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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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서 특별하다고 여겼는데,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누르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순간 말을 잃을지도 모른다. 진짜 내가 바라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어떤 감정과 마주하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인생이 그렇지. 어느 날 찾아보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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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갑자기 굉장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면서 누르고 있던 것‘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추천 감사합니다 :)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
강은진 지음 / 작아진둥지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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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하는 자의 가난은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245페이지)


가난과 빈곤이 같은 말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항상 그 두 단어를 같이 들어왔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 책에서도 설명을 해주었건만, 사실 그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가난과 빈곤은 언제나 같이 오고 같이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저자는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듣다 보면 이건 누구 한 사람의 가족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모두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모든 이의 이야기다. 70대 아버지, 40대 언니, 20대 조카. 그들이 오늘을 사는 법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프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열심히 사는데, 성실하게 노동하며 돈을 벌고 있는데 왜 이들의 가난은 계속되는지 묻고 싶지만, 속 시원하게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저자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중퇴하고 삶의 현장으로 투입되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꼈다. 1940년대생의 아버지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그런 삶을 당연하게 여겼을 테다. 그런데도 성공했다. 가방 공장에서 그 실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았고, 곧 가방 공장 사장이 되었다. 가방만으로 계속될 수 없는 사업에 가방 자재 사업을 했고, 이 사업 역시 잘 되어 인생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IMF가 터지고 받아둔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먹고 살아야 했다. 퀵 서비스 기사가 되어 가장의 책임을 이어갔다. 저자의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건물 청소를 하던 중에 쓰러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아버지와 언니가 돌봤다.


첫째 언니가 어머니를 돌봤지만, 언니 역시 자기 가정이 있었다.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는 건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시간제로 일하며 아이를 키웠다. 그걸로도 충당되지 못하는 생활비 때문에 언니 역시 퀵 서비스로 진출한다. 작은 언니도 이 형편에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며 살 수 없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 아버지가 도산하고, 재수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각만큼 이뤄지지 못한 계획을 이어갔지만, 대학 진학은 어려웠다. 아르바이트에서 계약직으로,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행운(?)을 얻었으나, 1년 만에 결혼하고 퇴사했다. 전업주부로 사는 언니의 노동자 생활을 이렇게 종료되었다. 저자 역시 비슷한 시기를 건너왔으나,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에 좋은 직장도 구했다.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점점 커리어를 높여갔고, 지금은 상당히 안정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궁금했던, 언니의 두 아들인 저자의 두 조카 이야기는 이 책의 핵심이 되는 듯했다. 가난한 살림의 부모는 아이를 여유롭게 키울 수 없었을 거다. 생활비를 버느라 바쁜 엄마, 한동안 외가에서 함께 살아야 할 정도였으면 어려운 생활이었겠지. 이 아이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10대 때부터 일했다. 대학 졸업장, 자격증 같은 건 없다. 이들이 하던 일 중의 하나는 배달이었다. 우연히 도박에서 번 100만 원으로 투자했다가 잃고 다시 배달 일과 도박을 반복하며 사는 큰 조카. 배달 일을 하면서 좋은 기회에 호텔에서 잠깐 일하다가 군대에 간 작은 조카. 군 제대 후의 삶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성장한 두 아이는 조금씩 다른 길을 가는 듯하다. 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같은 조건에서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건 무슨 차이일까 싶어서 말이다. 결국, 자기 의지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그것만으로 답이 될 수 없지만, 자기가 경험하는 노동의 변화가 어떤 삶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해도 될 것 같다.


3대에 걸친 이 가족의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는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하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동안 살아온 환경을 쭉 되짚어보게 된다. 나의 성장 역시 부유하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 많은 아이를 키우며 고생했던 엄마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저자의 언니와 비슷한 나이를 살아온 우리 형제자매는 스무 살을 넘어가면서 취직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탠 건 아니다. 그저 우리 각자의 삶을 유지하고자 돈을 벌었을 뿐이다. 부모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함이 아닌, 우리가 살아갈 방법을 구하느라 일했다. 지금은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여전히 우리는 오늘을 유지하며 사는 일에, 어떤 일을 하든 노동하며 사는 것에 감사한다. 그런데도 저자의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는 건, 가난한 사람의 일상이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절망적인 생각 때문이다. 글쎄, 부유하지 않다고 다 가난한 건 아니지만, 가난하지 않다고 해서 다 부유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단하면, 부모는 자식의 교육 환경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밥 굶지 않게 하는 일이 우선이 되니까. 그러니 가난은 배고픔 하나를 말하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을 가난 속에 가두게 된다.


언젠가 아빠는 고령으로 더 이상 엄마를 돌볼 수 없게 되고, 어쩌면 병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자식)들은 늙고 병든 엄마와 아빠를 돌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거나, 지금 하는 ''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의 삶은 가시밭이 아니라 지뢰밭이다. (72페이지)


이 책에 가득 담긴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우리의 오늘이고, 흔하게 보는 현실이었다. 열심히 일하는데 삶의 질이 변하지 않는 이상한 결과, 이제는 비정규직을 넘어 플랫폼 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더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자리, 그런데도 놓을 수 없는 일에 계속 매달려 오늘을 버티는 삶이란 무엇일까. 들으면 들을수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만 든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최저시급에 맞춰 계산되는 이상한 논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충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무리 들어도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모르겠다. 저자 역시 어떤 해결을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준 건 아니겠지.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하는 저자가 가족 모두가 속해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대비되는 환경에 있으니, 이 묘한 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을지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이 구조적인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걸까. 가족의 성실한 노동을 존경하면서도, 막상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마주치는 배달하고 청소하는 노동자가 내 가족이라면 두렵다는 저자의 마음은 해결되지 못하는 이 문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자수성가,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가난이 대물림된다는 말로 연결된다. 부유하지 못한 아버지가 가방 공장을 하면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IMF와 함께 몰락했고, 그 후로 계속된 가난은 이 가족을 벗어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은 그 가난을 벗어나려 버둥거렸지만 쉽지 않았고, 이제 그 가난은 손주(저자의 조카들)에게로 3대에 걸쳐 이어간다. 나 역시 자라면서 경험했던, 눈에 보이는 환경의 차이가 어떤 성장을 만드는지 알고 있다. 살아갈수록 더욱 적나라하게 느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 다른 환경의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같이 일했던 옆자리 동료는 생계를 위해서 이 계약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계약은 종료되었고, 그 동료는 다른 일을 찾느라 오늘도 구직 사이트를 방황한다. 그 자리에 새로 온 사람은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 쉬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여길 추천해주셔서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일도 한번 경험해보라고 했다면서. 그 청년은 이번 일이 끝나면 번 돈으로 일본에 다녀올 거라고 한다. 누구는 생계를 위해서 붙잡아야 하는 일을, 누구는 경험 삼아 한번 해볼 수도 있는 일이 된다는 게, 참 씁쓸하다.


부모가 빈곤층이면 자식 또한 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학력·직업·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제대로 교육받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에 다닐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준의 급여는 지급되어야 한다. (246페이지)


이 가족의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아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이들의 노동은 현재 진행형이며, 여전히 어려운 노동 환경에서 그들의 일을 하고 있다. 여러 책과 논문을 참고하면서 이들의 노동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들려주는 게 오히려 지금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고 해야 할까. 아버지 세대의 노동이 어떤 과정과 사회 환경에 의해 변화해 왔는지, 이런 사회적인 문제가 한 개인의 노동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한 시대의 흐름을 듣는 것 같으면서도, 누구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우리 이야기 같아서 많이 공감되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적어도 이렇게 일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게 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겠지만... 노동으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세상을 죽기 전에 볼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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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석들 창비세계문학 88
에밀 졸라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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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이놈의 집구석들, 닫힌 문 너머의 민낯은 참 추하다만, 누가 감히 돌을 던지랴. 시간 맞춰 봐야 하는 막장 드라마보다 재밌다. 그 재미를 지금도 우리가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좀 웃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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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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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를 이가 빠진 것처럼 읽어왔으니, 그 오랜 세월 동안 해리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온 모습을 다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꾸준히 찾아서 읽게 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에게 잡히는 악당들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에게 남아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안쓰럽기도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지켜보고 싶으면서도, 어쩌면 그가 겪는 고통의 시간이 그가 범인을 쫓는 원동력이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작품을 펼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렇게 빠진 이를 하나씩 채워가는 재미를 배우는 중이어서 그런가. 점점 해리의 시간 속에 빠져들던 중에 시리즈의 12번째 작품 을 만났다. 10년 동안 한 권도 빠짐없이 만나온 독자는 어땠을까. 전작 목마름에서 이룬 해리의 행복에 기도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그의 인생 이제는 고통 없이 활짝 필 수 있었을까?


전작의 해리는 라켈과 결혼했다. 이제 더 행복해지는 일만 남았구나 싶었을 때, 이 소설의 첫 부분은 술에 절어있는 해리였다. 그렇게 행복한데 왜 그는 다시 술에 파묻힌 채로 오늘을 버티고 있는가. 경찰학교에서 학생도 가르치고 그의 심신도 안정되어 보였는데, 다시 살인범이 나타나면서 해리는 현장으로 복귀한다. 나쁜 놈도 잡았는데 그의 삶은 왜 자꾸 피폐해지는지 모르겠다. 해리 개인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도 술에 취해 누군가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 해리는, 다음 날 자기 몸의 피 칠갑을 이해하지 못했다. 옷에는 여기저기 피가 묻어있었고, 그의 손도 피투성이였다. 그의 기억은 전날 밤 술을 마시던 바에서 멈춰있었다. 그가 술을 마신 것도 한두 번이 아닌데, 이 정도로 기억이 끊긴 적이 있었나? 바의 사장과 다투면서 묻은 거로 생각하기에는 피가 묻은 정도가 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 사건들. 한 여성의 살인 사건은 남편의 자백이 있어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그가 사랑하는 라켈의 죽음 소식은 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약혼자라 불리는 연쇄살인범이었다. 스베인 핀네. 이 미친 녀석이 해리에게 복수하고자 라켈에게까지 손을 뻗은 듯하다.


이제 해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라켈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작은 단서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해리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스베인 핀네를 의심하고 그를 쫓으면서도, 그날의 사라진 기억을 찾으려고 애쓸수록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한다. 누가 라켈을 죽인 것인지 단 한 사람으로 단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스베인 핀네가 아닌가? 해리와 연관된 사람이 계속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하면서도 해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데도, 그게 진심인지 읽는 나도 자꾸만 의심이 든다. 무엇보다 해리는 라켈의 남편으로 범인의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으니, 나는 해리마저 의심해야 했다. 누구도 놓칠 수 없었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라켈이 죽은 날 밤, 해리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싸우기까지 했다. 그의 옷과 손에 묻은 피는 그날 바에서 묻은 게 맞는 걸까? 아니면 해리에게 지워진 기억 속에 라켈의 죽음과 연관된 뭔가가 있는 걸까? 해리 역시 그 부분을 찾으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여러 용의자를 쫓으면서도 그 자신마저 의심해야 했다. 그동안 그가 겪은 고통은, 라켈을 죽인 범인 속에 자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왜 하필 칼이었을까. 이 소설의 제목은 단순하게도 한 단어, 한 글자다. . 다양한 살인 도구를 뒤로하고 칼 하나로 피해자들을 괴롭힌 이유는 뭘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고만 있다가, 이 책을 다 읽고서 작가의 인터뷰를 소개한 부분을 봤다. 칼로 살인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가까워야 하는데,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가까운?’ 그럼 해리가 범인일까? 설마, 그럴 리가 없어. 그럼 누구지? 라켈과 가까운 사람이 해리 한 명은 아닐진대, 도대체 누구란 말이야?


상대방과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에서, 귓가에 살짝 입을 대고 하고 싶은 말까지 더해가면서 찌르는 칼의 잔인함은 어느 정도일까. 특히 가까운 사이에서 파고들어 오는 칼의 깊이는 말할 수 없는 공포였을 것 같다. 나를 찌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소설 속 범인을 찾는 일이, 범인이 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 살인의 이유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살인범을 찾는 과정에서 보이는 해리의 고뇌를 볼 수 있던 게 이 소설의 미덕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 해리 주변 사람들의 삶을 엿본 것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해리 역시 그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테고, 그 상처가 고스란히 되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특히 라켈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후회가 그를 더 아프게 했을 거다. 그의 죄책감은 더 깊어지겠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좌절, 고통, 사랑, 믿음, 배신, 질투 같은 감정들을 모두 본 것만 같다. 해리 역시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누군가의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갈등하며 헤어질 수도 있고, 잘못을 알면서도 미워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한다. 인간이어서 그렇다.


사랑으로 시작된 모든 것. 좋은 감정, 나쁜 관계, 선한 마음, 악랄한 복수심, 피와 살인, 연쇄살인범,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각자의 비밀. 모든 요소가 잘 어우러져 함부로 범인을 단정할 수 없게 하면서 추리소설의 쫄깃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해리의 고통이 끝나기 바라는 독자의 간절함을 무시하는(?) 작가의 다음 무기는 무엇일까.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여겼던 해리에게 라켈을 잃는 고통을 선사한 작가가 어떤 이야기로 다시 해리를 소환할지 기대된다. 이런 재미의 벽돌책이라면, 등에 이고지고 다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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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감각
김보영 지음 / 아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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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읽고 반해버렸는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작가의 작품이 많았다. 12년 전에 절판된 초기 소설집이 복간되어 독자 앞에 나왔는데, 최근작과 비교하는 재미도 있지만 역시 김보영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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