 않는 날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 기억에 소환되기를 거부하면서 버티던 그녀의 일상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순간이 왔다.

 

폴란드에서 입양아로 사는 준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출생의 진실을 몰랐던 준은 마주한 활자가 낯설면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자기 엄마 은희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준 거였다. 대한민국의 과거에 있던 형제복지원에 은희가 머물렀으며, 그곳의 참상은 너무 잔혹했다고. 준은 은희가 그곳에서 강간당하고 생긴 아이였으며, 태어나서 입양 보내졌다. 그리고 은희의 죽음. 검안서에는 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기록되었으나, 사실 은희는 탈출하다가 붙잡혀서 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준이 받은 편지에는 아우슈비츠로 간 미연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보낸 이는 준이 미연을 만나서 엄마 은희의 죽음에 관해 듣기를 바랐던 걸까. 준은 미연을 만나러 갔지만 자기가 은희의 아들이라고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준은 그대로 되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이미 마주한 어떤 사실 앞에서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서울로 간다. 미연을 만나야 했다.

 

이야기는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운영되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바탕이 되어 그려진다. 그곳은 복지시설이라 불렸다. 거리의 노숙인이나 부랑자를 데려다가 잘 먹고 잘 보살펴 준다는 취지로 시작된 일에, 누군가는 이익을 취하느라 인간적인 선을 넘어선다. 인원수에 맞게 지급되는 수당을 챙기려고 과한 수를 맞춘다. 일반 시민과 어린이까지 눈에 보이는 족족 강제로 차에 실렸다. 동네 목욕탕에 다녀오던 미연, 등산 산책로에서 잠이 들어 늦은 밤까지 깨어나지 못했던 은수와 은희, 시시껄렁한 건달 등.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분별없이 데려갔다.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강제 수용되었고, 513명이 사망에 이르렀다. 그곳에 인권이란 것은 없었다. 형제복지원의 원장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서 자화자찬하고 스스로 상을 주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강제 수용된 사람들의 노동력의 그가 이루려는 일을 시켰다.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먹어본 적 없는 이들이 그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마치 없는 사람처럼, 그들에게 종속된 노예처럼, 숨죽이고 말 잃은 채로 살아가는 것.

 

거기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어. 그렇고 그런 날들이 무한히 반복됐지.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이 됐어. 더 나아질 것도 더 추락할 것도 없는 불구덩이였어. 고통이 영원하다는 걸 알면서 살아야 하는 거. 그게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거지. 미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 미친 사람들은 빨간 약을 먹였어. (161페이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말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느냐고 묻는 이가 있을까? 왜 3천여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쥐고 흔드는 몇 사람을 혼내주지 못했느냐고? 민주주의를 외쳐도 군대를 동원해서 사람들을 누르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복지정책이라고 부르며 시작한 일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었으니, 그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나랏일을 한다는 사람에게 감히 대들 수 있는 사람 누구란 말인가.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폭력이 습관처럼 행해지고, 차마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상 위에 오르는 일상이 당연한 곳이었다. 같이 있으면서 마음을 단단히 모으는 게 아니라 서로를 감시하며 긴장한다. 지금 내 옆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버티는 한 사람으로 볼 수 없게 했다. 원장은 그곳을 군대식으로 정렬하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견고히 했다. 같이 끌려왔지만 충성스러운 사람 몇 명을 뽑아 소대장으로 만들었다. 소대장에게 사람들을 감사하고 관리하게 조종했으며, 또 그 밑에는 조장을 두면서 잠자는 순간까지 감시를 멈추지 않았다. 소대장이 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성행위를 못 본척했고, 원생들 사이에서도 생존을 위한 다툼이 있었다. 그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세상을 정화하겠다며, 노고를 위로한다며 정부는 형제복지원을 추켜세웠다.

 

내가 알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소설 속 이야기만도 아니다. 언젠가 우연히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어 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다반사였으니, 누군가의 입으로 들려오는 그 시간의 진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분명 계속 진행 중인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던 듯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관심의 부재도 보태고 싶다. 저자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했던 기자다. 그곳의 참상을 드러내기만 하는 게 목적은 아닐 터였다.

 

인권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그곳의 생존자인 미연이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리는 일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이의 시도로 멀리 폴란드에 있는 준까지 끌어들였지만, 정작 그곳에서 벗어나 생존을 버티고 있는 이의 마음까지는 읽지 못했던 걸까. 준의 엄마 그곳에서 죽은 이가 513명이나 되고 그렇게 죽은 사람 중의 한 명인 은희를 주인공으로 그곳의 이야기를 펼치는 듯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비극으로 남은 사건의 현재를 비추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절대 권력의 묵인 아래 펼쳐지는 인권 유린, 처벌받지 않고 희생자들의 기억에 파고든 가해자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곳에서 고통받고 현재까지 아파하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기억이다. 그렇기에 생존자이자 멀쩡히 현재를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연의 증언과 희생자가 낳은 아들이 입양아가 되어 찾은 이 땅의 현재를 비추고자 했을 것이다. 과거는 과거로 머물지 못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에게 고통이 되고 있다는 게, 끊어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기억에 현재의 삶은 무너진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죄가 사라진 것은 아냐. 기억나지 않는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이란 게 없군. 기억도, 과거도, 죄의식도 아무것도 없이. (109페이지)

 

준의 엄마 은희의 이야기가 하나씩 들려오면서 형제복지원의 실상은 생생하게 묘사된다. 인간의 삶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로 끌려와서 희생된 이들의 시간과 인생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걸 보여주는 게 미연이었다. 미연의 아버지는 국가 고위직이었다. 4년 만에 딸이 돌아왔을 때 미연의 가족은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면 된다고 한다. 그 기억을 지우고 이제부터 잘 살면 된다고. 아마 가족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궁금하다. 가족들은 그냥 잊으라고만 하고 그 시간의 이야기는 묻지도 않았을까? 미연의 가족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된다고 여겨 모른 척하고 싶었을까? 왜 내 딸의 억울한 시간을, 고통을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내 가족의 상처보다 남들이 내 가족을 볼 시선이 더 중요했던 걸까. 잘 지내고 있다고 가면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미연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자라면서 모두에게 그 기억을 지워주려고 했다. 형제복지원의 희생자였지만 이렇게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해야 했다.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상처는 저기 멀리 밀어두고 말이다. 애써 기억을 지우겠다고 다짐해도,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박장대소했다. 미연은 평생을 그 기억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는데, 그들에게 가해자였던 형제복지원 원장은 치매로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 죄지은 자는 그 죄를 스스로 다 잊고 오늘을 살아간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금 자기 앞의 피해자가 누구였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듯이. 하루하루, 오늘만 기억하는 이에게 피해자들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달려나갔다. 모두와 이별한 밤이었다. 우리가 버려진 그날 이후 지금까지 누구도 폐기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69페이지)

 

소설 속 캐릭터들은 실제 형제복지원의 희생자가 모티브가 된다. 실제와 소설의 구성이 엮여서 태어난 한 권의 소설이 오늘에 묻는 의미는 크다. 저자는 결코 드라마로 머물지 않는, 군사정권 시대가 만들어낸 실체를 마주함으로써 위태롭게 그 시간을 버틴 이들과 이 사건을 묵인하는 사회를 고발하듯 묻는다. 죽은 은희, 생존했지만 온전히 살 수 없던 미연, 우연히 출생의 진실을 마주한 준의 현재를 재현하면서 그 물음을 다진다. 513명이 죽었다는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한 시대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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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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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가 달리고 싶을 때
마리카 마이얄라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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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곤 한다. 예를 들면, 숙제하려고 책을 펼쳤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으로 들어와서 숙제하라고 말하면 하기 싫어지는 삐딱함 같은 것. 엄마는 아이가 숙제하지 않음으로써 감당해야 할 그 후의 일을 생각하면 관심을 표현하는 것인데, 아이의 시선에서는 알아서 하려고 했는데 간섭과 잔소리를 듣는다고 여기게 된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런 일조차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텐데, 자기 마음대로 달리거나 멈출 수 없는 로지의 일탈이 왜 이렇게 뭉클한지 모르겠다.

 

 

2번 경주 개 로지는 오늘도 트랙을 달렸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결승선을 넘고 우승했다. 관중석의 함성은 로지에게도 들렸다. 오늘의 우승은 2번 개 로지라고, 얼마나 영광일까. 우승까지 했으니 뿌듯한 마음에 오늘의 기쁨을 충분히 누려도 될 것 같다. 한순간의 긴장이 다음 날 아침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은 나만 느끼는 건 아니지? 하지만 로지의 마음은 달랐다. 그냥 쉬고만 싶었다. 우리 안에서 보내는 밤이 불안하고 편하지 않았기에, 로지에게 오늘 밤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게 깜빡 잠이 든 로지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숲과 들판을 내달리고, 로지의 발은 자꾸 움찔거린다. 온몸으로 꿈을 꾸고 있는 거다. 매일 트랙을 달릴 때마다 앞만 봐야 했던 로지. 경기장 주변의 자연에 코를 킁킁거리고 싶다가도 바짝 따라붙는 다른 개들 때문에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지친 날이면 오늘 밤처럼 어김없이 꿈을 꾼다. 자유롭게 달리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누군가와 함께하기도 하는 그런 장소와 시간을 누린다. 오직 꿈에서만.

 

 

이런 날이 매일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매 순간 긴장하고 초조하고, 내 뒤를 바짝 쫓는 많은 것으로 잠시라도 편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된다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나 있을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다. 불안한 마음에 한 끼의 식사도 편하게 하지 못하고 소화불량을 달고 살겠지. 매일 밤 불면에 시달릴 것만 같다. 그런 날들을 로지가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치 모르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보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다음 날 경주에서 미친 듯이 트랙을 달리던 로지가 결승선을 넘고서도 멈추지 않았던 마음을 알 것 같다. 경기장 울타리를 훌쩍 넘어 사라진다. 경기장은 혼돈에 빠졌지만, 로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면서, 그 시선이 향하는 대로 달린다.

 

 

 

들판 위로, 달리는 기차 옆으로, 숲속으로, 어느 집 정원 앞으로, 낡은 서커스 천막을 지나고, 도심의 계단을 오르고, 시내 한복판을 지난다. 거센 물살의 바다를 건너고, 뭍에 다다른 로지는 어느 조그만 마을의 작은 공원에 닿는다. 거기서 개 두 마리를 만난다. 세 다리로 걷는 갈색 개 이다와 점박이무늬 개 시리. 누구라도 자기 의지대로 걷고 달린다. 로지는 마음에만 품었던 생각을 이다와 시리를 만난 후 확신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달릴 수 있었는데, 내가 달리고 싶은 곳을 향해 갈 수 있었는데, 왜 그동안 경기장 안의 세상에만 머물러 있었을까? 경기장 안에서 달리고, 경기장 안의 우리에서 잠들고. 마치 로지의 세상은 처음부터 그곳이라고 정해져 있던 것처럼 다른 곳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사람들이 환호하는 경주 개로 살아가는 게 로지에게 주어진 운명이었을까?

 

워낙 개에 관해 관심이 없어서인지, 이 책의 설명을 보면서 처음 알았다. 그레이하운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개이고, 시속 70km까지 달릴 수 있기에 태어난 순간부터 경주견으로 살아가곤 한다고. 그렇게 하운드레이싱을 누군가는 박진감 넘치는 오락이자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로 여긴다고 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이렇다. 왜 반대의 시선에서 보지 못하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생명 있는 존재를 도구로 여길까.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은 경기장을 달리던 로지의 시선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알아 왔고 살아가는 하나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어떤 향기에 끌리는 바라보고 싶은 것들, 어떤 환경에서 달리고 싶은지를, 무엇을 위해 달려야 하는지를 보게 한다. 무엇보다 어디로 향해 가고 싶은지 달리는 로지가 일으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하게 된다. 어떤 꿈을 꾸면서 잠드는 밤인지, 왜 달리고 싶은지. 자유를 찾은 로지는 드디어 어느 지점에 도착한다. 같이 달리던 이다와 시리를 기다리려고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른다. 거기가 마지막인 줄 알았다. 누구에 의한 강요이건 자유롭게 달리건, 어느 정도 달렸으니 이제 좀 쉬려고 멈춘 게 아닐까 싶었는데...

 

달리는 개 로지를 만난 건 낯설지 않은 감각을 불러온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익숙한 하루를 보는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매일 똑같이 외치고 생각하는 말들을 떠올린다. 지금 하는 것들 앞에서 '왜?'라는 의문을 한 번쯤은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원하지 않는 트랙 위에 섰을 때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선뜻 그 진심대로 갈 수 없을 때가 많은 게 인생이라고 또 주저앉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한다. 정해진 대로만 가는 게 익숙한 우리 삶일 수도 있지만, 어느 날 경기장의 울타리를 넘어 달리던 로지의 모습처럼 우리도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순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이제까지 우리가 달려왔던 그 길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달리고 싶은 길이 어떤 길이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의외였다. 로지가 멈춘 지점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있는 곳인 줄 알았다. 자유롭고, 경쟁에서 벗어난 곳이니 거기서 머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로지는 "우리 더 달릴까?"라고 말했다. 그동안 남의 의지대로 버텨온 달리기였기에 어떻게 다시 달리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치 로지의 달리기는 이제 시작인 것처럼 발을 구르고 있던 거다. 왜? 로지에게는 이제 '2번' 경주 견이라는 이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같이 어울리던 갈색 개 이다의 실수로 로지의 옷이 찢어졌다. 입고 있던 옷이 사라졌으니 추웠지만, 오히려 로지는 홀가분해보였다. 내낸 옥죄었던 '2번'이라는 이름표는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달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옷이 찢어지고 좀 추우면 어떠랴. 이제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 체온도 오르고 땀도 나고, 바람이 그 땀을 식혀주면서 또 개운해질 텐데.

 

순위가 매겨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지만, 사실 그런 세상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질 수 없는 기회에 우리는 또 도전하고 달리면서 닿고 싶은 지점을 바라볼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그렇게 닿고 싶은 곳, 달리고 싶은 이유가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로지가 이제 다시 달리고 싶은 이유도 같은 거였다.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것. 그렇기에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다르면 다르다고 인정하고, 누구의 답이 아닌 내가 정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시도가 어떤 달리기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첫 페이지를 열고 로지의 달리기를 보는 순간부터 울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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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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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에 대한 치료법이 바로 이야기다. (13페이지)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여운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반응이 뜨거웠으면 원작 드라마를 편성하기까지 했을까. 나도 뒤늦게 <부부의 세계>에 빠져들어 어느 순간 본방사수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저 뻔한 누군가의 불륜 이야기임에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감정 이입하게 되니까! 지선우(김희애)가 남편 이태오(박해준)의 불륜을 알았을 때 분노하지 않은 자 있는가? 배우자의 배신만큼이나 화가 났던 건, 이 부부의 주변 사람들이 남편의 불륜녀와 함께 여행까지 갔었다는 게 더 절망적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지고 얼마나 비웃었을까? 정작 아내만 모르는 남편의 불륜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만약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선우는 복수한다. 남편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내쫓는다. 통쾌했다. 암만! 그렇게 헤어졌다고 해서 가슴 속에 파고든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처받은 내 마음을 보상해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선우의 복수로 이태오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았는데, 드라마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지선우 보란 듯이 금의환향한다. 드라마의 분위기는 다시 뒤집어진다. 시청자는 놀랐고, 이태오가 어떻게 복수할지 궁금해했다. 지선우의 복수로 통쾌했던 마음은 다시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아마 이야기가 그렇게만 진행된다면 우리는 연거푸 사이다만 들이켜야 했을 것이다. 보는 내내 심장이 졸아들면서 답답했지만, 언젠가는 끝나는 게 드라마다. 이태오는 불륜녀는 행복한 듯했지만, 불륜녀는 남편과 전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 커플은 헤어졌고, 이태오는 다시 거지가 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뭘까? 권선징악? 도덕을 지키자?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인간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감정이입 하는 것을 '인간의 뇌'에서 찾는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흥분하고 감정에 동요되고 누군가의 행복과 불행에 반응하는 마음은 우리 뇌의 신경과학적 반응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말하는 이야기의 구성이, 심리학자나 뇌과학자가 연구한 뇌와 너무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리의 뇌가 생각하고 현실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다양함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빠져드는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것. 뇌가 발견한 정보로 만든 세계를 우리가 현실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게, 영화나 책 속 인물이 보는 세계를 똑같이 보고 경험하는 것이 같은 의미다. 그러니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은 얼마나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를 꿰뚫고 있을까.

 

우리는 머리 밖의 현실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직접 관찰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바깥'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사실 머릿속에서 구축한 현실의 재현으로, 스토리텔링 뇌에서 일어나는 창작의 결과다. (41페이지)

 

이야기는 우리가 머릿속의 저장고 안에 갇힌 채로, 영원히 고독한 환각의 우주에 갇힌 채로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지만 끝내 도망칠 수 없는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문이다. 이야기는 환각 속의 환각인 셈이다. (96페이지)

 

저자가 들려주는 많은 영화와 책의 장면들로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는 스토리텔링의 세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이야기로 만나는 매력적인 인물과 스토리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뇌의 반응으로 이해하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결의 플롯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구성의 방식이 아닌 이야기 속의 인물에 집중한다. 저자는 이야기의 구성과 짜임이 아닌 인물에게 관심을 둔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독창적이고 강렬한 플롯이 인물에서 나온다. 우리는 그 인물이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건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우리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상황과 사람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몰입하는 것은 뇌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만들어진 세계, 결함 있는 자아, 극적 질문, 플롯과 결말의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서 우리의 뇌가 머릿속에 형성하는 세계를 인식하고 변화하는지, 우리가 접하는 다양한 작품에서 무엇을 받아들이는지 보면서 설명한다. 다양한 문학작품과 여러 영화로 주인공들의 감정을 엿보게 하면서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어떤 변화를 드러내면서, 우리가 듣는 모든 이야기가 뭔가 변화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이어서 보여주고, 극적 질문에서는 인간이 느끼는 근원적인 상처나 수수께끼의 열쇠까지 언급한다. 듣다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것들에 빠져든다고 여겼던 것이 혼란스럽다. 내가 드라마에 빠져 주인공의 복수에 감정이입하고, 소설의 주인공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에 긴장하는 게 모두 인간의 뇌가 반응하는 거라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사실 우리는 뇌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니, 세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감정에 뇌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저자의 설명으로 우리가 즐기는 이야기의 모든 설정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가 빠져있는 스토리텔링의 과학을 저자는 뇌과학적 접근으로 말한다. 이야기가 풀어놓는 호기심은 인간 뇌의 보상체계가 자극받게 한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이라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결함 있는 주인공에게 마음을 더 주기도 하고, 그런 주인공의 인생에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우리 뇌가 경험하고 쌓은 편견으로 타인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작품 속 모든 인물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럴 때 우리의 현실과 부딪히며 이야기가 형성된다. 특히 저자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언급할 때는, 내가 읽었던 작품인데도 주인공의 행동에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던 순간을 떠올렸다. 집사의 인생이 그를 가뒀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기가 이뤄놓은 가치를 흔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세상은 변하고 그가 세운 가치도 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소설의 결말은 어찌 보면 다른 삶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하는 듯하지만, 나는 그가 여전히 그가 세운 세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의 신념은 그를 무너지게 하는 도구로 바뀌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이야기는 인간 조건을 탐구한다. 극의 표면에서 벌어지는 사건보다 인물에 더 집중한다. 낯선 마음으로 떠나게 되는 흥미진진한 여행이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우리가 그 인물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극적인 싸움을 제공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결함 때문이다. (84페이지)

 

우리가 행동하고 싸우고 살아가도록 이끌어주기 위해 우리의 영웅 만들기 뇌는 끊임없이 우리가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처럼 사고하기를 바란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낙관주의와 운명이라는 착각으로 삶의 플롯을 밀고 나간다. (234페이지)

 

 

좋은 이야기는 인간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익숙했던 우리의 세계를 넘어 낯설고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이야기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질문이 이야기를 만든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세계를 보여주면서 결국 나에게로 질문이 되돌아온다. 우리가 만난 이야기로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게 한다. 그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질문의 답은 하나가 아닐 것이고, 그 답은 다양해질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야기는 우리의 인식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저자가 언급한 문학 작품들만 봐도 긴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겪게 하고 나아가게 했다. 좋은 이야기는 끊임없이 세상을 배우는 가르침을 주었고, 누군가의 상처, 행복, 고통, 고민 같은 것들을 바라보게 하면서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부른다.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으로 이야기의 탄생을 말하는 이 책에 조금 더 빠져들고 싶어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로 다가와서 그런지 어려운 단어가 등장해도 쉬운 설명이 된다. 우리의 뇌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뇌를 자극하면서 즐길 수 있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존재가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다양한 재능과 역할을 하는 그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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