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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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는 동료들과 함께 말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말로가 꺼내는 어떤 모험을 끝까지 듣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는 거의 없는 그들 중 한 명이다. 말로는 다양한 지역을 항해했던 선원이었고, 그의 간절한 바람 중 하나는 콩고에 가보는 것이었다. 말로는 어린 시절부터 지도 보기를 좋아하면서 세계 여행을 꿈꾸었고,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모습의 콩고에 매료되었다. 이번 항해는 콩고를 향하는 증기선 선장이 되어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여정을 하게 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설레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불길한 기운이 그를 둘러싸여 있다. 같이 항해하는 선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건, 이 항해가 절대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경고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콩고를 향한 마음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출항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난 후, 말로의 배는 콩고에 도착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콩고강 하구였다. 그가 가야 할 곳은 콩고강 상류여서,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그는 작은 기선으로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가 도착하고 난 후 보게 된 것은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문명화 작업이 한창이었고, 철도 건설은 제대로 되는 건지도 모르게 열악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쇠사슬에 묶인 흑인이 노예처럼 강제 노동을 하고 있던 거였다. 이곳을 지배하는 이들이 정한 말도 안 되는 법을 어긴 죄로 끌려온 이들이 여기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많은 흑인이 죽어 있었고, 겨우 목숨이 붙은 채로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이 참혹한 광경에 놀라는 것도 잠깐, 그는 목적지로 향해 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그였다. 그도 항상 떳떳하게 살아왔던 건 아니었고, 인간이 욕망을 품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이건 악마의 장난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말로가 관리자를 만나 서류 업무를 확인하면서 커츠라는 인물에 대해 듣게 된다.


커츠그는 누구인가. 콩고강 상류에 위치한 교역지의 관리자로 남들보다 몇 배의 상아를 보내는 인물이다. 굉장히 업무 수완이 좋은 인물인가. 요즘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면서 그의 생사 확인과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게 말로의 첫 임무가 된다. 그리고 말로는 이 회사의 관리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걸 알지만 모른 척한다. 그렇게 커츠를 찾으러 가는 길, 점점 지금과 다른 시대로 진입하는 느낌이 들고, 커츠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원주민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곳에서 커츠를 만났으나, 오히려 커츠는 무덤덤했다. 열병으로 죽어가는 그가 더는 바라는 삶이 없게 된 것인지 왜인지, 같이 떠나자고 하는 손을 붙잡지 않다가 다시 배에 오른다. 돌아가는 길의 배 안에서 커츠는 사망하고, 벨기에로 돌아간 말로는 커츠의 약혼녀를 만나러 간다.


어떤 이야기 한 편을 꽤 오래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 곳곳에서 인간의 욕망과 나는 그 욕망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 수도 없이 묻게 된다. 콩고 강에 도착해서 말로가 본 광경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게 잘못된 거라고 여길 것 같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말로가 만난 커츠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곳을 지배하듯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그곳에서 커츠로 살았다면 다른 모습으로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었을지 말할 수 없었다. 말로 그 자신은 아닐 거로 자신만만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 관리자의 비리를 보고 모른 척하고 지나가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도 말로가 마냥 바닥인 인성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건,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취한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마지막에 알게 된 진실(?), 인간이 저지를 수 없다고 여긴 악행을 세상에 알린 일이다.


'당신은 파멸하고 말 겁니다' 나는 말했어. '완전히 파멸하고 말 거라고요' , 때로 번뜩이는 영감 같은 게 찾아올 때가 있잖나. 나는 옳은 말을 했던 셈인데, 물로 그 시점에, 우리의, 앞으로 지속될, 심지어 끝까지 지속될, 끝나고 나서도 지속될 친밀함의 주춧돌이 놓이던 바로 그때 그는 이미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긴 했지만 말일세. (156~157페이지)


읽으면서 괜히 더 궁금해지는 건 커츠였다. 회사에서는 엄청난 양의 상아를 보급하던 그가 소식이 없자 당연히 찾아나서야 했고, 정작 커츠의 업무 수완을 확인하게 됐을 때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인물일 뿐이었다. 자기 삶의 터전을 공격 받은 건 원주민이고 침입자는 외부인들인데, 침략자에게 착취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힘을 가하게 되는 무자비함이라니. 엉터리로 된 물건을 팔고 뒷수습은 나 몰라라 하는 영업왕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가 보여준 결과만을 보고 우러러 보는 인간들의 잘못된 눈은 어디에서 씻어줘야 하는지, 그런 커츠를 따르며 숭배하는 이들은 또 어떤 지옥을 만들려고 그러는지 한탄스러웠다. 말로의 말처럼,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읽다가 말았고, 이번에 조지프 콘래드 사망 100주기 기념판으로 나온 작품으로 읽게 되었다. 마냥 편하고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정도 분량을 넘어가면 어둠의 심장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원작으로도 유명하다는데, 영상으로 옮겨진 이 작품의 매력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이 소설 말고도, 저자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의 경험담을 살린 다른 작품도 있다고 하니 더 찾아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아니, 굳이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지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원시생활로 이어져 온 그들의 생활 방식이면서 문화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변해가는 세상을 환영하면서 살아가면 그만일 뿐일지도 모른다. 어느 선을 넘어 가면서 타인의 방식에 참견하고 우위에 있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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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문학 #세계문학 #어둠의심연 #HeartofDarkness ##책추천 #꼭다시읽어봐야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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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라스틱 지구를 생각한다 1
김성화.권수진 지음, 이명하 그림 / 만만한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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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콩국수를 먹었다. 집 근처의 가까운 곳을 놔두고 차를 타고 20분 거리의 가게로 갔다. 시간 잘못 맞추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입소문이 좋은 곳이어서 종종 가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콩물까지 한 병 사서 왔다. 콩물을 페트병에 담아주던 다른 가게와 달리 이곳은 콩물을 유리병에 담아주었다. 뭔가 더 신선해 보이고, 더 맛있어 보이기까지 하더라. 받아서 가져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건 집에 돌아오고부터였다. 냉장고에 넣어두려니 유리병이 부담스럽더라. 음료 칸의 공간이 부족해서 냉장고 안에 누워서 보관해야 하는데, 혹시 이 내용물이 흐르지 않을지, 다른 그릇과 부딪혀서 깨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냥 페트병에 담아주면 좋을 텐데, 괜히 무겁기만 하고 함부로 누워서 보관하기도 불편하구나 싶었다.


너무 편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언제부터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익숙해졌는지 잘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내 주변의 모든 것에 플라스틱이 있었고, 그중 요즘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건 당연히 페트병이다. 자주 주문하는 생수에서부터, 매일 마시다시피 하는 테이크아웃 커피까지. 투명하고 가벼운 용기가 일상의 편함을 돕는다. 그릇을 빡빡 닦을 때 사용하는 주방세제에도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는 걸 몇 년 전에 알았다. 우리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플라스틱이 없는 순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제 플라스틱 없는 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을 듯하다. 너무 편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편리한 플라스틱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너무 귀여운 그림책에서 플라스틱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생각이 전환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플라스틱이 느끼는 플라스틱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렇게 빨간 뚜껑을 머리 위에 쓴 뿔라스틱의 기자회견은 시작되었다.


뿔라스틱이 외친다. “페트병이 석유 찌꺼기로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깨지지 않고 오래 가는 병이 탄생했다고 좋아했잖아! 유리처럼 깨지지도 않고, 돌처럼 무겁지도 않고, 나무처럼 썩지도 않는다면서 마법이라고 했잖아!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다고 기뻐했잖아! 그러면서 인제 와서는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고 외치는 거야? 오랫동안 우리를 사랑해 왔으면서, 매일 손에 들고 다니면서 실컷 마셔댔잖아!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계속 사용해 주란 말이야! 우리를 함부로 사지 말고, 우리를 함부로 쓰지 말고, 우리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 주세요. 우리는 여러분의 반려 플라스틱이 되고 싶어요!”


반려 플라스틱이라니, 생각해 보니 그랬지. 어떻게 이런 위대한 발명품이 있냐면서 놀라워했던 사람들의 반응이 있었지. 그것도 석유 찌꺼기로 이런 걸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정말 놀랍고 또 놀랍다. 인류 5천 년 재료과학 역사의 최첨단 신소재라면서, 이 신소재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생각했었지. 그러면서 이렇게도 말했잖아. 인류 문명의 역사는 플라스틱이 생겨나기 전과 후로 나뉠 거라고 말이야.


그땐 그랬다. 이 위대한 발명품이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해주고 있는지만 생각했다. 이게 쌓이고 쌓여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거라고 알지 못했을 때 말이다. 편하게 사용할 거만 생각했지,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이 위기를 겪고 있는 거다. 바다 한가운데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고, 9월에도 폭염을 겪는 기후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그동안 경험했던 뚜렷한 사계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번 겨울 지독한 추위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앞으로 겪을 많은 계절에 또 어떤 기후 위기를 겪게 될지 두렵기만 하다. 이런 변화를 예측한 인간이 있었을까?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을까?



뿔라스틱의 외침은, 단순히 계속 플라스틱을 써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인간의 반려 플라스틱이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인간이 플라스틱을 아주 잘 사용해야 하는데, 더 늦기 전에 플라스틱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플라스틱이 편리함을 줄 때는 좋다고 받아놓고서는, 이제 플라스틱이 사라져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 어차피 석유가 바닥나면 플라스틱도 사라질 텐데, 플라스틱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불편함도 커질 텐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플라스틱 퇴출을 외치냐고 따진다. 그럼 그냥 석유가 바닥나고 페트병 1개도 못 만들게 되는 순간을 그냥 기다리면 될까? 아니다. 뿔라스틱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싶다고 말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 말고, 플라스틱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면 귀를 기울여 달라고, 함부로 사용하고 마구 버리지 말라고, 오래오래 쓰이는 물건이 되고 싶다고. 플라스틱이 쌓이고 쌓여 산이 되고, 플라스틱 섬이 되고, 점점 커져서 지구의 일곱 번째 대륙이 되기 전에. 인간이 저지른 일에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플라스틱을 발명해 낸 인간이, 그 모든 책임의 주인공이다.


기발한 발상에 읽는 즐거움도 있지만, 누구나 아는 그 메시지를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더 재밌게 읽었다. 항상 인간의 시선으로 플라스틱과 지구의 위기를 말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한 번도 플라스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이렇게 듣고 있자니, 그동안 인간이 말해왔던 것을 더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고 보면 플라스틱은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피해자인가 싶기도 하다. 누군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느냐고 투정 부리고 싶기도 하겠다. 인간들 마음대로 만들어놓고 이제는 피해를 준다고 쓰지 말라고, 막 꺼지라고 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일방적으로 퇴출을 시킬 게 아니라(일방적으로 퇴출할 수도 없는 게 사실이겠지만), 플라스틱이 불멸의 존재로 남아야 하는 거라면 플라스틱의 말대로 반려 플라스틱으로 머물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은 고민이 계속되어야 할 테고.


접어서 사용하는 장바구니가 가방 안의 필수품이 된 것도 오래다. 뚜벅이로 살다 보니 텀블러 하나 챙겨 다니는 게 번거롭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꼬박꼬박 가방에 넣어서 다닌다. 어느 커피점에서는 텀블러 세척 장치도 설치해 놓아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귀찮음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더위를 겪으면서 보니, 입버릇처럼 말하던 기후 위기가 피부로 와 닿는 시간이었다. 나도 이제 쓰레기가 될 플라스틱이 아니라, 반려 플라스틱을 키울래.



 

참고로 요즘 내가 자주 실천하고 있는 녹색생활 실천 같이 해봅시당.


슈퍼빈 https://www.superbin.co.kr/

투명 페트병 모아서 넣으면 돈이 됩니다. 페트병 1개에 10, 설치된 곳의 설정마다 하루 투입 개수가 다릅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은 아이디 1개당 하루에 20개씩 넣을 수 있습니다. 테이크 아웃 투명 커피잔은 안 됩니다. 병 모양의 투명 페트만 투입 가능합니다. 2,000포인트 이상으로 모이면 현금으로 출금 신청할 수 있습니다.


탄소중립포인트 녹색생활 실천 https://www.cpoint.or.kr/netzero/main.do

마트나 편의점 이용할 때 전자영수증을 받거나, 배달 음식 주문할 때 다회용기 신청하거나, 친환경 제품 구매할 때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위에서 말한 슈퍼빈과 연계도 되어서 페트병 넣을 때마다 탄소중립포인트 추가로 적립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계좌로 캐시백 되어 입금됩니다. 갑자기 입금된 내역이 알림으로 뜨면 공짜 돈 생긴 것 같습니다. ^^


탄소중립포인트 에너지 https://cpoint.or.kr/

가정 안에서 이산화탄소 줄이기에 동참하는 것도 좋습니다. 각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상수도, 도시가스 등 사용 요금에 따라 포인트가 다르게 적립됩니다. 기본적으로 아껴 쓰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이면서, 동일 면적 다른 세대보다 적게 쓰면 포인트 팍팍 쌓입니다. 일 년에 두 번, ‘환경정책과이름으로 아껴 쓴 만큼 입금됩니다. 도시가스 캐시백(https://k-gascashback.or.kr/ko/)은 다른 이름으로 입금됩니다. 별도 가입이 필요합니다. 한전 주택용 에너지캐시백(https://en-ter.co.kr/ec/main/main.do) 같이 살펴보고 가입해서 캐시백 쌓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더 있는데, 지금 생각나는 게 이 정도라서 이만 총총.



#뿔라스틱 #만만한책방 #그림책 #지구를생각한다 #재활용 #플라스틱 #인류의발명

#환경 #어린이책 ##책추천 #반려플라스틱이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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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가 미니약과 - 미니 약과 호정가 약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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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앉은 자리에서 그냥 계속 먹고 있다. 약과 맛을 몰라서는 아니고, 아는 맛이 무서운 거다. 책 한 페이지 넘기고, 약과 한 알 입에 넣고, 또 한 알 입에 넣고, 이제 다시 페이지를 넘기고... 하나도 안 남았어. ㅠㅠ 가격 좀 내려줘요. 계속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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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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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사람은 익숙해진다.

즐거운 일에도, 괴로운 일에도, 상냥함에도, 미움에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에도. (218페이지)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2016년에 출간된 짐승의 성의 개정판이다. 출간 당시에는 궁금하면서도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새 옷을 입고 이렇게 다시 눈앞에 보이니 궁금증을 가둬둘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세뇌살인, 이 소설 안에 가득하다. 추측만으로 이 소설의 내용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건, 어떻게 세뇌와 살인이 더해져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다 알 수 없어서다. 게다가 실화라니, 아마 이 소설을 다 읽은 후, 많은 독자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야기가 우리 삶 곳곳에서 침투하려고 숨어 있는 게, 너무 무섭다고.


처투성이 소녀 마야가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한다. 1년 넘도록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호에 감금된 채로 살았던 아이다. 경찰은 사건을 인지하고 해당 맨션으로 가서 아쓰코라는 여자를 체포한다. 경찰은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두 사람 모두 진술하고 있지만 구멍이 많다. 이들의 진술이 사실인가? 어떻게 이런 관계, 살인이 가능하지? 무엇보다 이들이 말하기를, 자신을 조종하여 감금, 협박, 살인을 하게 만든 요주의 인물 요시오는 어디에 있는가. 수사가 계속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이 있었지만, 완벽하게 사건이 맞춰지지 않아서 더 난감했다. 그 와중에 이 살인자들의 손에 생명을 다한 이들의 원한을 누군가가 풀어주어야만 한다. 형사들은 역할을 나누어 이 사건에 몰입했다.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끌어내려고 애쓰고, 이들이 살았던 선코트마치다 403호와 그 주변을 탐문하였으며, 작은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 사건의 진실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맨션 선코트마치다 403. 그곳은 짐승의 소굴이었다. 요시오와 아쓰코는 마야의 아버지를 끌어들이고 감금 폭행하기 시작한다. 돈을 끌어 와라, 이 수건 한 장을 쓰는 게 얼마이다 등등 한 사람을 완전히 조종하기 시작했다. 마야를 볼모처럼 붙잡고 아버지를 학대했다. 요시오는 이들 서로서로 폭행하고 고문시키면서, 이 학대의 순간을 즐겼다. 그러다가 마야의 아버지가 죽고, 이 책임을 또 딸에게 떠넘긴다. 돈줄이 끊어졌으니 또 다른 돈줄을 찾아야 한다. 요시오는 아쓰코와 그녀의 가족에게 눈을 돌리고, 또 온갖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들을 묶어놓고 서로를 감시하고 폭행하게 했다. 생각해 봐라, 내 앞에서 내가 직접 내 가족을 폭행하고 고문하면서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사건은 선코트마치다 403호와 그 주변의 작은 연립에서 동거 중인 세이코와 신고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고 있는 젊은 남녀, 어느 날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신고는 세이코의 아버지를 처음 보게 된다. 아무리 연인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계속 같이 살 수는 없다. 그것도 종일 집에 있거나 가끔 외출도 하는데, 활동하는 시간도 불규칙하고 도대체 밖에서 무엇을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신고는 우연히 세이코의 아버지를 미행하다가 뭔가 미심쩍은 일들을 보게 되고, 이미 어떤 사실을 알게 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야와 아쓰코가 빨리 진실을 다 쏟아내기를 바랐는데, 뭔가 감추면서 하나씩 꺼낼 때마다 답답했다. 그렇게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에 기함하듯 놀라기를 여러 번이다. 이게 사실이라고? 어떻게? 이 두 사람이 그 모든 것을 보고 지금 살아있다는 게 놀라기만 할 뿐이다. 계속 숨기고 있거나 아니면 조용히 도망쳐서 새 인생을 살아도 될 텐데, 굳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꺼내고 싶은 이야기만 조금씩 꺼내는 이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일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나둘,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생각했다.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는 것을.


2002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저자가 재구성했다고 한다. 3대에 걸친 일가족 일곱 명이 희생된 연쇄살인 사건. 딸이 부모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누나가 동생도 죽이는, 그 시체를 해체하여 처리했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그 가운데에 이 가족을 이간질하고 협박하고 조종과 살인까지 저지르게 한 인물이 마쓰나가 후토시라는 남자였단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찾아내고 싶었던 요시오이다. 한 소녀의 신고로 이 학대 사건이 드러났고, 너무도 잔인한 진실에 일본 정부가 대중에 알려질 것을 우려해 보도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고 한다. 저자가 이 사건을 접하고, 이 사건이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여 이 사건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모으고 써 내려간 작품이다.


어디선가 봤던 독자의 후기 한 줄이 생각난다. 토할 것 같다고.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문장을 잘못 읽은 줄 알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아니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이보다 더 잔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마치 오랫동안 해 왔던 일 처리하듯 시체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토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긴 게 다행일 정도였다. 차마 문장 그대로 옮겨오기 힘들었으니, 살면서 이보다 더 고통스럽게 읽은 소설이 있을까 싶다.


혹시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왜 당해? 나라면 바로 도망쳐 나올 텐데, 더 힘들어지기 전에 경찰에 신고할 텐데 하면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로 믿을 수도 있다. 나도 그랬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이유도 모른 채로 당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었다. 읽을수록 더 진해지는 건, 만약 나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세상과 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거짓말로 사기 치는 사람, 가까이에서 사람 마음에 들어오려고 애쓰면서 자기 이익 계산하는 사람,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떠넘기고, 그렇게 생겨나는 누군가의 고통쯤은 가뿐히 무시하는 사람. 찾아보면 너무 많다. 나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건, 어느 틈에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휘젓고 있을지 알 수 없어서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말에 휘둘려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인간이 그렇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외치고 싶지만, 인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모순을 끌어안고 사는 게 우리 현실이었다.


읽는 동안 요시오라는 악마를 계속 찾아다녔다. 그의 끝을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하면서, 그가 저지른 일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자취를 매의 눈으로 살폈다. 그래서 요시오는 붙잡혔을까?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기나 할까? 추리소설답게 저자는 또 다른 반전을 마지막에 숨겨두고, 독자에게 그동안의 사건을 복기하게 한다. 앞에서 들었던 진술을 다시 찾아보고, 어느 부분에서 틈이 있었는지 확인하여, 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게 한다. 처음부터 마야와 아쓰코의 진술을 토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이들을 세뇌한 요시오를 파헤치면서 따라가다 보면, 요시오에게 세뇌당한 이들이 보이는 행동을 파헤치는 과정까지 함께 진행된다. 인간의 본성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잔인함에 더 궁금한 게 많아졌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세뇌하여 조종하던 요시오보다 요시오에게 세뇌당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속이 울렁거린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멘탈 관리 잘하라고 들었던 말이 계속 생각난다. 이래서 정신 똑바로 붙잡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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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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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9-0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중간쯤까지 읽다가 포기할까 싶어 다른 분들 리뷰 보러 알라딘 들어왔어요 ㅠㅠ

구단씨 2024-09-10 21:46   좋아요 0 | URL
하아... 진짜 포기하고 싶었어요.
이보다 더 심한 일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걸 아는데, 이 작품 읽기가 힘들었던 게 장면의 묘사였어요.
너무 적나라하게, 비위가 약하면 바로 덮을 수밖에 없는 문장들이 너무 괴로웠네요....
 
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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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시작된 이 바람은, 다른 사람에게 거절을 못 해서 속 끓이던 게 쌓이고 쌓여 시작된 거다. 지금은 다를까? 그때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여전히 바람에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바란다. 거절 잘하는, 아니 거절해도 되는 상황에 미안함을 떠올리지 않고 거절을 말을 서슴없이 뱉고 싶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아마도 자기 검열, 자기 통제, 타인을 배려한다는 도덕적인 나를 만들어가려고 그런 건 아닐까. , 이유가 한 가지는 아닐 테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자기 통제 속에서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미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고 말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 번에 모든 걸 되돌릴 수도 없지 않은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거절도 잘 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뭔가에 이끌리듯 타인의 불행이나 악한 장면에 웃음이 나기도 하는 사람이 되는 거 말이다.


오영아. 27세의 유치원 교사. 유치원에 새로 온 아이의 폭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읽으면서 아이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의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도는, 화를 내는 지점도 납득이 안 되는 이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아이의 하원까지 도와야 했다. 그녀는 아이를 엄마가 운영하는 빵집에 인계하고 나서도 하고 나서도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아이의 하원을 시켜주는 건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이렇게 계속해 줄 수는 없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비싸기만 한 그 빵집의 빵까지 사서 나온다. 한없이 착하고 너그러운, 업무가 아닌데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개인적인 하원까지 해주는 교사로 그녀의 이미지를 만든다.


그녀의 친구는 또 어떤가. 지구를 살리는 많은 일에 동참해야 한다고,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야 한다고,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자기가 하는 말과 행동의 옳음을 당연하게 인정해 줘야 등 정말 피곤한 존재이다. 그녀는 친구에게조차 부정적인 말을,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한다.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정작 친구에게 꺼내는 말은 모두 긍정의 대답이다. 네 말이 맞지, 네가 옳아, 그렇지, 등등. 하아. 이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궁금하다.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끝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말해 뭐해. 화병이 나서 쌓이고 쌓이다가 죽었겠지. 그런데도 우리는 오영아가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순간을 종종 발견한다. 그러면 안 되는 상황에 자주 놓이고, 자기 마음 표현 다 하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선하다 보니 참게 된다.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인 걸까. 어느 순간에나 있는 자기 검열의 순간을 적응한 걸까. 타인과 살아가는 세상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함일까. 그녀의 애인도 그녀에게 요구하는 건 친구와 다를 바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일상에서 웃음이 사라진 걸 알아차린다. 주변을 살피며 억지로 웃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던 그녀는 그렇게 된 이유를 찾다가, 상담 센터를 찾는다. 그녀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던 일상의 습관을 바꿔줄 곳. 뇌 시술을 하는 곳으로, 그녀는 정서 조절시술을 받는다. 그동안 참아왔던 자기 통제의 선을 끊을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적용되는 기간은 4주다. 그러니 뭔가 잘못되었어도 4주 후면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일탈 같은 변화를 겪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변했을까? 변했다. 그동안의 오영아는 떠오르지 않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억눌린 욕망이 그녀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싸움을 방관했다. 친구가 하는 말에 자기 생각을 서슴없이 꺼내며 지적했다. 이런 행동은 평소 오영아가 보이기 싫었던, 주변 사람을 잃기 싫어서 선택한 방식과 완전히 달랐다. 파괴적인 장면들에 웃음이 났고, 속으로 욕했다.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피력하고, 그동안 억눌렀던 모든 감정이 그녀의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상담 센터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으나, 시술의 효력이 끝나는 때만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대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이 그녀를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포장해 주었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안에서 꿈틀대던 반박의 감정들은 이제야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가 느끼는 것도 그녀와 비슷한 해방감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아가고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몇몇은 기아에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후원한다. 한 달에 커피 서너 잔만 안 마셔도 가능한 일이라고, 나에게도 이 후원에 동참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별로 내키지 않아서 따로 답변하지 않았는데, 이 후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나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는 계속 내가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싶고, 만약에 커피를 안 마신다면 그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더 챙기고 싶은데? 결과로만 보면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여전히 후원 활동도 하지 않고 있으며, 계속 마시던 커피도 마시고 있다. 그런데, 그때 이후로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무심코 커피 한 잔씩 마실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은 마음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정의가 상대방의 정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뱉은 말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눌러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영아처럼 묵은 감정을 어느 순간에 폭발하듯 쏟아낼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여러 관계를 맺고 유지하면서 때로는 나에게 필요한 상황에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관계를 해치는 태도는 지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또 다른 방에서 쌓이고 있는 것들을 돌보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소설 속 오영아가 보여준 모습이 그랬다. 그녀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고마운 관계들 속에서 지켜야 하는 선을 만들고 살아가던 그녀가, 어느 방 하나에 쌓아둔 감정이 쏟아져 문이 열렸을 때 보인 행동에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한 번은 그녀가 받은 전두엽 시술을 받고, 내가 억눌렀던 나로 살아가는 시간을 맛보고 싶기도 하다. 소화제 마시고 체한 게 다 내려가는 듯한 개운함이 있지 않을까. 어차피 4주 후에는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고 하니, 4주의 시간 동안 경험했던 것을 근거로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설정이 좀 과장되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읽다 보니 푹 빠져든다. 뭐야 이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어? 매 순간 양보하고 절제하며 자기 통제를 하듯 살아가는 게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였네. 적당히 선을 지키며 살아가도 되는데, 왜 자꾸 모범을 보이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착각이 심어졌던 걸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버티려다 보니 저절로 쌓인 내공이었던 건가. 어쨌든 오영아가 시술 후에 보인 모습들에 속이 시원해진 건 사실이다. 그녀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라도 조금 변한 태도로 살아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건, 그녀가 친구에게 쏟아내던 말들 중에 있다.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124페이지) 그랬다. 이 말 한마디면 살아가는 동안 맺는 관계의 기준, 내가 보여야 할 태도,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선이 만들어질 것 같다. 나를 존중하는 이들에게만 양보와 배려를 보여주면 된다. 그걸 알아가는 데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면, 오영아가 받은 시술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소설의 끝부분에 다다르면, 반전도 있다. 읽다 보니 어느 순간 ?’하는 느낌이 오는데, 오영아가 시술의 효과를 보여주는 최고점이 아닐까 싶다. 먹을 때는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다 쏟아내고 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후련함을 주는 게, 꼭 대장내시경 약 먹은 것 같다. 안 그래도 요즘 화장실 가는 게 불편해졌는데, 생각난 김에 대장 청소 한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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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뻥도이것보다시원하게뚫리지는않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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