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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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170페이지)


1년 후에 도착할 편지를 쓰는 일.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이벤트를 모른 척할 수가 없는 건,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었다는 거 아닐까. 말하고 싶지만 선뜻 꺼내지 못 하는 말,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담아두기만 했던 말, 계속 담아두자니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난 편지쓰기라니.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마주한 편지라는 대화는 태희의 현재에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 오늘의 서러움과 모욕감을 새긴다. 이 감정의 이름을 몰라서 당황하고 대응하지 못했던 순간을 후회한다. 이 편지는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닿을 것인가. 태희의 오늘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소설 속 두 명의 태희는 각자의 시간을 산다. 삼십 대의 태희는 현재의 모든 것을 미루며 사는 중이다. 엉망인 집안을 치우는 일, 친구의 생일을 그냥 지나친 일, 애인과 헤어지는 일 등을 미루던 중에 할머니의 죽음을 듣는다. 어린 시절 태희의 모든 시간을 지켜봤던 할머니의 죽음은 태희에게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 태희는 할머니의 애도마저 미루고 있다. 어떤 것도 현재의 태희에게 와 닿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 꺾이는 중이고 부러지기 직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머니에 대한 애도까지 미룰 수 있는 걸까 싶지만, 태희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그녀의 미루기를 마냥 욕할 수가 없다. 이도 저도 못 하고, 가슴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가는 이때 태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태희를 보면서 십 대의 태희를 동시에 본다.


삼십 대의 태희가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쓴 편지는 십 대의 태희에게 보내진다. 그 편지를 누구에게 보낼까 하는 고민은 그 편지를 쓸까 말까 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였다. 그녀 말마따나 지금 쓰게 될 이 편지를 1년 뒤에 받아도 괜찮은 사람, 그때까지 사이가 틀어지지도 않고, 나의 부끄러움도 보여줄 수 있는, 이 이벤트를 비밀로 해줄 사람이 누구일까 싶었을 때 가장 안정적인 사람이 과거의 태희였던 것. 무슨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처럼, 삼십 대의 태희가 쓴 편지는 십 대의 태희에게 배달된다.


십 대의 태희를 보여준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도 팍팍한데, 아직 철부지로 있을 십 대의 태희를 소환하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태희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다. 부모님은 각자의 삶을 위해 떠났고, 태희는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어린 시절은 상처뿐이었다고 여겼다. 부모에게 버려진 느낌이었고, 이모와 같이 방을 쓰면서 어린 태희에게도 필요했을 사생활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상처뿐이라고 여기던 그 시절은 태희도 모르게 성장하던 시간이었을 거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는 담임의 차 위에 똥을 쌌고, 오래된 친구와는 이별했다.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면서 권위를 내세우기만 했던 담임에게 보여준 태희의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와 아빠가 말하지 않은 진실에 상처받고, 어떤 일은 겪고 나서야 배우는 감정이었다. 부끄러움과 자책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느꼈던 건 모욕감이라고. 이런 감정은 또 어떻게 알게 되는 걸까. 누구인지 모르지만 태희와 이름이 같은 이에게 배달된 한 통의 편지에서 그녀는 버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답장을 쓴다. 누구에게 온 건지도 모른 채로 읽은 편지, 제대로 배달될지도 모를 편지를 쓰는 마음. 아마 그때의 태희는 그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태희가 과거의 태희에게 쓸 수밖에 없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들은 젊었다. 어린 내게 젊음은 완벽한 어른이었다. 지금 내게 젊음은 얼어붙은 호수 같은 것. 언제 갈라지고 깨질지 알 수 없는 것. 미끄러지지 않으면 얼어붙는다. 서로에게 적당한 속도로 다가갈 수도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다. 아래의 것이 위로 올라오면 죽고 위의 것이 아래로 떨어지면 죽는다. 내게 어울리는 곳이 아래인지 위인지 판단할 수 없고 빙판에서 우리는 영원할 수 없다. 어릴 적 내게 빙판은 신나게 놀 수 있는 곳이었다. 어른들은 빙판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빙판을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언 것은 녹는다. 인식은 변한다. 시간은 쌓인다. (190페이지)


아마도 오늘의 태희는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 이 모습이 맞는지 묻고 싶고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를 애도하기 위해서라도, 불평등과 부조리로 웅크리고 있던 회사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애인의 배신에 끝을 내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거쳐야만 했던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다. 그 시절 이해할 수 없던 어른들의 행동에 상처받은 아이는 자라서 그때의 어른과 다르지 않은 어른이 된 것만 같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중얼거리면서,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한 마음을 꾹 눌러 담으면서,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 하면서 자라는 태희의 모습에 섬뜩해지는 건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다. 어릴 때 바라봤던 어른들의 모습이,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이라는 건 절망적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다를 거라는, 어린 내가 감당해야 할 문제는 어른이 되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었던 것. 과연 그럴까. 마치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는 뒤늦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만 같다.


나는 왜 여기에 있지. (중략) 난데없는 곳에 뚝 떨어진 나는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며 여기가 어디지, 난 왜 여기 있지, 원래 난 어디에 있었더라, 당황하는 것이다. 나는 늘 어딘가로 가는 도중 같았고, 어디에도 나만의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124페이지)


지나고 나니 기억도 나지 않는 상처들 때문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린 태희가 내린 결론도 그런 것이었다. 이 모든 게 어른이 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믿고 그 시간은 건너왔을 테지. 하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었다는 게 함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었고, 그러니 어른이 된다는 게 해결은 아니라는 것. 시간은 흐르고 우리가 물리적인 나이를 먹어가는 건 당연한 흐름이겠지만, 어린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 또한 당연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어른이 아니라 가 되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 태희가 어린 태희에게 보낸 편지로, 어린 태희가 어른 태희에게 보낸 편지로 달라질 두 사람의 모습이 기대되는 건, 서로의 진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 부끄러움을 당당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괜찮아질 오늘을 만나고 싶어서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편지로, 어른 태희는 엄마의 집에 찾아갈 수 있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애도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지 않았나.


기꺼이 외면하고 싶었던 상처와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동시에 그 상처와 마주해야만 오늘의 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어느 심리 치료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일의 시작점을 찾아서,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현재의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근원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과거의 나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우리의 어린 시절에서 이어져 온 삶을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는 것을. 그 문제가 무엇이든, 상처가 무엇이든, 펼쳐놓고 다시 읽고 화해하면서 진정한 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어린 태희가, 어른 태희가 말하는 것만 같다.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되는 과정을 걷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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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1-04-29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되는 과정을 걷는다라... 정말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에요. 인생의 끝자락에 섰을 때 너무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ㅠㅠ

구단씨 2021-05-04 14:00   좋아요 1 | URL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결국 그거 같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이 내가 되어가는 그 과정의 일부이지 않을까 하고요.
그 끝에는 내가 있겠죠. 물론 지금도 내가 있긴 하지만요. ^^
 
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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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든 완벽하지는 않다. 미루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서두른다고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491페이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변화가 필요하고 다른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선뜻 지금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들. 너무 익숙하고, 때로는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 한다고 하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듯한 불안까지 더해져 마음은 혼란스럽다. 뭔가 더 이뤄내야 하는데 환상 같은 현실 속에서 머물러 있기만 하는 때. 남들은 저기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자리가 맞는 걸까? 끝도 없이 고민과 질문이 이어지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로즈에게 지금 이런 순간이 아니었을까?


2017, 서른다섯 살의 로즈. 그녀 옆에는 9년을 함께한 남자 조가 있다. 그가 몇 년 동안 준비한 부리토스 사업은 녹슬어가는 트럭처럼 부식되고 정체되어 있다. 정말 그는 부리토스 사업을 하긴 할는지 알 수도 없다. 로즈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조의 옆에서 그의 꿈을 지지해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다르다. 그가 빨리 현실의 무능력에서 벗어나기를, 되지도 않는 꿈을 찾는 게 아니라 그녀와 함께 현실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로즈라고 다를까. 카페에서 일하는 그녀에게도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현실이 없다. 분명 현재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조의 꿈을 계속 지지해주면서 하루를 버터야 하는지, 그녀의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가 어렸을 적에 사라진 엄마, 그동안 아버지는 한 번도 엄마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는데... 엄마가 가진 책 두 권의 작가인 콘스턴스 홀든과 아는 사이라고, 로즈는 콘스턴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어한다.


1980년의 엘리스.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델 일을 하는 그녀는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고 인연이 시작된다. 같이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엘리스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 콘스턴스 홀든. 엘리스와 코니(콘스턴스 홀든)는 연인이 된다. 삼십 대의 유명한 작가와 스무 살의 어린 연인. 아직 자기 일을 제대로 찾지도 못했던 엘리스와 작가이면서 이제 더 유명해지려는 코니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 연인의 사랑이 무사히 진행될까 궁금해지면서 계속 읽던 무렵...


소설은 2017년의 로즈와 1980년의 엘리스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데, 읽으면서 계속 이상한 느낌에 속이 답답해지곤 했다. 거의 40년의 긴 시간을 두고 흐르는 두 여자의 인생이 너무 비슷하게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언급했던 로즈의 엄마 찾기가 어떻게 될지 걱정부터 앞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하지만 무시하지 못할 현실의 상황이 그 사랑을 어디로 끌고 갈지 보여서 위태로웠다고 말한다면 내가 오지랖인 걸까. 내 옆의 연인이 나의 현재와 미래에 계속 함께할 사람이라는 확신도 없이, 계속 옆에 머물러도 괜찮을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가장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괴로움이 컸을 테다. 연인이 있어도 내가 갖추어야 할 나 자신의 모습 말이다. 누구의 아내, 애인, 엄마가 아니라, ‘누구라는 존재 자체가 되어야 하는 일. 로즈와 엘리스가 그렇게 찾고자 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의지해야 했을까. 아빠는 엄마의 실종 이후를 알지 못한다. 로즈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엄마가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사람이 코니라는 걸 알고 로즈는 코니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던 코니에게 가는 길은 약간의 거짓이 필요했다. 로즈는 로라가 되어 코니의 보조가 되고, 코니는 현실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로라에게 의지한다. 서로의 내면을 완벽하게 내보이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그 마음의 바닥을 꺼내 보이려는 두 사람 사이가 무사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로즈와 같은 모험 혹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간절하게 바라던 것을 앞에 두고 하나의 선택만이 있었다면, 그 선택을 향해 가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엄마의 흔적을 알려줄 유일한 사람에게, 로즈는 그렇게 다가갔다.


교차로 진행되는 두 편의 이야기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고백들. 코니는 어느 날의 선택을 후회한다. 그 후회를 감당하면서 살아왔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 선택을 했던 그녀는 그 이후의 삶을 책임졌다.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받아들였다. 언제나 가슴 밑바닥에 남아 있는 개운하지 못한 찌꺼기들이 거슬렸지만, 그것마저도 자기 몫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이야기와 감정을 꺼낼 일은 없을 거로 여겼겠지. 언젠가 로즈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엄마의 흔적을 찾겠다는 로즈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을 두고 코니에게 접근했지만, 내내 불안했다. 코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가 궁금했다. 어떤 세월을 걸어왔을까. 성공과 명예를 지키면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이룬 삶에 만족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가 숨겨둔 이야기 뒤에 엄마는 어디쯤 있을까.


여러 사람의 관계와 사랑이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 사랑의 흔적은 희미하다. 사랑했기 때문에 만났고 관계를 이어왔으며, 서로의 인생에 마음을 담글 수 있는 사이가 되었건만. 사랑이라고 믿으며 유지했던 관계의 정면을 어느 날 마주하게 된 로즈와 엘리스는 알게 된다. 그 무엇보다 자기를 찾아내야 인생의 나머지가 채워지리라는 것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내 삶을 뒤로한 채로 상대방의 삶을 먼저 보게 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과정이 절벽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왜 어떤 일은 아주 큰 상심 이후에, 시간과 감정의 피폐를 견딘 후에 알게 되는 것일까. 꼭 그렇게 겪어야만 알아지는 것이 있다고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완성해가는 그 걸음이 무거웠다. 부딪히고 깨지고, 선택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반복된 경험으로 내 안에 쌓이게 되는 것들로.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나아가려고. 조금 편하게 산책하듯 걸어갈 수도 있는 길이지만, 굳이 살펴보고 단단하게 힘주어 걸어가야 하는 이유. 나를 만들고, 나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처음 읽을 때는 이 소설이 로즈를 위해 써진 줄 알았다. 2018년의 현재, 서른다섯을 넘어가는 그녀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을 때 보여주기 위한 답처럼 보였다. 오래된 연인과 결혼이 아닌 이별을 선택할 때 그녀에게 찾아올 슬픔을 감당하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가 지금 똑같이 겪을지도 모를 로즈와 같은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위로가 아니었다. 일흔이 넘는 세월을 감당해온 코니가 로즈에게 하는 말 중에 반복되었던 그 말, 선택에는 슬픔이 따른다고. 어떤 선택을 해도 슬플 거라고 말했던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걸 알아서일까. 코니는 당당하게 말하고 본인 위주의 삶을 지내왔지만, 분명 슬펐을 것이다. 엘리스를 사랑했을 때, 엘리스가 떠났을 때, 엘리스에게 모진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후회했을 때, 모두. 그녀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 선택을 후회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도 알았겠지. 다른 선택을 했어도 후회했을 거라고, 슬펐을 거라고. 코니가 그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감당했던 것처럼, 우리가 배울 인생의 자세처럼.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내가 불쑥 말했다.

내 집에 온 거 말이에요?”

제 인생요. 전 곧 서른다섯 살이거든요.” 이름 모를 슬픔이 목구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게 될 줄 알았어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는 데는 참 오래 걸려요, 로라. 삼십오 년보다 더 오래.” (275페이지)


로즈의 엄마, 엘리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라도 독자는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엘리스를 찾는 여정에 로즈와 같이 걷고 있지만, 정작 엘리스를 찾아내서 마주하기 위한 걸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겪는 모든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삶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지 보여준다. 누군가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오직 내가 되어 살아가기 위한 인생이어야 한다고. 삶의 순간마다 찾아오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또 수많은 선택을 하겠지만, 그 선택 앞에서 슬프고 후회하겠지만,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마냥 따뜻하지 않아서 좋았던 이야기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마음을 읽어준 소설이다. 제시 버튼의 전작들을 옆에 두고 다 읽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 책으로 먼저 달래본다. 사랑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졌다면, 그 상처와 후회로 난도질당한 마음이 바스러졌다면, 이제 그 마음을 치유하고 나를 돌보는 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을 엘리스의 절망과 코니의 후회와 로즈의 선택으로 보여줬다. 누가 됐든 무엇이 됐든, 온전한 내가 되었을 때 보이는 것들로 인생은 채워진다. 삶의 의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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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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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나를 공격하는 모든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 폭력에 맞서 싸우며 이길 것 같은데. 우리는 생각만큼 그 폭력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싸우고 이기고자 애쓰지만, 타인의 시선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에 또 무너진다. 당사자가 겪은 아픔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이해할 수 있다고... 타인이 보는 피해자의 삶은 또 다르다. 발버둥을 치다가 무력해지는 마음이 아픈 것을 보지 못하고, 그저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것 또한 폭력이라는 걸 모른다. 어쨌든, 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 싸우고 이겨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좌천되듯 시골의 경찰서로 발령받은 형사 규민은 산에서 실족사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한눈에 봐도 실족사였다. 여자였고, 팔과 다리는 뒤로 꺾여 있었다. 시신의 발견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죽은 여자의 구두와 유서도 발견되었다. “증오하면서 사랑한다. (25페이지)” 여자의 유서는 간결했다. 그 간결함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찾아내는 것 또한 형사의 일이었다. 곧 여자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죽은 여자는 오기현이었고, 며칠 전에 여자의 언니 윤의현이 실종 신고를 한 것도 확인되었다. 형사는 윤의현에게 오기현의 죽음을 알리고 사인을 말해주지만, 오기현의 아버지 오창기에게도 시신 확인을 했지만, 이상하게 실족사로 처리하기에는 미심쩍다. 더 확인을 해봐야겠다며 오기현 주변을 탐문하지만, 속 시원하게 드러나는 정황이 없다. 그러면서도 오기현이 자살이나 실족사는 아닐 거로 믿는다. 그 와중에 드러난 오기현의 가족사와 오창기 주변 인물들이 숨기는 그 마을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거기에 윤의현의 주변을 의심하는 것 역시 놓치지 않는다.


소설은 두 가지 시선에서 진행된다. 죽은 오기현을 중심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는 형사의 시선이고, 오기현의 언니 윤의현의 일상을 비춘다. 얼핏 윤의현이 대학에서 강의하는 일이 전부일 것 같으면서도, 그녀의 학생이 담당 교수의 성추행 피해자로 등장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권력의 편에 서서 학생들의 목소리를 피해가려고 했던 강사가 왜 마음을 바꿔 학생의 편에 서서 도우려고 했는지 의아했다. 같은 여자여서 그런가, 아니면 학생들의 성추행 피해에 모른 척했던 태도를 반성하는 거였나. 그것도 아니면 학교를 떠날 생각에 이런저런 눈치를 볼 게 없어진 건가. 윤의현의 의도가 무엇이든 학생들 편에서 성추행 교수를 벌하려는 모습에 기운이 났다.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나를 도와줄 수 있다면 의지하고 도움받고 싶으리라. 권력의 상하 관계에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려니 모른 척 넘어가기에는 상처가 너무 컸다. 그 상처를 드러내고 치료하기에는 앞으로의 삶이 고단해질 것을 알기에 괴로웠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졌던 그때 윤의현이 힘을 보탠다. 학생들이 그 성추행의 근원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한편으로 사망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의 시선은 묻어두려고 애쓰던 또 다른 폭력을 발견한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의 순간들에 쳐들어온 폭력은 기를 쓰고 벗어나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어린 오기현은 오창기의 딸로 살면서 아버지를 혐오했다. 이 가족의 역사를 살피던 형사는 오창기는 물론 마을 사람들이 숨기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야 했다. 마을 유지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쥐고 있는 오창기의 권력은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만들고 있음에도, 누구도 선뜻 오창기의 폭력과 횡포를 말하지 못했다. 그들이 입을 열면 닥칠 불행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형사는 성이 다른 오기현과 윤의현 자매, 오창기와 마을 사람들의 비밀, 화원의 관리인 신명호와 오창기 가족, 윤의현과 성추행 피해 학생의 연대, 윤의현의 성공을 만들 영화사 관계자 등 얽히고설킨 이들의 모든 관계를 풀어야 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고, 형사가 풀어가는 사건이 하나로 귀결되면서 마주하는 진실이 놀라울 뿐이다. , 이런 결말, 이런 끔찍함, 이런 상처, 이런 복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오히려 그 진실을 몰랐으면 덜 아팠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누구나 상처를 앓고 산다. 크고 작게, 치유하거나 묻어두면서. 하지만 그 상처를 끝내 드러내지 못하고 아프게 살아가기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성폭력 등 다양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외면당하는. 이 소설에서는 누군가의 폭력이 더 섬세하게 그려진다. 사건을 추적하고 서술하는 인물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어서 더 섬세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더 고통스러웠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까지 꺼낼 수 있었던 건 한 발 떨어져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건 우리가 타인의 상처에 무관심할 수도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닿지 않은 상태로 지켜보고 있기에, 내 일이 아니어서 모른 척하기 쉽고, 권력에 고개 숙이기도 하는 인생사에 비굴해지기도 하면서. 하지만 계속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진실의 대가 앞에서 다시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마치 이 소설이 보여준 죄와 벌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시선과 방향에서 접근하는 전개가 무엇을 보여줄지 궁금했는데, 소설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보이는 것들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예상한 게 전부 맞지는 않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와 닿았기에 차근차근 그 목소리에 다가갔다. 구석구석에 숨겨놓은 속임수가 진실을 찾아내는 단서가 되어 흥미롭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이 일으키는 일들을 지켜봐야 했지만, 용기 낸 자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정의를 마주하는 일은 감동이었다. 세상의,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마무리에 용기를 갖는다. 우리가 겪는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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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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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맞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면 그 상처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괜찮다고, 잊으면 그만이라고, 곧 잊힐 거라는 믿음을 갖기도 하지만, 사실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잊힌 것 같다가도 무심결에 불쑥 튀어나오는 기억과 감정일 테다. 그러니 우리 마음은 안정되지도 않고, 울분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는 방법을 찾기도 하고, 사회적으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모습에 절망하며 법을 의지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은 우리가 바라는 공정과 정의를, 법칙에 따라 판결했음에도 법 감정을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법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처단하고 싶은 바람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사회 정의가 실현되지 않음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집행관이 된다. 현실의 솜방망이 처벌이 잘못되었다고 여기며 그들만의 심판을 계획한다.


저 세상에 보낼 인간쓰레기들의 명단은 차고 넘쳤다. (94페이지)

수천만 명 중에, 쓰레기를 전담 처리하는 청소부가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정의를 이루지는 못해도 이 사회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142페이지)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 부패 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 사건을 폭로한 퇴역 군인……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다. (269페이지)


집행관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 시작을 알리는 어느 초여름이었다. 역사학자 최주호에게 고등학교 동창 허동식이 찾아온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본 적 없는 동창생의 방문이 의아했지만, 최주호는 별 의심 없이 허동식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며칠 뒤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자 최주호는 거대한 사건에 휘말렸음을 인지한다. 일본으로 도망갔던 노령의 고문 경찰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살해되었다는 뉴스에, 그 죽음의 모습이 처참했던 것에 온 국민이 놀란다. 동시에 국민은 그 죽음에 정의를 외친다. 나라가, 법이 처단하지 못했던 존재를 그들이 처단하며 국민의 울분을 감싸 안은 것이니까. 현장에 남은 증거는 없었다. 다만 특이한 방식으로 죽은 이에게 걸맞은 살해 도구가 있었을 뿐이다. 죽은 이가 살아생전에 했던 그대로, 희생자들의 원한이라도 풀어주듯이, 일제강점기의 고문 도구를 사용해서 그대로 보여줬다. 그리고 죽은 이의 등에 새겨진 의문의 숫자. 이쯤 되면 이 죽음은 온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안다. 나라가 해주지 못한 복수를 그들이 해주었으며, 죽은 이는 마땅히 죽어야 할 목숨이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경찰과 검찰은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고, 국민은 적폐 척결이라며 환호한다.


자기도 모르게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최주호는 놀랄 수밖에. 그들이 최주호의 칼럼과 저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사람을 죽였다. 최주호가 일제강점기 고문 방식과 친일파 척결을 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며 쓴 글이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찾아온 허동식의 부탁한 자료는 그대로 누군가의 죽음에 쓰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거대한 사건에 연루된 최주호는 혼란스럽다. 한편 검찰 수사팀의 우경준 검사는 이 사건에 목숨을 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다른 희생자가 생길 것을 예감한다. 죽은 이의 몸에 새겨진 숫자는 살인자들의 메시지였으며, 단순한 숫자에 머물지 않음을 알게 된다. 법이, 나라가 처단하지 못하고 희생자들이 무혐의나 무죄로 벗어난 법률 조항이었다.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니 살인자들은 국민의 분노를 대신하여,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세상에 외치는 목소리로 한 몸이 된다.


그들은 형벌을 집행하는 데 어느 누구에게도 차별을 두지 않았지. 힘이 세든 나이가 많든 부자든 간에 똑같이 집행했던 거야. 죄를 지으면 누구나 법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불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389페이지)


안다. 아무리 국민의 법 감정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국민이 환호하는 현상을 무시할 수도 없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속이 들끓었으면 이 살인을 환호하며 박수를 쳤겠는가. 합당하게 법의 처벌을 받지도 않고 누구 보다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부패 공직자, 정치인, 기업인이 많았으면 그러겠는가 말이다. 살인자들은 자신을 집행자라 부르며 그들의 임무(?)를 계속한다.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일에 사명을 가진다.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 건 당연하므로. 국민을 기만한 죄를 지은 자들을 응징한다. 그들이 지은 죄를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에 딱 맞는 집행의식을 치른다. 공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며 정의를 찾으려고 애쓴다.


들여다보면 집행관들 역시 살인함으로써 법을 어기며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지만, 이들의 죄를 있는 그대로 묻고 싶지 않아지는 게 인간의 감정인 듯하다. 현실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법의 심판이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에 묻히면서 쌓여가는 분노와 울분은 어디로든 터져나가지 못한다. 그저 말로 분노하고, 뉴스를 보면서 한숨이 커지는 일이기에. 그래서일까. 열 명의 집행관이 우리 마음을 대신해주듯 사회악을 처단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한 희열까지 느껴진다. 아무나 골라잡지도 않는다. 탄탄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집행의 대상자를 추린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 법이 그들을 어떻게 풀어주었는지 정리하면서 후보군에 올린다. 연쇄살인을 기획하면서 검찰의 추적에 웅크리기도 하지만, 집행관들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는다. 듣다 보면 소설 속 이야기에 멈추지 않을 일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느끼고 겪는 부조리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을 다시 보면서, 상상력과 가슴을 쪼이는 전율을 느끼며 읽게 되는 소설이지만, 묘한 통쾌함에 집행관들의 계속된 심판을 기대하게 된다. 어쩌면, 권력의 면죄부를 뺏는 건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말이다.


검찰에게 집행관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저지르는 살인에 손톱만큼의 공감도 없었을까? 수사를 지휘하는 우경준을 제외하고 다른 수사관들은 이 사건을 추적하는 게 임무이면서도 이 사건을 사건으로만 볼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의 혼란을 조금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건 해결을 위해 뛰어야 하지만, 집행관들의 살인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럴만한 동기가 있기도 하다는, 아이러니한 공감을 찾는다. 국민을 대신한 복수이면서, 법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심판의 모습이 바로 집행관들의 살인 아니었을까. 물론 집행관들 개개인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큰 의미 없이 그들만의 이유로 집행관으로 참여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들의 살인이 그냥 살인으로만 머물지 않을 거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정이 아닐 것 같다.


소설은 집행관들의 청소 작업과 검찰 수사대의 임무를 지켜보는 재미도 주었지만, 이 집행관들의 실체를 찾아가는 즐거움도 있었다. 이들이 왜,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 보면서도, 혹시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더 있을까 하면서 찾는 긴장감도 있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소설로 즐기면서도 소설 속 주인공들과 사건들이 보여주는 메시지도 놓칠 수 없다. 씁쓸하면서도, 소설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짜릿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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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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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가 없는 여행. 얼핏 낭만적으로 보이는 여행이기도 하다. 목적지가 없이 떠나고 발길 닿는 곳에 머물 수 있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만한 여유가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말이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사람을 느긋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매우 급하게 쫓기던 일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어쩌면 안식년을 맞이하듯 긴 호흡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주인공 질버만이 떠난 여행도 그랬으면 부러웠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게 이 여행은 원하지 않은 여정이었다. 여행이 아니라 도망이었고, 독일을 떠도는 난민이었다. 외워두었던 기차 시간을 잊지 못하는, 자유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여행자가 되었다.


잔인한 밤이었다. 1938, 수정의 밤 사건. 나치 돌격대와 지지자들은 유대인을 공격한다.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약탈한다. 이게 다 합법이라는 게 더 놀랍다. 성공한 유대인 사업가 오토 질버만에게도 약탈의 밤은 찾아왔다. 나치 당원들은 질버만의 집에 쳐들어오고 부순다. 다행히 질버만은 그 위기를 피하고 도망쳤지만, 그날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내는 오빠 집으로 피신했고, 그의 집은 다 부서진 상태로 방치됐다. 그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도 체포되고 자유를 잃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한순간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 한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었다. 기차를 타고 독일을 떠돌며 매 순간 긴장하며 지냈다. 아니, 이건 지냈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그는 어느 곳이든 발을 내디뎠지만, 그 어느 곳이든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부유했던 그의 삶은 이제 독일을 떠도는 도망자로 전락했고,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 어디로도 갈 수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안전할 거로 믿고 끝없이 티켓을 끊고 기차를 배회한다.


독일인의 외모를 가진 그가 유대인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그나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계속 떠도는 거였다. 그의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상상이나 했을까? 부유한 사업가로 살던 그가 급히 재산을 처분해 도주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계속 도망가면서도 긍정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 사는 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곧 아내도 만나고, 파리에 있는 아들이 그의 망명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불행이 길지 않을 거로 여겼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유대인을 보면서 나치 당원의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자기 여권에 빨간색 ‘J’가 크게 쓰여있음에도 말이다.


질버만의 여행이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위태로웠던 건, 그의 외모와 여권의 ‘J’ 때문이다. 일단 그에게는 여행을 계속할 돈이 있었다. 가진 재산 전부를 처분했지만, 그 돈은 그에게 행운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하다. 이 여행을 계속할 자금이 되었지만, 언젠가 그게 잡힌다면 그 돈은 모두 몰수당할 테니까. 그의 외모가 아무리 유대인 같지 않다고 해도 그의 여권에 표시된 글자는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그는 여행하면서도 여행자로 불리지 못했다. 도망자이거나 난민이거나. 그가 기차표를 끊고 계속 다른 기차를 옮겨 타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 역시 둘 중 하나였다. 나치의 열성 당원이거나 독일군 장교이거나 그처럼 불안에 떨며 도망을 다니는 유대인이거나. 나치 당원은 아니어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는 시민이거나,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수단가이거나. 그가 독일의 도시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그의 안에 머물던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지만, 그 어디로도 떠나거나 머물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독일에 갇힌 채로 여행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베를린에서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베를린, 베를린에서 도르트문트, 도르트문트에서 아헨, 아헨에서 도르트문트,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이제 여행자다. 끝없이 계속 움직이는 여행자. 나는 이미 이주했어. 독일 철도로 이주한 거지. 난 지금 독일에 있는 게 아니야. 이건 아주 큰 차이라고. 그의 여행 음악과 같은 바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안전해. 지금 움직이고 있잖아. (214페이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여행하는 질버만의 모습을 비추는 이 소설은 그의 여정 이상을 보여준다.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나치 당원들을 피해 도망치기는 했지만, 그의 모든 순간을 비굴하거나 희생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의 지금 위치는 탄압을 받는 유대인이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본가였다. 기차의 일등칸을 이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가 도망치는 중에도 의아했던 것은 그가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혹시 그가 마주친 유대인들과 연대라도 하지 않을까 했던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그는 다른 유대인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이 상황이 되기 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독일어판 발행인의 설명을 보면, 작가 보슈비츠의 배경에서 비롯된 시선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아버지 역시 부유한 사업가였고, 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건 질버만과 같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이어서 낙인이 찍히기 전까지 유대인이라는 게 그의 가족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상기하면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소설에서 유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은 다양하게 담겨 있다. 나치 당원이 보는 유대인, 독일인 장교가 보는 유대인, 일반 시민이 보는 유대인, 유대인이 보는 유대인. 반대로 모든 독일인이 열성적인 나치 당원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바로 앞에 앉아서 대화하고 있지만, 그들이 자기를 신고할 거로 여기며 불안하지만, 실제 그들은 질버만을 신고할 생각도 없고 그의 여정을 안타깝게 여기기까지 하는 걸 보면 모두 같은 시선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다.


끝이 없는,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 즐거울까? 아닐 것이다. 여행은 어딘가로 향하는 목적지가 있어야 하고, 돌아올 곳이 있어야 즐겁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끝없이 부유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질버만의 여행이 고단하고 불행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그 스스로 여행을 끝내는 방법을 선택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마음이 읽힌다. 끝도 없는 여행을 멈춰야만 그가 살 수 있었을 테지. 그의 터전인 독일 안에서 머물 곳이 없고 끝날 수 없는 여행은 그를 미치게 했다.


질버만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슈타인을 초대했어야 하는데. 그는 메뉴판을 살피며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그의 유대식 코가 두려웠어. (63페이지)


소설은 끝났지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수많은 여행자(질버만)가 남았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 싸움, 여러 가지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오늘도 세계를 떠도는 난민. 오늘 봤던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난민의 예외에 어린이는 받아준다는 규정을 이용하는 이들을 봤다. 이걸 이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부모의 간절함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만이라도 살리겠다고, 높은 국경의 담장 너머로 아이를 떨어뜨리는 그 손끝의 바람이 보인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낙인을 찍는 과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소설 속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내가 견디기 위해 생각하는 습관을 버리겠다는 질버만의 말은, 한편으로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며 이 불행에 나를 포함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바라지 않았던가. 질버만의 체포되지 않기를, 누군가 그를 숨겨주기를, 그의 불행이 어서 끝나기를. 그러면서도 내밀지 못한 손이 부끄러워지는 건, 누군가의 절망에 용기 내지 못한 마음이아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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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작 2관王
추카!추카~
구단님 리뷰 페이퍼 좋아하는 1人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5-07 17:33   좋아요 1 | URL
와아~! 감사합니다. ^^
주말부터 다시 더워질 듯해요. 다음주 예보는 완전 여름의 시작 느낌입니다.
주말 즐겁게 지내시고 일교차 심한 날들 건강 조심하세요.

초딩 2021-05-08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책도 장바구니 담았습니다.

서니데이 2021-05-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