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시간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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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이 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돈을 쫓는 사람에게는 돈이, 행복과 안정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조금 부족해도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떠올리는 게 우선이 된다. 이상하게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희생하게 되는 인생의 계산법은 늘 적용되는지라, 언제나 선택은 하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도 했다. 이섭이 북으로 올라갔다가 남으로 내려오면서 선택한 우선순위, ‘이쪽에서 내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 더 나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기때문에,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뿐이었던 결정은, 그의 인생을 유령의 시간으로 만든다.


솔직히 난 어떤 사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안 드네. 다만 어떤 게 더 인간적인 제도냐의 문제겠지. 나는 겁 많은 사람이라서 그냥 내 가족과 아이들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네. 내가 믿는 신념 때문에 가족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네. 제 몸만 아낀다고 비난해도 좋네. 나는 아이들이 칼끝에 손만 베여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네.” (134페이지)


일제강점기가 끝났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다. 이게 행복일까 싶은 것도 잠깐, 사회주의를 꿈꿨던 이섭은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다. 경찰이 그를 대신해서 아내와 어린 딸을 잡아갔지만,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이 곧 풀려날 거로 믿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는 이념을 좇아 북한으로 간다. 모든 것이 공평하게 나눠지고 살아갈 수 있는 그곳에서 자리를 잡으면 남은 가족을 불러와야지. 아마도 이런 마음으로 목숨 걸고 북으로 올라간 건 아닐까. 막상 보게 된 북한의 현실은 그가 바라던 이념과 너무 달랐기에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임진강을 건너 남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마주한 또 다른 현실은 잔혹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북으로 갔다는 소식에,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거창한 바람도 아니었는데, 현실은 잔혹했다. 내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소박한 바람은 한 사람을 살아있는 유령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숨을 쉬고 있으나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도 아쉬울 것 없을 것 같지만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또 다른 가족이 있다. 그가 두 번째로 꾸린 가족 역시 그의 행복이고 책임이었으니,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세상은 그를 번번이 좌절하게 했고, 북쪽을 바라보면서 키운 그리움 또한 계속 쌓여가기만 했다. 먼 거리에서 수면위로 비추는 조명이 이상하게 깜빡일 때마다, 이름 모를 고무배가 남쪽으로 흘러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희망 고문은 커졌다. 내 가족이 그렇게 흘러 남쪽으로 오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몰려왔다. 창자의 내벽에 굵은소금을 박박 문질러대는 것도 같고 칼로 자근자근 저미는 것도 같은 통증이었다. 10년 가까이 전쟁터에 갇혀 오직 홀로 싸움터를 누빈 영성이 아버지의 고독한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그 시간 동안 자신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는 남자를 보며 시린 가슴을 견뎌야 했을 여자의 외로운 울음소리 같기도 하며, 20년이 다 되도록 전생의 감옥에 갇혀 그리운 이들을 찾아 헤매다 어느새 쉬어버린 이섭 자신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심지어 신혼의 골방에서 신랑이 폭사했다는 미자의 울음으로도 들렸다. 어쩌면 그 모두의 것인지도 모를 울음이 이섭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98페이지)


창문 너머로 아파트가 보이는 북한의 한 호텔에서, 화자인 지형의 목소리로 시작된 이 소설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이념으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런 현실에서 지형은 작가가 되어 북한에 방문하게 되었고,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의 간절함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고 싶었으나,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평생 품고 살았던 비통함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살아있다고 믿고 있으니 만날 것 같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금방이라도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닿지 못했다. 기다림에 애가 타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는데, ‘사회안전법은 또 한 번 한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저 가족과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가졌던 이념이, 그 이념을 좇아가고 싶었던 선택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도 있나?


이념, 역사, 정치 등 많은 화두가 언급될 수 있는 소설이겠지만, 한 사람의 삶으로 읽혔다. 그 인생의 흐름 사이에 이념 갈등, 민족의 역사, 현실 속 정치적인 면이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한다는 게 아이러니이지만. 혹시라도 그는 현실적인 문제에 갇혀 자기 삶이 다르게 읽힐까 봐서 걱정이라도 했을까. 자신의 삶을 유령의 시간이라고 선언하면서, 스스로 그 모든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몇 장 쓰지도 못한 채로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겠지만. 그렇게 첫 문장이 시작되고 40년 만에 작가가 아버지의 인생을 완성했다고 한다그래서 더 의미 있다. 내가 접근할 수 없던 시대의 불행을, 울음 가득한 외침을 듣게 한다. 역사가 쥐고 흔들었던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보아야 할 것을 고민하게 한다.


개정판으로 읽게 된 지금, 굉장히 잘 읽히는 소설이지만, 생각해 보면 많은 것이 의아하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뭐가 달라졌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상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것도,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고, 확성기를 틀어대고, 남과 북의 대화는 단절되었으며, 급기야 남과 북을 잇는 다리를 폭파하기에 이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안타까움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유령 같은 인생은 누구의 몫인지 묻고 싶다.


#유령의시간 #김이정 #교유서가 #다시소설 ##책추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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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31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31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귀신 사냥꾼이 간다 1 : 요괴마을 - 제9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천능금 지음, 전명진 그림 / 비룡소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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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인간이 죽으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데, 이상하게도 바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아직 이승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련이 남았거나, 죽었는데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이런 상태에 머무를 때 귀신이라고 부른단다. 그런데 그냥 귀신이 되는 게 아니라, 귀신의 혼을 지탱할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고, 그 물건을 또 귀물이라고 부른다. 이 귀물의 형태는 다양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다. 귀신은 귀물로 인간의 나약한 면을 파고들어 흔들고, 이때 인간의 몸으로 들어와 살아가기도 한다.


귀신, 귀물, 요괴 등 한국식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나이의 아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게 되는 것까지 더해지니, 더 의미 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태주와 태희는 잠시 할머니 집이 있는 요괴마을에 와서 지내게 되었다. 이름도 요상하다, 요괴마을이라니. 시골의 한적한 곳을 상상했는데, 여기에도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똑같았다. 학교에서 잘 지내지 못했던 태희가 여기에서라도 편하게 지냈으면 싶은데 어떨 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마을, 요괴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에서의 색다른 모험까지 더해지니 더 새로운 환경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으니, 이거 정말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귀신이 등장하지만 무섭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귀신이 어떻게 인간의 몸으로 파고드는지 그 배경이 되는 이유가 무서웠다. 태희가 할머니 집으로 온 이유는 부모가 돌보지 못할 환경에 처해지자 잠시 맡겨진 건데(정말 잠시 뿐일까 하는 걱정이 되는 건 왜인지), 이 아이에게 돈은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외모를 신경 쓰는 여자 아이는 그 외모를 더 빛나게 해줄 것을 간절히 바라게 되고,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자기편이 한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겁내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귀신들이 얼마나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지, 나는 안 넘어갈 것 같다고 장담할 수 없게 인간의 욕망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파고드는 걸 보면 정말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귀신 사냥꾼 해주와 그 멤버들이 인간에게 해가 되는 귀신들을 물리치는 모험이 흥미진진했다. 어딘가 간절함 하나를 숨기고 사는 듯한 해주의 걱정이 무엇인지, 태주와 태희 형제를 비롯하여 또래 아이들이 무슨 생각과 고민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엿보는 재미도 상당했다. 재미 그 자체를 넘어서서 그 나이의 일상을 이해하는 교재라고 해야 하나. 사실 지금도 조카들이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나이만 다를 뿐이지 우리 어른들도 비슷하게 고민하고 신경 쓰이는 것들, 나이가 다르니까 고민의 종류가 다른 것들까지, 그냥 서로 다른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조금 더 보태자면, 그 시기를 지나왔으니 알 것 같은 마음이라고 설명해도 되겠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조금은 울컥해지기도 하고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적응하면서 잘 살아가는 것만이 답이 아닐까 하는 거다. 물론 애써 노력하고 과하게 욕심 부리면 뭔가 더 얻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뭐든 세상에 공짜는 없고, 내가 바라는 게 있으면 하나는 내어주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었던가. 아름다운 외모,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돈, 친구의 마음을 얻는 일 같은, 그때의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이 일찌감치 이런 삶의 이치를 알고 자란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해주와 월주 남매가 처한 상황까지 본다면, 그래, 이치를 따르는 게 맞는 거겠지 싶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사연,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는 게 좋겠다. 미리 알고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 ^^


비룡소의 스토리킹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라도 한번은 읽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앞서 출간된 몇 권을 더 읽었지만, 해당 연령대의 아이들이 직접 심사를 했다는 게 이시리즈의 매력이자 검증된 재미가 아닐까. 처음에는 조카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고르면서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그냥 즐기기에도 충분한 재미와 의미가 있는 시리즈로 계속 찾게 될 것 같다.



#귀신사냥꾼이간다 #천능금 #비룡소 #스토리킹수상작 #비룡소스토리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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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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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여기저기 축제가 한창이다. 실내의 에어컨보다 자연의 바람과 꽃과 단풍을 찾아다니는 계절이 왔다. 연휴가 찾아오면서 평일 낮 시간대의 시내 도로가 막힐 정도인 걸 보니, 사람들이 어딘가로 계속 이동하고 있다는 걸 알겠더라. 이 많은 사람은 어디로, 누구와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러 가는 걸까. 굳이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딘가에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다면, 바로 거기가 사람들이 다녀간 곳을 테니까 말이다. 인간의 역사가 쓰레기의 역사와 같다는 말이, 인간이 있는 곳에 늘 쓰레기가 있었다는 말이 증명되는 셈이다. 기후 위기를 강조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이번 여름이 그랬고, 몇 년 전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그랬다. 이제 우리나라의 봄과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나가고 있고,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산더미 같은 쓰레기가 남곤 했다. 쓰레기 산, 쓰레기 해변, 쓰레기 섬 같은 말이 주는 공포는 이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럼, 이 쓰레기들은 어디에서 왔고, 언제부터 쌓이기 시작했을까?


이 책이 말하는 쓰레기의 역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편해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활용하고, 그때부터 당연하게 인간 주변의 쓰레기가 늘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쓰레기의 역사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거의 기원전 1만 년에서 기원전 6천 년 사이에,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쌓이는 쓰레기와 마주했다. 매일 버릴 게 생기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했다. 구덩이를 파서 묻거나, 그냥 집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그냥 내 눈에서 안 보이면 쓰레기 문제는 더는 문제가 아닌 게 되는가 보다. 중세에서 넘어오던 시대에도 쓰레기를 계속 배출됐다. 특히 가축의 배설물 처리는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그때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산업화 도시화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구체적인 쓰레기 처리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떨어진 곳으로, 폐기물을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지 의논했다. , 이 폐기물을 단순히 버리는 문제에 그치지 않고 활용하는 대안까지 생각했다. 쓰레기의 내용물만 살짝 다를 뿐, 오늘날 우리가 고민하는 쓰레기 문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 후에 쓰레기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그 증가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이 쓰레기를 처리할 획기적인 방안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20년 안에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가 거의 두 배(지금보다 거의 75% 이상)에 가깝게 늘어날 거라고 경고한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재활용할 수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지금처럼 처리 불가능할 정도로 많지 않았기에 심각성을 몰랐다. 가축의 배설물을 농사에 이용하기도 하고, 옷이나 물건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재활용의 의미가 있었다고 하니, 여러 의미로 순환되면서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던 게 산업화되면서 전혀 다른 문제가 되었다. 세상은 풍요로워졌고, 인간의 편의를 위한 다양한 제품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필요한 것을 다 갖추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물건이 필요했고, 남아도는 물건들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는 갑자기 너무 많이 늘어났고, 생명체의 배설물은 농사에 더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화학비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가 자주 돌보는 작은 텃밭에서도 여러 가지 비료와 거름,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를 물리치기 위한 농약 등이 쓰이는 걸 보니, 진짜 인류의 시작과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게 그대로 느껴진다.


인간이 풍요로워지자 쓰레기도 엄청나게 늘었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오늘날 쓰레기 문제의 대표로 느껴질 정도의 플라스틱은 심각하다. 기후 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플라스틱은, 생산되고 처리되는 모든 순간에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하는데, 올여름 내가 기절할 것처럼 느낀 더위는 플라스틱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기후 문제가 비단 플라스틱 하나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플라스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배운 플라스틱 재활용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도 요즘 의심스럽기는 하다. 며칠 전 봤던 뉴스 보도에서,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분리수거하면서 기대했던 플라스틱 재활용이 사기극이라는 말을 듣고 무서워졌다. 정말 어느 기업의 거짓말인지, 아니면 진짜 조금이라도 재활용이 되고 있어서 기후 위기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도 좋은 건지... 플라스틱이든 다른 쓰레기의 재활용이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기술적 대처와 비용 문제가 뒤따른다. 특히 비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쓰레기 처리와 재활용 문제의 어려움은 지속되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쓰레기가 사라진 게 아니다. 각 국가는 자기 나라의 쓰레기를 나라 밖으로, 식민지로 이용하는 국가로, 저개발국가로 떠넘긴다. 바다 위 쓰레기 섬이 만들어지는 게 새삼스럽지 않을 일인데, 사실 현재 보이는 쓰레기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아직 없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런 문제는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할 문제로 남겨두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어떤 방법이 없어서 간단히 설명할 수 없어서 특별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소비와 생산을 줄이면 괜찮아질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단순한 머리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도 딱히 개운한 방안을 떠올리지는 못하겠다. 날씨가 추워지니 예쁜 텀블러 하나 마련해볼까 생각하다가, 지난번에 환경 전문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일회용품 줄이겠다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건 좋지만, 예쁘다고 텀블러 이거 사고 저거 사고 그럴 바에는 그냥 일회용 종이컵을 쓰라고 하더라. 텀블러 하나가 소비될 때마다 얼마나 환경이 오염될지 생각해 보라고. 그랬다. 내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텀블러 하나면 족한 것 같다. 이게 망가지고 더 사용할 수 없어지면, 그때 하나 마련해도 된다.


쓰레기 문제의 개선과 방안을 위해서 다양한 해결책을 전해주는 책은 아니다. 쓰레기의 시작과 과정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는 것을 들려주면서, 우리 생활의 변화가 쓰레기의 변화까지 같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문제의 다양한 접근법이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쓰레기 문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많은 전문가의 의견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 가운데 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또 나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내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소비, 그거면 되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정도인 것 같아서 아쉽지만, 오늘도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가을옷 마련을 향한 갈증은 확실히 줄어들었다는 게 이 책을 읽고 난 수확이다.



#쓰레기의세계사 #로만쾨스터 #흐름출판 #우리가쓰고버린부작용의역사

#쓰레기의시대 #재활용 #플라스틱 #환경오염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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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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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줄기는 잠시 후 살롱 끝자락 벽에 닿더니 천천히 벽을 타고 올라갔다. 처음에는 빛줄기가 살롱에 들어서고 벽을 타고 오르려 할 때, 약간이지만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천장과 벽에서 무엇인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거대한 것들이 천장과 벽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빛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향하면 마치 숨어 있던 알 수 없는 것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중략)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던 내게 떨어진 것은 수천 갈래의 밝은 빛줄기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빛의 반사로 처음에는 시야를 잃었고 이내 주변은 온통 따뜻함으로 감싸졌다. 마치 엄마의 포근한 품속에 안긴 것처럼. (93~94페이지)


문장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계속 장면을 그리게 되는 건 나뿐만은 아닐 테다. 건물의 부서진 부분으로 자연의 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장면, 넓은 식탁의 한 곳을 비추다가 점점 방향을 옮기는 빛줄기, 모두가 모여 있는 살롱을 한 바퀴 돌듯 빛의 움직임이 끝나는 과정이, 마치 몰입해서 보던 연극의 막이 내리는 듯하다. 어디 더 근사한 표현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지만, 나란 인간 감성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보다. 누군가는 그 빛을 보려고 일 년 동안 기다린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보니 단순히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에 이해가 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파리의 한 저택을 구입하려고 하면서 시작된다. 돈이 없는 뤼미에르에게 유서 깊은 저택이 헐값으로 다가온다. 그 저택은 오래되었지만, 막상 보고 나니 뭔가 더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된다. 건축가인 그가 조금씩 손을 보면서 고치면 되겠지. 하지만 그 저택을 구입하기 위한 조건이 하나 있다. 스위스의 요양병원에 있는 집주인 피터를 만나러 와 달라는 것. 한달음에 달려간 그는 요양병원을 보고 또 한 번 반하게 된다. 중세 수도원이었던 곳이 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한 거다. 그것도 한쪽이 부서진 채로 나머지 부분을 요양병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니, 이곳도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 그곳의 아름다움에 반한 것도 잠시, 이 요양병원에서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혼란에 빠진다. 마치 수수께끼 같은 건물 탐사는 계속되고, 그때마다 이 건물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펼쳐진다. 건물을 어떻게 이렇게 지을 수 있지? 매번 보면서도 감탄하고, 뭔가 하나씩 감춰진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뤼미에르는 이 비밀이 단순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리고 파리로 돌아온 그에게 피터는 저택을 양도한다. 그렇게 다시 수수께끼 풀기는 파리로 이어져 왔고, 스위스의 중세 수도원이었던 요양병원과 파리의 저택에서 찾아낸 비밀은 한 사람의 역사이자, 한 가족의 모든 기억이었으며, 사랑이었다.


건축가인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몰라도, 이 소설의 배경과 모든 구성이 건축물과 연관되어 있다. 처음 소개 글만 봤을 때는 어떤 신비로운 건축물 하나를 파헤치는 정도로 여겼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파리의 저택과 스위스의 중세 수도원, 시간은 현재와 1920년대를 교차하며 과거를 추적하고 기억을 불러온다. 그 중심에 건축가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추리와 일반인이 상상만으로 그릴 수 없는 묘사가 가득하다. 거기에 비밀의 도서관, 두 권의 일기, 열어야 할 곳의 열쇠들까지 미스터리한 수수께끼는 계속 이어졌다. 천장, , 깨진 유리 등의 틈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를 그리느라 더디 읽히기도 했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빛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특이하긴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소설의 대부분은 건축물의 묘사로 진행되었고, 상상만으로 그 장면 그대로를 온전히 그리면서 읽기에는 어려웠다. 내 머리로는 무슨 복잡한 도면을 그리면서 읽어야 할 정도였는데, 그것도 초반 부분 읽으면서 잠깐 끼적이다가 말았다. 그냥 흐름을 타듯 읽어갔다. 이 건물의 이런 공간, 주인공이 건축의 전공을 발휘해 찾아내는 수수께끼의 정답을 같이 확인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드러나는 과거의 비밀, 직접 전하지 못해서 쌓인 오해들, 누군가의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복원된 집, 그 안에 가득한 사랑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 컸다. 진짜 사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한 가족의 사연으로 느끼게 했다. 그렇지. 집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어서는 의미가 없다. 그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것, 그 안에 같이 머무는 사람들과의 교감까지, 무엇 하나 빼놓고서는 집의 의미를 말할 수 없으리라. 저자가 전달하고 싶은 것도 결국은 이 메시지일 거로 여겨지나,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좀 어렵다거나 재미가 덜 하다고 해야 할까. ‘쏟아지는 찬사만 믿고 보기에는 좀 아쉽더라는...



#빛이이끄는곳으로 #백희성 #북로망스 #소설 #한국소설 ##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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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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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인 는 동료들과 함께 말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말로가 꺼내는 어떤 모험을 끝까지 듣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는 거의 없는 그들 중 한 명이다. 말로는 다양한 지역을 항해했던 선원이었고, 그의 간절한 바람 중 하나는 콩고에 가보는 것이었다. 말로는 어린 시절부터 지도 보기를 좋아하면서 세계 여행을 꿈꾸었고,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모습의 콩고에 매료되었다. 이번 항해는 콩고를 향하는 증기선 선장이 되어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여정을 하게 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설레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불길한 기운이 그를 둘러싸여 있다. 같이 항해하는 선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건, 이 항해가 절대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경고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콩고를 향한 마음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출항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난 후, 말로의 배는 콩고에 도착하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콩고강 하구였다. 그가 가야 할 곳은 콩고강 상류여서, 한참을 더 가야 하는 그는 작은 기선으로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가 도착하고 난 후 보게 된 것은 예상 밖의 광경이었다. 문명화 작업이 한창이었고, 철도 건설은 제대로 되는 건지도 모르게 열악했다. 가장 끔찍했던 건, 쇠사슬에 묶인 흑인이 노예처럼 강제 노동을 하고 있던 거였다. 이곳을 지배하는 이들이 정한 말도 안 되는 법을 어긴 죄로 끌려온 이들이 여기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 많은 흑인이 죽어 있었고, 겨우 목숨이 붙은 채로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이 참혹한 광경에 놀라는 것도 잠깐, 그는 목적지로 향해 가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 그였다. 그도 항상 떳떳하게 살아왔던 건 아니었고, 인간이 욕망을 품으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혹시 이건 악마의 장난인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말로가 관리자를 만나 서류 업무를 확인하면서 커츠라는 인물에 대해 듣게 된다.


커츠그는 누구인가. 콩고강 상류에 위치한 교역지의 관리자로 남들보다 몇 배의 상아를 보내는 인물이다. 굉장히 업무 수완이 좋은 인물인가. 요즘 그의 행방이 묘연하다면서 그의 생사 확인과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게 말로의 첫 임무가 된다. 그리고 말로는 이 회사의 관리자들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걸 알지만 모른 척한다. 그렇게 커츠를 찾으러 가는 길, 점점 지금과 다른 시대로 진입하는 느낌이 들고, 커츠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원주민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 곳에서 커츠를 만났으나, 오히려 커츠는 무덤덤했다. 열병으로 죽어가는 그가 더는 바라는 삶이 없게 된 것인지 왜인지, 같이 떠나자고 하는 손을 붙잡지 않다가 다시 배에 오른다. 돌아가는 길의 배 안에서 커츠는 사망하고, 벨기에로 돌아간 말로는 커츠의 약혼녀를 만나러 간다.


어떤 이야기 한 편을 꽤 오래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 곳곳에서 인간의 욕망과 나는 그 욕망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 수도 없이 묻게 된다. 콩고 강에 도착해서 말로가 본 광경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게 잘못된 거라고 여길 것 같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말로가 만난 커츠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곳을 지배하듯 살아왔지만, 정작 내가 그곳에서 커츠로 살았다면 다른 모습으로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갈 수 있었을지 말할 수 없었다. 말로 그 자신은 아닐 거로 자신만만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 관리자의 비리를 보고 모른 척하고 지나가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도 말로가 마냥 바닥인 인성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건,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취한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마지막에 알게 된 진실(?), 인간이 저지를 수 없다고 여긴 악행을 세상에 알린 일이다.


'당신은 파멸하고 말 겁니다' 나는 말했어. '완전히 파멸하고 말 거라고요' , 때로 번뜩이는 영감 같은 게 찾아올 때가 있잖나. 나는 옳은 말을 했던 셈인데, 물로 그 시점에, 우리의, 앞으로 지속될, 심지어 끝까지 지속될, 끝나고 나서도 지속될 친밀함의 주춧돌이 놓이던 바로 그때 그는 이미 더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긴 했지만 말일세. (156~157페이지)


읽으면서 괜히 더 궁금해지는 건 커츠였다. 회사에서는 엄청난 양의 상아를 보급하던 그가 소식이 없자 당연히 찾아나서야 했고, 정작 커츠의 업무 수완을 확인하게 됐을 때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인물일 뿐이었다. 자기 삶의 터전을 공격 받은 건 원주민이고 침입자는 외부인들인데, 침략자에게 착취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힘을 가하게 되는 무자비함이라니. 엉터리로 된 물건을 팔고 뒷수습은 나 몰라라 하는 영업왕을 보는 기분이랄까. 그가 보여준 결과만을 보고 우러러 보는 인간들의 잘못된 눈은 어디에서 씻어줘야 하는지, 그런 커츠를 따르며 숭배하는 이들은 또 어떤 지옥을 만들려고 그러는지 한탄스러웠다. 말로의 말처럼,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다른 출판사의 판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읽다가 말았고, 이번에 조지프 콘래드 사망 100주기 기념판으로 나온 작품으로 읽게 되었다. 마냥 편하고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정도 분량을 넘어가면 어둠의 심장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원작으로도 유명하다는데, 영상으로 옮겨진 이 작품의 매력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이 소설 말고도, 저자 조지프 콘래드가 콩고의 경험담을 살린 다른 작품도 있다고 하니 더 찾아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문명과 야만의 구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아니, 굳이 문명과 야만을 구분 지어야만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원시생활로 이어져 온 그들의 생활 방식이면서 문화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변해가는 세상을 환영하면서 살아가면 그만일 뿐일지도 모른다. 어느 선을 넘어 가면서 타인의 방식에 참견하고 우위에 있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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