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 쫌 아는 10대 - 석기부터 나노까지, 소재로 쌓인 문명의 탑 과학 쫌 아는 십대 10
장홍제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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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양한 소재가 우리 삶을 누비고 있다고? 호기심이 소재라는 주제와 만나서 화학으로 말한다. 따로 놓고 보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화학과 일상과 공학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신소재 개발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게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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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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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온라인 설문 조사에 응할 때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이와 성별을 선택하는데, 언젠가부터 마주한 설문 조사에서 그동안 2개였던 성별 항목이 3개였던 적이 종종 있다. 남성, 여성, 선택하지 않음. 익숙하게 남성과 여성 중에서 고르면 되는 성별이 3개가 되었다는 게 처음에는 놀라웠다. 점점 그 항목을 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성전환하거나 혹은 같은 성을 사랑하거나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선은 아니었을 테다. 놀랍고, 이상하고,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볼 때 이상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간다. 우리가 이성을 사랑하듯, 지금의 성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듯, 나와 다른 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면 되는 일이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소우와 아이 커플은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 다쿠마와 그의 연인 사이카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커플은 소우와 다쿠마의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면서 여행지에서 같이 지낸다. 처음 아이가 사이카를 봤을 때는 제법 도도하고 냉랭한 분위기여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여행 이후에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아이와 사이카는 서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가 된다. 이십 대 초반, 성인이 된 이들의 새로운 우정은 돈독하고 깊어진다. 일반인으로 단순한 일을 하던 아이와 이제 막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배우 사이카는 서로의 환경은 달랐지만, 제법 친해진다. 이제는 소우와 다쿠마와 상관없이 둘만의 우정을 쌓기에 바쁘다. 거부감 있던 첫인상은 언제였냐는 듯, 둘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돈독한 관계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다쿠마가 사이카와 헤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바로 어제 만난 사이카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사랑은 어느 순간에 찾아오는 걸까.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사이카는 아이를 마음에 담았다. 여행지에서 이후에 자주 만나면서 자기 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입을 맞추고 안고, 온몸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 아이는 사이카의 행동에 당황했다. 사실 아이는 학창시절 짝사랑하던 소우와 연인이 되었고, 별일 없다면 두 사람은 곧 결혼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사이카의 고백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고백 때문이 아니었다. 사이카의 고백과 동시에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그 마음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매몰차게 거절하면 되는 일인데, 중요한 건 사이카의 마음을 점점 받아들이는 아이 자신의 마음이었다. 거부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이 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건 이미 그 사랑에 빠져들었다는 거 아닐까?


아이가 혼란스러워할수록 이 소설을 읽는 나의 마음도 불안해졌다. 각자의 애인이 있던 상황에서 어떻게 정리가 될까 싶어서 말이다. 소우와 다쿠마는 선뜻 둘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애인의 자리에서 깔끔하게 물러날까 궁금했다. 어떻게 이 마음을,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사회의 시선은 아직 이 사랑을 예쁘게만 바라볼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헤쳐나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아이와 사이카는 두 사람의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소우와 다쿠마가 인정하고 물러났음에도, 두 사람은 당당하게 서로의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에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사랑했고, 각자의 일을 응원했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하루하루 감정을 쌓아갔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했던 건, 아마도 내가 가진 시선 때문이겠지. 타인의 사랑, 누구나 사랑이 같은 모습을 아닐 거라고 알면서도, 인정하면서도 시원하게 이 사랑을 바라볼 수 없던 건, 나 역시 그 사랑을 바라보는 많은 이의 시선에서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


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하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여기에서부터다. 동성의 사랑은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많이 들을 수도 없을 지극히 사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표현일 것 같았다. 서로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고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두 사람이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는 이미 이들의 사랑을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 너머에 서로의 육체에 닿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부분에서였다. 보기만 해도 좋은데, 입 맞추고 그 피부에 닿고 싶은데, 저 표정 저 행동 하나에 반해버렸는데, 이 마음 그대로 육체로 표현하고 나누었으면 좋을 텐데... 같은 성의 연애가 아니라, 그냥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보면 되는 일이다. 이 마음이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이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 연애를 공개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서 부딪힌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배우 사이카의 활동에 제약이 될 두 사람의 관계를 사이카의 소속사에서 정리한다. 공개되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기 전에, 사이카의 경력에 방해되지 않게 미리 잘라낸다. 아이는 이 사랑을 위해 잠깐 물러난다. 소문이 잠잠해지면, 곧 사이카에게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소속사의 의견에 따른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이 흐른다.


읽으면서 누구나 비슷할 거로 생각한다. 당신의, 나의 사랑은 어떠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사랑을 오래 지키기 위해 지금 잠깐 물러난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오래 만나지 못해도 그 마음 변함없이 지킬 수 있는지, 나를 거부하는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이기에 나를 더 보듬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사랑을 위해 이렇게 애써왔는데, 보지 못해도 이 마음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것도 몰라주고 나를 향한 원망만 쏟아내는 상대를 품어줄 마음이 나에게 남아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의 그런 의문에 답을 내려주듯,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의 사랑을 어떻게 복기하는지 증명한다. 오직 가슴에 자리한 사랑만 꺼내놓는다. 과거 두 사람이 열정적으로 나눴던 사랑을 기억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그저 계속되는 사랑에만 집중한다. 이십 대 초반의,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에 경험했던 그 사랑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청춘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세월을 이기고야 만 사랑에 관해 말한다.


그동안 퀴어 소설을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완독하거나 깊게 읽으면서 그 사랑을 헤아려보지 않았다. 지금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점점 그 시선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알기 위한 노력도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현실 속 동성의 사랑은 이럴지도 모른다는 솔직한 느낌을 받았다. 사랑은 이런 거지. 이렇게 진하고, 솔직하고,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누군지, 성별이 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이면, 그거면 된 거다. 원래 사랑은 그런 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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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과 싸는 것
가시라기 히로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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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 것인데, 그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경험. 혹시 경험해본 적 있는가? 한 달 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힘들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저절로 났다. 이렇게 죽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아프다는 게 두려웠다. 맹장 수술 말고는 수술대 위에 누워본 적도 없고, 자잘하게 병원 드나들곤 했지만 큰 병을 걱정한 적은 없다. 그러니 많은 이가 겪는 질병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테다. 이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할 수 있던 건, 저자의 말처럼 상상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 아픈 일, 그 고통을 상상하면 되는 거 아니겠냐고 쉽게 말하면 안 된다. 아니, 상상 이상의 것이 존재하고,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저자가 겪은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이 책을 다 읽고도 알 수 없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희귀질환을 처음 들었다. 갑자기 스무 살 청년에게 닥친 설사. 뭐 살다 보면 설사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싶었는데, 단순한 설사가 아니었다. 혈변이었다. 혹시 큰 병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러다 말겠지 하면서 고통을 견디고 있으니 병은 더 심해졌다.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찾은 병원에서 생소한 병명을 듣게 된다. 궤양성 대장염. 여기까지 읽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아니고 이니 다행인 거 아닌가 했다가, 바로 후회했다. 그 어떤 병명 앞에서도 다행인 건 없었다. 병을 알게 된 그 날부터 저자의 인생은 완전히 바뀐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아무리 노력하고 좋은 약을 써도 완치가 되지 않는 병 앞에서 절망한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을 수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병은 더 심해질 테니까.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병원의 처방대로 하면 몸은 좋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낫는 게 아니라 괜찮아졌다가, 그 노력이 좀 부족해지면 다시 안 좋아지는 상황의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중요하고 인간의 기본이 무너진다. 아무거나 먹지 못했다. 아무 데서나 변을 지릴까 무서웠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타인에게 옮을 병이 두려웠다. 그런 삶을 13년이나 계속했다. 그 시간 동안 반복된 입원과 퇴원은 단순히 환자라는 이름만 붙여준 게 아니었다. 그가 먹는 것과 싸는 것을 어려워하는 동안 그의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으니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변을 지릴까 봐 집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그의 생활은 병원에 입원해 있거나, 집에서 나가지 않거나 둘 중 하나였다. 먹고 싸는 제법 단순한(?) 문제를 두고 굳이 책으로 써야 할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반전은 책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먹는 것과 싸는 일이 인간에게 무엇인지 묻는 게 되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저자가 생각하고 쏟아내는 말은, 독자에게도 강한 충격이 된다.


누군가 무엇을 먹든 무엇을 먹지 않든, 다른 사람이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 누군가의 식단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이 뭐라 불평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가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난하고, 먹이려 한다. (133페이지)


지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병에 걸렸으니, 나이가 먹었으니, 수치스러워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이다. (193페이지)


먹고 싸는 일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먹고 싸는 일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었고, 싸는 일도 자유롭지 않았다. 먹는 일은 여럿이 모여서 함께 하는 일이 되고, 누구에게나 드러내놓을 수 있다. 식사는 같이하기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싸는 일은 왜 혼자 숨어서 해야 하는 부끄러운 행위가 되었나. 배설하는 일은 수치스러움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배설의 상황에 수치까지 얹어지면 인간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싸는 일이 두려워 스스로 은둔을 선택하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그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저 타인으로 지켜봤을 일이, 자기 일이 되니까 시야가 넓어진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알지 못했던 일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자기 병으로 인해 타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리고 싶기도 하다. 이런 병도 있다고, 이 병은 이런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모르고 하는 한 마디가 상처와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꼭 질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먹기를 강요(?)당하는 게 너무 괴로워서 힘든 적이 있다. 먹고 싶지 않은데 굳이 같이 먹어야 하는 경우, 간단하게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굳이 식사를 같이해야 하는 자리를 만들 때마다 괴롭기만 했다. 물론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면서 쌓이는 신뢰나 관계의 돈독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원할 때 좋은 효과를 내는 거 아닐까. 특히 저자처럼 병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상대의 이유를 무시하면서 끊임없이 권하는 건 무슨 마음일까 싶기도 하다. 같이 먹는 걸 거절하면 비난하면서 배제하는 것으로 확대하여 해석한다. 음식을 거절했다고 그 사람을 거절한 것으로 여기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다. 같이 먹지 않는다고 마치 무슨 문제가 큰 사람으로 여긴다. 왜 우리는 타인의 절박한 상황을 듣지 않고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코로나 상황이 전 세계를 고통에 빠트렸지만, 여럿이 모이거나 함께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를 잠시나마 멈출 수 있어서 좋았던 점도 있다. 솔직히 이제 거리 두기 해제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방역 지침으로, 잠깐 멈췄던 회식 문화나 불편했던 사적 모임이 다시 불을 피울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다.


단순하게 보면 이 책은 한 사람의 투병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다 읽고 나서 독자는 그 단순함을 머릿속에서 지우게 될 거다. 아픈 이야기가 무슨 책이 될까 싶겠지만, 질병의 고통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양하게 뻗어 나간다. 희귀질환 앞에서 고통스러운 사람, 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고 먹기를 강요하는 사회, 똥을 지릴까 봐 선뜻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이어진다. 단순히 먹는 것과 싸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지는 것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그러니 혹시라도 저자처럼 낫지 않는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진짜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상상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 고통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사자가 왜 같이 식사하는 걸 어려워하고 음식을 가려야 하는지, 인간의 기본인 생리현상으로 힘들어하면서 외출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하는 거다.


누구도 몰라줄 경험이 점점 쌓여간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푸념하지 않으려고 참기도 힘들지만, 푸념을 해도 알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욱 힘들다. (255페이지)


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다는 걸 그대로 확인한다. 섣부르게 아는 척하면서 병은 나아야 하는 거라는 둥, 인간은 성장해야 하는 존재라는 식의 판단은 넣어두시라. 세상에는 회복되지 않는 병도 많고, 그 많은 시련을 겪었는데도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 그게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극복 서사가 아픈 사람에게 육체적 고통에 정신적 고통까지 얹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와 현실에서 위로와 이해를 받지 못한 저자는, 자기가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에서 문학으로 구원을 찾는다. 그가 연구하는 문학에서 마주한 문장으로 그의 마음을 대변하면서, 아프고 나니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타인에 대한 이해 넓혀주기를 바라는 게 저자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 사회가 낫지 않는 병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지적하는 저자의 절실한 마음을 듣는 게,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음이 난다. 재밌다. 이 불편한 상황을 너무 적나라하게, 감추고 싶은 진심까지 드러내면서 쏟아낸다. 거기에 너무 잘 어울리는 표지, 저자의 솔직함과 재치 있는 문장(말투), 문학에서 찾아낸 적재적소의 인용구까지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즐겁게 읽힌다. 제목만 보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시라. 도대체 먹는 것과 싸는 것으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느냐고 걱정하고 있다면, 기우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식욕)와 생리현상(싸는 일)이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렇게나 민감하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다. 너무 감동적이다. 흑흑.



#먹는것과싸는것 #가시라기히로키 #다다서재 ##책추천 #희귀질환

#문학 #에세이 #상상할수없는것이있다 #이해 #공감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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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2 - 도깨비시장 위험에 빠지다 천년손이 고민해결사무소 2
김성효 지음, 정용환 그림 / 해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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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보다 이야기가 더 탄탄해졌다. 미지의 시공간에 빠져들어 생생한 모험이 펼쳐진다. 등장인물도 더 많아지고, 조금 더 복잡해진 관계 속에서 재미는 더해진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재해석한 상상이, 누가 읽어도 즐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로 이용했다. 익숙한 이야기가 신선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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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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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은 인류의 정착생활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불행도 같이 불러왔다. 아, 이렇게 먹을 게 많고 편해진 세상이 행복이 아니라 인간 삶의 비참함까지 만들었다는 말이 믿어지는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질병이나 전염병, 불평등으로 인한 절망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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